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시인의 말]
등단 20년 만에 첫 시집을 묶는다.
밥벌이하느라 잊고 지내던 시(詩)를 다시 쓴 지 3년,
아직도 말[詩] 농사에 기름기가 빠지지 않았다.
원교 이광사 편액을 떼게 했다가 8년 만에 다시 자신의 것을 떼고 이광사의 편액을 걸라고 했던 완당 김정희. 한두 번의 붓질로 대략 그려내는 그의 일필초초(一筆草草)의 갈필(渴筆)이 뒷날 〈세한도〉를 보게 했다.
객관적 형상을 버리고 골계미를 갖게 하는 것,
불구형사(不求形似)는 그래서 어려운 일이다.
나는 아직 멀었다.
[출판사 서평]
성찰을 수행하는 세 가지 방식
1. 기억하기
“미쳐야 산다”라는 말이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성공의 모토가 되고 있는 말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미친 듯이 모든 것을 바쳐야 성공한다는 말이지만 이 말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경박성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미쳐야 사는 삶에는 기억이 필요하지 않다. 눈앞의 성공과 그것으로 나아가는 지금의 열정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기억은 우리의 진전을 방해하는 퇴행이거나 열정을 가로막는 트라우마로 치부된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 때문에 행복해하거나 슬퍼하고 또 그것 때문에 분노하기도 한다. 기억은 우리의 욕망에 형식을 부여한다. 한 사람의 기억을 지배하면 곧 그 삶을 지배하게 된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기억을 갖는다는 것은 삶에 대한 가장 진지한 성찰의 시작이다. 이런 생각에서 정하선 시인은 자신의 시 쓰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머리에 찬 서리 내리고/살아온 날들을 더듬어보는 시간/아래채에 군불을 때면서 생각한다/지난 세월 내가/잡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문득, 저 유년의 끝자락/햇살 속의 먼지를/잡겠다고 한 것은 아닐까/오늘, 군불을 때는 저녁에/부지깽이로 낙서를 하다 말고/가만히 돌아보는 것이다 ―「군불」 부분
시인에게 시를 쓰는 행위는 군불을 때는 행위이고 또한 그것은 그 사위어가는 군불 속에서 과거의 기억을 “가만히 돌아보는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왜 기억들을 되돌아보려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성찰을 위해서다.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이 기억을 지우고 과거를 잊으라고 한다. 고통스러운 과거와 힘든 일들은 잊고 행복한 앞날을 이야기하자고 한다. 하지만 이 기억을 잊어버리는 사회는 경박해진다. 이러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진지한 성찰보다는 가벼운 쾌락에 몸을 맡기고 순간의 오락에 탐닉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삶의 진실을 드러내 보이는 비극을 보지 못하고 안이한 해피엔딩으로 위안을 받는다. 삶의 진지한 성찰의 한 방식인 문학은 우리가 잊으려고 하는 고통을 참으로 고통스럽게 드러내는 일이다.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중략…)/가만히 서 있어도 눈이 뒤틀리는 고산증의 고도/인도양의 수증기와 눈 덮인 산정의 회오리바람을 지나면/지쳐 힘 빠진 틈을 노리는/독수리의 무서운 발톱과 눈매를 피해/그날을 위해 식성은 초식에서 잡식으로 바뀌고/그날을 위해 혈중 헤모글로빈 농도를 높이고/그날을 위해 들숨과 날숨을 동시에 쉴 수 있는/두 개의 허파를 키우고 날면서,/(…중략…)/히말라야 설원을 기어코 넘어가는 쇠재두루미 떼//‘높다’라는 것은 저런 것이다/고산준봉의 만년설로 빛나거나/혹은 순교자처럼 깨끗하게 죽거나 ―「히말라야 산정(山頂)을 날다」 부분
히말라야의 높은 고산준령을 날아 넘어야 하는 쇠두루미 떼는 고통의 상징이다. 하지만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에 ‘높다’라는 말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시인이 꿈꾸는 자신의 삶의 경지도 아마 그런 것일 게다. 때문에 고통의 삶을 감내하는 길은 높은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성찰의 과정이다. 시인이 온갖 삶의 간난과 팍팍한 언어의 미로를 헤매면서 자신의 고통을 기억해 남겨두려는 것은 바로 이 쇠두리미 떼처럼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만년설”의 순수를 꿈꾸거나 “순교자”의 삶과 같은 새로운 가치를 위한 희생을 감내하고자 한다.
2. 지체하기
현대적 삶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무엇인가 다른 것이 되도록 만든다. 물론 항상 새로워진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것은 상투성을 벗어나 우리를 더 나은 삶의 세계로 이끄는 발전의 과정이다. 하지만 변화하는 속에 성찰이 빠지면 그 변화는 무의미하거나 삶의 본질마저 변질되게 만들게 한다. 이 급변하는 세상의 급류에서 정하선 시인이 택한 성찰의 방법은 잠시 지체하는 것이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세상이 요구하는 변화의 기류에서 잠시 빗겨나 생각의 시간과 여지를 갖는 길이다. 그것은 단순히 망설이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새롭게 그리고 깊이 있게 바라보고자 하는 시각을 모색하는 길이다.
조선낫 같은 3월의 푸른 새벽/뒷간 가는 박 영감 헛기침 소리 나고/홰치는 닭 울음에 무갑산이 눈뜨고/그 산에 종갓집 무덤들도/이장 마누라 젖통처럼 봉긋 봉긋 보이고/등 굽은 소나무에 까악∽ 까/때까치의 울음소리 들리더니/떡쌀 고운 봄눈이/하르르 하르르 날리더니/그제야/무갑사 게으른 땡중의 염불소리가/햇살처럼 퍼지는 것이다 ―「봄눈」 전문
모든 것들이 느리다. 눈마저 제철인 한겨울을 지나 봄에 내리고 있다. 그런데 그 지체된 눈이 풍경을 완성해주고 있다. 비로소 그 늦은 눈으로 인해 세상이 눈을 뜨고 새로운 계절이 도래한다. “게으른 땡중의 염불소리가/햇살처럼 퍼지는” 모습은 세상의 변화에 쫓겨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한가함 속에서 삶의 진지함을 찾아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어떤 경지의 깊이를 보여준다. 이 지체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지금의 삶이 요구하는 속도와 그 속도가 가져오는 욕망의 크기를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 다음 시가 그것을 잘 말해준다.
오래된 서책에서 효경을 읽다가/책을 덮고 연잎을 본다/제절근도(制節謹度) 만이불일(滿而不溢)//연잎은 빗방울이 고이면/한동안 물방울로 출렁이다가/어느 쯤엔 미련 없이 쏟아버린다/자신이 감당할 무게만 싣고/그 이상은 비워버린 까닭이다//연잎의 지혜를 어이 배울까?//일만 권의 책을 가슴에 담아도/그 행(行)함은/연잎 한 장 만도 못하다 ―「연잎 한 장」 전문
“제절근도(制節謹度) 만이불일(滿而不溢)”은 절도를 지키면 차도 넘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인은 연잎에서 바로 이 지혜를 얻는다. 욕망을 갖되 자신이 감당할 만한 무게의 욕망만을 가지면 결코 넘쳐 파멸하는 지경까지 가지 않는다는 깨달음이다. 급변하는 생활의 속도 속에서 욕망만을 키워온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해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 아니할 수 없다.
3. 붙잡기
세상의 속도는 많은 것을 사라지게 만든다. 그런데 한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존재만이 없어진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와 함께 많은 것들이 함께 사라져간다.
고속도로 휴게소 한 켠에/겨우살이를 팔고 있는 노인/양파 망에 담긴 겨우살이를 사면서/약으로 판다는데/어디에 좋냐 묻지 못했다/매섭게 추운 한겨울에도/초록으로 살아 있는 겨우살이/그리하여 갖게 된 이름일까/다른 나뭇가지에/뿌리를 박고 겨우 살아가는/삼동(三冬)에도 푸른 잎이라니/참나무에 기생하면서 산다는데/앙증맞은 아기 손 같은 잎사귀로/생(生)의 에너지를 만든다니/‘불법상인근절’이라 적힌/플래카드 옆 노인은/자울자울 광합성을 하고 있다 ―「겨우살이」 전문
한겨울을 살아남은 겨우살이를 보고 겨우 살아남아서 그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시인은 바로 이 겨우 살아남은 것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래서 그는 이 힘들게 살아난 생명의 곁에 “자울자울” 병든 것처럼 “광합성을 하고 있”는 좌판의 노인을 병치시킨다. 그런데 “‘불법상인근절’이라 적힌/플래카드”가 재미있다. 노인은 바로 근절되어야 하는 불법상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노인은 힘겹게 살아남아 있고 근절되지 않고 있다. 겨우살이가 생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듯이 노인 역시 햇볕에 나앉아 아직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 시인의 시선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이 존재의 아름다움을 끝까지 붙잡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더 나아가 결국 사라지고 없는 존재의 의미마저 생각하게 된다.
찬은 놋 제기에 독상(獨床)이다/참, 검소하고도 소박하다/다섯 가지 나물에/두부전 반 토막/돔배기 반 토막, 탕 한 그릇/없는 것이 오히려 많아서/없는 것으로 간을 맞춘 음식/산다는 것은 저렇듯/없는 것으로도 간을 맞추듯/마음을 맞추며 사는 일인데/허, 헛,/마음 하나 맞추지 못하고 살고 있으니 ―「안동 헛제삿밥」 전문
사라지는 것을 붙잡는 것은 그것이 가진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런 의미를 알게 되면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의 의미마저 놓지 않게 된다. 시인은 그것을 헛제삿밥에서 깨닫게 된다. 제삿밥은 이미 사라진 존재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흉내 낸 헛제삿밥은 아예 없는 존재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삶의 진실을 우리에게 떠올려준다. 성찰은 눈앞에서 현란하게 명멸하는 그 존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고 없는 존재의 그 결핍에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시인이 “허”와 “헛”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사회는 우리로 하여금 성찰 없는 삶을 살도록 강요한다. 급변하는 속도에 맞추어 우리의 삶의 방식을 끝없이 바꾸어야 세상에 뒤처지지 않고 버틸 수 있다. 그래야 더 많은 욕망을 충족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이 일을 하고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은 쾌락에 우리의 몸을 맡긴다. 그러는 중에 우리는 “왜”, “어떻게”라는 질문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 정하선 시인의 이번 시집은 바로 이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조금은 해묵은 이미지와 조금은 낡은 언어들이지만 그것들이 일깨우는 정서의 파장은 결코 만만치 않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살아 있는 존재들에 대한 속 깊은 애정이 절절히 느껴지는 시편들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정하선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1993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시 「빈집」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시우주〉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주요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아픈 봄날
모탕
연잎 한 장
도반(道伴)
어미 소의 눈물
연꽃
립스틱이 맵지
겨우살이
바람꽃
수수꽃다리
꽃 편지
붓꽃은 19금(禁)
고수씨앗
봄눈
염장 지르다
논
제2부
발톱
꽃들이 그걸 모를까
능소화
자작나무 애인
원추리 꽃은 붉다
수국 피는 칠월이면
그 여름 목백일홍
밤꽃
무갑리 주민 여러분
팔미라로 간다
입담 좋은 아침
까막과부
풍습
군불 때는 저녁
히말라야 산정(山頂)을 날다
꼬리 없는 소
제3부
감자꽃
남평장 화초첩
산국(山菊)
씨 부랄[種] 주의보
사람이 경전(經典)이다
옛 그 집
간벌
가물 현(玄)이다
묵호
붉은 대추
김장김치
갈치속젓
쑥부쟁이
수원역
우화(寓話)
국수 한 그릇
바슐라르와 화목난로
제4부
바리스타를 꿈꿨던가
독(毒)
왼손은 모두 안다
습관
바닥짐
붉은 꽈리 여인이 사는 집
청시(靑枾)
붉은 칸나
안동 헛제삿밥
겨울 채비
뚱딴지꽃
가을 편지
염소
시월의 붉은 군대
경운기 면허증
겁 없는 봄
봄날은 간다
해설 성찰을 수행하는 세 가지 방식 / 황정산(시인·중앙대 교수)
[시인의 말]
등단 20년 만에 첫 시집을 묶는다.
밥벌이하느라 잊고 지내던 시(詩)를 다시 쓴 지 3년,
아직도 말[詩] 농사에 기름기가 빠지지 않았다.
원교 이광사 편액을 떼게 했다가 8년 만에 다시 자신의 것을 떼고 이광사의 편액을 걸라고 했던 완당 김정희. 한두 번의 붓질로 대략 그려내는 그의 일필초초(一筆草草)의 갈필(渴筆)이 뒷날 〈세한도〉를 보게 했다.
객관적 형상을 버리고 골계미를 갖게 하는 것,
불구형사(不求形似)는 그래서 어려운 일이다.
나는 아직 멀었다.
[출판사 서평]
성찰을 수행하는 세 가지 방식
1. 기억하기
“미쳐야 산다”라는 말이 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성공의 모토가 되고 있는 말이다. 자신이 하는 일에 미친 듯이 모든 것을 바쳐야 성공한다는 말이지만 이 말은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의 경박성을 표현하는 말이기도 하다. 미쳐야 사는 삶에는 기억이 필요하지 않다. 눈앞의 성공과 그것으로 나아가는 지금의 열정이면 충분하기 때문이다. 기억은 우리의 진전을 방해하는 퇴행이거나 열정을 가로막는 트라우마로 치부된다. 하지만 우리는 기억 때문에 행복해하거나 슬퍼하고 또 그것 때문에 분노하기도 한다. 기억은 우리의 욕망에 형식을 부여한다. 한 사람의 기억을 지배하면 곧 그 삶을 지배하게 된다. 그러므로 제대로 된 기억을 갖는다는 것은 삶에 대한 가장 진지한 성찰의 시작이다. 이런 생각에서 정하선 시인은 자신의 시 쓰기를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제 머리에 찬 서리 내리고/살아온 날들을 더듬어보는 시간/아래채에 군불을 때면서 생각한다/지난 세월 내가/잡고자 했던 것이 무엇이었을까/문득, 저 유년의 끝자락/햇살 속의 먼지를/잡겠다고 한 것은 아닐까/오늘, 군불을 때는 저녁에/부지깽이로 낙서를 하다 말고/가만히 돌아보는 것이다 ―「군불」 부분
시인에게 시를 쓰는 행위는 군불을 때는 행위이고 또한 그것은 그 사위어가는 군불 속에서 과거의 기억을 “가만히 돌아보는 것”이다. 그런데 시인은 왜 기억들을 되돌아보려는 것일까? 그것은 바로 성찰을 위해서다. 세상은 우리로 하여금 이 기억을 지우고 과거를 잊으라고 한다. 고통스러운 과거와 힘든 일들은 잊고 행복한 앞날을 이야기하자고 한다. 하지만 이 기억을 잊어버리는 사회는 경박해진다. 이러한 사회에서 사람들은 진지한 성찰보다는 가벼운 쾌락에 몸을 맡기고 순간의 오락에 탐닉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삶의 진실을 드러내 보이는 비극을 보지 못하고 안이한 해피엔딩으로 위안을 받는다. 삶의 진지한 성찰의 한 방식인 문학은 우리가 잊으려고 하는 고통을 참으로 고통스럽게 드러내는 일이다.
누가 짐작이나 했을까/(…중략…)/가만히 서 있어도 눈이 뒤틀리는 고산증의 고도/인도양의 수증기와 눈 덮인 산정의 회오리바람을 지나면/지쳐 힘 빠진 틈을 노리는/독수리의 무서운 발톱과 눈매를 피해/그날을 위해 식성은 초식에서 잡식으로 바뀌고/그날을 위해 혈중 헤모글로빈 농도를 높이고/그날을 위해 들숨과 날숨을 동시에 쉴 수 있는/두 개의 허파를 키우고 날면서,/(…중략…)/히말라야 설원을 기어코 넘어가는 쇠재두루미 떼//‘높다’라는 것은 저런 것이다/고산준봉의 만년설로 빛나거나/혹은 순교자처럼 깨끗하게 죽거나 ―「히말라야 산정(山頂)을 날다」 부분
히말라야의 높은 고산준령을 날아 넘어야 하는 쇠두루미 떼는 고통의 상징이다. 하지만 그 고통을 감내해야 하기 때문에 ‘높다’라는 말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시인이 꿈꾸는 자신의 삶의 경지도 아마 그런 것일 게다. 때문에 고통의 삶을 감내하는 길은 높은 경지에 도달하기 위한 성찰의 과정이다. 시인이 온갖 삶의 간난과 팍팍한 언어의 미로를 헤매면서 자신의 고통을 기억해 남겨두려는 것은 바로 이 쇠두리미 떼처럼 높은 곳에 도달하기 위한 것이다. 거기에서 그는 “만년설”의 순수를 꿈꾸거나 “순교자”의 삶과 같은 새로운 가치를 위한 희생을 감내하고자 한다.
2. 지체하기
현대적 삶은 우리로 하여금 끊임없이 무엇인가 다른 것이 되도록 만든다. 물론 항상 새로워진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그것은 상투성을 벗어나 우리를 더 나은 삶의 세계로 이끄는 발전의 과정이다. 하지만 변화하는 속에 성찰이 빠지면 그 변화는 무의미하거나 삶의 본질마저 변질되게 만들게 한다. 이 급변하는 세상의 급류에서 정하선 시인이 택한 성찰의 방법은 잠시 지체하는 것이다.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세상이 요구하는 변화의 기류에서 잠시 빗겨나 생각의 시간과 여지를 갖는 길이다. 그것은 단순히 망설이는 것이 아니고 세상을 새롭게 그리고 깊이 있게 바라보고자 하는 시각을 모색하는 길이다.
조선낫 같은 3월의 푸른 새벽/뒷간 가는 박 영감 헛기침 소리 나고/홰치는 닭 울음에 무갑산이 눈뜨고/그 산에 종갓집 무덤들도/이장 마누라 젖통처럼 봉긋 봉긋 보이고/등 굽은 소나무에 까악∽ 까/때까치의 울음소리 들리더니/떡쌀 고운 봄눈이/하르르 하르르 날리더니/그제야/무갑사 게으른 땡중의 염불소리가/햇살처럼 퍼지는 것이다 ―「봄눈」 전문
모든 것들이 느리다. 눈마저 제철인 한겨울을 지나 봄에 내리고 있다. 그런데 그 지체된 눈이 풍경을 완성해주고 있다. 비로소 그 늦은 눈으로 인해 세상이 눈을 뜨고 새로운 계절이 도래한다. “게으른 땡중의 염불소리가/햇살처럼 퍼지는” 모습은 세상의 변화에 쫓겨 살아가는 모습이 아니라 한가함 속에서 삶의 진지함을 찾아가는 사람만이 볼 수 있는 어떤 경지의 깊이를 보여준다. 이 지체의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지금의 삶이 요구하는 속도와 그 속도가 가져오는 욕망의 크기를 줄이는 일이기도 하다. 다음 시가 그것을 잘 말해준다.
오래된 서책에서 효경을 읽다가/책을 덮고 연잎을 본다/제절근도(制節謹度) 만이불일(滿而不溢)//연잎은 빗방울이 고이면/한동안 물방울로 출렁이다가/어느 쯤엔 미련 없이 쏟아버린다/자신이 감당할 무게만 싣고/그 이상은 비워버린 까닭이다//연잎의 지혜를 어이 배울까?//일만 권의 책을 가슴에 담아도/그 행(行)함은/연잎 한 장 만도 못하다 ―「연잎 한 장」 전문
“제절근도(制節謹度) 만이불일(滿而不溢)”은 절도를 지키면 차도 넘치지 않는다는 뜻이다. 시인은 연잎에서 바로 이 지혜를 얻는다. 욕망을 갖되 자신이 감당할 만한 무게의 욕망만을 가지면 결코 넘쳐 파멸하는 지경까지 가지 않는다는 깨달음이다. 급변하는 생활의 속도 속에서 욕망만을 키워온 우리들의 삶의 모습을 다시 돌아보게 해주는 의미 있는 작품이라 아니할 수 없다.
3. 붙잡기
세상의 속도는 많은 것을 사라지게 만든다. 그런데 한 존재가 사라진다는 것은 그 존재만이 없어진다는 것을 말하지는 않는다. 그와 함께 많은 것들이 함께 사라져간다.
고속도로 휴게소 한 켠에/겨우살이를 팔고 있는 노인/양파 망에 담긴 겨우살이를 사면서/약으로 판다는데/어디에 좋냐 묻지 못했다/매섭게 추운 한겨울에도/초록으로 살아 있는 겨우살이/그리하여 갖게 된 이름일까/다른 나뭇가지에/뿌리를 박고 겨우 살아가는/삼동(三冬)에도 푸른 잎이라니/참나무에 기생하면서 산다는데/앙증맞은 아기 손 같은 잎사귀로/생(生)의 에너지를 만든다니/‘불법상인근절’이라 적힌/플래카드 옆 노인은/자울자울 광합성을 하고 있다 ―「겨우살이」 전문
한겨울을 살아남은 겨우살이를 보고 겨우 살아남아서 그 이름을 얻게 되었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다. 시인은 바로 이 겨우 살아남은 것들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다. 그래서 그는 이 힘들게 살아난 생명의 곁에 “자울자울” 병든 것처럼 “광합성을 하고 있”는 좌판의 노인을 병치시킨다. 그런데 “‘불법상인근절’이라 적힌/플래카드”가 재미있다. 노인은 바로 근절되어야 하는 불법상인이기 때문이다. 그래도 아직 노인은 힘겹게 살아남아 있고 근절되지 않고 있다. 겨우살이가 생의 에너지를 만들어내듯이 노인 역시 햇볕에 나앉아 아직 생명을 부지하고 있다. 시인의 시선은 아직 사라지지 않고 있는 이 존재의 아름다움을 끝까지 붙잡고 있다. 그리하여 그는 더 나아가 결국 사라지고 없는 존재의 의미마저 생각하게 된다.
찬은 놋 제기에 독상(獨床)이다/참, 검소하고도 소박하다/다섯 가지 나물에/두부전 반 토막/돔배기 반 토막, 탕 한 그릇/없는 것이 오히려 많아서/없는 것으로 간을 맞춘 음식/산다는 것은 저렇듯/없는 것으로도 간을 맞추듯/마음을 맞추며 사는 일인데/허, 헛,/마음 하나 맞추지 못하고 살고 있으니 ―「안동 헛제삿밥」 전문
사라지는 것을 붙잡는 것은 그것이 가진 의미를 잊지 않기 위함이다. 그런데 그런 의미를 알게 되면 이미 사라지고 없는 것의 의미마저 놓지 않게 된다. 시인은 그것을 헛제삿밥에서 깨닫게 된다. 제삿밥은 이미 사라진 존재를 위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흉내 낸 헛제삿밥은 아예 없는 존재를 위한 것이다. 그런데 바로 그것이 삶의 진실을 우리에게 떠올려준다. 성찰은 눈앞에서 현란하게 명멸하는 그 존재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라지고 없는 존재의 그 결핍에 존재하고 있음을 우리에게 일깨운다. 시인이 “허”와 “헛”을 강조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현대사회는 우리로 하여금 성찰 없는 삶을 살도록 강요한다. 급변하는 속도에 맞추어 우리의 삶의 방식을 끝없이 바꾸어야 세상에 뒤처지지 않고 버틸 수 있다. 그래야 더 많은 욕망을 충족할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더 많이 일을 하고 더 많이 소비하고 더 많은 쾌락에 우리의 몸을 맡긴다. 그러는 중에 우리는 “왜”, “어떻게”라는 질문을 잊어버리고 살고 있다. 정하선 시인의 이번 시집은 바로 이 질문을 우리에게 던져주고 있다. 조금은 해묵은 이미지와 조금은 낡은 언어들이지만 그것들이 일깨우는 정서의 파장은 결코 만만치 않다. 삶에 대한 진지한 성찰과 살아 있는 존재들에 대한 속 깊은 애정이 절절히 느껴지는 시편들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정하선
광주광역시에서 태어나 1993년 《무등일보》 신춘문예에 시 「빈집」이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현재 〈시우주〉 회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 주요 목차
시인의 말
제1부
아픈 봄날
모탕
연잎 한 장
도반(道伴)
어미 소의 눈물
연꽃
립스틱이 맵지
겨우살이
바람꽃
수수꽃다리
꽃 편지
붓꽃은 19금(禁)
고수씨앗
봄눈
염장 지르다
논
제2부
발톱
꽃들이 그걸 모를까
능소화
자작나무 애인
원추리 꽃은 붉다
수국 피는 칠월이면
그 여름 목백일홍
밤꽃
무갑리 주민 여러분
팔미라로 간다
입담 좋은 아침
까막과부
풍습
군불 때는 저녁
히말라야 산정(山頂)을 날다
꼬리 없는 소
제3부
감자꽃
남평장 화초첩
산국(山菊)
씨 부랄[種] 주의보
사람이 경전(經典)이다
옛 그 집
간벌
가물 현(玄)이다
묵호
붉은 대추
김장김치
갈치속젓
쑥부쟁이
수원역
우화(寓話)
국수 한 그릇
바슐라르와 화목난로
제4부
바리스타를 꿈꿨던가
독(毒)
왼손은 모두 안다
습관
바닥짐
붉은 꽈리 여인이 사는 집
청시(靑枾)
붉은 칸나
안동 헛제삿밥
겨울 채비
뚱딴지꽃
가을 편지
염소
시월의 붉은 군대
경운기 면허증
겁 없는 봄
봄날은 간다
해설 성찰을 수행하는 세 가지 방식 / 황정산(시인·중앙대 교수)
01. 반품기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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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반품 배송비
반품사유 | 반품 배송비 부담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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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변심 | 고객 부담이며, 최초 배송비를 포함해 왕복 배송비가 발생합니다. 또한, 도서/산간지역이거나 설치 상품을 반품하는 경우에는 배송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
고객 부담이 아닙니다. |
03. 배송상태에 따른 환불안내
진행 상태 | 결제완료 | 상품준비중 | 배송지시/배송중/배송완료 |
---|---|---|---|
어떤 상태 | 주문 내역 확인 전 | 상품 발송 준비 중 | 상품이 택배사로 이미 발송 됨 |
환불 | 즉시환불 | 구매취소 의사전달 → 발송중지 → 환불 | 반품회수 → 반품상품 확인 → 환불 |
04. 취소방법
- 결제완료 또는 배송상품은 1:1 문의에 취소신청해 주셔야 합니다.
- 특정 상품의 경우 취소 수수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05. 환불시점
결제수단 | 환불시점 | 환불방법 |
---|---|---|
신용카드 | 취소완료 후, 3~5일 내 카드사 승인취소(영업일 기준) | 신용카드 승인취소 |
계좌이체 |
실시간 계좌이체 또는 무통장입금 취소완료 후, 입력하신 환불계좌로 1~2일 내 환불금액 입금(영업일 기준) |
계좌입금 |
휴대폰 결제 |
당일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6시간 이내 승인취소 전월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1~2일 내 환불계좌로 입금(영업일 기준) |
당일취소 : 휴대폰 결제 승인취소 익월취소 : 계좌입금 |
포인트 | 취소 완료 후, 당일 포인트 적립 | 환불 포인트 적립 |
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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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상품의 시리얼 넘버 유출로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 |
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