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역사는 깊다 2 (20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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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전우용
출판사항푸른역사, 발행일:2015/05/31
형태사항p.351p. 국판:23CM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91156120469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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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오늘’의 역사를 말하다

1월 7일과 12월 30일의 역사
1927년 1월 7일, 남산 기슭에 있던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앞에 새로 지은 청사로 이전했다. 왜 경복궁 앞(정확히는 경복궁 경내)이었을까? 총독부는 조선왕조의 역사를 표상하는 경복궁과 일제의 식민 통치를 표상하는 새 총독부 건물이 한 시야에 포착되기를 원했다. 조선 건축 기술의 정화를 담은 경복궁조차 총독부 신청사의 위용에 비하면 하찮고 볼품없다는 점을 조선인 스스로 깨닫게 만들겠다는 노림수였다. 이뿐만이 아니다. 일제는 경복궁 전각을 헐어버리고 그 자리에 빠짐없이 잔디를 심었다. 한국인에게 잔디는 죽은 사람의 집인 무덤에만 심는 풀이었다. 산 사람이 사는 집에 잔디를 심는 것은 금기였다. 잔디에서 바로 무덤을 떠올리는 한국인들의 의식 안에서, 궁궐 안의 잔디밭은 곧바로 ‘왕조의 죽음’과 연결되었다. 일제는 그렇게 경복궁을 경복궁이되 경복궁이 아닌 것으로 만들고자 했다.
1960년 12월 30일, 윤보선 대통령은 대통령 관저였던 “경무대가 전前정권 때 폭정을 자행한 곳으로 국민들에게 원부怨府 같은 인상을 준다”며 명칭을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바꿨다. ‘대臺’는 하늘을 올려다보거나 땅을 굽어보기 위해 평지보다 높은 곳에 만든 평평한 구조물이다. 때로는 천문대가 되어 하늘에 비치는 민심을 살피고, 때로는 무대가 되어 국민들을 즐겁게 해주는 곳이라는 의미가 내재되어 있다. ‘경무대景武臺’는 ‘무예를 구경하는 대’라는 의미로, 정확히 알 수는 없으나 새로 생긴 대를 무예 구경 용도로 쓰겠다는 의지를 담은 이름인 것으로 보아 당대의 권력자 대원군이 지은 이름으로 보인다. 그런 경무대를 윤보선 대통령이 미국 백악관White House을 본뜬 것으로 충분히 오해받을 만한 이름 청와대Blue House로 바꾼 것이다. ‘푸른 기와를 얹은 대’라는 희한한 뜻을 지닌 ‘청와대’는 그렇게 만들어졌다.

60꼭지에 담긴 ‘오늘’들
3월 1일, 7월 17일, 8월 15일은 굵직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 날이다. 반면 1월 7일과 12월 30일에서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찾기는 쉽지 않다. 그저 새롭게 시작된 해의 일곱 번째 날과 그 해의 마지막 하루 전날일 뿐이다. 조선총독부가 경복궁 앞으로 이전한 것과 경무대를 청와대로 개칭한 것도, 독립을 외치고 헌법을 만들고 해방을 이룬 것에 비한다면 그리 큰 의미를 지니지 못한 사건이다. 그저 흥미로운 교양 상식 늘려주는 정도일 뿐이다.
《우리 역사는 깊다》(전2권)는 이처럼 무의미한 듯한 ‘오늘’들의 별다를 것 없어 보이는 ‘역사’들을 되살려 ‘2015년 대한민국’을 곱씹는다. 《서울은 깊다》, 《현대인의 탄생》 등 여러 저서를 통해 말해지지 않은 역사를 소개하고 그것을 통해 현재를 성찰하는 데 힘써온 역사학자 전우용이 〈역사학자 전우용의 한국 근대 읽기 3부작〉 중 첫 번째인 이 책에서 주목하는 것은 바로 이러한 ‘오늘들의 역사’다(2부 《근대의 사생활》(가제)과 3부 《공간 너머》(가제)는 각각 2016년, 2017년에 출간 예정이다). 저자는 귀성 풍습의 기원, 예방 접종의 시작, 전등 시대의 개막, 위생 관념의 확산, 대중교통 수단의 도입 등 주로 교과서에 나오지 않는 ‘오늘’의 작은 사건들을 소개하고, 성찰의 재료로 삼을 만한 요소들에 대해 나름의 의견을 덧붙인다.
그때그때 날짜에 맞춰 총 60개의 주제를 선정했기 때문에 꼭지들 간 연관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모든 꼭지를 관통한 저자의 문제의식은 역사란 시간·공간·인간의 유기적이고 총체적인 변화라는 생각이다. 저자는 수많은 작은 ‘오늘’들의 다양한 시간과 공간과 인간의 이야기들을 통해 100년 전과 현재가 얼마나 어떻게 다르고 같은지를 살핀다. 저자가 풀어놓는 어제의 ‘오늘’들은 낯설지만 흥미롭다. 저자가 어제의 ‘오늘’들로 지금의 ‘오늘’에 던지는 메시지는 쓰지만 통렬하다.

과거의 ‘오늘’이 현재의 ‘오늘’에 말해주는 것들

시간, 여전한 역사의 시계바늘
6월 10일, 우리에게 이 날은 1926년 6월 10일 대한제국의 마지막 군주였던 순종의 장례식을 기해 일어난 독립만세운동이나 1987년 전두환 전 대통령의 ‘4·13호헌조치’ 발표 후 이에 반대하는 6월항쟁의 시발점으로 기억된다. 반면 저자는 ‘시時의 기념일’이라는 다소 낯선 역사를 들려준다.
1921년 일본은 기원후 60년경 누각漏刻이라는 시계를 만들었다고 전해지는 덴치天智왕을 기리고 시간을 엄수하는 문화를 만들자는 취지에서 6월 10일을 ‘시時의 기념일’로 선포하고 조선에도 적용했다. 하지만 당시 시계는 평범한 사람은 절대 가질 수 없는 고가품이었다. 시계의 보급률이 현저히 낮았던 그 시절 보통 사람들이 시각을 알 수 있는 길은 정오의 오포午砲 소리를 듣는 것뿐이었다. 오포는 일본 도쿄의 표준 시계에 연결된 발신기가 일본 제국 전역의 주요 지점에 설치된 수신기에 알려준 시각, 즉 시보時報에 맞춰 쐈다. 그러나 이는 잘 맞지 않았다.
그 연유에 대해 우스개 아닌 우스개가 떠돌았다. 일제 강점 초기 오포는 남산 헌병대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오포 쏘는 병사가 정오 무렵 망원경으로 일본인 동네 시계점 안의 시계를 살피다가 그중 마음에 드는 시계가 정오를 가리키면 그때에 맞춰 포를 쐈기 때문이란다. 항간에 이 같은 우스개 아닌 우스개가 떠돈 이유는, 총독부는 일본인들의 여론만 살펴 그에 따라 정책을 결정하고 일본 거류민단은 또 그들대로 총독부의 의중에 맞춰 자기들 여론을 만드는 세태 때문이었다. 일본 제국주의자들에게 식민지 원주민의 시간은 크게 고려할 사안이 아니었다. 그들에게 중요한 것은 식민지의 시간, 즉 역사를 식민지인들 자신의 과거와 단절시켜 자기들의 시간에 편입하는 것이었다. 권력이 특정 세력의 여론만 살피고 그 특정 세력은 또 권력의 의중에 맞춰 움직이는 모습, 지금이라고 다를까? 100여 년이 흘렀건만 역사의 시계바늘은 그대로다.

공간, 역사를 품고 인간을 품다
8월 10일, 대부분의 현대인들에게 별다른 의미를 갖지 못하는 이 날에서 저자는 산 자와 죽은 자의 공간 분할을 떠올린다. 옛 서울의 공동묘지를 추적하고, 그 공동묘지를 군용지로 강제 수용해버린 일제의 약탈을 파헤친다. 그리고 이를 통해 삶과 죽음의 의미를 사색한다.
1905년 8월 10일, 일본군은 수백 년간 서울 시민들의 공동묘지이던 용산 땅의 군용지 수용을 마무리한다. 그리고 이렇게 빼앗은 광대한 땅 위에 거대한 병영과 연병장, 철도시설을 짓고, 남은 땅은 일본인들에게 나누어준다.
산업화 이전, 한국인들에게 산은 제2의 집터이자 농토였다. 살아서는 평지에 지은 집에서 기거했고 죽어서는 산에 만든 집에서 영면했다. 산 자와 죽은 자의 공간을 평지와 산지로 확연히 나누는 점에서 한국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하지만 서울 도성 안 산에 죽은 자의 자리를 허락할 수는 없었다. 왕궁을 굽어보는 산지에 무덤을 쓰는 것은 왕보다 높은 자리를 주는 것으로 곧 불경不敬이었다. 도성 안에 무덤을 만들 수 없었기 때문에 서울에서 죽은 사람은 왕이든 평민이든 모두 도성 밖으로 나가야 했다. 도성 밖으로 빠져나간 시체의 행선지는 제각각이었지만 시골에 연고가 없던 서울 사람들은 대체로 애오개 주변과 남산 남사면(지금의 미군 용산기지 일대)에 묻혔다. 이런 일이 500년 넘게 되풀이되면서 도성 밖 남산 기슭은 온통 무덤 천지가 되었다.
1904년 2월 23일 대한제국 정부를 협박해 〈한일의정서〉라는 군사협정을 체결한 일본군은 3월 11일 한국주차군사령부를 설치함으로써 한국을 군사적으로 점령하겠다는 의지를 노골적으로 드러낸다. 남산 일본 공사관 옆에 임시로 사령부 건물을 설치한 일본군은 영구 주둔시설을 확보하기 위해 적당한 장소를 물색하다가 남산의 남사면 일대를 요구한다. 한국 정부는 일본군의 요구를 수용할 수밖에 없었고, 서울 시민들의 공동묘지는 그렇게 사라졌다.
서울은 죽은 자들에게 인색한 도시다. 도시 안에 죽음과 관련된 시설이나 장소가 없는 점은 서울의 두드러진 특징 중 하나다. 하지만 삶과 죽음은 연속된 것이며, 삶은 죽음 가까이에 있을 때 더 빛나는 법이다. 죽음을 떠올릴 수 있는 시설들을 일상에서 보이지 않는 먼 곳으로 계속 격리시켜왔기에, 우리의 삶이 더 경박해져가는 것은 아닐까.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곧 삶을 성찰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인간, 진정으로 중요한 것 잊지 말아야
저자는 7월 13일이라는 ‘오늘’에서도 유의미한 어제를 찾아 오늘의 ‘인간’을 이야기한다. 특히 ‘몸짱’ 전성시대인 ‘지금 여기’에 과연 인간에게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진중하게 묻는다.
1920년 7월 13일, 1년 반 전 3·1운동 때 민족대표들이 모여 〈독립선언서〉를 낭독했던 서울 인사동 태화관에서 조선체육회가 만들어진다. 장덕수가 작성한 창립취지서는 체육이 생명의 본령에 따르는 활동임을 전제한 후, 조선체육회가 “조선 인민의 생명을 원숙 창달하는 사회적 통일적 기관”이라고 선언했다.
고종은 정동 테니스장에서 열린 주한 외교관들의 테니스 경기를 참관하다가 혀를 찼다. “저렇게 힘든 일을 어찌 하인들에게 시키지 않고 귀빈들이 직접 하는가.” 그는 노동과 운동을 구분하지 못했고, 그래서 평소 ‘힘든 일’을 하느라 체력이 소진된 하인들에게는 운동할 여력이 없다는 사실도 이해하지 못했다. 대다수 고관과 양반들의 생각도 고종과 같았다. 당시 체육은 그렇게 인식되고 있었다.
그러던 체육이 변했다. 아니, 체육을 바라보는 눈이 바뀌었다. 특히 민족주의자들에게 체력은 전투력이었기에 국력이었으며, 체육교육은 국력을 키우는 군사훈련이었다. 해방 후에도 이 같은 관점은 지속되었다. 정부와 민간에서 지속적으로 체육에 투자를 확대했으며, 이에 힘입어 오늘날 대한민국은 세계 유수의 스포츠강국이 되었다.
요즘 사람들의 삶에서 체육의 비중은 나날이 늘어간다. 자기 한 몸 가꾸기 위해 고행과 단식도 마다않는다. 헬스와 다이어트라는 이름으로. 하지만 수신修身의 비중은 그에 반비례하여 줄어들고 있다. 차마 입에 담기 어려운 파렴치한 범죄들이 반복되고 사회 지도층으로 행세하는 데 도덕성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 수신을 도외시하고 체육만 중시해온 현대 사회의 씁쓸한 단면이다. 이제라도 수신에 대한 개인적·사회적 투자를 늘려야 하지 않을까? ‘수신’을 버리고 ‘체육’만으로 얻게 되는 몸은, 사람의 몸이 아니라 짐승의 것만도 못한 몸이다.

‘오늘’의 역사로 ‘내일’을 열다

환경, 교육, 의료 … 시의성 있는 일침
비단 시간과 공간과 인간 자체의 역사만이 아니다. 저자는 시간과 공간과 인간이라는 틀 속에서 파생되는 ‘오늘’들의 다양한 측면을 살핀다. 을축년 대홍수가 일어난 1925년 7월 18일의 역사에서는, 환경 문제를 성찰하며 인간이 자연에 얹혀사는 존재일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운다. 일본 덴노가 조선총독에게 〈교육칙어〉를 하달한 1911년 10월 23일의 역사를 들추며, 〈국민교육헌장〉으로 이어진 교육의 군국주의 문제를 지적한다. 보건부가 가짜의사 275명을 적발하여 경찰에 통보한 1954년 8월 12일의 역사를 돌아볼 때는, 병원이 신전이 되어버린 현 시대에서 의료 민영화는 ‘가난이 사형선고’인 사회를 만들려 하는 것이라며 의료 문제를 건드린다.
권력에 대한 일침도 서슴없다. 1912년 1월 14일 광장주식회사의 주주총회 개최가 지니는 역사적 의의를 밝히면서, 대통령의 재래시장 방문이 ‘서민 코스프레’가 아닌 ‘임금 코스프레’임을 지적하고 현대적 신분제를 경계한다. 가로명제정위원회에서 새 동명과 가로명을 고시한 1946년 10월 1일의 역사를 살피면서, 세종로라는 이름에 담긴 역사성을 헤아리라고 촉구한다. 경무청이 물가 폭등을 이유로 채소 도매상 단속에 열을 올리던 1903년 11월 11일의 역사를 돌아볼 때는, 예나 지금이나 물가 폭등의 주범은 상인이 아니라 정부임을 지적하며 행정력을 동원하여 물가를 억누르려는 코미디 같은 짓을 그만두라고 충고한다.

‘오늘’을 만드는 ‘어제’, ‘내일’을 위한 성찰의 토대로 삼아야
저자의 풍부한 역사지식은 책 전체를 아우른다. 미처 알지 못했던 많은 역사들을 생생하게 재연한다. 이는 무심히 지나친 것들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킨다. 당연한 듯 여기던 것들을 새롭게 돌아볼 수 있는 눈을 키워준다. 과거가 과거에만 머무르지 않고 오늘과 내일에 영향을 미친다는 상식을 새삼스레 일깨운다.
무의미한 ‘오늘’은 없다. 크든 작든, 익숙하든 낯설든 현재의 ‘오늘’은 수많은 과거의 ‘오늘’들의 연속이다. 저자는 이 같은 관점 아래 쓰인 60개의 ‘오늘’들을 통해 다음과 같은 바람을 피력한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현재와 과거의 관계에 대해 조금 더 많이 생각할 수 있기를, 현재의 선택이 미래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조금 더 무겁게 받아들이기를, 스스로 ‘나답다’고 생각하는 것들이 무엇으로 구성되었는지 성찰하는 시간을 잠시나마 갖게 되기를, 소망한다.”

▣ 작가 소개

저 : 전우용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19세기 말~20세기 초 한인 회사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가톨릭대학교, 상명대학교 강사와 서울시립대학교 부설 서울학연구소 상임연구위원을 지내고 2008년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로 재직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종로와 본정: 식민도시 경성의 두 얼굴」, 「식민지 도시 이미지와 문화현상」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 『서울상업사』(공저), 『청계천: 시간, 장소, 사람』(공저), 『서울 20세기: 100년의 사진기록』(공저) 등이 있다. 현재 문화재청 문화재 전문위원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 주요 목차

책머리에

7월 18일_을축년 대홍수
인간은 자연에 얹혀사는 존재일 뿐
7월 22일_자동차취체규칙 제정
또 하나의 가족이 된 자동차, 새 가족을 얻은 대신 잃은 것들
7월 24일_광무신문지법 공포
탄압받던 언론에서 ‘한통속’이 된 언론
7월 29일_양화진에 외국인 묘역 조성
글로벌시대, 한국인의 사생관死生觀과 외국인 묘지
8월 4일_김우진, 윤심덕 현해탄 투신
자살률은 시대의 ‘우울도’ 측정하는 바로미터
8월 6일_서소문 화교들의 삶
‘외국인 혐오증’, 우리가 용납될 공간도 줄인다
8월 10일_일제, 서울 시민의 공동묘지 용산 땅을 군용지로 수용
기억에서 지워진 공동묘지 용산, 삶 주변에서 사라진 죽음
8월 12일_보건부, 무면허 의사 275명 적발
의료 민영화, ‘가난이 사형선고’인 사회를 만든다
8월 19일_한성전기회사, 전등개설예식 개최
‘불야성’을 현실 세계에 구현한 전등, 그래도 늘 부족한 현대인의 시간
8월 20일_청계천 복개 계획 제출
복개에서 복원까지, 청계천의 역사와 인간의 변덕
8월 23일_여자정신근로령 공포
만행의 기록이 문서로 남는 경우는 드물다
8월 29일_일본, 한국 국호를 조선으로 변경
남이 이름 지어준 대로 불리는 자, 식민지 백성
8월 31일_종로경찰서, 종로변 상점에 변소 설치 지시
민주 사회의 관리들, 다양하고 상충되는 시민들의 요구 경청하고 설득하는 자세 필
9월 15일_추석 임시열차 증편 운행
귀성과 민족 대이동, 이제 사라질지도 모를 한국적 ‘전통문화’
9월 26일_일본 제실박물관장, 순종 황제 알현
‘빼앗은’ 나라의 박물관과 ‘빼앗긴’ 나라의 박물관
10월 1일_가로명제정위원회, 새 동명과 가로명 고시
나라의 중심가로 세종대로, 그러나 나라의 정치 철학은?
10월 7일_종두규칙 공포
전염병 예방의 시대, 예방할 수 없는 것에 대한 공포
10월 12일_대한제국 선포
우리나라 국호 ‘대한민국’에 담긴 뜻
10월 22일_청산리대첩
청산리대첩의 주역 홍범도, 그에게도 이 땅에 설 자리 하나쯤은 마련해주어야
10월 23일_일본 덴노, 조선총독에게 〈교육칙어〉 하달
〈국민교육헌장〉으로 이어진 〈교육칙어〉의 군국주의 정신
10월 27일_장충단 설치
대한제국의 국립현충원 장충단, 털어내지 못한 오욕의 흔적
11월 4일_훈민정음 반포 팔회갑 기념식 개최
‘반글’, ‘암클’에서 ‘한글’이 된 훈민정음, 지금 다시 ‘반글’이 된 건 아닌가
11월 11일_경무청, 채소 도매상 단속
물가 단속으로 민심 다독이려 한 ‘권력 주연 코미디’의 서글픈 역사
11월 17일_우정총국 개국, 우편사무 개시
우편사무 개시와 지번 부여, 모든 것을 숫자화하는 시대를 열다
11월 27일_대한제국, 정동 부근에 고층건물 신축 금지
고층화를 향한 욕망, 뒷수습은 어찌 할까
12월 3일_조청국경회담 결렬
동북아 영토분쟁, 냉철한 역사인식으로 대처해야
12월 10일_안창남의 ‘고국 방문 대비행’
여의도 상공을 비행한 안창남, 한국인에게 3차원의 시야를 선물하다
12월 17일_지전 상인들, 조선지주식회사 설립
명분 없는 이득 경계했던 옛 상도, 지금 우리 기업문화에 절실히 필요한 것
12월 24일_셔우드 홀, 크리스마스실 발행
유병장수有病長壽 시대, 질병과 오래 동거하면서도 불행해지지 않을 방법 찾아야
12월 30일_경무대를 청와대로 개칭
경무대에서 청와대로, 민심 살피고 국민 즐겁게 하는 ‘대’라는 이름에 충실했으면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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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목 차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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