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전쟁을 둘러싼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
전쟁이 파괴한 삶에 대한 준엄한 시선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복잡하기 그지없는 전쟁의 배경과 얽히고설킨 국가 간 이해관계가 아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이 전쟁이 국제정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전쟁 속의 삶, 극단적 폭력의 한가운데 있었던 개인의 삶을 가슴 깊이 떠올려보는 일이므로. 『그 꿈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꿈을 조명함으로써 전쟁이 우리로부터 빼앗아가는 것, 우리에게 남기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이 책에는 네 부류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자신의 꿈과 미래를 이야기하는 이라크 사람들, ‘심각한 얼굴의 사람들’로 대변되는 강대국의 권력자들, 이라크로 파병된 군인들, 그리고 이 모든 사태를 ‘관전’하는 세상 사람들이 그들이다. 이 책이 깊은 감동과 뼈아픈 반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각 존재의 삶으로 전쟁을 들여다보았기 때문이다. 전쟁이 평범한 사람들의 인간성을 어떻게 말살하는지, 또 그런 상황에서도 인간의 고귀함은 어떻게 지켜지는지는 자극적인 수치나 누가, 왜, 어디에서라는 정보가 아니라, 개개의 사연으로 접근할 때 비로소 진실하게 드러난다.
어느 날은 백 명이었고,
어느 날은 백오십 명이라 했습니다.
어느 날은 공원에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했고,
또 어느 날은 예배당 건물에 포탄이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뉴스에서는 거기까지만 말해 줄 뿐,
죽거나 다치게 된 이들이 간직한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본문 69쪽
축구 선수를 꿈꾸는 알라위, 구두닦이로 작은 집을 마련하는 것이 꿈인 핫싼, 택시를 몰며 연인 가디르와의 신혼을 꿈꾸는 하이달,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파라, 타고난 손재주로 자동차를 만드는 기술자가 되고 싶다는 모하메드, 자식, 손자들과 한집에 모여 사는 것이 생의 마지막 꿈인 나이 아흔의 무스타파, 아이들을 돌보며 살고 싶다는 도하와 마을에서 공부방을 운영하는 그녀의 아버지 살람……. 이들은 가난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소박한 꿈을 키우며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로 치면 전장에 파병된 군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마이클 일병, 존슨 상사, 스미스, 토미 역시 가족을 사랑하고 책임감 강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이들의 그 소박한 꿈을, 사랑하는 사람을, 오지 않은 미래를 무참히 짓밟았고, 인간 본성을 저버리게까지 했다. 그 주범은 말할 것도 없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자 ‘정의로운 전쟁’, ‘착한 전쟁’이라는 거짓 선전으로 전쟁을 일으킨 권력자들이다.
심각한 얼굴의 사람들 가운데 장교 옷을 입은 사람,
그이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기자들 앞에 섰습니다.
“독재자가 비밀 무기를 숨겨 둔 곳을 공격했습니다.
이 정의로운 전쟁은 계획대로 잘 되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자유의 땅이 될 것이고,
이곳에서도 누구나 꿈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 본문 60쪽
타인의 고통을 나의 것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전쟁을 주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총을 쏘지 않았다고 해서, 증오를 품지 않았다고 해서 전쟁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 전쟁을 구경하고 방관하고 외면했다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우리는 전쟁을 옹호하고 평화를 방해한 공범자들이다. 특히나 이라크전은 각종 첨단무기가 동원되어 마치 컴퓨터 게임처럼 전장 상황이 전 세계로 보도되었던 전쟁이다. 많은 사람이 그곳 사람들의 삶을 염려하기보다는 최신 무기, 사망자 수 등에 관심을 모았으며, 시간이 지나면서는 그마저도 시들해져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불꽃놀이에 불과해져 버렸다. 박기범 작가는 전쟁과 가장 거리가 무관한 듯 보이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주요한 시선을 던진다.
세상 사람들은 눈만 뜨면 저 먼 나라 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백화점으로 가는 승용차 안에서도,
바비큐를 하는 캠핑장에서도,
빌딩이 들어찬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악당 무리에 대한 이야기는 날씨 얘기처럼 떠돌았습니다.
긴가민가 고개를 갸웃하거나
설마 하는 마음에 못 들은 체하려 해도
자꾸만 듣게 되는 악당 무리에 대한 이야기는
유쾌할 수가 없었습니다. - 본문 18쪽
하루가 멀다 하고 접하는 폭력, 살인, 전쟁 관련 정보는 더 이상 충격도, 분노도, 반성도 일으키지 않는다. 정보가 너무 많다는 것은 그 정보에 무감각해진다는 점에서 정보가 전혀 없는 것과 다름없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심각한 얼굴의 사람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온갖 정보를 무차별로 쏟아냄으로써 우리 모두의 공감 능력을 마비시키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쟁에 대한 건조한 보고서를 읽는 일이 아니라, 전쟁으로 삶 자체가 말살당한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을 마주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그 고통과 슬픔을 나의 것으로 느끼고, 다시는 지구상에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작은 행동이나마 실천에 옮기는 일일 것이다. 이라크의 상황은 먼 나라 낯선 타인의 삶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살지도 몰랐던 삶을 대신 살고 있는 또 다른 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가 이 책을 어린이들을 위해 쓴 이유는 분명하다. 아이들이 “슬퍼할 줄 아는 힘”을 잃는 순간 인류에겐 더 이상 평화도, 미래도 없는 까닭이다. 타인의 고통에 눈물 흘릴 줄 아는 인간으로 자라날 때, 아이들은 증오와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을 변화시킬 유일한 희망이 된다.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지금과는 다를 거예요.
우리가 바꾸어 갈 거고,
이 아이들이
바꾸어 낼 테니까요. - 본문 16쪽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전쟁
“평화를 살아가는 일”의 의미
2011년 12월,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함으로써 종전을 고했다. 이라크 전쟁은 끝났지만 그 자리를 평화가 대신하지는 않았다. 전쟁으로 가족과 일상과 꿈을 빼앗기고 종교 갈등으로 내전까지 겪으면서 이라크 사람들의 삶은 복구의 희망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너덜너덜해졌다. 평화를 가져다주겠다며 시작한 전쟁이 평화와 더 멀어지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무스타파 할아버지의 말은 이라크의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
수십 년 뒤면 다다를 수 있는 그것을,
이 전쟁으로 하여
수백 년 뒤에나 닿을 수 있게 되고 말았다오.
이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건 오로지 전쟁뿐이라오.
이제껏보다 더 질기게 이어질 혹독한 시간. -본문 91쪽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오늘까지도 피의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고,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인 한반도 역시 분단 이후 오늘까지 사실상 ‘전쟁 중’이다. 전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아마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이 단순한 반전 구호가 아닌 “평화를 살아가는 일”에 대해, “빼앗을 것도, 빼앗을 수도 없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결국 전쟁은 인간의 욕심이 빚어내는 최대의 비극이니 말이다.
『그 꿈들』을 쓰고 그린 작가와 화가에 대해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여 현지에서 반전, 난민 구호, 의료 지원 활동 등을 하기 위해 2003년 1월 결성된 단체로, 박기범 작가는 이 단체를 통해 이라크에 입국했다. 그곳에서 그는 낮에는 주요 시설들을 지키거나 어린이들을 돌보고, 밤에는 폭격을 버티며 전쟁의 실상을 기록하고 이라크 인들과 함께 전쟁을 겪었다. 이라크에 다녀온 직후에는 한국의 추가 파병을 막기 위한 단식 운동을 했고, 전범민중재판, 이라크국제전범재판 등에 참여했으며, 이라크가 내전으로 악화일로를 걷던 무렵엔, 2003년 인연을 맺었으며 이 책에도 등장하는 이라크 인 살람 아저씨와 함께 한국과 이라크 어린이들의 편지 나눔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10년 만에, 혹은 10년에 걸쳐서야 그곳에서의 기억을 불러와 쓴 글에 김종숙 화가는 슬픔과 분노를 쏟아 붓듯 엄청난 양의 유화 물감을 들여 총 37점의 그림을 그려 냈다. 한 권의 책에 들어가는 그림을 전부 유화로 작업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압도적인 크기의 캔버스를 채운 그림들을 특수 촬영하고, 원화에 가장 가까운 색을 구현하기 위해 인쇄에 특별히 신경 썼다. 이라크에서 만난 실제 인물을 찍은 사진을 토대로 그린 원화 전시회가 『그 꿈들』의 출간에 맞춰 열리니(합정동 사각형 갤러리, 8월 11일~23일) 책의 감동을 배가하는 기회로 삼아도 좋겠다.
▣ 작가 소개
글 : 박기범
동화 쓰는 사람. 이천삼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할 무렵, 그곳 아이들의 곁이 되고자 인간방패, 평화지킴이로 전쟁터로 들어가 그 전쟁을 함께 겪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로 그곳에서 인연을 맺은 이들과 우정을 나누며 평화를 바라는 일들로 지내었으나, 내전으로 치닫는 상황에 하나둘 소식마저 멀어졌다. 세상에 대한 무력감은 글을 쓰는 일에 대한 자괴감으로 이어졌고, 이천칠년, 한옥 짓는 일을 배우는 목수학교에 들어갔다. 이천십이년, 숭례문 복원공사와 석가탑 해체보수공사 같은 곳에 잡부로 들어가 맨 밑에서 일들을 배운 뒤, 지금은 문화재보수기술자가 되어 일을 하고 있다.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글과그림」 동인으로 『문제아』, 『미친개』 같은 동화를 썼다. gibumi.tistory.com
그림 : 김종숙
그림 그리는 사람.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림 그리는 것으로 진정의 끝에 닿고자 하며, 붓을 잡으면 고통스러운 대결을 놓지 못한다. 가난하고 굶주리고 눈물겨운 것,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그 극한의 칼날 위를 걸어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그러하기에 그의 작업을 지켜보는 일은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당신의 붓질 하나하나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를 알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살라 버릴 것만 같은, 몸속 식지 않는 불덩이. 그러나 그 작고 가녀린 몸으로 오징어 덕장에서는 다른 이보다 곱절의 일을 씩씩하게 해내며, 식당 설거지도 마다하지 않고 즐겁게 해 오고 있다. 1965년 속초에서 태어났고, 「글과그림」 동인으로 『미친개』에 그림을 그렸다.
전쟁을 둘러싼 사람들의 생생한 목소리
전쟁이 파괴한 삶에 대한 준엄한 시선
작가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복잡하기 그지없는 전쟁의 배경과 얽히고설킨 국가 간 이해관계가 아니다. 미국이 이라크를 공격한 ‘진짜 이유’가 무엇인지, 이 전쟁이 국제정치에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아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전쟁 속의 삶, 극단적 폭력의 한가운데 있었던 개인의 삶을 가슴 깊이 떠올려보는 일이므로. 『그 꿈들』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소중한 꿈을 조명함으로써 전쟁이 우리로부터 빼앗아가는 것, 우리에게 남기는 것을 극명하게 보여 준다.
이 책에는 네 부류의 인물들이 등장한다. 자신의 꿈과 미래를 이야기하는 이라크 사람들, ‘심각한 얼굴의 사람들’로 대변되는 강대국의 권력자들, 이라크로 파병된 군인들, 그리고 이 모든 사태를 ‘관전’하는 세상 사람들이 그들이다. 이 책이 깊은 감동과 뼈아픈 반성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각 존재의 삶으로 전쟁을 들여다보았기 때문이다. 전쟁이 평범한 사람들의 인간성을 어떻게 말살하는지, 또 그런 상황에서도 인간의 고귀함은 어떻게 지켜지는지는 자극적인 수치나 누가, 왜, 어디에서라는 정보가 아니라, 개개의 사연으로 접근할 때 비로소 진실하게 드러난다.
어느 날은 백 명이었고,
어느 날은 백오십 명이라 했습니다.
어느 날은 공원에서 폭발이 일어났다고 했고,
또 어느 날은 예배당 건물에 포탄이 떨어졌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뉴스에서는 거기까지만 말해 줄 뿐,
죽거나 다치게 된 이들이 간직한
이야기들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었습니다. -본문 69쪽
축구 선수를 꿈꾸는 알라위, 구두닦이로 작은 집을 마련하는 것이 꿈인 핫싼, 택시를 몰며 연인 가디르와의 신혼을 꿈꾸는 하이달, 초등학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파라, 타고난 손재주로 자동차를 만드는 기술자가 되고 싶다는 모하메드, 자식, 손자들과 한집에 모여 사는 것이 생의 마지막 꿈인 나이 아흔의 무스타파, 아이들을 돌보며 살고 싶다는 도하와 마을에서 공부방을 운영하는 그녀의 아버지 살람……. 이들은 가난하지만 누군가를 사랑하고 소박한 꿈을 키우며 ‘우리’와 다르지 않은 삶을 사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그렇기로 치면 전장에 파병된 군인들 역시 마찬가지다. 마이클 일병, 존슨 상사, 스미스, 토미 역시 가족을 사랑하고 책임감 강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전쟁은 이들의 그 소박한 꿈을, 사랑하는 사람을, 오지 않은 미래를 무참히 짓밟았고, 인간 본성을 저버리게까지 했다. 그 주범은 말할 것도 없이 자신들의 이익을 챙기고자 ‘정의로운 전쟁’, ‘착한 전쟁’이라는 거짓 선전으로 전쟁을 일으킨 권력자들이다.
심각한 얼굴의 사람들 가운데 장교 옷을 입은 사람,
그이는 의기양양한 얼굴로 기자들 앞에 섰습니다.
“독재자가 비밀 무기를 숨겨 둔 곳을 공격했습니다.
이 정의로운 전쟁은 계획대로 잘 되고 있습니다.
이 나라는 자유의 땅이 될 것이고,
이곳에서도 누구나 꿈을 이루며 살아갈 수 있습니다.” - 본문 60쪽
타인의 고통을 나의 것으로 생각해 본 적이 있나요
그렇다면 전쟁을 주도하지 않았다고 해서, 총을 쏘지 않았다고 해서, 증오를 품지 않았다고 해서 전쟁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을까? 그 전쟁을 구경하고 방관하고 외면했다는 것만으로도 어쩌면 우리는 전쟁을 옹호하고 평화를 방해한 공범자들이다. 특히나 이라크전은 각종 첨단무기가 동원되어 마치 컴퓨터 게임처럼 전장 상황이 전 세계로 보도되었던 전쟁이다. 많은 사람이 그곳 사람들의 삶을 염려하기보다는 최신 무기, 사망자 수 등에 관심을 모았으며, 시간이 지나면서는 그마저도 시들해져 먼 나라에서 일어나는 불꽃놀이에 불과해져 버렸다. 박기범 작가는 전쟁과 가장 거리가 무관한 듯 보이는 ‘세상 사람들’에게도 주요한 시선을 던진다.
세상 사람들은 눈만 뜨면 저 먼 나라 소식을 들어야 했습니다.
백화점으로 가는 승용차 안에서도,
바비큐를 하는 캠핑장에서도,
빌딩이 들어찬 도심 한가운데에서도,
악당 무리에 대한 이야기는 날씨 얘기처럼 떠돌았습니다.
긴가민가 고개를 갸웃하거나
설마 하는 마음에 못 들은 체하려 해도
자꾸만 듣게 되는 악당 무리에 대한 이야기는
유쾌할 수가 없었습니다. - 본문 18쪽
하루가 멀다 하고 접하는 폭력, 살인, 전쟁 관련 정보는 더 이상 충격도, 분노도, 반성도 일으키지 않는다. 정보가 너무 많다는 것은 그 정보에 무감각해진다는 점에서 정보가 전혀 없는 것과 다름없는지도 모른다. 그리고 책에 등장하는 ‘심각한 얼굴의 사람들’이 노리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온갖 정보를 무차별로 쏟아냄으로써 우리 모두의 공감 능력을 마비시키는 것.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전쟁에 대한 건조한 보고서를 읽는 일이 아니라, 전쟁으로 삶 자체가 말살당한 한 사람 한 사람의 고통을 마주하는 일이다. 그리하여 그 고통과 슬픔을 나의 것으로 느끼고, 다시는 지구상에 이런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작은 행동이나마 실천에 옮기는 일일 것이다. 이라크의 상황은 먼 나라 낯선 타인의 삶이 아니라, 어쩌면 내가 살지도 몰랐던 삶을 대신 살고 있는 또 다른 나의 현실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작가가 이 책을 어린이들을 위해 쓴 이유는 분명하다. 아이들이 “슬퍼할 줄 아는 힘”을 잃는 순간 인류에겐 더 이상 평화도, 미래도 없는 까닭이다. 타인의 고통에 눈물 흘릴 줄 아는 인간으로 자라날 때, 아이들은 증오와 폭력으로 얼룩진 세상을 변화시킬 유일한 희망이 된다.
이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지금과는 다를 거예요.
우리가 바꾸어 갈 거고,
이 아이들이
바꾸어 낼 테니까요. - 본문 16쪽
아직도 계속되고 있는 전쟁
“평화를 살아가는 일”의 의미
2011년 12월, 미군이 이라크에서 철수함으로써 종전을 고했다. 이라크 전쟁은 끝났지만 그 자리를 평화가 대신하지는 않았다. 전쟁으로 가족과 일상과 꿈을 빼앗기고 종교 갈등으로 내전까지 겪으면서 이라크 사람들의 삶은 복구의 희망조차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너덜너덜해졌다. 평화를 가져다주겠다며 시작한 전쟁이 평화와 더 멀어지게 만들어 버린 것이다. 책에 등장하는 무스타파 할아버지의 말은 이라크의 상황을 한마디로 요약한다.
수십 년 뒤면 다다를 수 있는 그것을,
이 전쟁으로 하여
수백 년 뒤에나 닿을 수 있게 되고 말았다오.
이 전쟁이 우리에게 남긴 건 오로지 전쟁뿐이라오.
이제껏보다 더 질기게 이어질 혹독한 시간. -본문 91쪽
‘중동의 화약고’로 불리는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은 오늘까지도 피의 악순환을 계속하고 있고, 지구상 유일한 분단국인 한반도 역시 분단 이후 오늘까지 사실상 ‘전쟁 중’이다. 전쟁은 오늘도 계속되고 있다. 아마 인류 역사에서 전쟁이 완전히 사라지는 순간은 영원히 오지 않을 것이다. 그러므로 이 책이 단순한 반전 구호가 아닌 “평화를 살아가는 일”에 대해, “빼앗을 것도, 빼앗을 수도 없는 삶”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결국 전쟁은 인간의 욕심이 빚어내는 최대의 비극이니 말이다.
『그 꿈들』을 쓰고 그린 작가와 화가에 대해
한국이라크반전평화팀은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반대하여 현지에서 반전, 난민 구호, 의료 지원 활동 등을 하기 위해 2003년 1월 결성된 단체로, 박기범 작가는 이 단체를 통해 이라크에 입국했다. 그곳에서 그는 낮에는 주요 시설들을 지키거나 어린이들을 돌보고, 밤에는 폭격을 버티며 전쟁의 실상을 기록하고 이라크 인들과 함께 전쟁을 겪었다. 이라크에 다녀온 직후에는 한국의 추가 파병을 막기 위한 단식 운동을 했고, 전범민중재판, 이라크국제전범재판 등에 참여했으며, 이라크가 내전으로 악화일로를 걷던 무렵엔, 2003년 인연을 맺었으며 이 책에도 등장하는 이라크 인 살람 아저씨와 함께 한국과 이라크 어린이들의 편지 나눔을 시작하여 지금까지 이어 오고 있다.
10년 만에, 혹은 10년에 걸쳐서야 그곳에서의 기억을 불러와 쓴 글에 김종숙 화가는 슬픔과 분노를 쏟아 붓듯 엄청난 양의 유화 물감을 들여 총 37점의 그림을 그려 냈다. 한 권의 책에 들어가는 그림을 전부 유화로 작업하는 것은 드문 일이다. 압도적인 크기의 캔버스를 채운 그림들을 특수 촬영하고, 원화에 가장 가까운 색을 구현하기 위해 인쇄에 특별히 신경 썼다. 이라크에서 만난 실제 인물을 찍은 사진을 토대로 그린 원화 전시회가 『그 꿈들』의 출간에 맞춰 열리니(합정동 사각형 갤러리, 8월 11일~23일) 책의 감동을 배가하는 기회로 삼아도 좋겠다.
▣ 작가 소개
글 : 박기범
동화 쓰는 사람. 이천삼년, 미국의 이라크 침공이 시작할 무렵, 그곳 아이들의 곁이 되고자 인간방패, 평화지킴이로 전쟁터로 들어가 그 전쟁을 함께 겪었다. 한국에 돌아온 뒤로 그곳에서 인연을 맺은 이들과 우정을 나누며 평화를 바라는 일들로 지내었으나, 내전으로 치닫는 상황에 하나둘 소식마저 멀어졌다. 세상에 대한 무력감은 글을 쓰는 일에 대한 자괴감으로 이어졌고, 이천칠년, 한옥 짓는 일을 배우는 목수학교에 들어갔다. 이천십이년, 숭례문 복원공사와 석가탑 해체보수공사 같은 곳에 잡부로 들어가 맨 밑에서 일들을 배운 뒤, 지금은 문화재보수기술자가 되어 일을 하고 있다. 1973년 서울에서 태어났고, 「글과그림」 동인으로 『문제아』, 『미친개』 같은 동화를 썼다. gibumi.tistory.com
그림 : 김종숙
그림 그리는 사람. 아무것도 먹지 않은 채 그림만 그릴 수 있다면 좋겠다고 말한다. 그림 그리는 것으로 진정의 끝에 닿고자 하며, 붓을 잡으면 고통스러운 대결을 놓지 못한다. 가난하고 굶주리고 눈물겨운 것, 그것을 외면하지 않고 그 극한의 칼날 위를 걸어야만 비로소 자유로워질 수 있는. 그러하기에 그의 작업을 지켜보는 일은 조마조마하기만 하다. 당신의 붓질 하나하나가 얼마나 고통스러울지를 알기에. 자신의 모든 것을 살라 버릴 것만 같은, 몸속 식지 않는 불덩이. 그러나 그 작고 가녀린 몸으로 오징어 덕장에서는 다른 이보다 곱절의 일을 씩씩하게 해내며, 식당 설거지도 마다하지 않고 즐겁게 해 오고 있다. 1965년 속초에서 태어났고, 「글과그림」 동인으로 『미친개』에 그림을 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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