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정절’ 프로젝트, ‘조선 여인’을 만들다
-조선의 정치, 제도, 문화, 지식, 담론을 통해 ‘내밀한’
국가 원리 정절의 실체를 규명하다
‘정절’이라는 두 단어 앞에서 우리가 그리는 그림은 비슷할 것이다. 소복을 입고 언제든 가슴에 찬 은장도를 꺼내들 준비가 된 여인. 이 여인들이 금과옥조로 여겼을 말이 있다. 평생 한 남자, 즉 한 남편만을 섬겨야 하며, 일생 동안 아버지, 남편, 아들의 뜻을 따르는 것이 여자의 도리임을 뜻하는 일부종사와 삼종지도. 그 연원을 따져보면 조선 시대 여성의 잔혹한 역사를 탄생시킨 내밀한 국가의 의도와 만나게 된다.
‘정절’의 키워드로 조선시대의 내밀한 역사를 살핀 책 ≪정절의 역사≫이 출간되었다. 저자 이숙인(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은, 정절이 조선시대 역사의 내밀한 원리를 읽어내기에 유용한 개념임에 착안, 남녀의 문제와 부부의 문제가 결합된 정절은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는 상호 관계성의 개념이지만, 조선에서는 여성 일방의 의무개념으로 전개되었다고 말한다. 또 순결과 신의로써 몸과 마음을 통괄하는 이 정절 개념은 유교이념의 조선 사회를 이끌어온 사실상의 일등공신이었고, 신하의 충절과 아내의 정절이 한 쌍을 이루는 유교적인 정치체제에서 정절은 가족을 유지하고 충절은 국가를 지탱하는 이념이었다.
정절은 임금에 대한 신하의 충忠과 어버이에 대한 자식의 효孝와 같은 맥락에서 제기된 하위자下位者의 의무였다. 또한 정절은 부부의 사적 관계를 반영한 도덕 개념이지만 삼강三綱의 질서로 편입되면서 사회 및 국가의 이념과 결부된 공공의 것이 된다. 정절을 지킨 아내를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보상하고 ‘정절을 해친’ 아내에 대해 국가가 분노하고 응징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는가. 정절은 곧 국법이었다. 이 책은 정절에 내포된 이러한 복합적인 의미와 그 숨겨진 비밀을 밝힘으로써 조선시대 여성의 또 다른 진실을 담아냈다.
도미의 후예들 조선에 살다
우리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정절 여성은 도미 부인이다. 도미 부인은 2세기 때 백제 사람으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절의 화신으로 회자되고 있다. 부부가 살던 곳이었다는 보령에서는 ‘정절사貞節詞’라는 사당을 지어 매년 10월 그녀의 정신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또 그들 부부는 사랑의 진정성이라는 영원한 주제를 구현한 주인공이 되어 연극, 무용 등 각종 예술작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한국판 정절의 대표 주자 도미 부인은 부귀영화를 헌신짝처럼 여기며 일편단심 한 남자만을 사랑했다. 도미 부부는 외부의 그 어떤 힘도 둘의 사랑과 절개를 깨뜨릴 수 없다는 굳건한 인간 사랑의 승리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이 부부의 ‘서로 사랑’은 부인의 ‘일편단심’으로 한 차례 변주가 일어난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세종대에 제작된 ≪삼강행실도≫는 그들의 이야기를 ''도미의 처, 풀을 뜯어먹다''라는 제목으로 ''열녀도烈女圖''에 실었다. 도미 부인이 열녀가 된다는 것은 도미의 아내 사랑보다는 부인의 정절 행각에 주목하겠다는 뜻이다. 남편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죽음도 불사한 도미 부인의 용기는 남편을 위해 어떤 일이든 감당해야 했던 조선시대 여성들의 롤 모델이 되었다. 도미 부인의 후예들은 남편을 물어 가는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고, 손가락을 자르고 허벅지를 뜯어내어 남편의 병을 치료하고, 남편 대신 죽기도 하고 남편 원수를 갚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았다. 죽은 남편을 애모하며 수십 년을 하루같이 웃지 않고 먹지 않고 말하지 않은 고행의 길을 걸어간 여인들, 낙토를 밟듯 남편을 따라 스스로 무덤 속으로 들어간 여인들. 그런 그녀들의 행위는 정절의 이름으로 칭송되고 포장되고 선양되었다.
역사상 존재했던 대부분의 사회는 여성의 성sexuality에 대한 일정한 의미체계를 만들어왔다. 그것은 사회 속에서 조직되고 사회관계를 반영한 것인데, 유교 사회였던 조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조선에서는, 여성의 성을 어떻게 의미화하고 어떤 방식으로 조직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사회통합의 원리로 수렴되고 나아가 제도와 이념으로 구현되었다. 이는 조선 5백 년의 역사를 통해 꾸준히 전개되었던 절부 발굴과 열녀 포상의 정책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가가 정절녀와 모종의 거래를 하는 동안 지식인들은 사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이야기를 발굴하여 재구성했고, 그것으로 조선 여성의 삶을 심판하는 자료로 삼았다. 여기에서 ‘믿거나 말거나’ 식의 기이하고 괴기하기까지 한 각양각색의 담론들이 경쟁하듯 쏟아졌다. 이 ‘그로테스크한 잔치’는 ‘정절’이라는 무대에서 행해졌다.
-''서설'' 중에서
조선 5백 년, 여성의 성에 대한 관념과 관습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정절의 키워드로 읽는 조선시대는 역사의 새로운 진실을 드러내는 작업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국가의 법과 제도는 여성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이해했고, 남성 지식인들은 여성에게 어떤 성적 판타지를 투사했는가, 성과 결부된 사건과 사고를 처리하는 정치권력의 태도와 논리는 무엇이었는가, 과부의 개가를 금지한 법과 제도는 어떤 계기와 어떤 과정을 통해 성립되었는가, 과부의 개가를 죽은 남편에 대한 배신으로 해석하고, 개가 부녀의 자손을 국가에 대한 잠재된 변절자로 규정하는 심리적 사회적 맥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한 주제들이다. 여자의 정절, 그것은 가문을 일으키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폐가 멸문의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그런 점에서 정절은 조선시대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이 책은 정치, 제도, 문화, 지식, 담론 등의 전반위적인 공격을 통해 그 실체를 규명하고 있다.
정절의 주제는 조선 사회를 이끈 유학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을 확보하도록 했다. 존천리存天理멸인욕滅人慾의 성리학적 명제가 조선 사람의 실제 생활에 어떻게 적용되고 응용되며, 어떤 현실을 만들어갔는가. 당대 지성들의 지적 실천들은 어떤 것이었는가. 예컨대 16세기 당대의 절의지사節義之士로 이름난 남명 조식曺植의 사상과 실천은 한 사족 과부에 대한 ‘성性 소문’ 사건을 통할 때 좀 더 구체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사족 여성의 규방 생활을 놓고 왈가왈부하던 남명은 퇴계로부터 ‘그 높은 절개를 스스로 깎아 내리며 시비를 다투기를 거칠 줄 모르는 자, 이해할 수 없는 조군曺君’으로 평가되었다. 퇴계의 학단에서는 과부의 ‘음행’ 소문을 퍼뜨린 남명을 ‘선비의 처신’과 관련된 케이스 문제로 활용했다. 당시 학계와 정계를 강타한 남명의 소문 사건, 그 퇴계학단의 뒷 담화가 1600년(선조 33) ≪퇴계집≫의 간행으로 세상에 공개되자 남명 문인들은 극도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 후 더욱 격렬해진 ‘별들의 전쟁’은 지방의 한 사족 여성의 정절 문제로부터 촉발된 것이었다.
이 책은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삼았던 조선 5백 년 동안 여성의 성에 대한 관념과 관습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서 정절貞節이라는 키워드를 만났다. 정절 개념을 통해 펼쳐진 복합적인 의미의 역사를 규명하기 위해 접근의 문을 다각화했다. 네 범주를 통해 밝혀낸 정절의 역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주요 내용 소개】
-남녀 사이의 정욕, 국가가 관리하다
1부에서는 정절의 법과 제도를 살펴보았다. 성의 범주를 사회통합의 주요 관건으로 인식한 조선 건국의 주체들은 정절의 법제화를 추진했는데, ≪조선경국전≫과 ≪경제육전≫ 그리고 ≪경국대전≫으로 이어지는 법전의 계보 속에서 정절 관련 규범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유교 사회 조선에서는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가졌던 예제禮制가 있었는데, 일종의 도덕법이다. 도덕사회 실현을 목표한 사림들의 도덕법에서 여성의 정절은 어떻게 해석되고 고취되는가를 향약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남성의 충절과 여성의 정절이 하나의 쌍을 이루는 체계에서, 절의를 강조하는 사림의 등장은 여성 정절을 더욱 강화시키는 쪽으로 전개되었다. 그렇다면 ‘정절을 해친 죄’에 대해서는 어떤 법적 대응이 있었을까. 법전의 규정과 사건 판례집을 통해 처벌의 양상을 규명했다. 화간和姦으로 ‘정절을 해친’ 여성들에 대한 ‘법 가부장’의 분노와 응징 그리고 정절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결한 여성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격려와 포상의 사례들을 소개했다.
-절부를 발굴하고, 실행을 발명하다
2부에서는 정절의 문화정치학이라는 주제로 국가 차원에서 행해진 절부 발굴의 실태와 이념을 규명했다. 여성의 정절이 풍속과 교화를 주도하는 주요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절부를 발굴하여 포장하는 행사가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5백여 년 동안 지속되었던 것이다. 전국을 대상으로 하여 각 조정이 발굴해낸 절부는 심의를 거쳐 정문 혹은 복호되었다. 정절 여성을 포장하는 한편 ‘음란’행위를 검열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을 가동시켰다. 실행녀失行女로 일단 규정되면 당사자는 물론 그 남성 가족과 자손들도 검열의 대상이 되었다. 대개의 경우 실행녀의 남성 가족들은 관직에서 물러나거나 관직 진입이 봉쇄되었다. 자손을 볼모로 실행 부녀를 감시하고 검열한 것은 조선 사회 정절문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한편 실행의 여부가 여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면서 오용과 악용의 사례가 속출했는데, 몇 가지 사례를 통해 그 문제점을 논의했다.
-이데올로기의 확산 도구로서의 텍스트 보급
3부에서는 정절의 확산을 위해 각종 교육서가 편찬되는 것에 주목했다. 정절의식의 대중화를 위해 제작된 ≪삼강행실도≫를 비롯한 각종 행실도류는 극단적인 형태의 절행이나 열행을 담고 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여자는 정숙해야 하고 그 행실은 반드시 굳세어야 한다”는 ≪삼강행실도≫의 제작 취지는 사실상 열녀의 기본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실제로 정절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자결하거나 남편의 죽음에 종사從死를 택하는 ‘정절녀’의 행위가 행실도류의 유형들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열녀전≫과 ≪여사서≫ 그리고 ≪예기≫와 ≪소학≫ 등에서 정절 관련 내용들을 뽑고 그 의미를 분석했다. 이와 함께 정절의 지식체계를 원론적인 입장에서 재검토했고, 조선 지식인들이 정절에 부여하는 의미를 각종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
-조선 남자들의 ‘썰’전
마지막으로 정절의 문제를 내포한 주요 사건과 논쟁을 재조명했다. 세종조의 유감동 사건과 성종조의 박어을우동 사건은 간통에 대한 국가의 처리 방식과 음부淫婦 및 간부奸夫에 대한 남성 사대부들의 인식을 보여준다. 또 16세기 한 사족 부인의 음행 소문을 통해 여성의 성과 담론권력의 문제를 조명했다. 그리고 조선 전기 ‘재가금지법’ 제정을 놓고 벌어진 개가논쟁은 여성의 성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토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를 통해 여성의 성에 대한 남성 사대부들의 생각이 동일하지만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지식인들의 열녀론을 통해 정절에 대한 논의가 다각화되는 조선 후기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른바 열행의 성격이 과격해지면서 동시에 이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조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주로 개인 문집에 수록된 ‘논論’이나 ‘설說’ 등의 형태로 논의된 것이다
상투와 도포자락이 감춰버린 역사를 찾아서
이 책은 “조선 지식인의 성담론”이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조선/유교 지식/남성’이 만든 ‘정절의 역사’인 셈이다. 저자는 정절을 주제로 여성의 역사를 구상하면서 여성 그 자신의 말이나 글로 남아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고 말한다. 그나마 전해오는 것은 가족적 삶에 대한 서술이나 문학작품 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학술적 글쓰기 류 등이다. 더러는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는 류의 말이 전해오지만 그것은 옛 성현 공자의 ‘말씀’이거나 ≪소학≫이나 ≪열녀전≫의 말이지 ‘여성 그 자신’의 말은 아니었다. 혹은 여성의 삶과 경험이 반영된 말들이 있다 하더라도 가부장적 망으로 걸러지고 솎아진 것이다. 그래서 남은 것은 대개는 여성을 대상화하거나 여성을 길들이기 위한 말이었다. ‘여자란 이렇다 저렇다’를 말하지만 사실은 남성 자신의 ‘현재’와 ‘욕망’을 반영한 것들이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정절의 역사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대부분의 역사는 지식과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에 의해 서술되어 왔다. 여기서 서술 주체의 이해利害에 어긋나는 사실들은 축소되거나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왜곡과 조작이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형태를 띠는 경우도 있는데, 여성 정절에서는 특히 그랬다. 그래서 따로 있을 법한 드러나지 못한 다양한 사실과 진실들을 알고자 한다면 개념이나 문자 그 너머의 것을 읽어내는 기술이 필요하다. 예컨대 정절 자살이 자발적 선택의 형태를 띠지만 정절을 강권하는 사회와 여성적 상황의 복합적 산물이라는 점에 눈을 돌리면 그 자살은 타살이 된다. ‘난신亂臣의 아내는 대부분 정절이 없다’거나 ‘왜군들을 향해 준엄하게 꾸짖은 정절녀’ 등이 사실에 대한 묘사라고 보는가. 서사 속에서 서사 주체의 욕망 혹은 절망이 감지되지는 않는가. 이처럼 문헌 자료 그 자체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특히 특수한 일부 계층이 특정한 관점에서 구성한 자료라면 읽기의 방법과 사상이 필요하다. 자료를 어떻게 읽고 무엇을 볼 것인가에 따라 사실이나 진실은 새로워질 수가 있다.
-''서설'' 중에서
≪정절의 역사≫는 조선 사회를 이끌어온 크고 작은 다양한 차이들에 주목한다. 정절 개념이 조선의 역사적 조건들과 만나는 지점은 다양했고, 그 전개 또한 광범위한 영역에서 행해졌다. 이에 대한 남성 지식인들의 인식과 실천 또한 일률적이지 않았다. ‘음행’ 소문을 대하는 미암 유희춘과 남명 조식, 퇴계 이황의 태도가 달랐다면 그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인가. 전쟁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온 ‘환향녀’를 맞이하는 최명길崔鳴吉과 장유張維의 태도는 정반대였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어디서 연유한 것인가. 권력을 가진 사족 남성 대부분은 여성의 정절을 열렬히 주장하지만 이 ‘열녀열烈女熱’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류의 폐단’으로 치부하는 연암 박지원 같은 학자들도 있었다. 대부분의 남성 지식인들은 성性을 본래적인 것이라는 주장하지만, 최한기는 성을 문화적 구성물로 보았다. 성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여성 정절에 대한 해석이 달라짐은 당연한 이치이다. 특히 구체적인 사건과 주제 논쟁으로 조명한 정절의 담론은 여성과 남성, 그 관계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들 사건과 논쟁은 근엄한 상투와 도포자락에 감추어진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와 이기심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처럼 정절은 지식인 각자의 개성과 지성을 구성하는 재료이자 인식과 실천의 차이를 드러내는 중요한 개념이었다. 그렇다면 여성이 뽑은 조선 최고의 남자는 누구이며 최악의 남자는 누구일까
▣ 작가 소개
저자 : 이숙인李淑仁
성균관대 철학박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재직하고 있다. 여성과 유교, 두 가지가 포함된 모든 주제에 관심이 있다. 유교경전 오경五經 및 중국고대의 제자서諸子書를 여성과 역사의 관점에서 읽어낸 후,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과 생각’으로 관심이 이동하였다. ‘지금 우리’의 기원을 밝혀보고자 조선 여성의 역사를 현실?이념?제도로 다각화하고, 여기에 신분ㆍ시대ㆍ지역 등의 차이를 적용시켜 읽어내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 ≪동아시아 고대의 여성사상≫(2005)이 있고, 역주로 ≪여사서≫(2003)와 ≪열녀전≫(2013) 등이 있다. 공저로 ≪조선여성의 일생≫, ≪선비의 멋, 규방의 맛≫ 등 다수와 많은 연구 논문이 있다.
▣ 주요 목차
서설
1부 정절의 법과 제도
정절의 법과 예禮
정절의 법: 구상에서 제정으로
정절의 예제: 향약을 중심을
실행失行 여성 처벌
실행의 범주와 처벌의 양상
음행에 대한 법 가부장의 분노
정절 여성 포상
수절 과부와 수신전守信田
정절에 대한 법 가부장의 격려
2부 정절의 문화정치학
절부의 발굴
절부 발굴의 실상
절부 발굴의 이념
실행의 검열
실행의 발명
실행녀의 자손
3부 정절의 학습과 지식
정절의 학습
행실도行實圖 속의 정절
교화서를 통한 정절의 유포
정절의 지식체계
정貞과 절節: 성적 순결과 사회적 의무
조선 지식인의 성性 인식
4부 정절의 사건과 논쟁
정절의 사건
음부淫婦와 간부奸夫들
과부의 성과 소문
정절의 논쟁
개가 논쟁
열녀 논쟁
책을 맺으며
‘정절’ 프로젝트, ‘조선 여인’을 만들다
-조선의 정치, 제도, 문화, 지식, 담론을 통해 ‘내밀한’
국가 원리 정절의 실체를 규명하다
‘정절’이라는 두 단어 앞에서 우리가 그리는 그림은 비슷할 것이다. 소복을 입고 언제든 가슴에 찬 은장도를 꺼내들 준비가 된 여인. 이 여인들이 금과옥조로 여겼을 말이 있다. 평생 한 남자, 즉 한 남편만을 섬겨야 하며, 일생 동안 아버지, 남편, 아들의 뜻을 따르는 것이 여자의 도리임을 뜻하는 일부종사와 삼종지도. 그 연원을 따져보면 조선 시대 여성의 잔혹한 역사를 탄생시킨 내밀한 국가의 의도와 만나게 된다.
‘정절’의 키워드로 조선시대의 내밀한 역사를 살핀 책 ≪정절의 역사≫이 출간되었다. 저자 이숙인(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 연구교수)은, 정절이 조선시대 역사의 내밀한 원리를 읽어내기에 유용한 개념임에 착안, 남녀의 문제와 부부의 문제가 결합된 정절은 남녀 모두에게 적용되는 상호 관계성의 개념이지만, 조선에서는 여성 일방의 의무개념으로 전개되었다고 말한다. 또 순결과 신의로써 몸과 마음을 통괄하는 이 정절 개념은 유교이념의 조선 사회를 이끌어온 사실상의 일등공신이었고, 신하의 충절과 아내의 정절이 한 쌍을 이루는 유교적인 정치체제에서 정절은 가족을 유지하고 충절은 국가를 지탱하는 이념이었다.
정절은 임금에 대한 신하의 충忠과 어버이에 대한 자식의 효孝와 같은 맥락에서 제기된 하위자下位者의 의무였다. 또한 정절은 부부의 사적 관계를 반영한 도덕 개념이지만 삼강三綱의 질서로 편입되면서 사회 및 국가의 이념과 결부된 공공의 것이 된다. 정절을 지킨 아내를 국가가 나서서 적극적으로 보상하고 ‘정절을 해친’ 아내에 대해 국가가 분노하고 응징하는 것은 무엇 때문이겠는가. 정절은 곧 국법이었다. 이 책은 정절에 내포된 이러한 복합적인 의미와 그 숨겨진 비밀을 밝힘으로써 조선시대 여성의 또 다른 진실을 담아냈다.
도미의 후예들 조선에 살다
우리 역사에 기록된 최초의 정절 여성은 도미 부인이다. 도미 부인은 2세기 때 백제 사람으로 고려에서 조선으로, 그리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정절의 화신으로 회자되고 있다. 부부가 살던 곳이었다는 보령에서는 ‘정절사貞節詞’라는 사당을 지어 매년 10월 그녀의 정신을 기리는 제사를 지내고 있다. 또 그들 부부는 사랑의 진정성이라는 영원한 주제를 구현한 주인공이 되어 연극, 무용 등 각종 예술작품으로 거듭나고 있다.
한국판 정절의 대표 주자 도미 부인은 부귀영화를 헌신짝처럼 여기며 일편단심 한 남자만을 사랑했다. 도미 부부는 외부의 그 어떤 힘도 둘의 사랑과 절개를 깨뜨릴 수 없다는 굳건한 인간 사랑의 승리를 보여주었다. 그런데 역사 속에서 이 부부의 ‘서로 사랑’은 부인의 ‘일편단심’으로 한 차례 변주가 일어난다. 그 사이에 무슨 일이 일어났을까.
세종대에 제작된 ≪삼강행실도≫는 그들의 이야기를 ''도미의 처, 풀을 뜯어먹다''라는 제목으로 ''열녀도烈女圖''에 실었다. 도미 부인이 열녀가 된다는 것은 도미의 아내 사랑보다는 부인의 정절 행각에 주목하겠다는 뜻이다. 남편을 찾겠다는 일념으로 죽음도 불사한 도미 부인의 용기는 남편을 위해 어떤 일이든 감당해야 했던 조선시대 여성들의 롤 모델이 되었다. 도미 부인의 후예들은 남편을 물어 가는 호랑이를 맨손으로 때려잡고, 손가락을 자르고 허벅지를 뜯어내어 남편의 병을 치료하고, 남편 대신 죽기도 하고 남편 원수를 갚기 위해 살인도 서슴지 않았다. 죽은 남편을 애모하며 수십 년을 하루같이 웃지 않고 먹지 않고 말하지 않은 고행의 길을 걸어간 여인들, 낙토를 밟듯 남편을 따라 스스로 무덤 속으로 들어간 여인들. 그런 그녀들의 행위는 정절의 이름으로 칭송되고 포장되고 선양되었다.
역사상 존재했던 대부분의 사회는 여성의 성sexuality에 대한 일정한 의미체계를 만들어왔다. 그것은 사회 속에서 조직되고 사회관계를 반영한 것인데, 유교 사회였던 조선도 예외는 아니었다. 특히 조선에서는, 여성의 성을 어떻게 의미화하고 어떤 방식으로 조직화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사회통합의 원리로 수렴되고 나아가 제도와 이념으로 구현되었다. 이는 조선 5백 년의 역사를 통해 꾸준히 전개되었던 절부 발굴과 열녀 포상의 정책들에서 확인할 수 있다. 국가가 정절녀와 모종의 거래를 하는 동안 지식인들은 사실과 상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다양한 이야기를 발굴하여 재구성했고, 그것으로 조선 여성의 삶을 심판하는 자료로 삼았다. 여기에서 ‘믿거나 말거나’ 식의 기이하고 괴기하기까지 한 각양각색의 담론들이 경쟁하듯 쏟아졌다. 이 ‘그로테스크한 잔치’는 ‘정절’이라는 무대에서 행해졌다.
-''서설'' 중에서
조선 5백 년, 여성의 성에 대한 관념과 관습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는가
정절의 키워드로 읽는 조선시대는 역사의 새로운 진실을 드러내는 작업이었다고 저자는 말한다. 국가의 법과 제도는 여성의 몸과 마음을 어떻게 이해했고, 남성 지식인들은 여성에게 어떤 성적 판타지를 투사했는가, 성과 결부된 사건과 사고를 처리하는 정치권력의 태도와 논리는 무엇이었는가, 과부의 개가를 금지한 법과 제도는 어떤 계기와 어떤 과정을 통해 성립되었는가, 과부의 개가를 죽은 남편에 대한 배신으로 해석하고, 개가 부녀의 자손을 국가에 대한 잠재된 변절자로 규정하는 심리적 사회적 맥락을 어떻게 해석할 것인가는 저자가 이 책을 통해 독자들에게 보여주고자 한 주제들이다. 여자의 정절, 그것은 가문을 일으키는 수단이 되기도 하고, 폐가 멸문의 계기가 되기도 했는데, 그런 점에서 정절은 조선시대를 설명하는 중요한 키워드다. 이 책은 정치, 제도, 문화, 지식, 담론 등의 전반위적인 공격을 통해 그 실체를 규명하고 있다.
정절의 주제는 조선 사회를 이끈 유학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모습을 확보하도록 했다. 존천리存天理멸인욕滅人慾의 성리학적 명제가 조선 사람의 실제 생활에 어떻게 적용되고 응용되며, 어떤 현실을 만들어갔는가. 당대 지성들의 지적 실천들은 어떤 것이었는가. 예컨대 16세기 당대의 절의지사節義之士로 이름난 남명 조식曺植의 사상과 실천은 한 사족 과부에 대한 ‘성性 소문’ 사건을 통할 때 좀 더 구체적인 이해가 가능하다. 사족 여성의 규방 생활을 놓고 왈가왈부하던 남명은 퇴계로부터 ‘그 높은 절개를 스스로 깎아 내리며 시비를 다투기를 거칠 줄 모르는 자, 이해할 수 없는 조군曺君’으로 평가되었다. 퇴계의 학단에서는 과부의 ‘음행’ 소문을 퍼뜨린 남명을 ‘선비의 처신’과 관련된 케이스 문제로 활용했다. 당시 학계와 정계를 강타한 남명의 소문 사건, 그 퇴계학단의 뒷 담화가 1600년(선조 33) ≪퇴계집≫의 간행으로 세상에 공개되자 남명 문인들은 극도의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 후 더욱 격렬해진 ‘별들의 전쟁’은 지방의 한 사족 여성의 정절 문제로부터 촉발된 것이었다.
이 책은 유교를 국가이념으로 삼았던 조선 5백 년 동안 여성의 성에 대한 관념과 관습의 역사는 어떻게 전개되었을까 하는 질문에서 시작되었다. 여기서 정절貞節이라는 키워드를 만났다. 정절 개념을 통해 펼쳐진 복합적인 의미의 역사를 규명하기 위해 접근의 문을 다각화했다. 네 범주를 통해 밝혀낸 정절의 역사를 요약하면 다음과 같다.
【주요 내용 소개】
-남녀 사이의 정욕, 국가가 관리하다
1부에서는 정절의 법과 제도를 살펴보았다. 성의 범주를 사회통합의 주요 관건으로 인식한 조선 건국의 주체들은 정절의 법제화를 추진했는데, ≪조선경국전≫과 ≪경제육전≫ 그리고 ≪경국대전≫으로 이어지는 법전의 계보 속에서 정절 관련 규범들을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유교 사회 조선에서는 이와 유사한 기능을 가졌던 예제禮制가 있었는데, 일종의 도덕법이다. 도덕사회 실현을 목표한 사림들의 도덕법에서 여성의 정절은 어떻게 해석되고 고취되는가를 향약을 중심으로 살펴보았다. 남성의 충절과 여성의 정절이 하나의 쌍을 이루는 체계에서, 절의를 강조하는 사림의 등장은 여성 정절을 더욱 강화시키는 쪽으로 전개되었다. 그렇다면 ‘정절을 해친 죄’에 대해서는 어떤 법적 대응이 있었을까. 법전의 규정과 사건 판례집을 통해 처벌의 양상을 규명했다. 화간和姦으로 ‘정절을 해친’ 여성들에 대한 ‘법 가부장’의 분노와 응징 그리고 정절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자결한 여성들에 대한 국가 차원의 격려와 포상의 사례들을 소개했다.
-절부를 발굴하고, 실행을 발명하다
2부에서는 정절의 문화정치학이라는 주제로 국가 차원에서 행해진 절부 발굴의 실태와 이념을 규명했다. 여성의 정절이 풍속과 교화를 주도하는 주요 수단으로 인식되면서 절부를 발굴하여 포장하는 행사가 19세기 말에 이르기까지 5백여 년 동안 지속되었던 것이다. 전국을 대상으로 하여 각 조정이 발굴해낸 절부는 심의를 거쳐 정문 혹은 복호되었다. 정절 여성을 포장하는 한편 ‘음란’행위를 검열하고 감시하는 시스템을 가동시켰다. 실행녀失行女로 일단 규정되면 당사자는 물론 그 남성 가족과 자손들도 검열의 대상이 되었다. 대개의 경우 실행녀의 남성 가족들은 관직에서 물러나거나 관직 진입이 봉쇄되었다. 자손을 볼모로 실행 부녀를 감시하고 검열한 것은 조선 사회 정절문화의 특징이기도 하다. 한편 실행의 여부가 여성을 평가하는 중요한 기준이 되면서 오용과 악용의 사례가 속출했는데, 몇 가지 사례를 통해 그 문제점을 논의했다.
-이데올로기의 확산 도구로서의 텍스트 보급
3부에서는 정절의 확산을 위해 각종 교육서가 편찬되는 것에 주목했다. 정절의식의 대중화를 위해 제작된 ≪삼강행실도≫를 비롯한 각종 행실도류는 극단적인 형태의 절행이나 열행을 담고 있다는 점에 특징이 있다. “여자는 정숙해야 하고 그 행실은 반드시 굳세어야 한다”는 ≪삼강행실도≫의 제작 취지는 사실상 열녀의 기본 방향을 제시한 것이다. 실제로 정절이 위협받는 상황에서 자결하거나 남편의 죽음에 종사從死를 택하는 ‘정절녀’의 행위가 행실도류의 유형들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우연이 아닐 것이다. 그리고 ≪열녀전≫과 ≪여사서≫ 그리고 ≪예기≫와 ≪소학≫ 등에서 정절 관련 내용들을 뽑고 그 의미를 분석했다. 이와 함께 정절의 지식체계를 원론적인 입장에서 재검토했고, 조선 지식인들이 정절에 부여하는 의미를 각종 자료를 통해 확인했다.
-조선 남자들의 ‘썰’전
마지막으로 정절의 문제를 내포한 주요 사건과 논쟁을 재조명했다. 세종조의 유감동 사건과 성종조의 박어을우동 사건은 간통에 대한 국가의 처리 방식과 음부淫婦 및 간부奸夫에 대한 남성 사대부들의 인식을 보여준다. 또 16세기 한 사족 부인의 음행 소문을 통해 여성의 성과 담론권력의 문제를 조명했다. 그리고 조선 전기 ‘재가금지법’ 제정을 놓고 벌어진 개가논쟁은 여성의 성에 대한 국가 차원의 공식적인 토론이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이를 통해 여성의 성에 대한 남성 사대부들의 생각이 동일하지만은 않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지식인들의 열녀론을 통해 정절에 대한 논의가 다각화되는 조선 후기 양상을 살펴보았다. 이른바 열행의 성격이 과격해지면서 동시에 이에 대한 비판적 인식이 조성되는 것을 볼 수 있다. 이것은 주로 개인 문집에 수록된 ‘논論’이나 ‘설說’ 등의 형태로 논의된 것이다
상투와 도포자락이 감춰버린 역사를 찾아서
이 책은 “조선 지식인의 성담론”이라는 부제가 보여주듯 ‘조선/유교 지식/남성’이 만든 ‘정절의 역사’인 셈이다. 저자는 정절을 주제로 여성의 역사를 구상하면서 여성 그 자신의 말이나 글로 남아있는 자료가 거의 없다는 점이 가장 아쉬웠다고 말한다. 그나마 전해오는 것은 가족적 삶에 대한 서술이나 문학작품 또는 자신을 드러내지 않은 학술적 글쓰기 류 등이다. 더러는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는 류의 말이 전해오지만 그것은 옛 성현 공자의 ‘말씀’이거나 ≪소학≫이나 ≪열녀전≫의 말이지 ‘여성 그 자신’의 말은 아니었다. 혹은 여성의 삶과 경험이 반영된 말들이 있다 하더라도 가부장적 망으로 걸러지고 솎아진 것이다. 그래서 남은 것은 대개는 여성을 대상화하거나 여성을 길들이기 위한 말이었다. ‘여자란 이렇다 저렇다’를 말하지만 사실은 남성 자신의 ‘현재’와 ‘욕망’을 반영한 것들이다.
이 책을 쓰는 동안 정절의 역사가 남성의 전유물이었다는 사실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 대부분의 역사는 지식과 권력을 장악한 사람들에 의해 서술되어 왔다. 여기서 서술 주체의 이해利害에 어긋나는 사실들은 축소되거나 왜곡될 수밖에 없었다. 왜곡과 조작이 의도적이고 조직적인 형태를 띠는 경우도 있는데, 여성 정절에서는 특히 그랬다. 그래서 따로 있을 법한 드러나지 못한 다양한 사실과 진실들을 알고자 한다면 개념이나 문자 그 너머의 것을 읽어내는 기술이 필요하다. 예컨대 정절 자살이 자발적 선택의 형태를 띠지만 정절을 강권하는 사회와 여성적 상황의 복합적 산물이라는 점에 눈을 돌리면 그 자살은 타살이 된다. ‘난신亂臣의 아내는 대부분 정절이 없다’거나 ‘왜군들을 향해 준엄하게 꾸짖은 정절녀’ 등이 사실에 대한 묘사라고 보는가. 서사 속에서 서사 주체의 욕망 혹은 절망이 감지되지는 않는가. 이처럼 문헌 자료 그 자체가 모든 것을 말해주지는 않는다. 특히 특수한 일부 계층이 특정한 관점에서 구성한 자료라면 읽기의 방법과 사상이 필요하다. 자료를 어떻게 읽고 무엇을 볼 것인가에 따라 사실이나 진실은 새로워질 수가 있다.
-''서설'' 중에서
≪정절의 역사≫는 조선 사회를 이끌어온 크고 작은 다양한 차이들에 주목한다. 정절 개념이 조선의 역사적 조건들과 만나는 지점은 다양했고, 그 전개 또한 광범위한 영역에서 행해졌다. 이에 대한 남성 지식인들의 인식과 실천 또한 일률적이지 않았다. ‘음행’ 소문을 대하는 미암 유희춘과 남명 조식, 퇴계 이황의 태도가 달랐다면 그 차이는 어디서 온 것인가. 전쟁 포로가 되었다가 돌아온 ‘환향녀’를 맞이하는 최명길崔鳴吉과 장유張維의 태도는 정반대였다. 그렇다면 그 차이는 어디서 연유한 것인가. 권력을 가진 사족 남성 대부분은 여성의 정절을 열렬히 주장하지만 이 ‘열녀열烈女熱’을 차갑게 노려보며 ‘말류의 폐단’으로 치부하는 연암 박지원 같은 학자들도 있었다. 대부분의 남성 지식인들은 성性을 본래적인 것이라는 주장하지만, 최한기는 성을 문화적 구성물로 보았다. 성을 어떻게 정의하는가에 따라 여성 정절에 대한 해석이 달라짐은 당연한 이치이다. 특히 구체적인 사건과 주제 논쟁으로 조명한 정절의 담론은 여성과 남성, 그 관계의 역사를 입체적으로 보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이들 사건과 논쟁은 근엄한 상투와 도포자락에 감추어진 남성들의 성적 판타지와 이기심을 여과 없이 보여준다. 이처럼 정절은 지식인 각자의 개성과 지성을 구성하는 재료이자 인식과 실천의 차이를 드러내는 중요한 개념이었다. 그렇다면 여성이 뽑은 조선 최고의 남자는 누구이며 최악의 남자는 누구일까
▣ 작가 소개
저자 : 이숙인李淑仁
성균관대 철학박사. 서울대학교 규장각 한국학연구원에 재직하고 있다. 여성과 유교, 두 가지가 포함된 모든 주제에 관심이 있다. 유교경전 오경五經 및 중국고대의 제자서諸子書를 여성과 역사의 관점에서 읽어낸 후, 조선시대 사람들의 ‘삶과 생각’으로 관심이 이동하였다. ‘지금 우리’의 기원을 밝혀보고자 조선 여성의 역사를 현실?이념?제도로 다각화하고, 여기에 신분ㆍ시대ㆍ지역 등의 차이를 적용시켜 읽어내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저서로 ≪동아시아 고대의 여성사상≫(2005)이 있고, 역주로 ≪여사서≫(2003)와 ≪열녀전≫(2013) 등이 있다. 공저로 ≪조선여성의 일생≫, ≪선비의 멋, 규방의 맛≫ 등 다수와 많은 연구 논문이 있다.
▣ 주요 목차
서설
1부 정절의 법과 제도
정절의 법과 예禮
정절의 법: 구상에서 제정으로
정절의 예제: 향약을 중심을
실행失行 여성 처벌
실행의 범주와 처벌의 양상
음행에 대한 법 가부장의 분노
정절 여성 포상
수절 과부와 수신전守信田
정절에 대한 법 가부장의 격려
2부 정절의 문화정치학
절부의 발굴
절부 발굴의 실상
절부 발굴의 이념
실행의 검열
실행의 발명
실행녀의 자손
3부 정절의 학습과 지식
정절의 학습
행실도行實圖 속의 정절
교화서를 통한 정절의 유포
정절의 지식체계
정貞과 절節: 성적 순결과 사회적 의무
조선 지식인의 성性 인식
4부 정절의 사건과 논쟁
정절의 사건
음부淫婦와 간부奸夫들
과부의 성과 소문
정절의 논쟁
개가 논쟁
열녀 논쟁
책을 맺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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