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정신적 삶에 관한, 그리고 깨어 있는 삶에 관한 책
『20세기를 생각한다』는 [전후 유럽에 관한 최고의 역사서]로 평가받는 [포스트워]의 저자이자 사회 참여 지식인으로 널리 알려진 토니 주트와 전도유망한 젊은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가 20세기 서구 정치사상에 대해 나눈 긴 대담의 기록이다. 이 책은 [역사이자 전기이며 윤리학 논문]이다. 19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민족주의자, 파시스트 지식인들이 이해한 권력과 정의를 주제로 한 서구 근대 정치 사상사, 제2차 세계 대전과 홀로코스트라는 격변이 일어난 직후 20세기 중반 런던에서 동유럽 유대인의 후손으로 태어난 역사가 토니 주트의 지적 전기, 그리고 20세기 정치사상의 한계와 도덕적 실패에 대한 윤리학적 사색, 이 세 가지 이야기가 교직되어 있다. 책은 과거에 대해 말하지만, 우리가 싸워 얻어야 할 미래에 대해 논증한다. 우리는 공동선에 대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는데, 20세기는 이에 대해 우리에게 해줄 말이 많다.
역사가로서의 명성이 정점에 달해 있던 2008년, 토니 주트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20세기를 생각한다』는 바로 그러한 사정에서 탄생했다. 토니 주트가 통상적인 의미에서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되었음을 알게 된 역사가 티머시 스나이더가 그에게 책을 한 권 같이 쓰자고 제안했고, 주트가 이를 수락한 것이다. 2009년 정초부터 봄, 여름 내내 스나이더는 매주 목요일마다 주트의 집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고 이를 녹음해 녹취한 뒤 주트가 생각한 방식에 따라 9개의 장으로 편집했다. 스나이더와 나눈 일련의 대화에서 주트는 오로지 자신의 정신과 기억을 나침반 삼아 20세기라는 거대한 대륙을 탐험하며 그 지적, 정치적 지형도를 읽어 내고, 자신의 지적 좌표를 정치적 지식인의 역할과 역사가라는 직업에 비추어 자전적 이야기로 풀어냈다.
전기적 요소와 역사적 요소로 나뉘어 있는 각 장은 토니 주트가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자전적 전기로 시작한다. 주트의 이야기는 대화에서 나온 것이지만 스나이더는 자신의 말은 빼고 주트의 이야기만 남겨 두었다. 역사 이야기는 주트의 간략한 자전적 이야기가 끝나는 자리에서 20세기 정치사상의 가장 중요한 현장들을 관통하며 진행된다. 홀로코스트와 이스라엘의 관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지식인들의 매혹과 환멸, 파시즘과 반파시즘, 동유럽에서 윤리학으로 부활한 자유주의, 유럽과 미국의 사회 계획 등이 주트의 빛나는 통찰력으로 새로운 조명을 받는다.
주트는 이 책의 [후기]를 받아 적게 한 지 몇 주 뒤 이 세상과 작별을 고했고, 이로써 우리는 20세기의 유산에 대한 가장 중요한 논평자 한 명을 잃게 되었다. 주트의 마지막 지적 작업을 함께한 스나이더는 이 책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한다. [우리가 찾는 진실이 아니라 우리를 찾는 진실이 하나 있다. 자체로 완전한 이 진실은 우리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다른 진실들은 마치 블랙홀 둘레를 도는, 더 밝고 더 새롭고 더 무거운 별들처럼 이 진실의 궤도를 돈다. 이 최후의 진실 덕에 나는 결국 이 책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특정 시기에 특정 노력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노력은 내게는 그저 사교적인 몸짓이었지만 토니에게는 육체적으로 엄청난 투쟁이었다. 그렇지만 이 책이 투쟁에 관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은 정신적 삶에 관한, 그리고 깨어 있는 삶에 관한 책이다.]
마르크스주의에 매혹된 지식인들과 그들의 환멸
수많은 주제와 인물을 둘러싼 두 역사학자의 대화는 요약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몇 가지 중심적인 테마는 있다. 그중 하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지식인들의 매혹과 환멸이다. 마르크스주의는 19세기 말 신뢰를 잃은 신을 대신해 세속의 종교로 화려하게 등장했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그 실패의 과정에는 끔찍한 이야기들이 있다. 주트가 보기에 지식인들은 이 끔찍한 결과에 책임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타인들에게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는가? 토니 주트는 지식인들의 그 책임과 의무에 관해 이야기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의 작동 방식을 놀랍도록 훌륭하게 설명했다. 역사가 자기편이며, 자기가 가는 길이 진보라고 의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지식인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나키스트들은 체제의 작동 방식에 대한 이론이 없었고, 개혁주의자들은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 할 말이 없었으며, 자유주의자들은 사람들이 느끼는 분노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이 모두를 분명하게 설명했다. 또한 공산주의는 동조자들에게 강렬한 공동체 의식을 제공했다. 파시즘에 관여했던 회고록의 첫 번째 권에 [나]라는 제목을, 공산주의 시절을 다루고 있는 두 번째 권에 [우리]라는 제목을 붙였던 프랑스의 시인 클로드 루아처럼, 공산주의 사상가들은 자신들이 같은 생각을 하는 지식인 공동체에 속한다고 생각했으며 자신들이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과정의 중심에 놓여 있다고 자신했다. 마르크스주의는 기독교의 세계관과 유사한 세속의 종교였다. 인간관계의 상실과 공동체의 파괴를 주제로 한 잃어버린 세계라는 오래된 이야기에 자본주의가 파괴되고 남은 퇴적물에서 등장할 수 있는 더 높은 차원의 인간 경험에 대한 상상을 덧붙였고, 인간의 타락, 메시아, 메시아의 고난과 대속, 구원, 부활 등 전통적인 기독교 종말론의 많은 부분을 포함했다. 역사의 궁극적인 목적을 말하는 마르스크스주의는 세속의 종교로서 구원을 약속했고, 구원을 위해서라면 희생은 감수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환상은 깨져 나갔다. 1936년 스탈린의 시범 재판과 1939년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 그리고 1956년 헝가리 봉기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의 봄에 대한 소련의 무력 진압은 공산주의에 대한 지식인들의 환멸을 불러왔다. 전향한 지식인들은 한때 지녔던 신념을 합리화하고 신념의 상실 또한 표현해야 했는데, 역사가 아니 크리젤이 쓴 책의 제목 [내가 이해했다고 생각한 것], 그리고 프랑수아 퓌레가 쓴 20세기 역사에 관한 책의 제목 [어느 환상의 과거]는 그들이 생각한 방식을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여전히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이 있었다. 미래의 결과만이 현재의 믿음을 검증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 이들에게 혁명의 희생자들은 헤겔 철학적 의미에서 정신Geist의 희생자, 즉 인간이 아닌 역사의 희생자였다. 이들은 타인의 운명에 가해진 폭력을 미래를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믈렛을 만들면서 달걀을 살살 다룰 수는 없다는 것이다.
주트는 이처럼 미래의 이름으로 현재의 악행을 정당화한 것을 20세기 지식인들의 윤리적 문제로 보았다. 스스로 미래를 위해 희생하겠다는 자들은 어쩔 수 없지만 타인에게 미래를 위해 희생할 것을 요구하거나 타인의 희생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죄악이었다. 공산주의의 죄과에 대해 침묵했다는 주트의 비판에서 사르트르도 홉스봄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죽음과 폭력에 대한 숭배라는 이 낭만적 감수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2006년 이스라엘이 남부 레바논을 침공해 많은 민간인들이 고초를 겪었을 때, 부시 행정부의 국무장관이었던 콘돌리자 라이스는 이를 [새로운 중동의 탄생을 알리는 산고]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련을 역사가 새로운 세상을 낳은 방법이라고 말하는 이런 식의 수사는, 주트가 보기에 타인들에게 가해진 폭력을 미화한다는 측면에서 역사의 궁극적 목적을 위해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20세기 지식인들의 수사와 한 치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국가의 개입은 히틀러로 가는 길인가 ― 케인스와 하이에크, 복지 국가
경제학적 관점에서 국가의 역할에 관한 논쟁은 20세기 내내 케인스와 하이에크 사이의 결투였다. 시장을 기본적으로 불안정한 것으로 본 케인스에게 안정을 위한 국가의 개입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경제의 안녕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시장의 생존 자체를 위해서도 개입은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반면 하이에크는 의식적으로 케인스에 반대하면서 국가의 개입은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나쁜 결말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하이에크에게 국가의 개입은 히틀러에 이르는 길이었다.
대처와 레이건은 하이에크의 사상을 받아들였고, 그것은 신자유주의로 불렸다. 오늘날의 세계 경제에서 하이에크의 사상은 주류가 되었다. 그러나 주트에 따르면, 자유로운 시장을 옹호하는 하이에크의 주된 논거는 경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것이었다. 경제적 자유가 훼손되면 정치적 자유의 상실이 뒤따른다는 것이 하이에크의 핵심 논거였고, 공산 체제하의 중부 유럽은 그 증거였다. 그러나 주트는 국가의 개입은 전체주의를 초래한다고 본 하이에크의 논리에서 [정치적 자폐성]을 본다. 오스트리아의 권위주의적 정권이 펼친 정책의 실패는 전혀 케인스주의적인 정책의 실패가 아니었는데, 하이에크는 이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은 나쁜 결말을 낳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영국과 북구 국가들에서 나타난 복지 국가는 하이에크의 우려가 기우였음을 증명했다. 국가의 경제 개입을 옹호하는 복지 국가는 히틀러를 초래하기는커녕 오히려 히틀러의 등장을 막기 위한 조치로 쓰였고, 또한 그렇게 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공포의 시대에 다시 진입했다
20세기는 무엇이었는가? 주트는 20세기를 자유 대 전체주의의 세기가 아니라 국가의 역할에 대한 논쟁에 많은 사람들이 관여한 세기로 규정하고자 한다. 어떤 종류의 국가가 사람들을 궁핍에서 벗어나게 했는가? 사람들은 국가를 위해 무엇을 기꺼이 내놓으려 했으며 국가가 어떤 목적에 봉사하기를 원했는가?
우리는 20세기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주트는 두 대전 사이에 공산주의의 가장 신뢰할 만한 대안이 서유럽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아니라 파시즘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사람들은 파시즘과 공산주의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했고, 그중에서 파시즘을 선택하려 했던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 주트에 따르면, 이러한 극단적 이데올로기에 이끌린 사람들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20세기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두 역사학자의 대화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 대한 열정적인 경고로 수렴한다. 유럽의 민족주의 정치인들은 이방인, 이민자, 불확실성 등 외부에서 오는 위협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 능했다. 오늘날에도 국민의 공포심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들이 있다. 외부의 위협을 강조하면 내부의 민주주의가 왜곡된다. 예컨대,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이 별다른 근거 없이 이라크 전쟁 같은 침략 전쟁에 나선 것은 그러한 사례 가운데 하나다. 이러한 행태는 선과 악을 어떤 단일한 근원으로 환원하는 데 그 뿌리가 있다. 사회민주주의자이면서도 윤리적 다원주의를 고수하면서 자유주의적 태도를 견지하는 주트는 우리가 다시 공포의 시대에 진입했다고 말한다. 직업을 얻는 데 소용이 되었던 기술이 일하는 생애 내내 적절할 수 있다는 의식이 사라졌고,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뒤 은퇴하여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의 확실성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주트의 말대로, 우리는 공공선의 성격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책 뒤에 실은 서평에서 홉스봄은 이 책이 [역사가들이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며, 무엇보다 [훌륭한 한 인간과 그가 살아 내고자 했던 삶을 기록한 값진 기념비]라고 말한다. 홉스봄이 공산주의의 죄과를 묻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트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은 당사자이기에, 독자들은 이 서평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해외 서평
주트는 독자들을 이끌고 20세기 사상의 이념적 물살과 여울 들을 헤치며 거침없이 나아간다.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역사에 대한 무지와 정치적 무관심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 맞선 주트의 마지막 싸움. 늘 그래왔듯이, 토니의 모든 문장은 멋지고 단호하며 독창적이다. -NPR(미국 공영 라디어 방송)
매 페이지마다 지적 에너지가 강렬한 빛을 발한다 - 프로스펙트 매거진
감동적이고 계몽적이며 도발적이다. 죽음에 임박한 인간의 비범한 기억력과 도덕적 청렴함에 경이감을 감출 수 없다. - 선데이 타임스
최고 수준의 책 - 더 타임스
▣ 작가 소개
저 : 토니 주트
1948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 대학 킹스 칼리지와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하고, 케임브리지 대학, 옥스퍼드 대학, 버클리 대학, 뉴욕 대학에서 가르쳤다. 현재 뉴욕 대학의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유럽학 교수이자 1995년 자신이 설립한 레마르크 연구소 소장을 재임했다. 「뉴욕 타임스」, 「뉴욕 리뷰 오브 북스」,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 「뉴 리퍼블릭」 등 유럽과 미국의 언론에 빈번히 글을 기고하는 유럽 전문가였으며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 특별회원, 왕립역사학회 특별회원, 빈의 인간과학연구소 종신회원이었다. 유대인인 그는 지식인의 시각에서 이스라엘을 ‘편협한 민족국가’로 규정하는 등 신랄하게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2007년에 한나 아렌트 상을, 2009년에 조지 오웰 상을 수상했다. 2010년 8월 루게릭병으로 타계했다.
주트의 저서로는 『재평가: 잊혀진 20세기에 대한 고찰』, 『유럽, 보복의 정치학』, 『책임의 짐: 블룸, 카뮈, 아롱 그리고 프랑스의 20세기』,『거대한 환상 -유럽 에세이』, 『불완전한 과거: 프랑스 지성, 1944-1956』, 『마르크스주의와 프랑스 좌파: 프랑스의 노동과 정치(1830-1982)』, 『지중해 유럽의 저항과 혁명 1939- 1948』, 『프로방스의 사회주의 1871-1914: 현대 프랑스 좌파의 기원』『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등이 있다.
저자 : 티머시 스나이더
브라운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파리 대학과 바르샤바 대학, 빈 대학,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원을 지냈다. 빈의 인간과학연구소 종신회원이며 현재 예일 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있다. 지금까지 유럽사에 관해 쓴 다섯 권의 책이 모두 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대표작인 『피의 땅: 히틀러와 스탈린 사이의 유럽』은 10여 개의 언론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2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었다. 2013년 이 책을 쓴 공로로 해나 아렌트 상을 수상했다.
▣ 주요 목차
서문 ― 티머시 스나이더
1장 이름은 남는다: 유대인 질문자
2장 런던과 언어: 영국인 작가
3장 가족의 사회주의: 정치적 마르크스주의자
4장 킹스 칼리지와 키부츠: 케임브리지의 시오니스트
5장 파리, 캘리포니아: 프랑스 지식인
6장 이해의 세대: 동유럽 자유주의자
7장 통합체와 단편들: 유럽의 역사가
8장 책임의 시대: 미국인 모랄리스트
9장 선의 평범함: 사회민주주의자
후기 ― 토니 주트
참고문헌
찾아보기
냉전 이후: 토니 주트를 추억하며 ― 에릭 홉스봄
정신적 삶에 관한, 그리고 깨어 있는 삶에 관한 책
『20세기를 생각한다』는 [전후 유럽에 관한 최고의 역사서]로 평가받는 [포스트워]의 저자이자 사회 참여 지식인으로 널리 알려진 토니 주트와 전도유망한 젊은 역사학자 티머시 스나이더가 20세기 서구 정치사상에 대해 나눈 긴 대담의 기록이다. 이 책은 [역사이자 전기이며 윤리학 논문]이다. 19세기 말부터 21세기 초까지 자유주의자, 사회주의자, 공산주의자, 민족주의자, 파시스트 지식인들이 이해한 권력과 정의를 주제로 한 서구 근대 정치 사상사, 제2차 세계 대전과 홀로코스트라는 격변이 일어난 직후 20세기 중반 런던에서 동유럽 유대인의 후손으로 태어난 역사가 토니 주트의 지적 전기, 그리고 20세기 정치사상의 한계와 도덕적 실패에 대한 윤리학적 사색, 이 세 가지 이야기가 교직되어 있다. 책은 과거에 대해 말하지만, 우리가 싸워 얻어야 할 미래에 대해 논증한다. 우리는 공동선에 대해 다시 생각할 필요가 있는데, 20세기는 이에 대해 우리에게 해줄 말이 많다.
역사가로서의 명성이 정점에 달해 있던 2008년, 토니 주트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20세기를 생각한다』는 바로 그러한 사정에서 탄생했다. 토니 주트가 통상적인 의미에서는 더 이상 글을 쓸 수 없게 되었음을 알게 된 역사가 티머시 스나이더가 그에게 책을 한 권 같이 쓰자고 제안했고, 주트가 이를 수락한 것이다. 2009년 정초부터 봄, 여름 내내 스나이더는 매주 목요일마다 주트의 집을 방문해 대화를 나누고 이를 녹음해 녹취한 뒤 주트가 생각한 방식에 따라 9개의 장으로 편집했다. 스나이더와 나눈 일련의 대화에서 주트는 오로지 자신의 정신과 기억을 나침반 삼아 20세기라는 거대한 대륙을 탐험하며 그 지적, 정치적 지형도를 읽어 내고, 자신의 지적 좌표를 정치적 지식인의 역할과 역사가라는 직업에 비추어 자전적 이야기로 풀어냈다.
전기적 요소와 역사적 요소로 나뉘어 있는 각 장은 토니 주트가 자신의 목소리로 들려주는 자전적 전기로 시작한다. 주트의 이야기는 대화에서 나온 것이지만 스나이더는 자신의 말은 빼고 주트의 이야기만 남겨 두었다. 역사 이야기는 주트의 간략한 자전적 이야기가 끝나는 자리에서 20세기 정치사상의 가장 중요한 현장들을 관통하며 진행된다. 홀로코스트와 이스라엘의 관계,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지식인들의 매혹과 환멸, 파시즘과 반파시즘, 동유럽에서 윤리학으로 부활한 자유주의, 유럽과 미국의 사회 계획 등이 주트의 빛나는 통찰력으로 새로운 조명을 받는다.
주트는 이 책의 [후기]를 받아 적게 한 지 몇 주 뒤 이 세상과 작별을 고했고, 이로써 우리는 20세기의 유산에 대한 가장 중요한 논평자 한 명을 잃게 되었다. 주트의 마지막 지적 작업을 함께한 스나이더는 이 책의 의미를 이렇게 정리한다. [우리가 찾는 진실이 아니라 우리를 찾는 진실이 하나 있다. 자체로 완전한 이 진실은 우리 모두 죽는다는 것이다. 다른 진실들은 마치 블랙홀 둘레를 도는, 더 밝고 더 새롭고 더 무거운 별들처럼 이 진실의 궤도를 돈다. 이 최후의 진실 덕에 나는 결국 이 책을 정리할 수 있었다. 이 책은 특정 시기에 특정 노력이 없었다면 탄생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 노력은 내게는 그저 사교적인 몸짓이었지만 토니에게는 육체적으로 엄청난 투쟁이었다. 그렇지만 이 책이 투쟁에 관한 책은 아니다. 이 책은 정신적 삶에 관한, 그리고 깨어 있는 삶에 관한 책이다.]
마르크스주의에 매혹된 지식인들과 그들의 환멸
수많은 주제와 인물을 둘러싼 두 역사학자의 대화는 요약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러나 몇 가지 중심적인 테마는 있다. 그중 하나는 마르크스주의에 대한 지식인들의 매혹과 환멸이다. 마르크스주의는 19세기 말 신뢰를 잃은 신을 대신해 세속의 종교로 화려하게 등장했으나 결국 실패로 돌아갔고, 그 실패의 과정에는 끔찍한 이야기들이 있다. 주트가 보기에 지식인들은 이 끔찍한 결과에 책임이 있다. 어떻게 그렇게 많은 똑똑한 사람들이 타인들에게 끔찍한 결과를 가져올 이야기들을 할 수 있었는가? 토니 주트는 지식인들의 그 책임과 의무에 관해 이야기한다.
마르크스주의는 역사의 작동 방식을 놀랍도록 훌륭하게 설명했다. 역사가 자기편이며, 자기가 가는 길이 진보라고 의식하게 한다는 점에서 마르크스주의는 지식인들을 매혹시키기에 충분했다. 아나키스트들은 체제의 작동 방식에 대한 이론이 없었고, 개혁주의자들은 근본적인 변화에 대해 할 말이 없었으며, 자유주의자들은 사람들이 느끼는 분노를 설명하지 못했다. 그러나 마르크스주의는 이 모두를 분명하게 설명했다. 또한 공산주의는 동조자들에게 강렬한 공동체 의식을 제공했다. 파시즘에 관여했던 회고록의 첫 번째 권에 [나]라는 제목을, 공산주의 시절을 다루고 있는 두 번째 권에 [우리]라는 제목을 붙였던 프랑스의 시인 클로드 루아처럼, 공산주의 사상가들은 자신들이 같은 생각을 하는 지식인 공동체에 속한다고 생각했으며 자신들이 새로운 역사를 만드는 과정의 중심에 놓여 있다고 자신했다. 마르크스주의는 기독교의 세계관과 유사한 세속의 종교였다. 인간관계의 상실과 공동체의 파괴를 주제로 한 잃어버린 세계라는 오래된 이야기에 자본주의가 파괴되고 남은 퇴적물에서 등장할 수 있는 더 높은 차원의 인간 경험에 대한 상상을 덧붙였고, 인간의 타락, 메시아, 메시아의 고난과 대속, 구원, 부활 등 전통적인 기독교 종말론의 많은 부분을 포함했다. 역사의 궁극적인 목적을 말하는 마르스크스주의는 세속의 종교로서 구원을 약속했고, 구원을 위해서라면 희생은 감수할 만한 것이었다.
그러나 환상은 깨져 나갔다. 1936년 스탈린의 시범 재판과 1939년 몰로토프-리벤트로프 조약, 그리고 1956년 헝가리 봉기와 1968년 체코슬로바키아 프라하의 봄에 대한 소련의 무력 진압은 공산주의에 대한 지식인들의 환멸을 불러왔다. 전향한 지식인들은 한때 지녔던 신념을 합리화하고 신념의 상실 또한 표현해야 했는데, 역사가 아니 크리젤이 쓴 책의 제목 [내가 이해했다고 생각한 것], 그리고 프랑수아 퓌레가 쓴 20세기 역사에 관한 책의 제목 [어느 환상의 과거]는 그들이 생각한 방식을 잘 보여 준다. 그러나 여전히 공산주의를 신봉하는 이들이 있었다. 미래의 결과만이 현재의 믿음을 검증해 줄 수 있다고 생각한 이들에게 혁명의 희생자들은 헤겔 철학적 의미에서 정신Geist의 희생자, 즉 인간이 아닌 역사의 희생자였다. 이들은 타인의 운명에 가해진 폭력을 미래를 위해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오믈렛을 만들면서 달걀을 살살 다룰 수는 없다는 것이다.
주트는 이처럼 미래의 이름으로 현재의 악행을 정당화한 것을 20세기 지식인들의 윤리적 문제로 보았다. 스스로 미래를 위해 희생하겠다는 자들은 어쩔 수 없지만 타인에게 미래를 위해 희생할 것을 요구하거나 타인의 희생이 정당하다고 말하는 것은 그 무엇으로도 정당화될 수 없는 죄악이었다. 공산주의의 죄과에 대해 침묵했다는 주트의 비판에서 사르트르도 홉스봄도 자유롭지 못하다. 그러나 죽음과 폭력에 대한 숭배라는 이 낭만적 감수성은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있다. 2006년 이스라엘이 남부 레바논을 침공해 많은 민간인들이 고초를 겪었을 때, 부시 행정부의 국무장관이었던 콘돌리자 라이스는 이를 [새로운 중동의 탄생을 알리는 산고]라고 말했다. 다른 사람들의 시련을 역사가 새로운 세상을 낳은 방법이라고 말하는 이런 식의 수사는, 주트가 보기에 타인들에게 가해진 폭력을 미화한다는 측면에서 역사의 궁극적 목적을 위해 희생은 불가피하다는 20세기 지식인들의 수사와 한 치도 다를 바가 없는 것이었다.
국가의 개입은 히틀러로 가는 길인가 ― 케인스와 하이에크, 복지 국가
경제학적 관점에서 국가의 역할에 관한 논쟁은 20세기 내내 케인스와 하이에크 사이의 결투였다. 시장을 기본적으로 불안정한 것으로 본 케인스에게 안정을 위한 국가의 개입은 필수적인 것이었다. 경제의 안녕뿐만 아니라 때에 따라서는 시장의 생존 자체를 위해서도 개입은 필수적인 조건이었다. 반면 하이에크는 의식적으로 케인스에 반대하면서 국가의 개입은 아무리 의도가 좋아도 나쁜 결말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하이에크에게 국가의 개입은 히틀러에 이르는 길이었다.
대처와 레이건은 하이에크의 사상을 받아들였고, 그것은 신자유주의로 불렸다. 오늘날의 세계 경제에서 하이에크의 사상은 주류가 되었다. 그러나 주트에 따르면, 자유로운 시장을 옹호하는 하이에크의 주된 논거는 경제적인 것이라기보다는 정치적인 것이었다. 경제적 자유가 훼손되면 정치적 자유의 상실이 뒤따른다는 것이 하이에크의 핵심 논거였고, 공산 체제하의 중부 유럽은 그 증거였다. 그러나 주트는 국가의 개입은 전체주의를 초래한다고 본 하이에크의 논리에서 [정치적 자폐성]을 본다. 오스트리아의 권위주의적 정권이 펼친 정책의 실패는 전혀 케인스주의적인 정책의 실패가 아니었는데, 하이에크는 이로부터 어떤 식으로든 경제에 대한 국가 개입은 나쁜 결말을 낳는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영국과 북구 국가들에서 나타난 복지 국가는 하이에크의 우려가 기우였음을 증명했다. 국가의 경제 개입을 옹호하는 복지 국가는 히틀러를 초래하기는커녕 오히려 히틀러의 등장을 막기 위한 조치로 쓰였고, 또한 그렇게 하는 데 성공했다.
우리는 공포의 시대에 다시 진입했다
20세기는 무엇이었는가? 주트는 20세기를 자유 대 전체주의의 세기가 아니라 국가의 역할에 대한 논쟁에 많은 사람들이 관여한 세기로 규정하고자 한다. 어떤 종류의 국가가 사람들을 궁핍에서 벗어나게 했는가? 사람들은 국가를 위해 무엇을 기꺼이 내놓으려 했으며 국가가 어떤 목적에 봉사하기를 원했는가?
우리는 20세기를 제대로 알고 있는가? 그렇지 않다. 주트는 두 대전 사이에 공산주의의 가장 신뢰할 만한 대안이 서유럽의 자유주의적 자본주의가 아니라 파시즘이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사람들은 파시즘과 공산주의 사이에서 선택해야만 했고, 그중에서 파시즘을 선택하려 했던 사람들은 지금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 주트에 따르면, 이러한 극단적 이데올로기에 이끌린 사람들이 우리가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많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면 우리는 20세기의 의미를 완전히 이해할 수 없다.
두 역사학자의 대화는 천천히 그러나 분명하게 우리가 살고 있는 오늘날의 세계에 대한 열정적인 경고로 수렴한다. 유럽의 민족주의 정치인들은 이방인, 이민자, 불확실성 등 외부에서 오는 위협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데 능했다. 오늘날에도 국민의 공포심을 이용해 권력을 유지하려는 자들이 있다. 외부의 위협을 강조하면 내부의 민주주의가 왜곡된다. 예컨대, 민주주의 국가인 미국이 별다른 근거 없이 이라크 전쟁 같은 침략 전쟁에 나선 것은 그러한 사례 가운데 하나다. 이러한 행태는 선과 악을 어떤 단일한 근원으로 환원하는 데 그 뿌리가 있다. 사회민주주의자이면서도 윤리적 다원주의를 고수하면서 자유주의적 태도를 견지하는 주트는 우리가 다시 공포의 시대에 진입했다고 말한다. 직업을 얻는 데 소용이 되었던 기술이 일하는 생애 내내 적절할 수 있다는 의식이 사라졌고, 성공적인 경력을 쌓은 뒤 은퇴하여 안락한 삶을 누릴 수 있으리라는 기대의 확실성도 사라졌다는 것이다. 주트의 말대로, 우리는 공공선의 성격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야만 한다.
책 뒤에 실은 서평에서 홉스봄은 이 책이 [역사가들이 무엇을 말해야 하는지 알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읽어야 할 책]이며, 무엇보다 [훌륭한 한 인간과 그가 살아 내고자 했던 삶을 기록한 값진 기념비]라고 말한다. 홉스봄이 공산주의의 죄과를 묻지 않았다는 이유로 주트로부터 호된 비판을 받은 당사자이기에, 독자들은 이 서평을 흥미롭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해외 서평
주트는 독자들을 이끌고 20세기 사상의 이념적 물살과 여울 들을 헤치며 거침없이 나아간다. - 로스앤젤레스 타임스
역사에 대한 무지와 정치적 무관심이 지배하는 이 세계에 맞선 주트의 마지막 싸움. 늘 그래왔듯이, 토니의 모든 문장은 멋지고 단호하며 독창적이다. -NPR(미국 공영 라디어 방송)
매 페이지마다 지적 에너지가 강렬한 빛을 발한다 - 프로스펙트 매거진
감동적이고 계몽적이며 도발적이다. 죽음에 임박한 인간의 비범한 기억력과 도덕적 청렴함에 경이감을 감출 수 없다. - 선데이 타임스
최고 수준의 책 - 더 타임스
▣ 작가 소개
저 : 토니 주트
1948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 대학 킹스 칼리지와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하고, 케임브리지 대학, 옥스퍼드 대학, 버클리 대학, 뉴욕 대학에서 가르쳤다. 현재 뉴욕 대학의 에리히 마리아 레마르크 유럽학 교수이자 1995년 자신이 설립한 레마르크 연구소 소장을 재임했다. 「뉴욕 타임스」, 「뉴욕 리뷰 오브 북스」,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 「뉴 리퍼블릭」 등 유럽과 미국의 언론에 빈번히 글을 기고하는 유럽 전문가였으며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 특별회원, 왕립역사학회 특별회원, 빈의 인간과학연구소 종신회원이었다. 유대인인 그는 지식인의 시각에서 이스라엘을 ‘편협한 민족국가’로 규정하는 등 신랄하게 비판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리고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와 미국이 일으킨 전쟁에 대해서도 강도 높게 비판한 바 있다. 2007년에 한나 아렌트 상을, 2009년에 조지 오웰 상을 수상했다. 2010년 8월 루게릭병으로 타계했다.
주트의 저서로는 『재평가: 잊혀진 20세기에 대한 고찰』, 『유럽, 보복의 정치학』, 『책임의 짐: 블룸, 카뮈, 아롱 그리고 프랑스의 20세기』,『거대한 환상 -유럽 에세이』, 『불완전한 과거: 프랑스 지성, 1944-1956』, 『마르크스주의와 프랑스 좌파: 프랑스의 노동과 정치(1830-1982)』, 『지중해 유럽의 저항과 혁명 1939- 1948』, 『프로방스의 사회주의 1871-1914: 현대 프랑스 좌파의 기원』『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등이 있다.
저자 : 티머시 스나이더
브라운 대학과 옥스퍼드 대학에서 수학했으며 파리 대학과 바르샤바 대학, 빈 대학, 하버드 대학에서 연구원을 지냈다. 빈의 인간과학연구소 종신회원이며 현재 예일 대학 역사학과 교수로 있다. 지금까지 유럽사에 관해 쓴 다섯 권의 책이 모두 수상의 영예를 안았으며, 대표작인 『피의 땅: 히틀러와 스탈린 사이의 유럽』은 10여 개의 언론에서 올해의 책으로 선정되었고 20개가 넘는 언어로 번역되었다. 2013년 이 책을 쓴 공로로 해나 아렌트 상을 수상했다.
▣ 주요 목차
서문 ― 티머시 스나이더
1장 이름은 남는다: 유대인 질문자
2장 런던과 언어: 영국인 작가
3장 가족의 사회주의: 정치적 마르크스주의자
4장 킹스 칼리지와 키부츠: 케임브리지의 시오니스트
5장 파리, 캘리포니아: 프랑스 지식인
6장 이해의 세대: 동유럽 자유주의자
7장 통합체와 단편들: 유럽의 역사가
8장 책임의 시대: 미국인 모랄리스트
9장 선의 평범함: 사회민주주의자
후기 ― 토니 주트
참고문헌
찾아보기
냉전 이후: 토니 주트를 추억하며 ― 에릭 홉스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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