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 [바다와 해적]은 고대에서부터 오늘날의 해적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에 등장한 해적의 모든 것을 상술하고 있는 책이다. 고대 도시해양국가, 로마시대, 지중해시대, 대항해시대를 거쳐 아시아지역의 해적과 소말리아해적에 이르는 해적의 역사를 세계사 발전의 큰 틀에서 인문학적 시각에서 에피소드 중심으로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해적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고 역사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특히 유럽세력들이 전 세계 대양으로 진출했던 대항해시대에 해적은 항해 역사의 주연은 아니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결코 빠질 수 없는 조연이었다. 지중해에서 활동하던 해적들은 유럽국가의 대양진출과 함께 카리브 해, 대서양, 인도양 등 약탈할 먹잇감이 있는 곳이면 전 세계 바다 어디든 가리지 않고 진출했다. 신대륙에서 착취한 금은보화와 값비싼 화물을 실은 유럽 해양국가의 무역선의 항로였던 카리브 해와 대서양은 해적들의 주무대였다. 이 시기에 해적들은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다시 말하면 역사사 해적들이 가장 극성을 부리던 시기였고 해적질의 해악이 가장 컸던 시기였다. 해적은 역사의 진행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이다. 로마시대에 해적은 대제국을 내부에서 괴롭히는 손톱 밑 가시였다. 제정말기 로마의 패권을 놓고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운명적인 대결을 벌이는 고리가 된 것도 로마의 골칫거리였던 해적이었다. 서유럽을 약탈한 바이킹은 중세 유럽의 지도를 바꾸어 놓을 정도로 유럽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사라센해적과 바르바리 해적은 로마가 멸망한 뒤 지중해를 지배했던 이슬람해적이었다. 근세 초기에는 해적의 기동력과 해상 무장이 국가권력에 의해 이용된 예도 있어 어떤 의미에서는 국가적 의미의 해군의 선구적 형태를 제시한 집단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시절 상선에 사략선 면허를 주어 적국의 상선을 합법적으로 약탈하게 했던 사략선이 그 예다. 사략선은 취약한 해군력을 보강해주는 예비군 세력이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정치해적과 일본의 왜구가 중국과 조선, 일본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명대 주원장이 철저한 해금정책을 시행하게 된 계기가 왜구와 연계한 반란세력의 발호 때문이었다.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트리고 조선을 창업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려말 삼남지방을 약탈하던 왜구를 토벌하여 국민적 영웅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멀리는 중국과 조선이 왜구 침입을 두려워하여 해금정책을 시행한 것이 근세 아시아가 서양세력에 뒤쳐지고 결국 식민의 역사를 겪게 되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이렇듯 해적은 세계사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중요 인자(因子)였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저자는 “해양의 역사에서 해적이 끼친 영향과 항해의 기원과 함께 하는 해적의 역사를 고려하면 해양의 역사는 곧 해적의 역사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해적집단은 기존의 사회질서에 대한 일탈세력이자 반항세력이었다. 체제의 억압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고 억압적 기존 질서로부터 자유로운 자신들만의 자유로운 공동체를 추구했다. 해적사회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분쟁을 막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행동 규약을 스스로 제정하기도 했다. 규약 중에는 도박, 여성 희롱, 싸움, 음주 금지 조항 등이 포함됐다. 선장 선출이나 항로 변경, 공격과 같이 중요한 결정은 주로 집단 전체의 표결로 정해졌다. 폭압적인 지배체제가 존재할 것 같았던 해적사회에 대한 우리의 관념과 달리 해적사회는 ‘민주적’으로 운영되었다는 충분히 알 수 있는 정황들이다. 그중 전설적인 해적 선장 바르톨로뮤 로버츠의 선원들이 작성한 규약을 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승무원은 현안에 대해 동등한 표결권을 가지며, 전리품을 공평하게 요구할 수 있다. 주사위놀이든 카드놀이든 돈을 가지고 도박을 해서는 안 된다. 소년이나 여자를 배에 데려와서는 안 된다. 배 안에서 서로 싸워서는 안 되며, 언쟁이 있을 경우 육지에 내려서 칼이나 권총으로 담판을 짓는다. 선장과 조타수는 일반 선원이 전리품을 배당받는 몫의 2배, 포수장과 갑판장은 1.5배, 다른 간부선원들은 1.25배를 받는다.” 해적사회는 철저히 평등정신에 의해 규율되었다. 기존의 폭압적 선상 질서에서 벗어나 자유를 추구하고 평등에 기초한 공동체 운영은 후에 프랑스대혁명의 정신적인 기초가 되기도 했다. 해적집단은 또한 최초의 글로벌 집단이었다. 해적 집단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었고 그들은 대양을 무대로 전 세계바다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해적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무자비한 폭력과 잔혹한 수법으로 약탈을 서슴지 않았던 ‘바다의 악당’, ‘바다의 무법자’였다. 블랙비어드, 캡틴키드, 바롤로뮤 로버츠, 헨리 모건 등 악명 높은 해적들의 해적질은 유럽 해양국가들의 부의 원천이던 해상무역을 방해했고 뱃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해적들은 약탈을 위해 피를 흘리는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잔혹한 고문을 즐겼던 무자비한 약탈자였고 살인자들이었다. 그들은 유럽 해양국가들의 최대의 공적이었다. "
" 소말리아와 같은 특정 지역에서의 해적문제는 국제사회 전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해적문제는 단일국가나 특정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온난화, 전염병 등과 같이 국제사회가 다 같이 대처해야할 전 지구적 문제가 되고 있다. 〈바다와 해적〉은 해적을 주제로 하지만 세계사의 큰 흐름을 쫓아 동서양의 역사를 넘나들면서 해양진출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해적과 결부된 세계사, 특히 대항해시대 유럽세력의 대양 진출 등 해양의 역사와 해양무역을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유럽세력이 동방으로부터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무역로를 개척하고 신대륙을 발견하여 전 세계를 지배했던 영광의 역사와 함께 그 뒤에 가려진 원주민과 흑인노예들의 피와 눈물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한때 해상실크로드를 개척하고 해양강국이었던 중국이 해금정책과 함께 바다와 담을 쌓고 지내다 결국 유럽 해양국가들의 대포와 총 앞에 약탈의 대상으로 전락했던 굴욕의 역사와 이를 반추하여 해양굴기를 앞세우고 과감히 해양으로 진출하는 오늘날의 중국을 설명하고 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듯이 바다는 미래자원의 보고로서, 해상무역로서, 안보의 장으로서 그 가치가 더욱 커지고 있다. ‘해양시대’라 불리는 오늘날〈바다와 해적〉은 낭만적으로 묘사되었던 역사속의 해적의 실체와 오늘날 해적의 본질을 규명하면서 해양의 가치와 해양진출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게 하고 있다. 또한 〈바다와 해적〉은 오늘날 세계 바다 곳곳에서 해양이익을 둘러싸고 날로 격화되고 있는 해양분쟁과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의 공세적 해양정책과 이에 대응한 우리의 해양정책과 해양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있다. 바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인문학적 지식에 목말라 하는 이 시대에 〈바다와 해적〉은 그 호기심을 채워주고 갈증을 풀어줄 한 권의 인문·역사서이다. "
▣ 작가 소개
저자 : 김석균
지은이 김석균은 한양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Indiana 대학교에서 행정학 석사, 한양대학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미국 듀크(Duke) 대학교에서 객원연구원으로 동북아 해양문제를 연구했습니다. 제37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법제처에서 사무관으로 근무하다 해양경찰청으로 전직하여 기획과장, 완도해양경찰서장,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 기획조정관, 차장을 거쳐 2013년 3월 해양경찰청장에 취임하였습니다. 그는 아시아 해적문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아 ‘해적박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제해양법분야의 가장 권위 있는 저널인 Ocean Development & International Law에 4편을 포함한 SSCI 급 저널에 6편 및 그 외 국내외 저널에 해양보안, 해양분쟁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여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국제적인 해양법·정책 전문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 주요 목차
1 고대 해양국가와 해적
항해의 시작 | 신화의 섬 ‘크레타’ | 해양 도시국가의 해양진출 | 고대 해양국가와 해적의 기원
02 로마제국시대의 해양과 해적
로마제국의 형성 | 로마제국 초기의 해적과 해양 | 로마 공화정 말기의 해적 | 폼페이우스의 해적소탕 | 카이사르와 해적 | 해적들의 노예무역 | 로마 시대의 갤리선
03 로마 멸망 이후 해양과 지중해 해적
들어가는 말 | 천년 제국 로마의 쇠망| 로마 쇠망의 원인 | 이슬람의 등장 | 이슬람의 이베리아 반도 진출 | 사라센 해적 | 토레 사라체노와 보르고 | 시라센의 위장 깃발과 약탈 | 보르고와 카스바| 신성로마 제국의 해적퇴치| 오스티아 해전| 시칠리아 정복| 해적 토벌의
선봉에 선 교황 | 해양 도시공화국의 해적퇴치 | 해사법 | 해상십자군 | 노예구출
04 바이킹 해적
바이킹의 등장 | 뛰어난 항해술| 바이킹 선 | 잉글랜드 약탈 | 러시아 진출 | 바이킹의 파리 침공 | 바이킹의 유럽 정착 | 잉글랜드 정복
05 바르바리 해적
사라센 해적의 후예 | 대양 진출 | 바르바리 해적과 동맹 | 노예사냥 | 바르바리 해적과 미 해군의 탄생
06 대항해시대의 도래
근세의 여명 | 비잔틴 제국의 최후 | 몽골의 세계정복 | 몽골제국과 문명의 융합 | 바다의 실크로드 | 동방 산물 | 대항해시대의 주역 ‘이베리아 반도’ | 이베리아의 보석 ‘카라벨’| 황금의 나라를 찾아서| 엔리케와 신밧드의 모험 | 보자도르 곶을 넘다 | 아프리카 항로의 시작| 이베리아의 해양 진출경쟁 | ‘신의 사업’ 동방무역 | 신대륙 발견과 스페인의 해양진출 | 지리상의 ‘재발견’ | 남반구 해양패권 분할: 토르데시야스 조약 | 태평양의 양분: 사라고사 조약 | 해양제국 포르투갈의 쇠락 | 스페인, 대해양제국을 건설하다 | 대륙의 가혹한 수탈자 스페인 | 아스텍·잉카제국 정복과 수탈 | 대항해시대의 항해술 | 대항해시대 초기의 선박 | 정복과 교역 시기의 선박 | 원양항해의 위험성 | 선원들 | 선원 조달 | 고통스런 선상생활 | 위험한 선상노동 | 폭압적 선상기율 | 선원들의 열악한 건강| 선원들의 저항
07 대항해시대의 유산 대서양세계의 빛과 그림자
대서양 시대의 역사적 의미| 유럽경제의 비약적 성장과 신작물 유입 | 가혹한 금은 수탈 | 새로운 전염병의 유입과 전통사회의 붕괴| 대서양 세계의 비극: 노예무역 | 삼각무역과 노예사냥| 새로운 인종의탄생: 메스티소| 현대 금융제도의 탄생과 자본주의 발전
08 대항해시대와 해적의 황금기
해적의 시대 | 스페인 대해| 스페인 보물선단의 항해 | 근대 해적의 개념과 유형| 해적의 황금시대 | ‘해적의 나라’ 영국 | 영국과 네덜란드의 무역전쟁| 영국의 노예무역| 영국의 해적퇴치 | 누가 해적이 되었나 | 해적이 된 통장이 모우어 | 해적과 평화시대의 역설| 민주적 해적 공동체| 해적선의 선상 기율 | 해적들의 방탕한 생활 | 해적의 공격 수법 | 약탈 수법 | 복수의 외침 | 해적 깃발 ‘졸리 로저’ | 해적 소굴 | 동성애
09 대항해시대의 악명높은 해적들
프란시스 드레이크: 위대한 사략선장| 블랙 비어드: 가장 악명 높은 해적 | 바롤로뮤 로버츠: 금주를 했던 해적 | 핸리 모건: 최고의 성공을 거둔 해적 | 윌리엄 키드: 가장 불운한 해적 | 핸리 에버리: 언제 떠날지 아는 해적 | 에드워드 잉글랜드: 빈민굴에서 구걸하다 죽은 해적 | 바다로 나간 여자 해적 | 해적의 잔혹한 고문과 폭력 | 낭만적인 해적 이미지 | ‘보물섬’과 캐리비언의 해적 | 해적 재판 | 교수형 | 해적의 황금시대, 막을 내리다| 아메리카 대륙의 사략선 전성시대 | 미국의 독립전쟁과 사략선의 번성 | 미국 독립전쟁 이후의 사략선 | 대
서양시대 해적의 의미
10 바다에 갇힌 아시아
바다로 나간 유럽 | 바다에 갇힌 아시아 | 조선의 해금정책 | 식민의 바다 | 동아시아의 해양교류 | 정화의 해양 대원정 | 원정대의 위용 | 대원정의 목적 | 원정대의 대항해 | 정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다? | 정화와 중국의 해양굴기
11 아시아 바다의 해적
고대 중국역사 속의 해적 | 중국의 정치해적 | 동북아 해적: 왜구 | 왜구의 활동| 한반도와 왜구
12 오늘날의 해적
해적, 다시 부활하다 | 국제법상의 해적행위 | 현대해적의 유형 | 해적공격 현황 | 소말리아 해적 | 선원의 무장 | 해적퇴치를위한 유엔의 노력| 국제사회의 군함파견| 정부 및 민간의 자구 노력 | 현대 해적문제의 성격 | 해적문제의 해결 | 말라카 해협 해적 대응사례 | 맺는 말
" [바다와 해적]은 고대에서부터 오늘날의 해적에 이르기까지 인류 역사에 등장한 해적의 모든 것을 상술하고 있는 책이다. 고대 도시해양국가, 로마시대, 지중해시대, 대항해시대를 거쳐 아시아지역의 해적과 소말리아해적에 이르는 해적의 역사를 세계사 발전의 큰 틀에서 인문학적 시각에서 에피소드 중심으로 흥미롭게 서술하고 있다. 해적의 역사는 인류의 역사만큼이나 오래되었고 역사의 발전과 궤를 같이 하고 있다. 특히 유럽세력들이 전 세계 대양으로 진출했던 대항해시대에 해적은 항해 역사의 주연은 아니었지만 그에 못지않은 결코 빠질 수 없는 조연이었다. 지중해에서 활동하던 해적들은 유럽국가의 대양진출과 함께 카리브 해, 대서양, 인도양 등 약탈할 먹잇감이 있는 곳이면 전 세계 바다 어디든 가리지 않고 진출했다. 신대륙에서 착취한 금은보화와 값비싼 화물을 실은 유럽 해양국가의 무역선의 항로였던 카리브 해와 대서양은 해적들의 주무대였다. 이 시기에 해적들은 ‘황금시대’를 맞이했다. 다시 말하면 역사사 해적들이 가장 극성을 부리던 시기였고 해적질의 해악이 가장 컸던 시기였다. 해적은 역사의 진행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음은 물론이다. 로마시대에 해적은 대제국을 내부에서 괴롭히는 손톱 밑 가시였다. 제정말기 로마의 패권을 놓고 카이사르와 폼페이우스가 운명적인 대결을 벌이는 고리가 된 것도 로마의 골칫거리였던 해적이었다. 서유럽을 약탈한 바이킹은 중세 유럽의 지도를 바꾸어 놓을 정도로 유럽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고 사라센해적과 바르바리 해적은 로마가 멸망한 뒤 지중해를 지배했던 이슬람해적이었다. 근세 초기에는 해적의 기동력과 해상 무장이 국가권력에 의해 이용된 예도 있어 어떤 의미에서는 국가적 의미의 해군의 선구적 형태를 제시한 집단이라고 할 수도 있었다. 영국의 엘리자베스 1세 시절 상선에 사략선 면허를 주어 적국의 상선을 합법적으로 약탈하게 했던 사략선이 그 예다. 사략선은 취약한 해군력을 보강해주는 예비군 세력이었다. 아시아에서는 중국의 정치해적과 일본의 왜구가 중국과 조선, 일본의 역사에 큰 영향을 미쳤다. 명대 주원장이 철저한 해금정책을 시행하게 된 계기가 왜구와 연계한 반란세력의 발호 때문이었다. 이성계가 고려를 무너트리고 조선을 창업할 수 있었던 원동력도 려말 삼남지방을 약탈하던 왜구를 토벌하여 국민적 영웅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멀리는 중국과 조선이 왜구 침입을 두려워하여 해금정책을 시행한 것이 근세 아시아가 서양세력에 뒤쳐지고 결국 식민의 역사를 겪게 되는 중요한 원인이 되었다. 이렇듯 해적은 세계사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끼친 중요 인자(因子)였다. 이러한 배경 때문에 저자는 “해양의 역사에서 해적이 끼친 영향과 항해의 기원과 함께 하는 해적의 역사를 고려하면 해양의 역사는 곧 해적의 역사다.”라고 기술하고 있다. 해적집단은 기존의 사회질서에 대한 일탈세력이자 반항세력이었다. 체제의 억압에서 과감하게 벗어나 기존의 질서에 도전하고 억압적 기존 질서로부터 자유로운 자신들만의 자유로운 공동체를 추구했다. 해적사회는 폐쇄적인 공간에서 빈번하게 발생하는 분쟁을 막고 공동체를 유지하기 위해 스스로 행동 규약을 스스로 제정하기도 했다. 규약 중에는 도박, 여성 희롱, 싸움, 음주 금지 조항 등이 포함됐다. 선장 선출이나 항로 변경, 공격과 같이 중요한 결정은 주로 집단 전체의 표결로 정해졌다. 폭압적인 지배체제가 존재할 것 같았던 해적사회에 대한 우리의 관념과 달리 해적사회는 ‘민주적’으로 운영되었다는 충분히 알 수 있는 정황들이다. 그중 전설적인 해적 선장 바르톨로뮤 로버츠의 선원들이 작성한 규약을 보면 다음과 같다. “모든 승무원은 현안에 대해 동등한 표결권을 가지며, 전리품을 공평하게 요구할 수 있다. 주사위놀이든 카드놀이든 돈을 가지고 도박을 해서는 안 된다. 소년이나 여자를 배에 데려와서는 안 된다. 배 안에서 서로 싸워서는 안 되며, 언쟁이 있을 경우 육지에 내려서 칼이나 권총으로 담판을 짓는다. 선장과 조타수는 일반 선원이 전리품을 배당받는 몫의 2배, 포수장과 갑판장은 1.5배, 다른 간부선원들은 1.25배를 받는다.” 해적사회는 철저히 평등정신에 의해 규율되었다. 기존의 폭압적 선상 질서에서 벗어나 자유를 추구하고 평등에 기초한 공동체 운영은 후에 프랑스대혁명의 정신적인 기초가 되기도 했다. 해적집단은 또한 최초의 글로벌 집단이었다. 해적 집단은 다양한 인종으로 구성되었고 그들은 대양을 무대로 전 세계바다에서 활약했다. 그러나 해적은 어디까지나 자신들의 이익을 위해 무자비한 폭력과 잔혹한 수법으로 약탈을 서슴지 않았던 ‘바다의 악당’, ‘바다의 무법자’였다. 블랙비어드, 캡틴키드, 바롤로뮤 로버츠, 헨리 모건 등 악명 높은 해적들의 해적질은 유럽 해양국가들의 부의 원천이던 해상무역을 방해했고 뱃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했다. 해적들은 약탈을 위해 피를 흘리는 싸움을 두려워하지 않았고 잔혹한 고문을 즐겼던 무자비한 약탈자였고 살인자들이었다. 그들은 유럽 해양국가들의 최대의 공적이었다. "
" 소말리아와 같은 특정 지역에서의 해적문제는 국제사회 전체에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해적문제는 단일국가나 특정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구온난화, 전염병 등과 같이 국제사회가 다 같이 대처해야할 전 지구적 문제가 되고 있다. 〈바다와 해적〉은 해적을 주제로 하지만 세계사의 큰 흐름을 쫓아 동서양의 역사를 넘나들면서 해양진출의 역사를 설명하고 있다. 해적과 결부된 세계사, 특히 대항해시대 유럽세력의 대양 진출 등 해양의 역사와 해양무역을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유럽세력이 동방으로부터 향신료를 구하기 위해 무역로를 개척하고 신대륙을 발견하여 전 세계를 지배했던 영광의 역사와 함께 그 뒤에 가려진 원주민과 흑인노예들의 피와 눈물의 역사를 사실적으로 조명하고 있다. 한때 해상실크로드를 개척하고 해양강국이었던 중국이 해금정책과 함께 바다와 담을 쌓고 지내다 결국 유럽 해양국가들의 대포와 총 앞에 약탈의 대상으로 전락했던 굴욕의 역사와 이를 반추하여 해양굴기를 앞세우고 과감히 해양으로 진출하는 오늘날의 중국을 설명하고 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이 있듯이 바다는 미래자원의 보고로서, 해상무역로서, 안보의 장으로서 그 가치가 더욱 커지고 있다. ‘해양시대’라 불리는 오늘날〈바다와 해적〉은 낭만적으로 묘사되었던 역사속의 해적의 실체와 오늘날 해적의 본질을 규명하면서 해양의 가치와 해양진출의 의미를 새롭게 되새기게 하고 있다. 또한 〈바다와 해적〉은 오늘날 세계 바다 곳곳에서 해양이익을 둘러싸고 날로 격화되고 있는 해양분쟁과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의 공세적 해양정책과 이에 대응한 우리의 해양정책과 해양의 전략적 가치에 대한 인식을 다시 한 번 일깨우고 있다. 바다에 대한 관심이 커지고 인문학적 지식에 목말라 하는 이 시대에 〈바다와 해적〉은 그 호기심을 채워주고 갈증을 풀어줄 한 권의 인문·역사서이다. "
▣ 작가 소개
저자 : 김석균
지은이 김석균은 한양대학교 행정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 행정대학원에서 정책학 석사, 미국 Indiana 대학교에서 행정학 석사, 한양대학교에서 행정학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미국 듀크(Duke) 대학교에서 객원연구원으로 동북아 해양문제를 연구했습니다. 제37회 행정고시에 합격하여 법제처에서 사무관으로 근무하다 해양경찰청으로 전직하여 기획과장, 완도해양경찰서장, 남해지방해양경찰청장, 기획조정관, 차장을 거쳐 2013년 3월 해양경찰청장에 취임하였습니다. 그는 아시아 해적문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아 ‘해적박사’로 알려져 있습니다. 국제해양법분야의 가장 권위 있는 저널인 Ocean Development & International Law에 4편을 포함한 SSCI 급 저널에 6편 및 그 외 국내외 저널에 해양보안, 해양분쟁 등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하여 이론과 실무를 겸비한 국제적인 해양법·정책 전문가로 알려져 있습니다.
▣ 주요 목차
1 고대 해양국가와 해적
항해의 시작 | 신화의 섬 ‘크레타’ | 해양 도시국가의 해양진출 | 고대 해양국가와 해적의 기원
02 로마제국시대의 해양과 해적
로마제국의 형성 | 로마제국 초기의 해적과 해양 | 로마 공화정 말기의 해적 | 폼페이우스의 해적소탕 | 카이사르와 해적 | 해적들의 노예무역 | 로마 시대의 갤리선
03 로마 멸망 이후 해양과 지중해 해적
들어가는 말 | 천년 제국 로마의 쇠망| 로마 쇠망의 원인 | 이슬람의 등장 | 이슬람의 이베리아 반도 진출 | 사라센 해적 | 토레 사라체노와 보르고 | 시라센의 위장 깃발과 약탈 | 보르고와 카스바| 신성로마 제국의 해적퇴치| 오스티아 해전| 시칠리아 정복| 해적 토벌의
선봉에 선 교황 | 해양 도시공화국의 해적퇴치 | 해사법 | 해상십자군 | 노예구출
04 바이킹 해적
바이킹의 등장 | 뛰어난 항해술| 바이킹 선 | 잉글랜드 약탈 | 러시아 진출 | 바이킹의 파리 침공 | 바이킹의 유럽 정착 | 잉글랜드 정복
05 바르바리 해적
사라센 해적의 후예 | 대양 진출 | 바르바리 해적과 동맹 | 노예사냥 | 바르바리 해적과 미 해군의 탄생
06 대항해시대의 도래
근세의 여명 | 비잔틴 제국의 최후 | 몽골의 세계정복 | 몽골제국과 문명의 융합 | 바다의 실크로드 | 동방 산물 | 대항해시대의 주역 ‘이베리아 반도’ | 이베리아의 보석 ‘카라벨’| 황금의 나라를 찾아서| 엔리케와 신밧드의 모험 | 보자도르 곶을 넘다 | 아프리카 항로의 시작| 이베리아의 해양 진출경쟁 | ‘신의 사업’ 동방무역 | 신대륙 발견과 스페인의 해양진출 | 지리상의 ‘재발견’ | 남반구 해양패권 분할: 토르데시야스 조약 | 태평양의 양분: 사라고사 조약 | 해양제국 포르투갈의 쇠락 | 스페인, 대해양제국을 건설하다 | 대륙의 가혹한 수탈자 스페인 | 아스텍·잉카제국 정복과 수탈 | 대항해시대의 항해술 | 대항해시대 초기의 선박 | 정복과 교역 시기의 선박 | 원양항해의 위험성 | 선원들 | 선원 조달 | 고통스런 선상생활 | 위험한 선상노동 | 폭압적 선상기율 | 선원들의 열악한 건강| 선원들의 저항
07 대항해시대의 유산 대서양세계의 빛과 그림자
대서양 시대의 역사적 의미| 유럽경제의 비약적 성장과 신작물 유입 | 가혹한 금은 수탈 | 새로운 전염병의 유입과 전통사회의 붕괴| 대서양 세계의 비극: 노예무역 | 삼각무역과 노예사냥| 새로운 인종의탄생: 메스티소| 현대 금융제도의 탄생과 자본주의 발전
08 대항해시대와 해적의 황금기
해적의 시대 | 스페인 대해| 스페인 보물선단의 항해 | 근대 해적의 개념과 유형| 해적의 황금시대 | ‘해적의 나라’ 영국 | 영국과 네덜란드의 무역전쟁| 영국의 노예무역| 영국의 해적퇴치 | 누가 해적이 되었나 | 해적이 된 통장이 모우어 | 해적과 평화시대의 역설| 민주적 해적 공동체| 해적선의 선상 기율 | 해적들의 방탕한 생활 | 해적의 공격 수법 | 약탈 수법 | 복수의 외침 | 해적 깃발 ‘졸리 로저’ | 해적 소굴 | 동성애
09 대항해시대의 악명높은 해적들
프란시스 드레이크: 위대한 사략선장| 블랙 비어드: 가장 악명 높은 해적 | 바롤로뮤 로버츠: 금주를 했던 해적 | 핸리 모건: 최고의 성공을 거둔 해적 | 윌리엄 키드: 가장 불운한 해적 | 핸리 에버리: 언제 떠날지 아는 해적 | 에드워드 잉글랜드: 빈민굴에서 구걸하다 죽은 해적 | 바다로 나간 여자 해적 | 해적의 잔혹한 고문과 폭력 | 낭만적인 해적 이미지 | ‘보물섬’과 캐리비언의 해적 | 해적 재판 | 교수형 | 해적의 황금시대, 막을 내리다| 아메리카 대륙의 사략선 전성시대 | 미국의 독립전쟁과 사략선의 번성 | 미국 독립전쟁 이후의 사략선 | 대
서양시대 해적의 의미
10 바다에 갇힌 아시아
바다로 나간 유럽 | 바다에 갇힌 아시아 | 조선의 해금정책 | 식민의 바다 | 동아시아의 해양교류 | 정화의 해양 대원정 | 원정대의 위용 | 대원정의 목적 | 원정대의 대항해 | 정화,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다? | 정화와 중국의 해양굴기
11 아시아 바다의 해적
고대 중국역사 속의 해적 | 중국의 정치해적 | 동북아 해적: 왜구 | 왜구의 활동| 한반도와 왜구
12 오늘날의 해적
해적, 다시 부활하다 | 국제법상의 해적행위 | 현대해적의 유형 | 해적공격 현황 | 소말리아 해적 | 선원의 무장 | 해적퇴치를위한 유엔의 노력| 국제사회의 군함파견| 정부 및 민간의 자구 노력 | 현대 해적문제의 성격 | 해적문제의 해결 | 말라카 해협 해적 대응사례 | 맺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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