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불에서 발견한 소통 수단, ‘봉수’를 되살려 낸 역사 동화
인류의 문화적 특징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꼽자면, 바로 ‘의사소통’이다. 인간은 손짓, 몸짓에서부터 기호, 언어에 이르기까지 오랜 역사를 거쳐 의사소통의 발전을 이루어 냈다. 그중에서도 ‘불’은 아주 중요한 발견이자 역사 ? 문화적 좌표이다. 인간은 불을 통해 적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고, 음식을 끓여 먹게 되었으며 의사소통의 진화적 발전을 이루었다.
‘불’과 ‘연기’는 시각적으로 효과가 높고, 먼 곳까지 신속하게 소식을 알릴 수 있다는 것에 실마리를 얻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봉수’이다. 말을 타거나 걸어서 먼 길을 직접 가고, 서신을 주고받기도 했지만 다급하고 위험한 상황이 닥칠 때면 봉수는 그야말로 필수적인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에서 국경을 넘어온다거나 불시에 쳐들어올 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봉홧불로 상황이 어떠한지를 보고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해안에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고자 전국 곳곳의 산 정상에 봉수를 설치했고, 상황에 따라 1봉수부터 5봉수까지 봉화 올리는 횟수를 달리했다.
이처럼 봉수는 역사 ? 문화적으로 귀중한 의미를 갖는 의사소통 수단이지만, 근대 통신제도가 발달하면서 대부분 방치되는 위기에 처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소통 수단의 변화’에서 간단히 다루어지고, 텔레비전 사극에서도 봉수대를 지키는 이들은 ‘조연’이나 ‘엑스트라’ 정도로 나온다.
『봉홧불을 올려라』는 조선 시대에 열두 살 봉수군이 존재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우연히 잡지를 보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된 서성자 작가는 운명처럼 다가온 그 소년을 현재에 불러내기로 한다. 열두 살 봉수군에 대한 기록을 찾기는 쉽지 않았지만, 작가는 봉수와 관련한 여러 참고문헌을 읽고 당시 상황을 실감 나게 재현하기 위해 전북 진안의 태평 봉수대를 여러 번 찾았다. 또한 복원된 봉수대를 관리 ? 감독하는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오랜 시간 신중한 취재를 거쳐, 작가는 어른들의 음모와 시련에 맞서는 용감한 소년 봉수군 ‘강담’을 탄생시켰다. 천한 일이라고 무시당하기 일쑤였지만 꿋꿋하게 봉수군의 길을 걸어간 소년, 담이를 소개한다.
『봉홧불을 올려라』는 맛깔나는 사투리가 생생하게 다가오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살아 숨 쉬는 사투리를 읽으며 정겹게 역사 현장으로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책을 읽다 보면 박진감 넘치는 전개로 금세 이야기 속으로 쏙 빠져 들어간다. 마치 임진왜란이 일어날 당시의 봉수대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힘들고 숨 가쁜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담이와 함께 봉홧불을 올리며 특별한 시간 여행을 떠나 보자. _배성호(역사교육연구소 연구원)
조선의 불개, 내 이름은 강담
그날은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져 내릴 것처럼 하늘이 흐렸다. 담이의 아버지는 근무가 아닌데도 기어이 봉수대에 올랐다. 아무래도 봉수대 낌새가 이상하다는 이유에서다.
아버지 걱정을 하다 잠든 담이가 눈을 뜨니 어느새 다음 날 점심 무렵. 아직 집에 오지 않은 아버지를 기다리는 할머니와 담이의 귓가에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부리나케 문밖으로 뛰어나가 보니, 봉수군들이 들것에 실린 아버지를 들고 오고 있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마을에 소문이 무성하다. 누군가의 음모거나 복수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마음이 뻥 뚫려 버린 듯 슬픈 담이에게 아버지 친구인 용이 아제가 찾아온다. 용이 아제는 담이를 한참 바라보다 조심스레 말문을 연다.
“혹시 사고 전날 느그 아부지가 뭔 말 안 했냐?”
담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번뜩 아버지 말이 떠올랐다.
“아, 참. 봉수대 낌새가 이상허다고…….”
“그려? 그렇다면……?”
용이 아제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제의 입술이 뭔가 말하려는 듯 달싹거렸다. 하지만 아제는 이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용이 아제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제가 뭔가를 꺼냈다. 아버지의 부시 주머니였다. 주머니를 든 아제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담아, 이제 니 거다. 니 아부지 품속에 있던 것이여. 우리 봉수군들이 각별하게 지니는 부싯돌이다.” - 본문 20~21쪽
아버지가 떠난 지 넉 달이 지나고 담이는 열세 살이 되었다. 허드렛일을 도와주고자 종종 들르는 주막에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심상치 않다. 아랫녘에서 왜구들이 사람들을 잡아가고, 얼마 전 또 다른 봉수대에서도 봉수군 한 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것. 집으로 가는 길에 담이는 아버지 무덤을 찾는데, 때마침 무덤을 찾아온 봉수군에게서 아버지가 ‘강 대장’이라고 불린 사실을 알게 된다.
봉수군이라면 ‘오장’으로 불리는 게 보통인데 대장이라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평범한 봉수군이 아니었음을 짐작한 담이는 아버지를 따라 봉수군이 되기로 결심한다. 나라를 지키고, 아버지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기로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담이 아버지가 일한 태평 봉수대의 최 오장은 담이를 결단코 반대하는 상황. 담이는 최 오장에게 인정받기 위해 봉홧불을 피우기에 좋다는 늑대 똥을 구하러 산에 오른다. 우여곡절 끝에 늑대 똥은 구했는데, 그만 늑대들에게 꼬리를 잡히고 만 담이. 결국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보니, 횃불을 든 남자가 담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선달’이라고 자신을 밝힌 그는 발이 심하게 부은 담이를 업고 산을 내려간다.
“너희 집은 어디냐?”
“봉홧골이요.”
“주막거리 쪽에 있는 마을? 나도 그 마을에 아는 봉수군이 있었는데…….”
“우리 아부지도 봉수군이었는디요.”
“내가 아는 봉수군은 강달봉이라고, 얼마 전 안타깝게도 죽고 말았지.”
담이는 깜짝 놀라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우리 아부지가 강달봉 오장인디요.”
담이를 업은 이 선달이 움칫하는 듯하더니 다시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 본문 48~49쪽
이 선달의 도움 덕에 담이는 무사히 집에 돌아오고, 최 오장은 담이의 진심 어린 노력을 인정해 봉수군으로 받아들인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봉수군이 된 담이. 닷새 동안의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이 선달이 자신의 딸 연이와 함께 와 있다. 이 선달은 봇짐장수의 특성상 집을 자주 비우는 탓에 딸을 혼자 두기가 걱정스럽다며 당분간 담이네 집에서 함께 지냈으면 좋겠다고 부탁한다.
어느덧 추운 겨울, 담이는 봉수군들이 수군대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는다. 아버지의 죽음이 석연치 않고, 어떤 비밀 모임과 관련이 있는 듯하며, ‘정여립 선생’ 이야기는 입에 올리지도 말라는 것이다. 궁금증이 쌓여 가는 답답한 상황이지만 지금 당장 담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봉수군의 임무를 다하는 것뿐.
봉수대 곳곳을 정리하던 담이는 물을 길어 두려고 샘터에 갔다가 우연히 병풍바위 밑의 동굴을 찾는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대나무 통에 담긴 종이를 발견한다. ‘대동계 우리의 약속’이라고 시작하는 글은 대동계원들의 다짐이 이어지고, 그 아래로 정여립, 강달봉, 송용 등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름만 말해도 죽는다는 정여립과 아버지, 용이 아제 이름이 대체 왜 같이 적혀져 있는 걸까? 담이는 용이 아제에게 종이에 적힌 내용이 무엇인지 따져 묻는다.
“뜻있는 사람들이 정 선생 뜻을 이어받아 봉수군들의 비밀 모임을 만들었제. 그 비밀 봉수군 조직의 대장이 바로 느그 아부지였고.”
“우리 아부지가요?”
담이는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았다.
“아부지가 뭣 땜시 비밀 모임을 만들었당가요?”
담이가 물었다.
“느그 엄니 죽고 나서였다. 가족이 왜놈에게 죽어 처지가 같은 봉수군끼리 만든 모임이었제. 동료 봉수군들도 다 믿을 수는 없응께 비밀로 헌 거고.” - 본문 115~116쪽
대동계 모임을 이끈 정여립은 많은 이가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했으나 끈질긴 다툼과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담이 아버지가 봉수군들의 비밀 모임을 만들었지만, 아버지 역시 의문스러운 죽음을 당했다. 더는 지체할 수도, 망설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담이는 아버지 뜻을 따라 비밀 봉수군 모임에 합류한다.
임진년 사월, 담이의 뜨거운 봄이 시작된다
해가 바뀌고 임진년의 봄, 이 선달과 연이가 갑작스레 한양으로 떠나게 되었다. 연이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이 서운하기만 한 담이와 친구들은 함께 나들이를 간다.
웃고 떠들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가운데 밤바람을 쐬러 마당에 나온 담이. 습관처럼 봉수대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데 산봉우리에 봉홧불이 타오르고 있는 게 아닌가! 1봉수, 2봉수, 아니, 5봉수! 5봉수라면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용이 아제와 아이들을 불러 모으는 사이 봉홧불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담이는 상황을 파악하고자 서둘러 봉수대로 향한다.
평소 같으면 연대 위에 서서 봉수대를 지키고 있어야 할 봉수군들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데, 누군가 연대로 올라가고 있다. 자세히 보니, 다름 아닌 이 선달이다. 혼자가 아니라 예전에 얼핏 보았던 파란 조끼를 입은 남자와 함께 있다. 한밤중에 이곳에 무슨 일일까 싶은 담이는 이 선달에게 반갑게 다가가려다 순간 멈칫 선다. 이 선달이 독기에 찬 표정으로 불씨 그릇에 오줌을 누고, 창고의 나뭇단을 없애고, 불씨 그릇에 물을 쏟아 붓고 있다.
“다 끝났소. 불도, 나무도, 불을 켤 씨앗까지 없앴으니 절대로 봉화를 올리진 못할 거요. 봉수군들도 당분간은 깨어나지 않을 테니 그만 내려갑시다. 앞장서시오.”
이 선달과 파란 조끼가 연대를 내려와 봉수대 마당을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담이는 얼른 병풍바위에서 물러나 숲 속에 납작 엎드렸다. 두 사람이 담이 곁을 지나갔다.
“잘했스무니다. 비봉 봉수대 쪽에도 우리 편이 들어가 있으니 염려 없스무니다. 사월 열사흘의 임무는 완수했스무니다.”
파란 조끼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어쩐지 이상한 말투다. - 본문 176~177쪽
이 선달의 행동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담이. 두려움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고,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린 듯 충격에 빠져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 그러다 정신이 들어 서둘러 봉수대로 뛰어 올라가보니, 이미 봉수군들은 이 선달의 꾀임에 넘어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있다. 담이는 또다시 망연자실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봉홧불을 올려야겠다고 결심한다. 맞은편 봉수대에서 5봉수를 올린 상황인데 가만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담이는 수차례 동굴을 오가며 나뭇단을 챙긴다. 그러는 도중 길을 잃은 이 선달이 산을 맴돌다 담이와 맞닥뜨리는데…….
이 선달은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끔찍한 일을 꾸민 것일까? 담이가 봤다는 5봉수는 진짜일까? 담이는 온갖 시련과 음모에 맞서 봉수대를 지켜낼 수 있을까? 임진년 사월 열사흘의 뜨거운 달빛이 담이를 비추고 있다!
소식 권하는 사회의 아이들에게, 담이가 전하는 진심
언젠가부터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는 말이 낯설게 다가온다. ‘무소식이 곧 무관심’이 되어 가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까……. 기술이 발전하고 시대가 급변하면서, 수없이 많은 소식이 일분일초를 다투며 쉽고 빠르게 전해진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 나와 상관없는 소식일지라도 아주 쉽고 간단하게 전해진다. 지진이 나서 수많은 사람이 갑작스레 생명을 잃고, 무자비한 테러와 폭동으로 피해를 입고,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 자살을 하고, 누구누구가 만나고 헤어지고 결혼하고 이혼하는 일이 별것 아닌 게 되어 간다. 안타까운 일에는 ‘공감’ 한 번, 화가 나는 일에는 ‘악플’ 몇 개, 기쁘고 재미있는 일에는 ‘좋아요’를 수차례 누르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소식에 관심을 두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수차례 인터넷을 들여다보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뭐 재미있는 이야기 없나, 입맛을 다시면서.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진짜’ 이야기는 폭우처럼 쏟아지는 소식 틈새에 숨겨져 있다. 자극적이고 짜릿한 일회용 소식들이 켜켜이 쌓여 가는 동안 ‘단 한 사람이라도 알아주면 좋을’ 이야기는 말없이 사라져 간다. 그 누구에게도 말 한마디 편히 남기지 못한 채로 말이다.
『봉홧불을 올려라』의 담이는 아버지가 못다 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사라진 5봉수의 진실이 무엇인지도 알고 싶었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기에 곧 사람들에게 잊힐지라도 ‘진짜’ 이야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담이는 마음속에 품은 굳은 믿음을 잃지 않았기에 ‘진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다.
진심을 담아 매순간을 살아냈던 담이의 모습은 지금 여기 우리 아이들에게 귀감이 되어 줄 만하다. 수많은 이야기에 둘러싸여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담이를 만나 보자. 하나의 꿈을 품고 힘차게 달려 나가는 담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자신의 ‘진짜’ 이야기에 조금씩 귀 기울일 수 있을 테니.
▣ 작가 소개
서성자
전라남도 곡성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교사로 29년 근무했고, 200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원이고, 동화 모임 ‘손바닥발바닥’에서 동화 공부를 하고 있다. 『봉홧불을 올려라』가 첫 책이다.
불에서 발견한 소통 수단, ‘봉수’를 되살려 낸 역사 동화
인류의 문화적 특징 중 가장 중요한 것을 꼽자면, 바로 ‘의사소통’이다. 인간은 손짓, 몸짓에서부터 기호, 언어에 이르기까지 오랜 역사를 거쳐 의사소통의 발전을 이루어 냈다. 그중에서도 ‘불’은 아주 중요한 발견이자 역사 ? 문화적 좌표이다. 인간은 불을 통해 적으로부터 신체를 보호하고, 음식을 끓여 먹게 되었으며 의사소통의 진화적 발전을 이루었다.
‘불’과 ‘연기’는 시각적으로 효과가 높고, 먼 곳까지 신속하게 소식을 알릴 수 있다는 것에 실마리를 얻어 만들어 낸 것이 바로 ‘봉수’이다. 말을 타거나 걸어서 먼 길을 직접 가고, 서신을 주고받기도 했지만 다급하고 위험한 상황이 닥칠 때면 봉수는 그야말로 필수적인 역할을 했다. 예를 들어 다른 나라에서 국경을 넘어온다거나 불시에 쳐들어올 때, 낮에는 연기로 밤에는 봉홧불로 상황이 어떠한지를 보고했다.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해안에 접근하는 적을 방어하고자 전국 곳곳의 산 정상에 봉수를 설치했고, 상황에 따라 1봉수부터 5봉수까지 봉화 올리는 횟수를 달리했다.
이처럼 봉수는 역사 ? 문화적으로 귀중한 의미를 갖는 의사소통 수단이지만, 근대 통신제도가 발달하면서 대부분 방치되는 위기에 처했다. 초등학교 교과서에서는 ‘소통 수단의 변화’에서 간단히 다루어지고, 텔레비전 사극에서도 봉수대를 지키는 이들은 ‘조연’이나 ‘엑스트라’ 정도로 나온다.
『봉홧불을 올려라』는 조선 시대에 열두 살 봉수군이 존재했다는 사실에서 출발한 이야기다. 우연히 잡지를 보다가 이 사실을 알게 된 서성자 작가는 운명처럼 다가온 그 소년을 현재에 불러내기로 한다. 열두 살 봉수군에 대한 기록을 찾기는 쉽지 않았지만, 작가는 봉수와 관련한 여러 참고문헌을 읽고 당시 상황을 실감 나게 재현하기 위해 전북 진안의 태평 봉수대를 여러 번 찾았다. 또한 복원된 봉수대를 관리 ? 감독하는 관계자를 만나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오랜 시간 신중한 취재를 거쳐, 작가는 어른들의 음모와 시련에 맞서는 용감한 소년 봉수군 ‘강담’을 탄생시켰다. 천한 일이라고 무시당하기 일쑤였지만 꿋꿋하게 봉수군의 길을 걸어간 소년, 담이를 소개한다.
『봉홧불을 올려라』는 맛깔나는 사투리가 생생하게 다가오는 매력적인 작품이다. 살아 숨 쉬는 사투리를 읽으며 정겹게 역사 현장으로 다가설 수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책을 읽다 보면 박진감 넘치는 전개로 금세 이야기 속으로 쏙 빠져 들어간다. 마치 임진왜란이 일어날 당시의 봉수대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힘들고 숨 가쁜 상황 속에서도 최선을 다해 노력했던 담이와 함께 봉홧불을 올리며 특별한 시간 여행을 떠나 보자. _배성호(역사교육연구소 연구원)
조선의 불개, 내 이름은 강담
그날은 금방이라도 눈이 쏟아져 내릴 것처럼 하늘이 흐렸다. 담이의 아버지는 근무가 아닌데도 기어이 봉수대에 올랐다. 아무래도 봉수대 낌새가 이상하다는 이유에서다.
아버지 걱정을 하다 잠든 담이가 눈을 뜨니 어느새 다음 날 점심 무렵. 아직 집에 오지 않은 아버지를 기다리는 할머니와 담이의 귓가에 발걸음 소리가 들린다. 부리나케 문밖으로 뛰어나가 보니, 봉수군들이 들것에 실린 아버지를 들고 오고 있다.
갑작스레 세상을 떠난 아버지의 죽음을 두고 마을에 소문이 무성하다. 누군가의 음모거나 복수일 수 있다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는다. 마음이 뻥 뚫려 버린 듯 슬픈 담이에게 아버지 친구인 용이 아제가 찾아온다. 용이 아제는 담이를 한참 바라보다 조심스레 말문을 연다.
“혹시 사고 전날 느그 아부지가 뭔 말 안 했냐?”
담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번뜩 아버지 말이 떠올랐다.
“아, 참. 봉수대 낌새가 이상허다고…….”
“그려? 그렇다면……?”
용이 아제의 눈빛이 흔들렸다. 아제의 입술이 뭔가 말하려는 듯 달싹거렸다. 하지만 아제는 이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용이 아제가 손사래를 치며 고개를 흔들었다.
아제가 뭔가를 꺼냈다. 아버지의 부시 주머니였다. 주머니를 든 아제 손이 가늘게 떨리고 있었다.
“담아, 이제 니 거다. 니 아부지 품속에 있던 것이여. 우리 봉수군들이 각별하게 지니는 부싯돌이다.” - 본문 20~21쪽
아버지가 떠난 지 넉 달이 지나고 담이는 열세 살이 되었다. 허드렛일을 도와주고자 종종 들르는 주막에서 들려오는 이야기가 심상치 않다. 아랫녘에서 왜구들이 사람들을 잡아가고, 얼마 전 또 다른 봉수대에서도 봉수군 한 명이 의문의 죽음을 당했다는 것. 집으로 가는 길에 담이는 아버지 무덤을 찾는데, 때마침 무덤을 찾아온 봉수군에게서 아버지가 ‘강 대장’이라고 불린 사실을 알게 된다.
봉수군이라면 ‘오장’으로 불리는 게 보통인데 대장이라니……. 돌아가신 아버지가 평범한 봉수군이 아니었음을 짐작한 담이는 아버지를 따라 봉수군이 되기로 결심한다. 나라를 지키고, 아버지 죽음을 둘러싼 진실을 파헤치기로 말이다.
그러나 현실은 녹록치 않다. 담이 아버지가 일한 태평 봉수대의 최 오장은 담이를 결단코 반대하는 상황. 담이는 최 오장에게 인정받기 위해 봉홧불을 피우기에 좋다는 늑대 똥을 구하러 산에 오른다. 우여곡절 끝에 늑대 똥은 구했는데, 그만 늑대들에게 꼬리를 잡히고 만 담이. 결국 까무룩 정신을 잃었다가 깨어나 보니, 횃불을 든 남자가 담이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선달’이라고 자신을 밝힌 그는 발이 심하게 부은 담이를 업고 산을 내려간다.
“너희 집은 어디냐?”
“봉홧골이요.”
“주막거리 쪽에 있는 마을? 나도 그 마을에 아는 봉수군이 있었는데…….”
“우리 아부지도 봉수군이었는디요.”
“내가 아는 봉수군은 강달봉이라고, 얼마 전 안타깝게도 죽고 말았지.”
담이는 깜짝 놀라 숨이 멎는 것 같았다.
“우리 아부지가 강달봉 오장인디요.”
담이를 업은 이 선달이 움칫하는 듯하더니 다시 걸음을 천천히 옮겼다. - 본문 48~49쪽
이 선달의 도움 덕에 담이는 무사히 집에 돌아오고, 최 오장은 담이의 진심 어린 노력을 인정해 봉수군으로 받아들인다. 드디어 꿈에 그리던 봉수군이 된 담이. 닷새 동안의 근무를 마치고 집에 돌아오니, 이 선달이 자신의 딸 연이와 함께 와 있다. 이 선달은 봇짐장수의 특성상 집을 자주 비우는 탓에 딸을 혼자 두기가 걱정스럽다며 당분간 담이네 집에서 함께 지냈으면 좋겠다고 부탁한다.
어느덧 추운 겨울, 담이는 봉수군들이 수군대는 이야기를 우연히 듣는다. 아버지의 죽음이 석연치 않고, 어떤 비밀 모임과 관련이 있는 듯하며, ‘정여립 선생’ 이야기는 입에 올리지도 말라는 것이다. 궁금증이 쌓여 가는 답답한 상황이지만 지금 당장 담이가 할 수 있는 일은 봉수군의 임무를 다하는 것뿐.
봉수대 곳곳을 정리하던 담이는 물을 길어 두려고 샘터에 갔다가 우연히 병풍바위 밑의 동굴을 찾는다. 그러고는 그곳에서 대나무 통에 담긴 종이를 발견한다. ‘대동계 우리의 약속’이라고 시작하는 글은 대동계원들의 다짐이 이어지고, 그 아래로 정여립, 강달봉, 송용 등의 이름이 적혀 있다. 이름만 말해도 죽는다는 정여립과 아버지, 용이 아제 이름이 대체 왜 같이 적혀져 있는 걸까? 담이는 용이 아제에게 종이에 적힌 내용이 무엇인지 따져 묻는다.
“뜻있는 사람들이 정 선생 뜻을 이어받아 봉수군들의 비밀 모임을 만들었제. 그 비밀 봉수군 조직의 대장이 바로 느그 아부지였고.”
“우리 아부지가요?”
담이는 머리를 한 대 세게 맞은 것 같았다.
“아부지가 뭣 땜시 비밀 모임을 만들었당가요?”
담이가 물었다.
“느그 엄니 죽고 나서였다. 가족이 왜놈에게 죽어 처지가 같은 봉수군끼리 만든 모임이었제. 동료 봉수군들도 다 믿을 수는 없응께 비밀로 헌 거고.” - 본문 115~116쪽
대동계 모임을 이끈 정여립은 많은 이가 평등하게 살아가는 세상을 만들고자 노력했으나 끈질긴 다툼과 갈등을 이기지 못하고 세상을 떠났다. 이를 안타깝게 여긴 담이 아버지가 봉수군들의 비밀 모임을 만들었지만, 아버지 역시 의문스러운 죽음을 당했다. 더는 지체할 수도, 망설일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 담이는 아버지 뜻을 따라 비밀 봉수군 모임에 합류한다.
임진년 사월, 담이의 뜨거운 봄이 시작된다
해가 바뀌고 임진년의 봄, 이 선달과 연이가 갑작스레 한양으로 떠나게 되었다. 연이와의 갑작스러운 이별이 서운하기만 한 담이와 친구들은 함께 나들이를 간다.
웃고 떠들며 시간 가는 줄 모르는 가운데 밤바람을 쐬러 마당에 나온 담이. 습관처럼 봉수대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데 산봉우리에 봉홧불이 타오르고 있는 게 아닌가! 1봉수, 2봉수, 아니, 5봉수! 5봉수라면 전쟁이 일어난 것이다! 용이 아제와 아이들을 불러 모으는 사이 봉홧불이 감쪽같이 사라지고, 담이는 상황을 파악하고자 서둘러 봉수대로 향한다.
평소 같으면 연대 위에 서서 봉수대를 지키고 있어야 할 봉수군들이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데, 누군가 연대로 올라가고 있다. 자세히 보니, 다름 아닌 이 선달이다. 혼자가 아니라 예전에 얼핏 보았던 파란 조끼를 입은 남자와 함께 있다. 한밤중에 이곳에 무슨 일일까 싶은 담이는 이 선달에게 반갑게 다가가려다 순간 멈칫 선다. 이 선달이 독기에 찬 표정으로 불씨 그릇에 오줌을 누고, 창고의 나뭇단을 없애고, 불씨 그릇에 물을 쏟아 붓고 있다.
“다 끝났소. 불도, 나무도, 불을 켤 씨앗까지 없앴으니 절대로 봉화를 올리진 못할 거요. 봉수군들도 당분간은 깨어나지 않을 테니 그만 내려갑시다. 앞장서시오.”
이 선달과 파란 조끼가 연대를 내려와 봉수대 마당을 가로질러 오고 있었다. 담이는 얼른 병풍바위에서 물러나 숲 속에 납작 엎드렸다. 두 사람이 담이 곁을 지나갔다.
“잘했스무니다. 비봉 봉수대 쪽에도 우리 편이 들어가 있으니 염려 없스무니다. 사월 열사흘의 임무는 완수했스무니다.”
파란 조끼가 처음으로 입을 열었다. 어쩐지 이상한 말투다. - 본문 176~177쪽
이 선달의 행동이 도무지 믿기지 않는 담이. 두려움이 온몸을 훑고 지나가고, 머릿속이 텅 비어 버린 듯 충격에 빠져 한참을 멍하니 서 있다. 그러다 정신이 들어 서둘러 봉수대로 뛰어 올라가보니, 이미 봉수군들은 이 선달의 꾀임에 넘어가 술에 취해 쓰러져 있다. 담이는 또다시 망연자실하지만, 어떻게 해서든 봉홧불을 올려야겠다고 결심한다. 맞은편 봉수대에서 5봉수를 올린 상황인데 가만있을 수만은 없는 것이다. 담이는 수차례 동굴을 오가며 나뭇단을 챙긴다. 그러는 도중 길을 잃은 이 선달이 산을 맴돌다 담이와 맞닥뜨리는데…….
이 선달은 대체 무슨 이유로 이런 끔찍한 일을 꾸민 것일까? 담이가 봤다는 5봉수는 진짜일까? 담이는 온갖 시련과 음모에 맞서 봉수대를 지켜낼 수 있을까? 임진년 사월 열사흘의 뜨거운 달빛이 담이를 비추고 있다!
소식 권하는 사회의 아이들에게, 담이가 전하는 진심
언젠가부터 ‘무소식이 희소식이다’라는 말이 낯설게 다가온다. ‘무소식이 곧 무관심’이 되어 가는 시대를 살고 있기 때문일까……. 기술이 발전하고 시대가 급변하면서, 수없이 많은 소식이 일분일초를 다투며 쉽고 빠르게 전해진다.
어젯밤에 있었던 일, 가까운 미래에 일어날 일, 나와 상관없는 소식일지라도 아주 쉽고 간단하게 전해진다. 지진이 나서 수많은 사람이 갑작스레 생명을 잃고, 무자비한 테러와 폭동으로 피해를 입고, 상처를 극복하지 못해 자살을 하고, 누구누구가 만나고 헤어지고 결혼하고 이혼하는 일이 별것 아닌 게 되어 간다. 안타까운 일에는 ‘공감’ 한 번, 화가 나는 일에는 ‘악플’ 몇 개, 기쁘고 재미있는 일에는 ‘좋아요’를 수차례 누르면서, 우리는 여러 가지 소식에 관심을 두고 살아간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오늘도 수차례 인터넷을 들여다보고 스마트폰을 만지작거린다. 뭐 재미있는 이야기 없나, 입맛을 다시면서.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할 ‘진짜’ 이야기는 폭우처럼 쏟아지는 소식 틈새에 숨겨져 있다. 자극적이고 짜릿한 일회용 소식들이 켜켜이 쌓여 가는 동안 ‘단 한 사람이라도 알아주면 좋을’ 이야기는 말없이 사라져 간다. 그 누구에게도 말 한마디 편히 남기지 못한 채로 말이다.
『봉홧불을 올려라』의 담이는 아버지가 못다 한 이야기가 궁금했다. 사라진 5봉수의 진실이 무엇인지도 알고 싶었다. 누구도 관심을 두지 않기에 곧 사람들에게 잊힐지라도 ‘진짜’ 이야기는 결코 사라지지 않을 거라고 믿었다. 담이는 마음속에 품은 굳은 믿음을 잃지 않았기에 ‘진짜’ 이야기를 찾을 수 있었다.
진심을 담아 매순간을 살아냈던 담이의 모습은 지금 여기 우리 아이들에게 귀감이 되어 줄 만하다. 수많은 이야기에 둘러싸여 정작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면, 담이를 만나 보자. 하나의 꿈을 품고 힘차게 달려 나가는 담이 이야기를 듣는다면 자신의 ‘진짜’ 이야기에 조금씩 귀 기울일 수 있을 테니.
▣ 작가 소개
서성자
전라남도 곡성에서 태어났다. 초등학교 교사로 29년 근무했고, 2008년 전북일보 신춘문예에 동화가 당선되면서 본격적인 글쓰기를 시작했다. 한국아동문학인협회 회원이고, 동화 모임 ‘손바닥발바닥’에서 동화 공부를 하고 있다. 『봉홧불을 올려라』가 첫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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