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세상을 유지시키고 동시에 변화시키는 권력!
표준의 렌즈를 통해 보는 세상, 사물, 그리고 인간!
감각적인 첫맛으로 독자들을 유혹하는 여타의 표준 소개서들과는 달리, 이 책이 다룬 표준의 이야기들은 좀 더 묵직한 뒷맛을 남긴다. …… 이 책은 정치, 사회, 문화의 시각에서 표준이라는 레시피의 비밀을 파헤친다. 단순히 다 만들어진 ‘표준 요리’를 세일즈하려는 것이 아니라 ‘표준 요리’가 만들어내는 현실의 효과와 그 뒤에 숨어 있는 레시피의 내용을 비판적 관점에서 파고든다. _김상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 책은 표준이라 불리는 것의 편재성과 중요성을 명징하게 그린다. 부시는 무미건조한 경제학 텍스트나 단일 학문의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표준에 대한 통합된 장(場) 이론을, 즉 다학문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_칼 카길(Carl Cargill), 표준(어도비 시스템) 전문가
반박할 수 없는 명료함과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부시는 익명의 보이지 않는 세계인 표준을 밝게 비추어 어떻게 이 일상적인 도구들이 복잡한 우리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_실라 재서너프(Sheila Jasanoff),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스쿨 과학기술학 석좌교수
표준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표준이 되게 하는가?
그것은 어떻게 세상을, 현실을, 그리고 우리의 자아를 구성하는가?
만약에 동네마다 신호등 색깔이 다 다르다면 어떻게 될까? 누구나 면허증 없이도 차를 몰 수 있다면? 상점에서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화폐로 지불하려 하거나 물물교환으로 거래를 한다면? 쇠고기 한 근이 경기도에서는 400그램이고 충청도에서는 1킬로그램이라면? 용변은 화장실이라는 공간에서 해결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없거나 화장실이라는 것의 존재 자체가 없다면? 사람마다 인사하는 법이 제멋대로여서 팔을 긁거나 손뼉을 치거나 침을 뱉는 것을 인사라고 주장한다면? 이런 황당한 질문들은 늘 도처에 있고 끊임없이 인간사에 작용하지만 평소에는 대체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그 무엇, 너무나 습관화되어 당연시하기에 잘 보이지 않는 그 무엇, 그래서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에야 비로소 그 중대성이 드러나는 그 무엇, 바로 표준의 존재를 드러내준다.
도대체 왜 표준이 있어야만 하는 걸까? 왜 우리는 사물과 인간과 관행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까? 우리는 도대체 왜 표준을 두고 끝없는 협상을 해야만 할까? 실제로 모든 사람이 합리적 선택을 하고, 정확한 정보를 쉽게 입수할 수 있고, 내 머리에서 나온 판단이 모든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판단과 정확히 일치하는 그런 완벽한 세계에서는 우리는 표준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세계에서 우리는 모두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내가 어떤 용어를 사용해 말을 할 때, 그것은 더도 덜도 말고 내가 말하려고 하는 의미만을 뜻한다”라며 우기는 험프티 덤프티와 같을 것이다. 그러한 세계에서는 모든 용어, 사물, 서비스, 관행, 치수 등의 의미가 모두 하나같이 명료할 것이다. 표준은 대체로 과다하게 사용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듯이 표준은 항상 ‘부분적이고 비영구적인’ 배열을 요구하며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_24~25쪽(머리말)
표준은 우리의 생활에, 관계에, 생각에, 심지어 무의식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책은 표준을 “현실을 만들어내는 레시피”에 비유하면서 표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즉 그것이 규범, 관습, 전통, 법률 등과는 어떻게 다른지, 그것이 지닌 힘이란 어떤 종류의 것인지, 정치와 경제와 사회의 권력관계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등을 어원에서부터 역사적 사례와 학문 간 논의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조사한다. 특히 이 책은 표준을 올림픽, 필터, 서열, 구분이라는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음을 보이면서 각 유형의 특징과 상관관계, 다양한 영역에서 그것들이 나타나는 양상 등을 상세히 살피고 있다.
근대화의 핵심에는 표준화가 있다!
근대화라는 이름의 물결이 세상을 휩쓴 지난 300여 년은 바로 표준화의 시대이기도 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기폭제가 되어 시작된 이 물결은 다양한 영역에서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현실을 창조했다. 이 책은 시간, 군대, 식민지 건설, 사회운동, 의료, 농업, 교육, 시민종교, 가정, 패션, 시장경제, 공장 등의 영역에서 어떻게 표준화라는 기획이 시도되어왔는지를 고찰한다. 그 과정은 획일적이거나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표준화한 세계를 만들려는 시도는 다양한 반발에 부딪쳤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20세기에 급부상한 ‘표준화한 차별화’이다.
‘표준화한 차별화’의 물결은 어떻게 더 다양하고 복잡한 현실을 창조하고 있는가?
사람들이 표준화하기 위해 표준을 이용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차별화하기 위해 표준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 한 가지 결과로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가격 외 경쟁’이 벌어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이 물결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고 그 이전의 표준화 기획과는 어떻게 다른가? 무엇이 이러한 변화를 추동했는가? 그것은 어떻게 엄청나게 복잡한 현실을 창조하고 있는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해가면서 자동차와 선박 컨테이너에서 인터넷과 할리퀸 로맨스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펼쳐졌고 지금도 펼쳐지고 있는 표준화한 차별화의 양상을 깊이 있게 검토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기술적인 도전인 동시에 사회적인 도전이었다는 점이다. 트랙터 트레일러에 적재하여 목적지까지 운반할 수 있게 표준화한 철제 박스를 설계하는 일은 아주 쉬웠다. 그러나 선박과 기차에 실어 운반할 수도 있는 컨테이너를 설계하는 것은 훨씬 복잡했다. 선박용 컨테이너는 배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 파도가 치는 험한 바다를 나아가는 동안 눌리고 밀리는 강한 힘을 충분히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기차용 컨테이너는 터널과 다리 아래를 잘 통과할 수 있게, 그리고 기차에 브레이크가 걸릴 때 끝이 찌부러지지 않게 설계되어야 한다. 또한 그 컨테이너들이 세계 여러 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되려면, 그들 나라에서 사용되는 트럭과 기차의 규격에 맞아야 한다. 그것은 컨테이너가 유럽과 일본의 좁은 도로 사정에 알맞도록 작아야 하고, 동시에 일부 국가에서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더 오래되고 더 좁은 철로로도 운반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_241쪽(제3장: 표준화에서 표준화한 차별화로)
지금은 증명, 인증, 평가의 시대!
표준화한 차별화가 만들어내고 있는 새로운 표준사회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 수없이 많은 표준들을 시행하고 감시하기 위한 수단이 존재해야 한다. 국제신용등급평가기관들의 위상에서 볼 수 있듯이, 이를 위한 증명, 인증, 평가 자체가 주요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활동이 되고 있다. 식료품시장보다 식료품증명시장이 훨씬 빨리 성장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 존재하는 다양한 증명과 인증의 형태들을 분석하면서 공급망 관리를 비롯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 저자는 이 문제를 ‘신뢰’의 문제와 연결시키며 동시에 현대 사회학의 주요 화두 가운데 하나인 ‘위험’의 문제와도 결부시킨다. 또한 오늘날 범람하는 평가와 평가문화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
좋은 표준과 나쁜 표준은 존재하는가? 그것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표준이 인간 사회와 권력의 산물이라면 필연적으로 윤리적 함의를 지니게 된다. 저자는 표준에 대한 논의에서 대체로 이 문제가 회피되어왔음을 지적하면서 분석철학과 윤리학의 논의를 끌어와 표준의 윤리적 의미를 탐구한다. 이 책은 다양한 정당화가 수행되는 7개의 서로 다른 세계를 구분하고, 왜 다른 세계에는 다른 표준이 요구되는지를 살핌으로써 한 세계의 표준이 다른 세계에 강요될 때 어떻게 불의가 나타나고 심지어 비극을 낳을 수 있는지 설명한다. 우리는 이를 통해 종교전쟁, 교육이나 의료의 영리화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표준의 관점에서 윤리적 비판을 제기할 수 있음을 보게 된다. 또한 저자는 이 책의 논의를 종합하면서 “공평하고 공정하고 효율적인” 표준을 만들기 위한 열두 가지 강령을 제시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이 시대의 표준이 되었는가?
표준의 관점에서 바라본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문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오늘날 수많은 표준들이 점점 더 전문적인 지식을 수반하면서, 표준의 문제는 민주주의에 피할 수 없는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표준에 관한 중요한 결정들을 이제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는가? 이 책은 이 해묵은 논쟁을 새로운 각도에서 살피면서 전문가주의와 민주주의의 여러 신화들을 검토하고 비용편익분석과 위험분석을 구체적 사례로 들어 논증한다. 우리는 이를 통해 ‘꼭대기’가 아닌 ‘꼭지’에 있는 전문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어떤 확고한 관념도 전적인 자율성이라는 신화와 완벽한 공동체라는 대응신화 사이에 있어야 한다. 실제로 전문가들에 의한 표준의 개발이 심의와 토론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만큼(그리고 그래야 하는 만큼), 이는 앞에서 말한 네 가지 사항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그러나 만약 전문가들이 그들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기술적인 사항에 대한 전문성만을 고집한다면, 그들이 개발하는 표준은 부적절해질 가능성이 있다. 오직 민주적인 과정을 거쳐서만이 이 문제가 고쳐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은 어떤 모습일까? 분명히 우리는 이 책에서 논의하는 종류의 시도를 위해 고대의 직접민주주의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_410쪽(제6장: 표준과 민주주의)
또한 이 책은 신자유주의가 마치 ‘이 시대의 표준’처럼 여겨지며 그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핵심 사상들이 시장은 물론이고 시장을 넘어서 표준으로 자리 잡는 세계란 어떤 세계일 것인가? 저자는 이에 대해 표준과 ‘표준의 정당화’의 관점에서 더욱 새롭고 명징한 그림을 제시하고 있다.
표준 연구에 표준이 될 저작!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표준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표준 그 자체를 논의한다는 것은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 얘기다. 우리는 실생활에서 무엇이 표준으로 간주되는지, 어떤 것이 표준을 성취하고 어떤 것이 그에 미치지 못했는지를 학습과 직관을 통해 자연스럽게 거의 매순간 감지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자명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바로 표준의 한 특성이기도 하다. 이 책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연구할 의미가 부여되지 않았고 너무나 편만한 것이어서 감히 손대지 못해왔던, 보이지 않는 권력이자 현실을 창조하는 메커니즘인 표준을 우리 앞에 가시화한다.
이를 위해 이 책이 수행하는 심층적이고 인문학적인 접근은 표준에 대한 도구적이고 경제학적인 접근이 주를 이루는 기존 관련서들과 뚜렷한 차별성을 지닌다. 이 책은 사회학, 경제학, 철학, 윤리학 등의 다양한 학문 경계를 넘나들며 뒤르켐, 하이데거, 애컬로프, 듀이 같은 석학들의 논의에서부터 화장실 변기와 아동낙오방지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검토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네 가지 표준 유형과 좋은 표준을 수립하기 위한 열두 가지 강령은 설득력이 있고 상당히 유용하다. 표준이 마치 공기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삶이 지속될 수 있게 하는 그 무엇이라는 점에서 이 책의 독자들은 자신의 삶과 현실세계를 또 다른 층위에서 바라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렌즈를 갖게 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로런스 부시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 사회학과 사회표준연구센터 특훈교수. 영국 랭커스터 대학교 ‘유전체학의 사회경제적 측면 연구센터’ 표준 및 사회 분야 교수
역자 : 이종삼
부산대학교 영문과, 동 대학원 영문과를 졸업했고, 대기업 간부를 거쳐 현재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밀레니엄의 종언], [미국개조론](이상 공역), [읽는다는 것의 역사], [강대국 일본의 부활], [나쁜 유전자], [한미동맹은 영구화하는가], [누가 선발되는가?: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의 입학사정관제] 등 다수가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표준과 선택 | 표준이 어떻게 은유를 현실화시킬까 | 항해에 필요한 몇 가지 조언
제1장 표준의 힘
에밀 뒤르켐의 규범 | 표준을 연구하기 | 통약성과 연결성 | 대칭성 | 표준의 유형 | 네 가지 유형의 표준 사이의 관계 | 표준, 검정, 그리고 지표 | 검정하기 | 은유와 측정 | 표준화의 단계 | 경로의존성 | 표준과 제재 | 표준의 객관성 | 벽에 달린 표지판 | 결론
제2장 세상을 표준화하기
너희가 가져야 할 정확하고 공정한 되 | 시간의 표준화 | 군대 | 식민지 건설 | 사회운동 | 의료 | 농업 | 학교교육 | 시민종교 | 가정 | 패션 | 시장과 경제 | 공장 |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 표준(감사가 가능한) 조직체 | 경영 | 법률과 정치 | 지식 | 수량화와 표준 | 결론: 표준화한 인식 만들기
제3장 표준화에서 표준화한 차별화로
표준을 이용해 차별화하기 | 가격 외 경쟁의 증대 | 중고품 시장의 재검토 | 운송 | 커뮤니케이션 | 포장 | 신자유주의 개혁 | 표준과 롱테일 효과 | 매스커스터마이제이션, 실버캐스팅, 매스클루시비티 및 또 다른 모순어법적인 사실들 | 결론
제4장 증명, 인증, 허가, 공인
증명 러시 | 당사자 | 신뢰 | 위험 | 과학, 표준, 그리고 증명 | 인증 | 3부로 된 표준체제와 그 문제점들 | 평가의 폭력 | 3부로 된 표준체제(TSR)에 대한 제한 | 결론: 시장사회 관리하기
제5장 표준, 윤리, 그리고 정의
표준에서 윤리로 | 윤리학적 검토 | 표준을 정당화하기 | 다른 세계에는 다른 종류의 표준이 필요하다 | 어떻게 표준이 재화를 유통시키는가 | 불의 | 가치사슬 | 결론
제6장 표준과 민주주의
전문가주의의 경우 | 민주주의의 경우 | 결론
결론: 또 다른 노예의 길?
선택과 본분 | 증명된 삶을 살기 | 민간표준의 한계? | 공평하고 공정하고 효율적인 표준 만들기 |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향하여
세상을 유지시키고 동시에 변화시키는 권력!
표준의 렌즈를 통해 보는 세상, 사물, 그리고 인간!
감각적인 첫맛으로 독자들을 유혹하는 여타의 표준 소개서들과는 달리, 이 책이 다룬 표준의 이야기들은 좀 더 묵직한 뒷맛을 남긴다. …… 이 책은 정치, 사회, 문화의 시각에서 표준이라는 레시피의 비밀을 파헤친다. 단순히 다 만들어진 ‘표준 요리’를 세일즈하려는 것이 아니라 ‘표준 요리’가 만들어내는 현실의 효과와 그 뒤에 숨어 있는 레시피의 내용을 비판적 관점에서 파고든다. _김상배, 서울대학교 정치외교학과 교수
이 책은 표준이라 불리는 것의 편재성과 중요성을 명징하게 그린다. 부시는 무미건조한 경제학 텍스트나 단일 학문의 관점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표준에 대한 통합된 장(場) 이론을, 즉 다학문적인 관점을 제시한다. _칼 카길(Carl Cargill), 표준(어도비 시스템) 전문가
반박할 수 없는 명료함과 흉내 낼 수 없는 자신만의 방식으로, 부시는 익명의 보이지 않는 세계인 표준을 밝게 비추어 어떻게 이 일상적인 도구들이 복잡한 우리 세상에 질서를 부여하는지를 드러내고 있다. _실라 재서너프(Sheila Jasanoff), 하버드 대학교 케네디스쿨 과학기술학 석좌교수
표준이란 무엇인가? 무엇이 표준이 되게 하는가?
그것은 어떻게 세상을, 현실을, 그리고 우리의 자아를 구성하는가?
만약에 동네마다 신호등 색깔이 다 다르다면 어떻게 될까? 누구나 면허증 없이도 차를 몰 수 있다면? 상점에서 사람들이 저마다 다른 화폐로 지불하려 하거나 물물교환으로 거래를 한다면? 쇠고기 한 근이 경기도에서는 400그램이고 충청도에서는 1킬로그램이라면? 용변은 화장실이라는 공간에서 해결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없거나 화장실이라는 것의 존재 자체가 없다면? 사람마다 인사하는 법이 제멋대로여서 팔을 긁거나 손뼉을 치거나 침을 뱉는 것을 인사라고 주장한다면? 이런 황당한 질문들은 늘 도처에 있고 끊임없이 인간사에 작용하지만 평소에는 대체로 우리가 의식하지 못하는 그 무엇, 너무나 습관화되어 당연시하기에 잘 보이지 않는 그 무엇, 그래서 무언가 문제가 생겼을 때에야 비로소 그 중대성이 드러나는 그 무엇, 바로 표준의 존재를 드러내준다.
도대체 왜 표준이 있어야만 하는 걸까? 왜 우리는 사물과 인간과 관행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할까? 우리는 도대체 왜 표준을 두고 끝없는 협상을 해야만 할까? 실제로 모든 사람이 합리적 선택을 하고, 정확한 정보를 쉽게 입수할 수 있고, 내 머리에서 나온 판단이 모든 사람의 머리에서 나온 판단과 정확히 일치하는 그런 완벽한 세계에서는 우리는 표준을 필요로 하지 않을 것이다. 그런 세계에서 우리는 모두 루이스 캐럴의 [거울 나라의 앨리스]에 나오는, “내가 어떤 용어를 사용해 말을 할 때, 그것은 더도 덜도 말고 내가 말하려고 하는 의미만을 뜻한다”라며 우기는 험프티 덤프티와 같을 것이다. 그러한 세계에서는 모든 용어, 사물, 서비스, 관행, 치수 등의 의미가 모두 하나같이 명료할 것이다. 표준은 대체로 과다하게 사용되기 마련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알고 있듯이 표준은 항상 ‘부분적이고 비영구적인’ 배열을 요구하며 결코 완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_24~25쪽(머리말)
표준은 우리의 생활에, 관계에, 생각에, 심지어 무의식에 심대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 책은 표준을 “현실을 만들어내는 레시피”에 비유하면서 표준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즉 그것이 규범, 관습, 전통, 법률 등과는 어떻게 다른지, 그것이 지닌 힘이란 어떤 종류의 것인지, 정치와 경제와 사회의 권력관계 속에서 어떻게 나타나는지 등을 어원에서부터 역사적 사례와 학문 간 논의에 이르기까지 세밀하게 조사한다. 특히 이 책은 표준을 올림픽, 필터, 서열, 구분이라는 네 가지 유형으로 분류할 수 있음을 보이면서 각 유형의 특징과 상관관계, 다양한 영역에서 그것들이 나타나는 양상 등을 상세히 살피고 있다.
근대화의 핵심에는 표준화가 있다!
근대화라는 이름의 물결이 세상을 휩쓴 지난 300여 년은 바로 표준화의 시대이기도 했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기폭제가 되어 시작된 이 물결은 다양한 영역에서 그 이전과는 전혀 다른 현실을 창조했다. 이 책은 시간, 군대, 식민지 건설, 사회운동, 의료, 농업, 교육, 시민종교, 가정, 패션, 시장경제, 공장 등의 영역에서 어떻게 표준화라는 기획이 시도되어왔는지를 고찰한다. 그 과정은 획일적이거나 일방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표준화한 세계를 만들려는 시도는 다양한 반발에 부딪쳤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20세기에 급부상한 ‘표준화한 차별화’이다.
‘표준화한 차별화’의 물결은 어떻게 더 다양하고 복잡한 현실을 창조하고 있는가?
사람들이 표준화하기 위해 표준을 이용할 때, 또 다른 사람들은 차별화하기 위해 표준을 이용하기 시작했다. 그 한 가지 결과로 오늘날 우리는 다양한 영역에서 다양한 형태의 ‘가격 외 경쟁’이 벌어지는 것을 목도하고 있다. 이 물결은 구체적으로 어떤 것이고 그 이전의 표준화 기획과는 어떻게 다른가? 무엇이 이러한 변화를 추동했는가? 그것은 어떻게 엄청나게 복잡한 현실을 창조하고 있는가? 이 책은 이러한 질문들에 답해가면서 자동차와 선박 컨테이너에서 인터넷과 할리퀸 로맨스 소설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영역에서 펼쳐졌고 지금도 펼쳐지고 있는 표준화한 차별화의 양상을 깊이 있게 검토한다.
중요한 것은 이것이 기술적인 도전인 동시에 사회적인 도전이었다는 점이다. 트랙터 트레일러에 적재하여 목적지까지 운반할 수 있게 표준화한 철제 박스를 설계하는 일은 아주 쉬웠다. 그러나 선박과 기차에 실어 운반할 수도 있는 컨테이너를 설계하는 것은 훨씬 복잡했다. 선박용 컨테이너는 배 위에 산더미처럼 쌓여 파도가 치는 험한 바다를 나아가는 동안 눌리고 밀리는 강한 힘을 충분히 견뎌낼 수 있어야 한다. 기차용 컨테이너는 터널과 다리 아래를 잘 통과할 수 있게, 그리고 기차에 브레이크가 걸릴 때 끝이 찌부러지지 않게 설계되어야 한다. 또한 그 컨테이너들이 세계 여러 곳에서 사용할 수 있는 제품이 되려면, 그들 나라에서 사용되는 트럭과 기차의 규격에 맞아야 한다. 그것은 컨테이너가 유럽과 일본의 좁은 도로 사정에 알맞도록 작아야 하고, 동시에 일부 국가에서 여전히 사용하고 있는 더 오래되고 더 좁은 철로로도 운반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야 한다는 의미였다. _241쪽(제3장: 표준화에서 표준화한 차별화로)
지금은 증명, 인증, 평가의 시대!
표준화한 차별화가 만들어내고 있는 새로운 표준사회가 작동하기 위해서는 이 수없이 많은 표준들을 시행하고 감시하기 위한 수단이 존재해야 한다. 국제신용등급평가기관들의 위상에서 볼 수 있듯이, 이를 위한 증명, 인증, 평가 자체가 주요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활동이 되고 있다. 식료품시장보다 식료품증명시장이 훨씬 빨리 성장하는 것이 현실인 것이다. 이 책은 오늘날 존재하는 다양한 증명과 인증의 형태들을 분석하면서 공급망 관리를 비롯한 구체적인 사례들을 함께 검토하고 있다. 저자는 이 문제를 ‘신뢰’의 문제와 연결시키며 동시에 현대 사회학의 주요 화두 가운데 하나인 ‘위험’의 문제와도 결부시킨다. 또한 오늘날 범람하는 평가와 평가문화가 어떻게 사람들에게 폭력을 행사할 수 있는지 주의 깊게 살피고 있다.
좋은 표준과 나쁜 표준은 존재하는가? 그것을 가르는 기준은 무엇인가?
표준이 인간 사회와 권력의 산물이라면 필연적으로 윤리적 함의를 지니게 된다. 저자는 표준에 대한 논의에서 대체로 이 문제가 회피되어왔음을 지적하면서 분석철학과 윤리학의 논의를 끌어와 표준의 윤리적 의미를 탐구한다. 이 책은 다양한 정당화가 수행되는 7개의 서로 다른 세계를 구분하고, 왜 다른 세계에는 다른 표준이 요구되는지를 살핌으로써 한 세계의 표준이 다른 세계에 강요될 때 어떻게 불의가 나타나고 심지어 비극을 낳을 수 있는지 설명한다. 우리는 이를 통해 종교전쟁, 교육이나 의료의 영리화와 같은 문제들에 대해 표준의 관점에서 윤리적 비판을 제기할 수 있음을 보게 된다. 또한 저자는 이 책의 논의를 종합하면서 “공평하고 공정하고 효율적인” 표준을 만들기 위한 열두 가지 강령을 제시하고 있다.
신자유주의는 이 시대의 표준이 되었는가?
표준의 관점에서 바라본 신자유주의와 민주주의의 문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오늘날 수많은 표준들이 점점 더 전문적인 지식을 수반하면서, 표준의 문제는 민주주의에 피할 수 없는 도전을 제기하고 있다. 우리는 우리 사회의 표준에 관한 중요한 결정들을 이제 전문가에게 맡겨야 하는가? 이 책은 이 해묵은 논쟁을 새로운 각도에서 살피면서 전문가주의와 민주주의의 여러 신화들을 검토하고 비용편익분석과 위험분석을 구체적 사례로 들어 논증한다. 우리는 이를 통해 ‘꼭대기’가 아닌 ‘꼭지’에 있는 전문성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볼 수 있을 것이다.
민주주의에 대한 어떤 확고한 관념도 전적인 자율성이라는 신화와 완벽한 공동체라는 대응신화 사이에 있어야 한다. 실제로 전문가들에 의한 표준의 개발이 심의와 토론을 필연적으로 수반하는 만큼(그리고 그래야 하는 만큼), 이는 앞에서 말한 네 가지 사항에 설득력을 더해준다. 그러나 만약 전문가들이 그들이 추진하는 프로젝트의 기술적인 사항에 대한 전문성만을 고집한다면, 그들이 개발하는 표준은 부적절해질 가능성이 있다. 오직 민주적인 과정을 거쳐서만이 이 문제가 고쳐질 수 있다. 그러나 그러한 과정은 어떤 모습일까? 분명히 우리는 이 책에서 논의하는 종류의 시도를 위해 고대의 직접민주주의로 되돌아갈 수는 없다. _410쪽(제6장: 표준과 민주주의)
또한 이 책은 신자유주의가 마치 ‘이 시대의 표준’처럼 여겨지며 그 추세가 지속되고 있다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의 문제를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신자유주의의 핵심 사상들이 시장은 물론이고 시장을 넘어서 표준으로 자리 잡는 세계란 어떤 세계일 것인가? 저자는 이에 대해 표준과 ‘표준의 정당화’의 관점에서 더욱 새롭고 명징한 그림을 제시하고 있다.
표준 연구에 표준이 될 저작!
세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표준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표준 그 자체를 논의한다는 것은 쉽게 감이 잡히지 않는 얘기다. 우리는 실생활에서 무엇이 표준으로 간주되는지, 어떤 것이 표준을 성취하고 어떤 것이 그에 미치지 못했는지를 학습과 직관을 통해 자연스럽게 거의 매순간 감지한다. 그리고 그것이 그렇게 자명하게 받아들여진다는 것이 바로 표준의 한 특성이기도 하다. 이 책은 너무나 당연한 것이어서 연구할 의미가 부여되지 않았고 너무나 편만한 것이어서 감히 손대지 못해왔던, 보이지 않는 권력이자 현실을 창조하는 메커니즘인 표준을 우리 앞에 가시화한다.
이를 위해 이 책이 수행하는 심층적이고 인문학적인 접근은 표준에 대한 도구적이고 경제학적인 접근이 주를 이루는 기존 관련서들과 뚜렷한 차별성을 지닌다. 이 책은 사회학, 경제학, 철학, 윤리학 등의 다양한 학문 경계를 넘나들며 뒤르켐, 하이데거, 애컬로프, 듀이 같은 석학들의 논의에서부터 화장실 변기와 아동낙오방지법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사례를 검토한다. 저자가 제시하는 네 가지 표준 유형과 좋은 표준을 수립하기 위한 열두 가지 강령은 설득력이 있고 상당히 유용하다. 표준이 마치 공기처럼 보이지 않으면서도 우리의 삶이 지속될 수 있게 하는 그 무엇이라는 점에서 이 책의 독자들은 자신의 삶과 현실세계를 또 다른 층위에서 바라볼 수 있는 또 하나의 렌즈를 갖게 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로런스 부시
미국 미시간 주립대학교 사회학과 사회표준연구센터 특훈교수. 영국 랭커스터 대학교 ‘유전체학의 사회경제적 측면 연구센터’ 표준 및 사회 분야 교수
역자 : 이종삼
부산대학교 영문과, 동 대학원 영문과를 졸업했고, 대기업 간부를 거쳐 현재 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소용돌이의 한국정치], [밀레니엄의 종언], [미국개조론](이상 공역), [읽는다는 것의 역사], [강대국 일본의 부활], [나쁜 유전자], [한미동맹은 영구화하는가], [누가 선발되는가?: 하버드, 예일, 프린스턴의 입학사정관제] 등 다수가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표준과 선택 | 표준이 어떻게 은유를 현실화시킬까 | 항해에 필요한 몇 가지 조언
제1장 표준의 힘
에밀 뒤르켐의 규범 | 표준을 연구하기 | 통약성과 연결성 | 대칭성 | 표준의 유형 | 네 가지 유형의 표준 사이의 관계 | 표준, 검정, 그리고 지표 | 검정하기 | 은유와 측정 | 표준화의 단계 | 경로의존성 | 표준과 제재 | 표준의 객관성 | 벽에 달린 표지판 | 결론
제2장 세상을 표준화하기
너희가 가져야 할 정확하고 공정한 되 | 시간의 표준화 | 군대 | 식민지 건설 | 사회운동 | 의료 | 농업 | 학교교육 | 시민종교 | 가정 | 패션 | 시장과 경제 | 공장 | 조직의 커뮤니케이션 | 표준(감사가 가능한) 조직체 | 경영 | 법률과 정치 | 지식 | 수량화와 표준 | 결론: 표준화한 인식 만들기
제3장 표준화에서 표준화한 차별화로
표준을 이용해 차별화하기 | 가격 외 경쟁의 증대 | 중고품 시장의 재검토 | 운송 | 커뮤니케이션 | 포장 | 신자유주의 개혁 | 표준과 롱테일 효과 | 매스커스터마이제이션, 실버캐스팅, 매스클루시비티 및 또 다른 모순어법적인 사실들 | 결론
제4장 증명, 인증, 허가, 공인
증명 러시 | 당사자 | 신뢰 | 위험 | 과학, 표준, 그리고 증명 | 인증 | 3부로 된 표준체제와 그 문제점들 | 평가의 폭력 | 3부로 된 표준체제(TSR)에 대한 제한 | 결론: 시장사회 관리하기
제5장 표준, 윤리, 그리고 정의
표준에서 윤리로 | 윤리학적 검토 | 표준을 정당화하기 | 다른 세계에는 다른 종류의 표준이 필요하다 | 어떻게 표준이 재화를 유통시키는가 | 불의 | 가치사슬 | 결론
제6장 표준과 민주주의
전문가주의의 경우 | 민주주의의 경우 | 결론
결론: 또 다른 노예의 길?
선택과 본분 | 증명된 삶을 살기 | 민간표준의 한계? | 공평하고 공정하고 효율적인 표준 만들기 | 신뢰할 수 있는 사회를 향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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