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별의 별 사람들, 조선판 ‘세상에 이런 일이?’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인물들은 여럿이지만, 그들이 ‘엔터테이너’로 뜨는 이유는 서로 다르다. 먼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인물부터 보자면, 홍봉상을 일례로 들 수 있겠다. 조선 후기 사대부와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상인들은 크고 작은 잔치를 매일 같이 벌였다. 이 잔치들이 ‘소문난 잔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파티의 ‘셀럽(celebrity)’이 필요했는데 바로 홍봉상이 잔치를 빛내줄 ‘셀럽’이었다. 장안에 소문난 잔치가 열리면 어김없이 홍봉상은 잔치가 훤히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잔치판의 기생과 악공, 손님들은 이를 알아보고 “저기 봐. 홍봉상 어르신이 나타났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사람들을 시켜 술과 음식을 보내면 홍봉상은 홀연히 사라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조선 후기 신분제에 균열이 생기고 제한된 관직에 오르지 못한 양반들이 늘자 생계마저 막막해졌다. 배운 기술도 선대로부터 받은 땅마저 없던 양반들은 본인의 신분을 숨기고 잡일이나 구걸을 해야만 식구들을 굶기지 않을 수 있었다. 홍봉상의 처지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몰락했지만 양반 체면에 초대받지 않은 자리에 나설 용기는 없고, 식구들을 굶길 수는 없는 처지에 따른 궁여지책이었을 것이다. 매번 잔치에 나타나곤 했던 홍봉상은 자연스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그 자체로 ‘미친 존재감’으로 유명세를 탔다.
이와는 반대로 노비 출신이지만 당대 한양에서 ‘과거 입시 전문 스타 강사’로 이름을 떨쳤던 정학수가 있다. 성균관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수복 신분인 정학수는 송동(지금의 명륜동 혜화동 일대)에 수십, 수백 명이 한꺼번에 수강(?)할 수 있는 서당을 차렸다. 김홍도가 그린 유명한 [서당]이 묘사하는 것과는 달리 흡사 대치동의 기업형 학원에 가까웠다. 노비가 어떻게 양반댁 자제들을 가르칠 수 있었을까? 이는 성균관 노비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반촌과 연관이 깊다. 성균관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넘쳐나는 유생을 감당하지 못하자 자연스레 유생들이 반촌에 머물렀다. 일종의 하숙촌인 셈이다. 다산 정약용도 반촌에 머물며 조선 최초로 천주교 세례를 받은 이승훈과 함께 천주교를 공부했다.
이렇듯 유생과 반인(반촌에 거주하는 사람)의 관계는 밀접했다. 정학수도 마찬가지로 어깨너머로 글공부를 시작해 높은 수준의 학문에 도달했던 것이다. 조선 후기 하층민들의 삶을 시로 기록한 조수삼의 《추재기이》를 보면, 정학수를 고매한 인격과 학풍을 지닌 인물로 ‘정 선생’이라 호칭하고 있다.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면 노비 출신 선생이라는 꼬리표 따위는 중요치 않았던 것이다.
책에는 흥미로운 인물도 소개하고 있다. 오입쟁이 양반을 놀려먹고 일약 스타가 된 조방꾼, 이중배의 이야기이다. 당시 기방 출입은 돈과 지위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엄숙한 사회에서 기방 출입을 하기 위해서는 중개자 ‘조방꾼’이 필요했는데 이중배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중배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를 짧게 소개하자면 이렇다.
절세미녀 기생이 등장하자 어느 한 양반이 이중배에게 거금 10냥을 주고 기방에 찾아갔으나 이미 아홉 명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치상황(?)은 지속되고 이중배는 난처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날이 새고 빈손으로 다들 돌아가야 했지만 양반 체면에 뭐라 말은 못하고 나머지 아홉 명만 욕할 뿐이었다. 그렇게 이중배는 거금 100냥을 하룻밤에 거둬들였다. 양반을 상대로 한 일종의 사기극이었는데 한양에 소문이 파다해 피해자(?)들이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 경강상인들의 횡포로 날로 치솟는 생필품 가격과 부패한 조정에 대한 불신이 높았던 분위기에 기방출입이나 하는 ‘높으신 분들’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에게는 얼마나 미웠을까? 이중배는 미녀와의 하룻밤에 10냥씩을 탕진하는 자들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를 대신해주고 명성을 얻은 셈이었다.
조선 시대 욕망의 대리자
이야기에 대한 욕망은 오랜 인류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했다. 조선도 마찬가지였으나 문맹률은 높았다. 이야기에 대한 욕망, 갈증을 대리해줄 존재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배경에 직업적으로 등장한 인물들이 있었다. 책을 대신 읽어주는 전기수, 길거리 재담꾼 등이 대표적이다.
18세기 재력을 축적한 중인과 평민이 증대하자 양반의 문화를 동경하면서도 한편으로 중인 계층 중심의 취미·유흥문화인 여항문화가 전성기를 맞이했다. 새로운 문화가 싹트자 특정한 공간과 길거리에 이야기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삼국지》, 《수호지》 같은 중국의 고전들과 《임경업전》 같은 영웅소설부터 《운영전》 같은 애정소설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전기수들과 길거리 재담꾼들의 입에 귀를 쫑긋 세웠다. 인기가 대단했던지 개혁군주로도 잘 알려진 정조마저 ‘인간의 본성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소설을 탄압하고 문체를 규정지으려고 했다. 그럼에도 인간의 욕망을 억누를 수 없었던지 심지어 음담패설로 명성을 떨친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의영이다.
의영은 잠을 쫓는 방패라는 뜻의 야담집 《어면순》의 음란한 이야기를 단순히 들려주지 않았다. 성애를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세, 소리를 곁들여 적나라하게 몸으로 보여줬다고 한다. 조선의 선비들이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인 《금병매》를 몰래 탐닉할 때 조선 후기 길거리에서는 욕망을 드러내고 더불어 즐겼던 것이다.
책속에서는 전통적인 예술가에 속하는 음악가, 화가, 시인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다만, 출신이 미천하고 우리가 익히 알지 못하는 ‘비주류’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8세기를 맞자 여항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며 음악도 궁궐과 양반집 담장을 넘어 거리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음악 명인들도 활력을 얻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성기이다. 김성기는 원래 상방궁인, 즉 활을 만드는 장인이었으나 거문고 연주도 탁월했다. 본격적으로 거문고 연주를 위해 당대 최고의 거문고 연주자인 왕세기를 찾아 갔으나 번번이 홀대받기 일쑤였다. 왕세기의 집 담 밖으로 새어나오는 연주소리를 따라 도둑과외를 받던 김성기는 결국 왕세기에게 들키고 말지만, 그의 실력을 인정받고 제자로 들어간다. 날개를 단 김성기는 본격적으로 거문고 연주자로 명성을 알리게 되는데 조선의 3대 시조집인 《청구영언》을 쓴 김천택과 함께 이백의 시에 등장하는 산의 이름을 따 ‘경정산가단’이라는 일종의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이 가단은 조선 후기 내로라하는 가객들을 모으고, 길러내며 명실공 조선 최고의 Top 밴드가 되었다.
이밖에도 책은 판소리 역사상 최초로 여성 명창을 길러내 신재효, 끝내 시대가 외면한 외로운 솔리스트 해금 명인 유우춘, 양반의 전유물인 시에 노래를 입혀 시조창의 대가로 대중들에 사랑을 받았지만 끝내 굶주려야 했던 김수장 등 조선 후기 음악가들의 드라마틱한 삶을 조명하고 있다.
미술가들도 환쟁이로 천대받기는 마찬가지였다.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과 같은 대가들의 한편에는 붓 하나에 의지해 그들만의 방식으로 몰락하는 조선을 표현하고자 했던 무명의 화가들이 존재했다. 반 고흐가 자신의 한쪽 귀를 자른 것처럼 최북은 한쪽 눈을 스스로 찔러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붓 대신 손가락으로 그리는 지두화의 대가였던 최북은 “풍속이 서로 다른 것처럼 중국과 조선의 풍광은 명백히 다르다. 조선 사람이라면 마땅히 우리 풍광을 그려야 한다.”라며 중국의 풍광을 따라 그리는 당대 화풍에 반발했다.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화가도 있다. 그가 바로 ‘압록강 동쪽에는 따를 자가 없다’라 할 정도로 유명세가 자자했던 허련이다. 당나라 화가 왕유에서 시작된 사대부들의 화풍이었던 남종화를 고집했던 허련은 세상과 불화하기 보다는 맞춰나가는 쪽을 선택했다. 그의 스승 추사 김정희의 영향이 컸던 탓이다. 김정희 역시 문인화라는 별칭을 가진 남종화를 즐겨 그렸다. 최북과는 달리 허련은 조선과 함께 몰락하던 남종화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화가로서 조선의 마지막 응시자였던 것이다.
세상과 불화한 조선의 잉여생활자들
조선 후기 지배층들은 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했다. 조선의 상류문화이자 핵심이었던 탓이 크다. 시인의 출신이 어떻든 간에 명시에 대한 사대부들의 태도는 선망과 시기, 질투가 혼재되어 있었다.
양근(지금의 양평) 지역의 나무꾼이었던 정봉은 그의 대표적인 시 [동호범주]가 김홍도의 그림 [도선도]의 화제(그림의 주제)가 될 정도로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역관 집안 출신의 정수동은 그의 천재성을 알아봐준 조선을 한없이 풍자하고 비꼬며 백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조선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 문인들을 놀라게 했던 천재 시인 이언진은 신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모든 관직을 마다하고 죽을 때까지 스스로 ‘종놈’이라 칭했던 시인 이단전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조선을 마음껏 조롱했다.
이렇듯 《조선의 엔터테이너》는 “천대와 멸시를 비틀고, 웃기고, 울리다”라는 부제처럼 당시 권위, 위선, 엄숙함에 도전했던 32인의 삶을 파고들고 있다. 당대에는 미천하고 홀대받았던 인물이었지만 하루하루 버티기 힘들던 다수 백성들의 삶에 위안과 위로를 선사했던 인물들이다. 한편으로는 격동하던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게 일탈을 꿈꾸게 했던 조선의 후미진 ‘잉여생활자들’이기도 했다.
▣ 작가 소개
저 : 정명섭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던 서른 즈음, 갑자기 커피에 매료되어 바리스타의 길을 걸었다. 그 후 다시 글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을지문덕과 온달처럼 섬광같이 나타났다 사라진 인물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역사가 들려주는 잔혹하고 은밀한 뒷얘기들을 사랑한다. 2006년 을지문덕을 주인공으로 하는 역사추리소설『적패』1,2를 발표했다. 그리고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발간된 한국 추리스릴러 단편선 시리즈에 고구려를 배경으로 하는 단편 추리소설 시리즈인 『불의 살인』『빛의 살인』『혈의 살인』을 수록했다. 2009년에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 ‘오늘의 문학’ 코너에 단편『바람의 살인』을 발표했다. 2011년에는 종군기자 출신인 태상호 작가와 함께 밀리터리 스릴러『케이든 선』을 공동으로 집필했으며, 포털 사이트 다음에 SF 장편소설『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를 연재했다. 이외 『조선 백성 실록 』,『조선의 명탐정들』등이 있다. 파주 출판도시에 있는 카페 인포떼끄에서 9년 동안 바리스타로 일하다 현재는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한국미스터리작가모임에서 활동 중이다.
▣ 주요 목차
들어가는 글
1장 조선판 ‘세상에 이런 일이?’
못생겨서 죄송한 조선의 이주일, 달문
기부천사, 조석중
미친 존재감 조선의 셀럽, 홍봉상
열네 살 소녀의 전국일주, 김금원
귀신을 씹어 먹으리라, 엄 도인
줄을 서시오 침술의 달인, 백광현
과거 입시 전문 스타 강사, 정학수
벙어리 기둥서방, 최가
오입쟁이 양반을 놀려먹다, 이중배
조선의 워터 소믈리에, 수선
배짱 좋은 서강의 착한 주먹, 김오흥
민원 해결사 하급관원, 장오복
2장 구라꾼들, 이야기로 사로잡다
온몸으로 책 읽어주는 남자, 이업복
길거리 재담꾼의 제왕, 김옹
이는 없지만 말빨은 최고라오, 김중진
책을 사고파는 뱀파이어, 조신선
19금 이야기의 일인자, 의영
성대모사의 달인, 뱁새와 황새
3장 딴따라들, 나의 길을 가련다
조선의 Top밴드를 결성하다, 김성기
외로운 솔리스트 해금 명인, 유우춘
나이 일흔의 가객, 김수장
여성 명창을 길러내다, 신재효
4장 시객, 천대와 멸시를 조롱하다
천재여서 슬프다, 이언진
배를 만들고 시를 짓고, 백대붕
주막의 일꾼에서 ‘국민 시인’으로, 왕태
김홍도가 사랑한 나무꾼 시인, 정봉
세상과 불화한 삐딱이, 정수동
나는 종놈일 뿐이라오, 이단전
5장 환쟁이, 붓끝으로 세상을 응시하다
조선의 반 고흐, 최북
손가락으로 세상을 그리다, 장송죽
혼돈의 시대를 응시하다, 장승업
몰락하는 조선의 마지막 붓, 허련
참고문헌
별의 별 사람들, 조선판 ‘세상에 이런 일이?’
이 책에서 소개하고 있는 인물들은 여럿이지만, 그들이 ‘엔터테이너’로 뜨는 이유는 서로 다르다. 먼저 황당하기 짝이 없는 인물부터 보자면, 홍봉상을 일례로 들 수 있겠다. 조선 후기 사대부와 상업을 통해 부를 축적한 상인들은 크고 작은 잔치를 매일 같이 벌였다. 이 잔치들이 ‘소문난 잔치’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지금처럼 파티의 ‘셀럽(celebrity)’이 필요했는데 바로 홍봉상이 잔치를 빛내줄 ‘셀럽’이었다. 장안에 소문난 잔치가 열리면 어김없이 홍봉상은 잔치가 훤히 보이는 곳에 자리를 잡았다. 잔치판의 기생과 악공, 손님들은 이를 알아보고 “저기 봐. 홍봉상 어르신이 나타났다!”라고 외쳤다. 그리고 사람들을 시켜 술과 음식을 보내면 홍봉상은 홀연히 사라졌다.
왜 이런 일이 벌어졌을까? 조선 후기 신분제에 균열이 생기고 제한된 관직에 오르지 못한 양반들이 늘자 생계마저 막막해졌다. 배운 기술도 선대로부터 받은 땅마저 없던 양반들은 본인의 신분을 숨기고 잡일이나 구걸을 해야만 식구들을 굶기지 않을 수 있었다. 홍봉상의 처지도 크게 다를 바 없었다. 몰락했지만 양반 체면에 초대받지 않은 자리에 나설 용기는 없고, 식구들을 굶길 수는 없는 처지에 따른 궁여지책이었을 것이다. 매번 잔치에 나타나곤 했던 홍봉상은 자연스레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며 그 자체로 ‘미친 존재감’으로 유명세를 탔다.
이와는 반대로 노비 출신이지만 당대 한양에서 ‘과거 입시 전문 스타 강사’로 이름을 떨쳤던 정학수가 있다. 성균관에서 허드렛일을 하는 수복 신분인 정학수는 송동(지금의 명륜동 혜화동 일대)에 수십, 수백 명이 한꺼번에 수강(?)할 수 있는 서당을 차렸다. 김홍도가 그린 유명한 [서당]이 묘사하는 것과는 달리 흡사 대치동의 기업형 학원에 가까웠다. 노비가 어떻게 양반댁 자제들을 가르칠 수 있었을까? 이는 성균관 노비들이 집단으로 거주하던 반촌과 연관이 깊다. 성균관 기숙사인 동재와 서재가 넘쳐나는 유생을 감당하지 못하자 자연스레 유생들이 반촌에 머물렀다. 일종의 하숙촌인 셈이다. 다산 정약용도 반촌에 머물며 조선 최초로 천주교 세례를 받은 이승훈과 함께 천주교를 공부했다.
이렇듯 유생과 반인(반촌에 거주하는 사람)의 관계는 밀접했다. 정학수도 마찬가지로 어깨너머로 글공부를 시작해 높은 수준의 학문에 도달했던 것이다. 조선 후기 하층민들의 삶을 시로 기록한 조수삼의 《추재기이》를 보면, 정학수를 고매한 인격과 학풍을 지닌 인물로 ‘정 선생’이라 호칭하고 있다. 자식 교육을 위해서라면 노비 출신 선생이라는 꼬리표 따위는 중요치 않았던 것이다.
책에는 흥미로운 인물도 소개하고 있다. 오입쟁이 양반을 놀려먹고 일약 스타가 된 조방꾼, 이중배의 이야기이다. 당시 기방 출입은 돈과 지위만 있다고 되는 것이 아니었다. 엄숙한 사회에서 기방 출입을 하기 위해서는 중개자 ‘조방꾼’이 필요했는데 이중배가 대표적인 인물이었다. 이중배에 얽힌 흥미로운 일화를 짧게 소개하자면 이렇다.
절세미녀 기생이 등장하자 어느 한 양반이 이중배에게 거금 10냥을 주고 기방에 찾아갔으나 이미 아홉 명이 와서 기다리고 있었다. 대치상황(?)은 지속되고 이중배는 난처한 표정만 지을 뿐이었다. 날이 새고 빈손으로 다들 돌아가야 했지만 양반 체면에 뭐라 말은 못하고 나머지 아홉 명만 욕할 뿐이었다. 그렇게 이중배는 거금 100냥을 하룻밤에 거둬들였다. 양반을 상대로 한 일종의 사기극이었는데 한양에 소문이 파다해 피해자(?)들이 나설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당시 경강상인들의 횡포로 날로 치솟는 생필품 가격과 부패한 조정에 대한 불신이 높았던 분위기에 기방출입이나 하는 ‘높으신 분들’이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백성들에게는 얼마나 미웠을까? 이중배는 미녀와의 하룻밤에 10냥씩을 탕진하는 자들에 대한 백성들의 분노를 대신해주고 명성을 얻은 셈이었다.
조선 시대 욕망의 대리자
이야기에 대한 욕망은 오랜 인류의 역사와 그 궤를 같이 했다. 조선도 마찬가지였으나 문맹률은 높았다. 이야기에 대한 욕망, 갈증을 대리해줄 존재가 필요하게 되었다. 이런 배경에 직업적으로 등장한 인물들이 있었다. 책을 대신 읽어주는 전기수, 길거리 재담꾼 등이 대표적이다.
18세기 재력을 축적한 중인과 평민이 증대하자 양반의 문화를 동경하면서도 한편으로 중인 계층 중심의 취미·유흥문화인 여항문화가 전성기를 맞이했다. 새로운 문화가 싹트자 특정한 공간과 길거리에 이야기가 넘쳐나기 시작했다.
《삼국지》, 《수호지》 같은 중국의 고전들과 《임경업전》 같은 영웅소설부터 《운영전》 같은 애정소설까지 다양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전기수들과 길거리 재담꾼들의 입에 귀를 쫑긋 세웠다. 인기가 대단했던지 개혁군주로도 잘 알려진 정조마저 ‘인간의 본성을 자극한다’는 이유로 소설을 탄압하고 문체를 규정지으려고 했다. 그럼에도 인간의 욕망을 억누를 수 없었던지 심지어 음담패설로 명성을 떨친 인물이 있었는데 그가 바로 의영이다.
의영은 잠을 쫓는 방패라는 뜻의 야담집 《어면순》의 음란한 이야기를 단순히 들려주지 않았다. 성애를 묘사하는데 그치지 않고 자세, 소리를 곁들여 적나라하게 몸으로 보여줬다고 한다. 조선의 선비들이 중국 4대 기서 중 하나인 《금병매》를 몰래 탐닉할 때 조선 후기 길거리에서는 욕망을 드러내고 더불어 즐겼던 것이다.
책속에서는 전통적인 예술가에 속하는 음악가, 화가, 시인들도 함께 소개하고 있다. 다만, 출신이 미천하고 우리가 익히 알지 못하는 ‘비주류’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8세기를 맞자 여항문화가 꽃을 피우기 시작하며 음악도 궁궐과 양반집 담장을 넘어 거리로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더불어 음악 명인들도 활력을 얻기 시작했다. 대표적인 인물이 김성기이다. 김성기는 원래 상방궁인, 즉 활을 만드는 장인이었으나 거문고 연주도 탁월했다. 본격적으로 거문고 연주를 위해 당대 최고의 거문고 연주자인 왕세기를 찾아 갔으나 번번이 홀대받기 일쑤였다. 왕세기의 집 담 밖으로 새어나오는 연주소리를 따라 도둑과외를 받던 김성기는 결국 왕세기에게 들키고 말지만, 그의 실력을 인정받고 제자로 들어간다. 날개를 단 김성기는 본격적으로 거문고 연주자로 명성을 알리게 되는데 조선의 3대 시조집인 《청구영언》을 쓴 김천택과 함께 이백의 시에 등장하는 산의 이름을 따 ‘경정산가단’이라는 일종의 밴드를 결성하게 된다. 이 가단은 조선 후기 내로라하는 가객들을 모으고, 길러내며 명실공 조선 최고의 Top 밴드가 되었다.
이밖에도 책은 판소리 역사상 최초로 여성 명창을 길러내 신재효, 끝내 시대가 외면한 외로운 솔리스트 해금 명인 유우춘, 양반의 전유물인 시에 노래를 입혀 시조창의 대가로 대중들에 사랑을 받았지만 끝내 굶주려야 했던 김수장 등 조선 후기 음악가들의 드라마틱한 삶을 조명하고 있다.
미술가들도 환쟁이로 천대받기는 마찬가지였다. 김홍도, 신윤복, 김득신과 같은 대가들의 한편에는 붓 하나에 의지해 그들만의 방식으로 몰락하는 조선을 표현하고자 했던 무명의 화가들이 존재했다. 반 고흐가 자신의 한쪽 귀를 자른 것처럼 최북은 한쪽 눈을 스스로 찔러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했다. 붓 대신 손가락으로 그리는 지두화의 대가였던 최북은 “풍속이 서로 다른 것처럼 중국과 조선의 풍광은 명백히 다르다. 조선 사람이라면 마땅히 우리 풍광을 그려야 한다.”라며 중국의 풍광을 따라 그리는 당대 화풍에 반발했다.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던 화가도 있다. 그가 바로 ‘압록강 동쪽에는 따를 자가 없다’라 할 정도로 유명세가 자자했던 허련이다. 당나라 화가 왕유에서 시작된 사대부들의 화풍이었던 남종화를 고집했던 허련은 세상과 불화하기 보다는 맞춰나가는 쪽을 선택했다. 그의 스승 추사 김정희의 영향이 컸던 탓이다. 김정희 역시 문인화라는 별칭을 가진 남종화를 즐겨 그렸다. 최북과는 달리 허련은 조선과 함께 몰락하던 남종화에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화가로서 조선의 마지막 응시자였던 것이다.
세상과 불화한 조선의 잉여생활자들
조선 후기 지배층들은 시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관대했다. 조선의 상류문화이자 핵심이었던 탓이 크다. 시인의 출신이 어떻든 간에 명시에 대한 사대부들의 태도는 선망과 시기, 질투가 혼재되어 있었다.
양근(지금의 양평) 지역의 나무꾼이었던 정봉은 그의 대표적인 시 [동호범주]가 김홍도의 그림 [도선도]의 화제(그림의 주제)가 될 정도로 선비들의 사랑을 받았지만, 역관 집안 출신의 정수동은 그의 천재성을 알아봐준 조선을 한없이 풍자하고 비꼬며 백성들의 열렬한 지지를 받았다. 조선통신사의 일원으로 일본 문인들을 놀라게 했던 천재 시인 이언진은 신분의 한계를 벗어나지 못했지만, 모든 관직을 마다하고 죽을 때까지 스스로 ‘종놈’이라 칭했던 시인 이단전은 자유로운 영혼으로 조선을 마음껏 조롱했다.
이렇듯 《조선의 엔터테이너》는 “천대와 멸시를 비틀고, 웃기고, 울리다”라는 부제처럼 당시 권위, 위선, 엄숙함에 도전했던 32인의 삶을 파고들고 있다. 당대에는 미천하고 홀대받았던 인물이었지만 하루하루 버티기 힘들던 다수 백성들의 삶에 위안과 위로를 선사했던 인물들이다. 한편으로는 격동하던 조선 후기 지식인들에게 일탈을 꿈꾸게 했던 조선의 후미진 ‘잉여생활자들’이기도 했다.
▣ 작가 소개
저 : 정명섭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평범한 직장인으로 살아가던 서른 즈음, 갑자기 커피에 매료되어 바리스타의 길을 걸었다. 그 후 다시 글의 바다에 빠져들었다. 을지문덕과 온달처럼 섬광같이 나타났다 사라진 인물들에게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으며 역사가 들려주는 잔혹하고 은밀한 뒷얘기들을 사랑한다. 2006년 을지문덕을 주인공으로 하는 역사추리소설『적패』1,2를 발표했다. 그리고 2008년부터 2010년까지 발간된 한국 추리스릴러 단편선 시리즈에 고구려를 배경으로 하는 단편 추리소설 시리즈인 『불의 살인』『빛의 살인』『혈의 살인』을 수록했다. 2009년에는 포털 사이트 네이버 ‘오늘의 문학’ 코너에 단편『바람의 살인』을 발표했다. 2011년에는 종군기자 출신인 태상호 작가와 함께 밀리터리 스릴러『케이든 선』을 공동으로 집필했으며, 포털 사이트 다음에 SF 장편소설『그들이 세상을 지배할 때』를 연재했다. 이외 『조선 백성 실록 』,『조선의 명탐정들』등이 있다. 파주 출판도시에 있는 카페 인포떼끄에서 9년 동안 바리스타로 일하다 현재는 글쓰기에 전념하고 있다. 한국미스터리작가모임에서 활동 중이다.
▣ 주요 목차
들어가는 글
1장 조선판 ‘세상에 이런 일이?’
못생겨서 죄송한 조선의 이주일, 달문
기부천사, 조석중
미친 존재감 조선의 셀럽, 홍봉상
열네 살 소녀의 전국일주, 김금원
귀신을 씹어 먹으리라, 엄 도인
줄을 서시오 침술의 달인, 백광현
과거 입시 전문 스타 강사, 정학수
벙어리 기둥서방, 최가
오입쟁이 양반을 놀려먹다, 이중배
조선의 워터 소믈리에, 수선
배짱 좋은 서강의 착한 주먹, 김오흥
민원 해결사 하급관원, 장오복
2장 구라꾼들, 이야기로 사로잡다
온몸으로 책 읽어주는 남자, 이업복
길거리 재담꾼의 제왕, 김옹
이는 없지만 말빨은 최고라오, 김중진
책을 사고파는 뱀파이어, 조신선
19금 이야기의 일인자, 의영
성대모사의 달인, 뱁새와 황새
3장 딴따라들, 나의 길을 가련다
조선의 Top밴드를 결성하다, 김성기
외로운 솔리스트 해금 명인, 유우춘
나이 일흔의 가객, 김수장
여성 명창을 길러내다, 신재효
4장 시객, 천대와 멸시를 조롱하다
천재여서 슬프다, 이언진
배를 만들고 시를 짓고, 백대붕
주막의 일꾼에서 ‘국민 시인’으로, 왕태
김홍도가 사랑한 나무꾼 시인, 정봉
세상과 불화한 삐딱이, 정수동
나는 종놈일 뿐이라오, 이단전
5장 환쟁이, 붓끝으로 세상을 응시하다
조선의 반 고흐, 최북
손가락으로 세상을 그리다, 장송죽
혼돈의 시대를 응시하다, 장승업
몰락하는 조선의 마지막 붓, 허련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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