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서양이 새롭게 부활하기 위한 대전략
미국과 유럽, 서양의 두 반쪽은 이대로는 국제무대의 유력한 지위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의 중심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은 결코 동양 국가들의 경제 성장률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부상이 명백한 근심거리가 된 상황에서 서양의 두 반쪽은 미래를 대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책의 저자 로즈크랜스는 역설한다. 미국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무역과 경제 통합의 대전략을 추구해야 하며, 그 해답은 미국과 유럽의 그야말로 거대한 경제 공동체의 창조에 있다. 미국은 일개 국가로 고립된 상태로는 미래의 도전을 감당할 수 없다. 느리고 정체된 유럽도 마찬가지이다. 늙은 서구가 지금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대응은 충분한 크기의 개방된 경제 영토를 구축하는 일이다. 그리고 우위에 있는 기존 산업 권력을 더욱 확대하는 일이다. 서구의 거대한 관세동맹은 전 세계 GDP의 절반을 상회할 것이고 각각 독자 노선을 추구할 때는 불가능한 추가적인 성장을 가져올 것이다. 무엇보다 힘의 견지에서, 일본을 필두로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심지어 중국까지도 서구 자신들의 성채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 서양의 두 반쪽은 서로 연합하여 ‘새로운 서양’으로 거듭나는 선택을 해야 하며, 그것은 더 크고 강력한, 계속 성장하는 서양이 될 것이다.
크기의 문제
역사를 살펴보면, 자유무역과 거대한 영토를 가진 국가의 출현 사이에는 흥미로운 상관관계가 있다. 자유무역이 보장되는 시기에는 작은 국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해외에서 경제 영토를 개척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국가로 막대한 부를 누렸던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나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등이 이러한 예에 해당했다. 그러나 국제 경제의 개방성이 훼손되어 자유무역이 쇠퇴하면 국가들은 시장을 늘리는 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영토를 넓히기 위한 선택을 해야 했다. 이런 시기에는 거대 제국이 등장했다.
1873~1896년 대불황기에 유럽 각국과 미국이 관세를 올리자, 세계 여러 나라들은 앞선 시기와 달리 더 이상 무역에 의존해서 시장을 늘릴 수 없게 되었다. 이후 보호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관세 장벽이 높아지자 국가들은 식민지 영토 쟁탈전을 벌였고 제국주의 경쟁이 정점에 다다랐다. 영국만이 계속해서 자유무역에 충실했는데 이는 대영제국 안에 이미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남아프리카 등 중요한 판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오늘날은 어떨까?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 진영 안에서는 미국 등 서방 선진국이 충분한 ‘공공재’를 제공하는 가운데 일본과 서독, 그리고 한국 등 신흥 개도국들이 성장했다. 이들은 결코 영토가 큰 국가들이 아니었지만 시장을 획득하는 데 집중하면서 무역국가 모델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 무역국가들의 승승장구는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가장 먼저 일본이 1987년 거품이 꺼지면서 국내 경제가 궤멸했다. 이어진 1990년대에는 동남아시아에서 외환 위기가 일어나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그리고 한국이 차례로 휩쓸려 갔다. 무엇보다 미국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미국도 2008~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위협을 느껴야 했다. 뉴욕타임스는 2010년 파생상품의 거래 규모가 총 600조 달러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전 세계 GDP의 열 배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이것은 어떤 나라도 막대한 양의 현금을 구할 수 없으면 부유한 투기자들에게 약점을 잡힐 수 있다는 의미였다. 오늘날 가장 몸집이 큰 행위자조차 국제 경제가 제기하는 이런 도전을 혼자 힘으로 극복할 수는 없다.
이처럼 오늘날 국가들도 ‘크기’의 문제에 봉착한다. 그러나 오늘날 국가들은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처럼 정복이나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할 수는 없다. 결국 경제 영토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여기에는 ‘개방성’의 문제가 존재한다. 그리고 오늘날 국제 경제를 완전한 자유무역의 장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노골적인 관세 장벽은 점차 줄어들어 왔지만 비관세 장벽은 견고하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수출을 원할 뿐이고 수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수입에는 주저한다. 그들의 수출 주도 성장은 그들의 상품을 계속 구매해주는 서방 시장을 전제해야 성립이 가능하고 그렇게 성장한 몇몇 국가들이 서방을 위협하는 모순된 상황이 초래되었다. 이런 양상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 따라서 국가들은 계속해서 몸집을 키울 필요를 느끼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한 무역 자유화 시도가 좌초된 후 대신 국가들은 이를 우회하여 북미자유무역협정, 남미의 메르코수르, 동아프리카관세동맹 같은 새로운 관세동맹을 창설함으로써 ‘크기’를 키우고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100개가 넘는 무역 협정이 체결되었다.
강력한 세력불균형이 평화를 가져 온다
국제 경제와 국제 정치는 긴밀하게 얽혀 있다. 상승 도전국은 경제력의 상승에 대응하는 국제정치적 입지를 추구한다. 그리고 현재 미국 혼자서는 상승국의 도전을 억제할 수 없다. 미국은 고작 세력균형을 유지하고 도모할 수 있을 뿐이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세력균형이 국제 질서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게 존재해 왔다. 그러나 로즈크랜스는 여러 사례, 특히 1차 세계대전을 예로 들며 세력균형이 결코 서양의 답이 되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19세기에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세력불균형을 창출하여 유럽에서 한 세대 동안 전쟁을 막았다. 1871년 독일이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뒤, 비스마르크는 핵심 강대국들을 하나로 묶기 시작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러시아, 영국 등과 긴밀한 제휴를 발전시키면서 프랑스만을 배제시켰다. 비스마르크는 이러한 세력불균형을 통해 프랑스와 러시아를 억제하며 국제 평화를 유지했다. 하지만 1890년에 비스마르크가 수상에서 물러난 이후 이 체제는 붕괴하기 시작했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러시아를 동맹에서 제외했고, 그러자 익숙한 세력균형의 문법에 따라 유럽의 국제 질서가 재편되었다. 프랑스가 러시아와 손을 잡았고 뒤이어 영국이 그들에게 가담했다. 그리하여 프랑스-러시아-영국 대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간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졌고 1차대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세력 관계에서 변화가 생길 때마다 전쟁이 벌어질 이유는 없다. 비스마르크 체제가 무너진 시점에서 만약 영국과 독일이 결합하는, 그러한 압도적인 세력불균형이 재형성되었다면, 세계는 1차 세계대전을 피할 수도 있었다. 물론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이러한 질문은 세력균형에 대해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오늘날 중국의 부상과 그로 인한 충돌 가능성을 막기 위해 유럽과 미국은 세력균형이 아니라 오히려 믿을 만한 세력불균형을 창조해야 한다. 유럽과 미국은 아직 신뢰할 만한 세력불균형을 창조하지 못했다. 이런 불균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서양의 양대 세력-유럽연합과 미국-이 경제적, 정치적으로 하나로 합쳐야 한다. 일본도 끌어들일 수 있다면, 서양은 도전을 허락하지 않는 체제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위협적이지 않은 연합 : 유럽연합의 성공
역사를 보면, 몸집을 부풀리고 경제적으로 중앙집권화를 이룬 단위는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과 경계를 불러일으켰다. 한 예로, 19세기 후반에 나라를 통일하고 중앙집권을 이룬 독일은 축복이 아니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프랑스의 힘과 나폴레옹의 야심 역시 환영받지 못했다. 나중에 독일 영토를 확장하려는 히틀러의 무자비한 음모는 결국 강력한 저항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오늘날 유럽연합은 위협적인 세력이기보다 평화로운 단위로 등장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외부 국가들은 유럽연합을 반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합류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유럽연합의 힘의 응집은 이제 더 이상 혐오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관심을 끌기 시작한다. 일각에선 미국이 통합된 유럽을 잠재 경쟁자로 여기리라고 예상했지만 현재 미국은 유럽의 확대를 장려하고 확대의 속도를 높이길 바라고 있다. 유럽연합의 이러한 경험은 미국과 유럽의 미래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새로운 서양’은 미국과 유럽이 외부 국가들에 대해 위협적이지 않은, 오히려 매력적인 세력이 될 수 있다.
더 클수록 더 강하다
세계 각국은 강력한 세력의 출현에 맞서 세력균형을 형성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이것은 국제정치학 현실주의의 가정이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도식화된 가정일 뿐이다. 각국의 선택지는 얼마든지 열려 있다. 그리고 각국은 점차 작은 집단보다는 큰 집단에 가담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점을 깨달을 것이다.
유럽과 미국이 새로운 경제 연합을 결성하면, 8억 명의 인구가 하나로 묶여 거대한 시장을 형성할 것이다. 여기에는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259개 기업이 포함될 것이다. 유럽연합의 국내총생산(GDP)은 17조 달러이며 미국은 15조 달러이다. 이 둘을 합치면 약 61조 달러인 전 세계 GDP의 절반을 넘는다. 유럽연합과 미국이 보유한 시장·연구·발전 허브들은 타 지역의 추종을 불허한다.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산업들의 대부분은 서양이나 일본에 근거를 두고 있다. 만약 서양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덧붙여 여기에 일본이 결합한다면,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신흥국들은 자국의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서양과의 연결을 원하게 될 것이다. 20세기 내내 진행된 국제적 차원의 분업화 때문에, 적어도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핵심 산업 분야에서 정복 전쟁이나 영토 전쟁을 통한 ‘크기’의 확대는 큰 의미가 없다. 한 나라가 그러한 산업 생산 연쇄의 모든 단계를 차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러한 산업의 허브는 계속해서 서양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적, 산업적 우위를 기반으로 한 서양의 유대는 우위를 잃지 않고 마치 자석처럼 세계의 강대국들을 한데 끌어모을 것이다. 이러한 국제 질서의 새로운 문법 아래에서 전쟁은 케케묵은 대응이 될 것이다.
복제가 불가능한 서양 산업의 힘
산업 동맹, 국제적인 생산 협정, 부품 생산 하청 때문에, 국가들을 ‘비슷한 단위’로 가정하는 고전적인 국제정치 이론은 현대 정치에서 점점 의미를 잃고 있다. 국가들은 점차 ‘상이한 단위’로 바뀌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나 러시아 같은 나라는 원료를 생산하고, 대만, 싱가포르, 홍콩,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는 중간 부품을 생산한다. 중국, 남한, 멕시코, 폴란드 같은 나라들은 최종 조립을 담당한다. 유럽, 미국, 일본 같은 일부 국가는 제품을 설계하고, 시장을 찾고, 생산 자금을 조달하고, 전체 과정을 감독한다.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지역들은 동질하지 않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고 국가가 주도면밀한 계획하에 도시와 산업단지를 건설해도 ‘거리’는 소멸하지 않는다. 주요 산업과 인력, 소비자들을 유치한 시장 클러스터들은 여전히 그 장소에 있을 것이며, 그와 똑같은 ‘클러스터’의 복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계속해서 하나일 것이다. ‘장소’는 계속해서 승리할 것이다. 더욱이 유럽연합과 캐나다-미국이 더 밀접한 관세 협정을 맺으면, 외부의 관세 장벽과 내부의 비관세 편의 덕분에 기업들은 이 연합 외부로 수출을 할 필요성이 줄어들 것이다. 이는 곧 내부 시장 클러스터나 도시들 간에 재편이 일어날 것이라는 의미이고 그 결과로 서양의 산업적 우위는 한층 더 견고해질 것이다.
시장 클러스터가 서양에서 동양 세계로 대규모로 이전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시장 클러스터는 여전히 서양과 일본에 남아 있다. 강력한 시장 클러스터가 서양에 건재한 상황에서 세계의 각 지역들 사이에 전대미문의 강력한 연결고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1914년에는 이른바 ‘생산 연쇄’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날 세계 경제의 상호 의존은 제조업 장소들을 하나로 꿰고 있다. 이런 연계에서 떨어져 나간다면 어떤 나라든 경제 성장과 기술 역량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규모의 경제는 한 제품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효율적인 산업들은 서양과 일본에 있다. 중국은 성장과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런 강력한 시장 클러스터에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강력한 ‘새로운 서양’이 분열된 동양을 끌어들인다
서양이 탄탄한 동맹을 결성한다면, 동양의 도전을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동양 각국이 개별적으로 성장했을지라도 이를테면 동양의 통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양 각국의 연합은 동양의 세력 증대에 대한 확실한 대응이 될 것이다. 서양이 더 강해지면 동양으로부터 일본 같은 민주국가들을 끌어당길 것이다. 더 강한 서양은 불황과 끊임없이 확대되는 글로벌 시장이라는 전 세계적인 도전에 맞서 적절한 대비책을 갖추게 될 것이다. 몸집을 가장 크게 불린 지역은 산업적?기술적 힘의 주요 중심부를 한데 묶음으로써 장래에 발전의 조건을 정하는 데서 우위를 점할 것이다.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가 정치와 영토를 둘러싸고 갈등하고 분열하는 동안 미국과 유럽연합은 그들 사이를 중재하며 심원한 제휴를 창출할 수 있다. 유럽은 이 과정에서 경제?통화 연합에 새로운 회원국을 추가하면서 세계 정치에서 집단의 비중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다. 서양의 확대는 중국이나 인도 같은 속도로 발전하지 못하는 단점을 상쇄하며, 게임의 법칙을 바꿔놓을 수 있다.
▣ 작가 소개
저자 : 리처드 로즈크랜스(Richard Rosecrance)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이다. 현재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 교수이며, 산하 벨퍼과학국제문제연구소에서 미중 관계 연구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다. UCLA 정치학부 특훈 연구교수이기도 하다. 스워스모어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코넬대학교, UC버클리, UCLA에서 정치학 및 국제정치학 교수를 지냈다. 그 외에도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와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 이탈리아에 있는 유럽대학교 등에서 방문 연구원 및 교수를 지냈다. 한때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위원회에서 일하기도 했다.
로즈크랜스는 국제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경제와 국제 정치의 연결고리에 초점을 맞춰온 대표적인 학자 중 한 명이며 동시에 역사 연구에도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흔히 국제 질서의 안정을 위해 세력 균형이 중요하다고 보는 현실주의와는 다른 견지에서, 그는 오히려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세력에 의한 불균형”이 국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이 책에서 그는 오늘날 미국과 유럽이 통합을 이룸으로써 그런 조건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지은 책으로 The Rise of the Virtual State(1999년), The Domestic... Bases of Grand Strategy(1993년), America’s Economic Resurgence(1990년), The Rise of the Trading State(1986년), International Relations: Peace or War?(1973년) 등이 있다.
역자 : 유강은
국제 문제 전문 번역가. 옮긴 책으로 『데드핸드』(2015년), 『보이지 않는 손』(2015년), 『땅뺏기』(2014년), 『조지 케넌의 미국 외교 50년』(2013년), 『호모 인베스투스』(2013년), 『왜 신자유주의는 죽지 않는 가』(2012년), 『의혹을 팝니다』(2012년), 『미국 민중사 1·2』(2008년) 등이 있다.
서양이 새롭게 부활하기 위한 대전략
미국과 유럽, 서양의 두 반쪽은 이대로는 국제무대의 유력한 지위에서 쫓겨날 수밖에 없다. 세계 경제의 중심이 서양에서 동양으로 빠르게 이동하고 있고, 미국과 유럽은 결코 동양 국가들의 경제 성장률을 따라잡을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특히 중국의 부상이 명백한 근심거리가 된 상황에서 서양의 두 반쪽은 미래를 대비해 무엇을 해야 할까? 이 책의 저자 로즈크랜스는 역설한다. 미국은 미래의 불확실성을 줄이기 위해 무역과 경제 통합의 대전략을 추구해야 하며, 그 해답은 미국과 유럽의 그야말로 거대한 경제 공동체의 창조에 있다. 미국은 일개 국가로 고립된 상태로는 미래의 도전을 감당할 수 없다. 느리고 정체된 유럽도 마찬가지이다. 늙은 서구가 지금 취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하고 효과적인 대응은 충분한 크기의 개방된 경제 영토를 구축하는 일이다. 그리고 우위에 있는 기존 산업 권력을 더욱 확대하는 일이다. 서구의 거대한 관세동맹은 전 세계 GDP의 절반을 상회할 것이고 각각 독자 노선을 추구할 때는 불가능한 추가적인 성장을 가져올 것이다. 무엇보다 힘의 견지에서, 일본을 필두로 다른 아시아 국가들과 심지어 중국까지도 서구 자신들의 성채로 끌어들일 수 있을 것이다. 한마디로 지금 서양의 두 반쪽은 서로 연합하여 ‘새로운 서양’으로 거듭나는 선택을 해야 하며, 그것은 더 크고 강력한, 계속 성장하는 서양이 될 것이다.
크기의 문제
역사를 살펴보면, 자유무역과 거대한 영토를 가진 국가의 출현 사이에는 흥미로운 상관관계가 있다. 자유무역이 보장되는 시기에는 작은 국가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해외에서 경제 영토를 개척해나갈 수 있기 때문이다. 통상국가로 막대한 부를 누렸던 이탈리아의 도시국가나 네덜란드와 포르투갈 등이 이러한 예에 해당했다. 그러나 국제 경제의 개방성이 훼손되어 자유무역이 쇠퇴하면 국가들은 시장을 늘리는 데 제약을 받을 수밖에 없었고 영토를 넓히기 위한 선택을 해야 했다. 이런 시기에는 거대 제국이 등장했다.
1873~1896년 대불황기에 유럽 각국과 미국이 관세를 올리자, 세계 여러 나라들은 앞선 시기와 달리 더 이상 무역에 의존해서 시장을 늘릴 수 없게 되었다. 이후 보호주의가 전 세계를 휩쓸었다. 관세 장벽이 높아지자 국가들은 식민지 영토 쟁탈전을 벌였고 제국주의 경쟁이 정점에 다다랐다. 영국만이 계속해서 자유무역에 충실했는데 이는 대영제국 안에 이미 인도, 오스트레일리아, 캐나다, 남아프리카 등 중요한 판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것이었다.
오늘날은 어떨까? 2차 세계대전 이후 자유 진영 안에서는 미국 등 서방 선진국이 충분한 ‘공공재’를 제공하는 가운데 일본과 서독, 그리고 한국 등 신흥 개도국들이 성장했다. 이들은 결코 영토가 큰 국가들이 아니었지만 시장을 획득하는 데 집중하면서 무역국가 모델로 큰 성공을 거두었다. 그러나 이 무역국가들의 승승장구는 계속 이어지지 못했다. 가장 먼저 일본이 1987년 거품이 꺼지면서 국내 경제가 궤멸했다. 이어진 1990년대에는 동남아시아에서 외환 위기가 일어나 태국,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그리고 한국이 차례로 휩쓸려 갔다. 무엇보다 미국조차 예외가 아니었다. 미국도 2008~2009년 글로벌 금융 위기 당시 위협을 느껴야 했다. 뉴욕타임스는 2010년 파생상품의 거래 규모가 총 600조 달러에 달한다고 추산했다. 전 세계 GDP의 열 배에 해당하는 액수였다. 이것은 어떤 나라도 막대한 양의 현금을 구할 수 없으면 부유한 투기자들에게 약점을 잡힐 수 있다는 의미였다. 오늘날 가장 몸집이 큰 행위자조차 국제 경제가 제기하는 이런 도전을 혼자 힘으로 극복할 수는 없다.
이처럼 오늘날 국가들도 ‘크기’의 문제에 봉착한다. 그러나 오늘날 국가들은 20세기 초 제국주의 시대처럼 정복이나 전쟁을 통해 영토를 확장할 수는 없다. 결국 경제 영토의 문제로 귀결되는데, 여기에는 ‘개방성’의 문제가 존재한다. 그리고 오늘날 국제 경제를 완전한 자유무역의 장으로 이해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노골적인 관세 장벽은 점차 줄어들어 왔지만 비관세 장벽은 견고하다. 동아시아 국가들은 수출을 원할 뿐이고 수출에 도움이 되지 않는 수입에는 주저한다. 그들의 수출 주도 성장은 그들의 상품을 계속 구매해주는 서방 시장을 전제해야 성립이 가능하고 그렇게 성장한 몇몇 국가들이 서방을 위협하는 모순된 상황이 초래되었다. 이런 양상이 영원히 계속될 수는 없다. 따라서 국가들은 계속해서 몸집을 키울 필요를 느끼고 있다. 세계무역기구(WTO)를 통한 무역 자유화 시도가 좌초된 후 대신 국가들은 이를 우회하여 북미자유무역협정, 남미의 메르코수르, 동아프리카관세동맹 같은 새로운 관세동맹을 창설함으로써 ‘크기’를 키우고 있다. 지난 30여 년 동안 전 세계적으로 100개가 넘는 무역 협정이 체결되었다.
강력한 세력불균형이 평화를 가져 온다
국제 경제와 국제 정치는 긴밀하게 얽혀 있다. 상승 도전국은 경제력의 상승에 대응하는 국제정치적 입지를 추구한다. 그리고 현재 미국 혼자서는 상승국의 도전을 억제할 수 없다. 미국은 고작 세력균형을 유지하고 도모할 수 있을 뿐이다. 국제정치학에서는 세력균형이 국제 질서의 안정에 도움이 된다고 보는 견해가 유력하게 존재해 왔다. 그러나 로즈크랜스는 여러 사례, 특히 1차 세계대전을 예로 들며 세력균형이 결코 서양의 답이 되어선 안 된다고 말한다.
19세기에 독일의 재상 비스마르크는 세력불균형을 창출하여 유럽에서 한 세대 동안 전쟁을 막았다. 1871년 독일이 보불전쟁에서 승리한 뒤, 비스마르크는 핵심 강대국들을 하나로 묶기 시작했다. 그는 오스트리아, 러시아, 영국 등과 긴밀한 제휴를 발전시키면서 프랑스만을 배제시켰다. 비스마르크는 이러한 세력불균형을 통해 프랑스와 러시아를 억제하며 국제 평화를 유지했다. 하지만 1890년에 비스마르크가 수상에서 물러난 이후 이 체제는 붕괴하기 시작했다. 독일 황제 빌헬름 2세는 러시아를 동맹에서 제외했고, 그러자 익숙한 세력균형의 문법에 따라 유럽의 국제 질서가 재편되었다. 프랑스가 러시아와 손을 잡았고 뒤이어 영국이 그들에게 가담했다. 그리하여 프랑스-러시아-영국 대 독일-오스트리아-이탈리아 간의 대결구도가 만들어졌고 1차대전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세력 관계에서 변화가 생길 때마다 전쟁이 벌어질 이유는 없다. 비스마르크 체제가 무너진 시점에서 만약 영국과 독일이 결합하는, 그러한 압도적인 세력불균형이 재형성되었다면, 세계는 1차 세계대전을 피할 수도 있었다. 물론 역사에 만약은 없지만, 이러한 질문은 세력균형에 대해 중요한 문제를 제기한다. 오늘날 중국의 부상과 그로 인한 충돌 가능성을 막기 위해 유럽과 미국은 세력균형이 아니라 오히려 믿을 만한 세력불균형을 창조해야 한다. 유럽과 미국은 아직 신뢰할 만한 세력불균형을 창조하지 못했다. 이런 불균형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서양의 양대 세력-유럽연합과 미국-이 경제적, 정치적으로 하나로 합쳐야 한다. 일본도 끌어들일 수 있다면, 서양은 도전을 허락하지 않는 체제를 구축하게 될 것이다.
위협적이지 않은 연합 : 유럽연합의 성공
역사를 보면, 몸집을 부풀리고 경제적으로 중앙집권화를 이룬 단위는 이에 반대하는 움직임과 경계를 불러일으켰다. 한 예로, 19세기 후반에 나라를 통일하고 중앙집권을 이룬 독일은 축복이 아니라 공포를 불러일으켰다. 프랑스의 힘과 나폴레옹의 야심 역시 환영받지 못했다. 나중에 독일 영토를 확장하려는 히틀러의 무자비한 음모는 결국 강력한 저항으로 이어졌다. 하지만 오늘날 유럽연합은 위협적인 세력이기보다 평화로운 단위로 등장하는 데 성공한 것으로 보인다. 외부 국가들은 유럽연합을 반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합류하기 위해 줄을 서고 있다. 유럽연합의 힘의 응집은 이제 더 이상 혐오를 불러일으키지 않는다. 오히려 관심을 끌기 시작한다. 일각에선 미국이 통합된 유럽을 잠재 경쟁자로 여기리라고 예상했지만 현재 미국은 유럽의 확대를 장려하고 확대의 속도를 높이길 바라고 있다. 유럽연합의 이러한 경험은 미국과 유럽의 미래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져준다. ‘새로운 서양’은 미국과 유럽이 외부 국가들에 대해 위협적이지 않은, 오히려 매력적인 세력이 될 수 있다.
더 클수록 더 강하다
세계 각국은 강력한 세력의 출현에 맞서 세력균형을 형성하는 선택을 할 수도 있다. 이것은 국제정치학 현실주의의 가정이다. 하지만 이는 지나치게 도식화된 가정일 뿐이다. 각국의 선택지는 얼마든지 열려 있다. 그리고 각국은 점차 작은 집단보다는 큰 집단에 가담하는 편이 유리하다는 점을 깨달을 것이다.
유럽과 미국이 새로운 경제 연합을 결성하면, 8억 명의 인구가 하나로 묶여 거대한 시장을 형성할 것이다. 여기에는 세계 500대 기업 가운데 259개 기업이 포함될 것이다. 유럽연합의 국내총생산(GDP)은 17조 달러이며 미국은 15조 달러이다. 이 둘을 합치면 약 61조 달러인 전 세계 GDP의 절반을 넘는다. 유럽연합과 미국이 보유한 시장·연구·발전 허브들은 타 지역의 추종을 불허한다.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산업들의 대부분은 서양이나 일본에 근거를 두고 있다. 만약 서양이 하나로 합쳐진다면, 덧붙여 여기에 일본이 결합한다면, 중국과 인도를 비롯한 신흥국들은 자국의 성장을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서양과의 연결을 원하게 될 것이다. 20세기 내내 진행된 국제적 차원의 분업화 때문에, 적어도 규모의 경제가 중요한 핵심 산업 분야에서 정복 전쟁이나 영토 전쟁을 통한 ‘크기’의 확대는 큰 의미가 없다. 한 나라가 그러한 산업 생산 연쇄의 모든 단계를 차지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러한 산업의 허브는 계속해서 서양에 위치해 있을 것이다. 그러므로 경제적, 산업적 우위를 기반으로 한 서양의 유대는 우위를 잃지 않고 마치 자석처럼 세계의 강대국들을 한데 끌어모을 것이다. 이러한 국제 질서의 새로운 문법 아래에서 전쟁은 케케묵은 대응이 될 것이다.
복제가 불가능한 서양 산업의 힘
산업 동맹, 국제적인 생산 협정, 부품 생산 하청 때문에, 국가들을 ‘비슷한 단위’로 가정하는 고전적인 국제정치 이론은 현대 정치에서 점점 의미를 잃고 있다. 국가들은 점차 ‘상이한 단위’로 바뀌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나 러시아 같은 나라는 원료를 생산하고, 대만, 싱가포르, 홍콩, 방글라데시 같은 나라는 중간 부품을 생산한다. 중국, 남한, 멕시코, 폴란드 같은 나라들은 최종 조립을 담당한다. 유럽, 미국, 일본 같은 일부 국가는 제품을 설계하고, 시장을 찾고, 생산 자금을 조달하고, 전체 과정을 감독한다.
세계는 평평하지 않다. 지역들은 동질하지 않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하고 국가가 주도면밀한 계획하에 도시와 산업단지를 건설해도 ‘거리’는 소멸하지 않는다. 주요 산업과 인력, 소비자들을 유치한 시장 클러스터들은 여전히 그 장소에 있을 것이며, 그와 똑같은 ‘클러스터’의 복제는 가능하지 않을 것이다. 실리콘밸리는 계속해서 하나일 것이다. ‘장소’는 계속해서 승리할 것이다. 더욱이 유럽연합과 캐나다-미국이 더 밀접한 관세 협정을 맺으면, 외부의 관세 장벽과 내부의 비관세 편의 덕분에 기업들은 이 연합 외부로 수출을 할 필요성이 줄어들 것이다. 이는 곧 내부 시장 클러스터나 도시들 간에 재편이 일어날 것이라는 의미이고 그 결과로 서양의 산업적 우위는 한층 더 견고해질 것이다.
시장 클러스터가 서양에서 동양 세계로 대규모로 이전된 적은 한 번도 없다. 시장 클러스터는 여전히 서양과 일본에 남아 있다. 강력한 시장 클러스터가 서양에 건재한 상황에서 세계의 각 지역들 사이에 전대미문의 강력한 연결고리가 만들어지고 있다. 1914년에는 이른바 ‘생산 연쇄’가 전혀 존재하지 않았다. 오늘날 세계 경제의 상호 의존은 제조업 장소들을 하나로 꿰고 있다. 이런 연계에서 떨어져 나간다면 어떤 나라든 경제 성장과 기술 역량에서 고전을 면치 못할 것이다. 규모의 경제는 한 제품을 대량 생산하기 위해 여전히 존재한다. 이런 효율적인 산업들은 서양과 일본에 있다. 중국은 성장과 생산성을 유지하기 위해 이런 강력한 시장 클러스터에 접근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강력한 ‘새로운 서양’이 분열된 동양을 끌어들인다
서양이 탄탄한 동맹을 결성한다면, 동양의 도전을 그리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동양 각국이 개별적으로 성장했을지라도 이를테면 동양의 통일은 존재하지 않는다. 서양 각국의 연합은 동양의 세력 증대에 대한 확실한 대응이 될 것이다. 서양이 더 강해지면 동양으로부터 일본 같은 민주국가들을 끌어당길 것이다. 더 강한 서양은 불황과 끊임없이 확대되는 글로벌 시장이라는 전 세계적인 도전에 맞서 적절한 대비책을 갖추게 될 것이다. 몸집을 가장 크게 불린 지역은 산업적?기술적 힘의 주요 중심부를 한데 묶음으로써 장래에 발전의 조건을 정하는 데서 우위를 점할 것이다. 중국과 인도 등 아시아가 정치와 영토를 둘러싸고 갈등하고 분열하는 동안 미국과 유럽연합은 그들 사이를 중재하며 심원한 제휴를 창출할 수 있다. 유럽은 이 과정에서 경제?통화 연합에 새로운 회원국을 추가하면서 세계 정치에서 집단의 비중을 한층 더 높일 수 있다. 서양의 확대는 중국이나 인도 같은 속도로 발전하지 못하는 단점을 상쇄하며, 게임의 법칙을 바꿔놓을 수 있다.
▣ 작가 소개
저자 : 리처드 로즈크랜스(Richard Rosecrance)
미국의 저명한 국제정치학자이다. 현재 하버드대학교 케네디스쿨 교수이며, 산하 벨퍼과학국제문제연구소에서 미중 관계 연구 프로젝트를 책임지고 있다. UCLA 정치학부 특훈 연구교수이기도 하다. 스워스모어대학교를 졸업하고 하버드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코넬대학교, UC버클리, UCLA에서 정치학 및 국제정치학 교수를 지냈다. 그 외에도 영국 국제전략연구소(IISS)와 런던정치경제대학교(LSE), 이탈리아에 있는 유럽대학교 등에서 방문 연구원 및 교수를 지냈다. 한때 미국 국무부 정책기획위원회에서 일하기도 했다.
로즈크랜스는 국제 관계를 바라보는 시각에 있어서 경제와 국제 정치의 연결고리에 초점을 맞춰온 대표적인 학자 중 한 명이며 동시에 역사 연구에도 많은 비중을 두고 있다. 흔히 국제 질서의 안정을 위해 세력 균형이 중요하다고 보는 현실주의와는 다른 견지에서, 그는 오히려 “넘볼 수 없는 강력한 세력에 의한 불균형”이 국제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본다. 이 책에서 그는 오늘날 미국과 유럽이 통합을 이룸으로써 그런 조건을 만들 수 있다고 말한다.
지은 책으로 The Rise of the Virtual State(1999년), The Domestic... Bases of Grand Strategy(1993년), America’s Economic Resurgence(1990년), The Rise of the Trading State(1986년), International Relations: Peace or War?(1973년) 등이 있다.
역자 : 유강은
국제 문제 전문 번역가. 옮긴 책으로 『데드핸드』(2015년), 『보이지 않는 손』(2015년), 『땅뺏기』(2014년), 『조지 케넌의 미국 외교 50년』(2013년), 『호모 인베스투스』(2013년), 『왜 신자유주의는 죽지 않는 가』(2012년), 『의혹을 팝니다』(2012년), 『미국 민중사 1·2』(2008년)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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