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잊힌 역사, 조선의 대외 정벌
삼국시대 이래로 2,000여 년의 한국사에서 전쟁 횟수를 꼽아보면 900 몇 십여 차례가 된다. 내전과 외란, 크고 작은 규모를 합치면 모두 1,000번이 훌쩍 넘는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렇다면 이 가운데 ‘대외’ ‘해외’ 또는 ‘원정’에 해당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삼국시대 외에는 거의 없었다. 특히나 조선시대에는 이런 경우가 전무하다시피 하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조선시대를 통틀어 역사 기록에 방어나 수비 개념인 ‘수어守禦’라는 용어는 자주 등장해도, 공격이라든가 공세라는 적극적 개념의 ‘공攻’이란 용어는 전혀 찾아볼 길이 없다고 극언하는 학자들마저 있다.
그럼에도 조선시대에 ‘대외’ ‘해외’ 또는 ‘원정’에 해당하는 군사작전은 엄연히 존재하며, 그것이 가지는 역사적 함의 또한 결코 작지 않다. 각각 왜구, 여진족, 러시아군을 상대로 벌인 ‘대마도정벌’ ‘보주 강 야인토벌’ ‘나선정벌’ 단 3차례 작전에, 본격적인 대규모 전쟁이 아니라 주로 소규모 단기 토벌작전이었지만, 모두가 복잡한 국제적 역학관계 속에서 진행되었고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성쇠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간 조선의 대외 정벌은 그 중요도에 비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설사 연구가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학계 일부의 작업에 그치고, 그 결과 일반에서는 ‘야담’ ‘야사’ 수준에서 회자되고 있을 따름이다. 이 책은 그러한 조선 대외 정벌의 역사적 실체를 재구성하고, 재조망하고, 재평가함으로써, 오늘날의 냉엄한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고자 한다.
조선 원정 토벌작전의 성격과 역사적 함의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군대의 대외 파병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한 국가 내부의 특수성과 더불어 국제적 역학관계가 총체적으로 작동한다. 조선의 대외 군사작전 역시 그런 점에서는 대동소이한데, 그렇다면 이 책에서 다루는 3차례 원정 파병은 각각 어떤 성격과 배경, 역사적 함의를 지니고 있을까?
이 책 1부에서 다루는 ‘대마도정벌’은 세종 대에 이루어진 왜구 토벌작전이다. 왜구는 삼국시대부터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일본의 ‘해적 집단’이다. 조선의 기본 외교정책은 ‘사대교린’이었고, 이는 왜구에도 해당하는 방침이었다. 조선 초기 왜구의 침입과 약탈이 극심했음에도(왜구 창궐의 최대 극성기는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까지 약 60년간이다), 이 회유정책은 계속 유지되었다. 그런데 왜 세종 대에 이르러 갑자기 강경노선으로 돌아서 대마도정벌을 단행하게 된 것일까? 여기에는 원명 교체기 중국 대륙의 정세, 남조와 북조로 나뉘어 쟁란을 벌인 일본 내부 상황, 개국 초기 정권 안정에 대한 조선의 필요 등이 중첩적으로 작용했다고 저자는 적시한다. 이에 더하여 원정 토벌작전이라는 공세적 대처가 지니는 군사적 의의, 그리고 이후 조선 왕조의 대왜구 정책과 2차례에 걸친 왜란, 나아가 식민지 침탈과 최근 일본의 태도에까지 이르는 연결고리를 살핌으로써,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역사적 함의를 되새긴다.
2부 ‘보주 강 야인토벌’ 역시 세종 대에 이루어졌다. 야인, 즉 여진족은 숙신, 읍루, 말갈 등으로 불리며 중국 동북지역에서 거주해온 민족이었으며, 조선 건국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용비어천가》에 야인 추장의 이름이 무려 30명이나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개국 초기 조선의 북방 지역은 세종 자신의 개탄처럼 ‘야인들의 사냥터’였고, 여진족의 끊임없는 침탈에 조용할 날이 없었다. 세종이 여진족 토벌을 단행한 것에는 궁극적으로 여진에 대한 명나라의 회유, 복속 정책과 조선 정국의 안정이라는 내외적 요인이 함께 작용했다. 세종은 여진족을 토벌하고 사군과 육진을 개척하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여진족 세력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여 불씨를 남겼고, 이후 동북방과 서북방 방어 인식이 극도로 해이해져,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이라는 왕조를 존폐 위기로까지 몰고 가는 전란을 초래하는 실책을 범했다(여진족은 만주족으로 이름을 바꾸고 청제국을 건설했다). 이로 인해 조선은 국왕이 청 황제에게 노예 의식으로 배례하고 청과 군신지맹을 맺는 치욕을 겪었는데, 이는 결국 훗날 조선의 쇠망과 일제식민지화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고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3부에서 다루는 ‘나선정벌’은 이전 두 차례의 대외 원정과 성격이 판이하다. 우선 ‘나선(러시아)’라는 기존에 접하지 못했던 세력이 등장하고, 파병도 조선의 의지가 아니라 청의 요청(강요)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다만 그 배경에 여진족(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있다는 점에서, 2부 ‘보주 강 야인토벌’의 역사적 맥락과 깊이 연관된다. 17세기 중반, 영토 확장을 꾀하며 동진정책을 펼치던 제정러시아는 불가피하게 청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헤이룽 강(아무르 강) 유역에서 러시아군과 벌인 몇 차례 전투에서 패한 청나라는 조선에 지원병을 요청했다. 군신지맹 관계에 있던 조선으로서는 청의 요청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고, 청나라의 승리에 일조하는 일정한 성과도 거두었다. 그렇지만 조선의 ‘소중화’ 의식, ‘친명배금’ 정책은 뿌리 깊었어도, 실제 냉혹한 국제관계는 그런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한,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음을 ‘나선정벌’은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효종의 ‘북벌’이라는 이상이 현실의 벽에 부닥쳐 좌절한 것은 여러 면에서 역사적 성찰을 요하는 점이다.
냉엄한 국제질서와 오늘을 위한 교훈
조선의 대외 정벌은 오늘날의 냉엄한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흔히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공허한 수식어로 얼버무리는 역사 아래에, 실상은 끝없이 되풀이된 참담한 비극과 커다란 위기가 엄존해왔음을 이 책 《조선의 대외 정벌》은 생생히,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서 우리는 허술한 외교 정책, 안이한 국방 의식, 잘못된 국제정세 판단 등이 초래한 결과를 수없이 만난다. 물론 평화를 버리고 전쟁을 택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 또한 편협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그럼에도 최소한, 아니 가능한 최대로 위기와 변화에 대비하고, 냉철한 인식으로 올바르게 대처해내지 못한다면, 민족과 국가의 운명이 한순간에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이 책은 여실히 증명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 책에서 국민적 풍조 또한 은연중에 한 국가의 운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오늘이 아닌 ‘과거’라는 거울을 통해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라는 저자들의 바람은 현재의 냉혹한 국제관계 속에서 절절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책 머리말에서 인용한 “오늘과 내일이란 없다, 오로지 과거만이 거듭될 뿐”이라는 유진 오닐의 말이 새삼 의미심장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임홍빈
1940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구부 전문위원을 거쳐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민족군사실 책임편찬위원과 국방군사연구소 지역연구부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1992년부터 중국의 군사역사, 전쟁사 연구와 중국 고전 및 현대문학 작품 번역에 전념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 『달빛을 베다』 『손자병법 교양강의』 『중국역대명화가선』 『수호별전』 『소설 공자』 『서유기』 『현실+꿈+유머: 린위탕 일대기』 『의천도룡기』 『백록원』(공역) 등이 있으며, 한국 고전군사문헌을 현대어로 국역한 『문종진법·병장설』 『무경칠서』 『백전기법』 등이 있다. 저서로는 『현대중국어교본』 『독학중국어회화』 등이 있다.
저자 : 유재성
서울에서 태어났다. 익산 남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해 동양사를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화광중학교와 경성중학교 역사교사를 지냈으며, 1979년 단국대학교 부설 동양학연구소에서 편찬원으로 근무했다.
1982년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책임편찬위원으로서 《의병항쟁사》 《병자호란사》 《여요전쟁사》를 포함하여 ‘역대 전란사’ 시리즈를 다수 집필했다. 1992년 국방군사연구소로 직제가 개편되자 수석연구원으로서 《한민족전쟁통사》 Ⅱ(고려시대 편)·Ⅲ(조선시대 전편), 《국토개척사》 들을 집필하면서 군사사 부장을 역임했다. 1982년부터 성균관대학교·서울여자대학교·방송통신대학교 등에 출강했다. 2000년 퇴임 후에는 사단법인 해동경사연구소 상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병서번역 사업에 참여하여 《연기신편》 《신기비결》 《기효신서》(상·하) 들을 번역했으며, 그 밖에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에서 주관하는 고문헌 번역을 추진 중이다.
저자 : 서인한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서울 인창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민대학교 국사학과에서 학사,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에 입사하여 《독립군항쟁사》 《임진왜란사》 《병인·신미양요사》 들을 집필하고, 1992년 국방군사연구소로 개편되자 선임연구원으로서 《한민족전쟁통사》Ⅰ(고대 편)·Ⅳ(조선시대 후편), 《나당전쟁사》 들을 집필했다. 2000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로 개편된 후로는 《한민족 역대 파병사》 《한국연합작전사》 《한중군사관계사》 들을 집필 간행하면서 군사사 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2년 정년퇴임했다. 2013년부터 사단법인 전쟁과평화연구소 이사로 재직 중이며. 인덕대학교·국민대학교·신구대학교 등에 출강했고, 현재는 인하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1부 대마도정벌
1장 왜구를 찾아서
‘왜’와 ‘구’는 도대체 무슨 뜻인가
왜구는 왜 한반도까지 왔을까
해적질 이상의 침략
근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피해의 양상
2장 삼국시대: 왜구의 침입과 대응
고대 일본열도의 형세
고대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만남
왜구의 탄생과 왜구 토벌사의 시작
신라 하대의 혼란과 왜구
해상왕 장보고의 활약과 왜구의 위축
3장 중세 고려: 왜구 침략의 극성기
고려 후기의 왜구 침입, 그리고 대마도
고려-원 연합군의 일본 공격
두 차례의 침공 실패가 일본에 끼친 영항
고려의 반격: 제1차 대마도정벌
격변하는 동아시아 3국과 왜구 문제
4장 조선의 대왜구 정책과 군사 행동
조선 초기의 대외 정책
다시 나타난 왜구와 조선의 군사력 증강
왜구의 침입 양상
제2차 대마도정벌
정벌 이후 거류왜인들의 변란
5장 왜구와 일본
왜구를 대하는 동아시아 3국의 시각 차이
왜구와 일본, 그리고 역사의 교훈
2부 보주 강 야인토벌
1장 여진을 찾아서
야인은 누구인가
주르친, 숙신, 여진
여진의 대이동
이만주, 그리고 멍거테무르
2장 조선과 여진, 압록강을 두고 맞서다
약탈과 납치가 끊이지 않는 압록강 유역
제1차 야인토벌: 조선군 보주 강으로 출동하다
후르가이 부족, 오미부로 쫓겨나다
조선의 방어 태세
3장 조선, 두만강 국경을 확보하다
청 태조 누르하치와 여진
멍거테무르의 죽음
세종의 군사 작전과 조선 동북부 영토 개척
오도리 부족, 이만주와 합류하다
두만강 유역에 육진을 개척하다
4장 건주여진의 침입과 조선의 대응
제2차 야인토벌
압록강 유역에 사군을 개척하다
건주삼위
5장 조선과 명의 대여진 정책
조선의 여진 정책: 회유와 토벌
우디거 족속
조선군과 명군의 연합작전
건주여진의 끈질긴 생명력
6장 청제국의 건설과 조선의 운명
동북 야인의 줄기찬 침입
임진왜란: 조선, 명, 여진 모두의 갈림길
토벌의 실패
건주여진, 분열과 통합
후금에서 청제국으로
호란의 참패와 치욕
3부 나선정벌
1장 조선의 패전과 러시아의 동진
조선과 청의 전쟁: 치욕적인 패배와 이어진 부담
청, 러시아라는 새로운 적을 만나다
2장 제1차 나선정벌
청의 출병 요청과 조선군 출병 준비: “나선은 어떤 나라인가?”
제1차 나선정벌군의 작전 지역 이동
제1차 전투
제1차 나선정벌이 남긴 것
3장 조선의 군사력 증강과 청의 견제
효종의 북벌 의지와 현실적 난관
제2차 나선정벌 준비
4장 제2차 나선정벌
헤이룽 강으로 출동하다
헤이룽 강 전투
철수 문제
제2차 나선정벌이 남긴 것
나선정벌 이후 청과 러시아, 그리고 조선
참고문헌
찾아보기
잊힌 역사, 조선의 대외 정벌
삼국시대 이래로 2,000여 년의 한국사에서 전쟁 횟수를 꼽아보면 900 몇 십여 차례가 된다. 내전과 외란, 크고 작은 규모를 합치면 모두 1,000번이 훌쩍 넘는다고 주장하는 학자도 있다. 그렇다면 이 가운데 ‘대외’ ‘해외’ 또는 ‘원정’에 해당하는 경우는 얼마나 될까?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보면, 삼국시대 외에는 거의 없었다. 특히나 조선시대에는 이런 경우가 전무하다시피 하다고 말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래서 조선시대를 통틀어 역사 기록에 방어나 수비 개념인 ‘수어守禦’라는 용어는 자주 등장해도, 공격이라든가 공세라는 적극적 개념의 ‘공攻’이란 용어는 전혀 찾아볼 길이 없다고 극언하는 학자들마저 있다.
그럼에도 조선시대에 ‘대외’ ‘해외’ 또는 ‘원정’에 해당하는 군사작전은 엄연히 존재하며, 그것이 가지는 역사적 함의 또한 결코 작지 않다. 각각 왜구, 여진족, 러시아군을 상대로 벌인 ‘대마도정벌’ ‘보주 강 야인토벌’ ‘나선정벌’ 단 3차례 작전에, 본격적인 대규모 전쟁이 아니라 주로 소규모 단기 토벌작전이었지만, 모두가 복잡한 국제적 역학관계 속에서 진행되었고 궁극적으로는 국가의 성쇠에까지 영향을 미쳤다.
그간 조선의 대외 정벌은 그 중요도에 비해 제대로 조명받지 못한 것이 사실이다. 설사 연구가 이루어진다 할지라도 학계 일부의 작업에 그치고, 그 결과 일반에서는 ‘야담’ ‘야사’ 수준에서 회자되고 있을 따름이다. 이 책은 그러한 조선 대외 정벌의 역사적 실체를 재구성하고, 재조망하고, 재평가함으로써, 오늘날의 냉엄한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가 나아가야 할 방향을 찾고자 한다.
조선 원정 토벌작전의 성격과 역사적 함의
오늘날도 마찬가지지만, 군대의 대외 파병은 결코 간단한 문제가 아니다. 여기에는 한 국가 내부의 특수성과 더불어 국제적 역학관계가 총체적으로 작동한다. 조선의 대외 군사작전 역시 그런 점에서는 대동소이한데, 그렇다면 이 책에서 다루는 3차례 원정 파병은 각각 어떤 성격과 배경, 역사적 함의를 지니고 있을까?
이 책 1부에서 다루는 ‘대마도정벌’은 세종 대에 이루어진 왜구 토벌작전이다. 왜구는 삼국시대부터 역사 기록에 등장하는 일본의 ‘해적 집단’이다. 조선의 기본 외교정책은 ‘사대교린’이었고, 이는 왜구에도 해당하는 방침이었다. 조선 초기 왜구의 침입과 약탈이 극심했음에도(왜구 창궐의 최대 극성기는 고려 말기에서 조선 초기까지 약 60년간이다), 이 회유정책은 계속 유지되었다. 그런데 왜 세종 대에 이르러 갑자기 강경노선으로 돌아서 대마도정벌을 단행하게 된 것일까? 여기에는 원명 교체기 중국 대륙의 정세, 남조와 북조로 나뉘어 쟁란을 벌인 일본 내부 상황, 개국 초기 정권 안정에 대한 조선의 필요 등이 중첩적으로 작용했다고 저자는 적시한다. 이에 더하여 원정 토벌작전이라는 공세적 대처가 지니는 군사적 의의, 그리고 이후 조선 왕조의 대왜구 정책과 2차례에 걸친 왜란, 나아가 식민지 침탈과 최근 일본의 태도에까지 이르는 연결고리를 살핌으로써,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역사적 함의를 되새긴다.
2부 ‘보주 강 야인토벌’ 역시 세종 대에 이루어졌다. 야인, 즉 여진족은 숙신, 읍루, 말갈 등으로 불리며 중국 동북지역에서 거주해온 민족이었으며, 조선 건국에도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용비어천가》에 야인 추장의 이름이 무려 30명이나 등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개국 초기 조선의 북방 지역은 세종 자신의 개탄처럼 ‘야인들의 사냥터’였고, 여진족의 끊임없는 침탈에 조용할 날이 없었다. 세종이 여진족 토벌을 단행한 것에는 궁극적으로 여진에 대한 명나라의 회유, 복속 정책과 조선 정국의 안정이라는 내외적 요인이 함께 작용했다. 세종은 여진족을 토벌하고 사군과 육진을 개척하는 등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그러나 여진족 세력을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여 불씨를 남겼고, 이후 동북방과 서북방 방어 인식이 극도로 해이해져, 병자호란과 정묘호란이라는 왕조를 존폐 위기로까지 몰고 가는 전란을 초래하는 실책을 범했다(여진족은 만주족으로 이름을 바꾸고 청제국을 건설했다). 이로 인해 조선은 국왕이 청 황제에게 노예 의식으로 배례하고 청과 군신지맹을 맺는 치욕을 겪었는데, 이는 결국 훗날 조선의 쇠망과 일제식민지화로 이어지는 역사적 흐름과 직간접적으로 연결되는 중요한 고리를 차지하고 있음을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3부에서 다루는 ‘나선정벌’은 이전 두 차례의 대외 원정과 성격이 판이하다. 우선 ‘나선(러시아)’라는 기존에 접하지 못했던 세력이 등장하고, 파병도 조선의 의지가 아니라 청의 요청(강요)으로 이루어졌던 것이다. 다만 그 배경에 여진족(만주족)이 세운 청나라가 있다는 점에서, 2부 ‘보주 강 야인토벌’의 역사적 맥락과 깊이 연관된다. 17세기 중반, 영토 확장을 꾀하며 동진정책을 펼치던 제정러시아는 불가피하게 청과 맞닥뜨릴 수밖에 없었다. 헤이룽 강(아무르 강) 유역에서 러시아군과 벌인 몇 차례 전투에서 패한 청나라는 조선에 지원병을 요청했다. 군신지맹 관계에 있던 조선으로서는 청의 요청을 수락할 수밖에 없었고, 청나라의 승리에 일조하는 일정한 성과도 거두었다. 그렇지만 조선의 ‘소중화’ 의식, ‘친명배금’ 정책은 뿌리 깊었어도, 실제 냉혹한 국제관계는 그런 이데올로기와는 무관한, 힘의 논리가 지배하고 있음을 ‘나선정벌’은 여실히 보여준다는 점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특히 효종의 ‘북벌’이라는 이상이 현실의 벽에 부닥쳐 좌절한 것은 여러 면에서 역사적 성찰을 요하는 점이다.
냉엄한 국제질서와 오늘을 위한 교훈
조선의 대외 정벌은 오늘날의 냉엄한 국제정세 속에서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만든다. 흔히 ‘평화를 사랑하는 민족’이라는 공허한 수식어로 얼버무리는 역사 아래에, 실상은 끝없이 되풀이된 참담한 비극과 커다란 위기가 엄존해왔음을 이 책 《조선의 대외 정벌》은 생생히,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이 책에서 우리는 허술한 외교 정책, 안이한 국방 의식, 잘못된 국제정세 판단 등이 초래한 결과를 수없이 만난다. 물론 평화를 버리고 전쟁을 택해야 한다는 식의 논리 또한 편협하고 위험한 발상이다. 그럼에도 최소한, 아니 가능한 최대로 위기와 변화에 대비하고, 냉철한 인식으로 올바르게 대처해내지 못한다면, 민족과 국가의 운명이 한순간에 구렁텅이로 떨어지게 된다는 사실을 이 책은 여실히 증명해 보인다. 그런 점에서 “우리는 이 책에서 국민적 풍조 또한 은연중에 한 국가의 운명에 막대한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을, 오늘이 아닌 ‘과거’라는 거울을 통해 보여드리고 싶었습니다”라는 저자들의 바람은 현재의 냉혹한 국제관계 속에서 절절한 울림으로 다가온다.
이 책 머리말에서 인용한 “오늘과 내일이란 없다, 오로지 과거만이 거듭될 뿐”이라는 유진 오닐의 말이 새삼 의미심장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일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임홍빈
1940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한국외국어대학교 중국어과를 졸업하고 민족문화추진회 국역연구부 전문위원을 거쳐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민족군사실 책임편찬위원과 국방군사연구소 지역연구부 선임연구원을 역임했다. 1992년부터 중국의 군사역사, 전쟁사 연구와 중국 고전 및 현대문학 작품 번역에 전념하고 있다.
주요 역서로 『달빛을 베다』 『손자병법 교양강의』 『중국역대명화가선』 『수호별전』 『소설 공자』 『서유기』 『현실+꿈+유머: 린위탕 일대기』 『의천도룡기』 『백록원』(공역) 등이 있으며, 한국 고전군사문헌을 현대어로 국역한 『문종진법·병장설』 『무경칠서』 『백전기법』 등이 있다. 저서로는 『현대중국어교본』 『독학중국어회화』 등이 있다.
저자 : 유재성
서울에서 태어났다. 익산 남성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사학과에 입학해 동양사를 전공했으며, 동 대학원에서 석사학위를 받고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화광중학교와 경성중학교 역사교사를 지냈으며, 1979년 단국대학교 부설 동양학연구소에서 편찬원으로 근무했다.
1982년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 책임편찬위원으로서 《의병항쟁사》 《병자호란사》 《여요전쟁사》를 포함하여 ‘역대 전란사’ 시리즈를 다수 집필했다. 1992년 국방군사연구소로 직제가 개편되자 수석연구원으로서 《한민족전쟁통사》 Ⅱ(고려시대 편)·Ⅲ(조선시대 전편), 《국토개척사》 들을 집필하면서 군사사 부장을 역임했다. 1982년부터 성균관대학교·서울여자대학교·방송통신대학교 등에 출강했다. 2000년 퇴임 후에는 사단법인 해동경사연구소 상임연구원으로 근무하면서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의 병서번역 사업에 참여하여 《연기신편》 《신기비결》 《기효신서》(상·하) 들을 번역했으며, 그 밖에 한국학중앙연구원 등에서 주관하는 고문헌 번역을 추진 중이다.
저자 : 서인한
경남 창녕에서 태어났다. 서울 인창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국민대학교 국사학과에서 학사, 동대학원에서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1983년 국방부 전사편찬위원회에 입사하여 《독립군항쟁사》 《임진왜란사》 《병인·신미양요사》 들을 집필하고, 1992년 국방군사연구소로 개편되자 선임연구원으로서 《한민족전쟁통사》Ⅰ(고대 편)·Ⅳ(조선시대 후편), 《나당전쟁사》 들을 집필했다. 2000년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로 개편된 후로는 《한민족 역대 파병사》 《한국연합작전사》 《한중군사관계사》 들을 집필 간행하면서 군사사 부장으로 근무하다가 2012년 정년퇴임했다. 2013년부터 사단법인 전쟁과평화연구소 이사로 재직 중이며. 인덕대학교·국민대학교·신구대학교 등에 출강했고, 현재는 인하대학교 대학원 초빙교수로 출강하고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1부 대마도정벌
1장 왜구를 찾아서
‘왜’와 ‘구’는 도대체 무슨 뜻인가
왜구는 왜 한반도까지 왔을까
해적질 이상의 침략
근본 대책을 세우지 못하고
피해의 양상
2장 삼국시대: 왜구의 침입과 대응
고대 일본열도의 형세
고대 한반도와 일본열도의 만남
왜구의 탄생과 왜구 토벌사의 시작
신라 하대의 혼란과 왜구
해상왕 장보고의 활약과 왜구의 위축
3장 중세 고려: 왜구 침략의 극성기
고려 후기의 왜구 침입, 그리고 대마도
고려-원 연합군의 일본 공격
두 차례의 침공 실패가 일본에 끼친 영항
고려의 반격: 제1차 대마도정벌
격변하는 동아시아 3국과 왜구 문제
4장 조선의 대왜구 정책과 군사 행동
조선 초기의 대외 정책
다시 나타난 왜구와 조선의 군사력 증강
왜구의 침입 양상
제2차 대마도정벌
정벌 이후 거류왜인들의 변란
5장 왜구와 일본
왜구를 대하는 동아시아 3국의 시각 차이
왜구와 일본, 그리고 역사의 교훈
2부 보주 강 야인토벌
1장 여진을 찾아서
야인은 누구인가
주르친, 숙신, 여진
여진의 대이동
이만주, 그리고 멍거테무르
2장 조선과 여진, 압록강을 두고 맞서다
약탈과 납치가 끊이지 않는 압록강 유역
제1차 야인토벌: 조선군 보주 강으로 출동하다
후르가이 부족, 오미부로 쫓겨나다
조선의 방어 태세
3장 조선, 두만강 국경을 확보하다
청 태조 누르하치와 여진
멍거테무르의 죽음
세종의 군사 작전과 조선 동북부 영토 개척
오도리 부족, 이만주와 합류하다
두만강 유역에 육진을 개척하다
4장 건주여진의 침입과 조선의 대응
제2차 야인토벌
압록강 유역에 사군을 개척하다
건주삼위
5장 조선과 명의 대여진 정책
조선의 여진 정책: 회유와 토벌
우디거 족속
조선군과 명군의 연합작전
건주여진의 끈질긴 생명력
6장 청제국의 건설과 조선의 운명
동북 야인의 줄기찬 침입
임진왜란: 조선, 명, 여진 모두의 갈림길
토벌의 실패
건주여진, 분열과 통합
후금에서 청제국으로
호란의 참패와 치욕
3부 나선정벌
1장 조선의 패전과 러시아의 동진
조선과 청의 전쟁: 치욕적인 패배와 이어진 부담
청, 러시아라는 새로운 적을 만나다
2장 제1차 나선정벌
청의 출병 요청과 조선군 출병 준비: “나선은 어떤 나라인가?”
제1차 나선정벌군의 작전 지역 이동
제1차 전투
제1차 나선정벌이 남긴 것
3장 조선의 군사력 증강과 청의 견제
효종의 북벌 의지와 현실적 난관
제2차 나선정벌 준비
4장 제2차 나선정벌
헤이룽 강으로 출동하다
헤이룽 강 전투
철수 문제
제2차 나선정벌이 남긴 것
나선정벌 이후 청과 러시아, 그리고 조선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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