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성서 해석, 진리의 역사인가? 오류의 재생산인가?
기독교의 역사, 혹은 성서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진리의 역사이기보다 오히려 오류의 역사에 더 가깝다. 기원전 5세기 이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창세기]를 시작으로 하는 구약성서는 특히나 실제 역사보다 구전되어 온 이야기에 밑바탕을 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게다가 성서를 번역, 해석하는 과정에서의 변형 및 오류는 어떠할까? 헬라어 ‘70인역성경’, 라틴어 ‘불가타성경’, 루터의 ‘독일어성경’, 근세기 영어권을 대표하는 ‘영어성경(the Authorized Version)’ 등 역사적, 지역적인 상황에 따라 수없이 많은 번역의 변화와 오류들이 생겨났다.
《에덴의 인문학》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첫 번째 동기는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현재 기독교 교리에 대한 반성이다. 그러나 장대한 성경 전체를 다루며 이 부분을 되짚기엔 쉽지 않은 일이기에 저자는 성경의 첫 도입이자 인류의 창조를 다루고 있는 에덴 이야기에 시선을 맞추었다. 신의 명령을 어긴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된 원죄로 말미암아 인류 전체가 죄인이 되었으며, 이를 대속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그 죄를 다 씻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기독교의 기본 교리 아니던가. 결국 예수 탄생의 당위성과 희생적인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인류 태초의 원죄를 짓게 되는 아담과 하와가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했다.
저자는 현역 목회자이자 신학자로서 살면서 너무나 당연하게 설교하고 가르쳤던 인간의 원죄론이 더 이상 사람에 대한 이해로 정당하지 않다고 느끼게 되면서, 새로운 기독교적 인간 이해를 그려보고자 했다. 이런 관심을 갖게 되면서 창세기의 에덴 설화에 대해 탐구하게 되었고, 오랜 읽기 과정을 거치며 이 책을 완성하였다.
우선적으로 이 책은 2천 년 묵은 이야기 전통을 파기한다. 가령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는 일종의 문화적 창조물이며, 그들을 표현한 수많은 그림들 역시 각각의 시대적, 문화적 창조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역사적 아담이나 이브는 없다고 말한다. 당연히 원죄나 타락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 ‘저자의 책소개’ 중에서(본문 8쪽)
에덴 이야기, 원죄와 타락을 넘어 “인간 성장과 노동”의 서사로
이 책을 내용적으로 소개하자면 인간을 죄인으로 보는 기독교의 인간론을 해체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책의 구성으로 설명하자면 (서양)역사와 신학, 철학과 문학에 이르기까지 인문학의 전 분야를 오직 에덴 텍스트 연구에 적용시킨 책이다.
본문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성경(정경)뿐만 아니라 위경(僞經) 혹은 외경(外經)으로 치부되어 정통 성서에 편입되지 못한 다양한 문헌들이 소개된다. 저자는 이 자료들을 모두 분석하여 기존 성경에서는 전혀 만나볼 수 없었던 놀라운 결과들을 보여준다. 그곳에는 에덴 이야기를 향한 고대 유대인들의 신화적 상상력이 드러나 있고, 가인을 (아담과 이브의 자식이 아닌) 뱀과 이브의 반인반수 하이브리드로 인식하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아담과 이브를 순수의 상징으로 표현했던 고대 자료와는 달리 바울의 시대, 교부철학의 시대를 거칠수록 아담을 악인으로 묘사하는 해석의 변화를 보며 더 이상 ‘신의 말씀’으로의 성서가 아니라 ‘인간이 의도한 대로 쓰이는’ 성서가 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신에 대한 묘사도 마찬가지다. 절대자, 전능자, 전지자로서의 신은 없다. 자신의 창조물이 어떤 실수를 저질렀는지 나중에야 알고 당황하는 신, 인간을 위해 번민하는 신, 최선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차선책으로라도 인간을 보호하려고 했던 신만이 있을 뿐이다.
때문에 저자는 본문 사이사이에 ‘이래도 에덴 텍스트가 역사적 사실이라 믿는가?’ 하는 식의 의구심을 수시로 던진다. 아담의 실수가 왜 그 이후 세대, 이스라엘뿐만이 아닌 전세계 모든 인류까지 죄인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결국 원죄나 타락과 같은 상황은 에덴 스토리 그 어디에도 없다.
나는 당신과 같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에덴 이야기를 지나치게 교리적으로 읽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에덴 이야기를 인간의 윤리적 삶의 근원이나, 우주를 창조한 신은 전능하고 전지한 신임을 신학적으로 보여주는 텍스트로 읽는 것은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내가 이런 목적으로 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 기독교인들에게 윤리적인 인간은 신이 세운 법을 무조건적으로 준수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에덴 이야기는 선과 악을 이해하고 선택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의 명령을 깨야 하는 상황에 대해 말하고 있다.
- 4부 ‘J를 만나다’ 중에서(본문 532쪽)
저자는 에덴 이야기를 절대 막힌 글로 읽지 말 것을 당부한다. 구원사관에 얽매여 성경을 읽음으로 해서 모든 이야기들이, 특히 에덴 이야기는 대단히 배타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에덴 이야기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창조주에게 반기를 든 인류 최초의 타락과 원죄의 기원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린아이 앞에 맛난 초콜릿을 놓아두고 절대 먹지 말라고 한다. 아이는 고민과 주저함을 반복하다 그 초콜릿을 먹어버린다. 신이 창조한 아담은 신의 명령과 인간의 본능, 자신의 자유의지 사이에서 번민하고 고뇌하다가 유혹에 넘어갔다. 저자는 ‘인류가 짊어지고 씨름해온 보편적인 문제들에 대한 어느 고대 지식인(에덴 이야기의 원저자)의 진지한 성찰과 상상력의 문학’으로 읽어달라 주문한다. ‘여전히 시행착오를 하고 그릇된 판단을 내리겠지만, 생각하고 번뇌하며 더 나은 길을 묻고 찾는 작업을 쉬지 않는’ 한 인간의 성장통으로, 그리고 ‘지식을 통해 인간적 삶의 경계를 넓히기 위해 밤낮으로 노동하는’ 바로 그 아담을 만나달라 간곡히 부탁한다.
에덴 텍스트, 교리를 넘어 인문학으로 분석하다
[에덴의 인문학] 1부와 2부는 고대 유대교와 기독교인들이 에덴 텍스트에 대한 나름의 신화적 상상력을 더해 그들만의 역사관과 우주관을 어떻게 펼쳤는지 보여주고 있다. 아담과 이브의 성애가 단순히 섹슈얼 코드가 아닌 인류 미래에 대한 고대인들의 기대감으로 해석되는 과정 또한 설명한다. 게다가 순수를 찬미하는 당시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이브를 뱀에게 유혹당하는 간악한 여인으로, 첫 살인을 저지른 가인을 뱀과 이브의 불경한 성교의 결과로 태어난 인물로 묘사하는 문헌과 역사를 탐구하였다.
3부에 접어들면 성서와 인문학을 접목한 탁월한 결과물들을 읽게 된다. 에덴 스토리가 결코 타락과 원죄가 아닌 인간의 피할 길 없는 보편적 고민임을 보여주는 세 편의 분석이 나온다. 아담과 하와의 행위를 (죄가 아닌) 인간이라면 당연히 겪게 되는 성장통이라는 통과의례로 들여다보았고, 지배자인 신과 피지배자인 두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정치적 알레고리로서 이야기를 해석하기도 한다. 에덴에서 이루어지는 노동과 먹거리 분배에 시선을 꽂다보면 어느덧 이 태곳적부터 원초적 입헌경제 이론이 적용됨을 깨닫고 놀라게 된다.
마지막 4부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이자 긴긴 페이지를 넘겨온 독자들에게 주는 선물과 같은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저자의 인문학적 에덴 연구의 정점은 이른바 텍스트를 재창조하여 그만의 또 다른 창작문학을 만들어냈다. 먼저 그가 소개하는 다섯 편의 메소포타미아 신화를 읽게 되면 그 안에 에덴 이야기의 원형이 ‘적나라할 정도’로 유사하게 펼쳐져 있음에 독자들은 경악하게 될 것이다. 기존 성경구절의 옳지 않은 해석을 매섭도록 지적한 그의 강의가 끝나면, 결국 제대로 읽어낸(혹은 새롭게 태어난) 에덴 텍스트를 만나게 된다. 등장인물인 아담과 이브, 가인과 뱀, 그리고 신(야훼)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픽션 대목과, 성서 속 에덴 이야기의 실제 기자(記者)라 일컬어지는 J작가와의 가상 대담은 ‘이 책이 결국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를 쉽고도 명확하게 전달해준다.
에덴 이야기를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최초 인간이 자신을 창조한 신에게 반기를 든 타락 이야기로 읽지 말자. 대신 인류가 짊어지고 씨름해온 보편적인 문제들을 진지하게 다룬 한 편의 문학으로 읽는다면 우리는 에덴의 동쪽에서 또 다른 아담을 만날 수 있으리라. ……어떤 사상가는 아예 아담 없는 기독교의 가능성을 모색하지만, 필자는 아담은 여전히 기독교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원죄와 죽음의 기원자가 아닌, 지식의 길을 통해 살 길을 찾아 나서는 인류 모두의 아버지와 모델로서의 아담은 기독교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맺는말’ 중에서(본문 542쪽)
기독교의 미래, 새 포주를 어디에 담을 것인가?
- 바울을 넘어 ‘인간 아담’의 길을 묻다!
이 책의 1장은 ‘에덴의 정원에서 정말 섹스를 했을까’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으로 시작된다. 신은 자신이 창조한 아담이 혼자 독처하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아 ‘돕는 배필’ 즉 배우자를 주었고, 이브를 만난 아담은 그녀를 ‘알게(육체적 관계를 갖게)’ 되자 “이는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에 뼈”라고 감탄을 내뱉는다. 현재 기독교 신앙인 중 그 누구도 창세기의 이 구절을 두고 육체적 관계의 절정에 이르는 감탄사라고 해석하는 이는 없다. 성경 구절에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 있음을 강의하는 목회자도 없다. 하지만 정작 유대 랍비들이나 고대 기독교인들은 신랑신부의 이러한 기쁨의 탄성이 다가올 환희의 시대, 생육과 번성이 이루어질 희망의 예시로 보았다.
그러나 이후 세대의 문헌을 보면 에덴정원 안에서, 즉 신의 면전에서 이루어지는 섹스는 망측하기 그지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저자는 본문에서 [희년서] [시락서] 등의 옛 문헌을 자주 언급하는데, 신약의 시대가 되자 결혼이 나쁜 것은 아니나 독신이 더 나은 삶이라 말하는, 다소 무덤덤한 예수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후에 등장하여 현재까지 기독교 교리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바울은 이브를 뱀의 유혹에 빠져 순결을 잃은 음행한 여인으로 규정한다. 바울은 성도들이 이브처럼 세상의 유혹에 빠져 정결함을 잃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였다.
새 시대가 열렸는데 새 포도주는 어디에 있는가? 죄와 벌, 인간의 타락이나 실낙원을 빼버리면 에덴 이야기에 남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아담을 죄인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면, 이브를 창녀로 부르지 않는다면 대체 이들을 뭐라 불러야 할까? 살인자 가인은 오늘 우리에게 누구인가? 타락의 길이 아니라면 도대체 인간은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 ‘마지막 4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중에서(본문 312쪽)
저자는 2천 년 전 예수를 추종하던 한 급진적 신앙인이었던 바울의 교리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고 역설한다. 인간을 모조리 죄인으로 규정하는 신은 없다. 반면 자신이 창조한 인간이 살면서 겪게 되는 고민과 고난과 온갖 물음표들을 지긋이 바라봐주는 신이 있다. 에덴 이야기를 사실이니 신화니 일컫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다. 그저 인류가 응당 짊어져야 할 고민과 온갖 삶의 무게에 대한 성찰과 상상력을 담은 문학으로 읽어보면 어떨까?
저자와의 짧은 인터뷰
“성경이라면 무조건 믿고 보는 사람들과,
성경에 나온 말은 무조건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
그 사이에 서 있는 한 신앙인의 고민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에덴의 인문학》은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는 저자가 대중 앞에 선보이는 첫 책이다. 아무 연고 없는 출판사의 대표메일 앞으로 보내진 그의 원고를 본 이후, 편집자는 저자를 직접 만나진 못했으나 대신 이메일을 통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 및 여러 가지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그중 몇 가지 답변을 이곳에 소개한다.
편집자 : 현직 목회자로서 ‘원죄는 없다’라는 대전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가 힘드셨을 텐데요.
저자 : 다소간 무거운 책이 되었지만 기독교의 주요한 신앙 내용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인문학적 관점에서 써보자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기독교 신앙의 비평적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학문적 관심이 반영되었구요. 목회자로서, 그리고 신학자로 살면서 너무나 당연하게 설교하고 가르쳤던 인간의 원죄론이 더 이상 사람에 대한 이해로 정당하지 않다고 느끼게 되면서, 새로운 기독교적 인간 이해를 그려보고자 한 것입니다.
편집자 : 본문을 읽어보면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한국의 기독교 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이 느껴집니다.
저자 : 기본적으로 이 책은 기독교에 대한 하나의 중대한 비평이지만, 실은 기독교에 대한 애정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교회가 (그리고 이에 부응하는 신학자들이) 조장하는 무지의 문화에 대한 도전장이기도 하구요. 세상의 모든 사회집단들이 열린 공동체를 향하여 나아가는 지금, 한국의 교회만이 유독 닫힌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소수의 구성원들만이 정보를 보유, 통제하면서 공동체를 조정하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그리고 의사 결정 과정이 어느 정도 구비된 것은 사실이지만, 신의 말씀을 대언한다고 믿는 특별한 계층의 사람들이 말할 권한을 더 많이 누리고 있습니다. 이번 책은 이러한 닫힌 공동체의 구성원들, 특히 정보와 말하는 자유를 기형적으로 누리는 계층의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해야 할 말이 있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편집자 : 그렇다면 특별히 기독교인들, 특히 신앙을 업으로 삼는 분들을 타깃독자로 염두하고 이 책을 쓰신 건가요?
저자 : 그렇진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기독교인들보다는 기독교를 ‘개독교’라 욕하는 이들을 더 생각하며 집필하였습니다. 이 책을 쓰는 내내 기독교에 대한 비평적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위한 좋은 글을 쓰자는 생각을 한시도 잊은 적 없습니다. 다양한 인문학적 관점에서부터 작업함으로써 신학적 탐구와 관련 없는 사람들, 그리고 교회와 거리를 둔 사람들과도 진지하게 대화할 수 있는 장을 열어보고자 했습니다.
편집자 : 처음에는 ‘신학자가 쓴 인문학 이야기’라는 점에서 특이했는데, 원래 다른 학문과 신학을 통합하는 공부를 해오셨는지요.
저자 : 박사과정 때의 전공이 ‘철학적 신학’이었습니다. 철학뿐만 아니라 인문학을 구성하는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고, 특히 성서와 관련된 여러 문학작품을 접하는 즐거움이 컸습니다. 이번에 쓴 졸작도 서양문화사에서 에덴 이야기가 지니는 비중을 보면서 생각을 모으게 된 것입니다. 서양 문호들 가운데 에덴 이야기를 소재로 사용하지 않은 작가들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기회가 되면 이들의 문학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 에덴 이야기를 탐구하고 싶기도 합니다. 사실 초기 계획에는 이 부분을 다루는 장이 있었지만, 너무나 방대한 작업이 되어 접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고대신화들을 두루 읽고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 이어 지금은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신화들을 살피고 있습니다. 호머의 오디세이에서 신약성서 복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원형적 모습을 발견하고는 다소간 흥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 이 묵직한 책을 주저하지 않고 선택한 용기 있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을……
저자 : 저 역시 제 글이 출간되면 어떤 반향을 일으키게 될지 궁금합니다. 성서를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명시한 신앙고백서에 서명을 하고 목사안수를 받은 사람이, 성서에는 수많은 오류들이 있다 말하는 것도 부족해, 에덴 이야기를 아예 (허구적) 문학으로 읽자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나섰으니 약간의 갈등이 생길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도 동의할 수 없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침묵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코뿔소를 처음 보고는 그간 믿어왔던 유니콘을 실제로 만났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럼에도 기독교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에덴의 인문학》은 성경에 나오는 것이라면 무조건 믿고 보는 사람들과,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라면 아무 것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한 신앙인의 시선으로 집필되었습니다. 그 둘 사이에서 의미 있는 만남이 이루어지고, 풍성한 대화가 진행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작가 소개
저자 : 민정기
신학자이자 목사. 캐나다신학교와 상준 신학대학원(Sangjoon Hall of Theology at Knox College, University of Toronto) 교수이며 토론토 큰나무교회의 협동목사이기도 하다.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영국 맨체스터대학교에서 철학석사를, 토론토대학교 트리니티칼리지에서 ‘철학적 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
성서 해석, 진리의 역사인가? 오류의 재생산인가?
기독교의 역사, 혹은 성서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진리의 역사이기보다 오히려 오류의 역사에 더 가깝다. 기원전 5세기 이전에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 [창세기]를 시작으로 하는 구약성서는 특히나 실제 역사보다 구전되어 온 이야기에 밑바탕을 둔 이야기들로 가득하다. 게다가 성서를 번역, 해석하는 과정에서의 변형 및 오류는 어떠할까? 헬라어 ‘70인역성경’, 라틴어 ‘불가타성경’, 루터의 ‘독일어성경’, 근세기 영어권을 대표하는 ‘영어성경(the Authorized Version)’ 등 역사적, 지역적인 상황에 따라 수없이 많은 번역의 변화와 오류들이 생겨났다.
《에덴의 인문학》 저자가 이 책을 쓰게 된 첫 번째 동기는 일방적으로 주입되는 현재 기독교 교리에 대한 반성이다. 그러나 장대한 성경 전체를 다루며 이 부분을 되짚기엔 쉽지 않은 일이기에 저자는 성경의 첫 도입이자 인류의 창조를 다루고 있는 에덴 이야기에 시선을 맞추었다. 신의 명령을 어긴 아담과 하와로부터 시작된 원죄로 말미암아 인류 전체가 죄인이 되었으며, 이를 대속하기 위해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심으로 그 죄를 다 씻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기독교의 기본 교리 아니던가. 결국 예수 탄생의 당위성과 희생적인 죽음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인류 태초의 원죄를 짓게 되는 아담과 하와가 필연적으로 존재해야 했다.
저자는 현역 목회자이자 신학자로서 살면서 너무나 당연하게 설교하고 가르쳤던 인간의 원죄론이 더 이상 사람에 대한 이해로 정당하지 않다고 느끼게 되면서, 새로운 기독교적 인간 이해를 그려보고자 했다. 이런 관심을 갖게 되면서 창세기의 에덴 설화에 대해 탐구하게 되었고, 오랜 읽기 과정을 거치며 이 책을 완성하였다.
우선적으로 이 책은 2천 년 묵은 이야기 전통을 파기한다. 가령 [창세기]의 아담과 이브는 일종의 문화적 창조물이며, 그들을 표현한 수많은 그림들 역시 각각의 시대적, 문화적 창조물에 불과하다고 말한다. 이 책은 역사적 아담이나 이브는 없다고 말한다. 당연히 원죄나 타락도 존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 ‘저자의 책소개’ 중에서(본문 8쪽)
에덴 이야기, 원죄와 타락을 넘어 “인간 성장과 노동”의 서사로
이 책을 내용적으로 소개하자면 인간을 죄인으로 보는 기독교의 인간론을 해체하고 그 대안을 제시하는 것이라 하겠다. 하지만 책의 구성으로 설명하자면 (서양)역사와 신학, 철학과 문학에 이르기까지 인문학의 전 분야를 오직 에덴 텍스트 연구에 적용시킨 책이다.
본문에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알고 있는 성경(정경)뿐만 아니라 위경(僞經) 혹은 외경(外經)으로 치부되어 정통 성서에 편입되지 못한 다양한 문헌들이 소개된다. 저자는 이 자료들을 모두 분석하여 기존 성경에서는 전혀 만나볼 수 없었던 놀라운 결과들을 보여준다. 그곳에는 에덴 이야기를 향한 고대 유대인들의 신화적 상상력이 드러나 있고, 가인을 (아담과 이브의 자식이 아닌) 뱀과 이브의 반인반수 하이브리드로 인식하는 분위기도 엿보인다. 아담과 이브를 순수의 상징으로 표현했던 고대 자료와는 달리 바울의 시대, 교부철학의 시대를 거칠수록 아담을 악인으로 묘사하는 해석의 변화를 보며 더 이상 ‘신의 말씀’으로의 성서가 아니라 ‘인간이 의도한 대로 쓰이는’ 성서가 되고 있음을 느끼게 된다.
신에 대한 묘사도 마찬가지다. 절대자, 전능자, 전지자로서의 신은 없다. 자신의 창조물이 어떤 실수를 저질렀는지 나중에야 알고 당황하는 신, 인간을 위해 번민하는 신, 최선의 목표를 달성하지 못해 차선책으로라도 인간을 보호하려고 했던 신만이 있을 뿐이다.
때문에 저자는 본문 사이사이에 ‘이래도 에덴 텍스트가 역사적 사실이라 믿는가?’ 하는 식의 의구심을 수시로 던진다. 아담의 실수가 왜 그 이후 세대, 이스라엘뿐만이 아닌 전세계 모든 인류까지 죄인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결국 원죄나 타락과 같은 상황은 에덴 스토리 그 어디에도 없다.
나는 당신과 같은 한국의 기독교인들이 에덴 이야기를 지나치게 교리적으로 읽고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에덴 이야기를 인간의 윤리적 삶의 근원이나, 우주를 창조한 신은 전능하고 전지한 신임을 신학적으로 보여주는 텍스트로 읽는 것은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내가 이런 목적으로 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알기로 기독교인들에게 윤리적인 인간은 신이 세운 법을 무조건적으로 준수하는 이들이다. 그러나 에덴 이야기는 선과 악을 이해하고 선택하기 위해서는 먼저 신의 명령을 깨야 하는 상황에 대해 말하고 있다.
- 4부 ‘J를 만나다’ 중에서(본문 532쪽)
저자는 에덴 이야기를 절대 막힌 글로 읽지 말 것을 당부한다. 구원사관에 얽매여 성경을 읽음으로 해서 모든 이야기들이, 특히 에덴 이야기는 대단히 배타적인 이야기가 되었다. 그렇다면 에덴 이야기를 어떻게 읽어야 할까? 창조주에게 반기를 든 인류 최초의 타락과 원죄의 기원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을 의미하는가?
어린아이 앞에 맛난 초콜릿을 놓아두고 절대 먹지 말라고 한다. 아이는 고민과 주저함을 반복하다 그 초콜릿을 먹어버린다. 신이 창조한 아담은 신의 명령과 인간의 본능, 자신의 자유의지 사이에서 번민하고 고뇌하다가 유혹에 넘어갔다. 저자는 ‘인류가 짊어지고 씨름해온 보편적인 문제들에 대한 어느 고대 지식인(에덴 이야기의 원저자)의 진지한 성찰과 상상력의 문학’으로 읽어달라 주문한다. ‘여전히 시행착오를 하고 그릇된 판단을 내리겠지만, 생각하고 번뇌하며 더 나은 길을 묻고 찾는 작업을 쉬지 않는’ 한 인간의 성장통으로, 그리고 ‘지식을 통해 인간적 삶의 경계를 넓히기 위해 밤낮으로 노동하는’ 바로 그 아담을 만나달라 간곡히 부탁한다.
에덴 텍스트, 교리를 넘어 인문학으로 분석하다
[에덴의 인문학] 1부와 2부는 고대 유대교와 기독교인들이 에덴 텍스트에 대한 나름의 신화적 상상력을 더해 그들만의 역사관과 우주관을 어떻게 펼쳤는지 보여주고 있다. 아담과 이브의 성애가 단순히 섹슈얼 코드가 아닌 인류 미래에 대한 고대인들의 기대감으로 해석되는 과정 또한 설명한다. 게다가 순수를 찬미하는 당시 종교적 분위기 속에서 이브를 뱀에게 유혹당하는 간악한 여인으로, 첫 살인을 저지른 가인을 뱀과 이브의 불경한 성교의 결과로 태어난 인물로 묘사하는 문헌과 역사를 탐구하였다.
3부에 접어들면 성서와 인문학을 접목한 탁월한 결과물들을 읽게 된다. 에덴 스토리가 결코 타락과 원죄가 아닌 인간의 피할 길 없는 보편적 고민임을 보여주는 세 편의 분석이 나온다. 아담과 하와의 행위를 (죄가 아닌) 인간이라면 당연히 겪게 되는 성장통이라는 통과의례로 들여다보았고, 지배자인 신과 피지배자인 두 사람 사이에 이루어지는 정치적 알레고리로서 이야기를 해석하기도 한다. 에덴에서 이루어지는 노동과 먹거리 분배에 시선을 꽂다보면 어느덧 이 태곳적부터 원초적 입헌경제 이론이 적용됨을 깨닫고 놀라게 된다.
마지막 4부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이자 긴긴 페이지를 넘겨온 독자들에게 주는 선물과 같은 읽을거리를 제공한다. 저자의 인문학적 에덴 연구의 정점은 이른바 텍스트를 재창조하여 그만의 또 다른 창작문학을 만들어냈다. 먼저 그가 소개하는 다섯 편의 메소포타미아 신화를 읽게 되면 그 안에 에덴 이야기의 원형이 ‘적나라할 정도’로 유사하게 펼쳐져 있음에 독자들은 경악하게 될 것이다. 기존 성경구절의 옳지 않은 해석을 매섭도록 지적한 그의 강의가 끝나면, 결국 제대로 읽어낸(혹은 새롭게 태어난) 에덴 텍스트를 만나게 된다. 등장인물인 아담과 이브, 가인과 뱀, 그리고 신(야훼)을 만나기 위해 여행을 떠나는 픽션 대목과, 성서 속 에덴 이야기의 실제 기자(記者)라 일컬어지는 J작가와의 가상 대담은 ‘이 책이 결국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가’를 쉽고도 명확하게 전달해준다.
에덴 이야기를 역사적으로 실존했던 최초 인간이 자신을 창조한 신에게 반기를 든 타락 이야기로 읽지 말자. 대신 인류가 짊어지고 씨름해온 보편적인 문제들을 진지하게 다룬 한 편의 문학으로 읽는다면 우리는 에덴의 동쪽에서 또 다른 아담을 만날 수 있으리라. ……어떤 사상가는 아예 아담 없는 기독교의 가능성을 모색하지만, 필자는 아담은 여전히 기독교에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원죄와 죽음의 기원자가 아닌, 지식의 길을 통해 살 길을 찾아 나서는 인류 모두의 아버지와 모델로서의 아담은 기독교에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 ‘맺는말’ 중에서(본문 542쪽)
기독교의 미래, 새 포주를 어디에 담을 것인가?
- 바울을 넘어 ‘인간 아담’의 길을 묻다!
이 책의 1장은 ‘에덴의 정원에서 정말 섹스를 했을까’라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으로 시작된다. 신은 자신이 창조한 아담이 혼자 독처하는 것이 보기에 좋지 않아 ‘돕는 배필’ 즉 배우자를 주었고, 이브를 만난 아담은 그녀를 ‘알게(육체적 관계를 갖게)’ 되자 “이는 내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에 뼈”라고 감탄을 내뱉는다. 현재 기독교 신앙인 중 그 누구도 창세기의 이 구절을 두고 육체적 관계의 절정에 이르는 감탄사라고 해석하는 이는 없다. 성경 구절에 노골적인 성적 표현이 있음을 강의하는 목회자도 없다. 하지만 정작 유대 랍비들이나 고대 기독교인들은 신랑신부의 이러한 기쁨의 탄성이 다가올 환희의 시대, 생육과 번성이 이루어질 희망의 예시로 보았다.
그러나 이후 세대의 문헌을 보면 에덴정원 안에서, 즉 신의 면전에서 이루어지는 섹스는 망측하기 그지없다는 반응을 보인다. 저자는 본문에서 [희년서] [시락서] 등의 옛 문헌을 자주 언급하는데, 신약의 시대가 되자 결혼이 나쁜 것은 아니나 독신이 더 나은 삶이라 말하는, 다소 무덤덤한 예수의 모습을 보게 된다. 하지만 이후에 등장하여 현재까지 기독교 교리에 지배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는 바울은 이브를 뱀의 유혹에 빠져 순결을 잃은 음행한 여인으로 규정한다. 바울은 성도들이 이브처럼 세상의 유혹에 빠져 정결함을 잃게 되지 않을까 염려하였다.
새 시대가 열렸는데 새 포도주는 어디에 있는가? 죄와 벌, 인간의 타락이나 실낙원을 빼버리면 에덴 이야기에 남는 것은 대체 무엇인가? 아담을 죄인으로 규정하지 않는다면, 이브를 창녀로 부르지 않는다면 대체 이들을 뭐라 불러야 할까? 살인자 가인은 오늘 우리에게 누구인가? 타락의 길이 아니라면 도대체 인간은 지금 어떤 길을 걷고 있는가?
- ‘마지막 4부를 시작하기에 앞서’ 중에서(본문 312쪽)
저자는 2천 년 전 예수를 추종하던 한 급진적 신앙인이었던 바울의 교리에서 벗어나야 할 때라고 역설한다. 인간을 모조리 죄인으로 규정하는 신은 없다. 반면 자신이 창조한 인간이 살면서 겪게 되는 고민과 고난과 온갖 물음표들을 지긋이 바라봐주는 신이 있다. 에덴 이야기를 사실이니 신화니 일컫는 것도 무의미한 일이다. 그저 인류가 응당 짊어져야 할 고민과 온갖 삶의 무게에 대한 성찰과 상상력을 담은 문학으로 읽어보면 어떨까?
저자와의 짧은 인터뷰
“성경이라면 무조건 믿고 보는 사람들과,
성경에 나온 말은 무조건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
그 사이에 서 있는 한 신앙인의 고민으로 이 책을 썼습니다”
《에덴의 인문학》은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는 저자가 대중 앞에 선보이는 첫 책이다. 아무 연고 없는 출판사의 대표메일 앞으로 보내진 그의 원고를 본 이후, 편집자는 저자를 직접 만나진 못했으나 대신 이메일을 통해 이 책을 쓰게 된 계기 및 여러 가지 생각을 들을 수 있었다. 그중 몇 가지 답변을 이곳에 소개한다.
편집자 : 현직 목회자로서 ‘원죄는 없다’라는 대전제로 이야기를 풀어나가기가 힘드셨을 텐데요.
저자 : 다소간 무거운 책이 되었지만 기독교의 주요한 신앙 내용을 누구나 쉽게 읽을 수 있도록 인문학적 관점에서 써보자는 마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물론 기독교 신앙의 비평적 해체와 재구성이라는 학문적 관심이 반영되었구요. 목회자로서, 그리고 신학자로 살면서 너무나 당연하게 설교하고 가르쳤던 인간의 원죄론이 더 이상 사람에 대한 이해로 정당하지 않다고 느끼게 되면서, 새로운 기독교적 인간 이해를 그려보고자 한 것입니다.
편집자 : 본문을 읽어보면 직접적으로 표현하진 않았지만 한국의 기독교 문화에 대해 비판적인 시선이 느껴집니다.
저자 : 기본적으로 이 책은 기독교에 대한 하나의 중대한 비평이지만, 실은 기독교에 대한 애정의 결과이기도 합니다. 한국의 교회가 (그리고 이에 부응하는 신학자들이) 조장하는 무지의 문화에 대한 도전장이기도 하구요. 세상의 모든 사회집단들이 열린 공동체를 향하여 나아가는 지금, 한국의 교회만이 유독 닫힌 공동체를 지향하고 있습니다. 교회는 소수의 구성원들만이 정보를 보유, 통제하면서 공동체를 조정하려는 성향이 강합니다. 그리고 의사 결정 과정이 어느 정도 구비된 것은 사실이지만, 신의 말씀을 대언한다고 믿는 특별한 계층의 사람들이 말할 권한을 더 많이 누리고 있습니다. 이번 책은 이러한 닫힌 공동체의 구성원들, 특히 정보와 말하는 자유를 기형적으로 누리는 계층의 사람들에게 환영받지 못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럼에도 이들에게 해야 할 말이 있어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편집자 : 그렇다면 특별히 기독교인들, 특히 신앙을 업으로 삼는 분들을 타깃독자로 염두하고 이 책을 쓰신 건가요?
저자 : 그렇진 않습니다. 오히려 저는 기독교인들보다는 기독교를 ‘개독교’라 욕하는 이들을 더 생각하며 집필하였습니다. 이 책을 쓰는 내내 기독교에 대한 비평적 관심을 가지고 있는 이들을 위한 좋은 글을 쓰자는 생각을 한시도 잊은 적 없습니다. 다양한 인문학적 관점에서부터 작업함으로써 신학적 탐구와 관련 없는 사람들, 그리고 교회와 거리를 둔 사람들과도 진지하게 대화할 수 있는 장을 열어보고자 했습니다.
편집자 : 처음에는 ‘신학자가 쓴 인문학 이야기’라는 점에서 특이했는데, 원래 다른 학문과 신학을 통합하는 공부를 해오셨는지요.
저자 : 박사과정 때의 전공이 ‘철학적 신학’이었습니다. 철학뿐만 아니라 인문학을 구성하는 다른 분야에도 관심이 많았고, 특히 성서와 관련된 여러 문학작품을 접하는 즐거움이 컸습니다. 이번에 쓴 졸작도 서양문화사에서 에덴 이야기가 지니는 비중을 보면서 생각을 모으게 된 것입니다. 서양 문호들 가운데 에덴 이야기를 소재로 사용하지 않은 작가들이 거의 없을 정도입니다. 기회가 되면 이들의 문학 속에 다양한 방식으로 표현된 에덴 이야기를 탐구하고 싶기도 합니다. 사실 초기 계획에는 이 부분을 다루는 장이 있었지만, 너무나 방대한 작업이 되어 접어야 했습니다.
지금은 고대신화들을 두루 읽고 있습니다. 메소포타미아에 이어 지금은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신화들을 살피고 있습니다. 호머의 오디세이에서 신약성서 복음서에 나타난 그리스도의 원형적 모습을 발견하고는 다소간 흥분하고 있습니다.
편집자 : 이 묵직한 책을 주저하지 않고 선택한 용기 있는(?) 독자들에게 한 말씀을……
저자 : 저 역시 제 글이 출간되면 어떤 반향을 일으키게 될지 궁금합니다. 성서를 일점일획의 오류도 없는 하나님의 말씀이라 명시한 신앙고백서에 서명을 하고 목사안수를 받은 사람이, 성서에는 수많은 오류들이 있다 말하는 것도 부족해, 에덴 이야기를 아예 (허구적) 문학으로 읽자고 공개적으로 주장하고 나섰으니 약간의 갈등이 생길 것은 분명합니다. 그래도 동의할 수 없는 것은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는 것이 침묵하는 것보다 더 나은 선택이라 생각합니다. 코뿔소를 처음 보고는 그간 믿어왔던 유니콘을 실제로 만났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일이지요. 그럼에도 기독교에 대한 애정을 가지고 있는 것은 분명합니다.
마지막으로 《에덴의 인문학》은 성경에 나오는 것이라면 무조건 믿고 보는 사람들과, 성경에 나오는 이야기라면 아무 것도 믿지 않으려는 사람들 사이에 서 있는 한 신앙인의 시선으로 집필되었습니다. 그 둘 사이에서 의미 있는 만남이 이루어지고, 풍성한 대화가 진행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입니다.
▣ 작가 소개
저자 : 민정기
신학자이자 목사. 캐나다신학교와 상준 신학대학원(Sangjoon Hall of Theology at Knox College, University of Toronto) 교수이며 토론토 큰나무교회의 협동목사이기도 하다. 서울신학대학교에서 신학을, 영국 맨체스터대학교에서 철학석사를, 토론토대학교 트리니티칼리지에서 ‘철학적 신학’ 전공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캐나다에 거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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