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잃어버린 것의 귀환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받은 나라들이 자국의 약탈된 문화재를 환수하는 데 본격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부터다. 먹고 사는 것에 급급하던 지난 세기의 원리가 바야흐로 그 시효가 다해 가고,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주의가 청산되어 가는 추세 속에서 사람들은 공동체의 정체성과 자존심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문화적 주권 회복에 대한 거센 요구로 표출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10년에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문화재 보호와 반환을 위한 국제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여기에서 한국, 중국, 인도, 이집트, 그리스,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이탈리아, 러시아 등 22개국 문화재 담당 대표단은 사상 처음으로 해외로 반출된 유물을 되찾기 위한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결의했다. 이 회의를 주도한 이집트의 자히 하와스 위원장은 “그리스도 혼자 싸웠고 이탈리아도 혼자 싸웠지만, 이제 우리는 처음으로 하나가 되었다”고 천명했다.
약탈 문화재 반환 문제와 관련하여 2011년은 우리에게도 역사적인 해로 기억될 만하다. 바로 이해에 1922년 조선총독부가 강탈하여 일본 궁내청에서 소장하고 있던 『조선왕실의궤』와,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약탈해 간 도서가 145년 만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에도 약탈 문화재 반환 사례가 간헐적으로 있기는 했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회담의 결과로 이듬해 1,432점의 문화재를 돌려받은 것을 시작으로, 1991년에는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의 복식이, 2005년에는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되어 있던 북관대첩비가, 2006년에는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최근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조선왕실 어보와 대한제국 국새를 들고 옴으로써 문화재 반환 문제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그럼에도 2011년이 각별한 것은 정부 차원에서 ‘문화재 환수 원년’이라 선포하고 본격적인 반환 활동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아라이 신이치는 누구인가
『약탈 문화재는 누구의 것인가』를 쓴 아라이 신이치荒井信一(스루가다이대학 명예교수, 전쟁책임자료센터 공동 대표) 선생은 2011년 『조선왕실의궤』가 반환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분이다. 그 전해에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는 한국병합 100년에 즈음하여 『조선왕실의궤』 반환을 약속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이러한 총리의 결정을 쉽게 따라 주지 않았다. 반환 논의가 수개월 난항을 겪고 있을 때, 아라이 신이치 선생이 중의원 외무위원회에 참고인으로 나가 의견을 개진하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선생은 약탈 문화재 반환은 식민주의를 청산하기 위한 기본 틀이라는 대전제 아래, 문화재는 그것이 태어난 자리에 있을 때 진정한 가치를 발한다고 역설했다. 전쟁 범죄와 그 책임 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쳐 온 그의 통찰은 일본 중의원을 움직였고, 이로써 마침내 『조선왕실의궤』 반환 승인 결정이 내려지게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쓰인 『약탈 문화재는 누구의 것인가』는 한 일본인 노학자의 진정한 양심을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피해국이 아닌 가해국의 지식인이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토대로 내놓은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약탈 문화재를 주제로 한 여느 책들과 뚜렷이 구별된다.
문화재 반환을 고리로 한 식민주의 극복
이 책에서 저자는 먼저 일제의 문화재 약탈이 어떻게 시작했고 진행되었는지를 추적했다. 그 첫 무대는 한국사의 축소판이라 일컬어지는 강화도다. 1875년 9월 군사적 위압을 배경으로 강화도를 공격한 일본은 이노우에 요시카井上良馨 함장의 지휘 아래 조선의 귀중 도서들을 노획해 갔다. 이로써 일제에 의한 문화재 약탈의 서막이 올랐다. 이후 1894년 청일전쟁, 1905년 제2차 한일협약(을사조약), 1907년 제3차 한일협약이 체결되면서 한국에 대한 일본의 보호국화는 심화되었고, 이와 함께 문화재 약탈 또한 가속적으로 전면화되었다. 청일전쟁으로 말미암아 문화재 약탈은 군軍과 일체가 된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되었고, 왕실의 귀중한 기록물을 보관하던 사고史庫는 일본 헌병들의 강탈로 빈 창고가 되었으며, 개성과 강화 부근의 고려 고분은 폭격을 맞은 것처럼 처참하게 파헤쳐졌다. 그뿐만 아니라 초대 한국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는 여기저기 다니며 고려자기를 비롯한 고미술품을 거의 싹쓸이해서 가져가 천황에게 헌상했고, 오사카에는 한국에서 나온 고물古物을 거래하는 시장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학술 조사라는 이름 아래 시행된 고적 조사는 한국의 문화재가 처한 위기를 크게 증폭시켰다. 그 중심에 세키노 다다시關野貞라는 인물이 있었다. 도쿄제국대학 교수로 있던 그는 한국병합 전해인 1909년에 한국의 고건축물을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의 임무가 식민지 지배와 결부된 실용적인 목적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조사 대상 하나하나에 등급을 매긴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의 판정에 따라 하급으로 분류된 경희궁 같은 건축물은 결국 조선총독부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의 학술 조사는 고분묘에 대해서도 행해졌다. 낙랑군 유적, 고구려 벽화 고분, 삼국시대의 왕릉 등이 그 대상이었다. 일본에서는 그의 조사를 “한국 문화재 보호의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고 평가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식민지 사관을 만들어 내기 위해 사전에 계획한 것으로”서 결과적으로는 사굴이나 남굴 풍조를 심화시켜 유적이 괴멸적으로 파괴되었다고 평가한다.
전반부에서 일제에 의한 문화재 반출사를 소상하게 기술한 저자는 이어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연합군이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했는지, 그리고 한일국교정상화 회담에서 이 의제가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를 살폈다. 그 밖에도 2차 대전 이후 국제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문화재 반환 운동의 추이, 국제법적 관점의 새로운 동향, 식민주의 청산의 움직임을 두루 소개했다.
문화재 내셔널리즘과 문화재 국제주의 모두를 넘어
약탈 문화재를 원산국으로 반환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으로 보인다. 문화재는 그것을 만들어 낸 민족의 혼이 담긴 신물神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문화재는 보편적 인류 문명으로 반드시 원산지에서 소장할 이유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즉, 우수한 문화재는 특정 나라만의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감상할 권리가 있는 세계적 유산이라는 것이다. 전자의 관점을 ‘문화재 내셔널리즘’, 후자의 그것을 ‘문화재 국제주의’라 부른다. 이 책에서 저자는 문화재 반환을 식민주의를 극복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보았다. 이것은 문화재 내셔널리즘이냐 국제주의냐 하는 이분적 대립을 넘어 전쟁 방지와 평화 정착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길이다. 대립과 폭력으로 점철된 지난 세기를 치유하고 공생의 가치를 정립하는 것은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소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재가 평화 정착에 핵심 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노학자의 목소리는 더욱 울림 있게 다가온다.
이 책을 옮긴 이태진 선생은 1990년대 초부터 규장각 소장 자료를 연구하던 중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운동을 펼쳐 환수하게 되기까지 중심 역할을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저자인 아라이 신이치 선생이 『조선왕실의궤』 반환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과 좋은 대구를 이룬다. 한편 이 책에는 원서에 없는 사진 자료를 풍부하게 실어 사건의 현장감을 더했고, 책에서 언급된 주요 인물에 대한 소개도 말미에 수록해 두었다.
▣ 작가 소개
저자 : 아라이 신이치
1926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49년 도쿄대학 서양사학과를 졸업했으며, 이바라키대학 인문학부 교수와 스루가다이대학 현대문화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스루가다이대학교 명예교수와 일본 전쟁책임자료센터 공동 대표로 있다.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하는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꼽힌다.
19세 때 제2차 세계대전에 학도병으로 참여한 경험이 그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쳐, 유럽의 홀로코스트 문제, 일본의 전쟁 범죄와 책임 문제를 주된 연구 주제로 삼아 왔다. 2005년 도쿄에서 열린, 을사늑약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서는 을사늑약이 국제법상으로 무효임을 입증하는 새로운 사료를 내놓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역사 화해는 가능한가』, 『전쟁 책임론』, 『게르니카 이야기』, 『공폭의 역사』 , 『원폭 투하의 길』, 『중국 역사와 만나다』, 『홀로코스트의 흔적을 찾아서』 등이 있다.
역자 : 이태진
1943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규장각 도서관리실장, 역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퇴임한 뒤에는 국사편찬회 위원장을 지냈다. 현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있다.
조선조 유교 정치 사회사와 고종 시대 한일 관계사에 관해 주로 연구했다. 일본의 대한제국 국권 탈취와 관련한 조약문들을 연구하여 2010년에 병합의 불법성을 입증하는 ‘한일 지식인 공동 성명서’가 나오는 데 중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고종 시대의 재조명』, 『조선시대 정치사의 재조명』을 비롯하여 『조선 유교 사회사론』, 『새 한국사』, 『외규장각 도서를 찾아서』, 『한국 사회사 연구』, 『한국병합의 불법성 연구』, 『한국병합과 현대』가 있다. 또한 공저로 『조선 후기 탕평 정치의 재조명』, 『조약으로 본 한국병합』,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 『고종 황제 역사 청문회』 등이 있다.
역자 : 김은주
1985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서울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농촌 진흥 운동기(1932~1937년) 조선총독부의 생활 개선 사업과 ‘국민’ 동원」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한국병합과 현대』(공역),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공역)이 있다.
▣ 주요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서론
1장 제국화하는 일본과 문화재
1 최초의 문화재 약탈 무대, 강화도
2 청일전쟁과 문화재
3 왜 철도를 건설했을까?
2장 학술 조사라는 이름 아래
1 세키노 다다시의 고적 조사
2 한반도의 일본인들
3장 동화 정책과 만들어진 역사
1 한국병합 5주년 기념 이벤트, 공진회
2 새로운 버전의 동화 정책
3 금관총 스캔들
4 전쟁의 확대와 패전
4장 문화재는 누구에게 속하는가 ― 강화에서 한일교섭으로
1 전쟁 뒤처리
2 워너 전설의 파문
3 문화재 문제가 걸림돌이 된 한일교섭
5장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식민주의 청산
1 국제법의 관점에서 본 문화재 반환 문제
2 식민주의 극복을 위하여
3 미국의 약탈 문화재 반환
6장 문화제 문제의 장래
1 문화제 문제의 동향
2 앞으로의 과제
주요 인물 소개
옮긴이의 말
잃어버린 것의 귀환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을 받은 나라들이 자국의 약탈된 문화재를 환수하는 데 본격적인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한 것은 2000년대부터다. 먹고 사는 것에 급급하던 지난 세기의 원리가 바야흐로 그 시효가 다해 가고, 제국주의 국가들의 식민주의가 청산되어 가는 추세 속에서 사람들은 공동체의 정체성과 자존심에 대해 성찰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것은 문화적 주권 회복에 대한 거센 요구로 표출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2010년에는 이집트 카이로에서 ‘문화재 보호와 반환을 위한 국제회의’가 열리기도 했다. 여기에서 한국, 중국, 인도, 이집트, 그리스, 이라크, 리비아, 시리아, 이탈리아, 러시아 등 22개국 문화재 담당 대표단은 사상 처음으로 해외로 반출된 유물을 되찾기 위한 공동 대응에 나서기로 결의했다. 이 회의를 주도한 이집트의 자히 하와스 위원장은 “그리스도 혼자 싸웠고 이탈리아도 혼자 싸웠지만, 이제 우리는 처음으로 하나가 되었다”고 천명했다.
약탈 문화재 반환 문제와 관련하여 2011년은 우리에게도 역사적인 해로 기억될 만하다. 바로 이해에 1922년 조선총독부가 강탈하여 일본 궁내청에서 소장하고 있던 『조선왕실의궤』와, 병인양요 때 프랑스가 강화도 외규장각에서 약탈해 간 도서가 145년 만에 돌아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전에도 약탈 문화재 반환 사례가 간헐적으로 있기는 했다. 1965년 한일국교정상화 회담의 결과로 이듬해 1,432점의 문화재를 돌려받은 것을 시작으로, 1991년에는 영친왕비 이방자 여사의 복식이, 2005년에는 일본 야스쿠니 신사에 방치되어 있던 북관대첩비가, 2006년에는 『조선왕조실록』 오대산 사고본이 원래의 자리로 돌아왔다. 최근에는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한국을 방문하면서 조선왕실 어보와 대한제국 국새를 들고 옴으로써 문화재 반환 문제에 대한 관심은 더욱 고조되고 있다. 그럼에도 2011년이 각별한 것은 정부 차원에서 ‘문화재 환수 원년’이라 선포하고 본격적인 반환 활동에 착수했기 때문이다.
아라이 신이치는 누구인가
『약탈 문화재는 누구의 것인가』를 쓴 아라이 신이치荒井信一(스루가다이대학 명예교수, 전쟁책임자료센터 공동 대표) 선생은 2011년 『조선왕실의궤』가 반환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분이다. 그 전해에 일본의 간 나오토 총리는 한국병합 100년에 즈음하여 『조선왕실의궤』 반환을 약속하는 담화를 발표했다. 그러나 국회에서는 이러한 총리의 결정을 쉽게 따라 주지 않았다. 반환 논의가 수개월 난항을 겪고 있을 때, 아라이 신이치 선생이 중의원 외무위원회에 참고인으로 나가 의견을 개진하게 되었다. 이 자리에서 선생은 약탈 문화재 반환은 식민주의를 청산하기 위한 기본 틀이라는 대전제 아래, 문화재는 그것이 태어난 자리에 있을 때 진정한 가치를 발한다고 역설했다. 전쟁 범죄와 그 책임 문제 연구에 평생을 바쳐 온 그의 통찰은 일본 중의원을 움직였고, 이로써 마침내 『조선왕실의궤』 반환 승인 결정이 내려지게 되었다. 이 일을 계기로 쓰인 『약탈 문화재는 누구의 것인가』는 한 일본인 노학자의 진정한 양심을 대변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피해국이 아닌 가해국의 지식인이 자신들의 과오에 대한 깊은 성찰을 토대로 내놓은 결과물이라는 점에서 약탈 문화재를 주제로 한 여느 책들과 뚜렷이 구별된다.
문화재 반환을 고리로 한 식민주의 극복
이 책에서 저자는 먼저 일제의 문화재 약탈이 어떻게 시작했고 진행되었는지를 추적했다. 그 첫 무대는 한국사의 축소판이라 일컬어지는 강화도다. 1875년 9월 군사적 위압을 배경으로 강화도를 공격한 일본은 이노우에 요시카井上良馨 함장의 지휘 아래 조선의 귀중 도서들을 노획해 갔다. 이로써 일제에 의한 문화재 약탈의 서막이 올랐다. 이후 1894년 청일전쟁, 1905년 제2차 한일협약(을사조약), 1907년 제3차 한일협약이 체결되면서 한국에 대한 일본의 보호국화는 심화되었고, 이와 함께 문화재 약탈 또한 가속적으로 전면화되었다. 청일전쟁으로 말미암아 문화재 약탈은 군軍과 일체가 된 국가적 사업으로 추진되었고, 왕실의 귀중한 기록물을 보관하던 사고史庫는 일본 헌병들의 강탈로 빈 창고가 되었으며, 개성과 강화 부근의 고려 고분은 폭격을 맞은 것처럼 처참하게 파헤쳐졌다. 그뿐만 아니라 초대 한국통감을 지낸 이토 히로부미는 여기저기 다니며 고려자기를 비롯한 고미술품을 거의 싹쓸이해서 가져가 천황에게 헌상했고, 오사카에는 한국에서 나온 고물古物을 거래하는 시장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무엇보다도 학술 조사라는 이름 아래 시행된 고적 조사는 한국의 문화재가 처한 위기를 크게 증폭시켰다. 그 중심에 세키노 다다시關野貞라는 인물이 있었다. 도쿄제국대학 교수로 있던 그는 한국병합 전해인 1909년에 한국의 고건축물을 조사하라는 명령을 받았다. 그의 임무가 식민지 지배와 결부된 실용적인 목적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조사 대상 하나하나에 등급을 매긴 것으로도 알 수 있다. 그의 판정에 따라 하급으로 분류된 경희궁 같은 건축물은 결국 조선총독부에 의해 파괴되었다. 그의 학술 조사는 고분묘에 대해서도 행해졌다. 낙랑군 유적, 고구려 벽화 고분, 삼국시대의 왕릉 등이 그 대상이었다. 일본에서는 그의 조사를 “한국 문화재 보호의 중요한 기초가 되었다”고 평가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식민지 사관을 만들어 내기 위해 사전에 계획한 것으로”서 결과적으로는 사굴이나 남굴 풍조를 심화시켜 유적이 괴멸적으로 파괴되었다고 평가한다.
전반부에서 일제에 의한 문화재 반출사를 소상하게 기술한 저자는 이어 제2차 세계대전 전후로 연합군이 이 문제에 어떻게 접근했는지, 그리고 한일국교정상화 회담에서 이 의제가 어떻게 다루어졌는지를 살폈다. 그 밖에도 2차 대전 이후 국제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문화재 반환 운동의 추이, 국제법적 관점의 새로운 동향, 식민주의 청산의 움직임을 두루 소개했다.
문화재 내셔널리즘과 문화재 국제주의 모두를 넘어
약탈 문화재를 원산국으로 반환하는 것은 당연한 상식으로 보인다. 문화재는 그것을 만들어 낸 민족의 혼이 담긴 신물神物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에서는 문화재는 보편적 인류 문명으로 반드시 원산지에서 소장할 이유는 없다는 주장도 있다. 즉, 우수한 문화재는 특정 나라만의 것이 아니라 인류 전체가 감상할 권리가 있는 세계적 유산이라는 것이다. 전자의 관점을 ‘문화재 내셔널리즘’, 후자의 그것을 ‘문화재 국제주의’라 부른다. 이 책에서 저자는 문화재 반환을 식민주의를 극복하고 항구적인 평화를 구축하기 위한 출발점으로 보았다. 이것은 문화재 내셔널리즘이냐 국제주의냐 하는 이분적 대립을 넘어 전쟁 방지와 평화 정착의 관점에서 접근하는 길이다. 대립과 폭력으로 점철된 지난 세기를 치유하고 공생의 가치를 정립하는 것은 우리 시대가 요청하는 소명이다. 그런 의미에서 문화재가 평화 정착에 핵심 고리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말하는 노학자의 목소리는 더욱 울림 있게 다가온다.
이 책을 옮긴 이태진 선생은 1990년대 초부터 규장각 소장 자료를 연구하던 중 프랑스 정부를 상대로 외규장각 도서 반환 운동을 펼쳐 환수하게 되기까지 중심 역할을 한 장본인이기도 하다. 저자인 아라이 신이치 선생이 『조선왕실의궤』 반환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한 것과 좋은 대구를 이룬다. 한편 이 책에는 원서에 없는 사진 자료를 풍부하게 실어 사건의 현장감을 더했고, 책에서 언급된 주요 인물에 대한 소개도 말미에 수록해 두었다.
▣ 작가 소개
저자 : 아라이 신이치
1926년 도쿄에서 태어났다. 1949년 도쿄대학 서양사학과를 졸업했으며, 이바라키대학 인문학부 교수와 스루가다이대학 현대문화학부 교수를 역임했다. 현재는 스루가다이대학교 명예교수와 일본 전쟁책임자료센터 공동 대표로 있다. 일본의 우경화를 비판하는 대표적인 지식인으로 꼽힌다.
19세 때 제2차 세계대전에 학도병으로 참여한 경험이 그의 삶에 많은 영향을 끼쳐, 유럽의 홀로코스트 문제, 일본의 전쟁 범죄와 책임 문제를 주된 연구 주제로 삼아 왔다. 2005년 도쿄에서 열린, 을사늑약을 주제로 한 심포지엄에서는 을사늑약이 국제법상으로 무효임을 입증하는 새로운 사료를 내놓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역사 화해는 가능한가』, 『전쟁 책임론』, 『게르니카 이야기』, 『공폭의 역사』 , 『원폭 투하의 길』, 『중국 역사와 만나다』, 『홀로코스트의 흔적을 찾아서』 등이 있다.
역자 : 이태진
1943년 경북 성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한국학중앙연구원에서 명예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규장각 도서관리실장, 역사학회 회장 등을 역임했고, 퇴임한 뒤에는 국사편찬회 위원장을 지냈다. 현재 서울대학교 국사학과 명예교수이자 대한민국학술원 회원으로 있다.
조선조 유교 정치 사회사와 고종 시대 한일 관계사에 관해 주로 연구했다. 일본의 대한제국 국권 탈취와 관련한 조약문들을 연구하여 2010년에 병합의 불법성을 입증하는 ‘한일 지식인 공동 성명서’가 나오는 데 중추 역할을 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 『동경대생들에게 들려준 한국사』, 『고종 시대의 재조명』, 『조선시대 정치사의 재조명』을 비롯하여 『조선 유교 사회사론』, 『새 한국사』, 『외규장각 도서를 찾아서』, 『한국 사회사 연구』, 『한국병합의 불법성 연구』, 『한국병합과 현대』가 있다. 또한 공저로 『조선 후기 탕평 정치의 재조명』, 『조약으로 본 한국병합』,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 『고종 황제 역사 청문회』 등이 있다.
역자 : 김은주
1985년 제주에서 태어났다.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했으며, 같은 학교 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받고 박사 과정을 수료했다. 현재 서울대학교에 출강 중이다. 주요 논문으로 「농촌 진흥 운동기(1932~1937년) 조선총독부의 생활 개선 사업과 ‘국민’ 동원」 등이 있으며, 옮긴 책으로 『한국병합과 현대』(공역), 『영원히 타오르는 불꽃』(공역)이 있다.
▣ 주요 목차
한국의 독자들에게
서론
1장 제국화하는 일본과 문화재
1 최초의 문화재 약탈 무대, 강화도
2 청일전쟁과 문화재
3 왜 철도를 건설했을까?
2장 학술 조사라는 이름 아래
1 세키노 다다시의 고적 조사
2 한반도의 일본인들
3장 동화 정책과 만들어진 역사
1 한국병합 5주년 기념 이벤트, 공진회
2 새로운 버전의 동화 정책
3 금관총 스캔들
4 전쟁의 확대와 패전
4장 문화재는 누구에게 속하는가 ― 강화에서 한일교섭으로
1 전쟁 뒤처리
2 워너 전설의 파문
3 문화재 문제가 걸림돌이 된 한일교섭
5장 세계적으로 진행되는 식민주의 청산
1 국제법의 관점에서 본 문화재 반환 문제
2 식민주의 극복을 위하여
3 미국의 약탈 문화재 반환
6장 문화제 문제의 장래
1 문화제 문제의 동향
2 앞으로의 과제
주요 인물 소개
옮긴이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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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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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상품의 시리얼 넘버 유출로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 |
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