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조선시대의 걸그룹
문헌에 따르면, 고려 8대 국왕인 현종 즉위년(1009년)에 오늘날의 걸그룹이라 할 수 있는 여악(女樂)이 등장한다. 하지만 [고려사]에는 여악에 관한 기록이 네 차례 등장할 뿐이어서 당시 그들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여악의 존재와 기능에 대한 정보가 한층 더 풍부하고 선명해지는 것은 조선에 들어서다. 아무튼, 오늘날 가요시장을 잠식하는 여자 아이돌 그룹의 역사는 무려 1,0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다.
조선의 걸그룹인 여악은 춤과 노래, 악기연주 실력이 출중한 젊은 여인들로 구성되었는데, 특히 왕실 소속의 여악은 가장 탁월한 미모의 여성들로 충원되었다. 지금의 걸그룹과 비교해 볼 때 신분과 활동의 범주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나긴 하지만, 춤과 노래 실력이 뛰어나고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는 여성들로 구성되었다는 데에는 공통점이 있다. 왕실 소속의 여악은 중국에서 들여오거나 조선에서 자체 제작한 20~30여 개의 공연 레퍼토리를 가지고 왕실의 각종 크고 작은 연회는 물론이고 공식적인 예연(禮宴)에도 등장했다. 하지만 유가의 이상적인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성리학적 훈도를 받은 강직한 지식계층인 언관들은 여악의 혁파를 강력히 주장했다. 그럼에도 500년 조선왕조에서 서울은 물론 지방에서 여악이 폐지된 적은 거의 없었다. 여악은 조선시대 내내 절대적으로 그 존재가 요구되었다. 그렇게까지 여악을 존속시켜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기에는 조선시대 사대외교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결국 조선시대 걸그룹은 명나라에 대한 사대외교가 피운 ‘악의 꽃’이었다. 이런 ‘불편한 진실’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욕망의 비열성’은 국가와 개인이 다르지 않다는 엄정한 사실의 재확인일 듯하다.” (21쪽)
풍류의 자격
풍류(風流)는 한국인의 멋이고 한국 전통문화의 혼이다. 풍류정신은 자연을 가까이하고, 노래와 춤, 술과 아름다운 여인을 깊이 애호하고 즐길 줄 아는 한민족의 예술적 충동이다. 또한 풍류라는 말에서는 ‘세속을 떠난 여유롭고 운치 있는 멋’이라는 긍정적 뉘앙스는 물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방일(放逸)함’ 나아가 일반 민중의 고된 삶과는 거리가 있는 ‘호사스런 고급 취향’ 심지어 남성 중심의 ‘성적 자유로움’이라는 부정적 뉘앙스까지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풍류란 대체로 탈속적 정신으로 자연과 가까이하면서 예술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태도, 운치 있고 자유분방한 멋 등을 가리키는 심미적 용어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 풍류라는 용어는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대체로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풍류’는 요즘 말로 하자면 ‘멋과 여유’라고 할 수 있다. 멋과 여유는 자유로운 영혼만이 발할 수 있는 광채이자 향기이다. 이 책은 한국과 중국의 풍류명사들에 대한 이야기로, 한국에서는 최치원?이규보?우륵?진흥왕?세종 등, 중국에서는 공자?완적?혜강?도연명?왕희지?이백?두보 등이 대표인물로 등장한다.
“풍류정신의 본질이 무엇이던가? 기본적으로 자연과 인간,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의 능력이다. …… 따라서 풍류정신을 온전히 체득한다는 것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정신경지에 도달함을 의미한다.” (140쪽)
풍류,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하리라
오늘날 한국인에게 ‘풍류’란 어떤 의미일까?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있는 시대정신(쾌감)을 안락함, 속도감, 섹시함이라 한다면 이를 단숨에 구현할 수 있는 마력(구매력)을 지닌 것은 단연 화폐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화폐를 사랑하고 숭배하고 동경한다. 화폐는 이제 그들 영혼의 거처다. 삶의 리듬과 목표는 ‘화폐적 충동’으로 쌈박하게 채워져 있다.
그렇다면 선인(先人)들의 ‘풍류정신’과 이 시대의 ‘화폐적 충동’은 다른 의미일까?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인다. 선인들이 풍류에서 포착한 것이 멋과 여유라면, 현대인들이 화폐를 통해 누리려는 것도 어쩌면 그들 나름의 멋과 여유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차이를 굳이 밝힌다면 자연의 변화와 흐름에 맡겨 살아가던 선인들에 비해, 우리는 화폐의 변동과 강밀도에 휩쓸려 간다는 점일 것이다. 그 결과 얻은 것은 누적된 피로감이고 잃은 것은 평온한 리듬감이다.
현대인들이 선인들의 풍류에서 일말의 향수를 느낀다면, 그건 아마도 그러한 리듬감의 회복을 무의식적으로나마 갈망하고 있다는 증좌이리라. 그것은 생명력의 자연스런 욕구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우리가 지금 풍류를 음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작가 소개
저자 : 한지훈
인문학자. 여러 대학에서 철학과 미학, 음악 등을 가르쳤다. 요즘은 가끔 서울대 대학원에서 강의한다. 지은 책으로는 [중국 도가(道家)의 음악사상], [장자의 예술정신], [악기로 본 삼국시대 음악문화], [한국의 음악사상], [우리 음악의 멋 풍류도], [한국 고대 음악사상], [고려시대 음악사상], [아악혁명과 문화영웅 세종], [공자, 불륜을 노래하다], [조선시대 악(樂)사상]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성무애락론], [혜강집], [예기?악기]가 있다. [한국의 음악사상]과 [한국 고대 음악사상]이 2001년과 2007년 각각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조선시대 악(樂)사상]이 2013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 주요 목차
책머리에
01 음악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조선의 ‘걸그룹’ 여악(女樂)
세종의 신악(新樂), 중화의 질서를 거스르다
우리에게 풍류란 무엇일까?
‘금(?)’과 ‘현금(玄琴)’은 한국 고유의 악기 이름이다
02 술병아, 다만 마르지 말기를
구름이 나인지 내가 구름인지 모르노라
소리 없는 소리를 듣노라
술 없이는 시가 없고, 미인 없이는 시가 무색하니라
여색을 피하려 했으나 되려 꿈에서 여인을 탐하더라
술과 거문고와 독서는 마음의 누가 되기에 알맞노라
03 그리워하지 않을 뿐, 어찌 멀리 있다 하는가
공자, 동아시아 풍류정신의 원조
공자, 불륜을 노래하다
공자, 자유연애를 옹호하다
04 죽은 뒤의 명성도 지금의 한 잔 술만 못하네
완적(阮籍)의 존재론적 멀미
참형 직전 금(琴)을 연주한 혜강(?康)
풍류명사들의 ‘형이상학적 해프닝’
왕희지, 구름처럼 표일하다 놀란 용처럼 솟구치다
은일(隱逸)의 아이콘, 도연명
05 나는 술 취한 신선이오
나라에 큰 공 세우고 깨끗이 물러나 은거하다
한 송이 농염한 모란꽃에 엉긴 이슬 향기
어찌 머리 조아리고 허리 굽혀 벼슬할 텐가
오직 술꾼들만이 이름을 남기노라
주석
조선시대의 걸그룹
문헌에 따르면, 고려 8대 국왕인 현종 즉위년(1009년)에 오늘날의 걸그룹이라 할 수 있는 여악(女樂)이 등장한다. 하지만 [고려사]에는 여악에 관한 기록이 네 차례 등장할 뿐이어서 당시 그들의 위상이 어떠했는지를 알기는 어렵다. 여악의 존재와 기능에 대한 정보가 한층 더 풍부하고 선명해지는 것은 조선에 들어서다. 아무튼, 오늘날 가요시장을 잠식하는 여자 아이돌 그룹의 역사는 무려 1,000년의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는 셈이다.
조선의 걸그룹인 여악은 춤과 노래, 악기연주 실력이 출중한 젊은 여인들로 구성되었는데, 특히 왕실 소속의 여악은 가장 탁월한 미모의 여성들로 충원되었다. 지금의 걸그룹과 비교해 볼 때 신분과 활동의 범주에서 본질적인 차이가 나긴 하지만, 춤과 노래 실력이 뛰어나고 빼어난 외모를 자랑하는 여성들로 구성되었다는 데에는 공통점이 있다. 왕실 소속의 여악은 중국에서 들여오거나 조선에서 자체 제작한 20~30여 개의 공연 레퍼토리를 가지고 왕실의 각종 크고 작은 연회는 물론이고 공식적인 예연(禮宴)에도 등장했다. 하지만 유가의 이상적인 왕도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는 성리학적 훈도를 받은 강직한 지식계층인 언관들은 여악의 혁파를 강력히 주장했다. 그럼에도 500년 조선왕조에서 서울은 물론 지방에서 여악이 폐지된 적은 거의 없었다. 여악은 조선시대 내내 절대적으로 그 존재가 요구되었다. 그렇게까지 여악을 존속시켜야 했던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여기에는 조선시대 사대외교의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다.
“결국 조선시대 걸그룹은 명나라에 대한 사대외교가 피운 ‘악의 꽃’이었다. 이런 ‘불편한 진실’이 오늘의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그건 바로 ‘욕망의 비열성’은 국가와 개인이 다르지 않다는 엄정한 사실의 재확인일 듯하다.” (21쪽)
풍류의 자격
풍류(風流)는 한국인의 멋이고 한국 전통문화의 혼이다. 풍류정신은 자연을 가까이하고, 노래와 춤, 술과 아름다운 여인을 깊이 애호하고 즐길 줄 아는 한민족의 예술적 충동이다. 또한 풍류라는 말에서는 ‘세속을 떠난 여유롭고 운치 있는 멋’이라는 긍정적 뉘앙스는 물론 ‘어디에도 얽매이지 않는 방일(放逸)함’ 나아가 일반 민중의 고된 삶과는 거리가 있는 ‘호사스런 고급 취향’ 심지어 남성 중심의 ‘성적 자유로움’이라는 부정적 뉘앙스까지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처럼 풍류란 대체로 탈속적 정신으로 자연과 가까이하면서 예술의 아름다움을 즐길 줄 아는 태도, 운치 있고 자유분방한 멋 등을 가리키는 심미적 용어로 받아들여진다. 하지만 이 풍류라는 용어는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대체로 유사한 의미로 사용되어 왔다.
‘풍류’는 요즘 말로 하자면 ‘멋과 여유’라고 할 수 있다. 멋과 여유는 자유로운 영혼만이 발할 수 있는 광채이자 향기이다. 이 책은 한국과 중국의 풍류명사들에 대한 이야기로, 한국에서는 최치원?이규보?우륵?진흥왕?세종 등, 중국에서는 공자?완적?혜강?도연명?왕희지?이백?두보 등이 대표인물로 등장한다.
“풍류정신의 본질이 무엇이던가? 기본적으로 자연과 인간, 예술에 대한 깊은 이해와 사랑의 능력이다. …… 따라서 풍류정신을 온전히 체득한다는 것은, 인간이 도달할 수 있는 최고의 정신경지에 도달함을 의미한다.” (140쪽)
풍류,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하리라
오늘날 한국인에게 ‘풍류’란 어떤 의미일까? 대한민국을 장악하고 있는 시대정신(쾌감)을 안락함, 속도감, 섹시함이라 한다면 이를 단숨에 구현할 수 있는 마력(구매력)을 지닌 것은 단연 화폐다. 그래서 수많은 사람들이 화폐를 사랑하고 숭배하고 동경한다. 화폐는 이제 그들 영혼의 거처다. 삶의 리듬과 목표는 ‘화폐적 충동’으로 쌈박하게 채워져 있다.
그렇다면 선인(先人)들의 ‘풍류정신’과 이 시대의 ‘화폐적 충동’은 다른 의미일까? 크게 다르지는 않아 보인다. 선인들이 풍류에서 포착한 것이 멋과 여유라면, 현대인들이 화폐를 통해 누리려는 것도 어쩌면 그들 나름의 멋과 여유일 것이기 때문이다. 다만 차이를 굳이 밝힌다면 자연의 변화와 흐름에 맡겨 살아가던 선인들에 비해, 우리는 화폐의 변동과 강밀도에 휩쓸려 간다는 점일 것이다. 그 결과 얻은 것은 누적된 피로감이고 잃은 것은 평온한 리듬감이다.
현대인들이 선인들의 풍류에서 일말의 향수를 느낀다면, 그건 아마도 그러한 리듬감의 회복을 무의식적으로나마 갈망하고 있다는 증좌이리라. 그것은 생명력의 자연스런 욕구이기 때문이다. 이 점이 바로 우리가 지금 풍류를 음미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 작가 소개
저자 : 한지훈
인문학자. 여러 대학에서 철학과 미학, 음악 등을 가르쳤다. 요즘은 가끔 서울대 대학원에서 강의한다. 지은 책으로는 [중국 도가(道家)의 음악사상], [장자의 예술정신], [악기로 본 삼국시대 음악문화], [한국의 음악사상], [우리 음악의 멋 풍류도], [한국 고대 음악사상], [고려시대 음악사상], [아악혁명과 문화영웅 세종], [공자, 불륜을 노래하다], [조선시대 악(樂)사상] 등이 있고, 옮긴 책으로는 [성무애락론], [혜강집], [예기?악기]가 있다. [한국의 음악사상]과 [한국 고대 음악사상]이 2001년과 2007년 각각 문화관광부 우수학술도서로, [조선시대 악(樂)사상]이 2013년 대한민국학술원 우수학술도서로 선정된 바 있다.
▣ 주요 목차
책머리에
01 음악이 무슨 죄가 있겠는가?
조선의 ‘걸그룹’ 여악(女樂)
세종의 신악(新樂), 중화의 질서를 거스르다
우리에게 풍류란 무엇일까?
‘금(?)’과 ‘현금(玄琴)’은 한국 고유의 악기 이름이다
02 술병아, 다만 마르지 말기를
구름이 나인지 내가 구름인지 모르노라
소리 없는 소리를 듣노라
술 없이는 시가 없고, 미인 없이는 시가 무색하니라
여색을 피하려 했으나 되려 꿈에서 여인을 탐하더라
술과 거문고와 독서는 마음의 누가 되기에 알맞노라
03 그리워하지 않을 뿐, 어찌 멀리 있다 하는가
공자, 동아시아 풍류정신의 원조
공자, 불륜을 노래하다
공자, 자유연애를 옹호하다
04 죽은 뒤의 명성도 지금의 한 잔 술만 못하네
완적(阮籍)의 존재론적 멀미
참형 직전 금(琴)을 연주한 혜강(?康)
풍류명사들의 ‘형이상학적 해프닝’
왕희지, 구름처럼 표일하다 놀란 용처럼 솟구치다
은일(隱逸)의 아이콘, 도연명
05 나는 술 취한 신선이오
나라에 큰 공 세우고 깨끗이 물러나 은거하다
한 송이 농염한 모란꽃에 엉긴 이슬 향기
어찌 머리 조아리고 허리 굽혀 벼슬할 텐가
오직 술꾼들만이 이름을 남기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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