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오늘’의 역사를 말하다
1월 7일과 12월 30일의 역사
1927년 1월 7일, 남산 기슭에 있던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앞에 새로 지은 청사로 이전했다. 왜 경복궁 앞(정확히는 경복궁 경내)이었을까? 총독부는 조선왕조의 역사를 표상하는 경복궁과 일제의 식민 통치를 표상하는 새 총독부 건물이 한 시야에 포착되기를 원했다. 조선 건축 기술의 정화를 담은 경복궁조차 총독부 신청사의 위용에 비하면 하찮고 볼품없다는 점을 조선인 스스로 깨닫게 만들겠다는 노림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제는 경복궁 전각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빠짐없이 잔디를 심었다. 한국인에게 잔디는 죽은 사람의 집인 무덤에만 심는 풀이었다. 산 사람이 사는 집에 잔디를 심는 것은 금기였다. 잔디에서 바로 무덤을 떠올리는 한국인들의 의식 안에서, 궁궐 안의 잔디밭은 곧바로 ‘왕조의 죽음’과 연결되었다. 일제는 그렇게 경복궁을 경복궁이되 경복궁이 아닌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1960년 12월 30일, 윤보선 대통령은 대통령 관저였던 “경무대가 전前정권 때 폭정을 자행한 곳으로 국민들에게 원부怨府 같은 인상을 준다”며 명칭을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바꿨다. ‘대臺’는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땅을 굽어보기 위해 평지보다 높은 곳에 만든 평평한 구조물이다. 때로는 천문대가 되어 하늘에 비치는 민심을 살피고, 때로는 무대가 되어 국민들을 즐겁게 해주는 곳이라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경무대景武臺’는 ‘무예를 구경하는 대’라는 의미로,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새로 생긴 대를 무예 구경 용도로 쓰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인 것으로 보아 당대의 권력자 대원군이 지은 이름으로 보인다. 그런 경무대를 윤보선 대통령이 미국 백악관White House을 본뜬 것으로 충분히 오해받을 만한 이름 청와대Blue House로 바꾼 것이다. ‘푸른 기와를 얹은 대’라는 희한한 뜻을 지닌 ‘청와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60꼭지에 담긴 ‘오늘’들
3월 1일, 7월 17일, 8월 15일은 굵직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날이다. 반면 1월 7일과 12월 30일에서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저 새롭게 시작된 해의 일곱 번째 날과 그 해의 마지막 하루 전날일 뿐이다.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앞으로 이전한 것과 경무대를 청와대로 개칭한 것도, 독립을 외치고 헌법을 만들고 해방을 이룬 것에 비한다면 그리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 사건이다. 그저 흥미로운 교양 상식 늘려주는 정도일 뿐이다.
《우리 역사는 깊다》(전2권)는 이처럼 무의미한 듯한 ‘오늘’들의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역사’들을 되살려 ‘2015년 대한민국’을 곱씹는다. 《서울은 깊다》, 《현대인의 탄생》 등 여러 저서를 통해 말해지지 않은 역사를 소개하고 그것을 통해 현재를 성찰하는 데 힘써온 역사학자 전우용이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3부작〉 중 첫 번째인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오늘들의 역사’다(2부 《근대의 사생활》(가제)과 3부 《공간 너머》(가제)는 각각 2016년, 2017년에 출간 예정이다). 저자는 귀성 풍습의 기원, 예방 접종의 시작, 전등 시대의 개막, 위생 관념의 확산, 대중교통 수단의 도입 등 주로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오늘’의 작은 사건들을 소개하고, 성찰의 재료로 삼을 만한 요소들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덧붙인다.
그때그때 날짜에 맞춰 총 60개의 주제를 선정했기 때문에 꼭지들 간 연관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모든 꼭지를 관통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역사란 시간·공간·인간의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변화라는 생각이다. 저자는 수많은 작은 ‘오늘’들의 다양한 시간과 공간과 인간의 이야기들을 통해 100년 전과 현재가 얼마나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를 살핀다. 저자가 풀어놓는 어제의 ‘오늘’들은 낯설지만 흥미롭다. 저자가 어제의 ‘오늘’들로 지금의 ‘오늘’에 던지는 메시지는 쓰지만 통렬하다.
과거의 ‘오늘’이 현재의 ‘오늘’에 말해주는 것들
시간, 여전한 역사의 시계바늘
6월 10일, 우리에게 이 날은 1926년 6월 10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군주였던 순종의 장례식을 기해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이나 1987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4·13호헌조치’ 발표 후 이에 반대하는 6월항쟁의 시발점으로 기억된다. 반면 저자는 ‘시時의 기념일’이라는 다소 낯선 역사를 들려준다.
1921년 일본은 기원후 60년경 누각漏刻이라는 시계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덴치天智왕을 기리고 시간을 엄수하는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6월 10일을 ‘시時의 기념일’로 선포하고 조선에도 적용했다. 하지만 당시 시계는 평범한 사람은 절대 가질 수 없는 고가품이었다. 시계의 보급률이 현저히 낮았던 그 시절 보통 사람들이 시각을 알 수 있는 길은 정오의 오포午砲 소리를 듣는 것뿐이었다. 오포는 일본 도쿄의 표준 시계에 연결된 발신기가 일본 제국 전역의 주요 지점에 설치된 수신기에 알려준 시각, 즉 시보時報에 맞춰 쐈다. 그러나 이는 잘 맞지 않았다.
그 연유에 대해 우스개 아닌 우스개가 떠돌았다. 일제 강점 초기 오포는 남산 헌병대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오포 쏘는 병사가 정오 무렵 망원경으로 일본인 동네 시계점 안의 시계를 살피다가 그중 마음에 드는 시계가 정오를 가리키면 그때에 맞춰 포를 쐈기 때문이란다. 항간에 이 같은 우스개 아닌 우스개가 떠돈 이유는, 총독부는 일본인들의 여론만 살펴 그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고 일본 거류민단은 또 그들대로 총독부의 의중에 맞춰 자기들 여론을 만드는 세태 때문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식민지 원주민의 시간은 크게 고려할 사안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식민지의 시간, 즉 역사를 식민지인들 자신의 과거와 단절시켜 자기들의 시간에 편입하는 것이었다. 권력이 특정 세력의 여론만 살피고 그 특정 세력은 또 권력의 의중에 맞춰 움직이는 모습, 지금이라고 다를까? 100여 년이 흘렀건만 역사의 시계바늘은 그대로다.
공간, 역사를 품고 인간을 품다
8월 10일,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는 이 날에서 저자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공간 분할을 떠올린다. 옛 서울의 공동묘지를 추적하고, 그 공동묘지를 군용지로 강제 수용해버린 일제의 약탈을 파헤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사색한다.
1905년 8월 10일, 일본군은 수백 년간 서울 시민들의 공동묘지이던 용산 땅의 군용지 수용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이렇게 빼앗은 광대한 땅 위에 거대한 병영과 연병장, 철도시설을 짓고, 남은 땅은 일본인들에게 나누어준다.
산업화 이전, 한국인들에게 산은 제2의 집터이자 농토였다. 살아서는 평지에 지은 집에서 기거했고 죽어서는 산에 만든 집에서 영면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공간을 평지와 산지로 확연히 나누는 점에서 한국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서울 도성 안 산에 죽은 자의 자리를 허락할 수는 없었다. 왕궁을 굽어보는 산지에 무덤을 쓰는 것은 왕보다 높은 자리를 주는 것으로 곧 불경不敬이었다. 도성 안에 무덤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죽은 사람은 왕이든 평민이든 모두 도성 밖으로 나가야 했다. 도성 밖으로 빠져나간 시체의 행선지는 제각각이었지만 시골에 연고가 없던 서울 사람들은 대체로 애오개 주변과 남산 남사면(지금의 미군 용산기지 일대)에 묻혔다. 이런 일이 500년 넘게 되풀이되면서 도성 밖 남산 기슭은 온통 무덤 천지가 되었다.
1904년 2월 23일 대한제국 정부를 협박해 〈한일의정서〉라는 군사협정을 체결한 일본군은 3월 11일 한국주차군사령부를 설치함으로써 한국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남산 일본 공사관 옆에 임시로 사령부 건물을 설치한 일본군은 영구 주둔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남산의 남사면 일대를 요구한다. 한국 정부는 일본군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서울 시민들의 공동묘지는 그렇게 사라졌다.
서울은 죽은 자들에게 인색한 도시다. 도시 안에 죽음과 관련된 시설이나 장소가 없는 점은 서울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다. 하지만 삶과 죽음은 연속된 것이며, 삶은 죽음 가까이에 있을 때 더 빛나는 법이다. 죽음을 떠올릴 수 있는 시설들을 일상에서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계속 격리시켜왔기에, 우리의 삶이 더 경박해져가는 것은 아닐까.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곧 삶을 성찰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간, 진정으로 중요한 것 잊지 말아야
저자는 7월 13일이라는 ‘오늘’에서도 유의미한 어제를 찾아 오늘의 ‘인간’을 이야기한다. 특히 ‘몸짱’ 전성시대인 ‘지금 여기’에 과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진중하게 묻는다.
1920년 7월 13일, 1년 반 전 3·1운동 때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서울 인사동 태화관에서 조선체육회가 만들어진다. 장덕수가 작성한 창립취지서는 체육이 생명의 본령에 따르는 활동임을 전제한 후, 조선체육회가 “조선 인민의 생명을 원숙 창달하는 사회적 통일적 기관”이라고 선언했다.
고종은 정동 테니스장에서 열린 주한 외교관들의 테니스 경기를 참관하다가 혀를 찼다. “저렇게 힘든 일을 어찌 하인들에게 시키지 않고 귀빈들이 직접 하는가.” 그는 노동과 운동을 구분하지 못했고, 그래서 평소 ‘힘든 일’을 하느라 체력이 소진된 하인들에게는 운동할 여력이 없다는 사실도 이해하지 못했다. 대다수 고관과 양반들의 생각도 고종과 같았다. 당시 체육은 그렇게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던 체육이 변했다. 아니, 체육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다. 특히 민족주의자들에게 체력은 전투력이었기에 국력이었으며, 체육교육은 국력을 키우는 군사훈련이었다. 해방 후에도 이 같은 관점은 지속되었다. 정부와 민간에서 지속적으로 체육에 투자를 확대했으며, 이에 힘입어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 유수의 스포츠강국이 되었다.
요즘 사람들의 삶에서 체육의 비중은 나날이 늘어간다. 자기 한 몸 가꾸기 위해 고행과 단식도 마다않는다. 헬스와 다이어트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수신修身의 비중은 그에 반비례하여 줄어들고 있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파렴치한 범죄들이 반복되고 사회 지도층으로 행세하는 데 도덕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수신을 도외시하고 체육만 중시해온 현대 사회의 씁쓸한 단면이다. 이제라도 수신에 대한 개인적·사회적 투자를 늘려야 하지 않을까? ‘수신’을 버리고 ‘체육’만으로 얻게 되는 몸은, 사람의 몸이 아니라 짐승의 것만도 못한 몸이다.
‘오늘’의 역사로 ‘내일’을 열다
환경, 교육, 의료 … 시의성 있는 일침
비단 시간과 공간과 인간 자체의 역사만이 아니다. 저자는 시간과 공간과 인간이라는 틀 속에서 파생되는 ‘오늘’들의 다양한 측면을 살핀다. 을축년 대홍수가 일어난 1925년 7월 18일의 역사에서는, 환경 문제를 성찰하며 인간이 자연에 얹혀사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일본 덴노가 조선총독에게 〈교육칙어〉를 하달한 1911년 10월 23일의 역사를 들추며, 〈국민교육헌장〉으로 이어진 교육의 군국주의 문제를 지적한다. 보건부가 가짜의사 275명을 적발하여 경찰에 통보한 1954년 8월 12일의 역사를 돌아볼 때는, 병원이 신전이 되어버린 현 시대에서 의료 민영화는 ‘가난이 사형선고’인 사회를 만들려 하는 것이라며 의료 문제를 건드린다.
권력에 대한 일침도 서슴없다. 1912년 1월 14일 광장주식회사의 주주총회 개최가 지니는 역사적 의의를 밝히면서, 대통령의 재래시장 방문이 ‘서민 코스프레’가 아닌 ‘임금 코스프레’임을 지적하고 현대적 신분제를 경계한다. 가로명제정위원회에서 새 동명과 가로명을 고시한 1946년 10월 1일의 역사를 살피면서, 세종로라는 이름에 담긴 역사성을 헤아리라고 촉구한다. 경무청이 물가 폭등을 이유로 채소 도매상 단속에 열을 올리던 1903년 11월 11일의 역사를 돌아볼 때는, 예나 지금이나 물가 폭등의 주범은 상인이 아니라 정부임을 지적하며 행정력을 동원하여 물가를 억누르려는 코미디 같은 짓을 그만두라고 충고한다.
‘오늘’을 만드는 ‘어제’, ‘내일’을 위한 성찰의 토대로 삼아야
저자의 풍부한 역사지식은 책 전체를 아우른다.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역사들을 생생하게 재연한다. 이는 무심히 지나친 것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당연한 듯 여기던 것들을 새롭게 돌아볼 수 있는 눈을 키워준다. 과거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오늘과 내일에 영향을 미친다는 상식을 새삼스레 일깨운다.
무의미한 ‘오늘’은 없다. 크든 작든, 익숙하든 낯설든 현재의 ‘오늘’은 수많은 과거의 ‘오늘’들의 연속이다. 저자는 이 같은 관점 아래 쓰인 60개의 ‘오늘’들을 통해 다음과 같은 바람을 피력한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현재와 과거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생각할 수 있기를, 현재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조금 더 무겁게 받아들이기를, 스스로 ‘나답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 성찰하는 시간을 잠시나마 갖게 되기를, 소망한다.”
▣ 작가 소개
저 : 전우용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19세기 말~20세기 초 한인 회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상명대학교 강사와 서울시립대학교 부설 서울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을 지내고 2008년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종로와 본정: 식민도시 경성의 두 얼굴」, 「식민지 도시 이미지와 문화현상」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서울상업사』(공저), 『청계천: 시간, 장소, 사람』(공저), 『서울 20세기: 100년의 사진기록』(공저) 등이 있다. 현재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주요 목차
책머리에
1월 7일_조선총독부 이전
경복궁 잔디밭과 일제의 공간정치
1월 14일_광장주식회사 주주총회 개최
대통령의 재래시장 방문, ‘서민 코스프레’ 아닌 ‘임금 코스프레’
1월 21일_경찰, 방탕한 방아타령과 음란한 춘향가 공연 금지
대중문화 길들이기, 권력의 헛된 욕망일 뿐
1월 27일_화신백화점 화재
화신백화점에서 종로타워로, 역사는 땅에도 새겨진다
2월 5일_미국인, 돌싸움 구경하다 살인
공공연한 폭력은 줄었으나 비물리적 폭력은?
2월 10일_종로경찰서, 어린이 행상 단속
어린이를 거리로 내몬 ‘불량한 가족’
2월 19일_에케르트, 대한제국 군악대장으로 부임
한국 근대 문화사에서 실종된 퍼즐조각
2월 24일_조선총독부, 한센병 환자 격리 위해 소록도 자혜의원 설립
한센병보다 무서운 병, ‘장애인 혐오증’
3월 3일_고종황제 국장
‘죽은 권력’을 둘러싼 기억의 싸움
3월 10일_만민공동회 개최
민주주의, 가장 낮은 곳에서 나는 소리를 먼저 듣는 것
3월 18일_조선총독부, 조선태형령 제정·공포
형벌의 목적, ‘교화’인가 ‘복수’인가
3월 26일_우리나라에서 교육받은 최초의 여의사 탄생
여성을 가정에 묶어 두려는 태도, 이미 시대착오
4월 1일_소학교를 국민학교로 변경
국민을 찍어내는 기계였던 ‘국민학교’, 이름은 바뀌었으나 …
4월 7일_값싼 알코올, 대량생산 본격화
연료용 알코올이 서민용 음료가 되면서 술의 신성성도 옅어지다
4월 15일_광희정 수건 공장 총파업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지워버린 개발
4월 22일_서울에 시내버스 등장
‘나만의 시간’, ‘혼자만의 공간’에 대한 본능적 욕구, 대중교통수단 기피로 표출되다
4월 30일_의생醫生으로 격하된 한의사들, 서양의학 수강
양방과 한방이 공존하는 현실, 의료일원화의 해법 찾아야
5월 4일_첫선을 보인 전차
근대 문명의 이기利器 전차와 ‘근대병’ 그리고 ‘주의사항’
5월 14일_이 땅에서 교육받은 최초의 양의 탄생
근대화의 역사, 배움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5월 19일_도둑질 겸하던 깍쟁이패 체포
놀고먹으려는 욕망이 죄의 사슬에서 풀려난 시대, 깍쟁이란 말도 원뜻에서 풀려나
5월 27일_여자 경찰 채용 시험 시행
경찰에 대한 불신, ‘이미지 쇄신’만으로는 해소되지 않을 것
6월 3일_물장수들, 상수도 준공에 따른 손해배상 요구
자연과 인류 최대의 적은 인간의 탐욕이다
6월 10일_총독부, ‘시의 기념일’ 선포
권력의 여론 조작, 역사의 시계바늘을 엉뚱한 곳으로
6월 16일_대조선은행 창립 준비모임 개최
‘공공’을 돌보지 않는 은행, 천한 고리대금업체와 다를 바 없다
6월 25일_한국전쟁 발발
인류의 ‘주적’은 전쟁이다
6월 30일_한양상회, 기업 이미지 광고 게재
물질과 욕망이 지배하는 시대, ‘지름신’의 거소 백화점
7월 6일_일제 경찰, 무당 체포
세계 희유의 ‘다종교 단일민족국가’ 한국, 통합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
7월 8일_신생활복 착용안 통과
‘의복 통일’, 전체주의적 저질 생체 권력의 상징
7월 13일_조선체육회 창립
‘수신’ 버리고 ‘체육’만으로 얻는 몸은 사람의 몸이 아니다
7월 15일_조선중앙위생회 설치
‘위생’의 이름으로 사생활에 개입하는 국가, 생체 정보 유출의 위험성
찾아보기
‘오늘’의 역사를 말하다
1월 7일과 12월 30일의 역사
1927년 1월 7일, 남산 기슭에 있던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앞에 새로 지은 청사로 이전했다. 왜 경복궁 앞(정확히는 경복궁 경내)이었을까? 총독부는 조선왕조의 역사를 표상하는 경복궁과 일제의 식민 통치를 표상하는 새 총독부 건물이 한 시야에 포착되기를 원했다. 조선 건축 기술의 정화를 담은 경복궁조차 총독부 신청사의 위용에 비하면 하찮고 볼품없다는 점을 조선인 스스로 깨닫게 만들겠다는 노림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제는 경복궁 전각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빠짐없이 잔디를 심었다. 한국인에게 잔디는 죽은 사람의 집인 무덤에만 심는 풀이었다. 산 사람이 사는 집에 잔디를 심는 것은 금기였다. 잔디에서 바로 무덤을 떠올리는 한국인들의 의식 안에서, 궁궐 안의 잔디밭은 곧바로 ‘왕조의 죽음’과 연결되었다. 일제는 그렇게 경복궁을 경복궁이되 경복궁이 아닌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1960년 12월 30일, 윤보선 대통령은 대통령 관저였던 “경무대가 전前정권 때 폭정을 자행한 곳으로 국민들에게 원부怨府 같은 인상을 준다”며 명칭을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바꿨다. ‘대臺’는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땅을 굽어보기 위해 평지보다 높은 곳에 만든 평평한 구조물이다. 때로는 천문대가 되어 하늘에 비치는 민심을 살피고, 때로는 무대가 되어 국민들을 즐겁게 해주는 곳이라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경무대景武臺’는 ‘무예를 구경하는 대’라는 의미로,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새로 생긴 대를 무예 구경 용도로 쓰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인 것으로 보아 당대의 권력자 대원군이 지은 이름으로 보인다. 그런 경무대를 윤보선 대통령이 미국 백악관White House을 본뜬 것으로 충분히 오해받을 만한 이름 청와대Blue House로 바꾼 것이다. ‘푸른 기와를 얹은 대’라는 희한한 뜻을 지닌 ‘청와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60꼭지에 담긴 ‘오늘’들
3월 1일, 7월 17일, 8월 15일은 굵직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날이다. 반면 1월 7일과 12월 30일에서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저 새롭게 시작된 해의 일곱 번째 날과 그 해의 마지막 하루 전날일 뿐이다.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앞으로 이전한 것과 경무대를 청와대로 개칭한 것도, 독립을 외치고 헌법을 만들고 해방을 이룬 것에 비한다면 그리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 사건이다. 그저 흥미로운 교양 상식 늘려주는 정도일 뿐이다.
《우리 역사는 깊다》(전2권)는 이처럼 무의미한 듯한 ‘오늘’들의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역사’들을 되살려 ‘2015년 대한민국’을 곱씹는다. 《서울은 깊다》, 《현대인의 탄생》 등 여러 저서를 통해 말해지지 않은 역사를 소개하고 그것을 통해 현재를 성찰하는 데 힘써온 역사학자 전우용이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3부작〉 중 첫 번째인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오늘들의 역사’다(2부 《근대의 사생활》(가제)과 3부 《공간 너머》(가제)는 각각 2016년, 2017년에 출간 예정이다). 저자는 귀성 풍습의 기원, 예방 접종의 시작, 전등 시대의 개막, 위생 관념의 확산, 대중교통 수단의 도입 등 주로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오늘’의 작은 사건들을 소개하고, 성찰의 재료로 삼을 만한 요소들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덧붙인다.
그때그때 날짜에 맞춰 총 60개의 주제를 선정했기 때문에 꼭지들 간 연관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모든 꼭지를 관통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역사란 시간·공간·인간의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변화라는 생각이다. 저자는 수많은 작은 ‘오늘’들의 다양한 시간과 공간과 인간의 이야기들을 통해 100년 전과 현재가 얼마나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를 살핀다. 저자가 풀어놓는 어제의 ‘오늘’들은 낯설지만 흥미롭다. 저자가 어제의 ‘오늘’들로 지금의 ‘오늘’에 던지는 메시지는 쓰지만 통렬하다.
과거의 ‘오늘’이 현재의 ‘오늘’에 말해주는 것들
시간, 여전한 역사의 시계바늘
6월 10일, 우리에게 이 날은 1926년 6월 10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군주였던 순종의 장례식을 기해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이나 1987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4·13호헌조치’ 발표 후 이에 반대하는 6월항쟁의 시발점으로 기억된다. 반면 저자는 ‘시時의 기념일’이라는 다소 낯선 역사를 들려준다.
1921년 일본은 기원후 60년경 누각漏刻이라는 시계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덴치天智왕을 기리고 시간을 엄수하는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6월 10일을 ‘시時의 기념일’로 선포하고 조선에도 적용했다. 하지만 당시 시계는 평범한 사람은 절대 가질 수 없는 고가품이었다. 시계의 보급률이 현저히 낮았던 그 시절 보통 사람들이 시각을 알 수 있는 길은 정오의 오포午砲 소리를 듣는 것뿐이었다. 오포는 일본 도쿄의 표준 시계에 연결된 발신기가 일본 제국 전역의 주요 지점에 설치된 수신기에 알려준 시각, 즉 시보時報에 맞춰 쐈다. 그러나 이는 잘 맞지 않았다.
그 연유에 대해 우스개 아닌 우스개가 떠돌았다. 일제 강점 초기 오포는 남산 헌병대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오포 쏘는 병사가 정오 무렵 망원경으로 일본인 동네 시계점 안의 시계를 살피다가 그중 마음에 드는 시계가 정오를 가리키면 그때에 맞춰 포를 쐈기 때문이란다. 항간에 이 같은 우스개 아닌 우스개가 떠돈 이유는, 총독부는 일본인들의 여론만 살펴 그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고 일본 거류민단은 또 그들대로 총독부의 의중에 맞춰 자기들 여론을 만드는 세태 때문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식민지 원주민의 시간은 크게 고려할 사안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식민지의 시간, 즉 역사를 식민지인들 자신의 과거와 단절시켜 자기들의 시간에 편입하는 것이었다. 권력이 특정 세력의 여론만 살피고 그 특정 세력은 또 권력의 의중에 맞춰 움직이는 모습, 지금이라고 다를까? 100여 년이 흘렀건만 역사의 시계바늘은 그대로다.
공간, 역사를 품고 인간을 품다
8월 10일,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는 이 날에서 저자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공간 분할을 떠올린다. 옛 서울의 공동묘지를 추적하고, 그 공동묘지를 군용지로 강제 수용해버린 일제의 약탈을 파헤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사색한다.
1905년 8월 10일, 일본군은 수백 년간 서울 시민들의 공동묘지이던 용산 땅의 군용지 수용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이렇게 빼앗은 광대한 땅 위에 거대한 병영과 연병장, 철도시설을 짓고, 남은 땅은 일본인들에게 나누어준다.
산업화 이전, 한국인들에게 산은 제2의 집터이자 농토였다. 살아서는 평지에 지은 집에서 기거했고 죽어서는 산에 만든 집에서 영면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공간을 평지와 산지로 확연히 나누는 점에서 한국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서울 도성 안 산에 죽은 자의 자리를 허락할 수는 없었다. 왕궁을 굽어보는 산지에 무덤을 쓰는 것은 왕보다 높은 자리를 주는 것으로 곧 불경不敬이었다. 도성 안에 무덤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죽은 사람은 왕이든 평민이든 모두 도성 밖으로 나가야 했다. 도성 밖으로 빠져나간 시체의 행선지는 제각각이었지만 시골에 연고가 없던 서울 사람들은 대체로 애오개 주변과 남산 남사면(지금의 미군 용산기지 일대)에 묻혔다. 이런 일이 500년 넘게 되풀이되면서 도성 밖 남산 기슭은 온통 무덤 천지가 되었다.
1904년 2월 23일 대한제국 정부를 협박해 〈한일의정서〉라는 군사협정을 체결한 일본군은 3월 11일 한국주차군사령부를 설치함으로써 한국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남산 일본 공사관 옆에 임시로 사령부 건물을 설치한 일본군은 영구 주둔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남산의 남사면 일대를 요구한다. 한국 정부는 일본군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서울 시민들의 공동묘지는 그렇게 사라졌다.
서울은 죽은 자들에게 인색한 도시다. 도시 안에 죽음과 관련된 시설이나 장소가 없는 점은 서울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다. 하지만 삶과 죽음은 연속된 것이며, 삶은 죽음 가까이에 있을 때 더 빛나는 법이다. 죽음을 떠올릴 수 있는 시설들을 일상에서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계속 격리시켜왔기에, 우리의 삶이 더 경박해져가는 것은 아닐까.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곧 삶을 성찰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간, 진정으로 중요한 것 잊지 말아야
저자는 7월 13일이라는 ‘오늘’에서도 유의미한 어제를 찾아 오늘의 ‘인간’을 이야기한다. 특히 ‘몸짱’ 전성시대인 ‘지금 여기’에 과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진중하게 묻는다.
1920년 7월 13일, 1년 반 전 3·1운동 때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서울 인사동 태화관에서 조선체육회가 만들어진다. 장덕수가 작성한 창립취지서는 체육이 생명의 본령에 따르는 활동임을 전제한 후, 조선체육회가 “조선 인민의 생명을 원숙 창달하는 사회적 통일적 기관”이라고 선언했다.
고종은 정동 테니스장에서 열린 주한 외교관들의 테니스 경기를 참관하다가 혀를 찼다. “저렇게 힘든 일을 어찌 하인들에게 시키지 않고 귀빈들이 직접 하는가.” 그는 노동과 운동을 구분하지 못했고, 그래서 평소 ‘힘든 일’을 하느라 체력이 소진된 하인들에게는 운동할 여력이 없다는 사실도 이해하지 못했다. 대다수 고관과 양반들의 생각도 고종과 같았다. 당시 체육은 그렇게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던 체육이 변했다. 아니, 체육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다. 특히 민족주의자들에게 체력은 전투력이었기에 국력이었으며, 체육교육은 국력을 키우는 군사훈련이었다. 해방 후에도 이 같은 관점은 지속되었다. 정부와 민간에서 지속적으로 체육에 투자를 확대했으며, 이에 힘입어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 유수의 스포츠강국이 되었다.
요즘 사람들의 삶에서 체육의 비중은 나날이 늘어간다. 자기 한 몸 가꾸기 위해 고행과 단식도 마다않는다. 헬스와 다이어트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수신修身의 비중은 그에 반비례하여 줄어들고 있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파렴치한 범죄들이 반복되고 사회 지도층으로 행세하는 데 도덕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수신을 도외시하고 체육만 중시해온 현대 사회의 씁쓸한 단면이다. 이제라도 수신에 대한 개인적·사회적 투자를 늘려야 하지 않을까? ‘수신’을 버리고 ‘체육’만으로 얻게 되는 몸은, 사람의 몸이 아니라 짐승의 것만도 못한 몸이다.
‘오늘’의 역사로 ‘내일’을 열다
환경, 교육, 의료 … 시의성 있는 일침
비단 시간과 공간과 인간 자체의 역사만이 아니다. 저자는 시간과 공간과 인간이라는 틀 속에서 파생되는 ‘오늘’들의 다양한 측면을 살핀다. 을축년 대홍수가 일어난 1925년 7월 18일의 역사에서는, 환경 문제를 성찰하며 인간이 자연에 얹혀사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일본 덴노가 조선총독에게 〈교육칙어〉를 하달한 1911년 10월 23일의 역사를 들추며, 〈국민교육헌장〉으로 이어진 교육의 군국주의 문제를 지적한다. 보건부가 가짜의사 275명을 적발하여 경찰에 통보한 1954년 8월 12일의 역사를 돌아볼 때는, 병원이 신전이 되어버린 현 시대에서 의료 민영화는 ‘가난이 사형선고’인 사회를 만들려 하는 것이라며 의료 문제를 건드린다.
권력에 대한 일침도 서슴없다. 1912년 1월 14일 광장주식회사의 주주총회 개최가 지니는 역사적 의의를 밝히면서, 대통령의 재래시장 방문이 ‘서민 코스프레’가 아닌 ‘임금 코스프레’임을 지적하고 현대적 신분제를 경계한다. 가로명제정위원회에서 새 동명과 가로명을 고시한 1946년 10월 1일의 역사를 살피면서, 세종로라는 이름에 담긴 역사성을 헤아리라고 촉구한다. 경무청이 물가 폭등을 이유로 채소 도매상 단속에 열을 올리던 1903년 11월 11일의 역사를 돌아볼 때는, 예나 지금이나 물가 폭등의 주범은 상인이 아니라 정부임을 지적하며 행정력을 동원하여 물가를 억누르려는 코미디 같은 짓을 그만두라고 충고한다.
‘오늘’을 만드는 ‘어제’, ‘내일’을 위한 성찰의 토대로 삼아야
저자의 풍부한 역사지식은 책 전체를 아우른다.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역사들을 생생하게 재연한다. 이는 무심히 지나친 것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당연한 듯 여기던 것들을 새롭게 돌아볼 수 있는 눈을 키워준다. 과거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오늘과 내일에 영향을 미친다는 상식을 새삼스레 일깨운다.
무의미한 ‘오늘’은 없다. 크든 작든, 익숙하든 낯설든 현재의 ‘오늘’은 수많은 과거의 ‘오늘’들의 연속이다. 저자는 이 같은 관점 아래 쓰인 60개의 ‘오늘’들을 통해 다음과 같은 바람을 피력한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현재와 과거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생각할 수 있기를, 현재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조금 더 무겁게 받아들이기를, 스스로 ‘나답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 성찰하는 시간을 잠시나마 갖게 되기를, 소망한다.”
▣ 작가 소개
저 : 전우용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19세기 말~20세기 초 한인 회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상명대학교 강사와 서울시립대학교 부설 서울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을 지내고 2008년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종로와 본정: 식민도시 경성의 두 얼굴」, 「식민지 도시 이미지와 문화현상」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서울상업사』(공저), 『청계천: 시간, 장소, 사람』(공저), 『서울 20세기: 100년의 사진기록』(공저) 등이 있다. 현재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주요 목차
책머리에
1월 7일_조선총독부 이전
경복궁 잔디밭과 일제의 공간정치
1월 14일_광장주식회사 주주총회 개최
대통령의 재래시장 방문, ‘서민 코스프레’ 아닌 ‘임금 코스프레’
1월 21일_경찰, 방탕한 방아타령과 음란한 춘향가 공연 금지
대중문화 길들이기, 권력의 헛된 욕망일 뿐
1월 27일_화신백화점 화재
화신백화점에서 종로타워로, 역사는 땅에도 새겨진다
2월 5일_미국인, 돌싸움 구경하다 살인
공공연한 폭력은 줄었으나 비물리적 폭력은?
2월 10일_종로경찰서, 어린이 행상 단속
어린이를 거리로 내몬 ‘불량한 가족’
2월 19일_에케르트, 대한제국 군악대장으로 부임
한국 근대 문화사에서 실종된 퍼즐조각
2월 24일_조선총독부, 한센병 환자 격리 위해 소록도 자혜의원 설립
한센병보다 무서운 병, ‘장애인 혐오증’
3월 3일_고종황제 국장
‘죽은 권력’을 둘러싼 기억의 싸움
3월 10일_만민공동회 개최
민주주의, 가장 낮은 곳에서 나는 소리를 먼저 듣는 것
3월 18일_조선총독부, 조선태형령 제정·공포
형벌의 목적, ‘교화’인가 ‘복수’인가
3월 26일_우리나라에서 교육받은 최초의 여의사 탄생
여성을 가정에 묶어 두려는 태도, 이미 시대착오
4월 1일_소학교를 국민학교로 변경
국민을 찍어내는 기계였던 ‘국민학교’, 이름은 바뀌었으나 …
4월 7일_값싼 알코올, 대량생산 본격화
연료용 알코올이 서민용 음료가 되면서 술의 신성성도 옅어지다
4월 15일_광희정 수건 공장 총파업
동대문디자인플라자, 역사와 문화의 흔적을 지워버린 개발
4월 22일_서울에 시내버스 등장
‘나만의 시간’, ‘혼자만의 공간’에 대한 본능적 욕구, 대중교통수단 기피로 표출되다
4월 30일_의생醫生으로 격하된 한의사들, 서양의학 수강
양방과 한방이 공존하는 현실, 의료일원화의 해법 찾아야
5월 4일_첫선을 보인 전차
근대 문명의 이기利器 전차와 ‘근대병’ 그리고 ‘주의사항’
5월 14일_이 땅에서 교육받은 최초의 양의 탄생
근대화의 역사, 배움에도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된다
5월 19일_도둑질 겸하던 깍쟁이패 체포
놀고먹으려는 욕망이 죄의 사슬에서 풀려난 시대, 깍쟁이란 말도 원뜻에서 풀려나
5월 27일_여자 경찰 채용 시험 시행
경찰에 대한 불신, ‘이미지 쇄신’만으로는 해소되지 않을 것
6월 3일_물장수들, 상수도 준공에 따른 손해배상 요구
자연과 인류 최대의 적은 인간의 탐욕이다
6월 10일_총독부, ‘시의 기념일’ 선포
권력의 여론 조작, 역사의 시계바늘을 엉뚱한 곳으로
6월 16일_대조선은행 창립 준비모임 개최
‘공공’을 돌보지 않는 은행, 천한 고리대금업체와 다를 바 없다
6월 25일_한국전쟁 발발
인류의 ‘주적’은 전쟁이다
6월 30일_한양상회, 기업 이미지 광고 게재
물질과 욕망이 지배하는 시대, ‘지름신’의 거소 백화점
7월 6일_일제 경찰, 무당 체포
세계 희유의 ‘다종교 단일민족국가’ 한국, 통합은 ‘다름’을 인정하는 것
7월 8일_신생활복 착용안 통과
‘의복 통일’, 전체주의적 저질 생체 권력의 상징
7월 13일_조선체육회 창립
‘수신’ 버리고 ‘체육’만으로 얻는 몸은 사람의 몸이 아니다
7월 15일_조선중앙위생회 설치
‘위생’의 이름으로 사생활에 개입하는 국가, 생체 정보 유출의 위험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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