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1. 전 세계 각양각색의 차를 만나다
- 음식의 지구사로 읽는 차에 관한 모든 것
차는 세계 어디에서든 맛볼 수 있는 음료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차는 어렵다. 명칭도, 종류도, 제품도, 심지어 맛과 향조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래서 차를 변화무쌍한 카멜레온에 비유하기도 한다. 진정한 차는 상록관목인 차나무에서 나는 잎을 뜨거운 물에 우려낸 것을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허브나 곡물, 열매를 넣고 끓인 것도 차라고 부른다. 차의 지구사를 한눈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모습을 지닌 차의 다변성 때문일 것이다.
《차의 지구사》는 이렇게 여러 모습을 지닌 차가 어디에서 탄생해 세계 각지로 어떻게 퍼져나갔는지, 그리고 새로운 문화를 만나 어떻게 각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대표하는 음료로 자리를 잡았는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몰론 시중에 차의 역사 또는 차의 세계사를 소개한 책은 많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 서유럽과 미국에 한정된 이야기에 약간의 허기를 느끼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 책 《차의 지구사》는 그런 허기를 달래주는 책이다.
이 책은 중국과 서유럽은 물론 한국, 일본, 타이완, 베트남, 미얀마, 티베트, 러시아, 아프가니스탄, 모로코 등 다양한 아시아 지역의 차에 대해 다룬다. 또 차 생산지로 유명한 인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의 차의 역사도 들려준다. 당연히 저자의 고향인 영국의 차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상세하지만,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의 다른 지역과 캐나다, 미국, 심지어 오스트레일리아의 차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제목처럼 차의 ‘지구사(Global History)’인 셈이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에서 긴 시간을 지낸 저자의 경험 덕분에 서남아시아 지역의 차 이야기는 어느 책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내용을 다루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중국의 전설 속 인물인 신농씨(神農氏)의 발견에서 시작되어, 차마고도와 티로드를 따라 더 먼 지역으로 여행을 하고, 대형범선에 올라 대서양을 건너 서양의 문화를 만나 새로운 변신을 한 차의 역사 자체도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비밀 첩보 단체의 아지트가 된 중국의 어느 찻집, 사무라이의 병을 낫게 한 ‘만병통치약’ 녹차, 영국의 우아한 사교계를 대표한 애프터눈티와 티댄스, 미국 독립을 향한 혁명의 상징이 된 ‘보스턴 차 사건’, 오스트레일리아 아웃백(오지)에서 마시는 깡통차(빌리티), 기찻길에서 차를 파는 인도의 차이왈라 이야기 등 전 세계 각양각색 차 이야기는 독자들을 차의 매력 속에 빠뜨릴 것이다.
이 책은 ‘식탁 위의 글로벌 히스토리’ 시리즈의 다른 책과는 달리 한국의 차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어 반갑지만, 그 내용은 매우 간략하다. 대신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가 쓴 한국어판 특집글 〈한반도 사람들은 왜 차를 마시지 않았을까?〉를 통해 자세한 한국 차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고려 이후에 한반도에서 왜 차문화가 거의 사라지게 되었는지, 찻잎 대신 다른 재료를 이용한 ‘유사차(類似茶)’가 어떻게 유행했는지, 해방 이후 어떻게 차문화가 다시 우리 사회에 확산될 수 있었는지 한반도 차의 역사를 다룬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부록에서 찾을 수 있다. 〈다양한 차 요리법〉을 통해 차를 주재료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음료를 소개한다. 또한 〈용어〉는 세계의 다양한 차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음으로써 차를 좋아하고 차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지식을 넓혀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2. 고대 대상로를 통해 퍼져나간 동양의 신비로운 음료
- 이 책의 주요 내용 1
차에 관한 수많은 전설이 존재하는 만큼 차는 성스럽고 신비로운 음료였다. 최초로 차를 “잎을 끓여 만든 음료”라고 정의한 역사적 기록은 진(晉, 265~420) 시대의 것이다. 중국 최고의 번성기였던 당 시대에 상류층, 학자, 승려들 사이에서 차를 즐겨 마시기 시작했다. 차의 고전이라 불리는 육우의 《다경》도 이 시대에 차 무역상들의 의뢰로 쓰였다. 송까지 이어진 차의 유행은 점차 중산층과 노동 계급에까지 확산되었다. 대중 찻집이 생기면서 찻집은 사교?문화?예술을 위한 장소가 되었다.
당 시대에 교역이 번창하면서 차는 고대 대상로를 통해 수출되었다. ‘차마고도’는 윈난과 쓰촨, 티베트, 미얀마까지 이어졌고, 북쪽으로는 ‘실크로드’가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지중해까지 이어졌다. 이후 시베리아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티로드’도 열렸다. 티로드를 통해 러시아에 전해진 중국의 차는 빠르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차 마시는 관습을 발전시켰다. 눈여겨 볼 것은 ‘자체 보일러’라는 뜻을 가진 ‘사모바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차와 사모바르는 터키로 전해지면서 차문화가 지중해 연안과 유럽 대륙으로 전파되는 다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중국 찻집의 전통은 지역마다 다양한 기후와 지형, 문화를 반영해 특색 있게 계속 이어졌다. …… 1940년대까지도 찻집은 쓰촨 주민 사회생활의 중심이었다. 어떤 찻집은 찻잔 배열을 정교한 비밀 코드로 사용했던 쓰촨의 비밀 조직원들로 붐볐다. 또 어떤 찻집은 이야기나 연극 공연 등으로 특화되어 있었고 장기를 두는 곳도 있었다. …… 문화대혁명 동안 찻집은 ‘체제 전복적’이라고 판단되어 대부분 한꺼번에 문을 닫았다. 그리고 1970년대 말부터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2. 차의 고향, 중국」(51~56쪽) 중에서
실크로드 주변의 많은 지역은 차를 마시는 관습과 전통을 공유한다. 차를 상당히 많이 마시는데, 차는 접대를 하거나 사업을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 지역에는 세 잔의 차를 마시는 전통이 있다. 왜 세 잔일까? 여기에는 다양한 해석이 있다. …… “이곳에서 우리는 사업을 하기 위해 세 잔의 차를 마신다. 첫 번째 잔을 마실 때 당신은 낯선 사람이지만, 두 번째 잔은 친구가 되며, 세 번째 잔은 가족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심지어 죽는 일이라도 말이다.” ---「4. 차의 길이 열리다」(100쪽) 중에서
모로코인은 차를 준비하는 일을 하나의 기술로 여겼고 절차에 따라 차를 우려냈다. 보통 집주인이 차를 준비하고 내는 일을 담당한다. 많은 장식이 새겨진 모로코 전통 은주전자로 차를 만든다. 먼저 주전자에 찻잎을 넣고 사탕수수로 만든 설탕 조각을 한 줌의 민트와 함께 넣은 다음 끓는 물을 부어 몇 분 동안 우려낸다. 주전자를 굉장히 높이 들고 작은 장식 잔에 차를 따르는 기술은 차에 거품을 내기 위한 것이다. …… 민트로 풍미를 더한 차는 더운 기후에서 상쾌함을 주기 때문에 이라크와 페르시아만 연안 인접국을 포함한 아랍 국가들에서 인기가 있다. 아랍식 연회에서 차는 종종 식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소화를 돕는 역할을 한다.
---「4. 차의 길이 열리다」(118~119쪽) 중에서
3. 서양으로 간 차의 화려한 변신
- 이 책의 주요 내용 2
서양으로 전해진 동양의 음료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17세기에 차가 처음 유럽에 전해졌을 때 차의 씁쓸한 맛과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특성 때문에 약용 음료로 여겨졌다. 1610년 네덜란드인들이 중국과 일본에서 차를 처음 가져왔다. 차 값뿐 아니라 차를 마시기 위한 다기도 비쌌던 탓에 차는 상류층에서만 즐길 수 있었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독일, 프랑스, 영국 등 다른 나라 시장에도 차를 내놓았고, 많은 유럽의 왕들은 자신이 소유한 공원과 정원에 찻집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영국에는 1645년경에 처음 차가 전해졌다. 찰스 2세와 결혼한 포르투갈 공주 캐서린은 차를 매우 좋아해 사람들에게 차를 대접했고 차의 인기는 금세 퍼져나갔다. 19세기 초 산업혁명으로 인해 저녁을 먹는 시간이 늦어지면서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서 공복을 달래기 위해 늦은 오후 시간에 차와 함께 빵을 곁들여 먹는 애프터눈티 문화가 생겨났다. 또 탱고의 유행은 다과회와 무도회를 동시에 즐기는 ‘티댄스’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미국에서는 보통 차보다 커피를 자주 마시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775년 영국 정부는 식민지 주민들이 즐겨 마시던 차에 세금을 부과했다. 과도한 세금에 식민지 주민들은 반발했고, 이것은 미국 독립전쟁의 발단이 된 ‘보스턴 차 사건’으로 이어졌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도 애프터눈티 문화가 확산되었고, 금주법으로 알코올음료의 판매가 금지되자 술 대신 차를 마시는 티룸이 유행했다.
상인들과 선장들은 제철에 생산된 새로운 차를 누구보다 먼저 서양으로 가져오기 위해 서로 경쟁했다. 이런 이유로 ‘경주용차’라고 할 만한 새롭고 빠른 항해선인 쾌속 범선 ‘클리퍼(clipper)’가 개발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중국을 오가는 범선 ‘차이나 글리퍼’가 가장 대표적이었는데, 중국에서 실어오는 물품 가운데 가장 중요한 차를 옮겨 나른다고 하여 티 글리퍼(tea clipper, 차 범선)라고도 불렀다. …… 미국과 영국 무역상 사이의 경쟁은 1860년대의 쾌속 범선 경주로 이어졌다. 선착장에 가장 먼저 화물을 내려놓는 배가 우승했다.
---「5. 서양으로 간 차의 변신」(136~137쪽) 중에서
차의 비싼 가격은 불순물을 넣은 차를 많이 만들어냈다. 당시 흔히 ‘차’라고 팔리던 것은 진짜 차라고 할 수 없었다. 이는 최상품 중국 녹차와 비슷해질 때까지 딱총나무 잎이나 서양물푸레나무 잎, 가장 흔하게는 야생자두나무 잎을 끓이고 굽고 말고 말려서 색을 입힌 것이었다. 동록을 넣어 끓인 뒤 말려서 ‘네덜란드 핑크(Dutch pink)’라는 독성 혼합물로 된 염료를 입힌다. 그러고는 다시 더 많은 동록을 넣어 독약이나 다름없는 ‘차’를 만들었다.
---「5. 서양으로 간 차의 변신」(141쪽) 중에서
차는 혁명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식민지 주민의 입장에서는 차에 부과한 세금을 내면 영국 의회의 권한을 인정하게 되는 셈이었다. 영국 정부는 식민지 주민들이 한 잔의 차가 주는 기쁨을 저버리기보다는 세금을 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 차 소비량은 곤두박질쳤고 애국자라 여겨지던 식민지 주민들은 좁쌀풀(야생화) 잎이나 산딸기 잎, 캐모마일이나 세이지로 만든‘자유의 차(liberty tea)’를 마셨다. 일부는 커피를 마시는 쪽을 택했다.
---「5. 서양으로 간 차의 변신」(161~162쪽) 중에서
4. 한반도 사람들은 왜 차를 마시지 않았을까?
- 이 책의 주요 내용 3
이 책의 한국어판 특집글 〈한반도 사람들은 왜 차를 마시지 않았을까?〉에서는 차가 한반도에 전래되고 확산된 역사를 살펴봄과 더불어 한반도에 차 문화가 정착하지 못한 이유를 밝힌다.
이 글은 1880년경의 윌리엄 그리피스가 던진 “왜 조선인은 차를 마시지 않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시 세계 양대 차 생산국이었던 중국과 일본 사이에 살고 있는 조선 사람들이 차를 마시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본 것이다. 차는 신라 성덕여왕 때 처음 한반도에 알려져, 흥덕왕 때부터 재배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품질도 매우 낮고, 생산량이 적어 사람들이 차를 즐기기에는 부족했다.
차는 불교와 연관이 깊었기 때문에 불교를 중시한 고려시대에는 왕이 주관하는 행사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의례 음료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일부 상류층에서 차가 유행했지만, 찻잎을 구하기 쉽지 않아 조선 후기부터 찻잎을 넣지 않은 ‘유사차’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조선 중기 이후 차 마시는 일이 거의 사라진 한반도에서 ‘차’라는 이름만이 살아남아 ‘유사차’의 나라가 된 것이다.
식민지시기에는 재조 일본인 수가 늘어남에 따라 일본과 중국에서 차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또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차나무를 일본식으로 재배하는 일본인도 생겨나 한반도에서의 차 생산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본식 차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다화회 등 차를 마시는 행사가 열렸지만 이 역시 일부에 불과했다.
1980년에 들어 대기업에서 녹차를 상품으로 출시하는 등 한국에서도 차의 대중화가 시도되었고, 해외여행의 자율화로 새로운 음료에 대한 소비가 늘어나면서 차 소비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 한국사회에 불어 닥친 웰빙붐도 차에 대한 소비를 촉진했다. 하지만 차는 아직까지도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지는 못한 것 같다. 21세기 이후 세계가 하나의 마을처럼 소통하면서 전 세계의 다양한 차를 접할 기회가 훨씬 많아졌고, 세계 각지의 차 종류뿐 아니라 차문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거의 600년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한반도에서 그 존재가 미미했던 차가 되살아날 수 있을까? 윌리엄 그리피스가 던진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찻잎이 들어가지 않은 음료를 차라고 부르는 일은 조선에서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찻잎을 구할 수 없더라도 그를 대체할 ‘유사차’를 통해 차 문화를 향유하고자 했다. 화베이(華北)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국화차는 말린 국화꽃을 우린 차다. 찻잎이 들어가지 않는데도 이것을 차라고 부르는 이유는 차처럼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시기 때문이다. …… 한국의 인삼차도 사실 인삼탕이라 불러야 하지만, 한국인들은 인삼차라 부른다. 차나무를 거의 재배하지 않고, 조선 중기 이후 차 마시는 일이 거의 사라진 한반도에서 ‘차’라는 이름만이 살아남아 유사차의 나라가 되었다. 윌리엄 그리피스가 던진 “왜 조선인은 차를 마시지 않는가”에 대한 해답은 바로 이 ‘유사차’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집. 한반도 사람들은 왜 차를 마시지 않았을까?」(225~227쪽) 중에서
재조일본인이 한반도에 자생하는 차나무를 이용해 일본식 녹차를 만든 사례도 있다. 1909년 사금 사업을 하기 위해 전남 보성 문덕면으로 이주해온 오자키 이치조(尾崎一三)는 …… 야생 차밭을 빌려 일본식 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 오자키 이치조가 광주에서 생산한 차의 소비자는 주로 재조일본인들이었다. 그것도 일본인이 묵는 여관에서 차를 많이 사갔다. 이처럼 재조일본인이 늘어남에 따라 차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일본에서 차는 물론 근대적인 차 재배 방식이 조선에 들어왔고, 이에 따라 조선인 재배자도 늘어났다. 하지만 차를 마시는 조선 사람이 크게 늘지는 않았다. 여전히 차는 조선인들에게 생소한 음료였다.
---「특집. 한반도 사람들은 왜 차를 마시지 않았을까?」(231~232쪽) 중에서
녹차에 대한 인지도가 낮았던 1980년대 초중반에 태평양은 녹차의 대중화를 위해 방문판매뿐 아니라 여학교, 관공서, 백화점 등에서 강좌와 시음회를 열었다. …… 이러한 홍보 전략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국인 가운데 녹차를 마셔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에 녹차 판매는 눈에 띄게 늘어나지 않았다. 태평양은 1985년에 전국적인 행사로 ‘100만 명 설록차 무료 시음’ 판촉행사를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녹차를 처음 맛본 사람들은 대부분 익숙지 않은 맛에 얼굴을 찡그리기 일쑤였고, 심한 경우에는 “무슨 시래기 삶은 물을 돈 주고 사먹으라고 하느냐”며 화를 내거나 그 자리에서 뱉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특집. 한반도 사람들은 왜 차를 마시지 않았을까?」(235쪽) 중에서
▣ 작가 소개
저 : 헬렌 세이버리
음식 전문 저술가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소재 영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다 1980년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 후 음식을 중심으로 아프가니스탄 문화를 알리는 데 힘썼다. 지은 책으로는 《노쉐 잔: 아프가니스탄 음식과 요리Noshe Djan: Afghan Food and Cookery》, 《푸딩 책A Pudding Book》, 《소시지 책A Sausage Book》, 《빈달루로 가는 길: 커리 요리와 커리에 관한 책The Road to Vindaloo: Curry Cooks and Curry Books》(공저), 《강황: 대단한 향신료Turmeric: The Wonder Spice》(공저), 《요리의 기쁨Cook’s Delights》(공저) 등이 있다.
역 : 이지윤
미국 유타 대학교 영화과를 졸업하고 의료 및 제약 관련 홍보 대행사에서 근무하였다. 현재는 과학 문화 관련 기관에서 일하며 과학 교양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서로 『불면증과의 동침』, 『노벨상 수상자가 들려주는 미생물 이야기』이 있다.
감수 : 주영하
1962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사학과와 한양대학교 대학원 문화인류학과에서 공부했으며, 중국 중앙민족대학(中央民族大學) 대학원 민족학과에서 「중국 쓰촨성 량산 이족의 전통 칠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10월부터 1년 동안 일본 가고시마대학 인문학부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민속학 전공 교수로 있다.
민속학과 음식학을 주로 연구하며, 전근대와 근대의 사유와 생활이 혼재되어 있는 19세기와 20세기라는 시간 축에 관심이 많다. 아울러 1990년대 이후 한국·중국·일본의 음식 문화에 대해서 꾸준히 현지 조사를 수행하면서 동아시아의 음식 문화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 『김치, 한국인의 먹거리―김치의 문화인류학』(1994), 『한국의 시장―사라져가는 우리의 오일장을 찾아서』(공저, 1995, 2003), 『음식전쟁 문화전쟁』(2000), 『중국, 중국인, 중국음식』(2000),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2005) 『음식 인문학』『차폰, 잔폰, 짬뽕: 동아시아 음식 문화의 역사와 현재』,『식탁 위의 한국사』등이 있고 감수한 책으로는 『아이스크림의 지구사』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초대의 글 전 세계 각양각색의 차을 만나다
0 차의 세계로 들어가며
1 차란 무엇인가
2 차의 고향, 중국
3 동아시아로 퍼져나간 차문화―일본, 한국, 타이완
4 차의 길이 열리다―동남아시아, 중아앙시아, 지중해 연안
5 서양으로 간 차의 변신―유럽, 아메리카 대륙, 오스트레일리아
6 식민지와 차 문화의 발달―인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7 차의 오늘과 내일
특집 한국인은 왜 차를 마시지 않았을까?
다양한 차 요리법
용어
1. 전 세계 각양각색의 차를 만나다
- 음식의 지구사로 읽는 차에 관한 모든 것
차는 세계 어디에서든 맛볼 수 있는 음료 가운데 하나다. 하지만 차는 어렵다. 명칭도, 종류도, 제품도, 심지어 맛과 향조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다양하다. 그래서 차를 변화무쌍한 카멜레온에 비유하기도 한다. 진정한 차는 상록관목인 차나무에서 나는 잎을 뜨거운 물에 우려낸 것을 말하지만, 일반적으로 허브나 곡물, 열매를 넣고 끓인 것도 차라고 부른다. 차의 지구사를 한눈에 이해하기 어려운 것도 하나로 정의할 수 없는 다양한 모습을 지닌 차의 다변성 때문일 것이다.
《차의 지구사》는 이렇게 여러 모습을 지닌 차가 어디에서 탄생해 세계 각지로 어떻게 퍼져나갔는지, 그리고 새로운 문화를 만나 어떻게 각 지역의 문화적 정체성을 대표하는 음료로 자리를 잡았는지에 초점을 맞춰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몰론 시중에 차의 역사 또는 차의 세계사를 소개한 책은 많다. 하지만 중국과 일본, 서유럽과 미국에 한정된 이야기에 약간의 허기를 느끼는 독자들도 있을 것이다. 이 책 《차의 지구사》는 그런 허기를 달래주는 책이다.
이 책은 중국과 서유럽은 물론 한국, 일본, 타이완, 베트남, 미얀마, 티베트, 러시아, 아프가니스탄, 모로코 등 다양한 아시아 지역의 차에 대해 다룬다. 또 차 생산지로 유명한 인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의 차의 역사도 들려준다. 당연히 저자의 고향인 영국의 차에 대한 이야기가 가장 상세하지만, 프랑스를 포함한 유럽의 다른 지역과 캐나다, 미국, 심지어 오스트레일리아의 차 이야기도 빠뜨리지 않았다. 그야말로 제목처럼 차의 ‘지구사(Global History)’인 셈이다. 특히 아프가니스탄에서 긴 시간을 지낸 저자의 경험 덕분에 서남아시아 지역의 차 이야기는 어느 책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내용을 다루고 있어 매우 흥미롭다.
중국의 전설 속 인물인 신농씨(神農氏)의 발견에서 시작되어, 차마고도와 티로드를 따라 더 먼 지역으로 여행을 하고, 대형범선에 올라 대서양을 건너 서양의 문화를 만나 새로운 변신을 한 차의 역사 자체도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비밀 첩보 단체의 아지트가 된 중국의 어느 찻집, 사무라이의 병을 낫게 한 ‘만병통치약’ 녹차, 영국의 우아한 사교계를 대표한 애프터눈티와 티댄스, 미국 독립을 향한 혁명의 상징이 된 ‘보스턴 차 사건’, 오스트레일리아 아웃백(오지)에서 마시는 깡통차(빌리티), 기찻길에서 차를 파는 인도의 차이왈라 이야기 등 전 세계 각양각색 차 이야기는 독자들을 차의 매력 속에 빠뜨릴 것이다.
이 책은 ‘식탁 위의 글로벌 히스토리’ 시리즈의 다른 책과는 달리 한국의 차에 대해서도 다루고 있어 반갑지만, 그 내용은 매우 간략하다. 대신 음식인문학자 주영하 교수(한국학중앙연구원)가 쓴 한국어판 특집글 〈한반도 사람들은 왜 차를 마시지 않았을까?〉를 통해 자세한 한국 차의 역사를 알 수 있다. 이 글에서는 고려 이후에 한반도에서 왜 차문화가 거의 사라지게 되었는지, 찻잎 대신 다른 재료를 이용한 ‘유사차(類似茶)’가 어떻게 유행했는지, 해방 이후 어떻게 차문화가 다시 우리 사회에 확산될 수 있었는지 한반도 차의 역사를 다룬다.
이 책의 또 다른 재미는 부록에서 찾을 수 있다. 〈다양한 차 요리법〉을 통해 차를 주재료 만들 수 있는 다양한 음료를 소개한다. 또한 〈용어〉는 세계의 다양한 차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해놓음으로써 차를 좋아하고 차의 세계에 발을 들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지식을 넓혀주는 역할을 할 것이다.
2. 고대 대상로를 통해 퍼져나간 동양의 신비로운 음료
- 이 책의 주요 내용 1
차에 관한 수많은 전설이 존재하는 만큼 차는 성스럽고 신비로운 음료였다. 최초로 차를 “잎을 끓여 만든 음료”라고 정의한 역사적 기록은 진(晉, 265~420) 시대의 것이다. 중국 최고의 번성기였던 당 시대에 상류층, 학자, 승려들 사이에서 차를 즐겨 마시기 시작했다. 차의 고전이라 불리는 육우의 《다경》도 이 시대에 차 무역상들의 의뢰로 쓰였다. 송까지 이어진 차의 유행은 점차 중산층과 노동 계급에까지 확산되었다. 대중 찻집이 생기면서 찻집은 사교?문화?예술을 위한 장소가 되었다.
당 시대에 교역이 번창하면서 차는 고대 대상로를 통해 수출되었다. ‘차마고도’는 윈난과 쓰촨, 티베트, 미얀마까지 이어졌고, 북쪽으로는 ‘실크로드’가 중앙아시아, 서아시아, 지중해까지 이어졌다. 이후 시베리아를 통해 중국과 러시아를 연결하는 ‘티로드’도 열렸다. 티로드를 통해 러시아에 전해진 중국의 차는 빠르게 유행하기 시작했다. 러시아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차 마시는 관습을 발전시켰다. 눈여겨 볼 것은 ‘자체 보일러’라는 뜻을 가진 ‘사모바르’를 사용한다는 점이다. 러시아의 차와 사모바르는 터키로 전해지면서 차문화가 지중해 연안과 유럽 대륙으로 전파되는 다리 역할을 하기도 했다.
중국 찻집의 전통은 지역마다 다양한 기후와 지형, 문화를 반영해 특색 있게 계속 이어졌다. …… 1940년대까지도 찻집은 쓰촨 주민 사회생활의 중심이었다. 어떤 찻집은 찻잔 배열을 정교한 비밀 코드로 사용했던 쓰촨의 비밀 조직원들로 붐볐다. 또 어떤 찻집은 이야기나 연극 공연 등으로 특화되어 있었고 장기를 두는 곳도 있었다. …… 문화대혁명 동안 찻집은 ‘체제 전복적’이라고 판단되어 대부분 한꺼번에 문을 닫았다. 그리고 1970년대 말부터 다시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2. 차의 고향, 중국」(51~56쪽) 중에서
실크로드 주변의 많은 지역은 차를 마시는 관습과 전통을 공유한다. 차를 상당히 많이 마시는데, 차는 접대를 하거나 사업을 하는 데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들 지역에는 세 잔의 차를 마시는 전통이 있다. 왜 세 잔일까? 여기에는 다양한 해석이 있다. …… “이곳에서 우리는 사업을 하기 위해 세 잔의 차를 마신다. 첫 번째 잔을 마실 때 당신은 낯선 사람이지만, 두 번째 잔은 친구가 되며, 세 번째 잔은 가족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가족을 위해서라면 무슨 일이든 할 준비가 되어 있다. 심지어 죽는 일이라도 말이다.” ---「4. 차의 길이 열리다」(100쪽) 중에서
모로코인은 차를 준비하는 일을 하나의 기술로 여겼고 절차에 따라 차를 우려냈다. 보통 집주인이 차를 준비하고 내는 일을 담당한다. 많은 장식이 새겨진 모로코 전통 은주전자로 차를 만든다. 먼저 주전자에 찻잎을 넣고 사탕수수로 만든 설탕 조각을 한 줌의 민트와 함께 넣은 다음 끓는 물을 부어 몇 분 동안 우려낸다. 주전자를 굉장히 높이 들고 작은 장식 잔에 차를 따르는 기술은 차에 거품을 내기 위한 것이다. …… 민트로 풍미를 더한 차는 더운 기후에서 상쾌함을 주기 때문에 이라크와 페르시아만 연안 인접국을 포함한 아랍 국가들에서 인기가 있다. 아랍식 연회에서 차는 종종 식사의 마지막을 장식하며 소화를 돕는 역할을 한다.
---「4. 차의 길이 열리다」(118~119쪽) 중에서
3. 서양으로 간 차의 화려한 변신
- 이 책의 주요 내용 2
서양으로 전해진 동양의 음료는 어떻게 변화했을까? 17세기에 차가 처음 유럽에 전해졌을 때 차의 씁쓸한 맛과 건강에 도움을 준다는 특성 때문에 약용 음료로 여겨졌다. 1610년 네덜란드인들이 중국과 일본에서 차를 처음 가져왔다. 차 값뿐 아니라 차를 마시기 위한 다기도 비쌌던 탓에 차는 상류층에서만 즐길 수 있었다. 네덜란드 상인들은 독일, 프랑스, 영국 등 다른 나라 시장에도 차를 내놓았고, 많은 유럽의 왕들은 자신이 소유한 공원과 정원에 찻집을 직접 만들기도 했다.
영국에는 1645년경에 처음 차가 전해졌다. 찰스 2세와 결혼한 포르투갈 공주 캐서린은 차를 매우 좋아해 사람들에게 차를 대접했고 차의 인기는 금세 퍼져나갔다. 19세기 초 산업혁명으로 인해 저녁을 먹는 시간이 늦어지면서 상류층 여성들 사이에서 공복을 달래기 위해 늦은 오후 시간에 차와 함께 빵을 곁들여 먹는 애프터눈티 문화가 생겨났다. 또 탱고의 유행은 다과회와 무도회를 동시에 즐기는 ‘티댄스’라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냈다.
미국에서는 보통 차보다 커피를 자주 마시지만 처음부터 그랬던 것은 아니다. 1775년 영국 정부는 식민지 주민들이 즐겨 마시던 차에 세금을 부과했다. 과도한 세금에 식민지 주민들은 반발했고, 이것은 미국 독립전쟁의 발단이 된 ‘보스턴 차 사건’으로 이어졌다. 20세기 초 미국에서도 애프터눈티 문화가 확산되었고, 금주법으로 알코올음료의 판매가 금지되자 술 대신 차를 마시는 티룸이 유행했다.
상인들과 선장들은 제철에 생산된 새로운 차를 누구보다 먼저 서양으로 가져오기 위해 서로 경쟁했다. 이런 이유로 ‘경주용차’라고 할 만한 새롭고 빠른 항해선인 쾌속 범선 ‘클리퍼(clipper)’가 개발되었다. 그 가운데서도 중국을 오가는 범선 ‘차이나 글리퍼’가 가장 대표적이었는데, 중국에서 실어오는 물품 가운데 가장 중요한 차를 옮겨 나른다고 하여 티 글리퍼(tea clipper, 차 범선)라고도 불렀다. …… 미국과 영국 무역상 사이의 경쟁은 1860년대의 쾌속 범선 경주로 이어졌다. 선착장에 가장 먼저 화물을 내려놓는 배가 우승했다.
---「5. 서양으로 간 차의 변신」(136~137쪽) 중에서
차의 비싼 가격은 불순물을 넣은 차를 많이 만들어냈다. 당시 흔히 ‘차’라고 팔리던 것은 진짜 차라고 할 수 없었다. 이는 최상품 중국 녹차와 비슷해질 때까지 딱총나무 잎이나 서양물푸레나무 잎, 가장 흔하게는 야생자두나무 잎을 끓이고 굽고 말고 말려서 색을 입힌 것이었다. 동록을 넣어 끓인 뒤 말려서 ‘네덜란드 핑크(Dutch pink)’라는 독성 혼합물로 된 염료를 입힌다. 그러고는 다시 더 많은 동록을 넣어 독약이나 다름없는 ‘차’를 만들었다.
---「5. 서양으로 간 차의 변신」(141쪽) 중에서
차는 혁명의 상징이 되어 있었다. 식민지 주민의 입장에서는 차에 부과한 세금을 내면 영국 의회의 권한을 인정하게 되는 셈이었다. 영국 정부는 식민지 주민들이 한 잔의 차가 주는 기쁨을 저버리기보다는 세금을 낼 것이라 여겼다. 하지만 그들의 생각이 틀렸다. 차 소비량은 곤두박질쳤고 애국자라 여겨지던 식민지 주민들은 좁쌀풀(야생화) 잎이나 산딸기 잎, 캐모마일이나 세이지로 만든‘자유의 차(liberty tea)’를 마셨다. 일부는 커피를 마시는 쪽을 택했다.
---「5. 서양으로 간 차의 변신」(161~162쪽) 중에서
4. 한반도 사람들은 왜 차를 마시지 않았을까?
- 이 책의 주요 내용 3
이 책의 한국어판 특집글 〈한반도 사람들은 왜 차를 마시지 않았을까?〉에서는 차가 한반도에 전래되고 확산된 역사를 살펴봄과 더불어 한반도에 차 문화가 정착하지 못한 이유를 밝힌다.
이 글은 1880년경의 윌리엄 그리피스가 던진 “왜 조선인은 차를 마시지 않는가”라는 질문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당시 세계 양대 차 생산국이었던 중국과 일본 사이에 살고 있는 조선 사람들이 차를 마시지 않은 것을 이상하게 본 것이다. 차는 신라 성덕여왕 때 처음 한반도에 알려져, 흥덕왕 때부터 재배가 이루어졌다. 하지만 품질도 매우 낮고, 생산량이 적어 사람들이 차를 즐기기에는 부족했다.
차는 불교와 연관이 깊었기 때문에 불교를 중시한 고려시대에는 왕이 주관하는 행사에서 반드시 갖추어야 하는 의례 음료로 사용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일부 상류층에서 차가 유행했지만, 찻잎을 구하기 쉽지 않아 조선 후기부터 찻잎을 넣지 않은 ‘유사차’가 유행하기 시작했다. 조선 중기 이후 차 마시는 일이 거의 사라진 한반도에서 ‘차’라는 이름만이 살아남아 ‘유사차’의 나라가 된 것이다.
식민지시기에는 재조 일본인 수가 늘어남에 따라 일본과 중국에서 차를 수입하기 시작했다. 또 한반도에서 자생하는 차나무를 일본식으로 재배하는 일본인도 생겨나 한반도에서의 차 생산량이 늘어나기 시작했다. 일본식 차문화가 들어오기 시작하면서 다화회 등 차를 마시는 행사가 열렸지만 이 역시 일부에 불과했다.
1980년에 들어 대기업에서 녹차를 상품으로 출시하는 등 한국에서도 차의 대중화가 시도되었고, 해외여행의 자율화로 새로운 음료에 대한 소비가 늘어나면서 차 소비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었다. 1990년대 후반 한국사회에 불어 닥친 웰빙붐도 차에 대한 소비를 촉진했다. 하지만 차는 아직까지도 한국인의 입맛을 사로잡지는 못한 것 같다. 21세기 이후 세계가 하나의 마을처럼 소통하면서 전 세계의 다양한 차를 접할 기회가 훨씬 많아졌고, 세계 각지의 차 종류뿐 아니라 차문화에 관심을 갖는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거의 600년이나 되는 긴 시간 동안 한반도에서 그 존재가 미미했던 차가 되살아날 수 있을까? 윌리엄 그리피스가 던진 질문은 지금도 유효하다.
찻잎이 들어가지 않은 음료를 차라고 부르는 일은 조선에서만 나타난 현상은 아니다. 중국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찻잎을 구할 수 없더라도 그를 대체할 ‘유사차’를 통해 차 문화를 향유하고자 했다. 화베이(華北)사람들이 즐겨 마시는 국화차는 말린 국화꽃을 우린 차다. 찻잎이 들어가지 않는데도 이것을 차라고 부르는 이유는 차처럼 뜨거운 물에 우려 마시기 때문이다. …… 한국의 인삼차도 사실 인삼탕이라 불러야 하지만, 한국인들은 인삼차라 부른다. 차나무를 거의 재배하지 않고, 조선 중기 이후 차 마시는 일이 거의 사라진 한반도에서 ‘차’라는 이름만이 살아남아 유사차의 나라가 되었다. 윌리엄 그리피스가 던진 “왜 조선인은 차를 마시지 않는가”에 대한 해답은 바로 이 ‘유사차’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특집. 한반도 사람들은 왜 차를 마시지 않았을까?」(225~227쪽) 중에서
재조일본인이 한반도에 자생하는 차나무를 이용해 일본식 녹차를 만든 사례도 있다. 1909년 사금 사업을 하기 위해 전남 보성 문덕면으로 이주해온 오자키 이치조(尾崎一三)는 …… 야생 차밭을 빌려 일본식 차를 생산하기 시작했다. …… 오자키 이치조가 광주에서 생산한 차의 소비자는 주로 재조일본인들이었다. 그것도 일본인이 묵는 여관에서 차를 많이 사갔다. 이처럼 재조일본인이 늘어남에 따라 차 수요를 충족하기 위해 일본에서 차는 물론 근대적인 차 재배 방식이 조선에 들어왔고, 이에 따라 조선인 재배자도 늘어났다. 하지만 차를 마시는 조선 사람이 크게 늘지는 않았다. 여전히 차는 조선인들에게 생소한 음료였다.
---「특집. 한반도 사람들은 왜 차를 마시지 않았을까?」(231~232쪽) 중에서
녹차에 대한 인지도가 낮았던 1980년대 초중반에 태평양은 녹차의 대중화를 위해 방문판매뿐 아니라 여학교, 관공서, 백화점 등에서 강좌와 시음회를 열었다. …… 이러한 홍보 전략에도 불구하고 당시 한국인 가운데 녹차를 마셔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 드물었기 때문에 녹차 판매는 눈에 띄게 늘어나지 않았다. 태평양은 1985년에 전국적인 행사로 ‘100만 명 설록차 무료 시음’ 판촉행사를 펼치기도 했다. 하지만 녹차를 처음 맛본 사람들은 대부분 익숙지 않은 맛에 얼굴을 찡그리기 일쑤였고, 심한 경우에는 “무슨 시래기 삶은 물을 돈 주고 사먹으라고 하느냐”며 화를 내거나 그 자리에서 뱉어버리는 경우도 있었다고 한다.
---「특집. 한반도 사람들은 왜 차를 마시지 않았을까?」(235쪽) 중에서
▣ 작가 소개
저 : 헬렌 세이버리
음식 전문 저술가다. 아프가니스탄 카불 소재 영국 대사관에서 근무하다 1980년 구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 당시 영국으로 돌아왔다. 그 후 음식을 중심으로 아프가니스탄 문화를 알리는 데 힘썼다. 지은 책으로는 《노쉐 잔: 아프가니스탄 음식과 요리Noshe Djan: Afghan Food and Cookery》, 《푸딩 책A Pudding Book》, 《소시지 책A Sausage Book》, 《빈달루로 가는 길: 커리 요리와 커리에 관한 책The Road to Vindaloo: Curry Cooks and Curry Books》(공저), 《강황: 대단한 향신료Turmeric: The Wonder Spice》(공저), 《요리의 기쁨Cook’s Delights》(공저) 등이 있다.
역 : 이지윤
미국 유타 대학교 영화과를 졸업하고 의료 및 제약 관련 홍보 대행사에서 근무하였다. 현재는 과학 문화 관련 기관에서 일하며 과학 교양서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번역서로 『불면증과의 동침』, 『노벨상 수상자가 들려주는 미생물 이야기』이 있다.
감수 : 주영하
1962년 경남 마산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사학과와 한양대학교 대학원 문화인류학과에서 공부했으며, 중국 중앙민족대학(中央民族大學) 대학원 민족학과에서 「중국 쓰촨성 량산 이족의 전통 칠기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07년 10월부터 1년 동안 일본 가고시마대학 인문학부 객원연구원을 지냈다. 현재 한국학중앙연구원(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한국학대학원 민속학 전공 교수로 있다.
민속학과 음식학을 주로 연구하며, 전근대와 근대의 사유와 생활이 혼재되어 있는 19세기와 20세기라는 시간 축에 관심이 많다. 아울러 1990년대 이후 한국·중국·일본의 음식 문화에 대해서 꾸준히 현지 조사를 수행하면서 동아시아의 음식 문화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
주요 저서로 『김치, 한국인의 먹거리―김치의 문화인류학』(1994), 『한국의 시장―사라져가는 우리의 오일장을 찾아서』(공저, 1995, 2003), 『음식전쟁 문화전쟁』(2000), 『중국, 중국인, 중국음식』(2000), 『그림 속의 음식, 음식 속의 역사』(2005) 『음식 인문학』『차폰, 잔폰, 짬뽕: 동아시아 음식 문화의 역사와 현재』,『식탁 위의 한국사』등이 있고 감수한 책으로는 『아이스크림의 지구사』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초대의 글 전 세계 각양각색의 차을 만나다
0 차의 세계로 들어가며
1 차란 무엇인가
2 차의 고향, 중국
3 동아시아로 퍼져나간 차문화―일본, 한국, 타이완
4 차의 길이 열리다―동남아시아, 중아앙시아, 지중해 연안
5 서양으로 간 차의 변신―유럽, 아메리카 대륙, 오스트레일리아
6 식민지와 차 문화의 발달―인도, 스리랑카, 인도네시아
7 차의 오늘과 내일
특집 한국인은 왜 차를 마시지 않았을까?
다양한 차 요리법
용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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