책 소개
▣ 출판사서평
1. 시의 나라, 시인의 나라, 이란
이란은 시의 나라, 시인의 나라로 불린다. 그만큼 이란인들은 자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강하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 주고받는 속담과 경구 중 상당수가 시에서 유래될 정도로 시는 이란 사람들의 삶 깊숙이 녹아 있다. 유엔 본부 건물에는 “한 뿌리에서 인류는 나왔지/ 게다가 창조로 바탕 이루었지/ 가지 하나만 충격받아도 충분치”라는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사아디의 시구가 새겨져 있다. 자국의 시문화에 자긍심이 강한 이란인들은 괴테도 찬양한 바 있는 14세기 페르시아 시인 허페즈의 시집으로 점을 치고, 동지 전날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밤늦게까지 석류, 수박 등의 붉은색 과일과 여러 종류의 견과를 먹으며 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슬람 문화권의 중심국이면서 페르시아 문화를 함께 계승한 이란은 우리나라와 중동지역의 가장 중요한 교역 국가이면서도 그간의 문화 교류는 미미한 실정이었다. 한국시인협회는 이란 시인들과의 교류를 위해, 2014년 6월 15일부터 24일까지 이란을 방문하였다. 이를 위해 김종철 당시 시인협회회장은 김중식 주 이란 한국홍보관과의 사전 계획으로 이란시인협회와 상호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과 양국 현대시인선의 상호 번역 출간 등을 약정하였다. 그리하여 국내에서는 김종해, 신달자, 정호승 시인 등이, 이란시인협회 측에선 이란시인협회장인 퍼테메 러케이Fatemeh Rakei, 이란 국가를 작사한 서에드 버게리Saed Baqeri 등 소속 시인 다수가 참여한 한국 ? 이란 양국의 시인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백년의 시간, 천 개의 꽃송이』는 양국 시인들의 교류에 의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2. 국내 처음 소개하는 이란 대표 현대시
이란인들의 민족적, 문화적 자부심의 원천이 되어 온 중세 페르시아 시인들의 작품 중 일부는 비록 완역의 형태는 아니지만 국내에 번역 출판된 것이 더러 있었다. 현대시인 중에서도 포로그 파로흐저드나 소흐럽 세페흐리의 작품 중 일부가 우리 말로 번역되어 소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란의 현대 시문학을 대표하는 여러 시인들의 작품이 폭넓게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백년의 시간, 천 개의 꽃송이』에는 20세기 초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란의 현대 시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시인의 작품을 선별하여 수록하였는데, 자유시든 정형시든 시형과 상관없이 다양하게 다루었다. 입헌 혁명기에 활동했던 시인, 고전시의 시형에서 과감히 벗어나 이란 현대시의 토대를 세운 시인, 현대 시문학사에서 최고의 여성시인으로 손꼽히는 시인을 비롯하여 이란 국가國歌를 작사한 시인 등 20세기 초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각 시대를 대표할 만한 시인들이 포함되었다. 소재면에서도 혼란스러운 정치사회상을 비판한 참여시부터 인생과 세상살이를 다룬 교훈시, 서정시까지 다양하게 선별되었다. 특히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로 주목할 만한 활동을 펼쳐온 동시대 시인들의 시작품을 추가하였다. 이 중에는 지난 2014년 한국 ? 이란 시인문화교류의 일환으로 테헤란에서 두 나라 시인협회 소속 시인들의 시 낭송회가 열렸을 때 참석하였던 이란 대표시인 5인의 작품도 포함되었다. 이렇게 하여 [오늘의 이란 시와 시인들]에 수록된 이란 시인은 모두 71명이며, 71편의 시가 번역되어 묶이게 되었다.
3. 삶의 뿌리이자 그리움의 시원始原, 어머니
슬프고 아름다운 인간의 몸에 세공된 영혼의 문신, 문정희 시인이 추천사에서 표현하였듯 오늘의 이란 시는 이란인의 삶 속에 투영되고 비친 그들 삶의 진실한 모습 그 자체이다. 그 중에 어머니에 대한 마음 혹은 어머니의 사랑은 시인의 시심을 더욱 크게 뒤흔드는데, 어머니는 삶의 뿌리이자 그리움의 시원始原이 되기 때문이다.
어머니 날 낳으시고
젖 무는 법 알려 주셨다.
밤이면 머리맡
뜬눈으로 날 잠재우시고
손잡고 한 발짝 두 발짝
걸음마 일러주셨다.
혀끝에 단어 한 마디, 한 마디 놓아
말 트이게 해주셨고
내 입술에 웃음꽃 한 가득
꽃봉오리 피우도록 가르쳐 주셨다.
- 이라즈 미르저,「어머니」부분
이란 입헌 혁명기 문학에 큰 영향을 끼친 이라즈 미르저(Iraj Mirza, 1874~1926)가 노래한 ‘어머니’는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에 대한 인류 보편의 마음이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의 마음인 것이다. 그런 보편적인 마음이 애잔하게 느껴지는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화 중 하나로 손꼽히는 페르시아 종교와 문화 전통의 한 귀퉁이에서 억압되고 소외된 여인으로서의 어머니 모습이 겹쳐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억눌리고 가난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자식들에게만큼은 올바른 신념과 사랑을 심어 주시는 어머니이기에 그의 존재는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 샤흐리여르(Shahriar, 1906~1988)의 아래 시는 그런 어머니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인의 처절한 슬픔을 잘 그려 내고 있다.
어머니는 고향의 허드레꾼 몸종 다 포기하고
하필 나와 내 운명을 찾아왔다
나 말고도 자식 네 명을 더 키워 냈다
석유통을 겨드랑이에 끼우고
매일 밤 가난한 집 대문을 나와
다 죽어가는 사랑에 불을 밝혀 왔다
(중략)
대체 누구였을까
어젯밤 내가 걷어찬 이불을 다시 덮어 주고
내 옆에서 물잔을 치워 준 이가
한밤중
악몽 한 토막과 함께 나는 열병이 났다
아침이 가까워졌을 무렵
어머니는 여기 내 머리맡에 앉아
조심조심 하나님께 빌고 있었다
아니, 어머니는 죽지 않았다
- 샤흐리여르,「어머니, 내 어머니」 부분
자신만을 간수하기에도 힘겨운 삶이지만 자식들과 주변의 불쌍한 다른 사람들을 돌보며 살아온 어머니의 죽음은 시인에게 환청과 환영을 보게 할 만한 커다란 충격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인은 알고 있다. 어머니는 언제까지나 시인의 마음속에, 그의 시 속에 밝은 빛으로, 사랑으로 살아 있음을.
위 두 시편이 어머니에 대한 자식의 마음이었다면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아래 시는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도시의 넓은 광장
손과 발이 쇠사슬에 묶인
흉악범 하나 끌려 간다
말쑥한 신사는 이렇게 말한다
“파렴치한 놈”
의사는
“사회의 기생충”
청소부는
“더러운 쓰레기 같은 놈”
겸허히 기도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한 여인이 지나간다
“불쌍해서 어쩌나
널 낳으신 어머니 딱해서 어쩌나”
- 퍼테메 러케이,「한 여인이 지나간다」전문
현재 이란시인협회장이기도 한 퍼테메 러케이(Fatemeh Rakei, 1954~ )의 위 시는 그 어떤 잘못을 하고 흉악한 짓을 저지른 쓰레기 같은 사람일지라도 그의 어머니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으로 그를 용서하며 감쌀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자식 앞에서 어머니는 그렇게 헌신적이기 때문에 불쌍하고 딱한 존재가 또한 될 수밖에 없다.
4. 영적인 힘과 함께 부드러운 사랑을 전하는 매혹의 서정시
이란 시의 특성이라면 무엇보다 페르시아 전통시인 ‘허페즈’(Hafez Shirazi, 1320년경∼1389)의 서정시 계보일 것이다. 읽는 이의 영혼을 편안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의 절제되고 함축적인 시어는 영적인 힘과 함께 부드러운 사랑의 속삭임을 독자들의 가슴속에 강하게 각인시킨다.
①
오늘밤 그대는 내 마음에 귀 기울이지만
내일이면 나를 잊겠지
세월의 조개가 늘 진주를 품고 있는 건 아니라고
나 거듭 그대에게 말하지만
그대 과연 내 말을 품고 있을까
나 그대 안고 싶지만 내 손에 닿지 않네
달처럼 고운 그대, 누구 손을 잡고 있는가
그대 술잔에 무엇이 담겼기에 한 모금만 마셔도
술 취한 자, 안 취한 자 모두 정신을 놓게 만드는가
- 후샹 엡테허즈,「침묵의 입술」부분
②
그대 없이 나 홀로
어느 달밤, 또다시 그 골목을 찾았다
내 온몸은 눈이 되어 그대 찾아 헤매었다
내 몸 안의 술잔은 행여 그댈 만날까
설렘으로 흘러 넘쳐
나 미친 사랑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그때처럼
영혼 깊숙한 곳에선 그대 기억의 꽃이 빛난다
백 가지 추억 가득한 정원이 미소짓고
백 가지 추억의 향기로 가득하다
(중략)
그날 밤도, 다른 밤들도
슬픔의 어둠 속에 흘러가 버렸다
그 후로 그대는 상심한 연인의 소식을 묻지도
그 골목을 다시 찾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얼마나 그대 없이 그 골목길을 헤매었던가
- 페레이둔 모쉬리,「골목」부분
③
나의 집은 구름 끼어 흐리고
구름은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나만의 화창한 날을 상상하며
태양을 향해 우뚝 서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본다
세상은 흐리고
바람으로 무너지고 부서지는 것 같은데
피리꾼은 그저 피리 불며
길을 간다
묵묵히 걸어간다
- 니머 유쉬즈,「나의 집은 구름 끼어」부분
④
물 흐리지 말라
저 아래 어딘가 비둘기가 목 축일지 모른다
저 멀리 수풀 속 방울새가 깃털 단장하고
어느 마을에선가 물을 길을지도 모른다
물 흐리지 말라
물 흘러흘러 버드나무 밑동에 다다라
슬픈 마음 씻어 내 줄지
가난한 이가 마른 빵조각 적셔 먹을지 모른다
아리따운 여인 강가로 나왔구나
물 흐리지 말라
물에 비친 여인의 얼굴
고운 모습 두 개가 되었구나
- 소흐럽 세페흐리,「물」앞부분
①번 시는 ‘허페즈’의 서정시 계보를 가장 잘 이어받은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후샹 엡테허즈(Hushang Ebtehaj, 1928~ )의 연시이다. 시 속의 ‘그대’는 내가 가질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으나, 시인에게 시의 영감을 내리는 뮤즈의 여신이기도 하다. 그녀가 제목처럼 ‘침묵의 입술’이 아닌 내 말을 품고 아름다운 말 한 마디를 다시 들려준다면 모든 사람들이 매혹당할 만한 보석 같은 시가 태어날 것이라는 바람이 담겨져 있다.
②번 시는 1960년《로우샨페크르》지誌에 실린 페레이둔 모쉬리(Fereidun Moshiri, 1926 ~2000)의 대표작으로 이란에서 가장 아름다운 현대 서정시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백 가지 추억과 백 가지 향기로 가득했던 사랑하는 이와의 행복했던 공간과 시간이 그가 떠난 지금 얼마나 허전하고 차갑게 남았는지 그 아픈 마음을 세밀하게 그려 내고 있다.
③번 시는 운율과 시형에 얽매이는 전통시 양식에서 과감히 벗어나 새로운 형식으로 시를 짓는 니머 유쉬즈(Nima Yushij, 1895~1960)의 작품이다. 니머는 스스로 자신의 시를 ‘신시新詩’라 칭하였고, 전통시 양식을 벗어난 현대시들을 일러 니머 형形 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평론가들은 니머를 상징시의 토대를 세운 인물로 평가하고 있으며, 그가 현대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위의 작품은 구름 끼어 비를 뿌리는 나의 집의 정경을 그린 시인데, 힘겨운 세상살이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시속에서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가는 피리꾼은 세상을 향해 시의 다리를 놓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④번 시는 화가 겸 시인인 소흐럽 세페흐리(Sohrab Sepehri, 1928~1980)의 권력이나 부를 먼저 가지고 누리고 있는 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마음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비록 시인은 쉬운 언어로 자연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같은 운명공동체로서 함께 서로 배려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이상적인 삶의 비전을 담고 있다.
5. 오늘의 이란 시를 이끄는 여성시인들
귀 기울여 들어보라
새벽 기도의 짙은 안개 속에서
아득히 들려오는 나의 목소리를
그리고 고요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라
두 손에 남겨진 것들로
모든 꿈의 어둠의 깊이를 어루만지는 모습을
존재의 순결한 행복을 위해
나의 심장에 핏자국처럼 문신을 새기는 모습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아, 내 사랑이여
차가운 밤거리에서, 그대여
사랑에 빠진 눈빛의 또 다른 나와 마주치게 되면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주길
그대 두 눈가 고운 주름살에
슬픈 입맞춤을 건네는 또 다른 나를 보게 되면
부디 나를 기억해 주길
- 포루그 파로흐저드,「차가운 밤거리에서」부분
나에게는 천 가지 소망이 있으니
그 천 가지 하나하나는 모두 그대여라
그대는 기쁨의 시작이자 기다림의 끝
내 인생에서 여러 해 봄이 지났다
그대 없이 지나갔다
그대가 봄이라면
내 인생은 가을 말고 과연 무엇이 될 수 있었던가
- 시민 베흐바허니,「기다림의 끝」부분
여성적 감성으로 이란 사회와 인간의 근본적 문제들을 노래하는 여성 시인들은 페르시아 전통시를 이어가며 현대 이란시를 다져가는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 그중에서도 포루그 파로흐저드(Forugh Farrokhzad, 1935~1967)는 으뜸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녀는 삶의 깊은 어둠을 매만지며 후회하지 않을 사랑과 순결한 존재의 심장에 뜨거운 피를 돌게 한다. 그녀와 함께 이란 현대 시 문단과 지식층의 아이콘이었고 두 차례나 노벨 문학상 후보로 오르기도 하였으며 세계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시민 베흐바허니(Simin Behbahani, 1927~2014)의 시 역시 이란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앞서 소개한 퍼테메 러케이(Fatemeh Rakei)도 여성시인으로, 현 이란시인협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이란 시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오늘의 이란 시와 시인들을 선별하여 엮은 『백 년의 시간, 천 개의 꽃송이』에 소개한 시인들의 작품들이 20세기 이후 이란의 시문학 전체를 아우를 수는 없겠지만 한국의 독자들이 조금이나마 이란의 정서와 가까워지고 찬란한 페르시아 문화와 문학 세계 속으로 발을 내디딜 좋은 기회를 전해 주기에 그 의미가 적지 않다 하겠다. 또한 이 시집을 접하는 국내 독자들이 시 속에 녹아 있는 찬란한 페르시아 문화와 문학의 흔적을 느끼며 현대를 살아가는 페르시아 제국 후손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시를 번역 소개한 최인화 교수는 페르시아의 신화나 고전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한국 독자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이슬람 문화나 지명 등에 대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주석을 달아 간략한 설명을 꼼꼼하게 덧붙였다.
역자 최인화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를 졸업하고 이란 국립 테헤란대학교에서 페르시아 어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테헤란대학교 객원교수로 테헤란에서 지내온 지 여러 해이며 한국 ? 이란 양국의 문학작품들을 한국어와 페르시아어로 옮기는 등 양국 문화 교류에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전 한국시인협회 회장인 고 김종철 시인은 암투병중이었음에도 시집 발간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고, 시집 『황금빛 모서리』의 중견시인이자 주 이란 한국홍보관이기도 한 김중식 씨도 큰 역할을 해주었다.
▣ 주요 목차
제 1 부 침묵의 입술
씁쓸한 소망 _ 에스머일 셔루디·10
내일이 오면 _ 마흐무드 키어누쉬·11
영원한 건 없다 _ 하빕 야그머이·12
어머니 _ 이라즈 미르저·14
아쉬움 _ 마저헤르 모사퍼·16
고고학자 _ 페레이둔 타발라리·18
찻집 _ 마누체흐르 네예스터니·20
감옥에서 맞는 새해 _ 파로히 야즈디·25
사랑을 향하여 _ 네점 바퍼·28
동지 전야 _ 네마트 미르저저데·30
침묵의 입술 _ 후샹 엡테허즈·32
비둘기 찬가 _ 말레크 쇼아러 바허르·34
물 _ 소흐럽 세페흐리·37
내 고향 어디냐고 묻는다면 _ 절레 에스파허니·40
팬지의 대이동 _ 샤피이 카드카니·43
이별 편지 _ 모함마드 알리 에슬러미 노두샨·45
골목 _ 페레이둔 모쉬리·47
제 2 부 우리는 알지 못했다
나의 집은 구름 끼어 _ 니머 유쉬즈·54
차가운 밤거리에서 _ 포루그 파로흐저드·56
또다시 _ 메이마나트 미르 서데기·60
기다림의 끝 _ 시민 베흐바허니·62
편지 _ 마흐무드 모쉬레프 어저드 테흐러니·64
밤 _ 모함마드 조하리·67
마법의 주문 _ 너데르 너데르푸르·68
두려움 _ 하산 호나르만디·70
나는 나무, 그대는 비 _ 아흐마드 셤루·72
우리는 알지 못했다 _ 마누체흐르 어타쉬·75
업業 _ 아딥 니셔부리·78
머잔다런 _ 야돌러 마프툰 아미니·80
민들레 _ 메흐디 아카번 설레스·82
사표 _ 터헤레 사퍼르저데·84
시간이 많지 않다 _ 알리 무사비 갸르머루디·87
어머니, 내 어머니 _ 샤흐리여르·90
모 심는 아이 _ 시어바쉬 캬스러이·100
바다에 관하여 _ 야돌러 로여이·102
제 3 부 나를 외면하고 가라
마음 _ 아볼거셈 러후티·106
비 _ 골친 길러니·108
또 다른 사내 _ 노스라트 라흐머니·117
정오 _ 파르비즈 너텔 헌라리·120
수수께끼 _ 게이사르 아민푸르·122
나 어렸을 적엔 _ 에스머일 호이·124
고아의 눈물 _ 파르빈 에테서미·128
서문 _ 하미드 모사데그·130
내 나라 떠올리며 _ 어레프 가즈비니·132
나의 작은 나무 _ 바흐만 설레히·135
나 역시 죽는다 _ 살먼 하러티·137
사랑의 슬픔 _ 페주먼 바크티어리·140
너를 그리며 _ 아볼하산 바르지·142
젊음에 대하여 _ 라히 모아예리·144
나를 외면하고 가라 _ 마흐무드 사너이·146
모든 게 끝났다 _ 이라즈 데흐건·148
비 _ 바퍼 케르먼셔히·150
지옥의 문턱 _ 발리올러 도루디언·152
제 4 부 내겐 어려울 게 없다
나 달아날수록 _ 엠런 살러히·156
나의 겨울에 둥지를 틀라 _ 호세인 몬자비·158
촌사람 _ 모함마드 알리 바흐마니·160
마음으로 쓴 편지 _ 메흐르더드 아베스터·162
기다림 _ 에머드 호러서니·164
꿈 _ 레저 바러헤니·165
내겐 어려울 게 없다 _ 샴스 랑게루디·166
우리 동네 느릅나무 _ 파르빈 도울라트 어버디·168
배상금 _ 베흐저드 케르먼셔히·170
낡은 코트 _ 모함마드 알리 아프러쉬테·172
나라 사랑하는 법 _ 데흐호더·174
그리운 아버지 _ 타기 푸르넘더리언·175
새벽 별 _ 모쉬페그 커셔니·178
한 여인이 지나간다 _ 퍼테메 러케이·180
이 부근 공기만으로도 _ 소헤일 마흐무디·182
저금통을 깨라 _ 아프쉰 알러·184
가을 _ 메흐디 하미디 쉬러지·186
자애 _ 서에드 버게리·188
〈옮긴이의 말〉 이란 시의 오늘 _ 최인화·192
1. 시의 나라, 시인의 나라, 이란
이란은 시의 나라, 시인의 나라로 불린다. 그만큼 이란인들은 자국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이 강하다. 일상의 생활 속에서 주고받는 속담과 경구 중 상당수가 시에서 유래될 정도로 시는 이란 사람들의 삶 깊숙이 녹아 있다. 유엔 본부 건물에는 “한 뿌리에서 인류는 나왔지/ 게다가 창조로 바탕 이루었지/ 가지 하나만 충격받아도 충분치”라는 13세기 페르시아 시인 사아디의 시구가 새겨져 있다. 자국의 시문화에 자긍심이 강한 이란인들은 괴테도 찬양한 바 있는 14세기 페르시아 시인 허페즈의 시집으로 점을 치고, 동지 전날이면 온 가족이 둘러앉아 밤늦게까지 석류, 수박 등의 붉은색 과일과 여러 종류의 견과를 먹으며 시를 읽고 이야기를 나눈다.
이슬람 문화권의 중심국이면서 페르시아 문화를 함께 계승한 이란은 우리나라와 중동지역의 가장 중요한 교역 국가이면서도 그간의 문화 교류는 미미한 실정이었다. 한국시인협회는 이란 시인들과의 교류를 위해, 2014년 6월 15일부터 24일까지 이란을 방문하였다. 이를 위해 김종철 당시 시인협회회장은 김중식 주 이란 한국홍보관과의 사전 계획으로 이란시인협회와 상호 협력을 위한 양해각서(MOU) 체결과 양국 현대시인선의 상호 번역 출간 등을 약정하였다. 그리하여 국내에서는 김종해, 신달자, 정호승 시인 등이, 이란시인협회 측에선 이란시인협회장인 퍼테메 러케이Fatemeh Rakei, 이란 국가를 작사한 서에드 버게리Saed Baqeri 등 소속 시인 다수가 참여한 한국 ? 이란 양국의 시인대회가 열리게 되었다. 『백년의 시간, 천 개의 꽃송이』는 양국 시인들의 교류에 의한 결과물이기도 하다.
2. 국내 처음 소개하는 이란 대표 현대시
이란인들의 민족적, 문화적 자부심의 원천이 되어 온 중세 페르시아 시인들의 작품 중 일부는 비록 완역의 형태는 아니지만 국내에 번역 출판된 것이 더러 있었다. 현대시인 중에서도 포로그 파로흐저드나 소흐럽 세페흐리의 작품 중 일부가 우리 말로 번역되어 소개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이란의 현대 시문학을 대표하는 여러 시인들의 작품이 폭넓게 소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백년의 시간, 천 개의 꽃송이』에는 20세기 초반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이란의 현대 시문학을 대표할 수 있는 시인의 작품을 선별하여 수록하였는데, 자유시든 정형시든 시형과 상관없이 다양하게 다루었다. 입헌 혁명기에 활동했던 시인, 고전시의 시형에서 과감히 벗어나 이란 현대시의 토대를 세운 시인, 현대 시문학사에서 최고의 여성시인으로 손꼽히는 시인을 비롯하여 이란 국가國歌를 작사한 시인 등 20세기 초부터 오늘날에 이르는 각 시대를 대표할 만한 시인들이 포함되었다. 소재면에서도 혼란스러운 정치사회상을 비판한 참여시부터 인생과 세상살이를 다룬 교훈시, 서정시까지 다양하게 선별되었다. 특히 1979년 이란 이슬람 혁명 이후로 주목할 만한 활동을 펼쳐온 동시대 시인들의 시작품을 추가하였다. 이 중에는 지난 2014년 한국 ? 이란 시인문화교류의 일환으로 테헤란에서 두 나라 시인협회 소속 시인들의 시 낭송회가 열렸을 때 참석하였던 이란 대표시인 5인의 작품도 포함되었다. 이렇게 하여 [오늘의 이란 시와 시인들]에 수록된 이란 시인은 모두 71명이며, 71편의 시가 번역되어 묶이게 되었다.
3. 삶의 뿌리이자 그리움의 시원始原, 어머니
슬프고 아름다운 인간의 몸에 세공된 영혼의 문신, 문정희 시인이 추천사에서 표현하였듯 오늘의 이란 시는 이란인의 삶 속에 투영되고 비친 그들 삶의 진실한 모습 그 자체이다. 그 중에 어머니에 대한 마음 혹은 어머니의 사랑은 시인의 시심을 더욱 크게 뒤흔드는데, 어머니는 삶의 뿌리이자 그리움의 시원始原이 되기 때문이다.
어머니 날 낳으시고
젖 무는 법 알려 주셨다.
밤이면 머리맡
뜬눈으로 날 잠재우시고
손잡고 한 발짝 두 발짝
걸음마 일러주셨다.
혀끝에 단어 한 마디, 한 마디 놓아
말 트이게 해주셨고
내 입술에 웃음꽃 한 가득
꽃봉오리 피우도록 가르쳐 주셨다.
- 이라즈 미르저,「어머니」부분
이란 입헌 혁명기 문학에 큰 영향을 끼친 이라즈 미르저(Iraj Mirza, 1874~1926)가 노래한 ‘어머니’는 자신을 낳아 준 어머니에 대한 인류 보편의 마음이다.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 기르실 제 밤낮으로 애쓰는’ 어머니에 대한 고마움의 마음인 것이다. 그런 보편적인 마음이 애잔하게 느껴지는 것은 인류 역사상 가장 오래된 문화 중 하나로 손꼽히는 페르시아 종교와 문화 전통의 한 귀퉁이에서 억압되고 소외된 여인으로서의 어머니 모습이 겹쳐서 보이기 때문일 것이다.
억눌리고 가난한 삶을 살아가면서도 자식들에게만큼은 올바른 신념과 사랑을 심어 주시는 어머니이기에 그의 존재는 더욱 빛날 수밖에 없다. 샤흐리여르(Shahriar, 1906~1988)의 아래 시는 그런 어머니의 죽음을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시인의 처절한 슬픔을 잘 그려 내고 있다.
어머니는 고향의 허드레꾼 몸종 다 포기하고
하필 나와 내 운명을 찾아왔다
나 말고도 자식 네 명을 더 키워 냈다
석유통을 겨드랑이에 끼우고
매일 밤 가난한 집 대문을 나와
다 죽어가는 사랑에 불을 밝혀 왔다
(중략)
대체 누구였을까
어젯밤 내가 걷어찬 이불을 다시 덮어 주고
내 옆에서 물잔을 치워 준 이가
한밤중
악몽 한 토막과 함께 나는 열병이 났다
아침이 가까워졌을 무렵
어머니는 여기 내 머리맡에 앉아
조심조심 하나님께 빌고 있었다
아니, 어머니는 죽지 않았다
- 샤흐리여르,「어머니, 내 어머니」 부분
자신만을 간수하기에도 힘겨운 삶이지만 자식들과 주변의 불쌍한 다른 사람들을 돌보며 살아온 어머니의 죽음은 시인에게 환청과 환영을 보게 할 만한 커다란 충격일 수밖에 없다. 하지만 시인은 알고 있다. 어머니는 언제까지나 시인의 마음속에, 그의 시 속에 밝은 빛으로, 사랑으로 살아 있음을.
위 두 시편이 어머니에 대한 자식의 마음이었다면 자식에 대한 어머니의 마음이 어떠한 것인지를 아래 시는 분명히 보여 주고 있다.
도시의 넓은 광장
손과 발이 쇠사슬에 묶인
흉악범 하나 끌려 간다
말쑥한 신사는 이렇게 말한다
“파렴치한 놈”
의사는
“사회의 기생충”
청소부는
“더러운 쓰레기 같은 놈”
겸허히 기도하는 사람도 있다
“하나님, 도와주세요”
한 여인이 지나간다
“불쌍해서 어쩌나
널 낳으신 어머니 딱해서 어쩌나”
- 퍼테메 러케이,「한 여인이 지나간다」전문
현재 이란시인협회장이기도 한 퍼테메 러케이(Fatemeh Rakei, 1954~ )의 위 시는 그 어떤 잘못을 하고 흉악한 짓을 저지른 쓰레기 같은 사람일지라도 그의 어머니는 가슴이 찢어지는 고통으로 그를 용서하며 감쌀 수밖에 없음을 보여 준다. 자식 앞에서 어머니는 그렇게 헌신적이기 때문에 불쌍하고 딱한 존재가 또한 될 수밖에 없다.
4. 영적인 힘과 함께 부드러운 사랑을 전하는 매혹의 서정시
이란 시의 특성이라면 무엇보다 페르시아 전통시인 ‘허페즈’(Hafez Shirazi, 1320년경∼1389)의 서정시 계보일 것이다. 읽는 이의 영혼을 편안케 하는 한 마디 한 마디의 절제되고 함축적인 시어는 영적인 힘과 함께 부드러운 사랑의 속삭임을 독자들의 가슴속에 강하게 각인시킨다.
①
오늘밤 그대는 내 마음에 귀 기울이지만
내일이면 나를 잊겠지
세월의 조개가 늘 진주를 품고 있는 건 아니라고
나 거듭 그대에게 말하지만
그대 과연 내 말을 품고 있을까
나 그대 안고 싶지만 내 손에 닿지 않네
달처럼 고운 그대, 누구 손을 잡고 있는가
그대 술잔에 무엇이 담겼기에 한 모금만 마셔도
술 취한 자, 안 취한 자 모두 정신을 놓게 만드는가
- 후샹 엡테허즈,「침묵의 입술」부분
②
그대 없이 나 홀로
어느 달밤, 또다시 그 골목을 찾았다
내 온몸은 눈이 되어 그대 찾아 헤매었다
내 몸 안의 술잔은 행여 그댈 만날까
설렘으로 흘러 넘쳐
나 미친 사랑의 노예가 되고 말았다 그때처럼
영혼 깊숙한 곳에선 그대 기억의 꽃이 빛난다
백 가지 추억 가득한 정원이 미소짓고
백 가지 추억의 향기로 가득하다
(중략)
그날 밤도, 다른 밤들도
슬픔의 어둠 속에 흘러가 버렸다
그 후로 그대는 상심한 연인의 소식을 묻지도
그 골목을 다시 찾지도 않았다
하지만
나는 얼마나 그대 없이 그 골목길을 헤매었던가
- 페레이둔 모쉬리,「골목」부분
③
나의 집은 구름 끼어 흐리고
구름은 비를 뿌리기 시작한다
나만의 화창한 날을 상상하며
태양을 향해 우뚝 서
탁 트인 바다를 바라본다
세상은 흐리고
바람으로 무너지고 부서지는 것 같은데
피리꾼은 그저 피리 불며
길을 간다
묵묵히 걸어간다
- 니머 유쉬즈,「나의 집은 구름 끼어」부분
④
물 흐리지 말라
저 아래 어딘가 비둘기가 목 축일지 모른다
저 멀리 수풀 속 방울새가 깃털 단장하고
어느 마을에선가 물을 길을지도 모른다
물 흐리지 말라
물 흘러흘러 버드나무 밑동에 다다라
슬픈 마음 씻어 내 줄지
가난한 이가 마른 빵조각 적셔 먹을지 모른다
아리따운 여인 강가로 나왔구나
물 흐리지 말라
물에 비친 여인의 얼굴
고운 모습 두 개가 되었구나
- 소흐럽 세페흐리,「물」앞부분
①번 시는 ‘허페즈’의 서정시 계보를 가장 잘 이어받은 시인으로 평가받고 있는 후샹 엡테허즈(Hushang Ebtehaj, 1928~ )의 연시이다. 시 속의 ‘그대’는 내가 가질 수 없는 사랑하는 사람으로 볼 수도 있으나, 시인에게 시의 영감을 내리는 뮤즈의 여신이기도 하다. 그녀가 제목처럼 ‘침묵의 입술’이 아닌 내 말을 품고 아름다운 말 한 마디를 다시 들려준다면 모든 사람들이 매혹당할 만한 보석 같은 시가 태어날 것이라는 바람이 담겨져 있다.
②번 시는 1960년《로우샨페크르》지誌에 실린 페레이둔 모쉬리(Fereidun Moshiri, 1926 ~2000)의 대표작으로 이란에서 가장 아름다운 현대 서정시 중 하나로 평가받고 있다. 백 가지 추억과 백 가지 향기로 가득했던 사랑하는 이와의 행복했던 공간과 시간이 그가 떠난 지금 얼마나 허전하고 차갑게 남았는지 그 아픈 마음을 세밀하게 그려 내고 있다.
③번 시는 운율과 시형에 얽매이는 전통시 양식에서 과감히 벗어나 새로운 형식으로 시를 짓는 니머 유쉬즈(Nima Yushij, 1895~1960)의 작품이다. 니머는 스스로 자신의 시를 ‘신시新詩’라 칭하였고, 전통시 양식을 벗어난 현대시들을 일러 니머 형形 시라고 부르기도 한다. 평론가들은 니머를 상징시의 토대를 세운 인물로 평가하고 있으며, 그가 현대시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이유도 이 때문이다. 위의 작품은 구름 끼어 비를 뿌리는 나의 집의 정경을 그린 시인데, 힘겨운 세상살이의 모습을 상징적으로 드러낸다. 시속에서 묵묵히 제 길을 걸어가는 피리꾼은 세상을 향해 시의 다리를 놓아가고자 하는 시인의 모습에 다름 아니다.
④번 시는 화가 겸 시인인 소흐럽 세페흐리(Sohrab Sepehri, 1928~1980)의 권력이나 부를 먼저 가지고 누리고 있는 자들이 반드시 지켜야 할 마음자세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비록 시인은 쉬운 언어로 자연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 속에는 같은 운명공동체로서 함께 서로 배려하며 살아가야 한다는 이상적인 삶의 비전을 담고 있다.
5. 오늘의 이란 시를 이끄는 여성시인들
귀 기울여 들어보라
새벽 기도의 짙은 안개 속에서
아득히 들려오는 나의 목소리를
그리고 고요한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을 보라
두 손에 남겨진 것들로
모든 꿈의 어둠의 깊이를 어루만지는 모습을
존재의 순결한 행복을 위해
나의 심장에 핏자국처럼 문신을 새기는 모습을
나는 후회하지 않는다
아, 내 사랑이여
차가운 밤거리에서, 그대여
사랑에 빠진 눈빛의 또 다른 나와 마주치게 되면
나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어 주길
그대 두 눈가 고운 주름살에
슬픈 입맞춤을 건네는 또 다른 나를 보게 되면
부디 나를 기억해 주길
- 포루그 파로흐저드,「차가운 밤거리에서」부분
나에게는 천 가지 소망이 있으니
그 천 가지 하나하나는 모두 그대여라
그대는 기쁨의 시작이자 기다림의 끝
내 인생에서 여러 해 봄이 지났다
그대 없이 지나갔다
그대가 봄이라면
내 인생은 가을 말고 과연 무엇이 될 수 있었던가
- 시민 베흐바허니,「기다림의 끝」부분
여성적 감성으로 이란 사회와 인간의 근본적 문제들을 노래하는 여성 시인들은 페르시아 전통시를 이어가며 현대 이란시를 다져가는 핵심적 역할을 맡고 있다. 그중에서도 포루그 파로흐저드(Forugh Farrokhzad, 1935~1967)는 으뜸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그녀는 삶의 깊은 어둠을 매만지며 후회하지 않을 사랑과 순결한 존재의 심장에 뜨거운 피를 돌게 한다. 그녀와 함께 이란 현대 시 문단과 지식층의 아이콘이었고 두 차례나 노벨 문학상 후보로 오르기도 하였으며 세계 유수의 문학상을 수상한 시민 베흐바허니(Simin Behbahani, 1927~2014)의 시 역시 이란인들에게 많은 사랑을 받았다. 그리고 앞서 소개한 퍼테메 러케이(Fatemeh Rakei)도 여성시인으로, 현 이란시인협회장을 맡고 있으면서 이란 시 발전을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오늘의 이란 시와 시인들을 선별하여 엮은 『백 년의 시간, 천 개의 꽃송이』에 소개한 시인들의 작품들이 20세기 이후 이란의 시문학 전체를 아우를 수는 없겠지만 한국의 독자들이 조금이나마 이란의 정서와 가까워지고 찬란한 페르시아 문화와 문학 세계 속으로 발을 내디딜 좋은 기회를 전해 주기에 그 의미가 적지 않다 하겠다. 또한 이 시집을 접하는 국내 독자들이 시 속에 녹아 있는 찬란한 페르시아 문화와 문학의 흔적을 느끼며 현대를 살아가는 페르시아 제국 후손들의 삶의 모습을 그려보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이번 시를 번역 소개한 최인화 교수는 페르시아의 신화나 고전 문학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이나 한국 독자들에게 생소할 수 있는 이슬람 문화나 지명 등에 대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고자 주석을 달아 간략한 설명을 꼼꼼하게 덧붙였다.
역자 최인화 교수는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과를 졸업하고 이란 국립 테헤란대학교에서 페르시아 어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테헤란대학교 객원교수로 테헤란에서 지내온 지 여러 해이며 한국 ? 이란 양국의 문학작품들을 한국어와 페르시아어로 옮기는 등 양국 문화 교류에 중요한 몫을 하고 있다.
이 책이 나오기까지 전 한국시인협회 회장인 고 김종철 시인은 암투병중이었음에도 시집 발간을 위해 끝까지 노력했고, 시집 『황금빛 모서리』의 중견시인이자 주 이란 한국홍보관이기도 한 김중식 씨도 큰 역할을 해주었다.
▣ 주요 목차
제 1 부 침묵의 입술
씁쓸한 소망 _ 에스머일 셔루디·10
내일이 오면 _ 마흐무드 키어누쉬·11
영원한 건 없다 _ 하빕 야그머이·12
어머니 _ 이라즈 미르저·14
아쉬움 _ 마저헤르 모사퍼·16
고고학자 _ 페레이둔 타발라리·18
찻집 _ 마누체흐르 네예스터니·20
감옥에서 맞는 새해 _ 파로히 야즈디·25
사랑을 향하여 _ 네점 바퍼·28
동지 전야 _ 네마트 미르저저데·30
침묵의 입술 _ 후샹 엡테허즈·32
비둘기 찬가 _ 말레크 쇼아러 바허르·34
물 _ 소흐럽 세페흐리·37
내 고향 어디냐고 묻는다면 _ 절레 에스파허니·40
팬지의 대이동 _ 샤피이 카드카니·43
이별 편지 _ 모함마드 알리 에슬러미 노두샨·45
골목 _ 페레이둔 모쉬리·47
제 2 부 우리는 알지 못했다
나의 집은 구름 끼어 _ 니머 유쉬즈·54
차가운 밤거리에서 _ 포루그 파로흐저드·56
또다시 _ 메이마나트 미르 서데기·60
기다림의 끝 _ 시민 베흐바허니·62
편지 _ 마흐무드 모쉬레프 어저드 테흐러니·64
밤 _ 모함마드 조하리·67
마법의 주문 _ 너데르 너데르푸르·68
두려움 _ 하산 호나르만디·70
나는 나무, 그대는 비 _ 아흐마드 셤루·72
우리는 알지 못했다 _ 마누체흐르 어타쉬·75
업業 _ 아딥 니셔부리·78
머잔다런 _ 야돌러 마프툰 아미니·80
민들레 _ 메흐디 아카번 설레스·82
사표 _ 터헤레 사퍼르저데·84
시간이 많지 않다 _ 알리 무사비 갸르머루디·87
어머니, 내 어머니 _ 샤흐리여르·90
모 심는 아이 _ 시어바쉬 캬스러이·100
바다에 관하여 _ 야돌러 로여이·102
제 3 부 나를 외면하고 가라
마음 _ 아볼거셈 러후티·106
비 _ 골친 길러니·108
또 다른 사내 _ 노스라트 라흐머니·117
정오 _ 파르비즈 너텔 헌라리·120
수수께끼 _ 게이사르 아민푸르·122
나 어렸을 적엔 _ 에스머일 호이·124
고아의 눈물 _ 파르빈 에테서미·128
서문 _ 하미드 모사데그·130
내 나라 떠올리며 _ 어레프 가즈비니·132
나의 작은 나무 _ 바흐만 설레히·135
나 역시 죽는다 _ 살먼 하러티·137
사랑의 슬픔 _ 페주먼 바크티어리·140
너를 그리며 _ 아볼하산 바르지·142
젊음에 대하여 _ 라히 모아예리·144
나를 외면하고 가라 _ 마흐무드 사너이·146
모든 게 끝났다 _ 이라즈 데흐건·148
비 _ 바퍼 케르먼셔히·150
지옥의 문턱 _ 발리올러 도루디언·152
제 4 부 내겐 어려울 게 없다
나 달아날수록 _ 엠런 살러히·156
나의 겨울에 둥지를 틀라 _ 호세인 몬자비·158
촌사람 _ 모함마드 알리 바흐마니·160
마음으로 쓴 편지 _ 메흐르더드 아베스터·162
기다림 _ 에머드 호러서니·164
꿈 _ 레저 바러헤니·165
내겐 어려울 게 없다 _ 샴스 랑게루디·166
우리 동네 느릅나무 _ 파르빈 도울라트 어버디·168
배상금 _ 베흐저드 케르먼셔히·170
낡은 코트 _ 모함마드 알리 아프러쉬테·172
나라 사랑하는 법 _ 데흐호더·174
그리운 아버지 _ 타기 푸르넘더리언·175
새벽 별 _ 모쉬페그 커셔니·178
한 여인이 지나간다 _ 퍼테메 러케이·180
이 부근 공기만으로도 _ 소헤일 마흐무디·182
저금통을 깨라 _ 아프쉰 알러·184
가을 _ 메흐디 하미디 쉬러지·186
자애 _ 서에드 버게리·188
〈옮긴이의 말〉 이란 시의 오늘 _ 최인화·19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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