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가슴을 따라 살고 있는가 -아픈 시간을 걸어나와 빛 아래에 우뚝 서다-

고객평점
저자홍영철
출판사항북스넛, 발행일:2013/07/01
형태사항p.437 국판:23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91186804 [소득공제]
판매가격 19,800원   17,820원  (인터넷할인가:10%)
포인트 891점
배송비결제주문시 결제
  • 주문수량 

총 금액 : 0원

책 소개

▣ 출판사서평

눈물이 나더라도
삶에 무릎 꿇지 마라!

세상을 변화시킨 것은 예술이고, 삶을 변화시킨 것은 창조였다. 전에 없던 것을 처음으로 만들어내는 그 창조의 맨 앞에 예술이 있다. 예술과 사회와 삶은 별개가 아니다. 예술의 위대성이 창조에 있듯이 삶의 위대성도 창조에 있다. 창의적이지 않은 작품이 외면당하는 것처럼 창의적이지 않은 삶은 버림받는다. 이 책은 뼈아픈 시간을 걸어 나와 빛 아래에 우뚝 선 창조적인 사람들의 이야기다. 당당한 자존심으로 스스로의 삶을 명작으로 만든 미켈란젤로, 춥고 아프고 배고픈 방랑 속에 영롱한 시를 유산처럼 남기고 떠난 랭보, 진정으로 가슴이 원하는 삶을 살았던 피카소, 늦깎이로 시작해 10년 동안 그림의 모든 것을 보여준 고흐, 자신의 불행마저 멈추게 만든 작가 카프카, 일생을 바쳐 그리워할 것을 찾았던 버지니아 울프, 별이 되고 싶었던 조약돌 앤디 워홀, 고독과 절망을 위대한 노래로 엮어낸 비틀스, 창조와 재생과 구원을 소망했던 시인 엘리엇 등 20여 명의 예술가들의 혼신을 다한 창조적 삶은 우리에게 의미 있는 삶이 무엇인지 절실하게 묻고 있다.

오늘날 모두가 교육에 열을 올리지만, 거기에서 행복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은 자신의 길이 아닌 곳으로 내몰리기 때문이다. 현대 교육은 대량과 속성을 위주로, 이미 만들어져 있는 방법들을 빨리 외우게 해서 빨리 써먹기를 강요한다. 인문이 빠져 있으므로 삶의 행복은 대충 넘어가게 된다. 인류의 문화, 인륜의 질서를 헤아리는 공부인 인문 속에 인간을 생각하는 휴머니즘이 들어 있다. 창조적인 사람들의 삶은 곧 인문이다. 인문을 모르는 삶은 목표한 바를 얻었더라도 창조적으로 쓰지 못하게 되며, 그것은 불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스스로 즐거움을 얻지 못하면 아무리 대단한 성취일지라도 정작 자신에게는 고통만 느껴지기 때문이다. 즐거움을 얻는 창조적 삶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인문이다.

책에 등장하는 창조적 인물들은 인생의 방향을 계산하지 않았다. 그들은 예술가이기 이전에 대단한 생의 승부사였다. 모두 ‘누군가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다’고 굳게 믿었던 영혼들이다. 그야말로 모두 가슴을 따라 살았던 사람들이다. 그들에게 생의 시련은 곧 에너지였다. 미련을 남기지 않는 삶을 가져다준다면 시련 정도야 부딪쳐볼 충분한 가치가 있다고 믿었다. 그들에게는 가난도 불행도 열등감도 자신이 선택한 길을 가는 데 장애가 될 수 없었다. 시련이 삶을 분발하게 만드는 고마운 스승인 셈이었다. 책은 창조적 인물들의 어린 시절도 소중하게 다루고 있다. 어린 시절의 체험은 일생에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확인되지 않은 신화적 요소는 제외했고, 사실에 충실했다. 이해를 돕기 위해 일일이 나이와 연도를 밝혔다. 역사 속의 큰사람들은 별종처럼 느닷없이 그렇게 된 것이 아니라, 지금의 우리와 똑같이 거칠고 험한 시간을 살아낸 사람들이다. 저자는 그것을 말하기 위해 6년 동안의 방대한 자료 추적을 통해 이 책을 완성했다.

책의 내용

#1 집념으로 자신을 점화하다

생의 폭풍우 속에서 자신을 점화하여 창조의 높은 자리에 우뚝 선 이들의 이야기다. 재능이란 어떤 일을 하는 데 필요한 재주와 능력을 말한다. 사람은 누구나 한 가지의 재능은 타고난다. 그것이 세상의 밝은 빛이 되기 위해서는 불씨를 찾아내어 불꽃을 일구고 기름을 부어줘야 한다. 땅속에 아무리 값진 금광석이 묻혀 있더라도 캐내어 제련하지 않으면 흔한 돌산에 지나지 않는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천재는 아무것도 되지 못한다. 재능 그 자체가 사람의 마음을 얻을 수는 없는 것이다. 낡은 것을 파괴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 창조다. 자기 자신을 믿으며, 외롭고 고독한 방황과 방랑 속에서 마침내 스스로 위대한 불꽃이 된 사람들이다.

피렌체 사람 미켈란젤로는 석공의 아내인 유모의 젖을 먹고 자랐다. 돌과 끌과 정이 아이의 장난감이었다. 가난한 아버지는 아들이 돈이나 잘 벌어 쓰러진 집안을 일으켜 세우기를 바랐다. 석공은 화가보다 못한 대접을 받았으나 소년은 돌이 좋았다. 자연 속에 갇혀 있는 생명을 자기 손으로 끄집어내고 싶었다. 귀족으로부터 주문받은 것들을 열심히 조각했다.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할 뛰어난 작품을 만들어야 했다. 손에서 망치를 놓는 때는 잠자고 먹는 시간뿐이었다. 천정화도 그리고 벽화도 그렸다. 하루도 쉬지 않고 일했으니 누구에게나 당당했다. 거기까지 닿은 이유는 거기까지만 갔기 때문일지 모른다. 그렇게 그는 유일무이한 피렌체 사람 미켈란젤로가 되었다.

제노바 허름한 골목의 낡은 집에서 태어난 바이올리니스트 파가니니는 바이올린을 가지고 놀았다. 부두 노동자인 아버지는 아이가 어서 바이올린을 배워서 생계에 보탬이 되어주기를 바랐다. 아버지는 아이가 빈틈을 보이면 매질에다 밥도 주지 않는 맹훈련을 강행했다. 그러나 그럴 필요까지는 없었다. 아이는 스스로 악기에 충분히 매료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의 바이올린 소리는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우는 이도 있었고, 옷을 찢는 이도 있었다. 아픈 사랑이 그를 악마의 바이올리니스트로 만들었다. 사람들은 그가 정말 악마인지 구경하러 오기도 했다. 세상을 떠났을 때, 교회는 그가 악마이므로 땅에 묻지도 못하게 했다. 그는 그저 바이올린밖에 아무것도 모르던 사람이었음에도 말이다.

프랑스 북동부 지방에서 태어난 시인 랭보는 집 나간 아버지 대신 엄해진 어머니 밑에서 자랐다. 얻어맞고 벌서기를 반복하면서 반항적 기질이 자연스레 커졌다. 마음 둘 곳이 없었던 소년은 탈출을 꿈꾸었다. 책 속에서 찾아낸 것은 시였고, 평범한 거라고는 하나도 보이지 않는 아이가 되었다. 좋은 시인들이 많이 산다는 파리로 무작정 상경하기를 여러 차례. 무임승차로 걸려도, 혁명군에 붙잡혀도 괜찮았다. 모두 시가 되는 고마운 체험이었다. 소년의 눈에 파리의 시인들은 시인도 아니었고, 그런 시인들의 눈에 소년은 문제아일 따름이었다. 쓰레기통을 뒤지며 길거리에서 잠을 잤다. 오직 시만이 지상 최대의 가치였다. 멸시와 치욕 속에서 소년은 최고의 시인이 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지배하던 프라하에서 태어난 시인 릴케는 외롭고 불안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받게 된 군사 교육은 아이를 아프게 했다. 소설책을 읽으며 이를 악물고 버텼다. 강제에 의해 법률 공부를 하면서도 책을 읽고 글을 썼다. 무엇인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시작이라도 하기 위해서는 일상의 조건으로부터 멀어질 필요가 있었다. 방랑의 길이 시작되었다. 존재를 알리기 위해 만나는 이마다 자신이 쓴 글을 보여주었고, 자기 손으로 시집을 펴냈다. 마음이 가는 사람을 만났으며, 마음이 가는 곳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는 집을 만들지 않았다. 세상의 모든 거처가 곧 집이었다. 그는 독일 시를 처음으로 완전하게 만든 귀중한 릴케였다.

스페인에서 태어나고 프랑스에서 활동한 피카소는 두 나라가 서로 자랑하는 화가이다. 아버지가 미술 교사였으므로 아이는 붓과 팔레트 곁에서 자랐다. 재미없는 외우기를 강요하는 학교보다 들판의 신비한 풍경이 더 좋았다. 아이는 자신이 가장 잘 아는 그림에 매달렸다. 다행히 아버지는 아이의 창조성을 칭찬해주었고, 어머니는 아이의 욕망을 부추겨주었다. 이미 유명 화가처럼 그릴 수 있게 되었으나 모든 것을 버리기로 했다. 낡고 오래된 것을 반복하는 것은 창조가 아니었다. 그는 보다 크고 넓은 미술이 있는 파리로 갔다. 고독과 결핍이 그를 풍성한 정신세계로 안내했다. 자신을 해체하고 다시 건립하기를 수없이 반복했다. 그의 그림은 일기였고, 그의 삶은 미술 그것이었다.

#2 열정으로 절망을 밀어붙이다

절망이라는 수렁에서 자신을 구출하여 마침내 희망의 증거가 된 이들이다. 보일 듯 보이지 않고 잡힐 듯 잡히지 않는 것이 애를 태운다. 아예 기다릴 것이 없으면 불안하지도 공포스럽지도 않다. 우리를 어둠 속에 내버려두게 하는 것은 아득한 불빛이다. 어렴풋한 기대가 늪 속에 머물게 한다. 철학에서는 절망을 ‘인간이 극한 상황에 직면하여 자기의 유한성과 허무성을 깨닫게 되었을 때의 상태’라고 정의한다. 밑바닥에 이르렀다는 것은 반가운 일이다. 자신의 위치와 목표를 깨달을 수 있기 때문이다. 가진 것이 희망밖에 없는 이는 아무것도 무서워하거나 두려워하지 않는다. 모두 철저하게 가라앉았다가 심장의 힘으로 떠올라 꿈까지 도달한 사람들이다.

러시아의 소설가 도스토옙스키는 먹고 살기 위해 먼저 군인이 되어야 했다. 개혁의 바람이 몰아치던 무렵, 청년은 아버지가 농노들에게 살해당하는 비극을 겪었다. 그는 가슴속에 쌓이는 불만과 소망을 글로 적었다. 사형대 앞에 섰고, 쇠사슬을 찬 채 강제노동에 시달렸다. 그러나 낙심하지 않았다. 어디에 있더라도 생활은 생활이었던 것이다. 삶의 끄트머리까지 경험한 그에게 더 이상의 절망은 없었다. 누구나 가질 수 없는 기억은 아무나 흉내 낼 수 없는 명작으로 탄생했다. 그는 극한까지 내몰렸다가 솟아오르기를 거듭하면서 시련을 뛰어넘는 초인을 꿈꾸었다. 그의 소설은 고난의 한복판에서 부르는 처절한 노래였다. 그는 오늘도 우리에게 삶의 방관자가 되지 말라고 속삭인다.

프랑스 파리에서 태어나 태평양 한가운데의 섬에서 떠난 화가 고갱은 선원이었고, 잘나가는 회사원이었다. 페루에서 유년을 보내기도 한 그는 무엇을 시작하기에는 너무 늦었다고 여길 법한 나이에 미술에 뛰어들었다. 바라보는 것에 만족하기가 억울했다. 생활은 빠른 속도로 어려워졌으나 타협하지 않았다. 남들과 다른 작품을 만들 수 있다면 어디든지 마다 않고 달려갔다. 그는 자신에게는 사막과 다름없는 도시를 떠나 자연 속으로 들어갔다. 그곳이 타히티였다. 자신의 그림은 씨앗에 지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지만, 원시 속에서 그 씨앗을 가꾸기로 했다. 혼자였으므로 자신을 완전히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었다. 어제가 없는 삶이 빛나는 예술을 완성시켰다.

네덜란드에서 가난한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서 방황을 거듭하던 고흐는 마침내 화가 중의 화가가 되었다. 가정 형편상 학업을 중단해야 했던 그는 화랑에서 일하는 것으로 그림과의 첫 만남을 가졌다. 태양을 품은 가슴은 언젠가 한 번은 뜨겁게 달구어지는 법이다. 청년은 해고되었고, 전도를 위해 하층민의 삶 속으로 들어갔다. 교회는 그를 싫어했고, 아버지는 어긋난 아들이 못마땅했다. 그는 그림으로 위안을 베풀고 싶었다. 화가가 된다면 가난해도 상관없었다. 화랑에서 일하는 동생 테오가 형을 도왔다. 그는 자신의 작품이 물감값은 하게 되리라 굳게 믿으며 그림만 그렸다. 그 수많은 명화들이 창조되는 데 걸린 세월은 고작 10년, 절망을 부끄럽게 만든 집념의 시간이었다.

지금은 체코의 수도인 프라하는 작가 카프카의 고향이다. 부모는 부지런한 유대인 상인이어서 그는 고독한 소년 시절을 보내야 했다. 엄격한 규범은 예민한 소년을 주눅 들게 했다. 그는 안정적인 생활로 아버지에게 인정을 받기 위해 법학을 공부하고 보험회사에 취직했다. 그러나 애정이 없는 일이 즐거울 수 없었다. 그는 신이 글 쓰는 것을 원하지 않는다 하더라도 글을 쓰기로 결심했다. 일과 글, 유대인과 독일어, 사랑과 결혼, 모든 면에서 그는 중간자였다. 이중의 삶이 존재의 불확실성을 다룬 작품으로 태어났다. 그는 일, 사랑, 병, 불안과 평생을 싸웠다. 그는 시대의 갈등을 구체화한 작가이기 이전에 자신의 실존을 구세주에게 양보하지 않은 고귀한 인간이었다.

프랑스의 상징적인 샹송 가수 피아프는 사창가에서 자랐고, 거리에서 노래를 부르며 소녀 시절을 지냈다. 부모나 가족 같은 것은 아예 의미조차 없었다. 그녀의 목소리를 예술로 이끈 것은 지나가던 행인이었다. 악보는 물론 글도 읽을 줄 몰랐으나 자신에게 주어지는 곡에다 처절한 감정을 고스란히 실었다. 그녀의 애잔한 노래는 곧 프랑스의 소리가 되어갔다. 아주 작은 키, 왜소한 몸, 그 어떤 절망이나 불행도 앞을 막을 수 없었다. 최고의 미남들이 그녀 앞에 줄을 섰고, 그녀는 아낌없이 사랑했다. 노래 없는 사랑도, 사랑 없는 노래도 없었다. 쓰러지는 일이 있어도 그녀는 무대를 지키고 싶었다. 어깨를 짓누르는 짐이 그녀에게는 더없이 고맙고 소중한 힘이었다.

#3 결핍이 걸음을 재촉하다

불운과 결핍이라는 생의 악조건들을 위대함으로 돌려세운 이들이 있다. 우리를 아프게 하는 그러한 요소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주어진다. 지식이나 지혜도 그것을 막지는 못한다. 반갑지 않은 불청객은 우리가 먼저 그 자리를 벗어나기 전까지 떠나지 않는다. 그러므로 자신을 단련시키는 교사로 삼는다면 오히려 큰 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 영원할 것 같은 행복이 한계가 있는 것처럼 불행도 한계가 있다. 멈추지 않는 바람은 없고, 끝없이 내려가는 골짜기는 없다. 장애나 가난을 실패의 원인으로 돌리면 안 된다. 부족함이 욕망을 부르고 욕망이 창조를 부른다. 모두 불행과 불운과 결핍 같은 것들을 자신을 단련시키는 교사로 삼았던 사람들이다.

프랑스 귀족의 아들 로트레크는 몸이 약한데다가 다리가 부러지는 사고로 평생을 불편하게 지냈던 화가다. 몸을 마음대로 쓸 수 없던 소년은 그림 속에서 자유와 즐거움을 찾았다. 굳이 남에게 잘 보일 필요도 없었으므로 마음이 시키는 대로 따라갔다. 그에게 콤플렉스는 약점이 아니라 남이 지니지 못한 장점이었다. 파리의 화려한 유흥가 몽파르나스 거리는 더없이 좋은 미술 소재의 보물창고였다. 위선으로 치장하지 않은 인간의 적나라한 모습이 거기 있었던 것이다. 남보다 짧은 다리로 그는 사교계와 미술계를 동시에 주름잡았다. 자신에게 주어진 불운을 미워하지도, 그 앞에서 눈물을 보이지도 않았다. 그는 대단한 화가이기 이전에 위대한 인간이었다.

미국의 한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학교도 제대로 다니지 못한 맨발의 무용가 덩컨은 숲속과 해변을 뛰어다니며 자랐다. 바람과 파도 소리는 최고의 음악이었다. 공식에 따르지 않는 독창성이 만들어진 시간이었다. 그녀에게 있어 가난은 주관적인 삶을 살게 한 고마운 은인이었다. 꿈을 찾는 도전은 국경과 사상을 뛰어넘었다. 관객들은 마침내 고대 그리스에서 온 것 같은 무용수를 향해 아낌없는 갈채를 보냈다. 수입은 많았으나 축적에는 관심이 없었다. 재산이 사람을 행복하게 하지 않음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녀는 인류의 유산으로 남을 만한 무용학교를 세우고 싶었다. 마음껏 사랑하고 마음껏 춤을 춘 그녀의 이름은 인류의 기억에 영원히 남아 있을 것이다.

문학인 아버지를 둔 영국의 여성 작가 울프는 남모를 상처를 안고 자랐다. 소녀 시절에 아버지가 다른 오빠들에게 당한 수치심은 평생 동안 씻을 수 없는 상처였다. 거기에다 잇따른 가족의 불행은 그녀를 심한 신경쇠약으로 몰고 갔다. 그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글이었고, 일기 속에 참을 수 없는 마음의 통증을 쏟아냈다. 그녀는 희망을 믿었다. 케임브리지 청년들의 모임인 블룸즈버리 그룹에 나가 세상의 진선미를 탐구했다. 그녀는 자신의 유일한 무기인 글을 가지고 부조리한 세상과 싸워나가기로 했다. 소설은 자신과 타인의 성하지 않는 몸과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가장 따뜻한 친구였다. 그녀는 불행을 이유로 생을 던져두는 겁쟁이도 게으름뱅이도 아니었다.

체코슬로바키아에서 미국으로 건너온 부모에게서 태어난 미술가 워홀은 병약해서 방 안에서 지내는 일이 많았다. 라디오를 들으며 색칠 공부를 하고 인기 배우들의 사진을 모으던 일은 자기만의 개성을 쌓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는 유명해지고 싶었고, 특별해지고 싶었다. 무작정 뉴욕으로 간 청년은 바퀴벌레와 함께 지내면서도 주눅 들지 않았다. 그들이 할 수 있는 일이라면 자신도 할 수 있을 거라 의심하지 않았던 것이다. 그는 사람들의 이목을 끌 수 있는 친근한 소재를 작품 속으로 끌어들였다. 깡통과 콜라병과 마릴린이 예술로 탄생했다. 스튜디오는 팩토리였고, 조수들은 예술 노동자였으며, 자신은 사업 예술가였다. 그는 꿈을 마음속에 담아두지 않는 실천가였다.

영국의 항구도시 리버풀에서 태어나고 자란 4명의 소년이 비틀스가 되었다. 이들은 모두 불행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부모를 잃은 아이, 빈민가 출신의 아이들, 걷기 전에 뛰어야 했던 아이들이었다. 단 한 번도 남들처럼 따뜻한 가정에서 지낸 일이 없는 소년들에게 음악은 둘도 없는 위안이었다. 그들은 담배 연기와 맥주 냄새로 찌든 부둣가 클럽에서 수도 없이 연주했다. 모두들 기타로는 먹고 살기 힘들 거라고 했다. 그러나 소년들은 먹기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살기 위해 먹는 창조자들이었다.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만든 음악들은 마침내 세계를 감동시켰으며, 그 감동은 인류가 멸망하지 않는 한 영원할 것이다. 그 이전에도 없었고 그 이후에도 없을 최고의 밴드였다.

#4 성찰이 큰길을 찾아내다

끊임없는 자기 성찰과 지독한 연습으로 창조의 세계에 이른 이들이 있다. 늘 아름답지는 않겠지만, 바라보아도 가장 싫증이 나지 않는 친구는 자신의 마음이다. 그 안에 변화무쌍하게 움직이는 우주가 들어 있다. 마음은 자기가 찾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잘 안다. 궁극적인 안내자도 구원자도 사실은 자기 마음 안에 있다. 자신에 대한 무지와 오해는 사람을 언제까지나 왜소하게 만드는 아주 큰 병이다. ‘파스칼의 원리’를 발견하고 명저 〈팡세〉를 쓴 프랑스의 사상가이자 수학자인 파스칼은, 자기 자신을 아는 일이 비록 진리를 발견하는 데 소용이 없다고 하더라도 생활을 통제하는 데는 필요하다고 말했다. 모두가 성실이 완성의 전부임을 믿었던 사람들이다.

러시아의 소설가 톨스토이는 백작의 아들로 태어났으나 어린 시절에 부모가 모두 사망하는 불운을 겪었다. 친척의 집에서 고독하게 자란 그는 쾌락을 쫓아다니는 평범한 청년이었다. 프랑스의 사상가 루소의 책이 그의 삶을 돌려놓았다. 그는 자신이 잘못한 일들을 일일이 기록하기 시작했다. 반성만이 아니라 세상의 모순과 불합리를 자기 손으로 개선해나가겠다고 다짐했다. 전쟁터에서도 자신의 생각들을 글로 남겼다.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 그의 진지한 성찰은 명작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로 태어났다. 자신의 잘못을 제때에 깨달을 수 있다면 더 좋은 인간이 될 것이라고 그는 지금도 우리에게 충고하고 있다.

오스트리아의 심리학자 프로이트의 아버지는 유대인 양털장수였고, 어머니는 그의 세 번째 아내였다. 가난과 차별로 자주 거처를 옮기며 살아야 했으나 부모는 유난히 총명한 아들을 위해 정성을 다했다. 프로이트는 어려서부터 자신이 이 세상에 중요한 업적을 남기겠다는 야심을 가지고 있었다. 의과대학을 나온 그는 한 병원의 임상교실에서 신경성 장애 치료를 접한 뒤 자신의 진로를 확실히 했다. 원인 모를 증상으로 고통 받는 환자들을 세심히 살피면서 고독하게 세상에 없는 논문을 써나갔다. 마침내 명저 〈꿈의 해석〉이 나왔으나 관심을 기울이는 사람은 없었다. 그러나 그는 아주 가치 있는 보물이라 믿었고, 오늘날 그는 정신분석학계의 영원한 별이 되었다.

프랑스의 화가 마티스는 미술과 아무 관련이 없는 집안에서 태어나 법률을 공부하며 청년을 맞았다. 법률사무소에서 일하던 그는 취미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삶에 희열이 느껴질 정도로 재미있었다. 아예 화가가 되기로 마음먹은 그는 미술 학원에 나갔으나 꾸중만 듣기 일쑤였다. 그러나 마음을 따라 살겠다고 결심한 그는 지독하게 연습했다. 잘난 화가들의 비웃음과 혹평도 기꺼이 감싸 안았다. 어디서나 스스로를 탐구하려고 애썼고, 자신을 위해 그림을 그렸다. 가장 큰 강점인 성실을 무기로 실수를 두려워하지 않고 될 때까지 밀어붙였다. 그렇게 그는 야수파의 대표 작가가 되었고, 색채의 마술사가 되었다. 휠체어와 침대 위에서도 붓을 놓지 않은 화가였다.

이탈리아의 화가 모딜리아니는 가난하고 몸이 약해서 학교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방 안에서 놀이 삼아 그린 그림이 그를 화가로 이끌었다. 평범한 풍경화는 재미가 없었다. 눈앞에서 살아 숨 쉬는 대상을 그리고 싶었고, 그것은 곧 사람이었다. 결핵이 소년을 괴롭혔으나 그는 자신에게 단호해지기로 작정했다. 내부에서 솟아나는 창조의 힘을 거부할 수 없었다. 청년은 미래와 열정을 가방에 넣고 파리로 가서 혁신적 미술의 한가운데에 자리 잡았다. 그림 하나를 빵과 술로 바꾸며 살았다. 수많은 초상화가 만들어졌다. 그가 눈동자를 그려 넣지 않은 까닭은 그의 영혼까지는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는 자신을 알 수 없다고 생각해서 자화상에도 인색할 정도로 정직했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라 영국에서 활동한 T. S. 엘리엇은 예술가 중에서는 흔치 않게 엘리트 집안 출신이다. 하버드대학에서 철학을 전공했으나 청년은 가족들이 보여주는 각본대로 살고 있는 것 같은 자각이 들었다. 자기만의 소리를 찾는 문학에 이끌렸다. 청년은 유럽으로 건너갔다. 모두들 철학 교수를 기대하고 있었으나 그는 남몰래 시를 써 모았다. 첫 시집에 이어 〈황무지〉가 나왔을 때, 그는 이미 시인의 시인이 되어 있었다. 빵을 위해 은행에서 일했으나 기뻤다. 서랍 속에는 명시들이 차곡차곡 쌓여갔기 때문이었다. 자신을 이방인이고 경계인이라고 여기던 그는 마치 공부를 하듯 글을 썼고, 그 진지한 탐구와 성찰은 그를 20세기 시의 혁명가로 만들어놓았다.

▣ 작가 소개

저 : 홍영철
그저 예술이 좋았다. 문학, 음악, 미술을 만나면 마음이 놓였다. 미술반과 문예반을 겸하던 중학교 시절, 크리스마스카드를 그려서 판 돈으로 기타를 샀다. 고등학교에서도 미술반과 문예반을 겸하며 간간이 주어지는 상금으로 생필품도 조달했다. 대학은 애써 외울 일이 적은 국문학과를 택했고, 그래도 그림을 그리고 싶어 회화를 부전공으로 삼았다. 학보와 교지 만드는 일을 같이 하니 수입도 괜찮았다. 시인 김춘수 선생님의 사랑으로 신춘문예와 문예지를 거쳐 시인이 되었다. 문학과 미술과 음악과 연극을 하는 동료들과 어울려 신촌을 누볐다. 문학평론가 김현 선생님의 도움으로 문학과지성사에서 첫 시집 『작아지는 너에게』를 펴낸 이후 『너는 왜 열리지 않느냐』, 『가슴속을 누가 걸어가고 있다』, 『여기 수선화가 있었어요』를 출간했다. 예술을 하면 굶주린다는 관념을 깨뜨리고 싶어 무던히도 애썼다. 신문, 잡지, 방송, 출판 일을 열심히 해왔다. 몇 년 전부터 내 청춘의 고향이 되는 홍대 앞 아파트에서 살고 있다. 오래전의 자신과 같은 모습들을 마주칠 때마다 ‘괜찮아, 하고 싶은 것을 하고 지내, 뒤돌아서지 않는다면 언젠가는 닿게 될 거야’라는 말들을 마음으로 전하고는 한다. 그가 예술이 좋은 것은 지금도 변함이 없다. 생의 아픔과 슬픔과 기쁨을 모두 끌어안는 넉넉한 가슴이기에.

▣ 주요 목차

프롤로그 더 나은 생을 생각하는 나의 동류에게

#1 집념으로 자신을 점화하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당당한 자존심이 삶을 명작으로 만든다
일은 외로운 소년의 기쁨이자 사랑이었다
그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조각을 만들어야 한다
산을 바라보며 작품을 상상한 청년
자꾸 시간만 헛되이 지나가니, 도와주소서
죽으면 영원히 쉴 텐데, 대리석이 제일 좋아
꿈이 너무 커서 실패하는 일은 없다

니콜로 파가니니
인간을 위해 악마가 되었던 천사
상상할 수 없을 만큼 혹독한 아버지
애인의 창자로 G현을 만들었다는 소문
시간을 아끼려고 밤에 어린 아들과 마차로 이동
인류에 도움이 되고 싶을 뿐, 두려운 것은 없다
땅이 더러워질 것이니 그를 땅에 묻지 마라
시간을 낭비하는 것은 내 심장에게 참 미안한 일

아르튀르 랭보
방황하여라, 허기진 청춘들이여
도대체 평범한 데가 하나도 없는 아이
스스로 바이올린이라 생각하는 나무
어머니, 참고 견디면 그런 날이 올까요
인생이 단 한 번뿐이라는 사실이 다행스러워
그런데 왜 살아가야 하지?
춥고 아프고 배고픈 방랑의 청춘이여, 만세!

라이너 마리아 릴케
나는 내가 원하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상처를 치유하는 좋은 방법은 상처와 친해지는 일
발이 없다 해도 나는 그대에게 갈 수 있어요
한 걸음만 내디디면 불행은 행복으로 바뀔 수 있다
장미여, 순수한 모순이여, 기쁨이여
극복과 성취는 완성을 위한 나의 의무

파블로 피카소
지금, 가슴을 따라 살아가고 있는가?
더 이상 신에게 잘 보일 필요가 없었던 아이
푸른빛, 희망과 우울이라는 그 이중의 의미
나 자신을 반복해서 베끼지는 말자
감상자가 창조에 대한 열망을 느낄 수 있도록
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할 수 있다

#2 열정으로 절망을 밀어붙이다

표도르 도스토옙스키
마르지 않는 눈물은 없었다
주어진 재능을 소중히 하면 위대해질 것이다
새 생활이란 무상으로 손에 들어오지 않는다
꿈을 밀고 나가는 힘은 심장이다
아름다운 추억을 가진 삶은 안전하다
생이 타는 듯한 상처로 느껴질 때

폴 고갱
어제는 없고 내일을 위해 오늘만 있는 삶
페루에서의 유년, 혼란한 소년을 지나 바다로 간 청년
인상파 곁에서 취미로 시작한 그림
아들의 치료비를 위해 벽보를 붙이던 초라한 38세
열대로 가자던 우리의 대화를 기억하는지
나는 나를 위해 씨앗을 가꿀 것이다
우리는 어디에서 왔는가? 우리는 무엇인가?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어리석은 짓을 할 수 없는 청년은 이미 노인이다

빈센트 반 고흐
10년 동안의 완성, 그런데도 시간이 없다고?
늙음을 모르는 젊은이, 젊음을 잊은 늙은이
개로 남을 것이고, 가난할 것이고, 화가가 될 것이다
그게 쉬운 일이라면 아무런 즐거움도 없을 거야
내 가슴속에 무엇이 있는지 작품들이 보여주리라
많은 시간과 많은 돈이 명작을 만들지는 않는다

프란츠 카프카
바람은 언제나 같은 강도로 불지 않는다
가야 할 길이 많기 때문에 길을 잃는 청춘
지금까지 나는 결정적인 것을 기록하지 않았다
책은 우리 안의 얼어붙은 바다를 부수는 도끼
너무나 고귀하고 아름다운 나약함을 가진 인간
불행도 언젠가 지칠 때가 올 것이다

에디트 피아프
무거운 짐이 때로는 고마운 힘이 된다
떠돌이 부모에게서 태어나 거리에서 노래 부르다
그녀보다 영혼을 아끼지 않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사람들이 비웃더라도 나는 무엇이든 다 하겠어
사랑은 나에게 있어 노래를 부르게 해주는 힘
고난, 현명한 인간으로 만드는 고마운 짐

#3 결핍이 걸음을 재촉하다

툴루즈 로트레크
불운, 사람을 단련시키는 사명을 가진 놈
그림밖에는 달리 할 것이 없는 허약한 아이
더 많은 자유를 허락한 신체적 장애
답답한 청춘의 영혼을 해방시킨 몽마르트르의 밤공기
나는 밤마다 카페에서 일한다
술에 취해 넘어져도 괜찮아
결함, ‘틀린 것’이 아니라 ‘다른 것’

이사도라 덩컨
가난과 희망은 내게 너무나도 큰 스승
나는 산타클로스 같은 거짓말을 믿지 않아
배고프다는 생각이 들지 않을 때까지 춤을 추겠어
왜 몸의 어떤 부분이 다른 부분보다 부도덕한 건가?
안녕, 친구야! 나는 승천할 거야!
가난은 모든 예능과 거래의 어머니

버지니아 울프
생을 바쳐 그리워할 것은 무엇인가?
야수와 함께 우리 안에 갇혀 지낸 소녀 시절
담장 안의 아무 특징도 없는 대중이 되고 말 것인가?
남의 팔에 매달리지 않고 홀로 나아가야 한다는 사실
폭력과 차별 없는 세상의 꿈을 간직한 채 강물 속으로
슬픈 비극은 할 수 있는데도 하지 않고 죽게 되는 일

앤디 워홀
별이 되고 싶은 외로운 조약돌에게
그가 할 수 있는 일이라면 나도 할 수 있을 것
특별한 누군가가 되고 싶었던 청년
나의 표면에 내가 있고 그 뒤에는 아무것도 없다
흠집은 당신이 원하는 부분이 아니다
인생은 건축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불태워야 할 대상

비틀스
고독과 절망이 엮어낸 위대한 노래
슬픈 소년들끼리 손을 잡다
지옥 훈련, 돌멩이가 강철로 제련되는 과정
4명의 청년이 8년 동안 만들어낸 아주 긴 신화
우리는 넘어짐으로써 걷는 법을 알게 된 인간

#4 성찰이 큰길을 찾아내다

레프 톨스토이
실수는 부끄러우나 반성은 부끄럽지 않다
원수를 갚아야 하나, 용서해야 하나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세 가지 질문
노인을 가출하게 만든 독한 반성과 성찰
육체가 너의 주인이 아니라 네가 육체의 주인이다

지그문트 프로이트
꿈속에서 꺼내온 빛나고 값진 보물
이 세상에 무엇인가 중요한 업적을 남기고 싶다
꿈의 수수께끼를 해독하는 찬란한 고립
〈꿈의 해석〉이 나왔으나 2년 동안 팔린 책은 351부
부는 바람이 너의 뿌리를 튼튼하게 만든다

앙리 마티스
흔들릴 때마다 그만큼 성장하니까
연필 쥐는 법을 배우기 전까지 그림 생각은 하지 마
누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나 자신을 위해서
사랑, 모든 작품의 탄생에 필수적인 능력
그 누구도 나만큼 나를 돕지는 못한다
좋은 활은 당기기 힘들고, 좋은 말은 타기 힘들다

아메데오 모딜리아니
정직이 영혼을 아름답게 만든다
이 풍요로운 자극들이 끊이지 않기를
유치하고 시시한 날들은 끝났다
신처럼 창조하고, 왕처럼 지배하고, 노예처럼 일하라
우리는 정말 많이 닮았어!
그림밖에 모르는 남자, 사랑밖에 모르는 여자
정직함 속에 오래가는 행복이 숨어 있다

T. S. 엘리엇
창조와 재생과 구원의 소망을 위하여
욕망만 있을 뿐 창조와 재생의 의지가 없는 삶
나만의 목소리를 내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중요한 작가가 되는 두 가지 방법
좋은 예술일수록 그 예술가의 삶은 더 아프다
문명이 구원의 길을 함께 모색하지 않을 때

에필로그 미안하구나, 그 막막했던 시간들아
주요 참고문헌

작가 소개

목 차

역자 소개

01. 반품기한
  • 단순 변심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7일 이내 신청
  • 상품 불량/오배송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3개월 이내, 혹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30일 이내 반품 신청 가능
02. 반품 배송비
반품 배송비
반품사유 반품 배송비 부담자
단순변심 고객 부담이며, 최초 배송비를 포함해 왕복 배송비가 발생합니다. 또한, 도서/산간지역이거나 설치 상품을 반품하는 경우에는 배송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상품의 불량 또는 오배송 고객 부담이 아닙니다.
03. 배송상태에 따른 환불안내
환불안내
진행 상태 결제완료 상품준비중 배송지시/배송중/배송완료
어떤 상태 주문 내역 확인 전 상품 발송 준비 중 상품이 택배사로 이미 발송 됨
환불 즉시환불 구매취소 의사전달 → 발송중지 → 환불 반품회수 → 반품상품 확인 → 환불
04. 취소방법
  • 결제완료 또는 배송상품은 1:1 문의에 취소신청해 주셔야 합니다.
  • 특정 상품의 경우 취소 수수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05. 환불시점
환불시점
결제수단 환불시점 환불방법
신용카드 취소완료 후, 3~5일 내 카드사 승인취소(영업일 기준) 신용카드 승인취소
계좌이체 실시간 계좌이체 또는 무통장입금
취소완료 후, 입력하신 환불계좌로 1~2일 내 환불금액 입금(영업일 기준)
계좌입금
휴대폰 결제 당일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6시간 이내 승인취소
전월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1~2일 내 환불계좌로 입금(영업일 기준)
당일취소 : 휴대폰 결제 승인취소
익월취소 : 계좌입금
포인트 취소 완료 후, 당일 포인트 적립 환불 포인트 적립
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환불불가
상품군 취소/반품 불가사유
의류/잡화/수입명품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계절상품/식품/화장품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가전/설치상품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자동차용품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CD/DVD/GAME/BOOK등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내비게이션, OS시리얼이 적힌 PMP 상품의 시리얼 넘버 유출로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