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
윤치호 일기로 보는 식민지 시기 역사
윤치호의 영문 일기,
한국 근대사 연구의 사료로써 재조명하다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는 한국 근대사 연구에서 황현의 『매천야록』이나 김구의 『백범일지』에 못지않게 사료적 가치가 있으나, 방치되어왔던 윤치호의 일기를 다시 정리해 출간한 책이다. 좌옹(佐翁) 윤치호(尹致昊, 1865∼1945)는 지식, 명망, 재력을 겸비했던 일제강점기 조선 최고의 원로로서, 더러 중단된 적은 있으나 1883년부터 1943년까지 장장 60년 동안 일기를 썼다. 윤치호 일기 원본은 대학노트와 수첩 등 모두 30여 권에 기재되어 있는데, 1883년 1월 1일부터 1887년 11월 24일까지는 한문, 1887년 11월 25일부터 1889년 12월 7일까지는 국문, 미국 유학 중이던 1889년 12월 7일 이후는 영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윤치호는 50여 년을 영어로 일기를 썼던 것인데, 이는 미국 유학 중에 편의상 그리고 영어 공부를 위해 영어로 일기를 쓰기 시작해, 귀국 후에는 아마도 영어로 일기를 쓰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진 데다 가족 등 주변 사람들로부터 일기의 은밀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영문 일기를 쓴 것 같다.
그동안 『윤치호 일기』는 방대한 분량과 한문이나 영문 독해의 부담 때문에 연구자들도 사료로써의 접근이 용이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또한 한 개인의 일기를 사료로 볼 수 있느냐는 고정관념과 ‘윤치호=친일파’라는 선입견 때문에 사료로서의 가치를 폄하하는 경우도 있었다. 윤치호는 일기에 자신의 일상생활과 공인으로서의 활동은 물론 국내외 정세에 대한 견해와 전망 등을 꼼꼼히 기록했다. 그리고 그가 겪은 여러 사건들의 미묘한 정황, 정국의 추이와 민심의 동향, 각종 루머, 많은 지인(知人)들의 인성이나 사상, 행적을 엿볼 수 있는 각종 정보를 상세히 적었다. 따라서 개인 저작물이지만, 그 어느 공식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풍부해 사료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윤치호 일기를 통해 본 한 지식인의 내면세계와 식민지의 역사
『윤치호 일기』에는 식민지살이와 윤치호 개인의 속내가 매우 생생하게 담겨 있다. 윤치호의 국내외 정세 인식, 일제의 조선 통치정책에 대한 판단, 제반 독립운동에 대한 생각, 조선의 역사, 문화, 전통, 민족성에 대한 인식 등이 진솔하게, 아니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 일제강점기 정국의 동향과 조선의 시대상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있다. 총독부 당국과 친일 세력, 민족주의운동 세력과 지식인층, 기독교계 등 사회주의운동 세력을 제외한 일제강점기 모든 부문의 움직임과 뒷이야기, 그리고 민심의 동향이 입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그가 일제강점기 말기 친일파의 대부가 된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당시 식민지 치하의 한 지식인이 어떻게 친일의 길로 들어서는지를 보여주는 내면의 기록이기도 한다.
특히 윤치호 일기를 통해서는, 일반적으로 친미파로 분류되는 미국 유학 출신의 지식인층이나 기독교계 인사들에게 백인종, 구체적으로는 앵글로색슨인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상당한 수준이어서 이것이 친일의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 일제강점기에 민족주의운동 세력과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평안도 지역과 서울ㆍ경기 지역 사이에 지역감정(지역갈등)이 극심하게 나타났다는 점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다. 또 고종 황제 독살설, 유길준의 을미사변 관련설, 박용만과 옥관빈의 밀정설, 1930년대 중반 최남선의 ‘변절’설, 1930년대 후반 신흥우의 파시스트 결사 추진설 등은 그 진위 여부를 떠나 상당히 주목해볼 만한 내용들이다.
그리고 책 제목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는 윤치호가 일기에 가끔 적었던 말로써, 그의 인생관과 처세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식민지를 겪고 있는 조선인에게 가장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 조선인이 독립국가를 경영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출 때까지는 정치적ㆍ군사적 독립투쟁을 자제하고 경제적ㆍ도덕적 실력양성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저한 신념이었던 것이다.
윤치호, 그는 누구인가
좌옹 윤치호는 수많은 한국 근대 인물 중에서도 화려하고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였다. 윤치호는 1880년대와 1890년대 초반에 일본, 중국, 미국에서 유학한 한국 최초의 근대적 지식인이었고, 독립협회와 대한자강회의 회장을 지낸 개화ㆍ자강운동의 핵심 인물이었으며, 한국 최초의 미국남감리회 신자이자 YMCA운동의 지도자로서 일제강점기 기독교계의 최고 원로였다. 그런가 하면 3ㆍ1운동이 시작되자마자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독립운동 무용론을 피력해 물의를 빚었고, 중일전쟁 발발 이후에는 기독교계의 친일을 주도하고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과 조선임전보국단 등의 고위 간부를 지내며 친일파의 대부 역할을 담당했다. 요컨대 그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느냐, 또는 부정적인 역할을 했느냐 하는 가치 판단의 여부와 상관없이 한국 근대사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거물 중이 한 사람이었다.
이 책의 구성과 특징은
- 이 책은 1883년부터 1943년까지 60년 동안의 윤치호 일기 중에서 일제강점기(1919∼43) 부분만을 대상으로 발췌하여 번역했다. 제1부는 3ㆍ1운동 전후, 제2부 만주사변 전후, 제3부는 중일전쟁ㆍ태평양전쟁 전후로 나누어 정국의 동향과 윤치호의 내면세계를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소개했다. 이와 같은 시기 구분은 일제하 정국의 질적 변화를 초래한 3ㆍ1운동, 만주사변, 중일전쟁ㆍ태평양전쟁이 윤치호 개인에게도 큰 충격과 고민을 안겨주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실제 1919∼21, 1931∼35, 1938∼40년 일기의 분량이 다른 시기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해방 이후 윤치호의 생각을 살펴볼 수 있도록 윤치호가 이승만과 미군정에게 보낸 『한 노인의 명상록』이라는 영문 서한을 두 편 실었다.
- 윤치호의 가계도를 실어 20세기 최고의 명가 중 하나인 해평윤씨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윤치호와 그의 시대 연표」를 정리해 실었다. 윤치호의 생애에 따른 연도별 국내외적인 중요 사건을 정리하여 윤치호가 살았던 시대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 작가 소개
역 : 김상태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근현대사를 연구했다.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저물어가던 역사로만 기억되던 근대 시기에 마음이 끌렸다. 박사 과정 당시 『윤치호 일기』를 편역하면서 근대사를 더 깊숙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고, 흑백 사진의 느낌만 있는 구한말에 다채로운 색을 입힐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후 2005년부터 메디컬 히스토리를 연구했다. 이때 재발견한 제중원은 개항기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선교사들의 일기와 편지를 비롯, 그동안 사료적 가치를 평가받지 못했던 많은 기록들을 세밀하게 복원할 수 있었다.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로 재직 중이며, 논문에 「평안도 기독교 세력과 친미엘리트의 형성」, 지은 책으로 『윤치호일기 1916~1943』(편역), 『역사신문 5권』(공저), 『한국 근대사회와 문화 3권』(공저), 『한국의학인물사』(공저), 『사진과 함께 보는 한국 근현대 의료문화사』(공저)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제2판 책을 내면서
제1판 책을 내면서
해제 일제강점기 윤치호의 내면세계와 한국 근대사
일러두기
제1부 3ㆍ1운동 전후
제1장 ‘내가 3ㆍ1운동을 반대하는 까닭은’(1919)
제2장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1920∼21)
제3장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라’(1922∼30)
제2부 만주사변 전후
제1장 힘이 정의다(1931∼32)
제2장 나는 성선설을 믿지 않는다(1933∼35)
제3부 중일전쟁ㆍ태평양전쟁 전후
제1장 흥업구락부 사건의 와중에서(1938)
제2장 ‘내선일체만이 살길이다!’(1939∼40)
제3장 ‘유색인종의 해방을 위하여’(1941∼43)
한 노인의 명상록 1-1945년 10월 15일
한 노인의 명상록 2-1945년 10월 20일
윤치호 가계도
윤치호와 그의 시대 연표
참고문헌
인명 찾아보기
사항 찾아보기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
윤치호 일기로 보는 식민지 시기 역사
윤치호의 영문 일기,
한국 근대사 연구의 사료로써 재조명하다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는 한국 근대사 연구에서 황현의 『매천야록』이나 김구의 『백범일지』에 못지않게 사료적 가치가 있으나, 방치되어왔던 윤치호의 일기를 다시 정리해 출간한 책이다. 좌옹(佐翁) 윤치호(尹致昊, 1865∼1945)는 지식, 명망, 재력을 겸비했던 일제강점기 조선 최고의 원로로서, 더러 중단된 적은 있으나 1883년부터 1943년까지 장장 60년 동안 일기를 썼다. 윤치호 일기 원본은 대학노트와 수첩 등 모두 30여 권에 기재되어 있는데, 1883년 1월 1일부터 1887년 11월 24일까지는 한문, 1887년 11월 25일부터 1889년 12월 7일까지는 국문, 미국 유학 중이던 1889년 12월 7일 이후는 영문으로 기록되어 있다. 윤치호는 50여 년을 영어로 일기를 썼던 것인데, 이는 미국 유학 중에 편의상 그리고 영어 공부를 위해 영어로 일기를 쓰기 시작해, 귀국 후에는 아마도 영어로 일기를 쓰는 것이 습관으로 굳어진 데다 가족 등 주변 사람들로부터 일기의 은밀함을 유지하기 위해서 계속 영문 일기를 쓴 것 같다.
그동안 『윤치호 일기』는 방대한 분량과 한문이나 영문 독해의 부담 때문에 연구자들도 사료로써의 접근이 용이하지 못한 측면이 있었다. 또한 한 개인의 일기를 사료로 볼 수 있느냐는 고정관념과 ‘윤치호=친일파’라는 선입견 때문에 사료로서의 가치를 폄하하는 경우도 있었다. 윤치호는 일기에 자신의 일상생활과 공인으로서의 활동은 물론 국내외 정세에 대한 견해와 전망 등을 꼼꼼히 기록했다. 그리고 그가 겪은 여러 사건들의 미묘한 정황, 정국의 추이와 민심의 동향, 각종 루머, 많은 지인(知人)들의 인성이나 사상, 행적을 엿볼 수 있는 각종 정보를 상세히 적었다. 따라서 개인 저작물이지만, 그 어느 공식 문헌에서는 찾아볼 수 있는 이야기들이 풍부해 사료로서의 가치가 충분하다고 볼 수 있다.
윤치호 일기를 통해 본 한 지식인의 내면세계와 식민지의 역사
『윤치호 일기』에는 식민지살이와 윤치호 개인의 속내가 매우 생생하게 담겨 있다. 윤치호의 국내외 정세 인식, 일제의 조선 통치정책에 대한 판단, 제반 독립운동에 대한 생각, 조선의 역사, 문화, 전통, 민족성에 대한 인식 등이 진솔하게, 아니 적나라하게 기록되어 있다. 또 일제강점기 정국의 동향과 조선의 시대상에 대한 수많은 정보가 있다. 총독부 당국과 친일 세력, 민족주의운동 세력과 지식인층, 기독교계 등 사회주의운동 세력을 제외한 일제강점기 모든 부문의 움직임과 뒷이야기, 그리고 민심의 동향이 입체적으로 기록되어 있다. 또한 그가 일제강점기 말기 친일파의 대부가 된 이유를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당시 식민지 치하의 한 지식인이 어떻게 친일의 길로 들어서는지를 보여주는 내면의 기록이기도 한다.
특히 윤치호 일기를 통해서는, 일반적으로 친미파로 분류되는 미국 유학 출신의 지식인층이나 기독교계 인사들에게 백인종, 구체적으로는 앵글로색슨인에 대한 정서적 거부감이 상당한 수준이어서 이것이 친일의 계기로 작용했다는 점, 일제강점기에 민족주의운동 세력과 기독교계를 중심으로 평안도 지역과 서울ㆍ경기 지역 사이에 지역감정(지역갈등)이 극심하게 나타났다는 점 등을 자세히 알 수 있다. 또 고종 황제 독살설, 유길준의 을미사변 관련설, 박용만과 옥관빈의 밀정설, 1930년대 중반 최남선의 ‘변절’설, 1930년대 후반 신흥우의 파시스트 결사 추진설 등은 그 진위 여부를 떠나 상당히 주목해볼 만한 내용들이다.
그리고 책 제목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는 윤치호가 일기에 가끔 적었던 말로써, 그의 인생관과 처세술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말이다. 뿐만 아니라 그가 식민지를 겪고 있는 조선인에게 가장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다. 조선인이 독립국가를 경영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출 때까지는 정치적ㆍ군사적 독립투쟁을 자제하고 경제적ㆍ도덕적 실력양성에 전념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철저한 신념이었던 것이다.
윤치호, 그는 누구인가
좌옹 윤치호는 수많은 한국 근대 인물 중에서도 화려하고 다채로운 경력의 소유자였다. 윤치호는 1880년대와 1890년대 초반에 일본, 중국, 미국에서 유학한 한국 최초의 근대적 지식인이었고, 독립협회와 대한자강회의 회장을 지낸 개화ㆍ자강운동의 핵심 인물이었으며, 한국 최초의 미국남감리회 신자이자 YMCA운동의 지도자로서 일제강점기 기독교계의 최고 원로였다. 그런가 하면 3ㆍ1운동이 시작되자마자 총독부 기관지 『경성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독립운동 무용론을 피력해 물의를 빚었고, 중일전쟁 발발 이후에는 기독교계의 친일을 주도하고 국민정신총동원조선연맹과 조선임전보국단 등의 고위 간부를 지내며 친일파의 대부 역할을 담당했다. 요컨대 그는 긍정적인 역할을 했느냐, 또는 부정적인 역할을 했느냐 하는 가치 판단의 여부와 상관없이 한국 근대사에서 몇 손가락 안에 드는 거물 중이 한 사람이었다.
이 책의 구성과 특징은
- 이 책은 1883년부터 1943년까지 60년 동안의 윤치호 일기 중에서 일제강점기(1919∼43) 부분만을 대상으로 발췌하여 번역했다. 제1부는 3ㆍ1운동 전후, 제2부 만주사변 전후, 제3부는 중일전쟁ㆍ태평양전쟁 전후로 나누어 정국의 동향과 윤치호의 내면세계를 파악하는 데 중요하다고 생각되는 부분을 소개했다. 이와 같은 시기 구분은 일제하 정국의 질적 변화를 초래한 3ㆍ1운동, 만주사변, 중일전쟁ㆍ태평양전쟁이 윤치호 개인에게도 큰 충격과 고민을 안겨주었을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실제 1919∼21, 1931∼35, 1938∼40년 일기의 분량이 다른 시기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해방 이후 윤치호의 생각을 살펴볼 수 있도록 윤치호가 이승만과 미군정에게 보낸 『한 노인의 명상록』이라는 영문 서한을 두 편 실었다.
- 윤치호의 가계도를 실어 20세기 최고의 명가 중 하나인 해평윤씨 인물들의 면면을 살펴볼 수 있도록 했다.
-「윤치호와 그의 시대 연표」를 정리해 실었다. 윤치호의 생애에 따른 연도별 국내외적인 중요 사건을 정리하여 윤치호가 살았던 시대 상황을 한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했다.
▣ 작가 소개
역 : 김상태
서울대학교 국사학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에서 근현대사를 연구했다. 한국사를 공부하면서 저물어가던 역사로만 기억되던 근대 시기에 마음이 끌렸다. 박사 과정 당시 『윤치호 일기』를 편역하면서 근대사를 더 깊숙하게 들여다볼 수 있었고, 흑백 사진의 느낌만 있는 구한말에 다채로운 색을 입힐 수 있겠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후 2005년부터 메디컬 히스토리를 연구했다. 이때 재발견한 제중원은 개항기를 새롭게 볼 수 있는 공간이었다. 이 과정에서 선교사들의 일기와 편지를 비롯, 그동안 사료적 가치를 평가받지 못했던 많은 기록들을 세밀하게 복원할 수 있었다.
현재 서울대학교병원 병원역사문화센터 교수로 재직 중이며, 논문에 「평안도 기독교 세력과 친미엘리트의 형성」, 지은 책으로 『윤치호일기 1916~1943』(편역), 『역사신문 5권』(공저), 『한국 근대사회와 문화 3권』(공저), 『한국의학인물사』(공저), 『사진과 함께 보는 한국 근현대 의료문화사』(공저)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제2판 책을 내면서
제1판 책을 내면서
해제 일제강점기 윤치호의 내면세계와 한국 근대사
일러두기
제1부 3ㆍ1운동 전후
제1장 ‘내가 3ㆍ1운동을 반대하는 까닭은’(1919)
제2장 ‘물 수 없다면 짖지도 마라’(1920∼21)
제3장 ‘민족의 실력을 양성하라’(1922∼30)
제2부 만주사변 전후
제1장 힘이 정의다(1931∼32)
제2장 나는 성선설을 믿지 않는다(1933∼35)
제3부 중일전쟁ㆍ태평양전쟁 전후
제1장 흥업구락부 사건의 와중에서(1938)
제2장 ‘내선일체만이 살길이다!’(1939∼40)
제3장 ‘유색인종의 해방을 위하여’(1941∼43)
한 노인의 명상록 1-1945년 10월 15일
한 노인의 명상록 2-1945년 10월 20일
윤치호 가계도
윤치호와 그의 시대 연표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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