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본주의의 매혹 -돈과 시장의 경제사상사-

고객평점
저자제리 멀러
출판사항휴먼앤북스, 발행일:2015/06/05
형태사항p.679 국판:23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60781979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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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별이 빛나는 창공을 보고, 갈 수가 있고 또 가야만 하는 길의 지도를
읽을 수 있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그리고 별빛이 그 길을 훤히
밝혀 주던 시대는 얼마나 행복했던가?”

루카치의 첫머리에 나오는 대목이다. 1980년대 초반 이 구절은 돌을 들고 길거리로 나갈 수 없었던, 광주의 불의를 알면서도 침묵할 수밖에 없었던, 한 문학도의 눈을 번쩍 뜨이게 하는 대목이었다. 나만 그랬을까? 그때부터 그 어려웠던 루카치의 《소설의 이론》과 《역사와 계급의식》을 읽고 또 읽었다. 그 책들은 점점 나를, 그리고 우리를 부끄럽게 했고, 역사에 대한 부채의식을 자라나게 했다. 그 이후로도 그 책들을 여러번 읽었다. 본격적으로 문학을 하면서도 그 책들은 늘 하나의 전범으로 자리잡고 있었다. 그러나 그러면서도, 세월이 흐르면서도, 마르크스나 루카치는 늘 안개 같은 것이었다. 논리로서는 그들이 옳은듯 하면서도, 심정적으로는 과연 그럴까 하는 생각이 항상 내면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세월이 가고, 민주화가 진행되고, 더 급박하게 세상이 돌아가고, 스스로도 돌아가다가, 이 책을 접했다. 가장 자본주의적인 악당 볼테르와 ‘보이지 않는 손’의 애덤 스미스를 지나서, 전체와 개인의 합일을 사적으로 추구했던 헤겔을 지나서, 그리고 울분에 찬 영원한 청년 마르크스와 고집스런 완벽주의자 루카치에 이르자 나는 알았다. 청년 시절의 그 미진했던 안개가 드디어 걷혔다는 것을. 그것은 한 문학도의 사상적 개안이었다. 이제 루카치가 왜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다. 왜 마르크스가, 왜 마르쿠제가 그런 말을 했는지 알겠다. 20여년간의 어설픈 독서 편력에서의 어두웠던 부분이 이 책의 정독을 통해 일시적으로 풀렸다. 그리고, 슘페터와 하예크를 읽을 무렵에는 자본주의가 무엇인지 보이기 시작했다. 이 책을 읽고서도 자본을 모을 수는 없을것이다. 그러나 자본주의가 보인다는 것은 이 시대가 보인다는 것이다. 이 시대가 나아가야할 방향이 보인다는 것이다. 이 책을 통해 나는 최소한 사상사적 무식으로부터 벗어났다. 그리고 이제는 확실한 시대의 틀을 보았다. 그 틀의 이름은 자본주의다. 그래서 이 책의 제목은 자본주의의 매혹이다.

우리에게 자본주의란 무엇인가?
자본주의는 정당한가? 그리고 자본주의는 위기인가?

계급 제도의 기반 위에서 경제적 특권과 정치적 의무가 서로 말끔하게 연결된 중세 봉건 사회를 해체하면서 나타난 자본주의의 본질은 그 경제적 특성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 그것은 정치적, 도덕적, 문화적 변혁을 수반했고, 특히 신분과 종교적 동질성, 공동체로 단단히 결속된 사회가 와해되면서 개인의 이기심에 의해 추진되는 자본주의가 가져온 도덕관념의 변화와 그 여파는 상당한 것이었다.지난 300년간 자본주의는 끊임없이 도덕 논쟁을 불러일으켰다. 금욕과 청빈을 강조하는 기독교 사상과, 공동선을 위해서 개인은 얼마든지 희생될 수 있다는 공화주의의 시민전통(1장, 38쪽)이 지배적이었던 사회에서, 개인적 부의 추구는 그 자체가 충격이었고 도덕적 타락이었다. 자본주의는 이기심과 끝없는 욕구를 조장하여늘 인간을 불행하게 하고(루소 215쪽), 수단과 목적을 전도시키며(아널드 321쪽), 부자가 되려는 목표로 속임수와 거짓이 판치게 하며(퇴니스 341쪽), 공적 이해와 사적 이해를 분리하여 사람들의 도덕심을 감소시키고(뫼저157쪽), 노동 분업으로 말미암아 정신적 육체적으로 일면적이고 기형적인 인간을 만들어낸다(실러 216쪽)는탄식은 지금까지도 한결같이 계속되고 있다.

이렇듯, 자본주의는 근대 사회에서 파생된 모든 악덕의 근원적 책임자로 비난받아왔다.

이것은 우리 사회에서도 마찬가지이다. 더구나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라는 뚜렷한 정체로 남과 북이 갈린 나라에서 자본주의의 정당성 문제는 첨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본주의 비판은 체제 전복과 직결되는 문제였고, 따라서 레드 콤플렉스가 만연되는가 하면, 또 다른 한쪽에서는 민주화와 통일이라는 다른 문제들과 긴밀히 맞물린 사회주의 운동이 일어났다. 우리 사회는 친자본주의와 반자본주의 두 세력으로 뚜렷하게 나뉘었고, 이는 지난 시대의 역사 해석에서부터 대외 관계, 교육, 각종 경제 조치에 이르기까지 사회 곳곳에서 세력간에 갈등과 충돌을 불러일으켰다.하지만 해방 이후 40여 년간 계속 억압된 자유, 민주 등 사회적 가치를 회복하려는 격렬한 움직임은 너무도 쉽게 마르크스와 레닌에 경도되어 공산주의(혹은 사회주의)를 유일한 대안으로 삼았다가 소비에트의 몰락과 함께 갈 길을 잃어버렸으며, 이와는 반대로 자본주의의 가치를 옹호하려는 쪽은 자본주의를 수호하려는 것이 아니라 독재 정권이 가져다준 기득권을 수호하려는 것이라는 혐의를 부인할 수 없는 입장에 늘 처해 있었다.

한 마디로, 한국 자본주의를 둘러싼 격렬한 투쟁에 진정한 의미의 자본주의는 없었다. 사실 그 투쟁은 정치적 자유와 인권, 부의 분배 등 각종 사회 문제를 둘러싼 투쟁이었으며, 자본주의는 이들과 양립될 수 없는 것도 아니었건만, 그 이름은 항상 반자본주의 운동으로 불려왔던 것이다.
우리에게 자본주의는 진지한 고찰의 대상이 된 적이 없었다. 다만 다른 나라에서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자본주의가 낳은 인간의 심성(이기심, 탐욕, 사기, 계산적…)은 거부감을 불러일으켰고, 모든 사회적 악덕의 근원으로 지탄받았을 뿐이다.

이에, ‘자본주의란 정확히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는, 돈과 시장이라는 자본주의적 현상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받아들여졌고 어떻게 해석되었는지, 그리고 이 새로운 현상이 인간의 다른 사회 영역에 어떤 영향을 미쳤으며, 그 파급 효과가 어떠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한국 경제의 글로벌화 이후 각 이익 집단이나 경제적 집단에서는 자신들만의 계층적, 계급적 이해를 내세우며, 날로 예각을 들이대, 사회 갈등이 심화되어가고 있다. 현 시점의 한국사회에서는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성격을 알아보는 것은 대단히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이것은 좌파는 좌파대로 자신들의 사상적 기반의 원천을 살펴보는 것이며, 우파는 우파대로 그 동안이 무논리에 대한 체계적인 논리 가다듬기의 일환으로 이 책의 검토는 필수적이다.

자본을 모아야 하는가, 자본주의를 비판해야 하는가?

“마르크스가 그저 자본에 대해 쓰지만 말고 얼마라도 자본을 모으기라도 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마르크스의 어머니

이 책은 18세기부터 20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자본주의 사상사를 다룬다. 즉, 자본주의는 경제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전제하에, 자본주의가 낳은 정치적, 도덕적, 문화적 현실을 관찰하고 이를 당대 현실에서 비판하거나 정당화하거나 혹은 그 대안을 찾고자 했던 모든 현실 운동과 이론화 작업의 역사를 다룬다. 그럼으로써 자본주의에 대한 문제제기는 비단 오늘날만의 것이 아니고 지난 수백 년간 되풀이되어왔음을 밝히면서, 오늘날의 자본주의에 비판적 조망을 제공하고자 한다. 이 책에서 다루고 있는 사상가들은 모두 당대의 자본주의 현상을 민감하게 받아들이고 이를 극복 혹은 발전시키기 위해 평생을 몰두했던 사상가들이다. 기독교에 대한 반감으로 시장 경제를 환영하며 그 자신 철저한 자본주의적 인물이 되고자 했던 18세기의 볼테르를 선두로, 시장 경제 현상을 체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자본주의에 길을 터준 애덤 스미스, 전통을 파괴하는 시장 경제를 반대하며 봉건 체계를 고집했던 유스투스 뫼저, 상업의 발달과 시장 경제는 환영했지만 금전적 인간의 확산을 경계하며 정치적으로는 보수주의자로 남은 에드먼드 버크, 자본주의가 몰고 온 개인의 주체성 개념과 이를 구속하는 것으로 여겨지던 제도와의 ‘화해’ 이론을 수립하여 자본주의의 제도적 안전장치를 마련한 헤겔, 자본주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비판가인 마르크스,마르크스처럼 자본주의를 비판했지만 체제의 거부가 아니라 교육과 문화의 힘으로 이를 극복하고자 했던 매튜 아널드, 자본주의의 도구적 합리성을 주창하며 자본주의가 현대적 조건에서는 가장 효율적 경제 체제임을 역설한 막스 베버, 돈에 의해 측정되는 경제가 개인에게 미치는 심리적 효과에 주목한 지멜, 자본주의에 대한 대안 중 하나인 인종주의를 극단적으로 밀어붙인 좀바르트, 자본주의의 대안으로 좌파의 길을 간 루카치와 우파의 길을 간 프레이어, 자본주의의 역동성을 간파하고 ‘창조적 엘리트’의 역할을 강조한 슘페터, 복지자본주의의 기수 케인스, 자본주의에서 왜 혁명이 일어나지 못하는지를 허위욕구 개념으로 설명하여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마르쿠제, 그리고 마지막으로 케인스를 부정하고 완전한 자유주의 정책을 주창함으로써 20세기 마
지막 2, 30년간 서구에서 가장 각광받은 경제학자가 된 하예크 등, 총 16명의 사상가가 다루어진다.

이 책의 내용

자본주의의 도덕적, 문화적, 정치적 효과란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을 포함하는가? 이 책에서 각 사상가마다 거의 관심을 가지고 다루고 있는 문제들은 큰 것만 간추리면 다음의 내용으로 정리된다.

1. 자본주의와 인간의 심성
시장 경제가 인간을 이기적이고 탐욕스럽게 만들었다는 것은 수없이 되풀이되어온 탄식이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형체를 갖추어가던 18세기에 이미 볼테르는 이기심으로 무장한 근대적 인간이 종교적 가치에 매달리던 중세적 인간보다 더 바람직하다는 사실을 간파해낸다. 종교 전쟁으로 혼란스러운 시대를 살면서 기독교의 불관용에 넌덜머리를 낸 볼테르는 영국으로 가서 런던 증권거래소를 보고 깊은 감명을 받는다. 그곳은 서로 배타적인 종교를 가진 신도들이 이익의 추구라는 단 하나의 목적으로 만나서 평화롭게 거래하는 곳이었다. 볼테르가 보기에, 구원에 대한 경쟁적인 추구보다 부에 대한 욕망이 인간을 더 평화롭고 행복하게 만들었다. 이웃의 영혼을 힘으로 구원하겠다는 이타적 십자군보다 부자가 되겠다는 사람이 이웃을 더 행복하게 만들수 있다.(본문 61쪽)

자본주의가 인간에게 새로운 덕성을 부여할 것이라는 신념은 애덤 스미스도 마찬가지였다. 애덤 스미스는 상업 사회가 인류에게 물질적 부를 가져다줄 것임을 확신했지만, 그는 시장의 출현으로 인간이 서로 협동하는 법을 배우며, 자제심을 키워서 좀더 유연해지며, 비사회적인 성격을 누르고 타인의 요구에 맞추는 법을 배울 것이라고 생각했다.(92쪽) 따라서 그의 《국부론》은 인간을 ‘부유하게’가 아니라 ‘바람직하게’ 만들기 위해서 집필되었다.

지멜 역시 볼테르처럼 돈이, 돈이 아니라면 전혀 상관없었을 개인 간의 협동을 이끌어내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자본주의의 속성인 경쟁을 사악한 것으로 보고 개탄한 다른 지식인들과는 달리, 성공적으로 경쟁하기 위해서는 제3자(혹은 돈)의 환심을 얻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며 경쟁의 통합적 요소를 강조했다.

2. 자본주의와 공동체, 총체성, 다원주의

또 거의 모든 사상가들이 자본주의가 공동체를 파괴한다고 탄식했다. 그들에게 있어 공동체가 주는 공유된 이상, 공공선, 공동의 목적은 인간을 도덕적으로 만드는 중요한 요소였다. 하지만 자본주의는 보편적 이성, 휴머니즘, 개인의 권리 등 합리적이고 보편적인 계몽주의 질서를 전파시킴으로써 각 지역의 특수성을 말살하는것으로 이들은 보았다.

공동체의 와해를 가장 크게 탄식한 사상가는 유스투스 뫼저였다. 계급적 위계질서 사회에서 각자가 자기 분수에 맞는 지위를 누리며 사는 것을 가장 큰 이상으로 여겼던 뫼저는, 시장이 각 지역의 특수한 문화를 지탱하는 경제적 기반을 해침으로써 문화의 다원주의를 파괴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영국의 보수주의 논객 에드먼드 버크는 문화를 자연적 충동을 감싸는 ‘베일’로 보았다. 그는 추상적 이성에 의한 합리적 제도에 따라 인간 사회가 재구성되어야 한다는 당시 계몽주의적 견해를 부인하고, 오래된 관습과 이 관습이 빚어내는 제도야말로 합리성으로 재단할 수 없는 효용가치를 가지고 있음을 설파했다.

자본주의에서는 공유된 가치를 가질 수 없다는 위기의식은 수많은 사상가들로 하여금 공산주의나 파시즘, 인종주의에 경도되게 했다. 루카치는 현대적 삶은 이제 더 이상, 모든 사물이 사물과 연결되어 있고, 공통적인 헌신을 보여주는 하나의 통일된 문화인 ‘총체성’을 구현하고 있지 않다고 보고, 이러한 소외된 문화를 극복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으로 사회주의를 들었다. 한스 프레이어 역시 자본주의는 개인이 참여할 수 있는 고귀한 목적을 상실했다고 보고, 이에 대한 대안으로 국가사회주의라는 특수한 극우주의에 빠져들었다. 1차 대전의 경험은 그에게 민족을 위해 희생할 것을 요구하는 국가의 부름이었고, 공동체를 위해 뭔가 하고 싶다는 열망에의 화답이었다. 그는 급기야는 국가의 총 역량을 시험하는 전쟁에 필적할 만한 도덕운동은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414쪽)

하지만 이러한 공동체의 와해에서 오히려 새로운 가능성을 발견한 사람은 지멜이었다. 그는 ‘사회적, 정치적, 법적으로 인격 전체를 망라하는’ 길드와 같은 전통적 공동체 대신, 현대 자본주의 사회는 제한된 목적을 위해서로 협동하는 보다 느슨하고 일시적인 연합체(그 대표가 주식회사이다)에 기초한다고 주장했다. 지멜이 보기에, 이러한 연합체는 개인의 시간과 소득, 정체성을 송두리째 헌납하지 않고 다양한 관심을 계발하고 보다 넓은 범위의 활동에 관여하는 것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3. 자본주의와 평등, 혹은 창조적 개인

민주주의가 평등 사상을 전파한 것과는 반대로, 자본주의가 진전됨에 따라 자본주의의 추동력은 소수 창조적 엘리트에서 나온다는 주장이 퍼져갔다. 창조적 소수에 대한 다수의 분개를 주창한 니체를 따라, 슘페터는 창의성과 우월한 개인성을 사회과학적 설명의 중심 이슈로 놓았다. 그는 자본주의를 움직이는 핵심은 수요공급의 법칙이 아니라 자본주의의 역동성이며, 이 역동성은 ‘기업가’라 불리는 예외적 소수의 창의성과 열정에 서 나온다고 보았다. 이러한 창조적 기업가에 대한 강조는, 자본주의 하에서는 부의 추구가 동기 부여를 한다는 일반적 관념을 뒤엎었다. 슘페터에 따르면, 이들 예외적 인물들의 동기 부여는 바로 창조와 성취의 기쁨, 자신의 열광과 천재성을 발휘하는 기쁨, 혹은 남보다 자신이 우월하다는 것을 입증하려는 의지였다.

4. 자본주의와 가족

전통적으로 가족은 이기적이고 계산적인 자본주의 가치를 넘어서는, 사랑과 이타적 희생의 관계가 살아 있는 영역으로 간주되어왔다. 뫼저에게 가족은 사회 질서를 유지하는 중요한 수단이었다. 당시 계몽전제군주가 서자 차별을 금하자, 뫼저는 그것은 불법적 성관계가 마땅히 받아야 할 사회적 경멸을 국가가 감소시키고 있는것이며, 시민 생활의 핵심 요소인 합법적 결혼을 희생시키는 것이라며 분노했다.(144쪽) 헤겔에 있어 가족은 개인적 이익 추구의 동기를 뛰어넘는 정서적 이타주의에 기초한 것으로, 시민사회의 하부를 이루는 것이었다.

하지만 자본주의가 진전되면서 비용 효과의 자본주의적 가치가 가정 내로 흘러들어왔다는 점은 흥미롭다. 일찍이 19세기에 아널드는 자녀는 하늘에서 내려보낸다는 성경 구절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무지한 신자들을 비판하면서, 양육할 능력을 고려하여 자녀수에 제한을 두어야 한다면서 비용과 효용성을 냉철하게 따져야함을 주장한 바 있다. 20세기에 들어와 슘페터는 자본주의가 가족을 해체하고 있다고 선언했다. 많은 사람들이 개인주의적 비용 효과 분석을 가족의 영역에 적용함에 따라 많은 자녀를 원하지도 않고 심지어 자녀를 전혀 원치 않는다는 것이었다. 비용과 이익에 따른 합리주의적 분석에 따르면, 자녀를 양육하는 데 따르는 희생이 자녀로 인한 기쁨보다 크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슘페터는 이들은 부모가 된다는 것의 진정한 가치를 무시하고 있다며, 외관상 합리적인 판단으로 보이지만 인간 본성이나 사회적 유기체의 숨겨진 필요성에 대한 생각을 경시하고 있는 것이 바로 현대적 개인이라고 개탄했다.(458쪽)

자본주의가 몰고 온 가족의 변화 중 주목할 만한 것은 여성운동의 출현이었다. 이것을 주의 깊게 관찰한 사상가는 지멜로, 그는 여성운동에 박수를 보내며 얼마 가지 않아 여성은 남성들과 경쟁하게 될 것임을 내다보았다. 그는 또 여성운동과 노동운동의 반목을 주목했는데, 이는 사회 진출이 개인적 성취의 실현이었던 중류층 여성과,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가정에서 쫓겨난 노동 계층 여성의 입장 차이에서 오는 것이라고 보았
다.(363-365)

다른 한편, 프로이트 심리학을 사회적 정치적 행동의 분석틀로 삼았던 마르쿠제는, 사람들의 성적인 삶을 해방시키고 자유화함으로써 그 성적 충동을 정권 유지에 효과적으로 이용하는 국가사회주의 정권의 전략을 분석했다. 그는 이 정권이 짝짓기와 알까기의 영역까지 수중에 넣으려 했고, 사적 영역이었던 자녀 양육을 정치화시켰다고 주장했다.

5. 자본주의와 유대인

서구 사회에서 늘 뜨거운 감자였던 유대인 문제는 자본주의에 대한 거부감이 높아질수록 ‘자본주의는 유대인탓’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더욱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어갔다. 원래 유대인은 농업과 가내 수공업에 종사해왔다. 하지만 중세 후반에 교회가 유대인의 토지 소유를 원천적으로 금하고 길드가 조합원 자격을 기독교인으로 제한하면서 생계가 막히게 된 유대인은 13세기 무렵부터 돈을 꿔주고 이자를 받는 ‘돈놀이’로 생계를유지해왔다. 그 이후 돈과 관련된 것을 늘 더러운 것으로 여겼던 엄격한 기독교 사상과 접목되어, 유대인은‘악덕 고리대금업자’의 대명사가 되었다.(34-35쪽)

유대인에 대한 이러한 뿌리 깊은 편견은 무지한 일반 대중이나 지식인이나 마찬가지였다. 볼테르는 스스로 자본주의의 최첨단에 서서 이익 추구에 열을 올렸음에도 세간의 비난을 들을 때마다, 자신이 욕을 먹는 온갖 나쁜 성질은 유대인적인 것이라고 변명했고,(85쪽) 불법 투기로 인해 유대인과 함께 재판을 받게 되었을 때에 도 전통적인 반유대주의에 호소한 것으로 유명하다. 반유대주의를 자본주의 비판에 효과적으로 적용한 사람은 마르크스이다. 그 스스로가 유대인이었던 마르크스는, 유대인의 부도덕한 고리대금에 대한 저주를 산업자본주의에 대한 저주로 연결시켰다. 그에 따르면 ‘자본’은 기독교 전통의 돈과 마찬가지로 본질적으로 천박한 것이며, 자본으로 이득을 취하는 자들도 유대인처럼 도덕적 비난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 것이다.(282쪽)

이런 주장을 가장 노골적으로 드러낸 사상가는 좀바르트였다. 그는 유대 종교는 그 자체가 하나님과의 계약적 관점과 죄악의 수리적 계산에 종속된 것이므로, 사물을 목적을 위한 수단으로 생각하는 데 익숙하며, 이것은 곧 자본주의에 딱 들어맞는 조건이라고 하였다.(373쪽) 이런 극단적인 생각은 베버를 비롯한 많은 지식인들의 비난을 받았지만, 좀바르트의 저서는 독일 반유대주의자들의 경전이 되었다.

6. 자본주의와 지식인

지식인이라는 개념은 자본주의의 발흥과 함께 떠오르기 시작해서, 자본주의의 반대자로, 혹은 자본주의를 전복시키는 힘으로, 때로는 자본주의의 제도를 보완하는 임무를 가진 자로, 자본주의와 떼려야 뗄 수 없는 긴밀한 관계를 맺어왔다.

‘지식인’이라는 근대적 개념이 수립되는 데 큰 공을 세운 인물은 볼테르이다. 볼테르 이후 저술을 통해 여론을 주도하고, 귀족의 후원 없이 자신의 지적 능력을 팔아 생계를 유지하는 독립적인 지식인이 등장한 것이다. 볼테르는 주식 투기, 부동산, 대부업 등 돈을 벌기 위해 온갖 수단을 강구했지만, 특히 구독 예약 등 출판을 통해 지식인의 ‘근대적 돈벌기’를 창안했다는 점은 크게 평가된다.(72쪽) 지식인을 순수한 아카데미에서 끌어내어 정치 참여를 이론적으로 정당화한 버크는 그 자신이 왕성하게 활동한 국회의원이었다. 특히 그는 여론의 중요성을 인식하여 국회 연설문 출판에 힘을 쏟아, 자신의 국회 연설이 국회 밖의 평민들에게도 영향력을 행사하길 바랐다.(171쪽) 매튜 아널드는 지식인을 ‘낯선 사람(에이리언)’이라 칭했다. 이들은 귀족이나 노동 계층과는 달리, 출신 계층의 심성적 한계를 초월하여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기 때문에 ‘낯선 사람’이었다. 그는 이들이야말로 시장 경제가 파급시킨 ‘속물주의’에 대항하여 국가의 부를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인물로 보았다.(327쪽)

지식인이 역사적 사명의 담지자로서의 역할을 부여받은 것은 특히 마르크스주의에서였다. 마르크스주의에서 지식인은 노동 계층을 이끌어 혁명을 완수할 수 있는 존재였다. 루카치에게 지식인은, 역사를 총체성의 관점으로 바라볼 수 있는, 그래서 ‘허위의식’에 빠져 그들 스스로는 혁명을 이끌 수 없는 프롤레타리아를 혁명으로 인도할 수 있는 전문적 혁명가와 공산당이 지식인이었다.(403쪽) 자본주의가 유례없는 풍요를 누리던 1960년대에 신좌파 운동을 이끌었던 마르쿠제의 유산은, 학문의 객관성이 아닌 당파성을 강조하고 학문 자체가 사회 개혁에 봉사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이제 지식인의 ‘공평무사함’은 신기루가 되었고, 지식인의 모델은 허위의 식에서 사람들을 해방시키는 ‘비판적 지식인’이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의 이러한 ‘비판적 지식인’ 개념을 다시 비판한 사상가는 슘페터였다. 슘페터에게 지식인은 인문주의 교육의 과잉 생산과 관련되어 본질적으로 자본주의에 불만을 가진 자들이다.(461-462쪽) 이들은 원래 분산되어 있고 급진적이지도 않은 자본주의 사회의 불만을 급진화시키고 투쟁으로 조직함으로써, 자본가에게 타격을 입혀서 자본주의적 이상을 박탈한다. 자본주의가 자체 내에서 스스로 무덤을 파는 사람을 양산해낸다면, 그들은 바로 지식인이었다.

▣ 작가 소개

저자 : 제리 멀러
워싱턴에 있는 아메리카 가톨릭 대학의 역사학과 교수이다. 지은 책으로 [The Other God That Failed: Hans Freyer and the Deradicalization of German Conservatism], [Adam Smith in His Time and Ours: Designing the Descent Society], [Conservatism: An Anthology of Social and Political Thought from David Hume to the Present] 등이 있다. 이 책 《자본주의의 매혹》으로 역사협회에서 수여하는 도널드 케이건 상Donald Kagan Prize을 수상했다.

역자 : 서찬주
서강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미국 시라큐스 대학교에서 마케팅을 전공하고 경영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제일기획 마케팅 연구소 국장을 역임했다. 현재 숙명여자대학교 경영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경영학과 및 연세대학교 경영대학원 초빙 교수로 재직중이다.

역자 : 김청환
1960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연세대 독문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하고, 미국 뉴욕주립대학에서 경영학 MBA를 졸업했다. 2006년 현재 뉴욕에서 출판물 기획자, 전문번역가로 활동 중이다. 옮긴 책으로 [퍼플라인], [자본주의의 매혹], [마커]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서문
| 제 1 장 | 역사적 배경: 올바름, 정직, 미덕
|제 2장| 볼테르: 고결한 품성을 지닌 상인
| 제 3장| 애덤 스미스: 도덕철학과 정치경제
|제 4장| 유스투스 뫼저: 문화를 파괴하는 시장
|제 5장| 에드먼드 버크: 상업, 보수주의, 지식인
|제 6장| 프리드리히 헤겔: 선택할 가치가 있는 삶
| 제 7 장| 카를 마르크스: 살과 피를 착취하는 자본
|제 8장| 매튜 아널드: 문화와 교육의 힘으로 속물주의 몰아내기
|제 9 장| 막스 베버, 게오르크 지멜, 베르너 좀바르트: 공동체, 개인성, 합리성
|제10장| 게오르크 루카치, 한스 프레이어: 공동체에의 갈망과 총체성의 유혹
|제11장| 요제프 슘페터: 혁신과 분개
|제12장| 존 메이너드 케인스, 허버트 마르쿠제: 복지자본주의와 허위 욕구
|제13장| 프리드리히 하예크: 신자유주의의 개화
결론

작가 소개

목 차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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