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우리에게 간도는 무엇인가?
간도는 한반도의 북쪽 국경선 너머에 위치하는 땅이다. 간도가 어느 지역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백두산정계비와 토문강, 송화강, 흑룡강과 두만강으로 둘러싸인 지역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강으로 둘러싸인 섬과 같은 지역이라는 뜻에서 사이 간(間) 자와 섬 도(島) 자를 써서 간도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고구려와 발해가 다스리는 한민족의 영토였으나 926년 발해 멸망 후 우리에게 900여 년 동안 잊혀진 땅이 되고 말았다. 그 후 19세기 말 가렴주구를 견디지 못한 조상들은 무인국경지대였던 간도로 넘어가 땅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조상들은 힘들여 개간한 땅을 차지하려는 청인들에게 수난을 받으면서도 청으로 귀화하지 않았고 일제가 청에 간도를 넘겨줬을 때도 그 땅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민족은 간도에 자리 잡았고, 일제강점기 시절 간도는 우리에게 독립운동의 터전이자 또 하나의 조국이 되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또 다시 간도를 잊어가고 있는가.
“김 변호사는 간도를 왜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네? 간도가 원래 우리 땅이기 때문에 찾아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단지 그것뿐입니까?”
“……?”
“간도는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제공해준 땅입니다. 일본은 1909년 간도협약으로 간도를 청에 넘겨줬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이 넘겨준 간도가 있었기에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간도는 식민지시절 한민족의 명맥을 이어준 또 하나의 조선이었습니다. 일본에게 독립운동의 터전이 되는 간도는 눈엣가시였습니다. 그래서 간도참변을 일으켜 우리 조상들을 무참히 살육해버렸죠. 독립을 위해 싸우던 조상들이 간도에 잠들어 있습니다. 이런 간도를 내버려두어서야 되겠습니까?”
조선시대의 봉금지역(비무장지대처럼 선이 아닌 공간으로 설정한 국경)이었던 간도는 먹고살기 힘들던 조선 백성들에게 비옥한 토지를 제공했고, 일제강점기 한민족에게 독립의 발판을 마련해준 땅이었다. 간도를 되찾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되짚는 과정이기도 하다.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과 중국이 풀어내는 논리가 팽팽하게 맞서는 법정. 현직 변호사인 저자는 한국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무조건 간도가 한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라, 간도라는 땅과 그 의의를 밝히고자 함이다. 간도는 과연 한국의 땅이라고 할 수 있는가?
소송 자격, 권리의 시효 등 이어지는 중국 측 공세
백두산정계비와 간도협약 효력을 둘러싼 치열한 법리 싸움
“‘피고 중화인민공화국은 원고 대한민국에게 사건대상 간도를 반환하라’는 판결을 구합니다.”
소장을 받은 중국은 한국이 말도 안 되는 소송을 걸어왔다고 여긴다. ‘한국이 북한처럼 간도와 가까이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지난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중국에 편입된 간도에 대해 묵인해왔다. 그런 한국이 이제 와서 간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닌가.’ 그러나 한국 소송팀은 생각지도 못한 이론으로 중국의 생각을 뒤집는다. ‘아버지’ 대한제국의 영토 분쟁 문제는 ‘두 아들’인 한국과 북한에게 모두 승계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에 중국은 일제강점기 당시 간도협약을 통해 일본에게 간도를 넘겨받았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이 소송은 이유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맺어진 협약은 대한제국의 의사와는 상반하는 것이었다. 한국 측은 을사조약이 일본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것이므로 일본이 체결한 협약 또한 무효라는 주장을 펼친다.
양측의 공방은 한 치의 물러섬이 없이 계속되고, 그 와중에 한국은 1882년을 결정적 기일로 주장한다. 결정적 기일은 영토분쟁이 처음 일어난 일자를 말하며, 이것이 정해지면 재판부는 그 시점 이전의 상황만을 토대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 한국의 결정적 기일 주장에 따라 백두산정계비가 중요한 증거로 떠오른다.
西爲鴨錄 東爲土門 故於分水嶺上 勒石爲記
(서위압록 동위토문 고어분수령상 늑석위기)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을 경계로 하여 두 강의 물줄기가 갈라지는 분수령에 비를 세워 이 사실을 기록한다.
1885년과 1887년에 이미 청과 조선 사이에도 국경을 정하고자 하는 회담이 있었지만 모두 결렬되고 만다. 두 나라 사이의 국경을 명시한 백두산정계비 비문 내용을 달리 해석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토문강이 두만강이라고 주장했고 한국은 송화강 상류인 홍토수라고 주장했으나 결국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이어진 논란이 135년이 지난 현재 국제사법재판소의 소송으로 이어진 것이다.
900년 동안 우리 역사에서 잊혀졌던 땅
백두산 화산 폭발설로 드러나는 발해 멸망의 비밀
역사적 증거들을 낱낱이 제시하며 계속되던 영토 소송은 급기야 역사 전쟁으로 번진다. 중국은 간도 지역이 한국의 역사였던 적이 없다며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의 역사였다고 주장한다. 한국이 한 번이라도 점령한 역사가 없었던 땅이 한국의 땅일 리가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소위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자신들의 것으로 편입시키려는 것이다. 이에 한국 소송팀은 《삼국지》《삼국유사》 등 역사서의 기록을 증거로 제시하며 중국의 억지를 일축한다.
피고의 역사서 중에 진수의 《삼국지》가 있습니다. 위촉오 삼국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삼국지》 위서 오환선비동이전에는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마한, 진변, 왜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진수가 이들 국가들을 모두 같은 동이족으로 인식하였다는 점, 나아가 위촉오 삼국의 역사와 별개의 역사로 인식하였다는 점에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 한국 측 변론
그러나 고구려와 발해가 한국의 역사라고는 해도, 발해 멸망 후 900년 동안 간도 지역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는 중국의 변론에 한국 측은 혼란에 빠진다. 조선의 유학자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두 번의 감계회담을 치렀던 이중하 등이 남긴 글에는 ‘토문강이 두만강’이며 간도는 조선의 영토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토문강은 곧 두만강이다. … 조선의 영토가 금구와 같이 확고한데 쓸모없는 땅을 가지고 다툴 이유가 없다.” - 성호 이익
‘도대체 왜 이런 글을 남긴 것일까?’
이해할 수 없는 글에 좌절하며 고민을 거듭하던 김명찬 변호사와 한국 소송팀은 해동성국이라고 불릴 만큼 강성했던 발해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멸망했고 그 후에 고구려나 백제와 달리 부흥운동이랄 만한 것도 없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그 이유가 백두산의 화산 폭발이 그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한중일 삼국 역사서 어디에도 백두산 화산이 폭발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소송팀은 이를 바탕으로 간도가 버려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파헤치며 소송의 막바지를 준비한다.
135년 동안 미뤄졌던 또 하나의 영토전쟁 결과는…
중국은 영토 정책과 역사 정책을 통해 간도에 서린 역사까지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그들의 정책을 두고만 본다면, 간도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의의까지 희미해질 것이다. 그렇게 간도를 잊어버리면 고구려와 발해까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일본은 센가쿠와 독도 등에 대해, 중국은 간도뿐 아니라 신장과 티베트 등의 영토에 대해 확고한 정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영토 정책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간도에 대해 조사하던 저자는 어째서 강단 사학자들이 간도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는지를 깨닫는다. 《조선왕조실록》이 백두산정계비 설립 당시 조선 조정이 토문을 두만강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도를 찾을 수 없다면 그 이유라고 명백히 밝혀야 한다는 생각에, 저자는 이번에는 간도를 가상 재판에 제소했다. 전작 《독도반환 청구소송》에서 그랬듯이 저자는 재판이라는 과정 속에서 객관적,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두 나라의 논리를 사실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간도가 어느 나라의 땅인지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강정민
한양대 법대 및 경희대 법과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제4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오랜 기간 변호사로 활동해오다가 어느 날 자신의 전공인 법률지식과 시사적 이슈를 결합하여 가상의 재판과정을 그리는 소설을 쓰게 되었다. 《독도반환 청구소송》을 쓰던 중 간도에 관심을 가지면서 간도 또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땅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 책을 썼다.
그는 상반되는 두 입장을 총체적으로 표출하는 소송방식이야말로 다큐멘터리이자 문학 아니겠느냐는 소신을 가지고 ‘법과 삶’을 다룬 일련의 재판소설을 지속적으로 써나갈 계획이다. 저서로 《독도반환 청구소송》이 있으며 〈주간조선〉에 ‘간도 영유권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와 ‘독도에 관한 불편한 진실’ 등 칼럼을 연재했다.
▣ 주요 목차
들어가는 말
프롤로그
제1부 공약
제2부 당사자 적격
제3부 한일합병
제4부 간도협약
제5부 결정적 기일
제6부 백두산정계비
제7부 봉금정책
제8부 동북공정
제9부 백두산은 알고 있다
에필로그
작가후기
부록
우리에게 간도는 무엇인가?
간도는 한반도의 북쪽 국경선 너머에 위치하는 땅이다. 간도가 어느 지역인지에 대해서는 여러 견해가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백두산정계비와 토문강, 송화강, 흑룡강과 두만강으로 둘러싸인 지역을 가리킨다는 것이다. 이렇게 강으로 둘러싸인 섬과 같은 지역이라는 뜻에서 사이 간(間) 자와 섬 도(島) 자를 써서 간도라는 이름이 붙여진 것으로 보인다.
이 지역은 고구려와 발해가 다스리는 한민족의 영토였으나 926년 발해 멸망 후 우리에게 900여 년 동안 잊혀진 땅이 되고 말았다. 그 후 19세기 말 가렴주구를 견디지 못한 조상들은 무인국경지대였던 간도로 넘어가 땅을 개간하기 시작했다. 조상들은 힘들여 개간한 땅을 차지하려는 청인들에게 수난을 받으면서도 청으로 귀화하지 않았고 일제가 청에 간도를 넘겨줬을 때도 그 땅을 떠나지 않았다. 그렇게 한민족은 간도에 자리 잡았고, 일제강점기 시절 간도는 우리에게 독립운동의 터전이자 또 하나의 조국이 되었다. 그런데 왜 우리는 또 다시 간도를 잊어가고 있는가.
“김 변호사는 간도를 왜 되찾아야 한다고 생각합니까?”
“네? 간도가 원래 우리 땅이기 때문에 찾아와야 하는 것 아닌가요?”
“단지 그것뿐입니까?”
“……?”
“간도는 우리가 일본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었던 원동력을 제공해준 땅입니다. 일본은 1909년 간도협약으로 간도를 청에 넘겨줬습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일본이 넘겨준 간도가 있었기에 독립운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간도는 식민지시절 한민족의 명맥을 이어준 또 하나의 조선이었습니다. 일본에게 독립운동의 터전이 되는 간도는 눈엣가시였습니다. 그래서 간도참변을 일으켜 우리 조상들을 무참히 살육해버렸죠. 독립을 위해 싸우던 조상들이 간도에 잠들어 있습니다. 이런 간도를 내버려두어서야 되겠습니까?”
조선시대의 봉금지역(비무장지대처럼 선이 아닌 공간으로 설정한 국경)이었던 간도는 먹고살기 힘들던 조선 백성들에게 비옥한 토지를 제공했고, 일제강점기 한민족에게 독립의 발판을 마련해준 땅이었다. 간도를 되찾기 위해 준비하는 과정은 우리 민족의 역사를 되짚는 과정이기도 하다.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한국과 중국이 풀어내는 논리가 팽팽하게 맞서는 법정. 현직 변호사인 저자는 한국의 입장에 치우치지 않고 객관적 시각에서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무조건 간도가 한국의 영토라고 주장하려는 것은 아니라, 간도라는 땅과 그 의의를 밝히고자 함이다. 간도는 과연 한국의 땅이라고 할 수 있는가?
소송 자격, 권리의 시효 등 이어지는 중국 측 공세
백두산정계비와 간도협약 효력을 둘러싼 치열한 법리 싸움
“‘피고 중화인민공화국은 원고 대한민국에게 사건대상 간도를 반환하라’는 판결을 구합니다.”
소장을 받은 중국은 한국이 말도 안 되는 소송을 걸어왔다고 여긴다. ‘한국이 북한처럼 간도와 가까이 붙어 있는 것도 아니고 지난 100년이 넘는 세월 동안 중국에 편입된 간도에 대해 묵인해왔다. 그런 한국이 이제 와서 간도 영유권을 주장하는 것은 어불성설이 아닌가.’ 그러나 한국 소송팀은 생각지도 못한 이론으로 중국의 생각을 뒤집는다. ‘아버지’ 대한제국의 영토 분쟁 문제는 ‘두 아들’인 한국과 북한에게 모두 승계된다는 주장이 그것이다.
이에 중국은 일제강점기 당시 간도협약을 통해 일본에게 간도를 넘겨받았다는 사실을 내세우며 이 소송은 이유 없다는 입장을 취한다. 하지만 일제강점기에 맺어진 협약은 대한제국의 의사와는 상반하는 것이었다. 한국 측은 을사조약이 일본의 강압에 의해 체결된 것이므로 일본이 체결한 협약 또한 무효라는 주장을 펼친다.
양측의 공방은 한 치의 물러섬이 없이 계속되고, 그 와중에 한국은 1882년을 결정적 기일로 주장한다. 결정적 기일은 영토분쟁이 처음 일어난 일자를 말하며, 이것이 정해지면 재판부는 그 시점 이전의 상황만을 토대로 판단을 내려야 한다. 한국의 결정적 기일 주장에 따라 백두산정계비가 중요한 증거로 떠오른다.
西爲鴨錄 東爲土門 故於分水嶺上 勒石爲記
(서위압록 동위토문 고어분수령상 늑석위기)
서쪽으로는 압록강 동쪽으로는 토문강을 경계로 하여 두 강의 물줄기가 갈라지는 분수령에 비를 세워 이 사실을 기록한다.
1885년과 1887년에 이미 청과 조선 사이에도 국경을 정하고자 하는 회담이 있었지만 모두 결렬되고 만다. 두 나라 사이의 국경을 명시한 백두산정계비 비문 내용을 달리 해석했기 때문이다. 중국은 토문강이 두만강이라고 주장했고 한국은 송화강 상류인 홍토수라고 주장했으나 결국 결론이 나지 않았다. 그렇게 이어진 논란이 135년이 지난 현재 국제사법재판소의 소송으로 이어진 것이다.
900년 동안 우리 역사에서 잊혀졌던 땅
백두산 화산 폭발설로 드러나는 발해 멸망의 비밀
역사적 증거들을 낱낱이 제시하며 계속되던 영토 소송은 급기야 역사 전쟁으로 번진다. 중국은 간도 지역이 한국의 역사였던 적이 없다며 고구려와 발해가 중국의 역사였다고 주장한다. 한국이 한 번이라도 점령한 역사가 없었던 땅이 한국의 땅일 리가 없다는 것이다. 중국은 소위 동북공정을 통해 고구려와 발해의 역사를 자신들의 것으로 편입시키려는 것이다. 이에 한국 소송팀은 《삼국지》《삼국유사》 등 역사서의 기록을 증거로 제시하며 중국의 억지를 일축한다.
피고의 역사서 중에 진수의 《삼국지》가 있습니다. 위촉오 삼국시대의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삼국지》 위서 오환선비동이전에는 부여, 고구려, 옥저, 동예, 마한, 진변, 왜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진수가 이들 국가들을 모두 같은 동이족으로 인식하였다는 점, 나아가 위촉오 삼국의 역사와 별개의 역사로 인식하였다는 점에 주목해주시기 바랍니다. - 한국 측 변론
그러나 고구려와 발해가 한국의 역사라고는 해도, 발해 멸망 후 900년 동안 간도 지역에는 눈길도 주지 않았다는 중국의 변론에 한국 측은 혼란에 빠진다. 조선의 유학자 성호 이익, 다산 정약용, 두 번의 감계회담을 치렀던 이중하 등이 남긴 글에는 ‘토문강이 두만강’이며 간도는 조선의 영토에 속하지 않는다는 것이 분명히 기록되어 있다.
“토문강은 곧 두만강이다. … 조선의 영토가 금구와 같이 확고한데 쓸모없는 땅을 가지고 다툴 이유가 없다.” - 성호 이익
‘도대체 왜 이런 글을 남긴 것일까?’
이해할 수 없는 글에 좌절하며 고민을 거듭하던 김명찬 변호사와 한국 소송팀은 해동성국이라고 불릴 만큼 강성했던 발해가 이해할 수 없을 만큼 빠르게 멸망했고 그 후에 고구려나 백제와 달리 부흥운동이랄 만한 것도 없었다는 사실에 의문을 품는다. 그리고 그 이유가 백두산의 화산 폭발이 그 원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한중일 삼국 역사서 어디에도 백두산 화산이 폭발했다는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 소송팀은 이를 바탕으로 간도가 버려질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파헤치며 소송의 막바지를 준비한다.
135년 동안 미뤄졌던 또 하나의 영토전쟁 결과는…
중국은 영토 정책과 역사 정책을 통해 간도에 서린 역사까지도 자신들의 것으로 만들려 하고 있다. 그들의 정책을 두고만 본다면, 간도가 우리 민족에게 주는 의의까지 희미해질 것이다. 그렇게 간도를 잊어버리면 고구려와 발해까지 잃어버릴지도 모른다. 일본은 센가쿠와 독도 등에 대해, 중국은 간도뿐 아니라 신장과 티베트 등의 영토에 대해 확고한 정책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의 영토 정책은 그렇지 못하다. 이런 문제의식 속에서 간도에 대해 조사하던 저자는 어째서 강단 사학자들이 간도 영유권을 주장하지 않는지를 깨닫는다. 《조선왕조실록》이 백두산정계비 설립 당시 조선 조정이 토문을 두만강으로 간주하고 있다는 것을 명백하게 보여주기 때문이다. 그러나 간도를 찾을 수 없다면 그 이유라고 명백히 밝혀야 한다는 생각에, 저자는 이번에는 간도를 가상 재판에 제소했다. 전작 《독도반환 청구소송》에서 그랬듯이 저자는 재판이라는 과정 속에서 객관적, 역사적 자료를 바탕으로 두 나라의 논리를 사실 그대로 보여줄 뿐이다. 간도가 어느 나라의 땅인지는 독자가 판단할 몫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강정민
한양대 법대 및 경희대 법과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제43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오랜 기간 변호사로 활동해오다가 어느 날 자신의 전공인 법률지식과 시사적 이슈를 결합하여 가상의 재판과정을 그리는 소설을 쓰게 되었다. 《독도반환 청구소송》을 쓰던 중 간도에 관심을 가지면서 간도 또한 우리가 잊어서는 안 되는 땅이라는 것을 깨닫고 이 책을 썼다.
그는 상반되는 두 입장을 총체적으로 표출하는 소송방식이야말로 다큐멘터리이자 문학 아니겠느냐는 소신을 가지고 ‘법과 삶’을 다룬 일련의 재판소설을 지속적으로 써나갈 계획이다. 저서로 《독도반환 청구소송》이 있으며 〈주간조선〉에 ‘간도 영유권 문제를 다시 생각한다’와 ‘독도에 관한 불편한 진실’ 등 칼럼을 연재했다.
▣ 주요 목차
들어가는 말
프롤로그
제1부 공약
제2부 당사자 적격
제3부 한일합병
제4부 간도협약
제5부 결정적 기일
제6부 백두산정계비
제7부 봉금정책
제8부 동북공정
제9부 백두산은 알고 있다
에필로그
작가후기
부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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