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근현대의 차 문화’는 조선 말기부터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에 이르는, 약 100년간의 기록을 다룬다. 한국 차 문화 천년 속에서 이 100년 남짓한 시간은 짧은 시간이지만, 그야말로 역사적·문화적 격동기였다. 혼란한 시대상만큼이나 그 기록들도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한문과 국한문, 국문과 일문(日文)이 혼재되어 있고, 전통 한문 양식 외에 여태까지 볼 수 없던 시조와 민요, 학술서와 보고서, 현대시 등 여러 형식이 등장한다. 특히 이 시기에는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차 문화를 연구·기록한 자료들이 등장하는데, 내용의 면면들이 한국 차 문화를 이해하는 데 흥미로운 자료가 된다.
이 책은 ‘한국의 차 문화 천년’ 시리즈의 여섯 번째 권으로, 시기적으로는 가장 마지막에 해당한다. 이제 불교문화에서의 차 문화를 다룬 제7권 ‘승려의 차 문화’만을 남겨 놓고 있다. ‘한국의 차 문화 천년’은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 근대 한국에 이르기까지 천년을 이어 내려온 우리나라 고유의 차 문화에 관한 문헌 기록 자료를 집대성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차시(茶詩)를 포함한 개인 문집의 자료,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삼국사기』 등의 관찬 사료(官撰史料)와 『동문선』, 『임원경제지』, 『성호사설』 등의 별집류(別集類)를 비롯하여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은 자료까지 차에 관한 모든 문헌 자료를 망라하였다.
격동의 100년, 다양한 언어와 계층의 차 문화 기록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7세기 중반 신라 선덕여왕 때 이미 차를 마셨다. 흥덕왕 3년인 828년에는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金大廉)이 차 종자를 가지고 돌아와 지리산에 심어 차나무를 재배한 기록이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차 문화는 신라시대부터 고려,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수많은 문인재사(文人才士)들이 차와 관련한, 차와 함께한 시와 산문의 글을 남겼고, 조선 후기에 이르면 학문적 관점에서 차나무의 재배법 등을 다룬 책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시기는 이전 시기와는 다른 독특한 점이 눈에 띈다. 우선 이 시기는 역사적, 문화적 격변기답게 다양한 형식의 차 문화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한문 기록 외에 국문과 국한문 혼용, 일문 등 언어의 다양성은 물론이고, 학술 연구서, 답사 보고서, 민요, 현대시 등 다양한 형태의 기록들이 등장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이전 시기가 고위층의 차 향유 문화를 다룬 글들이 주로 소개되었다면, 이 시기는 차나무를 재배하고 차를 만드는 서민의 목소리를 담은 기록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차가 처음 한반도에 들어온 7세기 중반부터 조선 후기까지의 차 기록들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한 가지 원칙은, 차 문화는 서민의 향유 문화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점은 이 책의 수록 시기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차 문화는 대중화된 문화는 아니었다. 차 문화를 향유한 것은 아니지만, 이 시기 글에는 차 농사를 짓는 서민들이 부른 민요가 있다. 그리고 일본인이 차 재배 농가를 찾아가 재배법을 인터뷰한 글에 서민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비록 일본인의 글이라도 당시의 한국 차 문화를 보여주는 기록들은 빠짐없이 훑었고 그중 중요한 자료를 골라 이 책에 수록했다.
- 근대 농학(農學)의 관점에서 차 문화를 정리하다
차 문화 관련 기록으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한시(漢詩)이다. 이 책에서는 대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엽까지 김영수(金永壽), 한장석(韓章錫), 김윤식(金允植), 유인석(柳麟錫), 한용운(韓龍雲), 오효원(吳孝媛) 등의 차시(茶詩)를 수록했다. 눈에 띄는 기록은 근대 농학적 관점에서 차의 재배와 채취, 제조법에 관해 저술한 것이다. 안종수(安宗洙)의 『농정신편』(農政新編)과 장지연(張志淵)의 『농학신서』(農學新書) 등이 그것이다.
『농정신편』은 실학자 안종수(安宗洙, 1859~1896)가 1885년에 출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농업서적이다. 안종수는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가서 일본의 앞선 농업기술을 견문한 뒤 일본에 출간된 여러 가지 농업 서적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후 새로운 농서를 5개월간에 걸쳐 집필했는데, 이 책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20여 장의 목판 삽화가 수록되어 있다. 안종수는 이 책에서 차의 종류와 재배법, 차 제조법, 찻잎의 특징과 채취법 등을 그림과 함께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구한말의 언론인으로서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논설로 유명한 장지연(1864~1921)은 『농학신서』에서 차나무의 성상, 품종, 풍토, 충해에 대해 국한문혼용체로 기록을 남겼고, 『만국사물기원역사』(萬國事物紀元歷史)라는 백과사전을 펴내고 이 책에 한국, 일본에서 차가 시작된 기원을 역시 국한문혼용체로 간략하게 서술했다.
- 근대 문인, 학자들의 차 관련 기록들
이 시기는 이능화(李能和), 문일평(文一平), 최남선(崔南善), 고유섭(高裕燮) 등 주로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한국 근대 문인, 학자들의 한국 차에 관한 저술이 눈에 띈다. 그중에서 최남선이 의재 허백련(許百鍊) 화백에게 보낸 글은 다음과 같다.
의재 화백이 십수 년 동안 거처를 무등산 증심곡에 정하고 차밭을 가꾸는 일에 힘써 몇 해를 고심한 끝에 그 성과가 차차 드러나고, 금년에 비로소 그곳에서 재배한 햇차 잎을 ‘춘설’이라 이름 하여 세상에 소개하니, 아름다운 풍미가 고려 이래 천 년 동안 끊어지려 했던 다풍(茶風)을 거의 부흥시키기에 충분한지라……
최남선의 글에는 허백련 화백이 무등산의 증심사 계곡에 차밭을 일구어 마침내 ‘춘설차’를 세상에 선보인 사실을 전하고 있다. 이어서 이 차가 조선 후기의 초의 선사와 김정희를 이어 일천년 한국 차의 전통을 계승할 것이라고 축원하였다. 이 밖에도 지규식(池圭植)의 일기, 변영만(卞榮晩)의 편지, 이병기(李秉岐)의 시조, 박종화(朴鍾和)의 시, 이은상(李殷相)의 시조, 이규태(李奎泰)의 수필 등이 있다.
- 일본인에 의한 한국 차 문화 연구와 산업화 시도
일제강점기는 일본인들에 의해 한국 차 문화에 대한 연구, 차의 산지(産地)에 대한 현지 조사가 이루어진 시기였다. 한국에 비해 차 문화가 발달한 일본으로서는 당연한 관심이었고, 품종이 우수한 한국 차를 연구해 산업화를 시도했다. 대표적 인물로 아유카이 후사노신(鮎具房之進), 마쓰다 코(松田甲), 모로오카 다모쓰(諸岡存), 이에이리 가즈오(家入一雄), 모리 다메조(森爲三), 미시나 쇼에이(三品彰英) 등을 들 수 있다. 이중에서 모로오카와 이에이리의 공저 『朝鮮の茶と禪』은 현장 답사를 통해 당시 한국 차의 재배 현황과 상품화에 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제공해주고 있다. 조선에서 차 마시는 풍습이 쇠잔해진 원인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근래 조선에서는 차 마시는 풍습이 갑자기 쇠퇴하여 차는 거의 잊힌 듯한 느낌이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로 주의할 점은 조선차가 거의 사원의 차라는 점이다. 그래서 불교, 특히 선(禪)을 떠나서는 차를 논할 수가 없으며, 오늘날 조선의 남쪽 지방에서 발견되는 자생 차는 어느 것이나 사원 부근에 한정되어 있다. ……다음은 음료수와의 관계이다. 좋은 물이 귀한 중국에서는 차가 국민 보건의 측면에서 절대적인 필수품이었지만, 수질이 좋은 조선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이를테면 대동강 물도 평양 근방의 상류는 특히 깨끗해서 수돗물보다 훨씬 좋다. 세균 등이 적을 뿐만 아니라 찻물에 알맞고 빨래에는 더욱 알맞다. 조선인이 흰옷을 즐겨 입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
일제강점기에 전남의 무등다원을 운영한 일본인 오자키 이치조(尾崎市三)의 말에 따르면, 한국차가 일본차보다 품종이 좋기 때문에 업자의 입장에서 찻잎이 길쭉하고 큰 한국 품종을 선호한다고 한다.
……조선산 차와 일본산 차는 찻잎의 형태가 달라 다른 품종이라고들 합니다만, 차는 불교를 통해 건너온 것이니 조선이 본가이지요. 예전에 일본의 차는 둥그스름하였습니다만, 오늘날에는 조선의 차와 마찬가지로 길쭉한 것을 재배하게 되었습니다. 차나무는 매년 잎을 따는 것이므로, 잎이 둥글어지거나 작아지게 되면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 업자의 입장에서는 길쭉하면서 큰 것이 좋지요.
“차를 찌는 도구는 질그릇인데 보통 조선의 가정에 흔히 있는 것이다. 구멍 뚫린 엽전을 조금 크게 한 것과 같이 완성된 차가 이른바 청태전이다. 막 완성된 것은 약간 푸른 빛깔을 띠고 있다고 한다. ……이 부근의 노인들은 평소에 마시지만 어린이는 배가 부르면서 기분이 나쁠 때 약용으로 마신다고 한다.”―모로오카 다모쓰·이에이리 가즈오, 「보림사 부근의 차」 중에서
- 한국 남부 지방에서 구전된 차 민요
이 책에서 중점을 두어 수록한 내용 가운데 하나는 한국 남부 지방에서 구전되던 차 민요들이다. 민요를 채록한 장소들을 보면, 경남의 양산군, 하동군, 밀양군, 김해시 다전동, 부산시 동래구, 전남의 화순군, 강진군 월암면, 고흥군, 구례군 등이다. 아래의 민요는 1957년에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에서 채록한 것이다.
동지섣달 긴긴밤에
작설없어 못살겠네
삼사월의 긴긴해에
작설따는 그재미는
차밭꼴이 제일이네
얼씨구나 좋을씨구
지아지아 좋을씨구
동래구 금강공원 차밭골에는 야생 차나무가 곳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 일본인이 가꾸었다고 한다. 이들 민요는 당시 차를 경작하는 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채록 시기는 한국전쟁 이후지만, 민요의 특징을 감안하여 이 책에 수록하였다.
한국의 차 문화 천년(전7권)
1. 조선 후기의 차 문화 - 시
2. 조선 후기의 차 문화 - 산문
3. 삼국시대·고려의 차 문화
4. 조선 초기의 차 문화
5. 조선 중기의 차 문화
6. 근현대의 차 문화
7. 승려의 차 문화(근간)
▣ 작가 소개
역자 : 송재소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역자 : 조창록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수석연구원
역자 : 이규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근현대의 차 문화’는 조선 말기부터 대한제국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쳐 한국전쟁에 이르는, 약 100년간의 기록을 다룬다. 한국 차 문화 천년 속에서 이 100년 남짓한 시간은 짧은 시간이지만, 그야말로 역사적·문화적 격동기였다. 혼란한 시대상만큼이나 그 기록들도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는데, 한문과 국한문, 국문과 일문(日文)이 혼재되어 있고, 전통 한문 양식 외에 여태까지 볼 수 없던 시조와 민요, 학술서와 보고서, 현대시 등 여러 형식이 등장한다. 특히 이 시기에는 일본인들이 한반도의 차 문화를 연구·기록한 자료들이 등장하는데, 내용의 면면들이 한국 차 문화를 이해하는 데 흥미로운 자료가 된다.
이 책은 ‘한국의 차 문화 천년’ 시리즈의 여섯 번째 권으로, 시기적으로는 가장 마지막에 해당한다. 이제 불교문화에서의 차 문화를 다룬 제7권 ‘승려의 차 문화’만을 남겨 놓고 있다. ‘한국의 차 문화 천년’은 삼국시대부터 고려, 조선, 근대 한국에 이르기까지 천년을 이어 내려온 우리나라 고유의 차 문화에 관한 문헌 기록 자료를 집대성하는 데 목표를 두고 있다. 차시(茶詩)를 포함한 개인 문집의 자료, 『조선왕조실록』, 『고려사』, 『삼국사기』 등의 관찬 사료(官撰史料)와 『동문선』, 『임원경제지』, 『성호사설』 등의 별집류(別集類)를 비롯하여 아직까지 발굴되지 않은 자료까지 차에 관한 모든 문헌 자료를 망라하였다.
격동의 100년, 다양한 언어와 계층의 차 문화 기록들
『삼국사기』의 기록에 의하면, 우리나라는 7세기 중반 신라 선덕여왕 때 이미 차를 마셨다. 흥덕왕 3년인 828년에는 중국에 사신으로 갔던 김대렴(金大廉)이 차 종자를 가지고 돌아와 지리산에 심어 차나무를 재배한 기록이 있다. 이렇게 우리나라의 차 문화는 신라시대부터 고려, 조선을 거쳐 현대에 이르기까지 오랜 시간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수많은 문인재사(文人才士)들이 차와 관련한, 차와 함께한 시와 산문의 글을 남겼고, 조선 후기에 이르면 학문적 관점에서 차나무의 재배법 등을 다룬 책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 책에서 다루는 시기는 이전 시기와는 다른 독특한 점이 눈에 띈다. 우선 이 시기는 역사적, 문화적 격변기답게 다양한 형식의 차 문화 기록을 살펴볼 수 있다. 한문 기록 외에 국문과 국한문 혼용, 일문 등 언어의 다양성은 물론이고, 학술 연구서, 답사 보고서, 민요, 현대시 등 다양한 형태의 기록들이 등장한다.
또 하나의 특징은 이전 시기가 고위층의 차 향유 문화를 다룬 글들이 주로 소개되었다면, 이 시기는 차나무를 재배하고 차를 만드는 서민의 목소리를 담은 기록이 등장한다는 점이다. 차가 처음 한반도에 들어온 7세기 중반부터 조선 후기까지의 차 기록들에 동일하게 적용되는 한 가지 원칙은, 차 문화는 서민의 향유 문화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이 점은 이 책의 수록 시기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여전히 차 문화는 대중화된 문화는 아니었다. 차 문화를 향유한 것은 아니지만, 이 시기 글에는 차 농사를 짓는 서민들이 부른 민요가 있다. 그리고 일본인이 차 재배 농가를 찾아가 재배법을 인터뷰한 글에 서민들의 목소리가 담겨 있다. 비록 일본인의 글이라도 당시의 한국 차 문화를 보여주는 기록들은 빠짐없이 훑었고 그중 중요한 자료를 골라 이 책에 수록했다.
- 근대 농학(農學)의 관점에서 차 문화를 정리하다
차 문화 관련 기록으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것은 역시 한시(漢詩)이다. 이 책에서는 대개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엽까지 김영수(金永壽), 한장석(韓章錫), 김윤식(金允植), 유인석(柳麟錫), 한용운(韓龍雲), 오효원(吳孝媛) 등의 차시(茶詩)를 수록했다. 눈에 띄는 기록은 근대 농학적 관점에서 차의 재배와 채취, 제조법에 관해 저술한 것이다. 안종수(安宗洙)의 『농정신편』(農政新編)과 장지연(張志淵)의 『농학신서』(農學新書) 등이 그것이다.
『농정신편』은 실학자 안종수(安宗洙, 1859~1896)가 1885년에 출간한 우리나라 최초의 서구식 농업서적이다. 안종수는 신사유람단의 일원으로 일본에 가서 일본의 앞선 농업기술을 견문한 뒤 일본에 출간된 여러 가지 농업 서적을 가지고 돌아왔다. 이후 새로운 농서를 5개월간에 걸쳐 집필했는데, 이 책에는 저자가 직접 그린 20여 장의 목판 삽화가 수록되어 있다. 안종수는 이 책에서 차의 종류와 재배법, 차 제조법, 찻잎의 특징과 채취법 등을 그림과 함께 자세히 소개하고 있다.
구한말의 언론인으로서 「시일야방성대곡」이라는 논설로 유명한 장지연(1864~1921)은 『농학신서』에서 차나무의 성상, 품종, 풍토, 충해에 대해 국한문혼용체로 기록을 남겼고, 『만국사물기원역사』(萬國事物紀元歷史)라는 백과사전을 펴내고 이 책에 한국, 일본에서 차가 시작된 기원을 역시 국한문혼용체로 간략하게 서술했다.
- 근대 문인, 학자들의 차 관련 기록들
이 시기는 이능화(李能和), 문일평(文一平), 최남선(崔南善), 고유섭(高裕燮) 등 주로 일제강점기에 활동한 한국 근대 문인, 학자들의 한국 차에 관한 저술이 눈에 띈다. 그중에서 최남선이 의재 허백련(許百鍊) 화백에게 보낸 글은 다음과 같다.
의재 화백이 십수 년 동안 거처를 무등산 증심곡에 정하고 차밭을 가꾸는 일에 힘써 몇 해를 고심한 끝에 그 성과가 차차 드러나고, 금년에 비로소 그곳에서 재배한 햇차 잎을 ‘춘설’이라 이름 하여 세상에 소개하니, 아름다운 풍미가 고려 이래 천 년 동안 끊어지려 했던 다풍(茶風)을 거의 부흥시키기에 충분한지라……
최남선의 글에는 허백련 화백이 무등산의 증심사 계곡에 차밭을 일구어 마침내 ‘춘설차’를 세상에 선보인 사실을 전하고 있다. 이어서 이 차가 조선 후기의 초의 선사와 김정희를 이어 일천년 한국 차의 전통을 계승할 것이라고 축원하였다. 이 밖에도 지규식(池圭植)의 일기, 변영만(卞榮晩)의 편지, 이병기(李秉岐)의 시조, 박종화(朴鍾和)의 시, 이은상(李殷相)의 시조, 이규태(李奎泰)의 수필 등이 있다.
- 일본인에 의한 한국 차 문화 연구와 산업화 시도
일제강점기는 일본인들에 의해 한국 차 문화에 대한 연구, 차의 산지(産地)에 대한 현지 조사가 이루어진 시기였다. 한국에 비해 차 문화가 발달한 일본으로서는 당연한 관심이었고, 품종이 우수한 한국 차를 연구해 산업화를 시도했다. 대표적 인물로 아유카이 후사노신(鮎具房之進), 마쓰다 코(松田甲), 모로오카 다모쓰(諸岡存), 이에이리 가즈오(家入一雄), 모리 다메조(森爲三), 미시나 쇼에이(三品彰英) 등을 들 수 있다. 이중에서 모로오카와 이에이리의 공저 『朝鮮の茶と禪』은 현장 답사를 통해 당시 한국 차의 재배 현황과 상품화에 관한 정보를 가장 많이 제공해주고 있다. 조선에서 차 마시는 풍습이 쇠잔해진 원인을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근래 조선에서는 차 마시는 풍습이 갑자기 쇠퇴하여 차는 거의 잊힌 듯한 느낌이 있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다. 우선 첫 번째로 주의할 점은 조선차가 거의 사원의 차라는 점이다. 그래서 불교, 특히 선(禪)을 떠나서는 차를 논할 수가 없으며, 오늘날 조선의 남쪽 지방에서 발견되는 자생 차는 어느 것이나 사원 부근에 한정되어 있다. ……다음은 음료수와의 관계이다. 좋은 물이 귀한 중국에서는 차가 국민 보건의 측면에서 절대적인 필수품이었지만, 수질이 좋은 조선에서는 사정이 달랐다. 이를테면 대동강 물도 평양 근방의 상류는 특히 깨끗해서 수돗물보다 훨씬 좋다. 세균 등이 적을 뿐만 아니라 찻물에 알맞고 빨래에는 더욱 알맞다. 조선인이 흰옷을 즐겨 입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한다. ……
일제강점기에 전남의 무등다원을 운영한 일본인 오자키 이치조(尾崎市三)의 말에 따르면, 한국차가 일본차보다 품종이 좋기 때문에 업자의 입장에서 찻잎이 길쭉하고 큰 한국 품종을 선호한다고 한다.
……조선산 차와 일본산 차는 찻잎의 형태가 달라 다른 품종이라고들 합니다만, 차는 불교를 통해 건너온 것이니 조선이 본가이지요. 예전에 일본의 차는 둥그스름하였습니다만, 오늘날에는 조선의 차와 마찬가지로 길쭉한 것을 재배하게 되었습니다. 차나무는 매년 잎을 따는 것이므로, 잎이 둥글어지거나 작아지게 되면 좋지 않습니다. 그러니 업자의 입장에서는 길쭉하면서 큰 것이 좋지요.
“차를 찌는 도구는 질그릇인데 보통 조선의 가정에 흔히 있는 것이다. 구멍 뚫린 엽전을 조금 크게 한 것과 같이 완성된 차가 이른바 청태전이다. 막 완성된 것은 약간 푸른 빛깔을 띠고 있다고 한다. ……이 부근의 노인들은 평소에 마시지만 어린이는 배가 부르면서 기분이 나쁠 때 약용으로 마신다고 한다.”―모로오카 다모쓰·이에이리 가즈오, 「보림사 부근의 차」 중에서
- 한국 남부 지방에서 구전된 차 민요
이 책에서 중점을 두어 수록한 내용 가운데 하나는 한국 남부 지방에서 구전되던 차 민요들이다. 민요를 채록한 장소들을 보면, 경남의 양산군, 하동군, 밀양군, 김해시 다전동, 부산시 동래구, 전남의 화순군, 강진군 월암면, 고흥군, 구례군 등이다. 아래의 민요는 1957년에 부산시 동래구 온천동에서 채록한 것이다.
동지섣달 긴긴밤에
작설없어 못살겠네
삼사월의 긴긴해에
작설따는 그재미는
차밭꼴이 제일이네
얼씨구나 좋을씨구
지아지아 좋을씨구
동래구 금강공원 차밭골에는 야생 차나무가 곳곳에 군락을 이루고 있었고, 일본인이 가꾸었다고 한다. 이들 민요는 당시 차를 경작하는 서민들의 모습을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채록 시기는 한국전쟁 이후지만, 민요의 특징을 감안하여 이 책에 수록하였다.
한국의 차 문화 천년(전7권)
1. 조선 후기의 차 문화 - 시
2. 조선 후기의 차 문화 - 산문
3. 삼국시대·고려의 차 문화
4. 조선 초기의 차 문화
5. 조선 중기의 차 문화
6. 근현대의 차 문화
7. 승려의 차 문화(근간)
▣ 작가 소개
역자 : 송재소
성균관대학교 명예교수
역자 : 조창록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수석연구원
역자 : 이규필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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