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책소개
이제는 나도 삐비를 피해 다녔어.
집에 가는 길에 삐비를 보아도 모르는 척 지나쳤지.
학교에 다니는 것은 무척 바쁜 일이거든.
친구들과 할 일도 많고.
▣ 신문 서평
"삐비의 아픔 이해못해 미안해요"
“10년 만에 사진 찍네요. 그만 찍으세요. 아이가 둘이니 집사람이랑 아이들 사진밖에 없대요.”
그림에 이야기까지 곁들이기는 첫 작품인 『삐비이야기』(창작과비평사)의 송진헌씨(41)는 카메라 앞에서 내내 땀을 닦았다. 『삐비이야기』가 그랬다. “뭐, 이런 그림책이 다 있어”라고 미뤄뒀지만 빚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다시 펼쳤고, 다시 보고 읽고 나서도 개운치 않았다. 마음 속에서 내내 땀을 흘리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구나 아스라한 기억 속에 ‘삐비’를 묻어두고 있지 않는가.
『삐비이야기』는 무채색으로 바랜 어린시절, 나뭇가지로 머리를 때리며 숲 속을 혼자 돌아다니던 아이 삐비에 관한 추억이다. 자폐아인지 정신지체아인지 분명치 않으나 동네아이들과 ‘달랐다’. 아이들은 삐비를 피해다녔지만 화자인 ‘나’는 삐비가 신기해 삐비를 따라 숲 깊숙이 들어간다. 아이들은 나를 보고도 피해다닌다. 어느덧 학교에 들어간 나는 새 친구를 사귀게 되고 숲 속에서 삐비와 마주치지만 자신도 모르게 도망친다….
전북 군산 출신의 송씨는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자꾸 삐비가 생각났다”며 “몇 년 전 고향에 사시는 어머니께 여쭤봤더니 ‘열서너살 때 실종돼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당시 종이공장에 딸린 측백나무 숲은 엄청나게 컸어요. 탱자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숲에는 종이공장에 다니는 사람들을 위한 사택이 여기저기 있었는데 아버지가 동력과장이셔서 우리가족도 사택에 살았지요. 그러나 종이회사가 망하면서 사택에서 살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제 기억 속에서 숲도, 삐비도 사라졌지요.”
그러나 숲에서 먼저 사라진 것은 송씨였다. 8남매의 여섯째였던 송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형과 함께 서울로 ‘유학’온다. 대학(홍익대 서양화과)에 들어가기 전 서울에서 송씨는 삐비처럼 늘 외톨이였다. 그러나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전혀 삐비 생각은 나지 않았다.
“신체장애아에 대한 편견은 많이 사라졌지만 자폐아나 정신지체아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부족해요. 이같이 장애를 지닌 아이 뿐 아니라 또래집단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된 아이들을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괭이부리말 아이들』 『너도 하늘말나리야』에 그림을 그린 송씨는 “처음으로 글까지 써 삐비에 대한 미안함, 아니 살아온 것에 대한 반성을 드러내 놓고 보니 그림만 그렸을 때와 달리 숨을 곳이 없다”며 “무엇을 확 바꾸겠다는 것은 아니고 아이들이 ‘그림이 예쁘다’ ‘삐비같은 친구도 있네’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책 앞 쪽 ‘사랑하는 강이에게’라는 헌사(獻辭)에서 ‘강이’가 누군지 궁금했다.
“열한살짜리 첫딸이에요. 몸이 아파요. 정신지체아예요… 일곱 살 때 걸었죠. 기적같았어요. 못 걸을 줄 알았습니다.”
송씨가 “커피를 마시자”며 고개를 돌렸고 기자는 그제야 커피가 ‘고프다’는 생각을 하고 자판기에 넣을 동전을 찾느라 허둥댔다.[2003.5.21 동아일보 김진경 기자]
“미안해…외롭던 널 모른척해서”
왜 주인공의 이름이 ‘삐비’일까 생각했다. 아마도 삐비는 말을 하지 못하고 대신에 “삐비, 삐비…” 하고 똑같은 음을 내면서 다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이름은 따로 있었겠지만 그 동네아이들은 ‘삐비’라는 이름을 조롱의 뜻으로 불러댔을 것이다.
1960~70년대 한동네에 하나쯤은 있었을 법한 장애아나 정신지체아들은 이런 왕따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한참 놀이에 재미를 붙이고 서로의 장·단점을 눈여겨보기 시작하면서 조직사회에 눈을 떠가는 대여섯살 무렵의 아이들은 자기와 다른 아이들을 놀리고 조롱하는 ‘이지메’ 혹은 ‘왕따’에도 큰 죄의식없이 참여하게 된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동류집단 압력(peer group pressure)’이라고 지칭한다. 끼고 싶지 않지만 자신도 왕따가 될까봐, 혹은 손해를 볼까봐 이 ‘비겁한 결사’에 동참하는 것을 사람들은 아주 어릴적부터 배우는 것이다.
이 그림책은 이런 경험을 가진 저자의 어린시절 ‘고해성사’와 같다. 추운 겨울만을 제외하곤 늘 외톨이로 숲속을 떠도는 ‘자폐아’ 삐비에게 호기심을 느낀 어린시절의 저자는 삐비를 따라 다니기 시작한다. 저녁때 엄마가 부르러 올 때까지 머리를 나뭇가지로 툭툭 치면서 숲을 구석구석 누비며 다니는 삐비와 함께 있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고 든든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 둘을 함께 왕따시킨다.
그래도 개의치 않던 저자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삐비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다른 아이들의 왕따를 더 크게 의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는 애써 합리화시킨다. ‘학교에 다니는 것은 무척 바쁜 일이거든. 친구들과 할 일도 많고’라고 자위하면서. 그러나 소나기가 쏟아지는 하교길에서 만난 삐비를 애써 모른척 외면한 것은 두고두고 죄책감을 가지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 책을 내지 않고는 못배길 만큼.
저자는 삐비를 여전히 외면하지만, 숲가를 지날 때마다 귀를 기울인다. 다시금 혼자가 된 삐비가 머리를 나무로 때리는 ‘타닥’ 소리가 계속 들리는지를. 그러나 삐비는 점점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는지 이후로 등·하교길에서 볼 수가 없게 됐고, 삐비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도 저녁마다 점점 더 멀어져 갔다.
흑백의 연필화는 그림책 그 자체로도 단편영화 한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두 아이가 함께 숲을 거닐거나 마주쳤을 때를 제외하고는 클로즈업 없이 먼 데서 보고 있는 듯한 시선으로 그림을 처리한 것은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는 저자의 현재 시점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삐비에 대한 고해성사’와도 같은 이 그림책을 펼치면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통증을 느낄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범죄’에 공범이 되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므로…. 초등학교 저학년 이상.[2003.5.3 경향신문 이무경 기자]
이제는 나도 삐비를 피해 다녔어.
집에 가는 길에 삐비를 보아도 모르는 척 지나쳤지.
학교에 다니는 것은 무척 바쁜 일이거든.
친구들과 할 일도 많고.
▣ 신문 서평
"삐비의 아픔 이해못해 미안해요"
“10년 만에 사진 찍네요. 그만 찍으세요. 아이가 둘이니 집사람이랑 아이들 사진밖에 없대요.”
그림에 이야기까지 곁들이기는 첫 작품인 『삐비이야기』(창작과비평사)의 송진헌씨(41)는 카메라 앞에서 내내 땀을 닦았다. 『삐비이야기』가 그랬다. “뭐, 이런 그림책이 다 있어”라고 미뤄뒀지만 빚진 것 같은 느낌이 들어 다시 펼쳤고, 다시 보고 읽고 나서도 개운치 않았다. 마음 속에서 내내 땀을 흘리고 있었던 것 같다. 누구나 아스라한 기억 속에 ‘삐비’를 묻어두고 있지 않는가.
『삐비이야기』는 무채색으로 바랜 어린시절, 나뭇가지로 머리를 때리며 숲 속을 혼자 돌아다니던 아이 삐비에 관한 추억이다. 자폐아인지 정신지체아인지 분명치 않으나 동네아이들과 ‘달랐다’. 아이들은 삐비를 피해다녔지만 화자인 ‘나’는 삐비가 신기해 삐비를 따라 숲 깊숙이 들어간다. 아이들은 나를 보고도 피해다닌다. 어느덧 학교에 들어간 나는 새 친구를 사귀게 되고 숲 속에서 삐비와 마주치지만 자신도 모르게 도망친다….
전북 군산 출신의 송씨는 “아이들을 키우다보니 자꾸 삐비가 생각났다”며 “몇 년 전 고향에 사시는 어머니께 여쭤봤더니 ‘열서너살 때 실종돼 어떻게 됐는지 모른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당시 종이공장에 딸린 측백나무 숲은 엄청나게 컸어요. 탱자나무 울타리로 둘러싸인 숲에는 종이공장에 다니는 사람들을 위한 사택이 여기저기 있었는데 아버지가 동력과장이셔서 우리가족도 사택에 살았지요. 그러나 종이회사가 망하면서 사택에서 살던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고 제 기억 속에서 숲도, 삐비도 사라졌지요.”
그러나 숲에서 먼저 사라진 것은 송씨였다. 8남매의 여섯째였던 송씨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형과 함께 서울로 ‘유학’온다. 대학(홍익대 서양화과)에 들어가기 전 서울에서 송씨는 삐비처럼 늘 외톨이였다. 그러나 아이들이 태어나기 전까지만 해도 전혀 삐비 생각은 나지 않았다.
“신체장애아에 대한 편견은 많이 사라졌지만 자폐아나 정신지체아에 대한 이해는 아직도 부족해요. 이같이 장애를 지닌 아이 뿐 아니라 또래집단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하고 소외된 아이들을 돌아봤으면 좋겠어요.”
『괭이부리말 아이들』 『너도 하늘말나리야』에 그림을 그린 송씨는 “처음으로 글까지 써 삐비에 대한 미안함, 아니 살아온 것에 대한 반성을 드러내 놓고 보니 그림만 그렸을 때와 달리 숨을 곳이 없다”며 “무엇을 확 바꾸겠다는 것은 아니고 아이들이 ‘그림이 예쁘다’ ‘삐비같은 친구도 있네’라고 생각하면 된다”고 힘주어 말했다.
책 앞 쪽 ‘사랑하는 강이에게’라는 헌사(獻辭)에서 ‘강이’가 누군지 궁금했다.
“열한살짜리 첫딸이에요. 몸이 아파요. 정신지체아예요… 일곱 살 때 걸었죠. 기적같았어요. 못 걸을 줄 알았습니다.”
송씨가 “커피를 마시자”며 고개를 돌렸고 기자는 그제야 커피가 ‘고프다’는 생각을 하고 자판기에 넣을 동전을 찾느라 허둥댔다.[2003.5.21 동아일보 김진경 기자]
“미안해…외롭던 널 모른척해서”
왜 주인공의 이름이 ‘삐비’일까 생각했다. 아마도 삐비는 말을 하지 못하고 대신에 “삐비, 삐비…” 하고 똑같은 음을 내면서 다녔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진짜 이름은 따로 있었겠지만 그 동네아이들은 ‘삐비’라는 이름을 조롱의 뜻으로 불러댔을 것이다.
1960~70년대 한동네에 하나쯤은 있었을 법한 장애아나 정신지체아들은 이런 왕따의 대상이 되곤 했다. 한참 놀이에 재미를 붙이고 서로의 장·단점을 눈여겨보기 시작하면서 조직사회에 눈을 떠가는 대여섯살 무렵의 아이들은 자기와 다른 아이들을 놀리고 조롱하는 ‘이지메’ 혹은 ‘왕따’에도 큰 죄의식없이 참여하게 된다. 사회학자들은 이를 가리켜 ‘동류집단 압력(peer group pressure)’이라고 지칭한다. 끼고 싶지 않지만 자신도 왕따가 될까봐, 혹은 손해를 볼까봐 이 ‘비겁한 결사’에 동참하는 것을 사람들은 아주 어릴적부터 배우는 것이다.
이 그림책은 이런 경험을 가진 저자의 어린시절 ‘고해성사’와 같다. 추운 겨울만을 제외하곤 늘 외톨이로 숲속을 떠도는 ‘자폐아’ 삐비에게 호기심을 느낀 어린시절의 저자는 삐비를 따라 다니기 시작한다. 저녁때 엄마가 부르러 올 때까지 머리를 나뭇가지로 툭툭 치면서 숲을 구석구석 누비며 다니는 삐비와 함께 있으면 아무것도 두렵지 않고 든든했다. 하지만 아이들은 이 둘을 함께 왕따시킨다.
그래도 개의치 않던 저자는 초등학교에 입학하면서부터는 삐비를 외면하기 시작했다. 아마도 학교에 다니기 시작하면서부터 다른 아이들의 왕따를 더 크게 의식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러나 스스로는 애써 합리화시킨다. ‘학교에 다니는 것은 무척 바쁜 일이거든. 친구들과 할 일도 많고’라고 자위하면서. 그러나 소나기가 쏟아지는 하교길에서 만난 삐비를 애써 모른척 외면한 것은 두고두고 죄책감을 가지게 만들었던 것 같다. 이 책을 내지 않고는 못배길 만큼.
저자는 삐비를 여전히 외면하지만, 숲가를 지날 때마다 귀를 기울인다. 다시금 혼자가 된 삐비가 머리를 나무로 때리는 ‘타닥’ 소리가 계속 들리는지를. 그러나 삐비는 점점 더 깊은 숲속으로 들어갔는지 이후로 등·하교길에서 볼 수가 없게 됐고, 삐비를 부르는 엄마의 목소리도 저녁마다 점점 더 멀어져 갔다.
흑백의 연필화는 그림책 그 자체로도 단편영화 한편을 보는 듯한 느낌을 준다. 두 아이가 함께 숲을 거닐거나 마주쳤을 때를 제외하고는 클로즈업 없이 먼 데서 보고 있는 듯한 시선으로 그림을 처리한 것은 과거의 추억을 회상하는 저자의 현재 시점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삐비에 대한 고해성사’와도 같은 이 그림책을 펼치면 누구나 마음 한구석에 통증을 느낄 것이다. 누구나 한번쯤은 이런 ‘범죄’에 공범이 되어본 경험이 있을 것이므로…. 초등학교 저학년 이상.[2003.5.3 경향신문 이무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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