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세계의 위대한 탐험가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우리의 맨더빌만큼 그렇게 큰일을 해낸 이는 없다” - 16세기 영국의 고문헌학자인 존 릴런드(J. Leland)
콜럼버스는 왜 자신이 도착한 곳이 인도의 섬이라고 생각했을까?
유럽이 인도나 중국에 대한 지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했을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유럽인들은 오래 전부터 인도와 그 너머의 중국에 대해 필요한 만큼의 지식은 가지고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 원정 이후 그리스나 로마인들에게도 인도는 그다지 낯설지만은 않은 곳이었다. 그리고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한 뒤에도 제네바나 베네치아 등의 상인들은 동방과 활발히 교역을 해왔다. 그들은 아라비아 상인들과의 교역을 통해서 인도와 중국 등의 진기한 물품을 들여왔으며, 때로는 직접 인도와 중국으로 항해를 떠나기도 했다. 따라서 아라비아 너머에 인도가 있고, 그 너머에 또 중국이 있다는 정도의 지리인식은 상인들과 뱃사람들에게는 상식과도 같은 것이었으며, 그곳들로 안전하게 갈 수 있는 항로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베네치아나 제노바의 상단에서는 중국으로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안내서를 만들기도 했다. 실제 14세기에 프란체스코 수도사인 오도릭은 페르시아만 남단의 호르무즈에서 배를 타고 인도를 거쳐 중국을 다녀온 뒤에 여행기를 남겼고,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에도 이용했던 경로도 바로 이 길이었다.
그런데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고 알려진 콜럼버스는 도대체 왜 반대쪽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쪽으로 오래 항해한 뒤에 도착한 섬을 중국이 아니라 인도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무리 오스만제국의 세력이 커져서 14세기 이후 동방으로 가는 교역로가 막혔다고 해도, 제노바의 유능한 뱃사람인 콜럼버스가 유럽에서 동쪽으로 인도를 거쳐 중국으로 가게 된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는 없다. 중세에 인도라는 개념이 오늘날과는 달리 아프리카 동부 해안과 인도차이나 남부의 섬들까지를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으로 사용되었다고 해도 이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콜럼버스에게 지구가 둥글다며 서쪽으로 항해하면 유럽 맞은편의 동방으로 곧바로 갈 수 있다고 부추겼던 어떤 책이 중국 너머의 대양에 사제왕 요한이 다스리는 인도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콜럼버스가 왜 자신이 도착한 곳을 중국이 아니라 인도라고 생각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중세 유럽에서 성서에 버금갈 정도로 폭넓게 읽히며 다양한 계층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그 책이 바로 《맨더빌여행기》이다.
실제 콜럼버스는 두 번째 항해에서 “존 맨더빌이 그 바다는 온통 섬들로 가득하며 인도에는 5천여 개의 섬이 있다고 말한 것을 떠올리며 더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했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는데, 이것은 그의 항해에 《맨더빌여행기》의 영향이 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콜럼버스가 스페인의 페르난도 왕과 이사벨라 왕비에게 지원을 받는 데에도 이 책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져 있는데, 콜럼버스의 가까운 친구이자 연대기 기록자인 앙드레 베르날데는 1492년에 “콜럼버스는 이 경로를 따라가면 도달할 것이라고 말하며 항해를 계속해 ‥ 그의 목적, 즉 당시 대칸이 지배하고 있던 카타이 지방과 도시들을 찾아 나선 것이다”라고 적었다. 아울러 서쪽으로 나아가는 항해를 통해 동방의 부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자세히 설명한 뒤에 “누구든 이 진실을 확인하기를 원하는 자는 맨더빌의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라고 덧붙였다.
유럽 전역에서 폭넓게 읽힌 최초의 국제적 베스트셀러
이처럼 《맨더빌여행기》는 동방에 대한 호기심을 고취시키고, 지구가 둥글다는 인식을 유럽 전역에 확산시켜 콜럼버스와 같은 모험가들이 신항로를 개척하기 위한 탐험과 여행에 나서도록 자극했다. 특히 이 책은 14?17세기에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다양한 계층들에게 폭넓게 읽혔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더욱 컸다.
오늘날에는 마르코 폴로가 동방을 여행한 가장 대표적인 중세 유럽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중세에는 달랐다. 중세에는 《맨더빌 여행기》의 주인공인 존 맨더빌이라는 영국의 기사가 마르코 폴로는 감히 견줄 수 없을 만큼 모험가로서 더 폭넓은 인기와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맨더빌 여행기》는 1357년에서 1360년대 초 사이에 프랑스어로 처음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오늘날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것은 ‘파리 텍스트’라고 불리는, 1371년에 파리의 샤를 5세 궁전에서 제작된 필사본이다. 그 뒤 이 책은 프랑스의 궁정과 귀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면서 잉글랜드로 유입되었고,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도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래서 100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10여개 국가의 언어로 번역되어 300여 종의 사본을 남겼다. 15세기 활판인쇄술이 등장한 뒤 가장 활발히 인쇄되었던 것도 성서와 《맨더빌 여행기》였다. 16세기에만 180여 종의 인쇄본이 출간되었을 정도이니, 실로 이 책이야말로 최초의 국제적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중세에는 《맨더빌 여행기》 이외에도 성직자와 상인, 연대기 작가들이 쓴 동방 여행기가 여럿 존재했다. 특히 13~14세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방에 관한 여행기를 남겼다. 13세기에 들어서 몽골이 동유럽을 공격해오고, 바그다드를 점령해 이슬람의 아바스 왕조를 무너뜨리자 로마 교황과 유럽의 군주들은 잇따라 중국에 사신과 선교사들을 파견했다. 그들은 돌아와 자신들이 여행에서 보고 겪은 일들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 때문에 이 시기에는 동방에 관한 기록들이 풍성한 편이다. 1245년 교황 이노켄티우스 4세에 의해 중국으로 파견되었던 이탈리아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카르피니는 《몽골의 역사》라는 기록을 남겼다. 1253년 기욤 드 뤼브룩은 프랑스 왕 루이 9세의 명을 받아 중국을 다녀온 뒤 《몽골제국여행기》를 남겼다. 마르코 폴로도 1271년부터 1295년까지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와 《동방견문록》을 남겼으며,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인 오도릭도 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파견되었다가 1330년 귀국해 여행기를 남겼다. 마리뇰리도 교황 베네딕투스 12세의 명으로 1338년부터 몽골과 중국 등에 머무르다가 1353년에 돌아와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어떤 여행기도 《맨더빌 여행기》의 인기와 권위에는 미치지 못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내려온 유럽의 전통적인 상상과 동방에 대한 호기심을 뒤섞고, 역사와 지리, 종교와 문화에 대한 다양한 지적 욕구까지 충족시킨 이 통속적인 여행기는 다른 여행기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인기를 얻었다. 《맨더빌 여행기》는 존 맨더빌이라는 잉글랜드 출신의 기사가 예루살렘을 비롯한 근동 지방과 인도, 중국 등을 여행하며 보고 겪은 일들을 자전적으로 기록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점은 오도릭이나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 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도릭이나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가 말 그대로 ‘견문’에 한정되었던 것에 비해, 《맨더빌 여행기》에는 불사조와 외눈박이 거인 등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온갖 존재들이 등장한다. 심지어 이교도의 입을 빌어 교황을 정점으로 한 서구 그리스도교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풍자하는가 하면, 선거로 왕을 선출하는 나라도 있다고 소개하며 불온한 정치의식마저 자극한다. 그리고 스스로 여행을 하며 북극성과 남극성의 고도로 관측한 수치를 근거로 들며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자세히 증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동쪽이 아니라 반대편인 서쪽으로 돌아가면 대칸이 다스리는 중국과 사제왕 요한이 다스리는 인도에 다다를 수 있다고 말하며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적 지리인식과는 다른 새로운 지리인식도 제시한다.
중세 사람들은 이러한 맨더빌의 놀라운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군주와 모험가들은 그의 여행기에서 다른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했으며, 대중들은 어려운 라틴어가 아니라 자국어로 된 이 책을 통해서 역사와 지리, 종교와 문화에 관한 지적 욕구를 채웠다. 그리고 지구구형설에 기초한 맨더빌의 새로운 지리인식은 수많은 모험가들이 오스만제국에 가로막힌 동쪽 항로를 대신할 신항로 개척에 나서도록 자극했다. 콜럼버스를 비롯한 탐험가들은 맨더빌의 여행기를 읽으며 사제왕 요한이 다스리는 인도를 향해 항해를 떠날 모험심을 키웠고, 지리학자들은 이 여행기의 내용에 기초해 지구본과 새로운 세계지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1492년에 최초로 지구본을 제작한 마르틴 베하임이나 16세기에 《지구의 무대》라는 세계지도책을 완성한 오르텔리우나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유명한 메르카토르 등이 모두 지도를 제작할 때 《맨더빌 여행기》의 정보를 중요하게 참고했다고 알려져 있다.
혼성모방의 원조
이처럼 맨더빌의 여행기는 중세 유럽의 지리인식과 문화인식을 변화시켜 르네상스의 인문주의 정신과 대항해 시대를 여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여행기가 실제의 경험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작가의 주장이 거짓말임이 거의 확실하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내용은 대부분 당시 동방에 관해 다루고 있던 여러 문서들과 자료들을 교묘하게 가져와 재구성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여행기의 작가는 헤로도토스, 플리니우스, 이시도루스, 야코부스, 자크 드 비트리, 뱅상 드 보베, 오도릭, 마르코 폴로 등 고대에서 14세기에 이르는 다양한 작가들의 기록이나 민간에서 떠돌던 여러 가지 전설들을 소재로 상상과 허구를 덧붙여 이 여행기를 썼다. 그가 내용을 가져온 문헌들을 보면, 헤로도투스, 파우사니아스, 플리니우스, 솔리누스, 이시도루스, 히에로니무스 등 고대 작가들의 글을 비롯해, 중세에 유행하던 알렉산더 대왕의 전설 모음집과 초기의 동물지들, 저버스 틸버리의 《황제의 여흥을 위하여》와 같은 비기독교 전설과 야코부스의 《황금전설》과 같은 기독교 전설들, 그리고 13세기 뱅상 드 보베가 편찬한 백과전서인 《거대한 거울》까지 다양하다. 알베르트 덱스라샤펠의 《예루살렘 원정의 역사》, 자크 드 비트리의 《예루살렘의 역사》와 《동양사》, 체사리우스 폰 하이스터바흐의 《기적들에 관한 대화》, 윌리엄 트리폴리의 《사라센인들에 대하여》, 빌헬름 폰 볼덴젤의 《성지와 바다건너 어떤 나라들에 관한 책》, 하이톤의 《동방사의 전성기》, 카르피니의 《몽골의 역사》, 오도릭의 《여행기》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등과 같은 동방에 관한 기록들도 폭넓게 이용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오늘날을 기준으로 하면 분명히 ‘표절’이자 ‘위작’인 셈이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자칭 존 맨더빌이라는 인물은 다른 사람의 글에서 소재를 가져오더라도 그것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배치하고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때로는 동일한 자료를 가져다가 원작자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해석하기도 한다. 마치 크기와 모양이 가지각색인 여러 개의 천 조각들을 이어 만든 재미있는 보자기와도 같다. 중세의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소재와 이야기를 다르게 변주하고 있다는 점이 ‘표절’이 아니라 오히려 큰 ‘매력’으로 다가왔음이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이 여행기의 작가야말로 포스트모던 시대의 중요한 창작기법으로 여겨지는 혼성모방(pastiche)의 대가이자 원조인 셈이다.
그래서 이 여행기는 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베넷(W. Bennett)과 같은 문학사가는 이 여행기의 작가를 ‘영국 산문의 아버지’라고 평하기도 했는데, 그 만큼 맨더빌의 여행기는 중세 산문문학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셰익스피어, 스펜서, 밀턴 등도 이 여행기에 등장하는 소재들을 자신들의 작품에서 즐겨 사용했으며, 조나단 스위프트는 《맨더빌 여행기》의 형식과 특징을 그대로 계승해 《걸리버 여행기》를 썼다.
다양한 사본을 비교ㆍ대조한 최초의 한국어 번역본
이처럼 폭넓은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어서 《맨더빌 여행기》는 매우 다양한 판본이 존재한다. 산문만이 아니라 운문으로도 출간되었고, 일부 이야기만 떼어서 편집한 축약본으로도 만들어졌다. 심지어 독일에서는 이 여행기 안에 카롤루스 대제의 12용사 가운데 한 명인, 민족 영웅 오기에르의 무용담을 삽입해 출간하기도 했다.
그래서 영역본만 해도 ‘코튼 판본(cotton version)’, ‘에거튼 판본(Egerton version)’, ‘결손 판본(Defective version)’ 등 다양한 계통의 필사본들이 존재한다. ‘코튼 필사본’은 1400년경 제작된 양피지 책인데, 코튼 도서관의 서고에서 영국 박물관으로 넘어간 필사본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에거튼 필사본’도 15세기 전반에 고딕 필기체로 쓰인 양피지 책인데, 영국 도서관이 프랜시스 에거튼 백작의 기부금으로 구입한 필사본이어서 그렇게 불린다. ‘결손 판본’은 이 판본들과 비교했을 때 누락되거나 간략한 부분이 많아서 그렇게 불리며, 35개에 이르는 필사본이 존재한다. 오늘날 현대 영어로 번역된 《맨더빌 여행기》는 대체로 이 세 판본들 가운데 하나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데, 코튼 판본은 프랑스어 판본과 가장 가깝지만, 이따금 프랑스어를 오역하거나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나타나는 단점이 있다. 에거튼 판본은 코튼 판본과 전반적인 내용은 거의 유사하지만 내용이 삭제, 보충되거나 달라지는 부분이 있으며, 지명이나 숫자도 약간 차이를 보인다. 또한 코튼 판본에 비해 문맥상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있다. 결손 판본은 나머지 두 판본에 비해 간결한 반면 누락된 내용이 많다.
한국어 번역은 최초의 프랑스어 판본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내용면에서 가장 충실한 코튼 판본을 기초로 했으며, 거기다 에거튼 판본과 결손 판본을 비롯해 프랑스에서 제작된 앵글로노르만어 판본 등 다른 판본들도 종합적으로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코튼 판본은 알프레드 윌리엄 폴라드가 1900년에 현대어로 번역한 것을 저본으로 삼았는데, 인명이나 지명 등의 고유명사는 코튼 필사본의 원문을 기준으로 표기해 학술적으로도 최대한 의미 있게 이용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그리고 코튼 판본에는 없고 에거튼 판본에만 있는 내용도 본문에 함께 수록했고, 판본들의 내용에 차이가 있어 비교가 필요한 경우에는 주석에서 그 차이를 꼼꼼히 비교해 놓았다. 그리고 1684년 인쇄본에 삽화로 쓰인 목판화를 기초로 1887년 인쇄본에 수록한 삽화도 함께 수록하여 시각적인 즐거움도 함께 누릴 수 있게 구성했다.
▣ 작가 소개
저자 : 존 맨더빌(John Mandeville)
이 여행기의 화자는 자신을 “잉글랜드의 세인트올번스에서 태어난 나, 기사 존 맨더빌”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자신은 “1322년에 고국을 출발해 바다를 건너 수많은 땅들과 섬들, 나라들을 지나, 수많은 낯선 곳들을 탐험했고”, 이제는 나이와 고된 여행이 남긴 통풍으로 몸이 자유롭지 않게 되어 “1356년, 고국을 떠났던 날로부터 34년 되는 해인 지금, 지나간 시간 동안의 행적들을 기억나는 대로 이 책에 적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존 맨더빌(John Mandeville)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려진 내용은 이 두 개의 구절뿐이다. 맨더빌의 여행기가 실제라고 믿었던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독자들은 그를 최고의 여행가이자 모험가로 꼽기도 했으나, 그가 실존했던 인물인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수수께끼의 기사’로 불리기도 한다.
역자 : 주나미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서양중세사를 전공했다. 「카타르파 교리의 특징과 그 현실적 의미」라는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두산백과사전의 역사ㆍ신화 분야 전문 집필자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는 미셸 파스투로의 《곰, 몰락한 왕의 역사》가 있다.
▣ 주요 목차
프롤로그
1부. 성지로 가는 길
1장 잉글랜드에서 콘스탄티노플로 가는 길
2장 콘스탄티노플
3장 그리스인의 신앙과 문자
4장 콘스탄티노플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5장 키프로스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6장 다섯 왕국을 다스리는 바빌론의 술탄
7장 이집트
8장 바빌론과 시나이 산으로 가는 길
9장 사막을 지나 베들레헴으로
10장 예루살렘의 성지들
11장 시온 산과 여호사팟 골짜기
12장 사해와 사마리아 지방
13장 갈릴리 지방
14장 예루살렘으로 가는 세 개의 길
15장 사라센인의 풍속과 신앙
2부. 성지 너머의 세계
16장 페르시아 황제가 다스리는 땅
17장 인도의 다이아몬드와 여인국 아마조니아
18장 인도의 신앙과 풍습
19장 사도 도마의 손과 칼라미의 우상숭배
20장 지구는 둥글다
21장 인도 너머 섬들의 풍습
22장 저 너머의 세계에 사는 다양한 종족들
23장 카타이의 대칸
24장 카타이의 황제를 왜 대칸이라고 부르나
25장 대칸 궁정의 풍속
26장 타타르인의 풍습
27장 카타이와 프러시아 사이의 왕국들
28장 카타이와 그리스 사이의 왕국들
29장 카타이 너머의 나라와 섬들
30장 사제왕 요한의 나라
31장 사제왕 요한이 다스리는 섬들의 풍습
32장 사제왕 요한이라고 불리게 된 까닭
33장 지상낙원에서 흘러나오는 4개의 강
34장 되돌아오는 길
에필로그
주석
해설
찾아보기
“세계의 위대한 탐험가들 가운데 어느 누구도 우리의 맨더빌만큼 그렇게 큰일을 해낸 이는 없다” - 16세기 영국의 고문헌학자인 존 릴런드(J. Leland)
콜럼버스는 왜 자신이 도착한 곳이 인도의 섬이라고 생각했을까?
유럽이 인도나 중국에 대한 지식을 전혀 가지고 있지 못했을 것이라는 우리의 생각과는 달리 유럽인들은 오래 전부터 인도와 그 너머의 중국에 대해 필요한 만큼의 지식은 가지고 있었다. 알렉산더 대왕의 인도 원정 이후 그리스나 로마인들에게도 인도는 그다지 낯설지만은 않은 곳이었다. 그리고 비잔티움 제국이 멸망한 뒤에도 제네바나 베네치아 등의 상인들은 동방과 활발히 교역을 해왔다. 그들은 아라비아 상인들과의 교역을 통해서 인도와 중국 등의 진기한 물품을 들여왔으며, 때로는 직접 인도와 중국으로 항해를 떠나기도 했다. 따라서 아라비아 너머에 인도가 있고, 그 너머에 또 중국이 있다는 정도의 지리인식은 상인들과 뱃사람들에게는 상식과도 같은 것이었으며, 그곳들로 안전하게 갈 수 있는 항로도 잘 알고 있었다. 심지어 베네치아나 제노바의 상단에서는 중국으로 안전하게 갈 수 있는 안내서를 만들기도 했다. 실제 14세기에 프란체스코 수도사인 오도릭은 페르시아만 남단의 호르무즈에서 배를 타고 인도를 거쳐 중국을 다녀온 뒤에 여행기를 남겼고, 마르코 폴로가 중국에서 돌아올 때에도 이용했던 경로도 바로 이 길이었다.
그런데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고 알려진 콜럼버스는 도대체 왜 반대쪽으로 돌아가기 위해 서쪽으로 오래 항해한 뒤에 도착한 섬을 중국이 아니라 인도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무리 오스만제국의 세력이 커져서 14세기 이후 동방으로 가는 교역로가 막혔다고 해도, 제노바의 유능한 뱃사람인 콜럼버스가 유럽에서 동쪽으로 인도를 거쳐 중국으로 가게 된다는 사실을 몰랐을 리는 없다. 중세에 인도라는 개념이 오늘날과는 달리 아프리카 동부 해안과 인도차이나 남부의 섬들까지를 포함하는 폭넓은 개념으로 사용되었다고 해도 이것은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다.
하지만 콜럼버스에게 지구가 둥글다며 서쪽으로 항해하면 유럽 맞은편의 동방으로 곧바로 갈 수 있다고 부추겼던 어떤 책이 중국 너머의 대양에 사제왕 요한이 다스리는 인도가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면, 콜럼버스가 왜 자신이 도착한 곳을 중국이 아니라 인도라고 생각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중세 유럽에서 성서에 버금갈 정도로 폭넓게 읽히며 다양한 계층들에게 인기를 끌었던 그 책이 바로 《맨더빌여행기》이다.
실제 콜럼버스는 두 번째 항해에서 “존 맨더빌이 그 바다는 온통 섬들로 가득하며 인도에는 5천여 개의 섬이 있다고 말한 것을 떠올리며 더 앞으로 나아가기로 결심했다”는 기록을 남기기도 했는데, 이것은 그의 항해에 《맨더빌여행기》의 영향이 컸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콜럼버스가 스페인의 페르난도 왕과 이사벨라 왕비에게 지원을 받는 데에도 이 책이 큰 영향을 끼쳤다고 알려져 있는데, 콜럼버스의 가까운 친구이자 연대기 기록자인 앙드레 베르날데는 1492년에 “콜럼버스는 이 경로를 따라가면 도달할 것이라고 말하며 항해를 계속해 ‥ 그의 목적, 즉 당시 대칸이 지배하고 있던 카타이 지방과 도시들을 찾아 나선 것이다”라고 적었다. 아울러 서쪽으로 나아가는 항해를 통해 동방의 부를 어떻게 확보할 수 있는지 자세히 설명한 뒤에 “누구든 이 진실을 확인하기를 원하는 자는 맨더빌의 책을 읽을 것을 권한다”라고 덧붙였다.
유럽 전역에서 폭넓게 읽힌 최초의 국제적 베스트셀러
이처럼 《맨더빌여행기》는 동방에 대한 호기심을 고취시키고, 지구가 둥글다는 인식을 유럽 전역에 확산시켜 콜럼버스와 같은 모험가들이 신항로를 개척하기 위한 탐험과 여행에 나서도록 자극했다. 특히 이 책은 14?17세기에 유럽에서 폭발적인 인기를 얻으며 다양한 계층들에게 폭넓게 읽혔기 때문에 그 영향력은 더욱 컸다.
오늘날에는 마르코 폴로가 동방을 여행한 가장 대표적인 중세 유럽인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중세에는 달랐다. 중세에는 《맨더빌 여행기》의 주인공인 존 맨더빌이라는 영국의 기사가 마르코 폴로는 감히 견줄 수 없을 만큼 모험가로서 더 폭넓은 인기와 권위를 가지고 있었다. 《맨더빌 여행기》는 1357년에서 1360년대 초 사이에 프랑스어로 처음 쓰인 것으로 추정되는데, 오늘날 전해지는 가장 오래된 것은 ‘파리 텍스트’라고 불리는, 1371년에 파리의 샤를 5세 궁전에서 제작된 필사본이다. 그 뒤 이 책은 프랑스의 궁정과 귀족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하면서 잉글랜드로 유입되었고, 유럽의 다른 지역으로도 빠르게 퍼져나갔다. 그래서 100년도 되지 않는 기간 동안 10여개 국가의 언어로 번역되어 300여 종의 사본을 남겼다. 15세기 활판인쇄술이 등장한 뒤 가장 활발히 인쇄되었던 것도 성서와 《맨더빌 여행기》였다. 16세기에만 180여 종의 인쇄본이 출간되었을 정도이니, 실로 이 책이야말로 최초의 국제적 베스트셀러라고 해도 무방할 것이다.
중세에는 《맨더빌 여행기》 이외에도 성직자와 상인, 연대기 작가들이 쓴 동방 여행기가 여럿 존재했다. 특히 13~14세기에는 많은 사람들이 동방에 관한 여행기를 남겼다. 13세기에 들어서 몽골이 동유럽을 공격해오고, 바그다드를 점령해 이슬람의 아바스 왕조를 무너뜨리자 로마 교황과 유럽의 군주들은 잇따라 중국에 사신과 선교사들을 파견했다. 그들은 돌아와 자신들이 여행에서 보고 겪은 일들을 기록으로 남겼는데, 이 때문에 이 시기에는 동방에 관한 기록들이 풍성한 편이다. 1245년 교황 이노켄티우스 4세에 의해 중국으로 파견되었던 이탈리아 프란체스코회 수도사 카르피니는 《몽골의 역사》라는 기록을 남겼다. 1253년 기욤 드 뤼브룩은 프랑스 왕 루이 9세의 명을 받아 중국을 다녀온 뒤 《몽골제국여행기》를 남겼다. 마르코 폴로도 1271년부터 1295년까지 중국을 여행하고 돌아와 《동방견문록》을 남겼으며, 프란체스코회 수도사인 오도릭도 선교를 위해 중국으로 파견되었다가 1330년 귀국해 여행기를 남겼다. 마리뇰리도 교황 베네딕투스 12세의 명으로 1338년부터 몽골과 중국 등에 머무르다가 1353년에 돌아와 기록을 남겼다.
하지만 어떤 여행기도 《맨더빌 여행기》의 인기와 권위에는 미치지 못했다. 고대 그리스에서부터 내려온 유럽의 전통적인 상상과 동방에 대한 호기심을 뒤섞고, 역사와 지리, 종교와 문화에 대한 다양한 지적 욕구까지 충족시킨 이 통속적인 여행기는 다른 여행기들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의 인기를 얻었다. 《맨더빌 여행기》는 존 맨더빌이라는 잉글랜드 출신의 기사가 예루살렘을 비롯한 근동 지방과 인도, 중국 등을 여행하며 보고 겪은 일들을 자전적으로 기록한 형식으로 되어 있다. 이 점은 오도릭이나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 등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오도릭이나 마르코 폴로의 여행기가 말 그대로 ‘견문’에 한정되었던 것에 비해, 《맨더빌 여행기》에는 불사조와 외눈박이 거인 등 상상 속에서나 있을 법한 온갖 존재들이 등장한다. 심지어 이교도의 입을 빌어 교황을 정점으로 한 서구 그리스도교 사회의 문제를 날카롭게 풍자하는가 하면, 선거로 왕을 선출하는 나라도 있다고 소개하며 불온한 정치의식마저 자극한다. 그리고 스스로 여행을 하며 북극성과 남극성의 고도로 관측한 수치를 근거로 들며 지구가 둥글다는 사실을 자세히 증명하고 있을 뿐 아니라, 동쪽이 아니라 반대편인 서쪽으로 돌아가면 대칸이 다스리는 중국과 사제왕 요한이 다스리는 인도에 다다를 수 있다고 말하며 전통적인 그리스도교적 지리인식과는 다른 새로운 지리인식도 제시한다.
중세 사람들은 이러한 맨더빌의 놀라운 이야기에 매료되었다. 군주와 모험가들은 그의 여행기에서 다른 세계에 대한 정보를 얻으려 했으며, 대중들은 어려운 라틴어가 아니라 자국어로 된 이 책을 통해서 역사와 지리, 종교와 문화에 관한 지적 욕구를 채웠다. 그리고 지구구형설에 기초한 맨더빌의 새로운 지리인식은 수많은 모험가들이 오스만제국에 가로막힌 동쪽 항로를 대신할 신항로 개척에 나서도록 자극했다. 콜럼버스를 비롯한 탐험가들은 맨더빌의 여행기를 읽으며 사제왕 요한이 다스리는 인도를 향해 항해를 떠날 모험심을 키웠고, 지리학자들은 이 여행기의 내용에 기초해 지구본과 새로운 세계지도를 제작하기 시작했다. 1492년에 최초로 지구본을 제작한 마르틴 베하임이나 16세기에 《지구의 무대》라는 세계지도책을 완성한 오르텔리우나 ‘메르카토르 도법’으로 유명한 메르카토르 등이 모두 지도를 제작할 때 《맨더빌 여행기》의 정보를 중요하게 참고했다고 알려져 있다.
혼성모방의 원조
이처럼 맨더빌의 여행기는 중세 유럽의 지리인식과 문화인식을 변화시켜 르네상스의 인문주의 정신과 대항해 시대를 여는 데 매우 큰 영향을 끼쳤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이 여행기가 실제의 경험을 근거로 하고 있다는 작가의 주장이 거짓말임이 거의 확실하다는 사실이다. 이 책의 내용은 대부분 당시 동방에 관해 다루고 있던 여러 문서들과 자료들을 교묘하게 가져와 재구성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기 때문이다.
오랜 기간에 걸쳐 이루어진 학자들의 연구에 따르면, 이 여행기의 작가는 헤로도토스, 플리니우스, 이시도루스, 야코부스, 자크 드 비트리, 뱅상 드 보베, 오도릭, 마르코 폴로 등 고대에서 14세기에 이르는 다양한 작가들의 기록이나 민간에서 떠돌던 여러 가지 전설들을 소재로 상상과 허구를 덧붙여 이 여행기를 썼다. 그가 내용을 가져온 문헌들을 보면, 헤로도투스, 파우사니아스, 플리니우스, 솔리누스, 이시도루스, 히에로니무스 등 고대 작가들의 글을 비롯해, 중세에 유행하던 알렉산더 대왕의 전설 모음집과 초기의 동물지들, 저버스 틸버리의 《황제의 여흥을 위하여》와 같은 비기독교 전설과 야코부스의 《황금전설》과 같은 기독교 전설들, 그리고 13세기 뱅상 드 보베가 편찬한 백과전서인 《거대한 거울》까지 다양하다. 알베르트 덱스라샤펠의 《예루살렘 원정의 역사》, 자크 드 비트리의 《예루살렘의 역사》와 《동양사》, 체사리우스 폰 하이스터바흐의 《기적들에 관한 대화》, 윌리엄 트리폴리의 《사라센인들에 대하여》, 빌헬름 폰 볼덴젤의 《성지와 바다건너 어떤 나라들에 관한 책》, 하이톤의 《동방사의 전성기》, 카르피니의 《몽골의 역사》, 오도릭의 《여행기》와 마르코 폴로의 《동방견문록》 등과 같은 동방에 관한 기록들도 폭넓게 이용했다.
이런 점에서 이 책은 오늘날을 기준으로 하면 분명히 ‘표절’이자 ‘위작’인 셈이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자칭 존 맨더빌이라는 인물은 다른 사람의 글에서 소재를 가져오더라도 그것을 전혀 다르게 해석하고 배치하고 의미를 부여했다는 점이다. 때로는 동일한 자료를 가져다가 원작자의 의도와는 정반대로 해석하기도 한다. 마치 크기와 모양이 가지각색인 여러 개의 천 조각들을 이어 만든 재미있는 보자기와도 같다. 중세의 독자들에게도 익숙한 소재와 이야기를 다르게 변주하고 있다는 점이 ‘표절’이 아니라 오히려 큰 ‘매력’으로 다가왔음이 분명하다. 이런 점에서 이 여행기의 작가야말로 포스트모던 시대의 중요한 창작기법으로 여겨지는 혼성모방(pastiche)의 대가이자 원조인 셈이다.
그래서 이 여행기는 문학사에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베넷(W. Bennett)과 같은 문학사가는 이 여행기의 작가를 ‘영국 산문의 아버지’라고 평하기도 했는데, 그 만큼 맨더빌의 여행기는 중세 산문문학의 발달에 큰 영향을 끼쳤다. 셰익스피어, 스펜서, 밀턴 등도 이 여행기에 등장하는 소재들을 자신들의 작품에서 즐겨 사용했으며, 조나단 스위프트는 《맨더빌 여행기》의 형식과 특징을 그대로 계승해 《걸리버 여행기》를 썼다.
다양한 사본을 비교ㆍ대조한 최초의 한국어 번역본
이처럼 폭넓은 인기를 끌었던 작품이어서 《맨더빌 여행기》는 매우 다양한 판본이 존재한다. 산문만이 아니라 운문으로도 출간되었고, 일부 이야기만 떼어서 편집한 축약본으로도 만들어졌다. 심지어 독일에서는 이 여행기 안에 카롤루스 대제의 12용사 가운데 한 명인, 민족 영웅 오기에르의 무용담을 삽입해 출간하기도 했다.
그래서 영역본만 해도 ‘코튼 판본(cotton version)’, ‘에거튼 판본(Egerton version)’, ‘결손 판본(Defective version)’ 등 다양한 계통의 필사본들이 존재한다. ‘코튼 필사본’은 1400년경 제작된 양피지 책인데, 코튼 도서관의 서고에서 영국 박물관으로 넘어간 필사본 가운데 하나였기 때문에 그렇게 불린다. ‘에거튼 필사본’도 15세기 전반에 고딕 필기체로 쓰인 양피지 책인데, 영국 도서관이 프랜시스 에거튼 백작의 기부금으로 구입한 필사본이어서 그렇게 불린다. ‘결손 판본’은 이 판본들과 비교했을 때 누락되거나 간략한 부분이 많아서 그렇게 불리며, 35개에 이르는 필사본이 존재한다. 오늘날 현대 영어로 번역된 《맨더빌 여행기》는 대체로 이 세 판본들 가운데 하나를 기준으로 하고 있는데, 코튼 판본은 프랑스어 판본과 가장 가깝지만, 이따금 프랑스어를 오역하거나 논리적으로 이해되지 않는 부분이 나타나는 단점이 있다. 에거튼 판본은 코튼 판본과 전반적인 내용은 거의 유사하지만 내용이 삭제, 보충되거나 달라지는 부분이 있으며, 지명이나 숫자도 약간 차이를 보인다. 또한 코튼 판본에 비해 문맥상 흐름을 자연스럽게 하려고 노력한 흔적이 있다. 결손 판본은 나머지 두 판본에 비해 간결한 반면 누락된 내용이 많다.
한국어 번역은 최초의 프랑스어 판본과 가장 가까우면서도 내용면에서 가장 충실한 코튼 판본을 기초로 했으며, 거기다 에거튼 판본과 결손 판본을 비롯해 프랑스에서 제작된 앵글로노르만어 판본 등 다른 판본들도 종합적으로 비교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코튼 판본은 알프레드 윌리엄 폴라드가 1900년에 현대어로 번역한 것을 저본으로 삼았는데, 인명이나 지명 등의 고유명사는 코튼 필사본의 원문을 기준으로 표기해 학술적으로도 최대한 의미 있게 이용할 수 있도록 구성하였다. 그리고 코튼 판본에는 없고 에거튼 판본에만 있는 내용도 본문에 함께 수록했고, 판본들의 내용에 차이가 있어 비교가 필요한 경우에는 주석에서 그 차이를 꼼꼼히 비교해 놓았다. 그리고 1684년 인쇄본에 삽화로 쓰인 목판화를 기초로 1887년 인쇄본에 수록한 삽화도 함께 수록하여 시각적인 즐거움도 함께 누릴 수 있게 구성했다.
▣ 작가 소개
저자 : 존 맨더빌(John Mandeville)
이 여행기의 화자는 자신을 “잉글랜드의 세인트올번스에서 태어난 나, 기사 존 맨더빌”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자신은 “1322년에 고국을 출발해 바다를 건너 수많은 땅들과 섬들, 나라들을 지나, 수많은 낯선 곳들을 탐험했고”, 이제는 나이와 고된 여행이 남긴 통풍으로 몸이 자유롭지 않게 되어 “1356년, 고국을 떠났던 날로부터 34년 되는 해인 지금, 지나간 시간 동안의 행적들을 기억나는 대로 이 책에 적는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나 존 맨더빌(John Mandeville)이라는 인물에 대해서 알려진 내용은 이 두 개의 구절뿐이다. 맨더빌의 여행기가 실제라고 믿었던 중세와 르네상스 시기의 독자들은 그를 최고의 여행가이자 모험가로 꼽기도 했으나, 그가 실존했던 인물인지도 확인되지 않는다. 그래서 그는 ‘수수께끼의 기사’로 불리기도 한다.
역자 : 주나미
고려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동 대학원에서 서양중세사를 전공했다. 「카타르파 교리의 특징과 그 현실적 의미」라는 주제로 석사 학위를 받았으며,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박사 학위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두산백과사전의 역사ㆍ신화 분야 전문 집필자로도 활동하고 있으며, 번역한 책으로는 미셸 파스투로의 《곰, 몰락한 왕의 역사》가 있다.
▣ 주요 목차
프롤로그
1부. 성지로 가는 길
1장 잉글랜드에서 콘스탄티노플로 가는 길
2장 콘스탄티노플
3장 그리스인의 신앙과 문자
4장 콘스탄티노플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5장 키프로스에서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
6장 다섯 왕국을 다스리는 바빌론의 술탄
7장 이집트
8장 바빌론과 시나이 산으로 가는 길
9장 사막을 지나 베들레헴으로
10장 예루살렘의 성지들
11장 시온 산과 여호사팟 골짜기
12장 사해와 사마리아 지방
13장 갈릴리 지방
14장 예루살렘으로 가는 세 개의 길
15장 사라센인의 풍속과 신앙
2부. 성지 너머의 세계
16장 페르시아 황제가 다스리는 땅
17장 인도의 다이아몬드와 여인국 아마조니아
18장 인도의 신앙과 풍습
19장 사도 도마의 손과 칼라미의 우상숭배
20장 지구는 둥글다
21장 인도 너머 섬들의 풍습
22장 저 너머의 세계에 사는 다양한 종족들
23장 카타이의 대칸
24장 카타이의 황제를 왜 대칸이라고 부르나
25장 대칸 궁정의 풍속
26장 타타르인의 풍습
27장 카타이와 프러시아 사이의 왕국들
28장 카타이와 그리스 사이의 왕국들
29장 카타이 너머의 나라와 섬들
30장 사제왕 요한의 나라
31장 사제왕 요한이 다스리는 섬들의 풍습
32장 사제왕 요한이라고 불리게 된 까닭
33장 지상낙원에서 흘러나오는 4개의 강
34장 되돌아오는 길
에필로그
주석
해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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