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悲哀”
김훈 산문의 정수
소설가 김훈의 산문이 출간되었다.
오래전에 절판되어 애서가들로 하여금 헌책방을 찾아다니게 한 김훈의 전설적인 산문『밥벌이의 지겨움』『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바다의 기별』에서 시대를 초월해 기억될 만한 산문들을 가려 뽑고, 이후 새로 쓴 산문 원고 400매가량을 합쳐 엮었다.
이 책에는 그의 가족 이야기부터 기자 시절 그가 거리에서 써내려간 글들, 최근에 도시를 견디지 못하고 동해와 서해의 섬에 각각 들어가 새로운 언어를 기다리며 써내려간 글에 이르기까지, 김훈의 어제와 오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전히 원고지에 육필로 글을 쓰고, 자가용에 몸을 싣는 대신 자전거를 타고 두 발로 바퀴를 굴려 세상을 나아가는 그가 기록한 세상과 내면의 지난한 풍경들. ‘밥벌이의 지겨움’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 길이 회자되는 김훈의 명문장들을 읽는 기쁨과 함께,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시대에 진영 논리에 휩싸여 악다구니를 벌이는 권력가들에게 그가 ‘슬프고 기막혀서’ 써내려간 글, 여전히 ‘먹고살기의 지옥을 헤매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김훈 산문의 정수’가 이 책에 있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소외된 노동으로 밥을 먹었다.”
아, 밥벌이의 지겨움!!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다.”
책의 표제글이 된 「라면을 끓이며」는 매 해 36억 개, 1인당 74.1개씩의 라면을 먹으며 살아가는 평균 한국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자, ‘거리에서 싸고, 간단히, 혼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상에는 식사와 사교를 겸한 번듯한 자리에서 끼니를 고상하게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리에서 밥벌이를 견디다가 허름한 분식집에서 홀로 창밖을 내다보면서, 혹은 모르는 사람과 마주앉아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다. ‘목구멍을 쥐어뜯는’ 매운 국물들을 빠르게 들이켜고는 각자의 노동과 고난 속으로 다시 걸어들어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엔 더 많다.
“있건 없건 간에 누구나 먹어야 하고, 한 번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때가 되면 또다시, 기어이 먹어야 하므로” ‘한 달 벌어 한 달 살아가는’ 이들에게 라면은 뻔하고도 애잔한 음식이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라면을 먹어왔다. 거리에서 싸고 간단히, 혼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이다. 그 맛들은 내 정서의 밑바닥에 인 박여 있다.
모르는 사람과 마주앉아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는 일은 쓸쓸하다. 쓸쓸해하는 나의 존재가 내 앞에서 라면을 먹는 사내를 쓸쓸하게 해주었을 일을 생각하면 더욱 쓸쓸하다. 쓸쓸한 것이 김밥과 함께 목구멍을 넘어간다.
이 궁상맞음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 당신들도 다 마찬가지다. 한 달 벌어 한 달 살아가는 사람이 거리에서 돈을 주고 사먹을 수 있는 음식은 뻔하다.
라면이나 짜장면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인다. 그 안쓰러운 것들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세상은 짜장면처럼 어둡고 퀴퀴하거나, 라면처럼 부박浮薄하리라는 체념의 편안함이 마음의 깊은 곳을 쓰다듬는다.
이래저래 인은 골수염처럼 뼛속에 사무친다. _본문에서
김훈의 밥.돈.몸.길.글
이 책은 김훈의 지난날을 이룬 다섯 가지의 주제에 따라 5부로 구성되어 있다. 밥, 돈, 몸, 길, 글. 이 다섯 개의 주제는 그의 문체처럼 간명하고 정직하다. 그 무엇도 덧댈 필요도, 덜어낼 수도 없는 이 단독한 세계 안에 김훈이 있다.
그는 「손1」에서 “나는 손의 힘으로 살아가야 할 터인데 손은 자꾸만 남의 손을 잡으려 한다”라고 썼다.
이 책은 자꾸만 남의 손을 잡으려드는 안쓰러운 손으로 현실의 얽히고설킨 관계들을 겨우 버티어내는 그와, 홀로 집필실에서 연필 쥔 손에 힘을 준 채 글을 써내려가는 그가 느껍게 만나는 자리이다.
지난날 한 인터뷰에서 김훈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글을 쓸 때 어떤 전압에 끌린다. 전압이 높은 문장이 좋다. 전압을 얻으려면 상당히 많은 축적이 필요하다. 또 그만큼 버려야 한다. 버리는 과정에서 전압이 발생한다. 안 버리면 전압이 생길 수 없다.”
이 책을 엮는 과정에서 그는 많은 글들을 버리고, 새로이 문장을 벼렸다. 그가 축적해온 수많은 산문들 가운데 꼭 남기고 싶은 일부만을 남기고, 소설보다 낮고 순한 말로 독자들에게 말을 걸고픈 그의 바람이 담긴 최근의 글들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이 책엔 독자를 단숨에 사로잡을 고압전류가 흐른다.
김훈 문장의 힘은 버리고 벼리는 데서 온다. 이 책은 김훈이 축적해온 삶 위에, 가차 없이 버리고 벼린 그의 문장의 힘이 더해져, ‘김훈 산문의 정수’를 읽는 희열과 감동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산문집이다.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향하여 나는 오랫동안 중언부언하였다. 나는 쓸 수 없는 것들을 쓸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헛된 것들을 지껄였다. 간절해서 쓴 것들도 모두 시간에 쓸려서 바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늘 말 밖에 있었다. 지극한 말은, 말의 굴레를 벗어난 곳에서 태어나는 것이리라.
이제, 함부로 내보낸 말과 글을 뉘우치는 일을 여생의 과업으로 삼되, 뉘우쳐도 돌이킬 수는 없으니 슬프고 누추하다. 나는 사물과 직접 마주 대하려 한다.
2015년 여름은 화탕지옥 속의 아비규환이었다. 덥고 또 더워서 나는 나무그늘에서 겨우 견디었다. 그 여름이 가고, 가을이 또 와서 숙살肅殺의 서늘함이 칼처럼 무섭다.
낮고 순한 말로 이 세상에 말을 걸고 싶은 소망으로 몇 편의 글을 겨우 추려서 이 책을 엮는데, 또하나의 장애물을 만드는 것이 아닌지를 나는 걱정한다.
_작가의 말
▣ 작가 소개
저 : 김훈
1948년 5월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인 김광주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하였으나 정외과와 영문과를 중퇴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시사저널」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으로 재직하였으며 2004년 이래로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휘문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산악부에 들어가서 등산을 많이 다녔다. 인왕산 치마바위에서 바위타기를 처음 배웠다 한다. 대학은 처음에는 고려대 정외과에 진학했다.(1966년). 2학년 때 우연히 바이런과 셸리를 읽은 것이 너무 좋아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정외과에 뜻이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영시를 읽으며 영문과로 전과할 준비를 했다. 그래서 동기생들이 4학년 올라갈 때 그는 영문과 2학년생이 되었다. 영문과로 옮기고 나서 한 학년을 다니고 군대에 갔다. 제대하니까 여동생도 고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안이 어려운 상태라 한 집안에 대학생 두 명이 있을 수는 없었다. 돈을 닥닥 긁어 보니까 한 사람 등록금이 겨우 나오길래 김훈은 "내가 보니 넌 대학을 안 다니면 인간이 못 될 것 같으니, 이 돈을 가지고 대학에 다녀라"라고 말하며 그 돈을 여동생에게 주고, 자신은 대학을 중퇴했다.
김훈 씨는 모 월간지의 인터뷰에서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피력하기도 했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할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표현해 내기 위해서"이며 또 "우연하게도 내 생애의 훈련이 글 써먹게 돼 있으니까" 쓰는 것이라 한다. 그의 희망은 희망이 여러 가지 있는데 첫 번째가 음풍농월하는 것이라 한다. 또 음풍농월 하면서도 당대의 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훈이 언어로 붙잡고자 하는 세상과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선상에서 밧줄을 잡아당기는 선원들이기도 하고,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는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민망하게도 혹은 선정주의의 혐의를 지울 수 없게도 미인의 기준이기도 하다. 그는 현미경처럼 자신과 바깥 사물들을 관찰하고 이를 언어로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하며, 무엇보다도 어떤 행위를 하고 그 행위를 하면서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느낌을 메타적으로 보고 언어로 표현해낸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는 그를 일러 ''문장가라는 예스러운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몇 안되는 글쟁이 중의 하나''라고 평하고 있기도 하다.
1986년 『한국일보』 재직 당시 3년 동안 『한국일보』에 매주 연재한 것을 묶어 낸 『문학기행』(박래부 공저)으로 해박한 문학적 지식과 유려한 문체로 빼어난 여행 산문집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으며 한국일보에 연재하였던 독서 산문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1989) 등의 저서가 있으며 1999∼2000년 전국의 산천을 자전거로 여행하며 쓴 에세이 『자전거여행』(2000)도 생태·지리·역사를 횡과 종으로 연결한 수작으로 평가 받았다.
그의 대표 저서로는 『칼의 노래』를 꼽을 수 있다. 2001년 동인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책은 전략 전문가이자 순결한 영웅이었던 이순신 장군의 삶을 통해 이 시대 본받아야 할 리더십을 제시한다. 영웅 이순신의 드러나 있는 궤적을 다큐멘터리식으로 복원하여 현실성을 부여하되, 소설 특유의 상상력으로 이순신 1인칭 서술을 일관되게 유지하여 전투 전후의 심사, 혈육의 죽음, 여인과의 통정, 정치와 권력의 폭력성, 죽음에 대한 사유, 문(文)과 무(武)의 멀고 가까움, 밥과 몸에 대한 사유, 한 나라의 생사를 책임진 장군으로서의 고뇌 등을 드러내고 있다.
이외의 저서로 독서 에세이집 『선택과 옹호』, 여행 산문집 『풍경과 상처』,『자전거여행』,『원형의 섬 진도』, 시론집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에 대하여』,『밥벌이의 지겨움』,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1부 밥
라면을 끓이며 _11
광야를 달리는 말 _32
바다 _48
밥 1 _70
밥 2 _74
남태평양 _76
갯벌 _94
국경 _98
공 _122
목수 _127
줄 _131
목숨 1 _137
목숨 2 _142
2부 돈
세월호 _153
돈 1 _178
돈 2 _182
돈 3 _186
신호 _191
라파엘의 집 _195
서민 _197
러브 _201
불자동차 _205
소방관의 죽음 _215
3부 몸
바다의 기별 _223
여자 1 _232
여자 2 _238
여자 3 _243
여자 4 _247
여자 5 _251
여자 6 _256
여자 7 _262
손 1 _267
손 2 _278
발 1 _283
발 2 _289
평발 _293
4부 길
길 _299
바퀴 _303
고향 1 _307
고향 2 _317
고향 3 _327
쇠 _332
가마 _343
셋 _349
까치 _353
꽃 _357
잎 _361
수박 _365
11월 _370
바람 _374
5부 글
칠장사_ 임꺽정 379
연어_ 고형렬 391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 397
작가의 말 410
“먹고산다는 것의 안쪽을 들여다보는 비애悲哀”
김훈 산문의 정수
소설가 김훈의 산문이 출간되었다.
오래전에 절판되어 애서가들로 하여금 헌책방을 찾아다니게 한 김훈의 전설적인 산문『밥벌이의 지겨움』『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바다의 기별』에서 시대를 초월해 기억될 만한 산문들을 가려 뽑고, 이후 새로 쓴 산문 원고 400매가량을 합쳐 엮었다.
이 책에는 그의 가족 이야기부터 기자 시절 그가 거리에서 써내려간 글들, 최근에 도시를 견디지 못하고 동해와 서해의 섬에 각각 들어가 새로운 언어를 기다리며 써내려간 글에 이르기까지, 김훈의 어제와 오늘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여전히 원고지에 육필로 글을 쓰고, 자가용에 몸을 싣는 대신 자전거를 타고 두 발로 바퀴를 굴려 세상을 나아가는 그가 기록한 세상과 내면의 지난한 풍경들. ‘밥벌이의 지겨움’ ‘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 길이 회자되는 김훈의 명문장들을 읽는 기쁨과 함께, 국가가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시대에 진영 논리에 휩싸여 악다구니를 벌이는 권력가들에게 그가 ‘슬프고 기막혀서’ 써내려간 글, 여전히 ‘먹고살기의 지옥을 헤매고 있’는 보통 사람들의 심금을 울리는 ‘김훈 산문의 정수’가 이 책에 있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소외된 노동으로 밥을 먹었다.”
아, 밥벌이의 지겨움!!
우리는 다들 끌어안고 울고 싶다.”
책의 표제글이 된 「라면을 끓이며」는 매 해 36억 개, 1인당 74.1개씩의 라면을 먹으며 살아가는 평균 한국인들의 삶에 관한 이야기이자, ‘거리에서 싸고, 간단히, 혼자서 끼니를 해결’해야 하는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이다. 세상에는 식사와 사교를 겸한 번듯한 자리에서 끼니를 고상하게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거리에서 밥벌이를 견디다가 허름한 분식집에서 홀로 창밖을 내다보면서, 혹은 모르는 사람과 마주앉아서 끼니를 해결하는 사람들도 있다. ‘목구멍을 쥐어뜯는’ 매운 국물들을 빠르게 들이켜고는 각자의 노동과 고난 속으로 다시 걸어들어가야만 하는 사람들이, 우리 주변엔 더 많다.
“있건 없건 간에 누구나 먹어야 하고, 한 번 먹어서 되는 일이 아니라 때가 되면 또다시, 기어이 먹어야 하므로” ‘한 달 벌어 한 달 살아가는’ 이들에게 라면은 뻔하고도 애잔한 음식이다.
나는 오랜 세월 동안 라면을 먹어왔다. 거리에서 싸고 간단히, 혼자서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음식이다. 그 맛들은 내 정서의 밑바닥에 인 박여 있다.
모르는 사람과 마주앉아서 김밥으로 점심을 먹는 일은 쓸쓸하다. 쓸쓸해하는 나의 존재가 내 앞에서 라면을 먹는 사내를 쓸쓸하게 해주었을 일을 생각하면 더욱 쓸쓸하다. 쓸쓸한 것이 김밥과 함께 목구멍을 넘어간다.
이 궁상맞음을 비웃어서는 안 된다. 당신들도 다 마찬가지다. 한 달 벌어 한 달 살아가는 사람이 거리에서 돈을 주고 사먹을 수 있는 음식은 뻔하다.
라면이나 짜장면은 장복을 하게 되면 인이 박인다. 그 안쓰러운 것들을 한동안 먹지 않으면, 배가 고프지 않아도 공연히 먹고 싶어진다. 인은 혓바닥이 아니라 정서 위에 찍힌 문양과도 같다. 세상은 짜장면처럼 어둡고 퀴퀴하거나, 라면처럼 부박浮薄하리라는 체념의 편안함이 마음의 깊은 곳을 쓰다듬는다.
이래저래 인은 골수염처럼 뼛속에 사무친다. _본문에서
김훈의 밥.돈.몸.길.글
이 책은 김훈의 지난날을 이룬 다섯 가지의 주제에 따라 5부로 구성되어 있다. 밥, 돈, 몸, 길, 글. 이 다섯 개의 주제는 그의 문체처럼 간명하고 정직하다. 그 무엇도 덧댈 필요도, 덜어낼 수도 없는 이 단독한 세계 안에 김훈이 있다.
그는 「손1」에서 “나는 손의 힘으로 살아가야 할 터인데 손은 자꾸만 남의 손을 잡으려 한다”라고 썼다.
이 책은 자꾸만 남의 손을 잡으려드는 안쓰러운 손으로 현실의 얽히고설킨 관계들을 겨우 버티어내는 그와, 홀로 집필실에서 연필 쥔 손에 힘을 준 채 글을 써내려가는 그가 느껍게 만나는 자리이다.
지난날 한 인터뷰에서 김훈은 이렇게 말했다.
“나는 글을 쓸 때 어떤 전압에 끌린다. 전압이 높은 문장이 좋다. 전압을 얻으려면 상당히 많은 축적이 필요하다. 또 그만큼 버려야 한다. 버리는 과정에서 전압이 발생한다. 안 버리면 전압이 생길 수 없다.”
이 책을 엮는 과정에서 그는 많은 글들을 버리고, 새로이 문장을 벼렸다. 그가 축적해온 수많은 산문들 가운데 꼭 남기고 싶은 일부만을 남기고, 소설보다 낮고 순한 말로 독자들에게 말을 걸고픈 그의 바람이 담긴 최근의 글들까지 빼곡하게 들어찬 이 책엔 독자를 단숨에 사로잡을 고압전류가 흐른다.
김훈 문장의 힘은 버리고 벼리는 데서 온다. 이 책은 김훈이 축적해온 삶 위에, 가차 없이 버리고 벼린 그의 문장의 힘이 더해져, ‘김훈 산문의 정수’를 읽는 희열과 감동을 온전히 느낄 수 있는 산문집이다.
본래 스스로 그러한 것들을 향하여 나는 오랫동안 중언부언하였다. 나는 쓸 수 없는 것들을 쓸 수 있는 것으로 잘못 알고 헛된 것들을 지껄였다. 간절해서 쓴 것들도 모두 시간에 쓸려서 바래고 말하고자 하는 것은 늘 말 밖에 있었다. 지극한 말은, 말의 굴레를 벗어난 곳에서 태어나는 것이리라.
이제, 함부로 내보낸 말과 글을 뉘우치는 일을 여생의 과업으로 삼되, 뉘우쳐도 돌이킬 수는 없으니 슬프고 누추하다. 나는 사물과 직접 마주 대하려 한다.
2015년 여름은 화탕지옥 속의 아비규환이었다. 덥고 또 더워서 나는 나무그늘에서 겨우 견디었다. 그 여름이 가고, 가을이 또 와서 숙살肅殺의 서늘함이 칼처럼 무섭다.
낮고 순한 말로 이 세상에 말을 걸고 싶은 소망으로 몇 편의 글을 겨우 추려서 이 책을 엮는데, 또하나의 장애물을 만드는 것이 아닌지를 나는 걱정한다.
_작가의 말
▣ 작가 소개
저 : 김훈
1948년 5월 경향신문 편집국장을 지낸 바 있는 언론인 김광주의 아들로 서울에서 태어났다. 돈암초등학교와 휘문중·고를 졸업하고 고려대에 입학하였으나 정외과와 영문과를 중퇴했다. 1973년부터 1989년 말까지 한국일보에서 기자생활을 했고, 「시사저널」 사회부장, 편집국장, 심의위원 이사, 국민일보 부국장 및 출판국장, 한국일보 편집위원, 한겨레신문 사회부 부국장급으로 재직하였으며 2004년 이래로 전업작가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휘문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산악부에 들어가서 등산을 많이 다녔다. 인왕산 치마바위에서 바위타기를 처음 배웠다 한다. 대학은 처음에는 고려대 정외과에 진학했다.(1966년). 2학년 때 우연히 바이런과 셸리를 읽은 것이 너무 좋아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정외과에 뜻이 없어서 학교를 그만두고 집에서 영시를 읽으며 영문과로 전과할 준비를 했다. 그래서 동기생들이 4학년 올라갈 때 그는 영문과 2학년생이 되었다. 영문과로 옮기고 나서 한 학년을 다니고 군대에 갔다. 제대하니까 여동생도 고대 영문과에 입학했다. 당시 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집안이 어려운 상태라 한 집안에 대학생 두 명이 있을 수는 없었다. 돈을 닥닥 긁어 보니까 한 사람 등록금이 겨우 나오길래 김훈은 "내가 보니 넌 대학을 안 다니면 인간이 못 될 것 같으니, 이 돈을 가지고 대학에 다녀라"라고 말하며 그 돈을 여동생에게 주고, 자신은 대학을 중퇴했다.
김훈 씨는 모 월간지의 인터뷰에서 문학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이렇게 피력하기도 했다.
"나는 문학이 인간을 구원하고, 문학이 인간의 영혼을 인도한다고 하는, 이런 개소리를 하는 놈은 다 죽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문학이 무슨 지순하고 지고한 가치가 있어 가지고 인간의 의식주 생활보다 높은 곳에 있어서 현실을 관리하고 지도한다는 소리를 믿을 수가 없어요. 나는 문학이란 걸 하찮은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이 세상에 문제가 참 많잖아요. 우선 나라를 지켜야죠, 국방! 또 밥을 먹어야 하고, 도시와 교통문제를 해결해야 하고, 애들 가르쳐야 하고, 집 없는 놈한테 집을 지어줘야 하고…. 또 이런 저런 공동체의 문제가 있잖아요. 이런 여러 문제 중에서 맨 하위에 있는 문제가 문학이라고 난 생각하는 겁니다. 문학뿐 아니라 인간의 모든 언어행위가 난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펜을 쥔 사람은 펜은 칼보다 강하다고 생각해 가지고 꼭대기에 있는 줄 착각하고 있는데, 이게 다 미친 사람들이지요. 이건 참 위태롭고 어리석은 생각이거든요. 사실 칼을 잡은 사람은 칼이 펜보다 강하다고 얘기를 안 하잖아요. 왜냐하면 사실이 칼이 더 강하니까 말할 필요가 없는 거지요. 그런데 펜 쥔 사람이 현실의 꼭대기에서 야단치고 호령할려고 하는데 이건 안 되죠. 문학은 뭐 초월적 존재로 인간을 구원한다, 이런 어리석은 언동을 하면 안 되죠. 문학이 현실 속에서의 자리가 어딘지를 알고, 문학하는 사람들이 정확하게 자기 자리에 가 있어야 하는 거죠" 그가 글을 쓰는 이유는 "나를 표현해 내기 위해서"이며 또 "우연하게도 내 생애의 훈련이 글 써먹게 돼 있으니까" 쓰는 것이라 한다. 그의 희망은 희망이 여러 가지 있는데 첫 번째가 음풍농월하는 것이라 한다. 또 음풍농월 하면서도 당대의 현실을 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김훈이 언어로 붙잡고자 하는 세상과 삶은 거창한 것이 아니다. 선상에서 밧줄을 잡아당기는 선원들이기도 하고, 자전거의 페달을 밟고 있는 자기 자신이기도 하고, 심지어는 민망하게도 혹은 선정주의의 혐의를 지울 수 없게도 미인의 기준이기도 하다. 그는 현미경처럼 자신과 바깥 사물들을 관찰하고 이를 언어로 어떻게든 풀어내려고 하며, 무엇보다도 어떤 행위를 하고 그 행위를 하면서 변화하는 자신의 몸과 느낌을 메타적으로 보고 언어로 표현해낸다.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인 남진우는 그를 일러 ''문장가라는 예스러운 명칭이 어색하지 않은 우리 세대의 몇 안되는 글쟁이 중의 하나''라고 평하고 있기도 하다.
1986년 『한국일보』 재직 당시 3년 동안 『한국일보』에 매주 연재한 것을 묶어 낸 『문학기행』(박래부 공저)으로 해박한 문학적 지식과 유려한 문체로 빼어난 여행 산문집이라는 평가를 받은 바 있으며 한국일보에 연재하였던 독서 산문집 『내가 읽은 책과 세상』(1989) 등의 저서가 있으며 1999∼2000년 전국의 산천을 자전거로 여행하며 쓴 에세이 『자전거여행』(2000)도 생태·지리·역사를 횡과 종으로 연결한 수작으로 평가 받았다.
그의 대표 저서로는 『칼의 노래』를 꼽을 수 있다. 2001년 동인 문학상 수상작이기도 한 이 책은 전략 전문가이자 순결한 영웅이었던 이순신 장군의 삶을 통해 이 시대 본받아야 할 리더십을 제시한다. 영웅 이순신의 드러나 있는 궤적을 다큐멘터리식으로 복원하여 현실성을 부여하되, 소설 특유의 상상력으로 이순신 1인칭 서술을 일관되게 유지하여 전투 전후의 심사, 혈육의 죽음, 여인과의 통정, 정치와 권력의 폭력성, 죽음에 대한 사유, 문(文)과 무(武)의 멀고 가까움, 밥과 몸에 대한 사유, 한 나라의 생사를 책임진 장군으로서의 고뇌 등을 드러내고 있다.
이외의 저서로 독서 에세이집 『선택과 옹호』, 여행 산문집 『풍경과 상처』,『자전거여행』,『원형의 섬 진도』, 시론집 『‘너는 어느쪽이냐’고 묻는 말에 대하여』,『밥벌이의 지겨움』, 장편소설 『빗살무늬 토기의 추억』,『아들아, 다시는 평발을 내밀지 마라』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1부 밥
라면을 끓이며 _11
광야를 달리는 말 _32
바다 _48
밥 1 _70
밥 2 _74
남태평양 _76
갯벌 _94
국경 _98
공 _122
목수 _127
줄 _131
목숨 1 _137
목숨 2 _142
2부 돈
세월호 _153
돈 1 _178
돈 2 _182
돈 3 _186
신호 _191
라파엘의 집 _195
서민 _197
러브 _201
불자동차 _205
소방관의 죽음 _215
3부 몸
바다의 기별 _223
여자 1 _232
여자 2 _238
여자 3 _243
여자 4 _247
여자 5 _251
여자 6 _256
여자 7 _262
손 1 _267
손 2 _278
발 1 _283
발 2 _289
평발 _293
4부 길
길 _299
바퀴 _303
고향 1 _307
고향 2 _317
고향 3 _327
쇠 _332
가마 _343
셋 _349
까치 _353
꽃 _357
잎 _361
수박 _365
11월 _370
바람 _374
5부 글
칠장사_ 임꺽정 379
연어_ 고형렬 391
1975년 2월 15일의 박경리 397
작가의 말 4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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