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책 소개
나는 산골 아이
동네 골목 마을 골짜기
안 가 본 데 없는
나는 산골 아이
아직 바다도 모르고
사람 많다는 서울에도 가 본 적이 없는
나는 산골 아이
하지만 이다음
온 세상 둘러보고 싶은 꿈으로
가득 차 있는
나는 산골 아이
어느 골에 다래나무가 많고
어느 골에 메토끼, 노루가 많이 내려오는지
맑은 샘물은 어디서 솟는지
누구네 밭에 멧돼지가 잘 내려오는지
샅샅이 알고 있어요
그러나 아직 기차를 타 보지 않았고
바닷가에 서 보지도 않은
나는 산골 아이
먼 뒷날 나라 안 돌아 볼 수 있다면
이 세상 구경다닐 수 있다면
우리 산골 마음보다 더 좋은 데
어디 있나 찾아보겠어요.
▣ 신문 서평
산골의 흑백풍경, 유고시집
교사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인 임길택씨의 유고시들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시인은 교사로 지낸 스무 해 중 열네 해를 강원도 산골마을과 탄광촌에서 보내며, 그곳의 가난한 아이들을 따뜻하게 보듬는 시와 동화를 남겼다. 유고시집인 <산골 아이>에도 여름엔 ‘등이 까맣도록 개울에서 놀고’, 매서운 겨울 바람에도 아랑곳 않는 순박한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새 학년 되면 어쩌냐고/ 공부 좀 하라는 어머니 얘기/ 귀에 들어오지 않아요./ 아무리 책을 보아도/ 모르는 글씨 하나도 없는데/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산골 아이 4>)
꽉 짜인 ‘스케줄’에 맞춰 학원순례 다니는 도회지 아이들과 달리, 가난한 산골 아이들은 순하고 정겨운 자연을 공부감으로 삼는다. 산골에선 아침이슬이 줄강낭콩 가지 끝에 거미줄이 세 개나 있다고 하얗게 색칠해주고, 납작 웅크렸던 봄 쇠뜨기가 “수건 쓴 아줌마 지나갔나” 살피며 다시 올라온다. 아직 바다도 모르고 사람 많다는 서울에도 가 본 적이 없지만, 산골 아이들은 어느 골에 다래나무가 많고, 어느 골에 메토끼·노루가 많이 내려오는지 모두 안다.
가끔씩 낯선 어른들이 개구리 한 마리에 오백 원을 주마며 꼬드기지만, 아이들은 힘껏 고개를 가로젖는다. ‘참개구리 사라지니 골짜기 죽어가고, 골짜기 죽어가니 마을이 죽어’간다는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인은 산골 아이들이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중학교에 가도 주말에는 함께 밭에 나오겠다”고 장담하지만, 어머니들은 “그 땐 공부해야지”라고 조용히 타이른다. 언젠가 눈 내린 논을 ‘짓밟아 녹여줄 아이들’이 모두 떠나면, 눈은 ‘마을 떠난 아이들 소식에 귀 기울이며’ 조용히 녹아들 것이다.
<산골 아이>에 담긴 77편의 시들은 조금씩 사라져가는 산골 마을의 풍경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표제작인 연작시 32편은 시인이 폐암으로 마지막 투병 중이던 지난 1997년 11월과 12월에 쓴 작품들이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책의 여백을 메우고 있는 정갈한 흑백 사진들이 고즈넉하다. [2002.12.16 한겨레신문 임주환 기자]
나는 산골 아이
동네 골목 마을 골짜기
안 가 본 데 없는
나는 산골 아이
아직 바다도 모르고
사람 많다는 서울에도 가 본 적이 없는
나는 산골 아이
하지만 이다음
온 세상 둘러보고 싶은 꿈으로
가득 차 있는
나는 산골 아이
어느 골에 다래나무가 많고
어느 골에 메토끼, 노루가 많이 내려오는지
맑은 샘물은 어디서 솟는지
누구네 밭에 멧돼지가 잘 내려오는지
샅샅이 알고 있어요
그러나 아직 기차를 타 보지 않았고
바닷가에 서 보지도 않은
나는 산골 아이
먼 뒷날 나라 안 돌아 볼 수 있다면
이 세상 구경다닐 수 있다면
우리 산골 마음보다 더 좋은 데
어디 있나 찾아보겠어요.
▣ 신문 서평
산골의 흑백풍경, 유고시집
교사 시인이자 아동문학가인 임길택씨의 유고시들이 책으로 묶여 나왔다.
시인은 교사로 지낸 스무 해 중 열네 해를 강원도 산골마을과 탄광촌에서 보내며, 그곳의 가난한 아이들을 따뜻하게 보듬는 시와 동화를 남겼다. 유고시집인 <산골 아이>에도 여름엔 ‘등이 까맣도록 개울에서 놀고’, 매서운 겨울 바람에도 아랑곳 않는 순박한 아이들의 모습이 담겨 있다.
“새 학년 되면 어쩌냐고/ 공부 좀 하라는 어머니 얘기/ 귀에 들어오지 않아요./ 아무리 책을 보아도/ 모르는 글씨 하나도 없는데/ 무슨 공부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산골 아이 4>)
꽉 짜인 ‘스케줄’에 맞춰 학원순례 다니는 도회지 아이들과 달리, 가난한 산골 아이들은 순하고 정겨운 자연을 공부감으로 삼는다. 산골에선 아침이슬이 줄강낭콩 가지 끝에 거미줄이 세 개나 있다고 하얗게 색칠해주고, 납작 웅크렸던 봄 쇠뜨기가 “수건 쓴 아줌마 지나갔나” 살피며 다시 올라온다. 아직 바다도 모르고 사람 많다는 서울에도 가 본 적이 없지만, 산골 아이들은 어느 골에 다래나무가 많고, 어느 골에 메토끼·노루가 많이 내려오는지 모두 안다.
가끔씩 낯선 어른들이 개구리 한 마리에 오백 원을 주마며 꼬드기지만, 아이들은 힘껏 고개를 가로젖는다. ‘참개구리 사라지니 골짜기 죽어가고, 골짜기 죽어가니 마을이 죽어’간다는 선생님 말씀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시인은 산골 아이들이 항상 그 자리를 지키고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아이들은 “중학교에 가도 주말에는 함께 밭에 나오겠다”고 장담하지만, 어머니들은 “그 땐 공부해야지”라고 조용히 타이른다. 언젠가 눈 내린 논을 ‘짓밟아 녹여줄 아이들’이 모두 떠나면, 눈은 ‘마을 떠난 아이들 소식에 귀 기울이며’ 조용히 녹아들 것이다.
<산골 아이>에 담긴 77편의 시들은 조금씩 사라져가는 산골 마을의 풍경을 꼼꼼하게 기록했다. 표제작인 연작시 32편은 시인이 폐암으로 마지막 투병 중이던 지난 1997년 11월과 12월에 쓴 작품들이다.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책의 여백을 메우고 있는 정갈한 흑백 사진들이 고즈넉하다. [2002.12.16 한겨레신문 임주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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