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민주주의의 끝나지 않은 여정
민주주의 라는 수수께끼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의 핵심 질문은 오늘날 보편적인 정당성을 얻고 있는 통치 모델, 정당한 정치적 권위의 근거라고 거의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그것’을 우리는 왜 하필 ‘민주주의’라고 부르느냐는 것이다. 유별난 질문 같지만, 한번 생각해 보면 도대체 우리는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역사적으로도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아테네 민주주의가 명멸했던 짧은 시기를 제외하곤 근 2,000여 년간 현실은 물론 서구 지성사에서도 그 존재가 희미했을 뿐이다. 이 오랜 세월 동안 민주주의는 그저 사회를 통치하는 여러 정부 형태 가운데 하나로 참고삼아 거론되었을 뿐, 그것이 바람직하다거나 현실에 적합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데모크라티아, 다시 말해 민주주의라는 표현은, 어느 도시 국가 혹은 정치체를 모욕하기 위한 상투적인 표현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민주주의라 부르는 제도 역시, 그 창시자들 역시 그것을 민주주의라 부르길 주저했거나 그렇게 부르길 거부하곤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 창시자들은 민주주의라 부르길 주저했던 제도들을 오늘날 민주주의라고 부르는가? 도대체 언제부터 그리고 왜 민주주의가 정당한 정치적 권위를 일컫는 전 세계적 단일 명칭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 왜 오늘날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정당화하려는 세력들은 왜 하필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선호하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스스로 민주주의자임을 자처하고 있는가? 결국 우리는 왜 오늘날 모두 민주주의자(그저 주어진 갈등 상황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떤 하나의 방편으로 민주주의를 선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어디에서든 민주주의와 경쟁하는 여타의 모든 정치형태가 분명히 부당하다는 것을 확신하며, 민주주의의 우월성이 바로 어디에 있는지 비교적 분명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로서의 민주주의자들)가 되었는가?
이 책은 민주주의가 어떻게 2천 5백 년 전 희랍의 대단히 지역 특수적인 난국에 즉흥적으로 대처하는 치유책으로 시작되어, 잠깐이긴 했지만 열화와도 같이 번성했다가, 다시 근 2천 년 동안 거의 모든 곳에서 사라져 버렸는지를 보여 준다. 또한 이 책은 민주주의가 어떻게 되살아나서 근대 정치의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역사적 맥락 속에서 살펴본 민주주의
오늘날 민주주의의 개념 혹은 역사적 형태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논의 가운데 한 가지 주요 주제는 ‘직접 민주주의’ 대 ‘대의 민주주의’를 둘러싼 논의이다. 말하자면, 직접 민주주의자들은 민주주의의 원형인 아테네 민주주의의 제도적 핵심은 추첨제에 기반을 둔 직접 민주주의였던 반면, 오늘날 우리가 실행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선거에 기반을 둔 대의 민주주의로, 이는 통치하는 자와 통치 받는 자의 동일성, 인민의 자기 통치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으로부터 후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대의 민주주의론자들은 현대사회의 분업화와 통치 규모의 확대로 말미암아 직접 민주주의와 같은 제도적 실천은 불가능하며, 나아가 이는 열정과 파당이 지배하는 분열된 사회를 초래하기에 더는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민주주의에는 어떤 특권적이고 원형적인 제도적 모델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가? 나아가 그와 같은 특정 형태의 제도적 모델들을 그 제도의 역사적 맥락과 분리해 사고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존 던이 제시하는 민주주의의 역사와 그가 던지는 질문은 위와 같은 주장들을 그 역사적 맥락에서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들을 제공한다. 예컨대, 아테네에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을 도입했던 클레이스테네스는 민주주의에 대한 그 어떤 도덕적, 지적 확신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에게 민주주의는 그저 자신과 경쟁 관계에 있던 귀족 세력 및 이와 결탁해 있는 스파르타인들을 견제하기 위해 필요한 지지를 획득할 수 있는 편의적 방편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아가, 아테네 민주주의가 그 전성기를 구가할 무렵, 아테네에 거주하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정치로부터 배제되고 있었으며, 그 위대한 민주주의 아테네를 이끌었던 인물은, 아테네를 전쟁으로 이끌어 결국 거의 파멸케 한 정치 지도자이자, 투키디데스가 묘사하기에 민주주의 아테네를 사실상 지배했던 단 한 사람이었던 페리클레스였다. 이런 아테네를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원형이자 특권적 모델이라고 과연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 직접성과 참여의 수준은 전례 없이 높았지만, 매우 배제적이었으며, 해외 침탈적이고 패권적이었던 아테네 민주주의 말이다.
대의제 민주주의 역시 사정은 더 나아 보이지 않는다. 사실, 대의제 모델을 창시했던 이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건설하려는 체제를 민주주의로 상상하지 않았다. 외려 이들은 모두 그 출발점에서는 민주주의를 부정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대의제 모델은 아래로부터의 광범위한 대중 동원, 특히 노동조합운동과 대중정당의 출현을 통해 선거권을 확장하고 입법적 대의의 범위를 넓힘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흔히 민주주의라고 염두에 두고 있는 모델을 창출했으며, 보수적인 정권의 존속을 위협하기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계기는 전쟁이라는 혼란의 시기에 국한되었고, 평화시에 선거를 통한 대의의 경험 축적은 냉혹한 대의 논리의 확장으로 귀결되었으며, 궁극적으로는 대의제의 창시자들인 매디슨이나 슘페터 등이 말하는 정치인에 의한 지배의 논리로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이 모델을 민주주의의 특권적 모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아니 도대체 우리는 이 모델을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나 있는 것일까?
이처럼 이 책의 저자인 존 던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민주주의의 역사는 한편으로는 명확히 그 시작이 있는 이야기이지만, 당혹스러울 만큼 비연속적이고 단절적인 역사이기도 하다. 또한 그 이야기들과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었던 상식들, 혹은 우리의 기대들을 여지없이 뒤흔들어 놓으며, 어떤 특정 모델과 제도적 틀을 이상화하거나 특권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진지한 의심의 눈초리로 살펴보게 한다. 이 책은 일정한 형태의 민주주의를 상정해서 목표로 제시하고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갖가지 방법을 고민하거나, 그런 기준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잣대로 현실을 분석 내지 진단하거나, 아니면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을 법한 민주주의 모델 또는 이상 자체를 정교화하려는 기존의 작업들에서는 전혀 제기되지 못했던, 그렇지만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물음을 제기하고, 방대한 역사 탐구와 치밀한 텍스트 분석 작업을 통해 그에 관한 답을 찾아간다.
이 책은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민주적인 해설서이자, 통치 형식으로서의 민주주의와 가치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균형 잡힌 이야기를 보여 준다. 나아가, 평등파의 프로그램으로서의 민주주의와 이기주의 질서에 포획된 민주주의 사이의 길항 관계에 대한 세심하면서도 날카로운 분석을 보여 준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 같은 역사적 이해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단지 정치적 수사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민의 자기 통치라는 그 이상을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데 있어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왜 민주주의인가? 정치적 선택으로서의 민주주의
그렇다면, 왜 근대 자본주의적 대의 민주주의라는 특정 국가형태가 왜 부와 권력을 향한 전 지구적 투쟁에서 승리하게 되었을까? 왜 오늘날 우리는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르는가?
일반적으로 이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두 가지 답이 있다. 어떤 이들은 민주주의의 승리가 그것의 자명한 정치적 정의 때문이라고, 즉 그것이 명백히 최선이며, 또 아마도 인간이 지배받는다는 외견상의 모욕을 어쨌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명료하게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이들은 그것만이, 근대 자본주의 경제가 잘 보호되면서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보장해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존 던이 보기에 이는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민주주의는 그것의 관념에서조차 그것이 정의로운 결과와 규칙적이고 체계적인 관계가 있음을 전혀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는 언제나 정의의 관념과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민주주의는 그 주권자이며 관념상 평등한 유권자들에게 그들 자신의 선호를 경제의 작동 조건에 직접 끼워 넣을 수 있는 권리와 어느 정도의 기회를 보장하고 제공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민주주의가 경제의 역동적 효율성을 보장할 안전한 비책이라고 간주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언제든 자본주의 경제의 작동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통치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민주주의가 오늘날과 같은 탁월한 지위를 얻게 되었을까? 왜 우리는 근대 자본주의의 대의제적 통치 형태를 민주주의라 부르게 되었을까? 많은 것들이 불확실하게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저자가 조심스럽게 제기하는 역사적인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무엇보다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걸었던 정치적 기대의 수준이 대단히 낮아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평등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목표와 권위주의적인 수단 및 구조 사이의 긴장이 첨예해진 로베스피에르와 바뵈프 시대의 경험을 통해, 나아가 이 격차에 대한 반대파들의 강력한 규탄과 더불어, 평등의 옹호자들이 항복을 선언하고, 민주주의와의 연계를 더 이상 주장하지 않게 됨에 따라 그렇게 되었다. 이제 평등파들에게 민주주의는 완전한 평등의 체제가 아니라, 그와 같은 평등의 체제에 도달하기 위한 길, 방편, 수단 정도로 간주되었고, 목표와 수단 사이의 첨예한 간극을 보여 주는 혼동과 동일시됨에 따라, 민주주의에 대해 걸었던 사람들의 기대 역시 차갑게 사그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이기주의 질서의 옹호자들이 자신들의 재산권을 더는 위협하지 않는 민주주의의 이름을 참칭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처음에 그것은 디즈레일리나 비스마르크 같은 보수 정치인들의 방어 전략의 일환으로 채택되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아직까지 그것은 이기주의 질서의 헤게모니 질서를 가리키는 자연스러운 이름도 아니었고, 그 헤게모니를 얻기 위한 강력한 실천적 공식도 아닌 상태였다.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고, 이기주의 질서가 자신의 헤게모니를 행사하기 위한 공식 명칭으로 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채택하게 된 것은 바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면서였다. 그 전쟁들을 거치면서 서구의 정치 지도자들은 그들의 경제와 사회의 기본 작동 원리인 저 이기주의 질서가 민주주의라는 단어와 그 단어가 정말로 절박하게 표상하고 있는 관념들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음을 배웠고, 무엇보다 자기 시민들의 충성을 집중시키기 위해, 또 결사적으로 싸워 지킬 가치가 있는 대의(말하자면, 이기주의 질서로서는 결코 제공할 수 없는)를 규정하기 위해 그것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민주주의는 서구 정치 지도자들의, 이기주의 질서의 옹호자들이 자신들의 절박한 정치적 필요에 의해 채택하게 된 비책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다소 냉정해 보이지만,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우리를 통치하는 제도를 민주주의라 부르게 되고, 민주주의가 오늘날과 같은 탁월한 지위를 획득하게 된 현실적인 역사적 이야기인 것이다. 이 같은 민주주의의 역사에 대해 우리는 개탄을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현재의 통치 제도에 대한 부정확한 묘사이자, 잘못된 묘사라고 하소연을 해야 할 것인가? 저자인 존 던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는 오늘날 우리 문명을 규제하는 하나의 지배적 이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 과정을 통해 인민의 자기 통치, 혹은 ‘통치란 통치받는 사람들의 동의에 의해 정당화되어야 하며 정치적 권위의 정도와 지속성도 이들에 의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민주주의의 이념 역시 보존되어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제 민주주의는 단순히 이기주의 질서의 외양을 치장하는 정치적 수사를 넘어, 통치의 정당성을 제시하는 정치적 담론으로 굳건히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가 그 역사적 및 사상적 기원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그 차이는 역사의 어느 지점에서, 왜,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 도대체 왜 하필 민주주의가(단어로서도, 관념으로서도, 또 제도로서도) 오늘날 정치적 실천과 담론을 그토록 장악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것은 저자가 제기하는 민주주의의 수수께끼에 대해 저자가 나름대로 제시하는 대답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존 던 교수는 자신의 대답이 단 하나의 올바른 대답이라고 단언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답을 알아내기가 여전히 어렵다고 스스로 토로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왜 민주주의인가?” 라는 저자의 질문은 온전히 저자만의 질문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답해야 하는 질문이다.
분명한 것은, 이 책이 그런 탐색에 상당히 유용한 지침을 제공하며 우리 나름의 대답 찾기를 고무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를 금과옥조로 삼아 온 한국 사회 구성원 대다수와 달리, 저자 자신은 민주주의를 흔쾌히 찬양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무미건조하게 비판하지도 않는다. 그는 민주주의가 단어로서든 관념으로서든 제도로서든 “좋은 어떤 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고 냉철하게 지적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무언가 좋은 것을 보장한다는 주장을 가장 끈덕지게 내세우는 제도이며, 그런 주장에 일말의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형성되고 재형성되는 제도”라는 점 또한 여전히 참이라고 인정한다. 결국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우리로 하여금 평화와 번영, 정의를 누리며 함께 살 수 있도록 하는 최선의 비책이 될지 그렇지 않은지는 오직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러니까 민주주의(라는 단어·관념·제도)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할 뿐, 그것이 좋은 어떤 것, 평화와 번영, 정의 등을 실제로 가져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끊임없는 노력과 책임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할 것이다. 도대체 왜 민주주의인가? 도대체 왜 우리는 민주주의자인가? 우리는 민주주의를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
▣ 작가 소개
저자 : 존 던 (John Dunn)
이 책의 저자인 존 던 교수는 케임브리지대학 정치학과 교수(2015년 현재 명예교수)이자 킹스 칼리지의 펠로우이며 영국 학술원의 펠로우이기도 한 저명한 학자다. 게다가 한국 정치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여러 차례 직접 방문해 학술 교류와 강연 활동을 펼치기도 했으며, 김대중 전대통령과의 깊은 친분으로 김대중 평화재단의 자문위원을 맡아 한국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한 바 있다.
던 교수의 주 연구 분야는 정치 이론 및 사상이며, 근대 정치 이론에 역사적 조망을 가하는 연구를 주로 수행해 왔다. 1960년대 말 �틴 스키너, 존 포콕과 더불어 이른바 ‘케임브리지학파’를 주도하면서 과거 정치사상가들의 생각과 논변이 형성되는 데는 물론이고 그것을 해석?재구성하는 데도 역사적 맥락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방법론적 반성을 전개했다. 이런 입장이 반영된 [존 로크의 정치사상]The Political Thought of John Locke(1969)이 일찍이 그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 주었고, 이후 정치 이론의 여러 실질적인 쟁점들을 다룬 저서 10여 권도 대개 비슷한 정신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 가운데 이 책 바로 앞에 나온 [비이성의 간계: 정치에 대한 이해]The Cunnin... g of Unreason: Making Sense of Politics(2000)에서 던 교수는 현대 정치 환경에 케임브리지학파의 접근법을 적용해서 민주주의, 부패, 세계화 및 최근의 보수화 경향에 이르기까지 뜨거운 논쟁들을 세심하게 해부해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 책 [민주주의의 수수께끼]는 특히 정치적 이상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실제 사회, 정치적 환경 속에서 어떻게 부침을 겪어 왔는가에 관한 그간의 성찰을 집약해서 보여 주는 저작이다. 또 정치학과 역사학, 철학은 물론 언어학, 고전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을 넘나드는, 문자 그대로 ‘학제적’ 작업의 모범을 보여 주는 역작이기도 하다.
역자 : 강철웅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플라톤 인식론 연구로 석사 학위를, 파르메니데스 단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리말 플라톤 전집을 발간하는 정암학당 창립 멤버이자 케임브리지 대학 클레어홀의 종신회원이다. 현재 강릉원주대 철학과 교수로 있다.
주 연구 분야는 서양 고대 철학이며, 파르메니데스에서 소크라테스를 거쳐 플라톤으로 철학 담론이 발전 및 수용되는 과정에 주목해 왔다. 최근에는 소피스트 전통까지 아우르면서 이분법과 배타성을 넘어서는 진지한 유희의 아곤(콘테스트) 정신을 재조명하여 우리 담론 문화에 되살리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공동 편역)과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뤼시스], [향연], [편지들](공역)을 번역했고, 저서로는 [서양고대철학 1: 철학의 탄생으로부터 플라톤까지](공저)가 있다. 현재는 설득과 비판을 키워드로 삼아 초기 희랍의 철학적 담론 전통을 조명하는 책을 쓰고 있다. cukang@gwnu.ac.kr
역자 : 문지영
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서강대에서 플라톤 정치철학 연구로 석사 학위를, 한국 자유주의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섹스 대학에서 젠더 연구를 전공해 연구의 폭을 넓힌 후 현재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재직 중이다.
주 연구 분야는 정치사상(사)이며, 서양 고대와 근현대 정치사상에서 시작해 한국 근현대 정치사상으로 연구 범위를 확장해 왔다. 최근에는 정치와 젠더, 민주주의와 여성의 문제를 아우를 수 있는 연구 주제를 발전시켜 가고 있다. 로크의 [통치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테렌스 볼과 리처드 대거의 [현대 정치사상의 파노라마: 민주주의의 이상과 정치 이념], 립셋의 [미국 예외주의: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 정당이 없는가] 등을 공역했고, 저서로는 [자유], [지배와 저항: 한국 자유주의의 두 얼굴] 등이 있다. yeunne@hanmail.net
▣ 주요 목차
감사의 말
한국어판 서문
서문 왜 민주주의인가?
1 민주주의의 첫 번째 도래
2 민주주의의 두 번째 도래
3 테르미도르의 긴 그림자
4 왜 민주주의인가?
옮긴이 후기
찾아보기
민주주의의 끝나지 않은 여정
민주주의 라는 수수께끼
이 책 전체를 관통하는 저자의 핵심 질문은 오늘날 보편적인 정당성을 얻고 있는 통치 모델, 정당한 정치적 권위의 근거라고 거의 전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그것’을 우리는 왜 하필 ‘민주주의’라고 부르느냐는 것이다. 유별난 질문 같지만, 한번 생각해 보면 도대체 우리는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해야 할지 난감할 뿐이다. 역사적으로도 민주주의라는 단어는 아테네 민주주의가 명멸했던 짧은 시기를 제외하곤 근 2,000여 년간 현실은 물론 서구 지성사에서도 그 존재가 희미했을 뿐이다. 이 오랜 세월 동안 민주주의는 그저 사회를 통치하는 여러 정부 형태 가운데 하나로 참고삼아 거론되었을 뿐, 그것이 바람직하다거나 현실에 적합하다고 주장하는 이들은 거의 없었다. 오히려 데모크라티아, 다시 말해 민주주의라는 표현은, 어느 도시 국가 혹은 정치체를 모욕하기 위한 상투적인 표현으로 오랫동안 사용되어 왔다. 나아가, 오늘날 우리가 민주주의라 부르는 제도 역시, 그 창시자들 역시 그것을 민주주의라 부르길 주저했거나 그렇게 부르길 거부하곤 했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그 창시자들은 민주주의라 부르길 주저했던 제도들을 오늘날 민주주의라고 부르는가? 도대체 언제부터 그리고 왜 민주주의가 정당한 정치적 권위를 일컫는 전 세계적 단일 명칭으로 자리 잡게 되었을까? 왜 오늘날 자신의 정치적 권위를 정당화하려는 세력들은 왜 하필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선호하게 되었으며, 그리하여 스스로 민주주의자임을 자처하고 있는가? 결국 우리는 왜 오늘날 모두 민주주의자(그저 주어진 갈등 상황 안에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어떤 하나의 방편으로 민주주의를 선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어디에서든 민주주의와 경쟁하는 여타의 모든 정치형태가 분명히 부당하다는 것을 확신하며, 민주주의의 우월성이 바로 어디에 있는지 비교적 분명하게 알고 있는 사람들로서의 민주주의자들)가 되었는가?
이 책은 민주주의가 어떻게 2천 5백 년 전 희랍의 대단히 지역 특수적인 난국에 즉흥적으로 대처하는 치유책으로 시작되어, 잠깐이긴 했지만 열화와도 같이 번성했다가, 다시 근 2천 년 동안 거의 모든 곳에서 사라져 버렸는지를 보여 준다. 또한 이 책은 민주주의가 어떻게 되살아나서 근대 정치의 현실적인 선택지가 되었는지에 대한 이야기이다.
역사적 맥락 속에서 살펴본 민주주의
오늘날 민주주의의 개념 혹은 역사적 형태를 둘러싸고 진행되는 논의 가운데 한 가지 주요 주제는 ‘직접 민주주의’ 대 ‘대의 민주주의’를 둘러싼 논의이다. 말하자면, 직접 민주주의자들은 민주주의의 원형인 아테네 민주주의의 제도적 핵심은 추첨제에 기반을 둔 직접 민주주의였던 반면, 오늘날 우리가 실행하고 있는 민주주의는 선거에 기반을 둔 대의 민주주의로, 이는 통치하는 자와 통치 받는 자의 동일성, 인민의 자기 통치라는 민주주의의 이상으로부터 후퇴한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대의 민주주의론자들은 현대사회의 분업화와 통치 규모의 확대로 말미암아 직접 민주주의와 같은 제도적 실천은 불가능하며, 나아가 이는 열정과 파당이 지배하는 분열된 사회를 초래하기에 더는 바람직하지도 않다고 주장한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민주주의에는 어떤 특권적이고 원형적인 제도적 모델이라는 게 과연 존재하는가? 나아가 그와 같은 특정 형태의 제도적 모델들을 그 제도의 역사적 맥락과 분리해 사고할 수 있을까?
이 책에서 존 던이 제시하는 민주주의의 역사와 그가 던지는 질문은 위와 같은 주장들을 그 역사적 맥락에서 다시 한 번 살펴볼 수 있는 중요한 계기들을 제공한다. 예컨대, 아테네에 민주주의의 제도적 틀을 도입했던 클레이스테네스는 민주주의에 대한 그 어떤 도덕적, 지적 확신을 갖고 있지 않았다. 그에게 민주주의는 그저 자신과 경쟁 관계에 있던 귀족 세력 및 이와 결탁해 있는 스파르타인들을 견제하기 위해 필요한 지지를 획득할 수 있는 편의적 방편 가운데 하나에 불과했던 것이다. 나아가, 아테네 민주주의가 그 전성기를 구가할 무렵, 아테네에 거주하고 있던 대부분의 사람들이 여전히 정치로부터 배제되고 있었으며, 그 위대한 민주주의 아테네를 이끌었던 인물은, 아테네를 전쟁으로 이끌어 결국 거의 파멸케 한 정치 지도자이자, 투키디데스가 묘사하기에 민주주의 아테네를 사실상 지배했던 단 한 사람이었던 페리클레스였다. 이런 아테네를 우리가 실천하고 있는 민주주의의 제도적 원형이자 특권적 모델이라고 과연 이야기할 수 있을까? 그 직접성과 참여의 수준은 전례 없이 높았지만, 매우 배제적이었으며, 해외 침탈적이고 패권적이었던 아테네 민주주의 말이다.
대의제 민주주의 역시 사정은 더 나아 보이지 않는다. 사실, 대의제 모델을 창시했던 이들은 대부분 자신들이 건설하려는 체제를 민주주의로 상상하지 않았다. 외려 이들은 모두 그 출발점에서는 민주주의를 부정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이 대의제 모델은 아래로부터의 광범위한 대중 동원, 특히 노동조합운동과 대중정당의 출현을 통해 선거권을 확장하고 입법적 대의의 범위를 넓힘으로써 오늘날 우리가 흔히 민주주의라고 염두에 두고 있는 모델을 창출했으며, 보수적인 정권의 존속을 위협하기도 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런 계기는 전쟁이라는 혼란의 시기에 국한되었고, 평화시에 선거를 통한 대의의 경험 축적은 냉혹한 대의 논리의 확장으로 귀결되었으며, 궁극적으로는 대의제의 창시자들인 매디슨이나 슘페터 등이 말하는 정치인에 의한 지배의 논리로 정착되었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과연 이 모델을 민주주의의 특권적 모델이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인가? 아니 도대체 우리는 이 모델을 민주주의라고 부를 수나 있는 것일까?
이처럼 이 책의 저자인 존 던이 우리에게 제시하는 민주주의의 역사는 한편으로는 명확히 그 시작이 있는 이야기이지만, 당혹스러울 만큼 비연속적이고 단절적인 역사이기도 하다. 또한 그 이야기들과 저자가 던지는 질문들은 민주주의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었던 상식들, 혹은 우리의 기대들을 여지없이 뒤흔들어 놓으며, 어떤 특정 모델과 제도적 틀을 이상화하거나 특권화하는 것에 대해서도 진지한 의심의 눈초리로 살펴보게 한다. 이 책은 일정한 형태의 민주주의를 상정해서 목표로 제시하고 거기에 도달할 수 있는 갖가지 방법을 고민하거나, 그런 기준으로서의 민주주의를 잣대로 현실을 분석 내지 진단하거나, 아니면 바람직한 것으로 간주될 수 있을 법한 민주주의 모델 또는 이상 자체를 정교화하려는 기존의 작업들에서는 전혀 제기되지 못했던, 그렇지만 민주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대단히 의미심장한 물음을 제기하고, 방대한 역사 탐구와 치밀한 텍스트 분석 작업을 통해 그에 관한 답을 찾아간다.
이 책은 민주주의에 대한 가장 민주적인 해설서이자, 통치 형식으로서의 민주주의와 가치로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균형 잡힌 이야기를 보여 준다. 나아가, 평등파의 프로그램으로서의 민주주의와 이기주의 질서에 포획된 민주주의 사이의 길항 관계에 대한 세심하면서도 날카로운 분석을 보여 준다. 민주주의에 대한 이 같은 역사적 이해는 오늘날 민주주의가 단지 정치적 수사에만 머무르지 않고 인민의 자기 통치라는 그 이상을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할 수 있을지를 고민하는 데 있어 중요한 출발점이 될 것이다.
왜 민주주의인가? 정치적 선택으로서의 민주주의
그렇다면, 왜 근대 자본주의적 대의 민주주의라는 특정 국가형태가 왜 부와 권력을 향한 전 지구적 투쟁에서 승리하게 되었을까? 왜 오늘날 우리는 이것을 민주주의라고 부르는가?
일반적으로 이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두 가지 답이 있다. 어떤 이들은 민주주의의 승리가 그것의 자명한 정치적 정의 때문이라고, 즉 그것이 명백히 최선이며, 또 아마도 인간이 지배받는다는 외견상의 모욕을 어쨌든 받아들일 수 있게 되는, 명료하게 정당화할 수 있는 유일한 근거이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다른 이들은 그것만이, 근대 자본주의 경제가 잘 보호되면서 원활하게 작동하도록 보장해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인 존 던이 보기에 이는 사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한편으로 민주주의는 그것의 관념에서조차 그것이 정의로운 결과와 규칙적이고 체계적인 관계가 있음을 전혀 보장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민주주의는 언제나 정의의 관념과 충돌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 민주주의는 그 주권자이며 관념상 평등한 유권자들에게 그들 자신의 선호를 경제의 작동 조건에 직접 끼워 넣을 수 있는 권리와 어느 정도의 기회를 보장하고 제공하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민주주의가 경제의 역동적 효율성을 보장할 안전한 비책이라고 간주할 만한 것은 아무것도 없으며, 언제든 자본주의 경제의 작동을 위태롭게 할 수 있는 통치 형태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왜 민주주의가 오늘날과 같은 탁월한 지위를 얻게 되었을까? 왜 우리는 근대 자본주의의 대의제적 통치 형태를 민주주의라 부르게 되었을까? 많은 것들이 불확실하게 남아 있기는 하지만, 저자가 조심스럽게 제기하는 역사적인 이유들은 다음과 같다. 우선 무엇보다 사람들이 민주주의에 걸었던 정치적 기대의 수준이 대단히 낮아졌다는 것이다. 그것은 한편으로는, 평등주의적이고 민주주의적인 목표와 권위주의적인 수단 및 구조 사이의 긴장이 첨예해진 로베스피에르와 바뵈프 시대의 경험을 통해, 나아가 이 격차에 대한 반대파들의 강력한 규탄과 더불어, 평등의 옹호자들이 항복을 선언하고, 민주주의와의 연계를 더 이상 주장하지 않게 됨에 따라 그렇게 되었다. 이제 평등파들에게 민주주의는 완전한 평등의 체제가 아니라, 그와 같은 평등의 체제에 도달하기 위한 길, 방편, 수단 정도로 간주되었고, 목표와 수단 사이의 첨예한 간극을 보여 주는 혼동과 동일시됨에 따라, 민주주의에 대해 걸었던 사람들의 기대 역시 차갑게 사그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이기주의 질서의 옹호자들이 자신들의 재산권을 더는 위협하지 않는 민주주의의 이름을 참칭했기 때문이기도 했다. 처음에 그것은 디즈레일리나 비스마르크 같은 보수 정치인들의 방어 전략의 일환으로 채택되었다. 하지만 당시만 해도 아직까지 그것은 이기주의 질서의 헤게모니 질서를 가리키는 자연스러운 이름도 아니었고, 그 헤게모니를 얻기 위한 강력한 실천적 공식도 아닌 상태였다. 그것이 민주주의라는 이름을 전면에 내세우고, 이기주의 질서가 자신의 헤게모니를 행사하기 위한 공식 명칭으로 민주주의를 전면적으로 채택하게 된 것은 바로 두 차례의 세계대전과 냉전을 거치면서였다. 그 전쟁들을 거치면서 서구의 정치 지도자들은 그들의 경제와 사회의 기본 작동 원리인 저 이기주의 질서가 민주주의라는 단어와 그 단어가 정말로 절박하게 표상하고 있는 관념들을 필요로 하는 상황이 있을 수 있음을 배웠고, 무엇보다 자기 시민들의 충성을 집중시키기 위해, 또 결사적으로 싸워 지킬 가치가 있는 대의(말하자면, 이기주의 질서로서는 결코 제공할 수 없는)를 규정하기 위해 그것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말하자면, 민주주의는 서구 정치 지도자들의, 이기주의 질서의 옹호자들이 자신들의 절박한 정치적 필요에 의해 채택하게 된 비책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다소 냉정해 보이지만, 이것이 바로 오늘날 우리가 우리를 통치하는 제도를 민주주의라 부르게 되고, 민주주의가 오늘날과 같은 탁월한 지위를 획득하게 된 현실적인 역사적 이야기인 것이다. 이 같은 민주주의의 역사에 대해 우리는 개탄을 해야 할 것인가? 그것은 현재의 통치 제도에 대한 부정확한 묘사이자, 잘못된 묘사라고 하소연을 해야 할 것인가? 저자인 존 던의 대답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오히려 이 과정을 통해 민주주의는 오늘날 우리 문명을 규제하는 하나의 지배적 이상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고, 그 과정을 통해 인민의 자기 통치, 혹은 ‘통치란 통치받는 사람들의 동의에 의해 정당화되어야 하며 정치적 권위의 정도와 지속성도 이들에 의해서만 정당화될 수 있다는’ 민주주의의 이념 역시 보존되어 더욱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이제 민주주의는 단순히 이기주의 질서의 외양을 치장하는 정치적 수사를 넘어, 통치의 정당성을 제시하는 정치적 담론으로 굳건히 자리 잡게 되었다는 것이다.
우리는 민주주의로 무엇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책은 오늘날 우리가 알고 있는 민주주의가 그 역사적 및 사상적 기원과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그 차이는 역사의 어느 지점에서, 왜, 어떻게, 발생하게 되었는지, 도대체 왜 하필 민주주의가(단어로서도, 관념으로서도, 또 제도로서도) 오늘날 정치적 실천과 담론을 그토록 장악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그것은 저자가 제기하는 민주주의의 수수께끼에 대해 저자가 나름대로 제시하는 대답이기도 하다. 그렇지만, 존 던 교수는 자신의 대답이 단 하나의 올바른 대답이라고 단언하지 않는다. 심지어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답을 알아내기가 여전히 어렵다고 스스로 토로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더, “왜 민주주의인가?” 라는 저자의 질문은 온전히 저자만의 질문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답해야 하는 질문이다.
분명한 것은, 이 책이 그런 탐색에 상당히 유용한 지침을 제공하며 우리 나름의 대답 찾기를 고무한다는 점이다. 민주주의를 금과옥조로 삼아 온 한국 사회 구성원 대다수와 달리, 저자 자신은 민주주의를 흔쾌히 찬양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무미건조하게 비판하지도 않는다. 그는 민주주의가 단어로서든 관념으로서든 제도로서든 “좋은 어떤 것도 보장해 주지 않는다”고 냉철하게 지적하지만, 동시에 그것이 “무언가 좋은 것을 보장한다는 주장을 가장 끈덕지게 내세우는 제도이며, 그런 주장에 일말의 설득력을 부여하기 위해 형성되고 재형성되는 제도”라는 점 또한 여전히 참이라고 인정한다. 결국 그에 따르면, 민주주의가 우리로 하여금 평화와 번영, 정의를 누리며 함께 살 수 있도록 하는 최선의 비책이 될지 그렇지 않은지는 오직 우리 자신에게 달려 있다. 그러니까 민주주의(라는 단어·관념·제도)를 받아들였다는 것은 단지 시작에 불과할 뿐, 그것이 좋은 어떤 것, 평화와 번영, 정의 등을 실제로 가져오도록 하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의 끊임없는 노력과 책임이 수반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다음과 같은 질문에 답변을 해야 할 것이다. 도대체 왜 민주주의인가? 도대체 왜 우리는 민주주의자인가? 우리는 민주주의를 통해 무엇을 할 것인가?
▣ 작가 소개
저자 : 존 던 (John Dunn)
이 책의 저자인 존 던 교수는 케임브리지대학 정치학과 교수(2015년 현재 명예교수)이자 킹스 칼리지의 펠로우이며 영국 학술원의 펠로우이기도 한 저명한 학자다. 게다가 한국 정치에도 큰 관심을 가지고 여러 차례 직접 방문해 학술 교류와 강연 활동을 펼치기도 했으며, 김대중 전대통령과의 깊은 친분으로 김대중 평화재단의 자문위원을 맡아 한국과 각별한 관계를 유지한 바 있다.
던 교수의 주 연구 분야는 정치 이론 및 사상이며, 근대 정치 이론에 역사적 조망을 가하는 연구를 주로 수행해 왔다. 1960년대 말 �틴 스키너, 존 포콕과 더불어 이른바 ‘케임브리지학파’를 주도하면서 과거 정치사상가들의 생각과 논변이 형성되는 데는 물론이고 그것을 해석?재구성하는 데도 역사적 맥락이 중요하다는 점을 강조하는 방법론적 반성을 전개했다. 이런 입장이 반영된 [존 로크의 정치사상]The Political Thought of John Locke(1969)이 일찍이 그에게 국제적 명성을 안겨 주었고, 이후 정치 이론의 여러 실질적인 쟁점들을 다룬 저서 10여 권도 대개 비슷한 정신을 바탕에 깔고 있다.
그 가운데 이 책 바로 앞에 나온 [비이성의 간계: 정치에 대한 이해]The Cunnin... g of Unreason: Making Sense of Politics(2000)에서 던 교수는 현대 정치 환경에 케임브리지학파의 접근법을 적용해서 민주주의, 부패, 세계화 및 최근의 보수화 경향에 이르기까지 뜨거운 논쟁들을 세심하게 해부해 보여 주었다. 그리고 이 책 [민주주의의 수수께끼]는 특히 정치적 이상으로서의 민주주의가 실제 사회, 정치적 환경 속에서 어떻게 부침을 겪어 왔는가에 관한 그간의 성찰을 집약해서 보여 주는 저작이다. 또 정치학과 역사학, 철학은 물론 언어학, 고전학 등 다양한 학문 영역을 넘나드는, 문자 그대로 ‘학제적’ 작업의 모범을 보여 주는 역작이기도 하다.
역자 : 강철웅
서울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플라톤 인식론 연구로 석사 학위를, 파르메니데스 단편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우리말 플라톤 전집을 발간하는 정암학당 창립 멤버이자 케임브리지 대학 클레어홀의 종신회원이다. 현재 강릉원주대 철학과 교수로 있다.
주 연구 분야는 서양 고대 철학이며, 파르메니데스에서 소크라테스를 거쳐 플라톤으로 철학 담론이 발전 및 수용되는 과정에 주목해 왔다. 최근에는 소피스트 전통까지 아우르면서 이분법과 배타성을 넘어서는 진지한 유희의 아곤(콘테스트) 정신을 재조명하여 우리 담론 문화에 되살리는 데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단편 선집](공동 편역)과 플라톤의 [소크라테스의 변명], [뤼시스], [향연], [편지들](공역)을 번역했고, 저서로는 [서양고대철학 1: 철학의 탄생으로부터 플라톤까지](공저)가 있다. 현재는 설득과 비판을 키워드로 삼아 초기 희랍의 철학적 담론 전통을 조명하는 책을 쓰고 있다. cukang@gwnu.ac.kr
역자 : 문지영
이화여대 정외과를 졸업하고 서강대에서 플라톤 정치철학 연구로 석사 학위를, 한국 자유주의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서섹스 대학에서 젠더 연구를 전공해 연구의 폭을 넓힌 후 현재 한국여성정책연구원에 재직 중이다.
주 연구 분야는 정치사상(사)이며, 서양 고대와 근현대 정치사상에서 시작해 한국 근현대 정치사상으로 연구 범위를 확장해 왔다. 최근에는 정치와 젠더, 민주주의와 여성의 문제를 아우를 수 있는 연구 주제를 발전시켜 가고 있다. 로크의 [통치론], 마키아벨리의 [군주론], 테렌스 볼과 리처드 대거의 [현대 정치사상의 파노라마: 민주주의의 이상과 정치 이념], 립셋의 [미국 예외주의: 미국에는 왜 사회주의 정당이 없는가] 등을 공역했고, 저서로는 [자유], [지배와 저항: 한국 자유주의의 두 얼굴] 등이 있다. yeunne@hanmail.net
▣ 주요 목차
감사의 말
한국어판 서문
서문 왜 민주주의인가?
1 민주주의의 첫 번째 도래
2 민주주의의 두 번째 도래
3 테르미도르의 긴 그림자
4 왜 민주주의인가?
옮긴이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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