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소통하는 역사를 위하여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의 편찬 작업은 2002년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 편찬위원회’를 구성, 집필 원칙과 편찬 일정을 정하고 고대·고려·조선·근대·현대 등 각 시대별로 팀을 만들어 기획안을 마련하고 그에 맞는 필자를 선정해 집필에 들어갔다. 60명에 가까운 필자들이 참가해 공동 작업으로 10권의 책을 만들어내는 일은 지난한 과정이었다. 다양한 필자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모으는 작업부터 완성된 원고들을 팀별로 수차례 검토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은 지금 우리의 시대를 돌아보게도 한다. 과거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상징하듯이 세계는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과 개방으로 냉전이 종식되면서 체제와 이념의 대립보다는 화해와 교류의 방향으로 나가며 21세기를 맞이했다. 한반도도 1998년 ‘현대 정주영회장의 소떼 방북’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과 북이 화해와 교류·협력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21세기도 15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다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미국과 알카에다 등 이슬람진영의 대립, 시리아 내전과 이슬람 국가의 등장 등 중동 내부의 갈등과 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 등이 계속되고 있고, 동북아시아에서도 역사 갈등과 영토 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이념 대립보다는 종교·문명 대립의 성격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는 시대착오적인 이념과 지역 갈등이 여전한 가운데 신자유주의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속에서 세대와 계층 갈등까지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천박한 자본주의의 이윤 논리와 정치 사회적 부패의 사슬에 의해 일상생활의 안전까지도 위협받고 있다. 250명의 어린 학생들을 비롯해 304명이 죽은 ‘세월호 참사’는 이러한 한국 사회의 모순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사라진 사회, 국가가 책임져야 할 안전과 복지도 국민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사회, 정의는 실종하고 신뢰와 희망 대신 불신과 체념만이 가득 찬 사회에서 과연 역사학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는 한국 역사의 체계화와 소통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했다.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를 고찰하고 그를 바탕으로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다. 역사가는 이를 이루기 위해 역사를 부단히 새로 써야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기획된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는 새로운 시각에서 한국 역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시대별로 조망한다.
조선시대사, 허구와 가상의 역사가 아닌
실증과 사실의 역사를 위하여
최근 조선시대에 관한 교양서라고 할 수 있는 책들은 많이 출판되고 있다. 이와 함께 역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교양물, 사극史 등 영상물도 그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 데는 조선왕조실록 등과 같은 연대기 자료의 원문과 번역문을 비롯해 각종 자료들이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등 자료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진 덕분이며, 일반인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일반인의 관심과 교양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그에 대응하는 여러 형태의 교양물이나 문화상품, 영상물이 다량 산출되는 것은 우선은 반가운 현상이지만 그 이면에는 우려되는 바도 없지 않다. 역사 서술은 사실을 재구성하는 실증의 기반 위에 자료와 사실에 대한 해석이 결합해 이루어진다. 실증 작업을 수행하지 않은 이야기는 아무리 재미가 있다 해도 역사라고 할 수 없고, 정확한 사료 비판과 해석이 뒷받침되지 않은 서술은 역사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주변에는 역사적 사실과 진실에 어긋나는 허구와 가상이 역사로 둔갑해 유포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역사가 아닌 것을 역사로 착각하는 것은 그 후폐가 크지 않을 수 없다.
학계 각 분야의 권위자 16인이,
개인-사회-국가-세계의 틀로 바라본 조선시대
이러한 연구 영역 내외의 상황은 조선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조선시대를 어떻게 이해하게 서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게 했다. ≪조선시대사 1─국가와 세계≫(홍순민·한상권·손병규·김성우·고동환·한명기·배우성·노대환)와 ≪조선시대사 2─인간과 사회≫(김훈식·고영진·정진영·이해준·김건태·정연식·김 호·한희숙) 집필한 한국역사연구회 중세2분과에 소속된 조선시대를 전공하는 연구자들은, 조선시대를 새롭게 그려내려면 그 목차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고민 끝에 조선시대를 개인(가족)-사회-국가-세계의 틀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고 각각의 범주에 맞는 16개의 소주제를 선정해서 두 권의 책에 담았다.
예를 들면 소주제 중 [성리학적 인간의 형성]과 [가족에서 문중으로] 등은 개인(가족)의 차원에서, [학문적 네트워크의 형성]과 [재지사족, 향촌의 지배자가 되다] 등은 사회의 차원에서, [정치운영과 왕권의 추이]와 [교화와 형정] 등은 국가의 차원에서, [국제 관계와 전쟁]과 [조선 사람이 그린 세계의 이미지] 등은 세계의 차원에서 조선시대를 바라본 것이다. 언 듯 보면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독자가 책 전체를 다 읽고 나면 하나의 ‘조선시대상’이 떠오르도록 하는 방식을 취했다. 마치 서양 역사학계의 고전인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처럼.
따라서 이 책은 기존의 시대사를 망라한 책들처럼 개설서나 통사가 아니다. 조선시대의 실상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 각 분야의 전공자들이 그 동안 축적돼 온 학계의 연구 성과를 압축 정리해 개인(가족), 사회, 국가, 세계의 창을 통해 조선시대를 바라본 것이다. 기존의 시각을 뛰어넘어 조선시대를 새롭게 보려는 필자들의 공통 인식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설명틀 아래 기존의 개설서나 통사가 담을 수 없는 소주제를 개발해 깊이 있게 서술한 이 책은 조선시대를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조선시대사 1─국가와 세계≫와 ≪조선시대사 2─인간과 사회≫의 구성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사 1─국가와 세계의 구성과 내용
‘조선시대사 1’에서는 ‘국가’와 ‘세계’라는 범주 아래 조선의 정치 체제와 신분 관계 및 조선의 세계 인식과 전쟁 등을 소주제로 살핀다.
[정치운영과 왕권의 추이]에서는 왕권의 위상 변동에 따른 조선 정치사를 개관한다. 정치는 권력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다. 초기는 고려 말 신흥사대부라는 새로운 사회세력이 등장하여 조선이라는 새 국가를 세우는 때부터 경국대전을 반포함으로써 그 체제 정립을 일단락 짓는 성종대까지, 중기는 성종대 이후 사림파라고 불리는 정치세력이 등장하여 사화를 거쳐 붕당정치라는 정치운영 형태를 만들어 유지하였던 현종대까지, 후기는 숙종이 즉위하면서 환국이 나타나 붕당정치의 틀이 무너지는 때부터 국왕이 정국 운영의 중심 주체로 활약하는 탕평정치가 형성되어 작동하던 정조대까지, 말기는 정치권력의 중심이 국왕으로부터 서울에 있는 유력한 소수의 가문으로 옮겨간 세도정치가 시작되는 순조대부터 정치권력이 국왕의 생부인 흥선대원군으로 옮겨가 행사되던 고종 10년 무렵까지가 될 것이다. 이 네 시기의 왕권의 위상 변동을 중심으로 정치운영의 내용이 어떻게 변해갔는가를 살펴 조선 정치사를 개관한다.
[교화와 형정]은 백성을 무엇으로 다스릴 것인가에 관한 조선의 형벌관을 정리했다.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채택한 조선왕조는 법과 형벌에 의한 법치法治보다 예와 교화에 의한 예치禮治를 더 중요시했다. 형벌을 쓰는 궁극적인 목표는 덕치를 온전히 베풀어 마침내 형벌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있었다. 이것이 덕치가 중심이고 형벌은 교화를 돕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덕주형보德主刑輔 형정관이다. 전근대 사회 형정刑政 운영의 특징은 신분에 따라 형률 적용에 차별을 두는 것이었다.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법률상 동등권은 신분제도가 폐지되는 근대 사회에 이르러 비로소 확립되었다. 근대 사회에 이르러야 법치가 예치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법치주의가 확립되는 것이다.
[농민의 의무, 국가의 책임]에서는 국가 재분배 관점에서 본 조선의 재정을 개관한다. 왕의 공적인 권력이 미치는 모든 영역에서 왕은 토지와 더불어 그곳에서 생을 영위하는 인민과 수확한 생산물을 지배한다. 이러한 지배에 기초해 왕은 백성에게 토지를 나누어주어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며, 백성은 그 은혜에 보답해 왕에게 노동력이나 생산물을 제공한다. 즉 왕권으로 상징되는 국가는 백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며, 백성은 당연한 도리로서 생산물 일부를 납부하고 국역의 의무를 져야 한다. 조선왕조의 국가 경제를 운영하기 위한 체제는 이러한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혈통의 굴레, 신분의 구속]은 조선시대 양반층의 등장과 신분구조의 변화를 살폈다. 조선왕조는 법전을 통해 신분을 정의하거나 신분제도를 규정하지 않아 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조선 초기 ‘4계층설’과 ‘양천제설’ 사이의 공박, 조선 중기 사족층에 대한 해석 문제, 조선 후기 ‘신분제 해체론’과‘ 신분제 강화론’ 사이의 팽팽한 긴장 등은 이러한 사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이론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 단일 왕조로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장기 지속한 조선왕조 신분제의 변화 양상을 개괄적으로 정리했다.
[교환과 시장 그리고 도시]에서는 조선 시장의 탄생과 발달을 정리한다. 전근대 조선 사회에서의 교화 형태는 호혜, 국가적 재분배, 시장경제의 세 가지로 구성된다. 전기에는 호혜와 국가적 재분배가 지배적 교환의 형태였지만, 임진왜란 이후 농업생산력이 향상되고, 농촌의 잉여가 시장에 반입되면서 농촌 시장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농촌 시장의 성장을 토대로 포구 시장과 도시 시장이 함께 성장했고, 청나라와 일본과의 국제교역도 활성화되었다. 조선 후기 농업에서의 상품생산의 진전, 전국적인 시장의 성장으로 교환의 형태도 이윤을 전제로 하는 시장교환이 지배적인 형태로 자리 잡아갔다.
[국제 관계와 전쟁]은 ‘끼인 나라’ 조선의 험난한 외교사를 말한다. 조선은 명·일본·여진 가운데 특정 국가와 외교 교섭을 벌이고 정책을 펼쳐나가는 과정에서 그 교섭의 방향과 정책이 여타 국가에 미칠지도 모르는 영향이나 파장도 동시에 고려해야 했다. 조선은 이 어려운 과제에 어떻게 대처해나갔을까? 14세기 후반 원명교체부터 17세기 중반 명청교체에 이르기까지 ‘끼여 있는 나라’ 조선이 주변 국가들과 맺었던 관계의 실상과 그 관계가 파탄남으로써 맞이했던 전쟁의 양상과 여파 등을 동아시아 삼국 전체의 관점을 염두에 두면서 개관한다.
[조선 사람이 그린 세계의 이미지]는 중화사상에서 넓은 세계까지 조선인들의 세계관을 개관한다. 누구나 그런 것처럼 조선 사람들도 가보지 않은 곳을 상상했다. 중국의 전통적인 아이디어에 따르면, 평평한 세계의 중심에는 중원 대륙이 있으며 그곳의 문화는 인류 문화의 정수라고 해야 한다. 조선 사람들도 그런 아이디어를 계승했으며, 자기 자신을 소중화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유럽 세력이 동아시아에 접근하면서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조선 사람들은 이 상황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많은 조선 사람들은 둘 사이의 ‘관계’에 집중했다. 조선 사람들이 ‘중화’를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중화사상과 넓은 세계를 어떻게 배치하며 세계의 이미지를 구성하려 했는지 개관한다.
[개방의 세계사적 흐름과 조선의 선택]에서는 쇄국과 개항을 통해 조선 말 세계와 조선의 관계를 살폈다. 명 건국 이후 동아시아에는 조공과 책봉을 매개로 한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성립되었다. 동아시아 각국은 중국을 중심으로 사대와 교린 관계로 연결되었다. 각국 사이에 공식적인 교섭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상호 교류는 활발하지 않았다. 이러한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동아시아 각국이 사회경제적으로 발달해 자유통교의 움직임이 활성화되면서 한계가 드러났다. 특히 대항해의 결과 유럽 국가들이 동아시아에 접근하면서 개방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되었다. 개방은 피할 수 없는 대세였지만 동아시아 각국의 집권층은 대외교섭을 통제하고자 했다. 조선은 19세기에 들면서 중국이나 일본과의 접촉도 최소화했다. 펼처보기
▣ 작가 소개
홍순민 :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주요 논저로는 ≪우리 궁궐 이야기≫, ≪서울풍광≫, ≪조선 전문가의 일생≫(공저), ≪조선후기 탕평정치의 재조명(상)≫(공저) 등이 있다.
한상권 : 덕성여자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주요 논저로는 [조선시대 소송과 외지부外知部], [조선시대의 교화와 행정], ≪조선 후기 사회와 소원제도≫ 등이 있다.
손병규 :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저로는 ≪호적ㅡ1606~1923 호구기록으로 본 조선의 문화사≫, ≪조선왕조 재정시스템의 재발견≫, ≪단성호적대장연구≫(공저), ≪새로운 질서를 향한 제국 질서의 해체≫(공저) 등이 있다.
김성우 : 대구한의대학교 호텔관광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주요 논저로는 ≪조선 중기 국가와 사족≫, ≪조선시대 경상도의 권력 중심 이동≫, ≪농암 유수원 연구≫(공저), ≪영남을 알면 한국사가 보인다≫(공저) 등이 있다.
고동환 : KAIST(한... 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주요 논저로는 ≪조선 후기 서울상업발달사연구≫, ≪조선시대 서울 도시사≫, ≪조선후기 시전 상업연구≫ 등이 있다.
한명기 : 명지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주요 논저로는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광해군≫,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 ≪역사평설 병자호란 1·2≫ 등이 있다.
배우성 :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조선과 중화≫, ≪독서와 지식의 풍경≫, ≪정조시대의 사상과 문화≫(공저), ≪정조와 정조시대≫(공저) 등이 있다.
노대환 : 동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주요 논저로는 ≪동도서기론 형성과정 연구≫, ≪문명≫, ≪조선의 아웃사이더≫, ≪고전소설 속 역사여행≫(공저)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정치운영과 왕권의 추이-왕권의 위상 변동에 따른 조선 정치사 개관
조선 초기: 체제 정립기 | 조선 중기: 사화와 붕당정치 | 조선 후기: 환국과 탕평정치 |
조선 말기: 세도정치
교화와 형정-백성을 무엇으로 다스릴 것인가
교화 중심의 통치체제 확립 | 형정이 중시되는 사회로의 변화 | 민인의 권리의식 향상
농민의 의무, 국가의 책임-국가 재분배 관점에서 본 재정
국가 경제 운영의 원리 | 조선 후기 국역체계의 정비 | 재정시스템의 현실화
혈통의 굴레, 신분의 구속-조선시대 양반층의 등장과 신분구조의 변화
임진왜란 직후의 경상도 함양 사회 | 국가적 평등을 지향한 사회 | 신분 변화의 이중주
교환과 시장 그리고 도시-조선 시장의 탄생과 발달
조선 전기 교환의 형태 | 조선 후기 시장의 발달 | 도시의 성장
국제 관계와 전쟁-‘끼인 나라’ 조선의 험난한 외교사
15~16세기 조명관계와 대명 인식 | 15~16세기 조일관계 | 15~16세기 조선과 여진의 관계 | 임진왜란과 명청교체의 서막 | 명청교체와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성
조선 사람이 그린 세계의 이미지-중화사상에서 넓은 세계까지
현실의 새로운 경계 | 화이사상과 중화세계관 | 서구식 세계지도와 세계 인식의 지평 | 서구식 세계지도와 조선의 세계관
개방의 세계사적 흐름과 조선의 선택-쇄국과 개항
17~18세기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변화 | 19세기 전반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와해와 조선 | 19세기 후반 조선의 문호개방 과정
소통하는 역사를 위하여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의 편찬 작업은 2002년부터 시작되었다. 이후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 편찬위원회’를 구성, 집필 원칙과 편찬 일정을 정하고 고대·고려·조선·근대·현대 등 각 시대별로 팀을 만들어 기획안을 마련하고 그에 맞는 필자를 선정해 집필에 들어갔다. 60명에 가까운 필자들이 참가해 공동 작업으로 10권의 책을 만들어내는 일은 지난한 과정이었다. 다양한 필자들의 의견을 조율하고 모으는 작업부터 완성된 원고들을 팀별로 수차례 검토하고 수정하는 과정에서 열띤 토론이 벌어지기도 했다.
이러한 과정은 지금 우리의 시대를 돌아보게도 한다. 과거 ‘베를린 장벽의 붕괴’가 상징하듯이 세계는 동구 사회주의 국가들의 개혁과 개방으로 냉전이 종식되면서 체제와 이념의 대립보다는 화해와 교류의 방향으로 나가며 21세기를 맞이했다. 한반도도 1998년 ‘현대 정주영회장의 소떼 방북’과 2000년 남북정상회담을 계기로 남과 북이 화해와 교류·협력의 방향으로 나아갔다.
그러나 21세기도 15년이 지난 지금, 세계는 다시 대립으로 치닫고 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분쟁, 미국과 알카에다 등 이슬람진영의 대립, 시리아 내전과 이슬람 국가의 등장 등 중동 내부의 갈등과 분쟁,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분쟁 등이 계속되고 있고, 동북아시아에서도 역사 갈등과 영토 분쟁이 치열하게 전개되고 있다. 이전과 차이가 있다면 이념 대립보다는 종교·문명 대립의 성격이 크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안타깝게도 한국 사회는 시대착오적인 이념과 지역 갈등이 여전한 가운데 신자유주의로 인한 경제적·사회적 양극화가 빠르게 진행되는 속에서 세대와 계층 갈등까지 심화되고 있다. 그리고 천박한 자본주의의 이윤 논리와 정치 사회적 부패의 사슬에 의해 일상생활의 안전까지도 위협받고 있다. 250명의 어린 학생들을 비롯해 304명이 죽은 ‘세월호 참사’는 이러한 한국 사회의 모순을 상징적으로 나타내주고 있는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인간에 대한 예의와 배려가 사라진 사회, 국가가 책임져야 할 안전과 복지도 국민 스스로 해결해야만 하는 사회, 정의는 실종하고 신뢰와 희망 대신 불신과 체념만이 가득 찬 사회에서 과연 역사학은 어떠한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인가? 이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는 한국 역사의 체계화와 소통에 기여하기를 기대한다.
역사는 ‘현재와 과거의 대화’라고 했다.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를 고찰하고 그를 바탕으로 미래를 전망하는 것이다. 역사가는 이를 이루기 위해 역사를 부단히 새로 써야 한다. 이러한 취지에서 기획된 한국역사연구회시대사총서는 새로운 시각에서 한국 역사를 고대부터 현대까지 시대별로 조망한다.
조선시대사, 허구와 가상의 역사가 아닌
실증과 사실의 역사를 위하여
최근 조선시대에 관한 교양서라고 할 수 있는 책들은 많이 출판되고 있다. 이와 함께 역사를 소재로 한 다큐멘터리 교양물, 사극史 등 영상물도 그 보조를 맞추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나타나게 된 데는 조선왕조실록 등과 같은 연대기 자료의 원문과 번역문을 비롯해 각종 자료들이 인터넷으로 제공되는 등 자료에 대한 접근이 용이해진 덕분이며, 일반인의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지는 것과 서로 영향을 주고받은 결과이기도 하다.
이러한 일반인의 관심과 교양에 대한 욕구가 커지고 그에 대응하는 여러 형태의 교양물이나 문화상품, 영상물이 다량 산출되는 것은 우선은 반가운 현상이지만 그 이면에는 우려되는 바도 없지 않다. 역사 서술은 사실을 재구성하는 실증의 기반 위에 자료와 사실에 대한 해석이 결합해 이루어진다. 실증 작업을 수행하지 않은 이야기는 아무리 재미가 있다 해도 역사라고 할 수 없고, 정확한 사료 비판과 해석이 뒷받침되지 않은 서술은 역사의 범주에 포함시킬 수 없다. 그럼에도 지금 우리 주변에는 역사적 사실과 진실에 어긋나는 허구와 가상이 역사로 둔갑해 유포되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역사가 아닌 것을 역사로 착각하는 것은 그 후폐가 크지 않을 수 없다.
학계 각 분야의 권위자 16인이,
개인-사회-국가-세계의 틀로 바라본 조선시대
이러한 연구 영역 내외의 상황은 조선시대를 연구하는 학자들에게 역사란 무엇인가, 조선시대를 어떻게 이해하게 서술해야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는 의무감을 갖게 했다. ≪조선시대사 1─국가와 세계≫(홍순민·한상권·손병규·김성우·고동환·한명기·배우성·노대환)와 ≪조선시대사 2─인간과 사회≫(김훈식·고영진·정진영·이해준·김건태·정연식·김 호·한희숙) 집필한 한국역사연구회 중세2분과에 소속된 조선시대를 전공하는 연구자들은, 조선시대를 새롭게 그려내려면 그 목차를 어떻게 구성할 것인가 하는 고민 끝에 조선시대를 개인(가족)-사회-국가-세계의 틀을 중심으로 살펴보기로 하고 각각의 범주에 맞는 16개의 소주제를 선정해서 두 권의 책에 담았다.
예를 들면 소주제 중 [성리학적 인간의 형성]과 [가족에서 문중으로] 등은 개인(가족)의 차원에서, [학문적 네트워크의 형성]과 [재지사족, 향촌의 지배자가 되다] 등은 사회의 차원에서, [정치운영과 왕권의 추이]와 [교화와 형정] 등은 국가의 차원에서, [국제 관계와 전쟁]과 [조선 사람이 그린 세계의 이미지] 등은 세계의 차원에서 조선시대를 바라본 것이다. 언 듯 보면 체계적이지 못하다는 느낌이 들 수 있지만 독자가 책 전체를 다 읽고 나면 하나의 ‘조선시대상’이 떠오르도록 하는 방식을 취했다. 마치 서양 역사학계의 고전인 로버트 단턴의 ≪고양이 대학살≫처럼.
따라서 이 책은 기존의 시대사를 망라한 책들처럼 개설서나 통사가 아니다. 조선시대의 실상을 좀 더 깊이 있게 이해하기 위해 각 분야의 전공자들이 그 동안 축적돼 온 학계의 연구 성과를 압축 정리해 개인(가족), 사회, 국가, 세계의 창을 통해 조선시대를 바라본 것이다. 기존의 시각을 뛰어넘어 조선시대를 새롭게 보려는 필자들의 공통 인식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새로운 설명틀 아래 기존의 개설서나 통사가 담을 수 없는 소주제를 개발해 깊이 있게 서술한 이 책은 조선시대를 이해하는 데 좋은 길잡이가 될 것이다. ≪조선시대사 1─국가와 세계≫와 ≪조선시대사 2─인간과 사회≫의 구성과 내용은 다음과 같다.
조선시대사 1─국가와 세계의 구성과 내용
‘조선시대사 1’에서는 ‘국가’와 ‘세계’라는 범주 아래 조선의 정치 체제와 신분 관계 및 조선의 세계 인식과 전쟁 등을 소주제로 살핀다.
[정치운영과 왕권의 추이]에서는 왕권의 위상 변동에 따른 조선 정치사를 개관한다. 정치는 권력을 매개로 하여 이루어진다. 초기는 고려 말 신흥사대부라는 새로운 사회세력이 등장하여 조선이라는 새 국가를 세우는 때부터 경국대전을 반포함으로써 그 체제 정립을 일단락 짓는 성종대까지, 중기는 성종대 이후 사림파라고 불리는 정치세력이 등장하여 사화를 거쳐 붕당정치라는 정치운영 형태를 만들어 유지하였던 현종대까지, 후기는 숙종이 즉위하면서 환국이 나타나 붕당정치의 틀이 무너지는 때부터 국왕이 정국 운영의 중심 주체로 활약하는 탕평정치가 형성되어 작동하던 정조대까지, 말기는 정치권력의 중심이 국왕으로부터 서울에 있는 유력한 소수의 가문으로 옮겨간 세도정치가 시작되는 순조대부터 정치권력이 국왕의 생부인 흥선대원군으로 옮겨가 행사되던 고종 10년 무렵까지가 될 것이다. 이 네 시기의 왕권의 위상 변동을 중심으로 정치운영의 내용이 어떻게 변해갔는가를 살펴 조선 정치사를 개관한다.
[교화와 형정]은 백성을 무엇으로 다스릴 것인가에 관한 조선의 형벌관을 정리했다. 성리학을 국가 이념으로 채택한 조선왕조는 법과 형벌에 의한 법치法治보다 예와 교화에 의한 예치禮治를 더 중요시했다. 형벌을 쓰는 궁극적인 목표는 덕치를 온전히 베풀어 마침내 형벌이 필요 없는 사회를 만드는 데 있었다. 이것이 덕치가 중심이고 형벌은 교화를 돕는 도구에 불과하다는 덕주형보德主刑輔 형정관이다. 전근대 사회 형정刑政 운영의 특징은 신분에 따라 형률 적용에 차별을 두는 것이었다. 만인이 법 앞에 평등하다는 법률상 동등권은 신분제도가 폐지되는 근대 사회에 이르러 비로소 확립되었다. 근대 사회에 이르러야 법치가 예치로부터 완전히 독립해 법치주의가 확립되는 것이다.
[농민의 의무, 국가의 책임]에서는 국가 재분배 관점에서 본 조선의 재정을 개관한다. 왕의 공적인 권력이 미치는 모든 영역에서 왕은 토지와 더불어 그곳에서 생을 영위하는 인민과 수확한 생산물을 지배한다. 이러한 지배에 기초해 왕은 백성에게 토지를 나누어주어 생계를 유지하도록 하며, 백성은 그 은혜에 보답해 왕에게 노동력이나 생산물을 제공한다. 즉 왕권으로 상징되는 국가는 백성의 생계를 책임져야 하며, 백성은 당연한 도리로서 생산물 일부를 납부하고 국역의 의무를 져야 한다. 조선왕조의 국가 경제를 운영하기 위한 체제는 이러한 원칙에 기초하고 있다.
[혈통의 굴레, 신분의 구속]은 조선시대 양반층의 등장과 신분구조의 변화를 살폈다. 조선왕조는 법전을 통해 신분을 정의하거나 신분제도를 규정하지 않아 이를 일목요연하게 정리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조선 초기 ‘4계층설’과 ‘양천제설’ 사이의 공박, 조선 중기 사족층에 대한 해석 문제, 조선 후기 ‘신분제 해체론’과‘ 신분제 강화론’ 사이의 팽팽한 긴장 등은 이러한 사정을 여실히 보여준다. 여기에서는 이러한 이론들의 존재를 인정하는 바탕 위에 단일 왕조로서는 유례를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장기 지속한 조선왕조 신분제의 변화 양상을 개괄적으로 정리했다.
[교환과 시장 그리고 도시]에서는 조선 시장의 탄생과 발달을 정리한다. 전근대 조선 사회에서의 교화 형태는 호혜, 국가적 재분배, 시장경제의 세 가지로 구성된다. 전기에는 호혜와 국가적 재분배가 지배적 교환의 형태였지만, 임진왜란 이후 농업생산력이 향상되고, 농촌의 잉여가 시장에 반입되면서 농촌 시장이 성장하기 시작했다. 농촌 시장의 성장을 토대로 포구 시장과 도시 시장이 함께 성장했고, 청나라와 일본과의 국제교역도 활성화되었다. 조선 후기 농업에서의 상품생산의 진전, 전국적인 시장의 성장으로 교환의 형태도 이윤을 전제로 하는 시장교환이 지배적인 형태로 자리 잡아갔다.
[국제 관계와 전쟁]은 ‘끼인 나라’ 조선의 험난한 외교사를 말한다. 조선은 명·일본·여진 가운데 특정 국가와 외교 교섭을 벌이고 정책을 펼쳐나가는 과정에서 그 교섭의 방향과 정책이 여타 국가에 미칠지도 모르는 영향이나 파장도 동시에 고려해야 했다. 조선은 이 어려운 과제에 어떻게 대처해나갔을까? 14세기 후반 원명교체부터 17세기 중반 명청교체에 이르기까지 ‘끼여 있는 나라’ 조선이 주변 국가들과 맺었던 관계의 실상과 그 관계가 파탄남으로써 맞이했던 전쟁의 양상과 여파 등을 동아시아 삼국 전체의 관점을 염두에 두면서 개관한다.
[조선 사람이 그린 세계의 이미지]는 중화사상에서 넓은 세계까지 조선인들의 세계관을 개관한다. 누구나 그런 것처럼 조선 사람들도 가보지 않은 곳을 상상했다. 중국의 전통적인 아이디어에 따르면, 평평한 세계의 중심에는 중원 대륙이 있으며 그곳의 문화는 인류 문화의 정수라고 해야 한다. 조선 사람들도 그런 아이디어를 계승했으며, 자기 자신을 소중화라고 여겨왔다. 그러나 유럽 세력이 동아시아에 접근하면서 새로운 변수가 생겼다. 조선 사람들은 이 상황에 어떻게 대응했을까. 많은 조선 사람들은 둘 사이의 ‘관계’에 집중했다. 조선 사람들이 ‘중화’를 어떻게 생각해왔는지, 중화사상과 넓은 세계를 어떻게 배치하며 세계의 이미지를 구성하려 했는지 개관한다.
[개방의 세계사적 흐름과 조선의 선택]에서는 쇄국과 개항을 통해 조선 말 세계와 조선의 관계를 살폈다. 명 건국 이후 동아시아에는 조공과 책봉을 매개로 한 중국 중심의 국제질서가 성립되었다. 동아시아 각국은 중국을 중심으로 사대와 교린 관계로 연결되었다. 각국 사이에 공식적인 교섭은 지속적으로 이루어졌지만 상호 교류는 활발하지 않았다. 이러한 동아시아 국제질서는 동아시아 각국이 사회경제적으로 발달해 자유통교의 움직임이 활성화되면서 한계가 드러났다. 특히 대항해의 결과 유럽 국가들이 동아시아에 접근하면서 개방을 둘러싼 갈등이 본격화되었다. 개방은 피할 수 없는 대세였지만 동아시아 각국의 집권층은 대외교섭을 통제하고자 했다. 조선은 19세기에 들면서 중국이나 일본과의 접촉도 최소화했다. 펼처보기
▣ 작가 소개
홍순민 : 명지대학교 기록정보과학전문대학원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주요 논저로는 ≪우리 궁궐 이야기≫, ≪서울풍광≫, ≪조선 전문가의 일생≫(공저), ≪조선후기 탕평정치의 재조명(상)≫(공저) 등이 있다.
한상권 : 덕성여자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주요 논저로는 [조선시대 소송과 외지부外知部], [조선시대의 교화와 행정], ≪조선 후기 사회와 소원제도≫ 등이 있다.
손병규 :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교수. 성균관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도쿄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주요 논저로는 ≪호적ㅡ1606~1923 호구기록으로 본 조선의 문화사≫, ≪조선왕조 재정시스템의 재발견≫, ≪단성호적대장연구≫(공저), ≪새로운 질서를 향한 제국 질서의 해체≫(공저) 등이 있다.
김성우 : 대구한의대학교 호텔관광학과 교수. 서강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주요 논저로는 ≪조선 중기 국가와 사족≫, ≪조선시대 경상도의 권력 중심 이동≫, ≪농암 유수원 연구≫(공저), ≪영남을 알면 한국사가 보인다≫(공저) 등이 있다.
고동환 : KAIST(한... 국과학기술원) 인문사회과학부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주요 논저로는 ≪조선 후기 서울상업발달사연구≫, ≪조선시대 서울 도시사≫, ≪조선후기 시전 상업연구≫ 등이 있다.
한명기 : 명지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주요 논저로는 ≪임진왜란과 한중관계≫, ≪광해군≫, ≪정묘·병자호란과 동아시아≫, ≪역사평설 병자호란 1·2≫ 등이 있다.
배우성 : 서울시립대학교 국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조선과 중화≫, ≪독서와 지식의 풍경≫, ≪정조시대의 사상과 문화≫(공저), ≪정조와 정조시대≫(공저) 등이 있다.
노대환 : 동국대학교 사학과 교수.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주요 논저로는 ≪동도서기론 형성과정 연구≫, ≪문명≫, ≪조선의 아웃사이더≫, ≪고전소설 속 역사여행≫(공저)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정치운영과 왕권의 추이-왕권의 위상 변동에 따른 조선 정치사 개관
조선 초기: 체제 정립기 | 조선 중기: 사화와 붕당정치 | 조선 후기: 환국과 탕평정치 |
조선 말기: 세도정치
교화와 형정-백성을 무엇으로 다스릴 것인가
교화 중심의 통치체제 확립 | 형정이 중시되는 사회로의 변화 | 민인의 권리의식 향상
농민의 의무, 국가의 책임-국가 재분배 관점에서 본 재정
국가 경제 운영의 원리 | 조선 후기 국역체계의 정비 | 재정시스템의 현실화
혈통의 굴레, 신분의 구속-조선시대 양반층의 등장과 신분구조의 변화
임진왜란 직후의 경상도 함양 사회 | 국가적 평등을 지향한 사회 | 신분 변화의 이중주
교환과 시장 그리고 도시-조선 시장의 탄생과 발달
조선 전기 교환의 형태 | 조선 후기 시장의 발달 | 도시의 성장
국제 관계와 전쟁-‘끼인 나라’ 조선의 험난한 외교사
15~16세기 조명관계와 대명 인식 | 15~16세기 조일관계 | 15~16세기 조선과 여진의 관계 | 임진왜란과 명청교체의 서막 | 명청교체와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성
조선 사람이 그린 세계의 이미지-중화사상에서 넓은 세계까지
현실의 새로운 경계 | 화이사상과 중화세계관 | 서구식 세계지도와 세계 인식의 지평 | 서구식 세계지도와 조선의 세계관
개방의 세계사적 흐름과 조선의 선택-쇄국과 개항
17~18세기 동아시아 국제질서와 변화 | 19세기 전반 동아시아 국제질서의 와해와 조선 | 19세기 후반 조선의 문호개방 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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