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삶터의 뿌리 ‘지역’에서 한국문화의 섬세한 결을 짚다
서울 인구 1000만, 이를 포함한 수도권 인구 2500만. 한국사람 절반이 서울을 중심으로 한 이 메갈로폴리스에 살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그 밖에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거의 모든 것이 이곳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오늘날 한국 삶의 표준화는 ‘서울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고, 삶을 보는 관점 또한 서울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나머지 곳은 뭉뚱그려 ‘지방’이라 불리며 이들이 제각각 지닌 개성은 ‘주변’ 또는 ‘변방’의 것으로 밀려나고 있는 현실이다. 여가 수요가 늘고 관광과 여행이 흥하면서 지방에 대한 관심이 느는 듯 보이지만 이것 또한 각 지역을 타자화하는 시선일 뿐이다. 지방을 관광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 그 나름의 빛깔을 이해하고 섬세한 결을 짚어볼 때 한국문화는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이에 알마 출판사는 ‘한국문화’ 시리즈를 통해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삶의 현장, 살아 숨 쉬는 공간인 여러 ‘지역’이 품은 가치에 주목한다. 그 시작으로 경상남도 진주의 문화를 톺아보는 책들을 ‘진주 문화를 찾아서’라는 이름으로 준비했다. 이 시리즈는 ‘진주의 옛 건축’ ‘진주성 이야기’ ‘진주농악’ 등으로 이어지며, ‘진주성 전투’ ‘논개’ 등 이전에 소개되었던 주제를 복간해 재조명한다. 단순히 ‘지역의 한 사례’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주체’로 진주 문화를 자리매김하고 살펴보는 일은 한국문화가 지닌 다양한 빛깔과 섬세한 결을 전혀 새로운 눈으로 느끼고 이해하는 신선한 기회가 될 것이다.
‘성웅이 이끈 호국의 역사’를 넘어 재조명하는 임진왜란의 역사적 의미
영화 〈명량〉이 10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임진왜란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심이 여전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이 전쟁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단편적인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한편에는 조선 사회의 정체와 저력에 대한 무지와 경멸이 있다. 도피만을 거듭하는 무능한 임금과 조정, 패전만을 거듭하는 무력한 관군의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못난 조정을 대신해 승전을 이끈 신화적인 성웅들이 있다.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하는 이순신이 그 선두이며 그 뒤로 곽재우, 사명대사와 같은 의병장들이 뒤를 잇는다. 이런 인식은 소설, 드라마, 영화 등 수없이 많은 매체에서 반복되어왔을 만큼 극적이지만 이 전쟁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가로막는 장벽이기도 하다.
전쟁은 조선이 갖고 있는 한계만이 아니라 저력도 드러냈다. 전쟁에 참여했던 동아시아 3국 중 7년여의 전쟁이 끝난 후 무너지지 않은 정체는 오로지 조선 하나였다. 이를 몇몇 인물들의 힘만으로 돌리는 것은 결코 옳지 못한 평가일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런 이해는 그 전쟁의 기간을 치열하게 견뎌내야 했던 수많은 조선 민중의 핏물 배인 경험을 의병과 피해자로 단순화하며 무대 뒷편으로 밀어낸다. 전투 과정에서 있었던 관군과 의병, 민중의 협력은 조선이 어떻게 전쟁을 견뎌낼 수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진주성에서 있었던 두 차례 전투를 지금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 《용사일기》 《난중잡록》 《고대일록》 등 다양한 사료를 통해 복원한 진주성 전투의 면면은 성웅들의 무용담으로 덧칠된 임진왜란을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임진왜란의 결정적 두 전투 돌아보다
《진주성 전투》는 남강 가 험준한 절벽 위에 석벽을 두른 천험의 요새 진주성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경상우도의 거점이자 호남을 방어하는 울타리였던 이곳에서 임진왜란은 물론이고 한국 전쟁사에서도 손꼽히는 치열한 전투가 두 차례 있었다. 이 책은 진주대첩의 빛나는 승리를 이끌고 제2차 진주성 전투의 뜨거운 혈전을 치러낸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되돌아본다.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에 엄격히 기반하되 되도록 쉬운 우리말로 풀어 써 진주성 전투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며, 임진년과 계사년의 전황을 오늘날의 지리에 비춰 설명해 공간적 이해를 도왔다.
▶임진년 진주대첩, “온 나라가 함몰되고 남은 곳이 적으니 다만 이 한 성에 나라의 명맥이 달렸다”
임진왜란의 전황을 뒤집은 전투를 꼽으라면 단연코 바다의 한산대첩과 육지의 진주대첩이 첫 두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한산대첩은 일본군의 제해권을 빼앗고 전라, 충청에서 황해, 평안도에 이르는 조선의 서부 지역을 지켜낸 핵심 전투였다. 그러나 이 전투의 성과는 제1차 진주성 전투(진주대첩)의 큰 승리가 없었다면 무의미했을지 모른다. 관민이 합심하여 일본군 3만여 명의 총공세를 저지함으로써 일본군의 전라 지역 입성을 막아냈을 뿐 아니라 일본 수군과 육군의 협격을 완전히 분쇄했다. 진주성에서의 패전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고하는 것을 꺼릴 정도로 일본군의 충격은 컸다. 특히 이 전투와 이어 벌어진 행주대첩에서 연이어 일본군이 패전하면서 전황은 완전히 뒤집어지게 되었다.
《진주성 전투》는 천험의 요새였던 진주성의 입지와 성벽의 구성, 조선 관군과 의병의 전략 전술과 무기 체계, 전투 상황을 알기 쉽고 명쾌하게 복원했다. 임진왜란 이전에 평범한 지방관에 불과했던 진주 목사 김시민이 놀라운 승리를 이끈 이야기가 꾸밈없는 진솔한 교훈을 준다.
▶계사년 제2차 진주성 전투, “의를 지켜 생명을 돌보지 아니하였으니 그 정충대절精忠大節이 천지간에 빛나다”
진주대첩의 승전은 안타깝게도 이듬해 참혹한 비극으로 이어진다. 제1차 진주성 전투의 패전에 대한 복수와 조선 남부 점령을 노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총력을 동원해 진주성을 공격한 것이다. 진주성의 군사는 수천에 불과했으나 일본의 군사는 10만에 가까운 대군이었다. 명나라 군의 소극적 태도로 인한 외교적 혼선과 조정의 혼란이 낳은 중과부적, 고립무원의 상황이었다. 임진왜란에서 가장 참혹했던 이 전투에서 사력을 다해 싸운 관군과 의병들 그리고 그들에 기탁해 성에서 전란을 피하고자 했던 백성까지 모두 6만에 이르는 인명이 희생되었다. 《진주성 전투》는 그동안 ‘조국을 위한 장렬한 희생’에 초점을 맞추어 알려졌던 제2차 진주성 전투를 사료를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되살려냈다. 치열했던 전투 상황, 패전의 원인과 결과, 전체 전황에 영향을 미친 바를 분명히 밝히고 이 혈전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본다.
▣ 작가 소개
저자 : 지승종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분야는 한국사회사이며 주된 관심사는 조선시대 노비의 사회사다. 주요 저작으로는 《조선전기 노비신분 연구》와 《근대사회변동과 양반》(공저) 들이 있으며, 진주성 전투에 관해서는 〈16세기 말 진주성 전투의 배경과 전투 상황에 관한 연구〉(《경남문화연구》 17)를 썼다. 근래에는 ‘유불 교대儒佛 交代’를 화두로 삼아 우리 전통사회의 문화적 변동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진주에 와서 산 지도 30년이 조금 넘었는데 진주사람이 되고자 했던 초심은 아직 이루지 못한 듯하다. 《진주성 전투》가 그러한 부담을 더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사진 : 김용철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과를 나온 뒤 경성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학 석사학위를 받고 중부대학교 대학원에서 분장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진주보건대학, 중부대학교, 경남대학교에서 초빙강사와 겸임교수로 사진 및 분장을 가르친다. ‘자연과 인간’ ‘프랑스·이집트 기행전’ ‘농무’ ‘기독교 성지순례’ ‘당산나무’ 등 다섯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 주요 목차
발간사
머리말
1장 진주성 전투와 진주성
진주대첩과 제2차 진주성 전투 | 천험의 요새 진주성
2장 빛나는 승리
임진왜란 일어나다 | 진주는 호남의 보장保障이니 | 진주성을 지켜라 | 왜적의 칼끝이 진주성을 겨누다 | 의병, 진주성을 구원하러 달려오다 | 왜적이 진주성을 포위하다 | 왜적이 진주성을 공격하다 | 진주대첩을 이루다 | 진주대첩의 의의 | 진주대첩과 김시민
3장 거룩한 충절
다시 위기를 맞은 진주성 | 중과부적 | 고립무원 | 성은 무너지고 충절은 빛나다 | 시 한 수, 이야기 한 편
참고문헌
삶터의 뿌리 ‘지역’에서 한국문화의 섬세한 결을 짚다
서울 인구 1000만, 이를 포함한 수도권 인구 2500만. 한국사람 절반이 서울을 중심으로 한 이 메갈로폴리스에 살고 있다. 정치, 경제, 문화, 그 밖에 삶에 영향을 미치는 거의 모든 것이 이곳을 중심으로 이뤄진다. 오늘날 한국 삶의 표준화는 ‘서울화’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고, 삶을 보는 관점 또한 서울을 중심으로 구성된다. 나머지 곳은 뭉뚱그려 ‘지방’이라 불리며 이들이 제각각 지닌 개성은 ‘주변’ 또는 ‘변방’의 것으로 밀려나고 있는 현실이다. 여가 수요가 늘고 관광과 여행이 흥하면서 지방에 대한 관심이 느는 듯 보이지만 이것 또한 각 지역을 타자화하는 시선일 뿐이다. 지방을 관광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것을 넘어, 그 나름의 빛깔을 이해하고 섬세한 결을 짚어볼 때 한국문화는 더욱 풍요로워질 것이다.
이에 알마 출판사는 ‘한국문화’ 시리즈를 통해 그동안 제대로 평가받지 못했던 삶의 현장, 살아 숨 쉬는 공간인 여러 ‘지역’이 품은 가치에 주목한다. 그 시작으로 경상남도 진주의 문화를 톺아보는 책들을 ‘진주 문화를 찾아서’라는 이름으로 준비했다. 이 시리즈는 ‘진주의 옛 건축’ ‘진주성 이야기’ ‘진주농악’ 등으로 이어지며, ‘진주성 전투’ ‘논개’ 등 이전에 소개되었던 주제를 복간해 재조명한다. 단순히 ‘지역의 한 사례’를 기록하는 것이 아니라 ‘또 하나의 주체’로 진주 문화를 자리매김하고 살펴보는 일은 한국문화가 지닌 다양한 빛깔과 섬세한 결을 전혀 새로운 눈으로 느끼고 이해하는 신선한 기회가 될 것이다.
‘성웅이 이끈 호국의 역사’를 넘어 재조명하는 임진왜란의 역사적 의미
영화 〈명량〉이 1000만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면서 임진왜란에 대한 한국사회의 관심이 여전하다는 사실이 증명되었다. 그러나 이 전쟁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단편적인 수준을 크게 벗어나지 못한다. 한편에는 조선 사회의 정체와 저력에 대한 무지와 경멸이 있다. 도피만을 거듭하는 무능한 임금과 조정, 패전만을 거듭하는 무력한 관군의 이미지가 바로 그것이다. 그리고 그 반대편에는 못난 조정을 대신해 승전을 이끈 신화적인 성웅들이 있다. 엄청난 존재감을 자랑하는 이순신이 그 선두이며 그 뒤로 곽재우, 사명대사와 같은 의병장들이 뒤를 잇는다. 이런 인식은 소설, 드라마, 영화 등 수없이 많은 매체에서 반복되어왔을 만큼 극적이지만 이 전쟁에 대한 역사적 이해를 가로막는 장벽이기도 하다.
전쟁은 조선이 갖고 있는 한계만이 아니라 저력도 드러냈다. 전쟁에 참여했던 동아시아 3국 중 7년여의 전쟁이 끝난 후 무너지지 않은 정체는 오로지 조선 하나였다. 이를 몇몇 인물들의 힘만으로 돌리는 것은 결코 옳지 못한 평가일 것이다. 그뿐 아니라 이런 이해는 그 전쟁의 기간을 치열하게 견뎌내야 했던 수많은 조선 민중의 핏물 배인 경험을 의병과 피해자로 단순화하며 무대 뒷편으로 밀어낸다. 전투 과정에서 있었던 관군과 의병, 민중의 협력은 조선이 어떻게 전쟁을 견뎌낼 수 있었는지를 엿볼 수 있는 중요한 자료다. 진주성에서 있었던 두 차례 전투를 지금 세밀하게 살펴보아야 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조선왕조실록》 《용사일기》 《난중잡록》 《고대일록》 등 다양한 사료를 통해 복원한 진주성 전투의 면면은 성웅들의 무용담으로 덧칠된 임진왜란을 살아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더욱 입체적으로 이해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임진왜란의 결정적 두 전투 돌아보다
《진주성 전투》는 남강 가 험준한 절벽 위에 석벽을 두른 천험의 요새 진주성으로 독자를 초대한다. 경상우도의 거점이자 호남을 방어하는 울타리였던 이곳에서 임진왜란은 물론이고 한국 전쟁사에서도 손꼽히는 치열한 전투가 두 차례 있었다. 이 책은 진주대첩의 빛나는 승리를 이끌고 제2차 진주성 전투의 뜨거운 혈전을 치러낸 옛사람들의 이야기를 되돌아본다. 사료를 바탕으로 역사적 사실에 엄격히 기반하되 되도록 쉬운 우리말로 풀어 써 진주성 전투의 현장을 생생하게 전하며, 임진년과 계사년의 전황을 오늘날의 지리에 비춰 설명해 공간적 이해를 도왔다.
▶임진년 진주대첩, “온 나라가 함몰되고 남은 곳이 적으니 다만 이 한 성에 나라의 명맥이 달렸다”
임진왜란의 전황을 뒤집은 전투를 꼽으라면 단연코 바다의 한산대첩과 육지의 진주대첩이 첫 두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한산대첩은 일본군의 제해권을 빼앗고 전라, 충청에서 황해, 평안도에 이르는 조선의 서부 지역을 지켜낸 핵심 전투였다. 그러나 이 전투의 성과는 제1차 진주성 전투(진주대첩)의 큰 승리가 없었다면 무의미했을지 모른다. 관민이 합심하여 일본군 3만여 명의 총공세를 저지함으로써 일본군의 전라 지역 입성을 막아냈을 뿐 아니라 일본 수군과 육군의 협격을 완전히 분쇄했다. 진주성에서의 패전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게 보고하는 것을 꺼릴 정도로 일본군의 충격은 컸다. 특히 이 전투와 이어 벌어진 행주대첩에서 연이어 일본군이 패전하면서 전황은 완전히 뒤집어지게 되었다.
《진주성 전투》는 천험의 요새였던 진주성의 입지와 성벽의 구성, 조선 관군과 의병의 전략 전술과 무기 체계, 전투 상황을 알기 쉽고 명쾌하게 복원했다. 임진왜란 이전에 평범한 지방관에 불과했던 진주 목사 김시민이 놀라운 승리를 이끈 이야기가 꾸밈없는 진솔한 교훈을 준다.
▶계사년 제2차 진주성 전투, “의를 지켜 생명을 돌보지 아니하였으니 그 정충대절精忠大節이 천지간에 빛나다”
진주대첩의 승전은 안타깝게도 이듬해 참혹한 비극으로 이어진다. 제1차 진주성 전투의 패전에 대한 복수와 조선 남부 점령을 노린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총력을 동원해 진주성을 공격한 것이다. 진주성의 군사는 수천에 불과했으나 일본의 군사는 10만에 가까운 대군이었다. 명나라 군의 소극적 태도로 인한 외교적 혼선과 조정의 혼란이 낳은 중과부적, 고립무원의 상황이었다. 임진왜란에서 가장 참혹했던 이 전투에서 사력을 다해 싸운 관군과 의병들 그리고 그들에 기탁해 성에서 전란을 피하고자 했던 백성까지 모두 6만에 이르는 인명이 희생되었다. 《진주성 전투》는 그동안 ‘조국을 위한 장렬한 희생’에 초점을 맞추어 알려졌던 제2차 진주성 전투를 사료를 바탕으로 객관적으로 되살려냈다. 치열했던 전투 상황, 패전의 원인과 결과, 전체 전황에 영향을 미친 바를 분명히 밝히고 이 혈전의 역사적 의미를 되새겨본다.
▣ 작가 소개
저자 : 지승종
서울대학교 사회학과를 나와 동 대학원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경상대학교 사회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전공분야는 한국사회사이며 주된 관심사는 조선시대 노비의 사회사다. 주요 저작으로는 《조선전기 노비신분 연구》와 《근대사회변동과 양반》(공저) 들이 있으며, 진주성 전투에 관해서는 〈16세기 말 진주성 전투의 배경과 전투 상황에 관한 연구〉(《경남문화연구》 17)를 썼다. 근래에는 ‘유불 교대儒佛 交代’를 화두로 삼아 우리 전통사회의 문화적 변동에도 관심을 두고 있다. 진주에 와서 산 지도 30년이 조금 넘었는데 진주사람이 되고자 했던 초심은 아직 이루지 못한 듯하다. 《진주성 전투》가 그러한 부담을 더는 데 조금이나마 보탬이 되기를 바라고 있다.
사진 : 김용철
경상대학교 사범대학 체육교육학과를 나온 뒤 경성대학교 대학원에서 사진학 석사학위를 받고 중부대학교 대학원에서 분장학 석사학위를 받았다. 진주보건대학, 중부대학교, 경남대학교에서 초빙강사와 겸임교수로 사진 및 분장을 가르친다. ‘자연과 인간’ ‘프랑스·이집트 기행전’ ‘농무’ ‘기독교 성지순례’ ‘당산나무’ 등 다섯 번의 개인전을 열었다.
▣ 주요 목차
발간사
머리말
1장 진주성 전투와 진주성
진주대첩과 제2차 진주성 전투 | 천험의 요새 진주성
2장 빛나는 승리
임진왜란 일어나다 | 진주는 호남의 보장保障이니 | 진주성을 지켜라 | 왜적의 칼끝이 진주성을 겨누다 | 의병, 진주성을 구원하러 달려오다 | 왜적이 진주성을 포위하다 | 왜적이 진주성을 공격하다 | 진주대첩을 이루다 | 진주대첩의 의의 | 진주대첩과 김시민
3장 거룩한 충절
다시 위기를 맞은 진주성 | 중과부적 | 고립무원 | 성은 무너지고 충절은 빛나다 | 시 한 수, 이야기 한 편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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