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평가 -잃어버린 20세기에 대한 성찰-

고객평점
저자토니주트
출판사항열린책들, 발행일:2014/07/20
형태사항p.612 B5판:24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32916668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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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그가 제기한 의문, 그리고 그가 주는 답은 이 시대 가장 탁월한 공적 지식인 중 하나로서 그의 위상을 대변한다. - 『비엔나 리뷰The Vienna Review』

그가 그 분노의 대상을 그토록 무자비하게 비판할 때, 그것은 때로 지적 투쟁 그 자체를 위한 것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그의 언어, 지식 그리고 용기는 결코 부정할 수 없다. - 『포린 어페어tmForeign Affairs』

지난 십수 년에 걸쳐 학문적으로나 논쟁적으로 가장 예리한 작품. - 『커커스 리뷰Kirkus Review』

지난 30년간, 토니 주트는 20세기에 걸맞는 고상하고도 위대한 정신을 견지해 왔다. 이제 그는, 이미 우리가 잊은 교훈이 어떻게 우리의 미래를 만들어 갈 것인지 말하려 한다. 『재평가』에 우리는 마땅히 깊은 감사를 표해야 한다. - 『포브스Forbes』

그 저자와 마찬가지로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이 바로 토니 주트이기 때문에) 새 책은 매력적이고 교훈적이다. 그리고 좌절감을 느끼게 한다. - 「LA 타임스Los Angeles Times」

일급 역사가로서, 명망 있는 정치평론가로서 토니 주트에 견줄 만한 인물은 이 시대에 거의 없다. -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

책의 핵심은 잔인하지만, 부당하지 않다. 특히 정치적 우둔으로 치장한 20세기 문단의 신사 숙녀들에 대해 상기시킨다. -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

20세기를 돌아보는 일이 왜 중요한가
2011년 타계한 저명한 역사학자 토니 주트의 『재평가REAPPRAISALS』(2008)가 번역 출간되었다. 이 책은 1994년부터 2006년까지 여러 잡지에 발표된 주트의 글을 모은 것인데, 모든 글은 장문의 서평 형식을 취하고 있다. 서로 개연성 없는 서평을 수정 없이 모았다는 점에서, 또 12년이라는 긴 시간에 걸쳐 집필이 이뤄졌음을 감안할 때, 이 책은 하나의 놀라움 그 자체다. 각각의 글에 배인 대가다운 안목과 지식 또한 놀랍지만, 이 방대하고도 개별적인 주제들을 하나의 연관성으로 묶어 내는 흔들림 없는 지성의 실재가 경탄을 불러일으킨다.
이 책이 일관되게 전하고자 하는 바의 핵심은 명확하다. 저자는 누차 말한다. “우리가 과거를 너무 쉽게 잊어 과거로부터 제대로 배우지 못한다”고. 나아가 우리가 “과거를 배워야 할 흥미로운 무엇이 없는 하찮은 것으로 치부한다”며 개탄한다. 20세기가 우리에게 남긴 감상은 재앙에 가깝다. 마르크스-레닌주의와 이념 갈등, 대공황과 두 번의 대전, 인종 청소와 대학살, 그리고 공산주의의 몰락 같은 것들이 20세기와 함께 있었다. 이 유례없는 재난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 이들로부터 무엇을 배울 수 있을 것인가. 20세기를 마감하고 21세기가 열리는 즈음, 토니 주트는 새로운 세계의 사람들이 과거를 보는 관점에 주목했다. 주트의 말에 따르면 “그들은 대체로 기억하기보다는 잊고, 야만이 되풀이되지 않을 것이라는 근거 없는 낙관에 빠졌다.” 그러나 주트는 다시 과거가 현재를 무겁게 짓누르기 시작하는 것을 보았다.
사람들은 늘 새로운 세계에 이끌렸다. 그러나 그들은 대체로 과거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프랑스 혁명은 18세기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그야말로 ‘개벽’이었고, 혁명 이후의 세계는 이전과 분명히 달랐다. 그러나 혁명은 계몽사상의 한 귀결로 평가되었고, 18세기의 유산은 뒤이은 한 세기의 정치적 이념들과 사회적 강령들의 당연한 원천이 되었다. 같은 맥락에서 1918년 이후 사람들은 누구나 세상이 결코 이전과 같지 않으리라 인정했지만 어디서든지 전후 세계가 의당 갖추어야 할 특정한 형태를 생각하고 논의할 때는 19세기의 경험과 사상이 드리운 긴 그림자 속에 젖어 있었다. “신고전파 경제학, 자유주의, 마르크스주의, 혁명,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 제국주의와 산업주의, 요컨대 20세기 정치 세계의 구성 요소들은 전부 19세기에 등장했다.”
21세기는 달라 보인다. 물론 21세기는 20세기의 유산일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세계는 너무도 빨리 변해서 막 지난 세계에 대해 우리는 어떠한 감각도 가질 수 없다. 수십 년, 수백 년 동안 친숙했고 영원해 보였던 것들이 대부분 빠르게 망각 속으로 사라지고 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 이 새로운 시대를 떠받치는 굵직한 토대들 대부분은 20세기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다. 과거에 대한 우리의 무지는 여태껏 인류 발전의 역사가 고스란히 축적된 그 토대들을 무심히 찍어 넘기려는 태도에서 드러난다. 과거를 기억하는 자는 이러한 천진난만한 죄악에 경악한다. 토니 주트의 작업은 이제는 잊힌, 이 소중한 유산의 역사를 드러내는 것이다.

지식인의 시대, 뿌리 없는 20세기의 여행자
주트는 이 책에서 20세기의 지식인에 대해 많은 장을 할애했다. 몇몇은 20세기 지식인의 전형으로 조명 받고, 몇몇은 결정적 결함을 이유로 혹독한 비판을 받는다. 전자에 속하는 익숙한 이름들로는 알베르 카뮈와 해나 아렌트, 에드워드 사이드가 있다. 후자에 속하는 이들로는 루이 알튀세르와 에릭 홉스봄이 대표적이다. 우리는 이들이 왜 비판(사실 비난에 가깝다) 받는지 아마 짐작도 못할 것이다. 그리고 진정 중요하게 언급되는 이름들은 전혀 익숙지 않다. 아서 케스틀러, 마네스 슈페르버, 레세크 코와코프스키 등이 그러하다. 이들은 당대에 지극히 중요한 지식인들이었으나 이제는 슬프게도 잊힌 자들이다.
지식인은(자유사상가이든 정치적으로 헌신적인 사람이든, 초연한 자든 참여하는 자든) 20세기의 두드러진 영예이다. 에밀 졸라에서 바츨라프 하벨까지, 카를 크라우스에서 마르가레테 부버노이만까지, 알바 뮈르달에서 시드니 후크까지 가장 흥미로운 정치저술가들의 이름만 열거해도 수십 페이지를 채우고도 남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 사람들이 누구인지는 물론 이들의 독자층이 얼마나 넓었는지, 이들의 영향력이 얼마나 널리 퍼졌는지도 거의 잊었다.
주트가 지식인을 말할 때 일관된 준거 중 하나는 ‘소련과 동유럽에서 공산주의의 억압에 맞선 저항’이다. 이러한 준거에서 지식인 활동이란 “동유럽과 소련의 소수의 용감한 개인들에 국한된 일이었다. 그리고 적어도 당대에는 오늘날 우리가 더 흔쾌히 기리는 좌파 인사들보다 이들의 영향력이 일반적으로 더 컸다.”
이 책에서 언급되는 지식인들은 20세기에 새롭게 출현한 뿌리 없는 ‘여행자’들이다. 이들은 실질적인 대화와 논의의 공동체로서 그 영향력은 시대의 비극적 선택들을 반영하고 예증한다. “우리가 이들 지식인들의 주제와 관심사를 생소하고 색다르게 느낀다면, 이는 우리가 지난 백 년간의 위대한 지식인들뿐만 아니라 그 사람들을 움직였던 사상과 이상과도 멀어졌기 때문이다.”
주트는 말한다. 20세기를 이해하기 위해 사상의 힘, 특히 마르크스주의가 20세기의 상상력에 행사한 놀라운 힘을 기억해야 한다고. 20세기의 가장 흥미로운 영혼들 여러 명이 비록 잠시 동안이라도, 신조 자체를 위해서든 자유주의의 몰락과 파시즘의 도전이 명백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든, 마르크스주의 사상에 이끌렸다. 그 밖에 다른 많은 사람들도, 적어도 몇몇은 혁명의 신기루에 일말의 유혹도 못 느꼈는데도, 마르크스주의에 빠져 그것과 씨름하는 데 삶의 대부분을 바쳤다.
공산주의는 자본주의와(또는 자유주의와) 대결했으며, 사상의 영역과 현실에서 공히 패배했고 그래서 기억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우리는 과거의 지켜지지 않은 약속과 거짓 예언자들을 깨끗이 잊으면서 그 가치를 다소 성급하게 과소평가했다(아니 간단히 망각했다). 요컨대 “수백만 명의 유권자와 활동가는 말할 것도 없고 왜 그렇게 많은 재사들이 그러한 약속과 예언자에 마음을 빼앗겼는가? 그 시대의 참사와 공포 때문에? 어쩌면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수많은 사람을 혁명과 부활의 거대담론으로 끌어들였던 것이 무엇이었든, 다시 돌아오지 않으리라고 간단히 확신할 수 있을 만큼, 20세기는 다시는 되풀이 되지 않을 독특한 무엇이었는가?” 한편으로 “평화와 민주주의, 자유시장의 햇빛 찬란한 고지는 진실로 영원할 것인가?”

국가와 그 역할
주트는 이 책의 절반 이상을 20세기 국가와 그 역할을 평하는 데 할애하고 있다. 특히 그가 주목하는 부분은 ‘국가의 역할’이다. 책에서 다루어지는 나라들, 프랑스, 영국, 벨기에, 루마니아 그리고 이스라엘의 사례에서 우리는 과거로부터 배워야 할 국가의 형태와 역할에 대해 다시 심사숙고할 수 있을 것이다.
“20세기 후반부 대부분의 기간 동안, 우리는 대체로 현대 국가가 국민을 배려하는 역할을 수행할 수 있으며 그렇기에 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고 믿었다.” 그러나 지난 세기의 마지막 30년 동안, 국가는 제일 먼저 의지할 자연스러운 후원자가 아니라 경제적 비효율과 사회적 간섭의 원천으로서 가능하면 시민의 일에서 배제해야 할 대상이라는 견해가 점차 일반적이게 되었다. “대부분의 선진국 세계에서 이처럼 국가를 무시하는 것은, 공산주의의 몰락과 이에 동반된 온갖 사회주의적 기획의 평판 하락과 결합하여, 공적 담론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러나 “파시스트와 공산주의자들이 노골적으로 국가의 지배적 역할을 추구했다는 사실이 자유주의적 세계에서의 국가가 두드러진 역할을 차지할 자격이 없다는 근거가 되지는 않는다. 또 공산주의가 몰락했다고 해서 자유와 효율의 최적 균형에 관한 문제가 규제를 받지 않는 시장의 몫이 되지도 않는다.”
“오늘날 20세기 복지국가는 상투적으로 유럽 국가이자 ‘사회주의적’ 국가로 치부된다.” 그렇지만 20세기 복지국가를 ‘사회주의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가? 이는 최근의 과거에 무지한 기이한 현상을 또다시 드러낸다. “20세기의 ‘사회주의적’ 복지국가들은 평등주의적 혁명의 선봉대가 아니라 과거로 회귀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벽으로서 건설되었다. 다시 말해 경제 불황을, 경제 불황이 가져온 파시즘과 공산주의의 광포한 분열적 귀결을 막기 위해 건설되었다.” 그러므로 복지국가는 예방적 국가였다. 그러나 우리는 복지국가를 물려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무엇이 복지국가를 일으켰는지 망각했다.
“혼합 경제 복지국가의 성공 자체가 사회적 안정을 제공하고 이데올로기적 해산을 유발하여 지난 반백 년간의 번영을 가능하게 했고 그로써 젊은 세대의 정치인들이 바로 그 안정과 이데올로기적 침묵을 당연하게 여기고 과세와 규제, 기타 여러 점에서 간섭하는 국가라는 ‘장애물’의 제거를 요구했다는 점은 역설이다.”

전쟁, 선과 악
4부에서 주트는 미국의 대외 정책(특히 분쟁)에 대해 여러 장에 걸쳐 다루고 있다. 미국은 이 세계의 여느 나라와 다르다. 그들은 스스로를 ‘선’이라 믿으며 전쟁의 효용을 확신한다. 미국의 맹우인 이스라엘의 사례와 더불어 20세기의 갈등 해결 방식이 현재에 어떤 파급을 미치고 있는지 검토해 볼 수 있을 것이다.
미국인들은 20세기를 훨씬 밝게 경험했다. 미국은 점령당한 적이 없다. 미국은 점령이나 분할로 많은 시민을 잃거나 상당한 크기의 국토를 빼앗긴 적이 없다. 미국은 신식민지 전쟁에서(베트남에서, 지금은 이라크에서) 굴욕을 맛보았지만 패배의 결과로 고초를 겪은 적이 없다. 미국은 두 차례의 세계 대전에서 수행한 역할과 그 귀결로 가난해진 것이 아니라 오히려 부유해졌다.
유럽인이 공산주의의 몰락과 철의 장막을 설명하면서 보여 주는 지배적인 정서는 불행하고 길었던 역사의 한 장이 마감될 때의 안도감이다. 그러나 미국에서는 똑같은 이야기가 보통 승리주의의 기조로 기록되고 있다. “많은 미국인 평자들과 정책 입안자들에게 지난 백 년이 주는 메시지는 전쟁이 효과가 있다는 것이다. 역사를 이렇게 해석하는 함의는 2003년 이라크 침공 결정에서 이미 감지되었다. 미국 정부에 전쟁은 여전히 선택 범위 안에 있는 수단에 속하며, 그중에서도 최우선으로 쓸 수단이다. 다른 선진국들의 경우에 전쟁은 최후의 수단이 되었다.”
우리는 20세기의 전쟁의 참화로부터 어떤 교훈을 끌어냈다고 주장하지만, 그 교훈이 무엇인지에 대해 혼란을 겪고 있는 듯하다. 유대인 종족 학살 즉 ‘홀로코스트’는 20세기의 악의 화신으로, ‘절대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일의 본보기이자 경고로서 제시된다. 그러나 한편으로 우리는 너무나 쉽게 이라크에서 북한까지 도처에서 ‘악의 축’과 ‘다른 히틀러들’을, 절대로 되풀이되어서는 안 될 유례없는 악의 재등장이 임박했다는 경고를 찾고 있다. “60년 전 해나 아렌트는 우리가 악을 어떻게 말해야 할지 모를까 봐, 따라서 악의 의미를 전혀 파악하지 못할까 봐 두려워했다. 오늘날 우리는 늘 악에 관하여 이야기한다. 그렇지만 결과는 똑같다.”
‘테러’와 ‘테러리즘’, ‘테러리스트’에 집착하는 오늘날의 강박 관념에도 거의 똑같은 혼란이 따라붙는다. 분명히 하자면, “테러리즘에 새로운 것은 없다. 대통령과 군주의 암살이나 암살 기도를 제외하고 정치적 목적을 추구하느라 비무장 민간인을 살해하는 자들에 국한한다고 해도, 테러리스트는 이미 백 년 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우리는 ‘악’이라는 개념을 거듭 끌어내 남용할 때 경솔하게도 그 개념을 하찮은 것으로 만들었던 반면, 테러리즘이라는 용어를 쓸 때에는 그 반대의 실수를 저질렀다.

역사와 미래
결론적으로 주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다시 역사의 교훈이다. 21세기 자본주의의 찬란한 번영이 영원할 것으로 기대하는 터무니없는 낙관에 대해 주트는 경고한다.
“제1차 세계 대전에 앞선 몇십 년간 자본주의 세계가 마지막으로 전례 없는 팽창과 막대한 사유재산 창출의 시대를 보냈을 때, 영국 제국에는 (오늘날 미국과 서유럽에서 그렇듯이) 그때가 진정으로 전례를 찾기 어려운 무한한 평화와 번영의 시대로 넘어가는 문턱이라는 가정이 널리 퍼져 있었다.”
이러한 근거 없는 낙관이 현재에도 만연해 있지는 않은가? 물론 20세기 선배들이 그랬던 것처럼, 우리도 사회 복지의 집단적 제공과 소득과 부의 불평등에 대한 약간의 규제가 그 자체로 중요한 경제적 변수로서 번영의 지속에 꼭 필요한 공적 유대와 정치적 신뢰를 제공한다는 점을, 그리고 오직 국가만이 공동체의 이름으로 그러한 복지와 규제를 적극적으로 보증할 자원과 권위를 지녔다는 점을 마침내 깨달을 수도 있다. 또, 우리는 “규제하는 국가가 건강한 민주주의를 위협하기는커녕 사실상 그 토대라고, 고립되어 위험에 처한 개인들과 규제를 받지 않는 전 지구적 힘들 사이로 점점 더 심하게 분열하는 세계에서 최선의 중개 제도는 민주주의 국가의 합법적인 권력이라고 이해할 수 있다.”
그렇다면 민주주의 국가의 한계는 무엇인가? 사적 창의성과 공익 사이, 자유와 평등 사이의 적절한 균형은 무엇인가? 관리할 수 있는 사회정책 목표들은 무엇이며, 개입과 과도한 간섭은 무엇인가? 사적인 부의 극대화와 사회적 마찰의 최소화 사이에 정확히 어느 지점에서 타협을 이룰 것인가? 정치 공동체와 종교 공동체 사이의 적절한 경계는 무엇이며, 이들 사이의 알력을 최소한으로 줄이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러한 갈등을 협상으로 해결할 수 없다면 (국가 내부에서 그리고 국가들 간에) 어떻게 관리해야 하나?
다가올 21세기의 난제들은 이러하다. 이 문제들은 지난 20세기가 감당해야 했던 과제이기도 하다. 이러한 과제들을 생각해 보면, “오늘날의 ‘자유’의 이데올로그들이 품은 간단한 묘책이 20세기의 이데올로기적 간극의 반대편에 있었던 선배들의 비책만큼이나 소용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며, 어제의 좌파와 오늘의 우파가 다른 무엇보다도 현재의 문제들을 해결하는 데 과거의 경험이 유용하다는 점을 똑같이 당당하게 부정한다는 사실도 알 수 있다. 우리는 이전의 여러 해답이 유효하지 않다는 점을 알 수 있을 만큼 과거에서 충분히 많이 배웠다고 생각한다. 이는 사실일 수도 있다. 그러나 현재의 문제들이 지닌 영속적인 복잡성을 이해하려면 진정으로 과거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한국 사회와 역사
이 새로운 세계가 과거를 충분히 알지 못해서 결국 과거로, 혹은 더 나쁜 무엇으로 회귀할 수 있다는 토니 주트의 경고는 현재의 우리(한국 사회)에게도 뼈아프게 다가올 것이다. 실제로 우리는 과거가 되풀이된다는 느낌을 늘 받는다. 이것이 단순히 느낌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아마도 우리가 정확히 무엇이 반복되는지 모르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사회가 느끼는 불안과 막막함, 혹은 분노는 이러한 상황에서 기인한 것인지 모른다. 역사학자 이이화가 지적했듯이 ‘역사는 과거가 아니라 미래’다. ‘역사를 모른다는 것은 자기정체성뿐 아니라 그 사회의 방향성, 미래를 모르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에게 미래는 절망에 가깝다.
이는 비단 우리만의 문제도 아니다. 해제에서 홍기빈이 밝힌 것처럼, 아시아의 과거는 모두가 합의하는 방식으로 정리된 적이 없다. 황제(黃帝)와 단군과 신무(神武) 천황의 문제도 그러하지만, 특히 20세기로 오게 되면 아시아의 역사는 그야말로 ‘망각된 역사’이다. 각 나라 정부, 이런저런 집단이나 세력이 내미는 그 어떤 버전의 역사 이야기도 모두의 동의를 얻지 못한다. 그 결과 우리는 ‘오늘의 우리’가 정말로 어떻게 해서 나타나게 되었는가에 대해 한 번도 제대로 된 전체적인 이야기와 그림을 얻지 못했다. 그렇게 ‘오늘의 우리’가 부실하다면, ‘내일의 우리’도 나올 리가 없다. 아시아에서는 아직도 냉전이 끝나지 않았으며, 심지어 일본 제국주의도 끝나지 않았다. 사용하고 있는 무기와 언어가 현대화되었을 뿐, 우리는 어쩌면 아직도 1937년 언젠가 혹은 1921년 언젠가를 살고 있는지도 모른다. 상하이와 동경과 서울과 평양 모두. 이러한 상황에서 아시아에 살고 있는 우리가 다시 탈냉전 시대의 내러티브로서 한국 나아가 동아시아의 역사를 서술하는 것은 정말로 소중하고 시급한 일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토니 주트Tony Judt
1948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케임브리지 대학 킹스 칼리지와 파리 고등사범학교에서 수학하고, 케임브리지 대학, 옥스퍼드 대학, 버클리 대학, 뉴욕 대학에서 가르쳤다. 또한 뉴욕 대학에 유럽을 연구하는 레마르크 연구소를 설립해 소장으로 재임했다. 「뉴욕타임스」, 『뉴욕 리뷰 오브 북스』, 『타임스 리터러리 서플먼트』, 『뉴 리퍼블릭』 등 유럽과 미국의 언론에 빈번히 글을 기고해 왔고,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 특별회원, 왕립역사학회 특별회원, 빈의 인간과학연구소 종신회원이기도 했다. ‘전후 유럽에 관한 최고의 역사서’로 평가받는 『포스트워 1945~2005 Postwar: A History of Europe Since 1945』의 저자로 널리 알려진 토니 주트는 불의를 목격할 때마다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말하기를 주저하지 않은 본래적인 의미의 지식인이었다. 그러나 그 명성이 정점에 달해 있던 2008년, 그는 루게릭병 진단을 받았다. 그의 몸은 서서히 마비되기 시작했고, 이내 의료 장비의 도움 없이는 숨조차 쉴 수 없는 상태가 되었다. 주트 자신의 말에 따르면, 그의 육신은 ‘한 주가 지날 때마다 6인치씩 면적이 줄어드는 감방’이었다. 그러한 상황에서도 집필과 강연을... 멈추지 않았고, 이 활동이 그의 마지막 저서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Ill Fares the Land』로 출간된 바 있다. 이 책은 그의 사회적 유언이 되었다.
『재평가: 잃어버린 20세기에 대한 성찰』은 방대한 범위의 주제들을 하나의 연관성으로 묶어 낸 역작이다. 이 책에서 토니 주트는 우리가 ‘망각의 시대’에 들어섰다고 말한다. 우리는 복지국가를 물려받은 이유가 무엇인지, 무엇이 복지국가를 일으켰는지 망각했다. 또한 정치적으로 생각하는 법을 잊어 버렸다. 20세기는 지식인의 세기였지만, 3세대에 걸친 사상과 그 논의들 그리고 유대를 우리는 모른다. 그러한 사상과 개념을 논의하는 법을, 한때 이러한 논의에서 지식인이 맡았던 역할을 잊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21세기는 유례없는 새로움으로만 여겨진다. 그러나 다만 우리가 스스로 어디서 왔는지 모르는 것일 뿐이다. 토니 주트는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의 핵심을 되살려 그것이 우리에게, 우리의 현재와 미래의 희망을 위해, 아직 얼마나 중요한지 상기시킨다.
주요 저서로 『포스트워 1945~2005』, 『더 나은 삶을 상상하라』, 『재평가: 잃어버린 20세기에 대한 성찰』, 『미완의 과거: 프랑스 지성 1944~1956』, 『마르크스주의와 프랑스 좌파』 등이 있다. 2007년에 해나 아렌트 상을, 2009년에 조지 오웰 상을 수상했다. 2010년 8월 루게릭병으로 타계했다.


역자 : 조행복
1966년 경기도 화성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대학원 서양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학과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옮긴 책으로는 『포스트워』, 『독재자들』, 『1차세계대전사』, 『백두산으로 가는 길』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감사의 말
머리말 우리가 잃어버린 세계
해제 토니 주트: 탈냉전 시대의 역사가

1부 어둠의 심장
1장 아서 케스틀러, 지식인의 전형
2장 프리모 레비의 기본적인 진실
3장 마네스 슈페르버의 유대인의 유럽
4장 해나 아렌트와 악

2부 지적 참여의 정치학
5장 알베르 카뮈: ‘가장 훌륭한 프랑스인’
6장 고심의 역작: 루이 알튀세르의 ‘마르크스주의’
7장 에릭 홉스봄과 공산주의의 낭만
8장 그 모든 것에 작별을? 레셰크 코와코프스키와 마르크스주의의 유산
9장 사상의 교황? 요한네스 파울루스 2세와 현대 세계
10장 에드워드 사이드: 뿌리 없는 세계주의자

3부 이행기에 놓친 것들: 장소들과 기억들
11장 대재앙: 프랑스의 몰락, 1940
12장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프랑스와 프랑스의 과거
13장 마당의 땅 신령: 토니 블레어와 영국의 ‘유산’
14장 국가 없는 국가: 왜 벨기에가 중요한가?
15장 역사와 유럽 사이에 선 루마니아
16장 사악한 승리: 이스라엘의 6일 전쟁
17장 성장하지 못하는 나라

4부 미국의 (반)세기
18장 미국의 비극? 휘태커 체임버스 사건
19장 위기: 케네디, 흐루쇼프, 쿠바
20장 환상가: 헨리 키신저와 미국의 외교 정책
21장 누구의 이야기인가? 냉전 회고
22장 양들의 침묵: 미국 자유주의의 이상한 죽음에 관하여
23장 좋은 사회: 유럽 대 미국
결어 부활한 사회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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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특정 상품의 경우 취소 수수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05. 환불시점
환불시점
결제수단 환불시점 환불방법
신용카드 취소완료 후, 3~5일 내 카드사 승인취소(영업일 기준) 신용카드 승인취소
계좌이체 실시간 계좌이체 또는 무통장입금
취소완료 후, 입력하신 환불계좌로 1~2일 내 환불금액 입금(영업일 기준)
계좌입금
휴대폰 결제 당일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6시간 이내 승인취소
전월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1~2일 내 환불계좌로 입금(영업일 기준)
당일취소 : 휴대폰 결제 승인취소
익월취소 : 계좌입금
포인트 취소 완료 후, 당일 포인트 적립 환불 포인트 적립
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환불불가
상품군 취소/반품 불가사유
의류/잡화/수입명품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계절상품/식품/화장품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가전/설치상품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자동차용품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CD/DVD/GAME/BOOK등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내비게이션, OS시리얼이 적힌 PMP 상품의 시리얼 넘버 유출로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