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는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통찰의 책읽기입니다. 전문가가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뽑아내는 발췌 방식입니다.
흔히 ≪프랑켄슈타인≫으로 약칭되지만 원래의 제목은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이다.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선물로 준, 제우스에게는 반역자이지만 인간에게는 은인인 프로메테우스가 현대의 프랑켄슈타인이다. 여기서 불은 이중성을 갖고 있다. 잘 사용하면 세상을 밝히고 아름답게 변화시킴으로써 인간에게 신적인 위엄을 부여하지만, ‘불장난’의 경우처럼 잘못 사용하면 순식간에 파괴적인 힘으로 돌변해 주인인 인간마저 화염 속으로 삼켜버린다. 불은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와 같은 위상에 놓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프로메테우스는 예술과 과학의 신이 된다. 과연 예술과 과학은 인간의 행복과 미덕에 기여하는가? 혹시 프로메테우스는 이브를 유혹했던 구약의 뱀이 아닐까? 과학을 통한 진보의 단꿈에 젖어 있던 계몽주의 시대에 세기의 이단아였던 루소는 학문과 예술을 악으로 규정하였다. 그의 주장을 따른다면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건네주지 말았어야 옳았다. 도대체 우리는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신화도 탈신비화되고 해체되어야 하는 것일까? 프로메테우스 계보에 속한 어떤 작품보다 더욱 강렬하게 ≪프랑켄슈타인≫은 이러한 일련의 질문을 독자에게 강요하고 있다. 더구나 유전자 지도의 해독과 더불어 인간 복제가 눈앞에 성큼 다가선 듯이 보이는 현대에 ≪프랑켄슈타인≫보다 인간 탄생에 얽힌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신화적, 혁명적 상상력은 낭만주의 문학의 주요한 특징이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시대정신에 고취된 영국의 낭만주의자들은 새로운 예루살렘,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들의 신천지가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예언자적 풍모의 블레이크는 신화적이며 전복적인 상상력을 옹호하였으며, 워즈워스는 “(혁명의) 새벽에 살아 있는 것이 축복”이라고 노래하였고, 메리 셸리의 남편 퍼시 셸리는 과거의 신화를 혁명적으로 다시 씀으로써 유토피아적 미래를 전망하는 ≪풀려난 프로메테우스≫를 발표하였다. ≪프랑켄슈타인≫이 그러한 새로운 인간의 이념과 무관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더구나 시인 셸리의 아내이기 이전에 메리 셸리는 유명한 혁명적 사상가 고드윈 부부의 딸이었다. ≪정치적 정의에 관한 고찰≫로 유명한 윌리엄 고드윈과 ≪여권의 옹호≫로 유명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그녀의 부모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메리 셸리의 작품에는 부모와 남편으로부터 물려받은 혁명적 열정과 유토피아적 비전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는 것일까? 주인공 빅터가 이상주의자였던 남편 셸리의 모습을 크게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 신화에 대해서 그러하였듯이 그녀는 부모와 남편의 이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녀는 괴물과 같이 낯선 타자를 향한 배려와 애정이 결핍된 계몽과 혁명, 진보의 모든 이념에 대해서 매우 비관적이었던 듯하다.
≪프랑켄슈타인≫의 저술과 수용을 둘러싼 상황도 메리 셸리의 전기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1818년 익명으로 출판되었을 당시 독자들은 저자가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트란토의 성≫이나 ≪우돌포의 신비≫와 같이 간담을 서늘케 하고 머리칼이 곤두서게 만드는 고딕소설인데다가 공상 과학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저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독자들은 “어린 여자가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생각할 수 있었는지” 의아해하였다. 그녀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이야기의 착상을 얻게 되었다. 19살 생일을 두어 달 앞둔 1816년 여름, 그녀는 장래의 남편 셸리와 함께 당시 스위스에 체류하던 바이런 경을 방문했다가 당분간 거기에 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바이런 경이 제안을 하나 했다. 각자 유령 이야기(ghost story)를 쓰자는 것이었다. 셸리의 권유도 있었던 데다가 자신의 문학적 재능도 실험해 볼 겸해서 메리는 본격적으로 집필에 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셸리의 전처였던 해리엇(Harriet Shelley)의 자살 사건, 메리의 출산 및 셸리와의 결혼 등의 사정으로 지연되다가 결국 다음 해 5월에 완성되었다. 1818년에 작품이 책으로 출판되었을 때 비교적 호의적인 서평들이 줄을 이었고 독자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그녀 스스로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났더니 유명해져 있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후로 프랑켄슈타인은 대중적 신화가 되었다. 각색되어 연극으로 공연되고 만화와 영화로 시각화되기도 하였으며 수많은 유사 괴물 이야기의 원조가 되었다.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널리 읽혔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Harriet Beecher Stowe)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이전까지 ≪프랑켄슈타인≫은 문학사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하였다. 여성 작가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으로 그녀의 작품은 남편 셸리 및 아버지 고드윈과 관련해서 부차적으로 취급되거나, 인기는 있지만 문학적 가치가 결여된 대중소설의 하나로 폄하시켰던 것이다. 그 결과의 하나로, 창작 과정에서 남편 퍼시의 역할이 유난히 강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아래에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페미니즘적 영문학의 재평가가 성과를 거두었던 1970년대 이후로 ≪프랑켄슈타인≫은 점차 “문학 수업에서 가장 인기 있는 텍스트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고, 메리 셸리도 중요한 낭만주의 작가의 한 명일뿐 아니라 “문화적 영웅”으로서 대접을 받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메리 셸리의 재평가에는 인간 중심적 사유에 대한 비판으로서의 반휴머니즘이나 포스트휴머니즘의 영향 또한 무시할 수가 없다.
▣ 작가 소개
저 : 메리 셸리
Mary Shelley
1797년 영국 런던에서 급진 정치사상가인 윌리엄 고드윈과 『여성의 권리 옹호』의 저자로 유명한 여성주의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생후 며칠 만에 어머니가 사망하자 아버지는 재혼했고, 부녀의 돈독한 유대 관계를 질시했던 계모 때문에 어린 메리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대신 아버지의 서재에서 무수히 많은 장서를 독파했고, 당대 최고 사상가들과 아버지가 함께 나누는 대화를 어깨너머로 들으며 지적 허기를 채워나갔다.
열다섯 살에 아버지의 제자 퍼시 비시 셸리를 처음 만나, 2년 후 결혼생활에 환멸을 느끼던 그와 함께 프랑스로 사랑의 도피를 감행했다. 이후 가난과 낭만으로 점철된 유랑생활이 8년 동안 이어졌다. 1816년 시인 바이런 경, 의사 존 폴리도리, 남편 셸리와 모인 자리에서 괴담을 하나씩 짓기로 약속해 ‘무서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1818년에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작품으로 출간됐다.
다섯 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그중 넷이 일찍 사망하는 불운을 겪었고, 1822년 남편마저 익사하자 셸리는 자책감으로 우울증에 시달렸다. 1826년 퍼시 비시 셸리의 초상이라 할 수 있는 소설 『마지막 남자』를 출간했고, 여러 남성 작가들의 구애를 받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을 돌보며 독신생활을 고수했다. 이후 『로도어』 『포크너』 등 여러 소설과 여행기를 출간했다. 1848년 발병한 뇌종양으로 인해 1851년 53세의 나이로 부모와 함께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했다.
과학기술이 야기하는 사회 문제를 다룬 최초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 카렐 차페크의 『R. U. R.』 등 과학소설은 물론, 「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등 널리 알려진 과학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나사못이 관자놀이에 박힌 괴물의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는 20세기 대중문화사에서 무한히 재생산되며 『프랑켄슈타인』을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포소설 중 하나로 만들었다.
역 : 김종갑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건국대에서 영문과 교수로 문학비평과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주된 관심은 몸을 화두로 하는 문화철학에 있으며 2007년에 설립된 몸문화연구소 소장이다. 행복하지 않으면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타자로서의 몸, 몸의 공동체』, 『문학과 문화 읽기』, 『근대적 몸과 탈근대적 증상』, 『내 몸을 찾습니다』(공저), 『니체: 문학으로서의 삶』(번역)을 비롯한 많은 저서와 번역,「예술과 외설」, 「문학의 제도화로서 이론」 등 논문이 있다.
▣ 주요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1권
1장
2장
3장
2권
1장
2장
3장
4장
5장
6장
3권
1장
2장
3장
옮긴이에 대해
<지식을만드는지식 천줄읽기>는 오리지널 고전에 대한 통찰의 책읽기입니다. 전문가가 원전에서 핵심 내용만 뽑아내는 발췌 방식입니다.
흔히 ≪프랑켄슈타인≫으로 약칭되지만 원래의 제목은 ≪프랑켄슈타인: 혹은 현대의 프로메테우스≫이다. 제우스로부터 불을 훔쳐서 인간에게 선물로 준, 제우스에게는 반역자이지만 인간에게는 은인인 프로메테우스가 현대의 프랑켄슈타인이다. 여기서 불은 이중성을 갖고 있다. 잘 사용하면 세상을 밝히고 아름답게 변화시킴으로써 인간에게 신적인 위엄을 부여하지만, ‘불장난’의 경우처럼 잘못 사용하면 순식간에 파괴적인 힘으로 돌변해 주인인 인간마저 화염 속으로 삼켜버린다. 불은 금단의 열매인 선악과와 같은 위상에 놓인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프로메테우스는 예술과 과학의 신이 된다. 과연 예술과 과학은 인간의 행복과 미덕에 기여하는가? 혹시 프로메테우스는 이브를 유혹했던 구약의 뱀이 아닐까? 과학을 통한 진보의 단꿈에 젖어 있던 계몽주의 시대에 세기의 이단아였던 루소는 학문과 예술을 악으로 규정하였다. 그의 주장을 따른다면 프로메테우스는 인간에게 불을 건네주지 말았어야 옳았다. 도대체 우리는 프로메테우스 신화를 어떻게 해석해야 하는 것일까? 신화도 탈신비화되고 해체되어야 하는 것일까? 프로메테우스 계보에 속한 어떤 작품보다 더욱 강렬하게 ≪프랑켄슈타인≫은 이러한 일련의 질문을 독자에게 강요하고 있다. 더구나 유전자 지도의 해독과 더불어 인간 복제가 눈앞에 성큼 다가선 듯이 보이는 현대에 ≪프랑켄슈타인≫보다 인간 탄생에 얽힌 상상력을 자극하는 작품을 찾기는 어려울 것이다.
신화적, 혁명적 상상력은 낭만주의 문학의 주요한 특징이다. 프랑스 혁명이라는 시대정신에 고취된 영국의 낭만주의자들은 새로운 예루살렘, 자유롭고 평등한 인간들의 신천지가 도래할 것이라는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예언자적 풍모의 블레이크는 신화적이며 전복적인 상상력을 옹호하였으며, 워즈워스는 “(혁명의) 새벽에 살아 있는 것이 축복”이라고 노래하였고, 메리 셸리의 남편 퍼시 셸리는 과거의 신화를 혁명적으로 다시 씀으로써 유토피아적 미래를 전망하는 ≪풀려난 프로메테우스≫를 발표하였다. ≪프랑켄슈타인≫이 그러한 새로운 인간의 이념과 무관하지 않음은 물론이다. 더구나 시인 셸리의 아내이기 이전에 메리 셸리는 유명한 혁명적 사상가 고드윈 부부의 딸이었다. ≪정치적 정의에 관한 고찰≫로 유명한 윌리엄 고드윈과 ≪여권의 옹호≫로 유명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그녀의 부모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메리 셸리의 작품에는 부모와 남편으로부터 물려받은 혁명적 열정과 유토피아적 비전이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는 것일까? 주인공 빅터가 이상주의자였던 남편 셸리의 모습을 크게 반영하고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하지만 프로메테우스 신화에 대해서 그러하였듯이 그녀는 부모와 남편의 이념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비판적인 거리를 유지하고 있다. 그녀는 괴물과 같이 낯선 타자를 향한 배려와 애정이 결핍된 계몽과 혁명, 진보의 모든 이념에 대해서 매우 비관적이었던 듯하다.
≪프랑켄슈타인≫의 저술과 수용을 둘러싼 상황도 메리 셸리의 전기만큼이나 흥미진진하다. 1818년 익명으로 출판되었을 당시 독자들은 저자가 당연히 남자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오트란토의 성≫이나 ≪우돌포의 신비≫와 같이 간담을 서늘케 하고 머리칼이 곤두서게 만드는 고딕소설인데다가 공상 과학적 요소가 가미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녀가 저자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독자들은 “어린 여자가 어떻게 이런 끔찍한 이야기를 생각할 수 있었는지” 의아해하였다. 그녀는 아주 우연한 기회에 이야기의 착상을 얻게 되었다. 19살 생일을 두어 달 앞둔 1816년 여름, 그녀는 장래의 남편 셸리와 함께 당시 스위스에 체류하던 바이런 경을 방문했다가 당분간 거기에 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서 바이런 경이 제안을 하나 했다. 각자 유령 이야기(ghost story)를 쓰자는 것이었다. 셸리의 권유도 있었던 데다가 자신의 문학적 재능도 실험해 볼 겸해서 메리는 본격적으로 집필에 임하게 되었다. 그러나 셸리의 전처였던 해리엇(Harriet Shelley)의 자살 사건, 메리의 출산 및 셸리와의 결혼 등의 사정으로 지연되다가 결국 다음 해 5월에 완성되었다. 1818년에 작품이 책으로 출판되었을 때 비교적 호의적인 서평들이 줄을 이었고 독자들의 반응은 매우 뜨거웠다. 그녀 스스로 어느 날 잠에서 깨어났더니 유명해져 있었다고 말할 정도였다. 이후로 프랑켄슈타인은 대중적 신화가 되었다. 각색되어 연극으로 공연되고 만화와 영화로 시각화되기도 하였으며 수많은 유사 괴물 이야기의 원조가 되었다. 다양한 언어로 번역되어 전 세계에서 널리 읽혔음은 물론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스토(Harriet Beecher Stowe)의 ≪톰 아저씨의 오두막≫과 마찬가지로 1970년대 이전까지 ≪프랑켄슈타인≫은 문학사적으로나 학문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지는 못하였다. 여성 작가에 대한 뿌리 깊은 편견으로 그녀의 작품은 남편 셸리 및 아버지 고드윈과 관련해서 부차적으로 취급되거나, 인기는 있지만 문학적 가치가 결여된 대중소설의 하나로 폄하시켰던 것이다. 그 결과의 하나로, 창작 과정에서 남편 퍼시의 역할이 유난히 강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즘의 영향 아래에서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경계가 허물어지고 페미니즘적 영문학의 재평가가 성과를 거두었던 1970년대 이후로 ≪프랑켄슈타인≫은 점차 “문학 수업에서 가장 인기 있는 텍스트의 하나”로 자리를 잡았고, 메리 셸리도 중요한 낭만주의 작가의 한 명일뿐 아니라 “문화적 영웅”으로서 대접을 받게 되었다. 물론 이러한 메리 셸리의 재평가에는 인간 중심적 사유에 대한 비판으로서의 반휴머니즘이나 포스트휴머니즘의 영향 또한 무시할 수가 없다.
▣ 작가 소개
저 : 메리 셸리
Mary Shelley
1797년 영국 런던에서 급진 정치사상가인 윌리엄 고드윈과 『여성의 권리 옹호』의 저자로 유명한 여성주의자 메리 울스턴크래프트 사이에서 태어났다. 생후 며칠 만에 어머니가 사망하자 아버지는 재혼했고, 부녀의 돈독한 유대 관계를 질시했던 계모 때문에 어린 메리는 제대로 된 교육을 받지 못했다. 대신 아버지의 서재에서 무수히 많은 장서를 독파했고, 당대 최고 사상가들과 아버지가 함께 나누는 대화를 어깨너머로 들으며 지적 허기를 채워나갔다.
열다섯 살에 아버지의 제자 퍼시 비시 셸리를 처음 만나, 2년 후 결혼생활에 환멸을 느끼던 그와 함께 프랑스로 사랑의 도피를 감행했다. 이후 가난과 낭만으로 점철된 유랑생활이 8년 동안 이어졌다. 1816년 시인 바이런 경, 의사 존 폴리도리, 남편 셸리와 모인 자리에서 괴담을 하나씩 짓기로 약속해 ‘무서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고, 1818년에 『프랑켄슈타인』이라는 작품으로 출간됐다.
다섯 명의 자녀를 낳았으나 그중 넷이 일찍 사망하는 불운을 겪었고, 1822년 남편마저 익사하자 셸리는 자책감으로 우울증에 시달렸다. 1826년 퍼시 비시 셸리의 초상이라 할 수 있는 소설 『마지막 남자』를 출간했고, 여러 남성 작가들의 구애를 받았지만 아버지와 아들을 돌보며 독신생활을 고수했다. 이후 『로도어』 『포크너』 등 여러 소설과 여행기를 출간했다. 1848년 발병한 뇌종양으로 인해 1851년 53세의 나이로 부모와 함께 묻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했다.
과학기술이 야기하는 사회 문제를 다룬 최초의 소설 『프랑켄슈타인』은 아이작 아시모프의 『아이, 로봇』, 카렐 차페크의 『R. U. R.』 등 과학소설은 물론, 「블레이드 러너」 「터미네이터」 등 널리 알려진 과학영화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나사못이 관자놀이에 박힌 괴물의 강렬한 시각적 이미지는 20세기 대중문화사에서 무한히 재생산되며 『프랑켄슈타인』을 오늘날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포소설 중 하나로 만들었다.
역 : 김종갑
미국 루이지애나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현재 건국대에서 영문과 교수로 문학비평과 이론을 가르치고 있다. 주된 관심은 몸을 화두로 하는 문화철학에 있으며 2007년에 설립된 몸문화연구소 소장이다. 행복하지 않으면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생각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타자로서의 몸, 몸의 공동체』, 『문학과 문화 읽기』, 『근대적 몸과 탈근대적 증상』, 『내 몸을 찾습니다』(공저), 『니체: 문학으로서의 삶』(번역)을 비롯한 많은 저서와 번역,「예술과 외설」, 「문학의 제도화로서 이론」 등 논문이 있다.
▣ 주요 목차
해설
지은이에 대해
1권
1장
2장
3장
2권
1장
2장
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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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장
6장
3권
1장
2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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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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