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평전을 쓰고 읽는다는 것은 앞서 살아간 옛사람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의 마음과 시대를 헤아려보는 여정일 겁니다. 우리는 그런 여정에서 나 자신이 옛사람이 되어 헤아려보기도 하고, 옛사람이 내 귀에 속내를 속삭여주는 경이로운 체험을 맛보기도 할 것입니다. 때론 앞길을 설계하는 지침이 되기도 하겠지요. 퇴계 이황은 그런 경지를 이렇게 읊었습니다.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을 못 뵈어, 고인을 못 뵈어도 가던 길 앞에 있네, 가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가고 어찌할까”라고.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옛사람이 맞닥뜨린 갈등과 옛사람이 고민했던 선택을 헤아리며 그의 길을 따라 걸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세월의 간극을 훌쩍 뛰어넘는 그런 가슴 벅찬 공명이 가능한 까닭은 그도 나도 시대를 벗어나서는 잠시도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란 이유 때문이겠지요. 그것이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우리 시대에 굳이 평전이 필요한 까닭일 것입니다.
-한겨레역사인물평전 ‘발간의 글’ 중에서
격정에 찬 정치 논객이자 조선 최고의 서정 시인이었던 윤선도
이질적 간극을 아우르며 통찰해본 ‘인간 고산’의 초상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빛낸 연금술사, 서정적 언어와 리듬으로 자연미를 표출한 시인, 이는 모두 고산 윤선도를 지칭하는 표현들이다. 그의 시조들은 평이한 우리말을 물 흐르듯 유연하게 구사하면서 감칠맛 나는 울림을 끌어냈고, 이 덕분에 고산은 송강 정철과 함께 우리 고전 시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것만이 고산의 진면목은 아니다. 고아하고 서정적인 시인의 삶 이면에는 혈기방장하고 꼬장꼬장한 정치 논객으로서의 삶이 있었다. 그는 정치 초년생이었던 30대부터 80대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있었고, 그때마다 외곬으로 정적들과 치열하게 대립했다. 양란과 당쟁의 격변기라는 시대적 특수성 탓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정적과의 싸움에서 도무지 타협할 줄 모르는 고산의 격정적 기질도 한몫했다. 이러한 두 면모는 한 사람의 모습으로 보기엔 자못 이질적이다. 그러나 세상과 불화하는 이의 견결성, 원칙을 향한 투지가 있었기에, 그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투명한 감수성으로 자신만의 강호미학을 꽃피운 게 아닐까. 고산의 삶과 문학을 탐사하면서 서로 다른 면모가 포개져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인간 고산’의 모습을 만나보자.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윤선도,
자연미 넘치는 그의 시 뒤편에는 세상과 불화하는 치열한 삶이 있었다!
김소월, 윤동주를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그만큼 이들 두 시인이 문학사의 지평을 넘어 한국인의 ‘문화적 상징’으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에 견줄 만한 고전 작가로는 누가 있을까? 송강 정철과 고산 윤선도가 아닐까? 이들에게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빛낸 ‘연금술사’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특히 고산에게는 ‘자연미의 시인’이라는 찬사가 더해지곤 한다. 그렇게 우리 뇌리에 각인되어 있기에, 고산에게는 유유자적 자연을 즐기며 고아한 흥취를 아낌없이 드러내는 이미지가 따라다닌다. 그러나 그의 실제 삶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이미지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치열한 세상과의 불화가 놓여 있다.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평전 읽기의 즐거움은 바로 이런 데서 비롯될 것이다. 한 인물에 대해 갖고 있는 특정 이미지를 그의 실제 삶과 견주면서 겹치고 어긋나는 부분을 찾아가는 재미 말이다.
이제까지 많은 조명을 받지 못한 고산의 개인사를 살펴보면, 그 굴곡은 상당히 극심하다. 광해군 집권 초기에 정계에 진출한 서른 살의 정치 초년생 고산은, 「병진소(丙辰疏)」라는 상소를 통해 권력의 심장부를 향해 공격의 포화를 퍼붓는다. 권력의 핵심에 있던 중신들이나 예민한 정치적 사안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성역 없는 공세를 취한 고산은, 이 상소 덕분에 전국적 명망을 얻지만 결국 정계에 진출하자마자 유배지로 향하는 신세가 된다. 그리하여 혈기 방장한 30대에 7년간이나 유배 생활을 하는데, 이것이 소모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가 이후의 정치 역정에서 보여준, 불굴의 기개를 견지하는 저력은 어쩌면 이때 다져졌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게도 정계에서의 화려한 시절은 있었다. 마흔두 살에 다시 과거에 응시해 장원급제한 고산은 시험관이었던 이조판서 장유(張維)에게 ‘동국 제일의 책문(策文)’이라는 평을 들으며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한다. 그는 장유의 추천으로 봉림?인평 두 대군의 사부로 임명되었고, 6년간 대군의 사부로서 사제 간의 각별한 정을 나눈다. 그러나 다시금 추문에 휘말리며 유배를 떠나고, 이후 오랜 은거 생활에 들어간다.
이후 고산의 나이 예순여섯 살에 대군에서 왕으로 등극한 효종의 배려로 다시 정계에 진출하지만, 정쟁의 회오리 속에서 다시 한 해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효종의 사후 제1차 예송논쟁에서 과격한 정치공세를 퍼부은 끝에 함경도로 유배를 떠난다. 공교롭게도 정치 초년생 시절에 「병진소」를 올린 후 귀양을 갔을 때도 7년이었고, 말년에 예송논쟁으로 귀양 갔을 때에도 7년여의 시간이었다. 정계에 데뷔했을 때부터 삶의 마지막 정치 인생까지 제 뜻을 직선적으로 펼친 고산의 삶에서 유배는 마치 수미쌍관법처럼 앞뒤로 맞물려 있는 셈이다.
고산의 시에 대한 평가는 후대 사람들의 것인바, 당대에 고산은 지금까지 언급한 정치사적 측면에서 굴곡 많은 논쟁적 인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고산은 과연 어떻게 우리말로 시를 창작하는 세계에 침잠해 들어간 것일까. ‘자연미의 시인’이라는 찬사와 ‘격정에 찬 정치 논객’이라는 이질적인 두 면모는 어떻게 한 인물 속에 녹아들 수 있었을까. 바로 이 지점이 ?윤선도 평전?을 관통하는 주요한 문제의식이다.
우리 시조사의 독특한 미학을 창출해낸 고산,
「산중신곡」과 「어부사시사」를 중심으로 살펴본 그의 풍요로운 시 세계
이번 평전에서는 고산이 창작한 자연미 넘치는 시들을 찬찬히 분석하고 있는데, 형식주의적인 내재적 비평의 잣대만을 들이밀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죽기 직전까지 창작한 주요 시편들을 살펴보되, ‘인간 고산’의 면모를 최대한 개입시킨 해석을 끌어냄으로써 시와 인간이라는 두 텍스트를 동시에 함께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평전에서 주목한 시들은 「산중신곡(山中新曲)」과 「어부사시사(魚夫四時詞)」에 담긴 것들이다. 「산중신곡」은 고산이 50대에 해남 금쇄동에 기거하며 창작한 일련의 시조들이고, 「어부사시사」는 보길도에 기거하던 60대에 고산 특유의 미적 질감에 힘입어 탄생한 절창으로, 이들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텍스트이자 고산 시의 절정이라 할 만한 작품들이다.
산수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산중신곡」에는 「만흥(漫興)」, 「우후요(雨後謠)」, 「일모요(日暮謠)」 등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최고는 「오우가(五友歌)」이다. 「오우가」는 전원의 일상에서 획득한 고산의 유려한 감수성이 그대로 녹아 있는 시조로 한국 고전시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고산은 자연물에서 성리학적 이치를 따지는 도학자의 근엄한 태도를 버리고 그야말로 친근하고도 믿을 만한 벗을 발견하는 기쁨으로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수(水)?석(石)?송(松)?죽(竹)?월(月)이라는 다섯 벗을 통해 이념과 도의 불변성이 아닌 우정과 의리의 불변성을 노래했기에, 이는 일반인들이 반가워하고 좋아할 수 있는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강호가도의 미적 잠재력을 정점까지 끌어올린 「어부사시사」는 춘하추동 각 계절마다 10수씩 총 40수로 구성된 시조이다. 이 시조의 방대한 양을 보면, 어부의 시선으로 사계절의 순환을 깊고 넓게 표현하겠다는 고산의 야심찬 의도가 엿보인다. 여음을 비롯한 다양한 운율의 활용과 함께, 변화무쌍하게 역동적으로 강호자연을 표현하는 이미지들은 이 시의 가장 뚜렷한 미적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진 흥취의 미학은 당대의 성리학적 감수성을 뛰어넘는 우리 시조사의 성취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처럼 자연을 노래한 시편들에서도 고산의 무의식을 장악하고 있는 강호 너머의 현실이 언뜻언뜻 드러난다. 이 시들이 고산이 정계에 있던 시기가 아니라 고향에 은거하던 시기에 창작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간 고산이 성취한 최고봉으로 상찬되어왔던, 금쇄동과 보길도에서 창작된 시편들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것을 즐기는 시적 자아의 흥취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념을 오롯이 실현하려는 견결한 의식을 읽어내는 것이 바로 이 평전을 통해 고산의 시를 다시 읽는 즐거움이리라. 그간 박지원, 임꺽정 등 시대를 대표하는 고전 인물들을 발굴하여 현재의 시각으로 재해석해온 우리 시대 최고의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윤선도의 인생역정을 통해 세상과의 불화를 자신만의 미학 창출의 원동력으로 삼은 ‘인간 고산’의 면모를 되짚어본다. 독창성과 이치에 대한 수호정신을 견지함으로써 빛나는 작품들을 남긴 고산의 삶을 ?윤선도 평전?을 통해 만나보자.
▣ 작가 소개
저 : 고미숙
Ko Mi Sook,高美淑
고전평론가로, 1960년 강원도 정선군 함백 출생이다. 가난한 광산촌에서 자랐지만, 공부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기신 부모님 덕분에 박사학위까지 무사히 마쳤다. 대학원에서 훌륭한 스승과 선배들을 만나 공부의 기본기를 익혔고, 지난 10여 년간 지식인공동체 ‘수유+너머’에서 좋은 벗들을 통해 ‘삶의 기예’를 배웠다. 덕분에 강연과 집필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1년 10월부터 ‘수유+너머’를 떠나 감이당(www.kungfus.net)에서 활동하고 있다. 감이당은 ‘몸, 삶, 글’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인문의역학’을 탐구하는 ‘밴드형 코뮤니타스’다. 그동안 낸 책으로는, 열하일기 삼종세트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전2권)과 달인 삼종세트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그리고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이 영화를 보라』,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발간의 글 _‘한겨레역사인물평전’을 기획하며 (정출헌|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점필재연구소 소장)
머리말 _자연미의 시인이자 정치 논객, 극단적 대비로 가득한 윤선도의 삶 읽기
1장 고산의 진면목을 찾아서
남도 답사 일번지, 해남에서 보길도로|고산, 그 복합적 초상
2장 청년기의 삽화들
왜란이 발발, 그리고 작은아버지 댁으로의 입양|해남 윤씨 가문의 중흥자, 어초은 윤효정|호남 사림파의 거물, 귤정 윤구|생부와 양부, 두 아버지 슬하에서|‘고고한’ 청년기, 고산의 작품들|유학의 실천 지침, 『소학』에 심취하다|고산의 학문적 개성, 박람강기|해남 땅과의 조우, 「남귀기행」
3장 정치적 노정, 그 상승과 하강의 파노라마
광해군 시대, 붕당의 소용돌이가 시작되다|「병진소」가 초래한 파란|유배지에서 시작된 시조와의 만남|해배의 권유를 물리치다|인조반정, 정계의 대반전|해배 이후의 방황|득의의 시절, 중앙 정계에 나아가다|좌천, 그리고 자연으로의 은거|호란의 발발과 경과|병자호란을 계기로 부용동을 발견하다|전란 후유증으로 인한 두 가지 스캔들|해배 후에 다가온 또 다른 슬픔
4장 산수시의 새로운 경지, 「산중신곡」
세상만사 온통 시름뿐!|하늘이 선사한 비경, 금쇄동|산림과 현실 사이의 동요, 「만흥」 여섯 수|산수시의 다양한 파노라마|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오우가」의 세계|「산중속신곡」, 그리고 몇 편의 여음
5장 부용동에서 꽃핀 강호미학의 정점, 「어부사시사」
환갑을 넘어서서|봉림대군, 왕위에 등극하다|「어부사시사」의 산실, 부용동 원림|「어부가」, 동아시아의 전통으로 자리하다|조선에 뿌리내린 「어부가」의 계보|현실은 끊임없는 미련이어라|참을 수 없는 흥취의 미학
6장 노년의 불꽃, 예송논쟁
다시 정계의 소용돌이 속으로|‘정개청 복권’을 둘러싼 회오리바람|효종의 죽음, 그리고 산릉 논쟁|제1차 예송논쟁|패배, 그리고 삼수로의 유배|해배, 그리고 죽음
참고문헌|연보|찾아보기
평전을 쓰고 읽는다는 것은 앞서 살아간 옛사람이 남긴 발자취를 따라가면서 그의 마음과 시대를 헤아려보는 여정일 겁니다. 우리는 그런 여정에서 나 자신이 옛사람이 되어 헤아려보기도 하고, 옛사람이 내 귀에 속내를 속삭여주는 경이로운 체험을 맛보기도 할 것입니다. 때론 앞길을 설계하는 지침이 되기도 하겠지요. 퇴계 이황은 그런 경지를 이렇게 읊었습니다. “고인(古人)도 날 못 보고 나도 고인을 못 뵈어, 고인을 못 뵈어도 가던 길 앞에 있네, 가던 길 앞에 있거든 아니 가고 어찌할까”라고. 우리도 그런 마음으로 옛사람이 맞닥뜨린 갈등과 옛사람이 고민했던 선택을 헤아리며 그의 길을 따라 걸을 수 있으리라 믿습니다. 세월의 간극을 훌쩍 뛰어넘는 그런 가슴 벅찬 공명이 가능한 까닭은 그도 나도 시대를 벗어나서는 잠시도 살아갈 수 없는 인간이란 이유 때문이겠지요. 그것이야말로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우리 시대에 굳이 평전이 필요한 까닭일 것입니다.
-한겨레역사인물평전 ‘발간의 글’ 중에서
격정에 찬 정치 논객이자 조선 최고의 서정 시인이었던 윤선도
이질적 간극을 아우르며 통찰해본 ‘인간 고산’의 초상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빛낸 연금술사, 서정적 언어와 리듬으로 자연미를 표출한 시인, 이는 모두 고산 윤선도를 지칭하는 표현들이다. 그의 시조들은 평이한 우리말을 물 흐르듯 유연하게 구사하면서 감칠맛 나는 울림을 끌어냈고, 이 덕분에 고산은 송강 정철과 함께 우리 고전 시가를 대표하는 시인으로 자리매김했다. 그러나 이것만이 고산의 진면목은 아니다. 고아하고 서정적인 시인의 삶 이면에는 혈기방장하고 꼬장꼬장한 정치 논객으로서의 삶이 있었다. 그는 정치 초년생이었던 30대부터 80대에 이르기까지 정치적 소용돌이의 한가운데 있었고, 그때마다 외곬으로 정적들과 치열하게 대립했다. 양란과 당쟁의 격변기라는 시대적 특수성 탓도 있지만, 그에 못지않게 정적과의 싸움에서 도무지 타협할 줄 모르는 고산의 격정적 기질도 한몫했다. 이러한 두 면모는 한 사람의 모습으로 보기엔 자못 이질적이다. 그러나 세상과 불화하는 이의 견결성, 원칙을 향한 투지가 있었기에, 그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투명한 감수성으로 자신만의 강호미학을 꽃피운 게 아닐까. 고산의 삶과 문학을 탐사하면서 서로 다른 면모가 포개져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인간 고산’의 모습을 만나보자.
한국을 대표하는 시인 윤선도,
자연미 넘치는 그의 시 뒤편에는 세상과 불화하는 치열한 삶이 있었다!
김소월, 윤동주를 모르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그만큼 이들 두 시인이 문학사의 지평을 넘어 한국인의 ‘문화적 상징’으로 각인되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들에 견줄 만한 고전 작가로는 누가 있을까? 송강 정철과 고산 윤선도가 아닐까? 이들에게는 우리말의 아름다움을 빛낸 ‘연금술사’라는 말이 따라다닌다. 특히 고산에게는 ‘자연미의 시인’이라는 찬사가 더해지곤 한다. 그렇게 우리 뇌리에 각인되어 있기에, 고산에게는 유유자적 자연을 즐기며 고아한 흥취를 아낌없이 드러내는 이미지가 따라다닌다. 그러나 그의 실제 삶을 들여다보면, 이러한 이미지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치열한 세상과의 불화가 놓여 있다. 개인의 삶을 들여다보는 평전 읽기의 즐거움은 바로 이런 데서 비롯될 것이다. 한 인물에 대해 갖고 있는 특정 이미지를 그의 실제 삶과 견주면서 겹치고 어긋나는 부분을 찾아가는 재미 말이다.
이제까지 많은 조명을 받지 못한 고산의 개인사를 살펴보면, 그 굴곡은 상당히 극심하다. 광해군 집권 초기에 정계에 진출한 서른 살의 정치 초년생 고산은, 「병진소(丙辰疏)」라는 상소를 통해 권력의 심장부를 향해 공격의 포화를 퍼붓는다. 권력의 핵심에 있던 중신들이나 예민한 정치적 사안을 지나치지 않을 만큼 성역 없는 공세를 취한 고산은, 이 상소 덕분에 전국적 명망을 얻지만 결국 정계에 진출하자마자 유배지로 향하는 신세가 된다. 그리하여 혈기 방장한 30대에 7년간이나 유배 생활을 하는데, 이것이 소모적인 것만은 아니었다. 그가 이후의 정치 역정에서 보여준, 불굴의 기개를 견지하는 저력은 어쩌면 이때 다져졌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물론 그에게도 정계에서의 화려한 시절은 있었다. 마흔두 살에 다시 과거에 응시해 장원급제한 고산은 시험관이었던 이조판서 장유(張維)에게 ‘동국 제일의 책문(策文)’이라는 평을 들으며 화려하게 정계에 복귀한다. 그는 장유의 추천으로 봉림?인평 두 대군의 사부로 임명되었고, 6년간 대군의 사부로서 사제 간의 각별한 정을 나눈다. 그러나 다시금 추문에 휘말리며 유배를 떠나고, 이후 오랜 은거 생활에 들어간다.
이후 고산의 나이 예순여섯 살에 대군에서 왕으로 등극한 효종의 배려로 다시 정계에 진출하지만, 정쟁의 회오리 속에서 다시 한 해 만에 고향으로 돌아온다. 그리고 효종의 사후 제1차 예송논쟁에서 과격한 정치공세를 퍼부은 끝에 함경도로 유배를 떠난다. 공교롭게도 정치 초년생 시절에 「병진소」를 올린 후 귀양을 갔을 때도 7년이었고, 말년에 예송논쟁으로 귀양 갔을 때에도 7년여의 시간이었다. 정계에 데뷔했을 때부터 삶의 마지막 정치 인생까지 제 뜻을 직선적으로 펼친 고산의 삶에서 유배는 마치 수미쌍관법처럼 앞뒤로 맞물려 있는 셈이다.
고산의 시에 대한 평가는 후대 사람들의 것인바, 당대에 고산은 지금까지 언급한 정치사적 측면에서 굴곡 많은 논쟁적 인물로 기억되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러한 고산은 과연 어떻게 우리말로 시를 창작하는 세계에 침잠해 들어간 것일까. ‘자연미의 시인’이라는 찬사와 ‘격정에 찬 정치 논객’이라는 이질적인 두 면모는 어떻게 한 인물 속에 녹아들 수 있었을까. 바로 이 지점이 ?윤선도 평전?을 관통하는 주요한 문제의식이다.
우리 시조사의 독특한 미학을 창출해낸 고산,
「산중신곡」과 「어부사시사」를 중심으로 살펴본 그의 풍요로운 시 세계
이번 평전에서는 고산이 창작한 자연미 넘치는 시들을 찬찬히 분석하고 있는데, 형식주의적인 내재적 비평의 잣대만을 들이밀지 않는다. 어린 시절부터 죽기 직전까지 창작한 주요 시편들을 살펴보되, ‘인간 고산’의 면모를 최대한 개입시킨 해석을 끌어냄으로써 시와 인간이라는 두 텍스트를 동시에 함께 읽어내고 있는 것이다.
특히 이번 평전에서 주목한 시들은 「산중신곡(山中新曲)」과 「어부사시사(魚夫四時詞)」에 담긴 것들이다. 「산중신곡」은 고산이 50대에 해남 금쇄동에 기거하며 창작한 일련의 시조들이고, 「어부사시사」는 보길도에 기거하던 60대에 고산 특유의 미적 질감에 힘입어 탄생한 절창으로, 이들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텍스트이자 고산 시의 절정이라 할 만한 작품들이다.
산수시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했다고 평가받는 「산중신곡」에는 「만흥(漫興)」, 「우후요(雨後謠)」, 「일모요(日暮謠)」 등의 작품이 수록되어 있는데, 그중 최고는 「오우가(五友歌)」이다. 「오우가」는 전원의 일상에서 획득한 고산의 유려한 감수성이 그대로 녹아 있는 시조로 한국 고전시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고산은 자연물에서 성리학적 이치를 따지는 도학자의 근엄한 태도를 버리고 그야말로 친근하고도 믿을 만한 벗을 발견하는 기쁨으로 우리를 나아가게 한다. 수(水)?석(石)?송(松)?죽(竹)?월(月)이라는 다섯 벗을 통해 이념과 도의 불변성이 아닌 우정과 의리의 불변성을 노래했기에, 이는 일반인들이 반가워하고 좋아할 수 있는 미덕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다.
강호가도의 미적 잠재력을 정점까지 끌어올린 「어부사시사」는 춘하추동 각 계절마다 10수씩 총 40수로 구성된 시조이다. 이 시조의 방대한 양을 보면, 어부의 시선으로 사계절의 순환을 깊고 넓게 표현하겠다는 고산의 야심찬 의도가 엿보인다. 여음을 비롯한 다양한 운율의 활용과 함께, 변화무쌍하게 역동적으로 강호자연을 표현하는 이미지들은 이 시의 가장 뚜렷한 미적 포인트라 할 수 있다. 여기에 더해진 흥취의 미학은 당대의 성리학적 감수성을 뛰어넘는 우리 시조사의 성취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처럼 자연을 노래한 시편들에서도 고산의 무의식을 장악하고 있는 강호 너머의 현실이 언뜻언뜻 드러난다. 이 시들이 고산이 정계에 있던 시기가 아니라 고향에 은거하던 시기에 창작된 것도 주목할 만하다. 그간 고산이 성취한 최고봉으로 상찬되어왔던, 금쇄동과 보길도에서 창작된 시편들에서 자연의 아름다움과 그것을 즐기는 시적 자아의 흥취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념을 오롯이 실현하려는 견결한 의식을 읽어내는 것이 바로 이 평전을 통해 고산의 시를 다시 읽는 즐거움이리라. 그간 박지원, 임꺽정 등 시대를 대표하는 고전 인물들을 발굴하여 현재의 시각으로 재해석해온 우리 시대 최고의 고전평론가 고미숙은 윤선도의 인생역정을 통해 세상과의 불화를 자신만의 미학 창출의 원동력으로 삼은 ‘인간 고산’의 면모를 되짚어본다. 독창성과 이치에 대한 수호정신을 견지함으로써 빛나는 작품들을 남긴 고산의 삶을 ?윤선도 평전?을 통해 만나보자.
▣ 작가 소개
저 : 고미숙
Ko Mi Sook,高美淑
고전평론가로, 1960년 강원도 정선군 함백 출생이다. 가난한 광산촌에서 자랐지만, 공부를 지상 최고의 가치로 여기신 부모님 덕분에 박사학위까지 무사히 마쳤다. 대학원에서 훌륭한 스승과 선배들을 만나 공부의 기본기를 익혔고, 지난 10여 년간 지식인공동체 ‘수유+너머’에서 좋은 벗들을 통해 ‘삶의 기예’를 배웠다. 덕분에 강연과 집필로 밥벌이를 하고 있다. 2011년 10월부터 ‘수유+너머’를 떠나 감이당(www.kungfus.net)에서 활동하고 있다. 감이당은 ‘몸, 삶, 글’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인문의역학’을 탐구하는 ‘밴드형 코뮤니타스’다. 그동안 낸 책으로는, 열하일기 삼종세트 『열하일기, 웃음과 역설의 유쾌한 시공간』, 『삶과 문명의 눈부신 비전 열하일기』, 『세계 최고의 여행기, 열하일기』(전2권)과 달인 삼종세트 『공부의 달인, 호모 쿵푸스』, 『사랑과 연애의 달인, 호모 에로스』, 『돈의 달인, 호모 코뮤니타스』그리고 『한국의 근대성, 그 기원을 찾아서』, 『이 영화를 보라』, 『임꺽정, 길 위에서 펼쳐지는 마이너리그의 향연』, 『동의보감, 몸과 우주 그리고 삶의 비전을 찾아서』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발간의 글 _‘한겨레역사인물평전’을 기획하며 (정출헌|부산대학교 한문학과 교수, 점필재연구소 소장)
머리말 _자연미의 시인이자 정치 논객, 극단적 대비로 가득한 윤선도의 삶 읽기
1장 고산의 진면목을 찾아서
남도 답사 일번지, 해남에서 보길도로|고산, 그 복합적 초상
2장 청년기의 삽화들
왜란이 발발, 그리고 작은아버지 댁으로의 입양|해남 윤씨 가문의 중흥자, 어초은 윤효정|호남 사림파의 거물, 귤정 윤구|생부와 양부, 두 아버지 슬하에서|‘고고한’ 청년기, 고산의 작품들|유학의 실천 지침, 『소학』에 심취하다|고산의 학문적 개성, 박람강기|해남 땅과의 조우, 「남귀기행」
3장 정치적 노정, 그 상승과 하강의 파노라마
광해군 시대, 붕당의 소용돌이가 시작되다|「병진소」가 초래한 파란|유배지에서 시작된 시조와의 만남|해배의 권유를 물리치다|인조반정, 정계의 대반전|해배 이후의 방황|득의의 시절, 중앙 정계에 나아가다|좌천, 그리고 자연으로의 은거|호란의 발발과 경과|병자호란을 계기로 부용동을 발견하다|전란 후유증으로 인한 두 가지 스캔들|해배 후에 다가온 또 다른 슬픔
4장 산수시의 새로운 경지, 「산중신곡」
세상만사 온통 시름뿐!|하늘이 선사한 비경, 금쇄동|산림과 현실 사이의 동요, 「만흥」 여섯 수|산수시의 다양한 파노라마|낮고 부드러운 목소리, 「오우가」의 세계|「산중속신곡」, 그리고 몇 편의 여음
5장 부용동에서 꽃핀 강호미학의 정점, 「어부사시사」
환갑을 넘어서서|봉림대군, 왕위에 등극하다|「어부사시사」의 산실, 부용동 원림|「어부가」, 동아시아의 전통으로 자리하다|조선에 뿌리내린 「어부가」의 계보|현실은 끊임없는 미련이어라|참을 수 없는 흥취의 미학
6장 노년의 불꽃, 예송논쟁
다시 정계의 소용돌이 속으로|‘정개청 복권’을 둘러싼 회오리바람|효종의 죽음, 그리고 산릉 논쟁|제1차 예송논쟁|패배, 그리고 삼수로의 유배|해배, 그리고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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