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먼저 잘못된 법을 개혁하여 민생을 구해야 합니다.
잘못된 법을 개혁하고자 하면 마땅히 언로(言路)를 넓혀서 좋은 방책을 모아야 합니다.
위로는 고관으로부터 아래로는 노비에 이르기까지 모두 당면한 문제점을 각자 말하도록 하여
그 말이 과연 쓸 만한 것이라면, 신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취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야 나라에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동호문답』,「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중에서
조선의 군주론은 이처럼 우아하다
마키아벨리가 쓴 서양의 군주론은 국가와 군주에 관한 역사적 고찰이다. 중세의 도덕률이나 종교관에서 벗어나 있는 강력한 군주만이 분열된 이탈리아를 구원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군주는 신하와 백성들의 사랑을 받기보다 오히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더 낫다고 이야기한다. 사랑이란 신하와 백성들이 군주에게 주는 것이므로, 그것을 거두어들이는 것 역시 그들에게 주도권이 있다. 인간의 변덕을 감안할 때, 신민의 사랑에 기대는 군주는 언제 자신의 기반을 잃을지 모른다. 반면 두려움이나 경외감은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므로 스스로의 통제권 아래에 있다. 군주가 신민으로부터 사랑도 받고 경외심도 불러일으킨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차라리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더 안전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군주론, 즉 『동호문답』에서는 ‘임금의 도’를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임금와 신하가 함께 다스린다[君臣共治]는 의미에서 서양의 그것과는 그 맥이 다르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임금에게 있던 정치의 주도권을 신하와 함께 나눈다는 것 자체가 보다 세련된 정치사상이지 않을까. 임금은 어진 신하를 구하여 귀히 쓰고, 어진 신하는 백성의 어려움을 두루 살펴 바른 정치를 펴는 것을 으뜸으로 적고 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임금의 역할, 신하의 역할, 이것이 이루어지기 어려움 등을 나열하며 그 현실적 가능성을 모색한다.
위기에 처한 조선, 율곡 이이의 고민
‘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 고전’ 시리즈의 여덟 번째 책, 『동호문답』은 홍문관 교리였던 이이가 ‘사가독서제’의 혜택을 받아 동호독서당에 머물면서 왕에게 월과(月課)로 지어올린 일종의 보고서다. 사가독서제는 세종 대에 처음 도입된 제도로, 촉망받는 젊은 학자관료가 자택이나 사찰 등에 머물면서 독서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였다. 그러나 자택에 머물면서는 독서에 매진하기 힘들었고, 유학자들이 사찰에 머무는 것도 마뜩치 않아 했다. 그래서 성종과 중종 대에 풍광 좋은 곳에 독서당을 짓고 젊고 능력이 출중한 문신, 학자, 관료들을 이곳에 보내 재충전의 기회를 갖도록 했다. 궁중 음식을 전담하는 기관인 태관(太官)에서 만든 음식이 끊이지 않고, 옥으로 장식한 수레와 말을 내린 것만 보아도 독서당에 대한 왕의 관심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알 수 있다.
과거시험에 아홉 번이나 장원을 차지한 이이가 독서당에 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이는 영예로운 독서당에 와서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당시 조선 사회는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개국한 지 150년, 조선 초기의 질서는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었고 사회적 갈등은 커져만 갔다.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던 이이는 이 같은 조선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자신의 생각을 왕에게 지어 올린다. 이것이 바로 『동호문답』이다.
새로운 조선의 설계자, 이이가 꿈꾸었던 나라
16세기는 조선 초기에 만든 질서가 와해되면서 기존 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설계를 시도하려는 노력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정치권력의 교체뿐만 아니라 이전까지의 경제 질서, 사회 구성, 신분의 변화가 이 시기에 급속도로 이루어진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사림은 훈구와의 정치 대결이었던 사화(士禍)에서 번번이 패했다. 가혹한 현실을 경험한 사림 세력은 당장 정치를 바꾸기보다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이념을 찾는 일에 매달렸다.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여 새로운 조선을 건설하고자 시도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황이다.
이황은 주자성리학을 조선의 현실에 맞게 읽어내 주희의 사상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했다. 이이 역시 이황의 뒤를 이어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합적인 개혁안을 제시했다. 이황이 주자성리학으로 조선을 이끌어 갈 새로운 이념의 방향을 잡았다면, 이이는 현실정치에 보다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다. 이이는 『성학집요(聖學輯要)』에서 왕의 역할과 경세론을 펼쳐 새로운 조선의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이이의 정치사상에 따르면, 정치는 임금의 자의(自意)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과 신하가 함께하는 것이다. 특히 신하의 정치 참여가 중요하다. 왕은 어진 신하를 알아보고, 그가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는 같은 시기의 중국을 포함하여 동아시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매우 특이한 정치형태였다. 이와 같은 이이의 주장은 조선 후기에 현실화됨으로써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선 중기와 후기에 붕당정치가 실현되는 토대가 되었다. 또 성리학에 입각한 왕도정치와 군사론(君師論)은 조선 후기 군주들에게 하나의 전범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 사회에도 실질적인 영향이 컸다. 구체적인 개혁책의 하나로 제시된 공납의 개혁은 ‘대동법’으로, 군정(軍政)의 개혁 역시 균역법(均役法)으로 실현되었다. 400여 년 전 위기에 처한 조선을 새로이 하기 위한 이이의 고민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하겠다.
▣ 작가 소개
저자 : 이이(李珥, 1536~1584)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문신(文臣) 관료다. 강릉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석담(石潭)·우재(愚齋)다. 아버지는 증좌찬성 이원수(李元秀), 어머니는 현모양처의 사표로 추앙받는 사임당 신씨(師任堂 申氏)다.
아홉 차례나 장원할 정도로 월등한 실력으로 과거에 합격하여 호조판서, 병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두루 거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조선 중기에 새로운 이데올로기로서의 성리학을 제시한 것이다. 이황에 의해 정리된 성리학은 이이에 의해 조선적인 이해의 토대를 마련했고, 그 기초 위에 새로운 이론을 더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동호문답(東湖問答)』 , 『성학집요(聖學輯要)』 를 저술하여 조선적 제왕학을 제시했다. 그의 이론적 근거에 따라 이후 붕당정치가 가능하게 되었다.
저술로는 『성학집요(聖學輯要)』 , 『동호문답(東湖問答)』 , 『경연일기(經筵日記)』 , 『천도책(天道策)』 , 『역수책(易數策)』 , 『문식책(文式策)』 , 『격몽요결(擊蒙要訣)』 , 『만언봉사(萬言封事)』 , 『학교모범(學校模範)』 , 『육조계(六條啓)』 , 『시폐칠조책(時弊七條策)』 , 『답성호원서(答成浩... 原書)』 등이 있으며,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 등의 문학 작품도 전해진다. 그의 저술들은 광해군 3년(1611) 박여룡(朴汝龍)과 성혼(成渾) 등이 간행한 『율곡문집(栗谷文集)』 과 영조 18년(1742)에 이재(李縡)와 이진오(李鎭五) 등이 편찬한 『율곡전서(栗谷全書)』 에 실려 전해진다.
역해 : 정재훈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마쳤다. 조선 전기에 『대학』 을 중심으로 유교 정치사상이 어떻게 이해, 수용되고 자기화하였는지를 검토하여 〈조선 전기 유교 정치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선의 사상과 문화의 정체성과 특성, 동아시아에서의 위상 등에 관심이 많다. 현재는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활동하면서 조선의 국왕(國王), 연행(燕行)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조선 전기 유교 정치사상 연구』 , 『조선시대의 학파와 사상』 , 『조선의 국왕과 의례』 와 다수의 공저, 『용헌집』 , 『동사』 등의 번역서, 「18세기 연행과 정조(正祖)」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 주요 목차
해제 조선적인 왕도정치를 위한 지침서
1 임금의 도리
2 신하의 도리
3 군신이 서로 만나기 어려움을 논하다
4 우리나라에서 도학이 행해지지 않음을 논하다
5 조선이 옛 도를 회복하지 못함에 관하여
6 지금의 시세(時勢)를 논하다
7 무실(務實)이 수기(修己)의 핵심
8 간사한 자를 분별함이 용현(用賢)의 요체
9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
10 백성을 교화하는 방법
11 정명(正名)이 정치의 근본
주석
참고문헌
“먼저 잘못된 법을 개혁하여 민생을 구해야 합니다.
잘못된 법을 개혁하고자 하면 마땅히 언로(言路)를 넓혀서 좋은 방책을 모아야 합니다.
위로는 고관으로부터 아래로는 노비에 이르기까지 모두 당면한 문제점을 각자 말하도록 하여
그 말이 과연 쓸 만한 것이라면, 신분의 높고 낮음에 상관없이 취해야 합니다.
그런 후에야 나라에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동호문답』,「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중에서
조선의 군주론은 이처럼 우아하다
마키아벨리가 쓴 서양의 군주론은 국가와 군주에 관한 역사적 고찰이다. 중세의 도덕률이나 종교관에서 벗어나 있는 강력한 군주만이 분열된 이탈리아를 구원할 수 있다고 역설했다. 한걸음 더 나아가 군주는 신하와 백성들의 사랑을 받기보다 오히려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더 낫다고 이야기한다. 사랑이란 신하와 백성들이 군주에게 주는 것이므로, 그것을 거두어들이는 것 역시 그들에게 주도권이 있다. 인간의 변덕을 감안할 때, 신민의 사랑에 기대는 군주는 언제 자신의 기반을 잃을지 모른다. 반면 두려움이나 경외감은 자신에게서 나오는 것이므로 스스로의 통제권 아래에 있다. 군주가 신민으로부터 사랑도 받고 경외심도 불러일으킨다면 더 말할 나위가 없겠지만, 그것은 현실적으로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차라리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편이 더 안전하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조선의 군주론, 즉 『동호문답』에서는 ‘임금의 도’를 어떻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임금와 신하가 함께 다스린다[君臣共治]는 의미에서 서양의 그것과는 그 맥이 다르다 할 수도 있다. 하지만 임금에게 있던 정치의 주도권을 신하와 함께 나눈다는 것 자체가 보다 세련된 정치사상이지 않을까. 임금은 어진 신하를 구하여 귀히 쓰고, 어진 신하는 백성의 어려움을 두루 살펴 바른 정치를 펴는 것을 으뜸으로 적고 있다. 그리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임금의 역할, 신하의 역할, 이것이 이루어지기 어려움 등을 나열하며 그 현실적 가능성을 모색한다.
위기에 처한 조선, 율곡 이이의 고민
‘규장각 새로 읽는 우리 고전’ 시리즈의 여덟 번째 책, 『동호문답』은 홍문관 교리였던 이이가 ‘사가독서제’의 혜택을 받아 동호독서당에 머물면서 왕에게 월과(月課)로 지어올린 일종의 보고서다. 사가독서제는 세종 대에 처음 도입된 제도로, 촉망받는 젊은 학자관료가 자택이나 사찰 등에 머물면서 독서와 연구를 할 수 있도록 하는 제도였다. 그러나 자택에 머물면서는 독서에 매진하기 힘들었고, 유학자들이 사찰에 머무는 것도 마뜩치 않아 했다. 그래서 성종과 중종 대에 풍광 좋은 곳에 독서당을 짓고 젊고 능력이 출중한 문신, 학자, 관료들을 이곳에 보내 재충전의 기회를 갖도록 했다. 궁중 음식을 전담하는 기관인 태관(太官)에서 만든 음식이 끊이지 않고, 옥으로 장식한 수레와 말을 내린 것만 보아도 독서당에 대한 왕의 관심이 얼마나 높았는지를 알 수 있다.
과거시험에 아홉 번이나 장원을 차지한 이이가 독서당에 든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러나 이이는 영예로운 독서당에 와서도 쉽게 잠들지 못했다. 당시 조선 사회는 심하게 요동치고 있었다. 개국한 지 150년, 조선 초기의 질서는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었고 사회적 갈등은 커져만 갔다. 당대 최고의 엘리트였던 이이는 이 같은 조선의 위기를 타개하기 위한 자신의 생각을 왕에게 지어 올린다. 이것이 바로 『동호문답』이다.
새로운 조선의 설계자, 이이가 꿈꾸었던 나라
16세기는 조선 초기에 만든 질서가 와해되면서 기존 질서를 대체할 새로운 질서, 새로운 설계를 시도하려는 노력이 줄기차게 이어졌다. 정치권력의 교체뿐만 아니라 이전까지의 경제 질서, 사회 구성, 신분의 변화가 이 시기에 급속도로 이루어진다. 이런 중요한 시기에 사림은 훈구와의 정치 대결이었던 사화(士禍)에서 번번이 패했다. 가혹한 현실을 경험한 사림 세력은 당장 정치를 바꾸기보다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할 이념을 찾는 일에 매달렸다. 새로운 이념을 제시하여 새로운 조선을 건설하고자 시도한다. 대표적인 인물이 이황이다.
이황은 주자성리학을 조선의 현실에 맞게 읽어내 주희의 사상을 그대로 따르기보다 주체적으로 해석하고 이해했다. 이이 역시 이황의 뒤를 이어 당대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종합적인 개혁안을 제시했다. 이황이 주자성리학으로 조선을 이끌어 갈 새로운 이념의 방향을 잡았다면, 이이는 현실정치에 보다 적극적인 목소리를 냈다. 이이는 『성학집요(聖學輯要)』에서 왕의 역할과 경세론을 펼쳐 새로운 조선의 청사진을 제시하였다.
이이의 정치사상에 따르면, 정치는 임금의 자의(自意)로 하는 것이 아니라 임금과 신하가 함께하는 것이다. 특히 신하의 정치 참여가 중요하다. 왕은 어진 신하를 알아보고, 그가 바른 정치를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는 것이라 생각한 것이다. 이는 같은 시기의 중국을 포함하여 동아시아에서 유래를 찾기 힘든 매우 특이한 정치형태였다. 이와 같은 이이의 주장은 조선 후기에 현실화됨으로써 사회에 큰 영향을 미쳤다. 조선 중기와 후기에 붕당정치가 실현되는 토대가 되었다. 또 성리학에 입각한 왕도정치와 군사론(君師論)은 조선 후기 군주들에게 하나의 전범이 되었다. 뿐만 아니라 조선 사회에도 실질적인 영향이 컸다. 구체적인 개혁책의 하나로 제시된 공납의 개혁은 ‘대동법’으로, 군정(軍政)의 개혁 역시 균역법(均役法)으로 실현되었다. 400여 년 전 위기에 처한 조선을 새로이 하기 위한 이이의 고민은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하겠다.
▣ 작가 소개
저자 : 이이(李珥, 1536~1584)
조선 중기의 대표적인 학자이자 문신(文臣) 관료다. 강릉에서 태어났으며 본관은 덕수(德水). 자는 숙헌(叔獻), 호는 율곡(栗谷)·석담(石潭)·우재(愚齋)다. 아버지는 증좌찬성 이원수(李元秀), 어머니는 현모양처의 사표로 추앙받는 사임당 신씨(師任堂 申氏)다.
아홉 차례나 장원할 정도로 월등한 실력으로 과거에 합격하여 호조판서, 병조판서, 이조판서 등을 두루 거치기도 했다. 그러나 그의 진면목은 조선 중기에 새로운 이데올로기로서의 성리학을 제시한 것이다. 이황에 의해 정리된 성리학은 이이에 의해 조선적인 이해의 토대를 마련했고, 그 기초 위에 새로운 이론을 더하게 되었다. 그 과정에서 『동호문답(東湖問答)』 , 『성학집요(聖學輯要)』 를 저술하여 조선적 제왕학을 제시했다. 그의 이론적 근거에 따라 이후 붕당정치가 가능하게 되었다.
저술로는 『성학집요(聖學輯要)』 , 『동호문답(東湖問答)』 , 『경연일기(經筵日記)』 , 『천도책(天道策)』 , 『역수책(易數策)』 , 『문식책(文式策)』 , 『격몽요결(擊蒙要訣)』 , 『만언봉사(萬言封事)』 , 『학교모범(學校模範)』 , 『육조계(六條啓)』 , 『시폐칠조책(時弊七條策)』 , 『답성호원서(答成浩... 原書)』 등이 있으며, ‘고산구곡가(高山九曲歌)’ 등의 문학 작품도 전해진다. 그의 저술들은 광해군 3년(1611) 박여룡(朴汝龍)과 성혼(成渾) 등이 간행한 『율곡문집(栗谷文集)』 과 영조 18년(1742)에 이재(李縡)와 이진오(李鎭五) 등이 편찬한 『율곡전서(栗谷全書)』 에 실려 전해진다.
역해 : 정재훈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학사, 석사, 박사과정을 마쳤다. 조선 전기에 『대학』 을 중심으로 유교 정치사상이 어떻게 이해, 수용되고 자기화하였는지를 검토하여 〈조선 전기 유교 정치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조선의 사상과 문화의 정체성과 특성, 동아시아에서의 위상 등에 관심이 많다. 현재는 경북대학교 사학과 교수로 활동하면서 조선의 국왕(國王), 연행(燕行) 등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지은 책으로는 『조선 전기 유교 정치사상 연구』 , 『조선시대의 학파와 사상』 , 『조선의 국왕과 의례』 와 다수의 공저, 『용헌집』 , 『동사』 등의 번역서, 「18세기 연행과 정조(正祖)」 등 다수의 논문이 있다.
▣ 주요 목차
해제 조선적인 왕도정치를 위한 지침서
1 임금의 도리
2 신하의 도리
3 군신이 서로 만나기 어려움을 논하다
4 우리나라에서 도학이 행해지지 않음을 논하다
5 조선이 옛 도를 회복하지 못함에 관하여
6 지금의 시세(時勢)를 논하다
7 무실(務實)이 수기(修己)의 핵심
8 간사한 자를 분별함이 용현(用賢)의 요체
9 백성을 편안하게 하는 방법
10 백성을 교화하는 방법
11 정명(正名)이 정치의 근본
주석
참고문헌
01. 반품기한
- 단순 변심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7일 이내 신청
- 상품 불량/오배송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3개월 이내, 혹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30일 이내 반품 신청 가능
02. 반품 배송비
반품사유 | 반품 배송비 부담자 |
---|---|
단순변심 | 고객 부담이며, 최초 배송비를 포함해 왕복 배송비가 발생합니다. 또한, 도서/산간지역이거나 설치 상품을 반품하는 경우에는 배송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
고객 부담이 아닙니다. |
03. 배송상태에 따른 환불안내
진행 상태 | 결제완료 | 상품준비중 | 배송지시/배송중/배송완료 |
---|---|---|---|
어떤 상태 | 주문 내역 확인 전 | 상품 발송 준비 중 | 상품이 택배사로 이미 발송 됨 |
환불 | 즉시환불 | 구매취소 의사전달 → 발송중지 → 환불 | 반품회수 → 반품상품 확인 → 환불 |
04. 취소방법
- 결제완료 또는 배송상품은 1:1 문의에 취소신청해 주셔야 합니다.
- 특정 상품의 경우 취소 수수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05. 환불시점
결제수단 | 환불시점 | 환불방법 |
---|---|---|
신용카드 | 취소완료 후, 3~5일 내 카드사 승인취소(영업일 기준) | 신용카드 승인취소 |
계좌이체 |
실시간 계좌이체 또는 무통장입금 취소완료 후, 입력하신 환불계좌로 1~2일 내 환불금액 입금(영업일 기준) |
계좌입금 |
휴대폰 결제 |
당일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6시간 이내 승인취소 전월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1~2일 내 환불계좌로 입금(영업일 기준) |
당일취소 : 휴대폰 결제 승인취소 익월취소 : 계좌입금 |
포인트 | 취소 완료 후, 당일 포인트 적립 | 환불 포인트 적립 |
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
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상품의 시리얼 넘버 유출로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 |
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