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자, 이젠 지하실로 내려가자, 폭격이 시작될 시간이야.”
유럽 문학의 거장 이스마일 카다레 대표작
무구한 소년의 눈에 비친 광기와 환상의 연대기
카다레 스타일의 정수를 맛보고 싶은 독자라면
가장 먼저 『돌의 연대기』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_뉴욕타임스
‘유머러스한 비극과 기괴한 웃음’
카다레 문학의 정수
독특한 작품세계로 자신만의 문학적 영토를 일궈온 유럽 문학의 거장 이스마일 카다레의 장편소설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이스마일 카다레는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 알바니아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그는 그의 조국 알바니아보다 더 유명하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럽은 물론 세계의 많은 독자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으며, 매년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돌의 연대기』는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로, 그의 고향인 지로카스트라를 모델로 한 익명의 ‘돌의 도시’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역사적 비극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속에서 무력하지만 동시에 강인한 삶의 의지를 지닌 개인들이 세계의 폭력에 맞서 끈질긴 투쟁을 이어나가는 과정을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 거침없는 필치로 그려냈다. 『돌의 연대기』는 ‘유머러스한 비극과 기괴한 웃음’이라는 카다레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가장 잘 드러난 소설이라는 평과 함께 그의 대표작을 꼽을 때 반드시 거론되는 작품이다.
문학동네는 『죽은 군대의 장군』 『광기의 풍토』 『부서진 사월』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등 이스마일 카다레의 소설들을 꾸준히 출간해왔으며, 앞으로도 그의 또다른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피라미드』를 비롯해 『잘못된 만찬』 『떠나지 못하는 여자』 등 그의 작품들을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해나갈 예정이다.
전쟁의 광풍에 휩싸인 ‘돌의 도시’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
『돌의 연대기』는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인 알바니아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도시는 모든 것이 돌로 이루어졌으며, 아직 본격적으로 현대에 접어들지 않은, 그들만의 독특한 삶의 양식을 지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그들은 여전히 저주 걸린 ‘마법의 뭉치’를 두려워하고 닭뼈로 미래를 점치며, 도시 바깥의 세계에는 무관심하다. 그러나 이 도시 외곽에 있는 들판에 비행장이 들어서면서 그들의 삶은 송두리째 전복된다. 군대가 들어오고 돌로 된 집만 있던 도시에 ‘종이 집’이 세워지며 마을 사람들에게는 용어도 낯선 ‘등화관제’라는 것이 시행되더니, 이윽고 영국군의 공습이 시작된다. 폭격은 그들의 일상을 완전히 파괴한다. 그들은 사이렌이 울리면 지하실로 숨어들어 공습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들은 비처럼 쏟아지는 폭탄 속에서도 위트를 잃지 않은 채 다시 그들만의 일상을 되찾아간다. 그들은 폭탄이 떨어지고 있는 그 순간에도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며, 집안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며 삶을 이어간다.
영국 비행기들은 매일 규칙적으로 우리를 방문했다. 그것들은 거의 정해진 시각에 나타났으므로 사람들은 일정표에 짜인 불쾌한 일과에 적응하듯 폭격에도 웬만큼 적응해갔다. 내일 폭격이 끝나고 카페에서 보자든지, 내일은 새벽같이 일어나 폭격이 시작되기 전까지 집안 청소를 마칠 거라든지 하는 말들이 오갔다. 자, 이젠 지하실로 내려가자, 폭격이 시작될 시간이야, 라고도 했다. (232쪽)
무구한 소년의 눈에 비친 광기어린 전쟁
아이의 왜곡된 시선이 자아내는 유머러스한 비극
『돌의 연대기』의 화자는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는 어린아이다. 그는 또래 친구 일리르와 저주에 걸린 물건들을 찾으러 다니고 지구가 공처럼 둥글게 생겼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만큼 천진난만하며, 내리는 비와 굽이치는 강물의 언어에 귀를 기울일 정도로 상상력이 뛰어난데다 생애 처음 읽은 책인 『맥베스』를 읽고 전율을 느낄 정도로 문학적 감수성도 뛰어난 아이다. 이런 소년에게 이 도시에 닥친 사건들은 알 수 없는 일투성이다.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순진무구한 소년의 시선으로 본 전쟁이라는 재앙은 아이의 눈을 통해 왜곡되어 때로는 유쾌하고 희극적인 양상을 띠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낯선 관점으로 인해 우리는 오히려 전쟁의, 그리고 우리 자신의 본질을 마주하게 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다지? 한 조각 천에 열십자 모양으로 그어진 선 두 개가 어떻게 그런 근심을 불러일으킨단 말인가. 바람에 펄럭이는 천조각 하나가 도시 하나를 송두리째 비탄에 잠기게 하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212쪽)
알바니아의 도시 지로카스트라를 모델로 탄생한 익명의 ‘돌의 도시’
신화적 환상과 역사의 비극적 현실이 교차하는 공간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인 1900년대지만 무대가 되는 ‘돌의 도시’는 중세시대를 연상시킨다. 오토만제국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석재 건물들이 즐비하고 가톨릭교회와 이슬람의 모스크가 공존하는 이 도시는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긴다. 도시는 독일군과 이탈리아군, 그리스군이 차례로 점령하며 더욱 혼돈으로 가득찬다. 마치 여러 세계가 충돌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러한 공간에 아이의 상상력이 더해져 도시는 더욱 환상적인 공간으로 변모한다. 아이의 동화적 상상에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끼어들며 도시는 신화 시대의 분위기를 띠게 되고, 덕분에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공간적 배경이 탄생한다.
이상한 도시였다. 무슨 선사시대의 존재처럼 겨울밤 불쑥 계곡에서 솟아나 힘겹게 산허리를 오르고 있는 듯한 도시. 도시의 모든 것이 돌이고 노후해 있었다. (…) 회색 돌기와로 덮인 지붕들은 거대한 비늘을 연상시켰다. 이처럼 굳고 단단한 외피 속에서 삶의 부드러운 과육이 생장하고 있으리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7쪽)
각자의 방식으로 전쟁이라는 재앙을 마주하는 인간군상의 향연
소설에는 소년의 가족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어린 화자들의 동경의 대상이자 냉정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며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야심찬 젊은이 이사와 야베르, 폭격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지붕에 난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큰 소리로 수다를 떠는 왕할머니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결혼식은 열린다며 빗발치는 폭탄을 뚫고 신부 화장을 하러 다니는 피노 어멈, 도시를 지배하는 국가가 바뀔 때마다 감옥에서 풀려났다 다시 갇히기를 반복하며 감옥의 규율이 형편없다고 불평하는 ‘어둠의 친구’ 루칸…… 이외에도 많은 개성 있는 인물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전쟁을 받아들인다. 이들은 제2차세계대전으로 갑작스럽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통합되어버린 세계 이전의 인물들로, 현실을 왜곡해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어린 주인공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이다. 이렇듯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군상과 그들이 벌이는 예측불허의 행동들을 통해 전쟁이, 그리고 세계라는 것이 각자의 방식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번은 스미르나에서 한 이슬람 수도승이 내게 묻더군.” 전직 포수가 말했다. “내 가족과 알바니아, 둘 중 어느 것을 더 사랑하느냐고. 물론 알바니아라고 나는 대답했지. 가족이야 눈 깜짝할 새 만들어지는 거니까. 어느 날 밤 카페에서 나오다가 길모퉁이에서 여자를 만나 호텔로 데려가면 당장 가족과 아이가 생기는 것 아니겠어. 하지만 알바니아는 그럴 수 없지. 한잔하고 나서 하룻밤새 만들 순 없는 거야. 없고말고. 알바니아는 하룻밤은커녕 천하룻밤이 걸려도 만들 수 없는 거지.”(143쪽)
낯선 듯 익숙한, 우리 역사와 닮은 알바니아의 비극
『돌의 연대기』는 한 도시가 겪는 수난사이다. 소설이 시작할 때부터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는 ‘돌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유로운 나라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소년들은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는 도시와 자유로운 도시의 차이를 모른다. 지식인 청년들인 이사와 야베르는 그런 소년들을 딱하게 여기며 자유로운 도시를 꿈꾸지만 정작 그들 자신도 자유로운 도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너희는 노예로 자라서 자유로운 도시가 뭔지 몰라.” 야베르가 말했다. “너한테 그걸 설명하기는 쉽지 않은데, 자유로운 도시가 되면 모든 게 너무 다르고 너무 근사해서 처음엔 머리가 어질어질할 거야.”
“먹을 것도 많을까?”
“그럼, 먹을 것도 있지. 물론이야. 그것 말고도 많아. 아! 너무 많아서 나도 뭐라 분명히 말할 수가 없어.” (41쪽)
도시는 연이은 침략을 받고, 도시의 주인은 독일, 이탈리아, 그리스 등으로 계속해서 바뀌어나간다. 도시 사령관이 바뀐 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다른 도시 사령관이 부임하고, 이탈리아의 리라가 새 화폐로 지정된 뒤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리스의 드라크마가 통용 화폐로 바뀌길 반복한다. ‘돌의 도시’에 새로 생긴 비행장에 주둔하며 적국에 공습을 퍼붓기 위해 남쪽으로 떠나곤 하던 이탈리아의 전투기들은 그리스가 도시를 지배하게 되자 ‘돌의 도시’로 돌아와 폭탄을 퍼붓는다.
독일군이 패하고 이 모든 혼란이 끝난 후에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을 지닌 젊은이들이 공산주의를 주창하며 유격대원(빨치산)을 조직해 같은 시민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을 벌인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결코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또 전쟁이라!” 피노 어멈이 한숨을 쉬었다.
“어쩌겠나.” 할머니가 말했다. “세상은 그것 없이는 못 사는걸. 이 나이 먹도록 하루도 진정한 평화를 맛본 적이 없어.” (310쪽)
대규모 폭격이 예고된 밤, 마침내 그들은 도시를 떠난다. 소년의 가족을 비롯해 도시의 거의 모든 시민들은 도시를 버리고 다른 마을로 피신해 처음으로 돌이 아닌 나무로 지어진 집에서 잠을 자며 한밤중 멀리서 불타오르는 돌의 도시를 바라본다. 모든 게 무너진 듯한 그 참혹한 풍경 속에서 시민들은 하나둘씩 도시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그들의 행렬은 길게 이어진다.
몽환적이면서도 섬세한 문장들
아름다우면서도 경제적인 서사 구조
이스마일 카다레의 문장은 특별하다. 그의 문장은 무게감이 있지만 어둡지 않고, 치밀하지만 유연하다. 환상적이면서도 사실적인 그의 문장들은 비극에 희극적인 요소를 담아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돌의 연대기』는 감수성 풍부한 어린아이를 화자로 내세워 그만의 환상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문체가 극대화된 작품이다. 소년이 풀어놓는 시적이면서도 거침없는 문장들은 광기와 환상이 교차하는 이 도시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반복되는 왕할머니들의 “말세야.” 하는 추임새는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를 연상시키며 유머러스하면서도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독특한 소설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문장뿐만 아니라 이 소설의 아름다우면서도 경제적인 구조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이의 서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역사의 구체적 배경은 연대기의 형식으로 장 사이마다 삽입된다. 적절한 순간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우화와 증언, 연대기의 조각들은 소설 전체에 리듬감을 준다. 아름답고 위트 있는 문장은 물론, 서사 구조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도 대가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 언론사 리뷰
이스마일 카다레는 모든 언어권을 통틀어 현재 글을 쓰고 있는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다.
_월스트리트저널
이스마일 카다레라는 빛나는 혜성! 그는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이다. _르몽드
빈틈없이 매혹적인 소설. 탁월한 묘사가 돋보이는 이 시적인 산문은 세련되면서도 완숙하다.
_존 업다이크
카다레 스타일의 정수를 맛보고 싶은 독자라면 가장 먼저 『돌의 연대기』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_뉴욕 타임스
카다레는 고골과 카프카, 조지 오웰에 비견되어왔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목소리와 세계관은 그가 나고 자란 토양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_인디펜던트
카다레는 조지 오웰과 아서 케스틀러의 리얼리즘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쓴다. 그는 프란츠 카프카의 예언자적 판타지보다 더 치밀하고 어둡지만 아주 가벼운 어조로 무게감 있는 우화를 쓰는 재능이 있다. _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카다레는 유머러스하면서도 비극적인 문학의 혈맥 가운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_르피가로
카다레의 산문에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엿보인다.
_로스앤젤레스 북리뷰
이스마일 카다레는 역사, 민담, 정치 등 문화의 전체 지도를 그려내며, 호메로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스토리텔링의 전통 속에 서 있는 보편적인 작가이다. _존 캐리(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의장)
▣ 작가 소개
저자 : 이스마일 카다레 Ismail Kadare
1936년 알바니아 남부 지로카스트라에서 태어났다. 티라나 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학을 공부했고, 모스크바의 고리키 문학연구소에서 수학했다. 1963년 첫 장편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카다레는 『꿈의 궁전』 『부서진 사월』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광기의 풍토』 등 많은 작품을 통해 신화와 전설, 구전 민담 등을 자유롭게 변주하며 암울한 조국의 현실을 우화적으로 그려내는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했다. 독재정권 아래 놓여 있던 알바니아에서 몇몇 작품은 출간 금지라는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카다레는 전제주의와 독재 체제를 고발하는 날카로운 시선을 잃지 않았고, 특유의 풍자와 유머로 우스꽝스러운 비극, 기괴한 웃음을 만들어내며 세계적인 작가로 입지를 굳혔다.
카다레는 독재정권이 무너지기 직전 프랑스로 망명해 지금까지 파리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92년 프랑스의 문화재단에서 수여하는 치노 델 두카 국제상을 수상했고, 2005년 제1회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2009년에는 스페인의 권위 있는 아스투리아스 왕자상(문학부문)을 수상했다.
역자 : 이창실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응용언어학 과정을 이수한 뒤,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과를 졸업했다. 이스마일 카다레의 『죽은 군대의 장군』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광기의 풍토』를 비롯하여, 『마그누스』 『세 여인』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프란츠 카프카의 고독』 『누보 로망, 누보 시네마』 『키에르케고르』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빈센트 반 고흐』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주요 목차
돌의 연대기 007
옮긴이의 말 383
이스마일 카다레 연보 395
“자, 이젠 지하실로 내려가자, 폭격이 시작될 시간이야.”
유럽 문학의 거장 이스마일 카다레 대표작
무구한 소년의 눈에 비친 광기와 환상의 연대기
카다레 스타일의 정수를 맛보고 싶은 독자라면
가장 먼저 『돌의 연대기』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_뉴욕타임스
‘유머러스한 비극과 기괴한 웃음’
카다레 문학의 정수
독특한 작품세계로 자신만의 문학적 영토를 일궈온 유럽 문학의 거장 이스마일 카다레의 장편소설이 문학동네에서 출간되었다. 이스마일 카다레는 발칸반도의 작은 나라 알바니아를 대표하는 소설가로, ‘그는 그의 조국 알바니아보다 더 유명하다’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유럽은 물론 세계의 많은 독자들의 사랑과 지지를 받고 있으며, 매년 노벨문학상의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고 있는 작가이기도 하다.
『돌의 연대기』는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로, 그의 고향인 지로카스트라를 모델로 한 익명의 ‘돌의 도시’에서 일어나는 거대한 역사적 비극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속에서 무력하지만 동시에 강인한 삶의 의지를 지닌 개인들이 세계의 폭력에 맞서 끈질긴 투쟁을 이어나가는 과정을 특유의 유머러스하면서 거침없는 필치로 그려냈다. 『돌의 연대기』는 ‘유머러스한 비극과 기괴한 웃음’이라는 카다레만의 독특한 스타일이 가장 잘 드러난 소설이라는 평과 함께 그의 대표작을 꼽을 때 반드시 거론되는 작품이다.
문학동네는 『죽은 군대의 장군』 『광기의 풍토』 『부서진 사월』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등 이스마일 카다레의 소설들을 꾸준히 출간해왔으며, 앞으로도 그의 또다른 대표작으로 손꼽히는 『피라미드』를 비롯해 『잘못된 만찬』 『떠나지 못하는 여자』 등 그의 작품들을 국내 독자들에게 소개해나갈 예정이다.
전쟁의 광풍에 휩싸인 ‘돌의 도시’
그래도 삶은 이어진다!
『돌의 연대기』는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인 알바니아의 한 도시를 배경으로 하고 있다. 이 도시는 모든 것이 돌로 이루어졌으며, 아직 본격적으로 현대에 접어들지 않은, 그들만의 독특한 삶의 양식을 지닌 사람들이 살아가는 곳이다. 그들은 여전히 저주 걸린 ‘마법의 뭉치’를 두려워하고 닭뼈로 미래를 점치며, 도시 바깥의 세계에는 무관심하다. 그러나 이 도시 외곽에 있는 들판에 비행장이 들어서면서 그들의 삶은 송두리째 전복된다. 군대가 들어오고 돌로 된 집만 있던 도시에 ‘종이 집’이 세워지며 마을 사람들에게는 용어도 낯선 ‘등화관제’라는 것이 시행되더니, 이윽고 영국군의 공습이 시작된다. 폭격은 그들의 일상을 완전히 파괴한다. 그들은 사이렌이 울리면 지하실로 숨어들어 공습이 끝나기를 기다린다.
그러나 그들은 비처럼 쏟아지는 폭탄 속에서도 위트를 잃지 않은 채 다시 그들만의 일상을 되찾아간다. 그들은 폭탄이 떨어지고 있는 그 순간에도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며, 집안 청소를 하고 빨래를 널며 삶을 이어간다.
영국 비행기들은 매일 규칙적으로 우리를 방문했다. 그것들은 거의 정해진 시각에 나타났으므로 사람들은 일정표에 짜인 불쾌한 일과에 적응하듯 폭격에도 웬만큼 적응해갔다. 내일 폭격이 끝나고 카페에서 보자든지, 내일은 새벽같이 일어나 폭격이 시작되기 전까지 집안 청소를 마칠 거라든지 하는 말들이 오갔다. 자, 이젠 지하실로 내려가자, 폭격이 시작될 시간이야, 라고도 했다. (232쪽)
무구한 소년의 눈에 비친 광기어린 전쟁
아이의 왜곡된 시선이 자아내는 유머러스한 비극
『돌의 연대기』의 화자는 정확한 나이를 알 수 없는 어린아이다. 그는 또래 친구 일리르와 저주에 걸린 물건들을 찾으러 다니고 지구가 공처럼 둥글게 생겼다는 사실을 믿지 않을 만큼 천진난만하며, 내리는 비와 굽이치는 강물의 언어에 귀를 기울일 정도로 상상력이 뛰어난데다 생애 처음 읽은 책인 『맥베스』를 읽고 전율을 느낄 정도로 문학적 감수성도 뛰어난 아이다. 이런 소년에게 이 도시에 닥친 사건들은 알 수 없는 일투성이다. 세계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하는 순진무구한 소년의 시선으로 본 전쟁이라는 재앙은 아이의 눈을 통해 왜곡되어 때로는 유쾌하고 희극적인 양상을 띠게 된다. 그리고 그러한 낯선 관점으로 인해 우리는 오히려 전쟁의, 그리고 우리 자신의 본질을 마주하게 된다.
어떻게 그럴 수 있다지? 한 조각 천에 열십자 모양으로 그어진 선 두 개가 어떻게 그런 근심을 불러일으킨단 말인가. 바람에 펄럭이는 천조각 하나가 도시 하나를 송두리째 비탄에 잠기게 하다니. 이상한 일이었다. (212쪽)
알바니아의 도시 지로카스트라를 모델로 탄생한 익명의 ‘돌의 도시’
신화적 환상과 역사의 비극적 현실이 교차하는 공간
소설의 시간적 배경은 제2차세계대전이 한창인 1900년대지만 무대가 되는 ‘돌의 도시’는 중세시대를 연상시킨다. 오토만제국의 건축 양식으로 지어진 석재 건물들이 즐비하고 가톨릭교회와 이슬람의 모스크가 공존하는 이 도시는 이국적인 느낌을 물씬 풍긴다. 도시는 독일군과 이탈리아군, 그리스군이 차례로 점령하며 더욱 혼돈으로 가득찬다. 마치 여러 세계가 충돌하는 듯한 모습이다. 이러한 공간에 아이의 상상력이 더해져 도시는 더욱 환상적인 공간으로 변모한다. 아이의 동화적 상상에 전쟁이라는 거대한 사건이 끼어들며 도시는 신화 시대의 분위기를 띠게 되고, 덕분에 어디에도 없는 독특한 공간적 배경이 탄생한다.
이상한 도시였다. 무슨 선사시대의 존재처럼 겨울밤 불쑥 계곡에서 솟아나 힘겹게 산허리를 오르고 있는 듯한 도시. 도시의 모든 것이 돌이고 노후해 있었다. (…) 회색 돌기와로 덮인 지붕들은 거대한 비늘을 연상시켰다. 이처럼 굳고 단단한 외피 속에서 삶의 부드러운 과육이 생장하고 있으리라고는 믿기 어려웠다. (7쪽)
각자의 방식으로 전쟁이라는 재앙을 마주하는 인간군상의 향연
소설에는 소년의 가족을 중심으로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한다. 어린 화자들의 동경의 대상이자 냉정하고 객관적인 눈으로 사회를 바라보며 세상을 바꾸고 싶어하는 야심찬 젊은이 이사와 야베르, 폭격이 진행되는 와중에도 지붕에 난 창문으로 고개를 내밀어 큰 소리로 수다를 떠는 왕할머니들, 그 어떤 상황에서도 결혼식은 열린다며 빗발치는 폭탄을 뚫고 신부 화장을 하러 다니는 피노 어멈, 도시를 지배하는 국가가 바뀔 때마다 감옥에서 풀려났다 다시 갇히기를 반복하며 감옥의 규율이 형편없다고 불평하는 ‘어둠의 친구’ 루칸…… 이외에도 많은 개성 있는 인물들이 자기만의 방식으로 전쟁을 받아들인다. 이들은 제2차세계대전으로 갑작스럽고 폭력적인 방식으로 통합되어버린 세계 이전의 인물들로, 현실을 왜곡해서 바라보고 있다는 점에서는 어린 주인공과 크게 다를 바 없는 인물들이다. 이렇듯 소설에 등장하는 다양한 인간군상과 그들이 벌이는 예측불허의 행동들을 통해 전쟁이, 그리고 세계라는 것이 각자의 방식으로 마주할 수밖에 없는 것임을 보여주고 있다.
“한번은 스미르나에서 한 이슬람 수도승이 내게 묻더군.” 전직 포수가 말했다. “내 가족과 알바니아, 둘 중 어느 것을 더 사랑하느냐고. 물론 알바니아라고 나는 대답했지. 가족이야 눈 깜짝할 새 만들어지는 거니까. 어느 날 밤 카페에서 나오다가 길모퉁이에서 여자를 만나 호텔로 데려가면 당장 가족과 아이가 생기는 것 아니겠어. 하지만 알바니아는 그럴 수 없지. 한잔하고 나서 하룻밤새 만들 순 없는 거야. 없고말고. 알바니아는 하룻밤은커녕 천하룻밤이 걸려도 만들 수 없는 거지.”(143쪽)
낯선 듯 익숙한, 우리 역사와 닮은 알바니아의 비극
『돌의 연대기』는 한 도시가 겪는 수난사이다. 소설이 시작할 때부터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는 ‘돌의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자유로운 나라가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 소년들은 남의 나라의 지배를 받고 있는 도시와 자유로운 도시의 차이를 모른다. 지식인 청년들인 이사와 야베르는 그런 소년들을 딱하게 여기며 자유로운 도시를 꿈꾸지만 정작 그들 자신도 자유로운 도시가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한다.
“너희는 노예로 자라서 자유로운 도시가 뭔지 몰라.” 야베르가 말했다. “너한테 그걸 설명하기는 쉽지 않은데, 자유로운 도시가 되면 모든 게 너무 다르고 너무 근사해서 처음엔 머리가 어질어질할 거야.”
“먹을 것도 많을까?”
“그럼, 먹을 것도 있지. 물론이야. 그것 말고도 많아. 아! 너무 많아서 나도 뭐라 분명히 말할 수가 없어.” (41쪽)
도시는 연이은 침략을 받고, 도시의 주인은 독일, 이탈리아, 그리스 등으로 계속해서 바뀌어나간다. 도시 사령관이 바뀐 지 한 달도 되지 않아서 다른 도시 사령관이 부임하고, 이탈리아의 리라가 새 화폐로 지정된 뒤 채 며칠이 지나지 않아 그리스의 드라크마가 통용 화폐로 바뀌길 반복한다. ‘돌의 도시’에 새로 생긴 비행장에 주둔하며 적국에 공습을 퍼붓기 위해 남쪽으로 떠나곤 하던 이탈리아의 전투기들은 그리스가 도시를 지배하게 되자 ‘돌의 도시’로 돌아와 폭탄을 퍼붓는다.
독일군이 패하고 이 모든 혼란이 끝난 후에는 세상을 바꾸고자 하는 열망을 지닌 젊은이들이 공산주의를 주창하며 유격대원(빨치산)을 조직해 같은 시민들끼리 서로 죽고 죽이는 살육을 벌인다. 우리의 근현대사를 돌아보면 결코 낯설지 않은 모습이다.
“또 전쟁이라!” 피노 어멈이 한숨을 쉬었다.
“어쩌겠나.” 할머니가 말했다. “세상은 그것 없이는 못 사는걸. 이 나이 먹도록 하루도 진정한 평화를 맛본 적이 없어.” (310쪽)
대규모 폭격이 예고된 밤, 마침내 그들은 도시를 떠난다. 소년의 가족을 비롯해 도시의 거의 모든 시민들은 도시를 버리고 다른 마을로 피신해 처음으로 돌이 아닌 나무로 지어진 집에서 잠을 자며 한밤중 멀리서 불타오르는 돌의 도시를 바라본다. 모든 게 무너진 듯한 그 참혹한 풍경 속에서 시민들은 하나둘씩 도시로 돌아가기로 결심하고, 그들의 행렬은 길게 이어진다.
몽환적이면서도 섬세한 문장들
아름다우면서도 경제적인 서사 구조
이스마일 카다레의 문장은 특별하다. 그의 문장은 무게감이 있지만 어둡지 않고, 치밀하지만 유연하다. 환상적이면서도 사실적인 그의 문장들은 비극에 희극적인 요소를 담아 삶의 아이러니를 드러내는 데 탁월한 효과를 발휘한다. 『돌의 연대기』는 감수성 풍부한 어린아이를 화자로 내세워 그만의 환상적이면서도 유머러스한 문체가 극대화된 작품이다. 소년이 풀어놓는 시적이면서도 거침없는 문장들은 광기와 환상이 교차하는 이 도시의 이야기를 생생하게 그려낸다. 반복되는 왕할머니들의 “말세야.” 하는 추임새는 그리스 비극의 코러스를 연상시키며 유머러스하면서도 페이소스가 느껴지는 독특한 소설의 분위기를 만들어낸다.
문장뿐만 아니라 이 소설의 아름다우면서도 경제적인 구조도 눈여겨볼 만하다. 아이의 서술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역사의 구체적 배경은 연대기의 형식으로 장 사이마다 삽입된다. 적절한 순간에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우화와 증언, 연대기의 조각들은 소설 전체에 리듬감을 준다. 아름답고 위트 있는 문장은 물론, 서사 구조와 이야기를 전달하는 방식에도 대가의 손길을 느낄 수 있는 대목이다.
◆ 언론사 리뷰
이스마일 카다레는 모든 언어권을 통틀어 현재 글을 쓰고 있는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다.
_월스트리트저널
이스마일 카다레라는 빛나는 혜성! 그는 유럽에서 가장 위대한 작가 중 한 명이다. _르몽드
빈틈없이 매혹적인 소설. 탁월한 묘사가 돋보이는 이 시적인 산문은 세련되면서도 완숙하다.
_존 업다이크
카다레 스타일의 정수를 맛보고 싶은 독자라면 가장 먼저 『돌의 연대기』를 선택해야 할 것이다. _뉴욕 타임스
카다레는 고골과 카프카, 조지 오웰에 비견되어왔다. 그러나 그의 진정한 목소리와 세계관은 그가 나고 자란 토양에 깊이 뿌리박고 있다. _인디펜던트
카다레는 조지 오웰과 아서 케스틀러의 리얼리즘과는 다른 차원의 이야기를 쓴다. 그는 프란츠 카프카의 예언자적 판타지보다 더 치밀하고 어둡지만 아주 가벼운 어조로 무게감 있는 우화를 쓰는 재능이 있다. _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카다레는 유머러스하면서도 비극적인 문학의 혈맥 가운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_르피가로
카다레의 산문에는 가브리엘 가르시아 마르케스의 마술적 리얼리즘이 엿보인다.
_로스앤젤레스 북리뷰
이스마일 카다레는 역사, 민담, 정치 등 문화의 전체 지도를 그려내며, 호메로스로 거슬러 올라가는 스토리텔링의 전통 속에 서 있는 보편적인 작가이다. _존 캐리(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의장)
▣ 작가 소개
저자 : 이스마일 카다레 Ismail Kadare
1936년 알바니아 남부 지로카스트라에서 태어났다. 티라나 대학교에서 언어학과 문학을 공부했고, 모스크바의 고리키 문학연구소에서 수학했다. 1963년 첫 장편소설 『죽은 군대의 장군』을 발표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카다레는 『꿈의 궁전』 『부서진 사월』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광기의 풍토』 등 많은 작품을 통해 신화와 전설, 구전 민담 등을 자유롭게 변주하며 암울한 조국의 현실을 우화적으로 그려내는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 세계를 구축했다. 독재정권 아래 놓여 있던 알바니아에서 몇몇 작품은 출간 금지라는 수난을 겪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카다레는 전제주의와 독재 체제를 고발하는 날카로운 시선을 잃지 않았고, 특유의 풍자와 유머로 우스꽝스러운 비극, 기괴한 웃음을 만들어내며 세계적인 작가로 입지를 굳혔다.
카다레는 독재정권이 무너지기 직전 프랑스로 망명해 지금까지 파리에서 왕성한 작품 활동을 펼치고 있다. 1992년 프랑스의 문화재단에서 수여하는 치노 델 두카 국제상을 수상했고, 2005년 제1회 맨부커 인터내셔널 상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2009년에는 스페인의 권위 있는 아스투리아스 왕자상(문학부문)을 수상했다.
역자 : 이창실
이화여자대학교 영어영문학과를 졸업하고, 프랑스 스트라스부르대학 응용언어학 과정을 이수한 뒤, 이화여자대학교 통번역대학원 한불과를 졸업했다. 이스마일 카다레의 『죽은 군대의 장군』 『누가 후계자를 죽였는가』 『광기의 풍토』를 비롯하여, 『마그누스』 『세 여인』 『글렌 굴드, 피아노 솔로』 『프란츠 카프카의 고독』 『누보 로망, 누보 시네마』 『키에르케고르』 『아시시의 프란체스코』 『빈센트 반 고흐』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주요 목차
돌의 연대기 007
옮긴이의 말 383
이스마일 카다레 연보 3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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