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 -한국사의 새로운 이해를 찾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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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미야지마 히로시
출판사항너머북스, 발행일:2013/01/18
형태사항p.435 국판:22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94606170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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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소농사회론’과 40년 한국사 공부의 집대성
“한·중·일 역사 비교를 통해 찾은 한국사에 대한 새로운 이해”

『양반』의 저자이자 궁도박사(宮嶋博史)로 잘 알려진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성균관대학 동아시아학술원, 도쿄대학 명예교수), 그가 처음으로 제창한 이론이자 동아시아사와 한국사의 서유럽모델론 비판인‘소농사회론’에 대한 자신의 생각과 40년 한국사 연구 성과를 한글로 써서 집대성한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를 펴냈다.

식민지근대화론자인가? - ‘도쿄에서 서울로’ 그의 앎을 향한 이력

식민지근대화론자라는 오해를 받으면서도 도쿄대학 교수를 박차고 성균관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화제가 된 바 있는 것처럼 미야지마 히로시는 한국사와의 인연이 남다른 역사학자이다. 이 책의 1부는 ‘소농사회론’이란 담론을 전후한 문제의식의 변화과정에 관한 경위, 즉 역사학자로서 그의 연구이력서에 해당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학원분쟁’(60년대 말부터 일본에서 크게 일어난 학생운동)이 휩쓸 당시 교토대학을 다닌 그가 한국사 공부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부락문제연구회’라는 서클활동에서 만난 재일한국인(조선인)과 그에 대한 차별문제였다고 한다. 대학원을 진학하자 그의 주임교수는 “미야지마 군, 한국사를 공부하는 것은 좋지만 대학에 취직할 것은 단념하게.”라는 말에 충격을 받았다는 기억에서부터 한국어 문법과 발음을 배우던 이야기, 그리고 그의 첫 성과이자 저작인 『조선토지조사사업사의 연구』(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1991년)가 나오기까지 교토에서 도쿄로, 도쿄에서 다시 서울로 이어진 그의 앎을 향한 이력이 마치 지도에 그린 듯이 선명히 다가온다.

“당시 규장각은 서울대 도서관 1층에 있었는데 양안을 보려면 마이크로필름을 빌려가지고 4층으로 가서 봐야 했다. 내가 한국에 온 그 무렵에는 학생운동이 활발해서 도서관 앞 광장에서는 매일같이 집회가 있었다. ‘아침이슬’ 노래가 끝나면 곧 데모가 시작되고 경찰이 최루탄을 쏘는 그런 나날이었다. 도서관 안에서 그 모습을 보면서 나는 왜 이런 연구를 하고 있는가를 반복해서 자문할 수밖에 없었다. 월드컵 응원, 촛불시위가 있을 때면 1987년 6월의 그 열기가 다시 떠오른다.”

첫 책이 출판된 직후인 1991년 4월 그가 다시 한국에 왔을 때 흥미롭게도 국내학계는 그를 ‘식민지근대화론자’로 각인한다. “오자마자 내 책에 대해 한국학계로부터 많은 비판을 받았다. 비판의 주된 내용은 토지조사사업을 근대화를 위한 사업으로 평가한 내 입장에 대한 것이었다. 이런 비판은 나에게 그야말로 뜻밖이었다.”

미야지마 교수에게 덧씌워진 ‘식민지근대화론’이란 간단히 말해 일본의 식민통치가 한국 근대화를 이룩한 원동력이었다는 일제미화론이다. 미야지마 교수의 반론은 이렇다.

“토지조사사업이 한국의 토지제도를 근대화시켰지만 그것은 일제의 혜택이 아니라 조선시대에 이미 수조권적 토지 지배가 해체과정에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며 한국사학계의 주류적 견해인 내재적 발전론에 입각하여 토지조사사업을 토지수탈을 위한 것이라고 파악하는 것은 자기모순이라 꼬집는다. 왜냐하면 조선후기 부농형의 토지소유가 발전했다면 토지조사사업이 시행되었던들 쉽게 토지를 약탈당했을 리 없을 것이고, 사업 자체가 엄청난 어려움을 겪었을 것이라 보는 것이다. “내가 보기에 토지조사사업으로 인해 농민들이 토지를 대량으로 상실했다는 견해만큼 당시의 농민을 우습게 보는 시각도 없다. 이러한 견해가 일제를 미화한 것이라는 비판에 대해서는 지금도 도저히 납득하기 힘들고, 내 책을 제대로 읽었는지 의심스러울 뿐이다.”

미야지마 교수의 입장을 정리하면, 일제의 토지조사사업이 한국 토지제도를 근대화시킨 것은 분명하지만 그러한 토대는 조선시대 토지제도 자체가 근대화에 도달할 만큼 이미 성숙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소농사회론’의 결정판,
“동아시아 전통사회의 모습과 근대 이행과정의 특질을 밝히는 것”

과연 그는 ‘일제미화론자’인가?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에는 그를 향한 각종 비판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어떠하며, 역사학자로서 구축하려는 역사상이 무엇인지를 잘 집약하고 있다. 이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동아시아 소농(小農)사회론’이다.

1994년 「동아시아 소농사회론의 형성」이란 논문으로 처음 제기한 이 담론의 목적이 “동아시아 전통사회의 모습과 근대 이행과정의 특징을 파악하는 것”이라는 미야지마 교수는 “얼핏 보면 시대와 지역에 관계없이 소농사회는 극히 보편적인 존재라고 생각되지만 17~18세기의 동아시아에서처럼 소농이 압도적인 비중을 차지하는 사회는 오히려 예외적”이라 한다. 소규모 자급자족농민들이 밀집해 살고 있던 동아시아는 대규모 부농 중심의 서구와는 다른 형태의 사회였으며, 그래서 근대화의 길도 달랐다. 중국에서는 명대에, 한국과 일본에서는 17세기경에 성립한 동아시아 소농사회는 단순히 농업 기술상의 변혁이나 농촌 구조상의 변화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고 강조한다.

“거시적으로 보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동아시아 사회구조의 특질은 이 소농사회의 성립과 더불어 생겨난 것이며, 이러한 의미에서 동아시아의 역사를 소농사회의 성립 전후로 크게 둘로 나눌 수 있을 정도로 획기적인 변화였기 때문이다. 소농사회의 성립을 전후로 하는 동아시아 사회구조의 대변동에 비한다면 전근대로부터 근대로의 변화는 오히려 상대적으로 작은 것이었을 뿐 아니라 동아시아의 근대는 실로 많은 것을 소농사회의 유산에서 힘입었다고 볼 수 있다.”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는 저자가 2002년 도쿄대학에서 성균관대학으로 자리를 옮긴 이후 지난 10년 동안, 조선시대 과거시험의 양상, 그리고 이와 깊이 결부되어 있었던 양반의 존재양식, 나아가서 신분제의 독특한 양상, 토지소유와 신분과의 분리, 인구사와 가족사 등에 이르기까지 중국과 일본과의 비교를 통해 조선시대의 특성을 규명한 책이다. 다시 말해 ‘소농사회론’의 각론까지 집대성하여 담아낸 책이라 할 수 있다. 이 책을 관통하는 저자의 문제의식과 특징은 다음과 같다.

첫째, 한·중·일 동아시아 3개국의 근대는 ‘소농’을 기반으로 한 사회라는 것이다. 중세유럽의 영주계층이나 무굴제국 시기 인도의 자민다르(페르시아어로 ‘토지소유자’라는 뜻)와는 달리 소농에 대비되는 거대 토지귀족이 없다는 점을 동아시아 근대의 가장 큰 특징으로 꼽는다.

둘째, 따라서 소농사회론은 ‘고대-중세-근대’라는 시대구분을 무너뜨린다. 자연히 서구사회에서 근대의 이행 전단계인 봉건제가 동아시아에는 없었다는 봉건제 부재론’으로 연결된다. 3분법은 철저히 서구적 기준인데, 그동안 동아시아 근대의 기준으로 고민 없이 고스란히 베껴왔다는 것이다.

셋째, 가장 중요한 특징으로 주희의 사상, 즉 주자학을 동아시아 근대의 수은지로 본다는 점이다. 사회의 토대인 ‘소농’을 어떻게 통치할 것인지의 관점에서 볼 때 주자학은 세계사적으로 비교해 보아도 가장 선진적인 이론 체계로 종래 부정적으로 평가해왔던 이 역사적 경험을 재평가하자고 한다.

“특권적 토지소유가 없는 것이야말로 양반과 조선시대의 실상을 밝히는 핵심”

『미야지마 히로시, 나의 한국사 공부』는 동아시아라는 세계사에서 본 조선시대와 한국사의 특징을 밝히는 책이다. 저자는 조선시대를 봉건사회로 보고, 조선후기를 봉건제 해체기로 파악하는 한국역사학계의 주류 견해인 내재적 발전론에 대해 비판적이다. 한국의 근대는 19세기 개항 때부터가 아니라 소농사회가 형성되는 16세기부터이기 때문이다. 경영형 부농의 출현과 신분제 해체를 골간으로 한 자본주의 맹아론에 대해서도 비판적이다. 지배층으로서 양반을 서구의 귀족과 동일시 한 논리로 조선시대의 발전 모델을 서유럽에서 찾으려 한 이데올로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한다.

조선시대 양반은 서유럽의 경우처럼 토지귀족이자 특권신분이었을까? 이 책에서는 조선시대의 양안(量案), 명·청시대의 어린도책(魚鱗圖冊), 도쿠가와시대의 검지장(檢地帳) 등 한중일 3국의 토지대장을 비교 검토한다. 미야지마 교수는 조선후기 양안(量案)과 호적대장에 양반과 평민이 나란히 토지소유자로 기재되어 있음에 주목하면서 토지귀족이 없었다고 단언한다. 이러한 사정은, 다시 말해 토지귀족 부재 현상은 세부적 차이가 있을지언정 큰 틀에서는 중국이나 일본도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특권적 토지소유가 없는 것, 이것이야말로 양반과 조선시대의 실상을 밝혀내는 핵심이라 지적한다.

따라서 저자는 ‘양반’을 과연 신분이라는 개념으로 파악할 수 있는지에 대해 회의적이다. 양반이란 지위는 국가의 법제적 규정도 아니고, 양반으로서의 근거나 양반들끼리의 격(格)의 상하를 결정하는 기준도 없었기에, 양반계층 내부의 경쟁이 격렬해질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의 ‘조선시대 신분제 논쟁’과 함께 ‘양반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등의 논문을 통해 중국의 사대부와는 다른 조선시대 양반이라는 특수한 성립과정을 살피는 가운데 조선왕조가 500년이란 오랜 기간 동안 존속할 수 있었던 것도 양반의 존재 양식이 크게 작용한 것이라 말한다.

무엇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한국, 중국, 일본의 역사 비교를 통해 토지소유와 국가체제, 신분제, 지배계층, 가족과 친족 등에 이르기까지 조선시대 한국의 역사를 새로운 각도에서 밝히고 있다. 이는 경제사연구에 중점을 두고 사상사까지 연구를 확장해온 역사학자로서 미야지마 교수의 연구이력이 아니고서는 거의 불가능한 성과가 아닐까?

“한국의 가족, 친족 결합의 특징을 동아시아 3국의 비교라는 관점에서 자리매김 해보면, 일본의 명사적 관계 그리고 중국의 형용사적 관계의 중간적 성격을 가졌다고 하겠다. 남자의 균분 상속이라는 형용사적 관계를 한편으로 유지하면서, 다른 한편으로 장남의 우월적 지위를 인정하는 명사적 관계를 중시한 독특한 가족, 친족 결합이었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230쪽

동아시아의 유교적 근대, 동아시아 역사상의 근본적인 패러다임의 전환

이 책의 후반부는 주로 근대 개항기를 대상으로, 소농사회로서의 동아시아가 서구의 근대와 만나는 과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에 관한 글이다. 특히 이 책 11장의 ‘유교적 근대’라는 개념은 근대의 개념 자체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을 주장하는 것으로, 미야지마 히로시 교수가 소농사회론 이후 도달한 현 단계의 획기적 수준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 요지는 다음의 다섯 가지이다.

첫째, 근대라는 개념은 본래 현재와 직결되는 시대라는 의미이며, 시대구분에서 가장 핵심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은 근대 이전과 근대의 구분이라는 점이다. 둘째, 이제까지의 패러다임에 의거하여 중국의 역사와 현재를 파악하는 것은 불가능하며, 유교적 근대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에 의해서 다시 파악해야 한다는 점이다. 셋째, 유교적 근대의 핵심에 있는 중국적 근대를 전형적으로 보여주는 것으로 주희의 사상이 지닌 근대성을 이해해야 한다는 점이고, 넷째, 중국적 근대는 명대에 확립되었지만, 그 기본구조는 19세기 이후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지되고 있다는 점이다. 다섯째, 중국적 근대의 영향을 깊이 받은 동아시아 지역들의 역사도 유교적 근대라는 개념에 기초해서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한다는 점 등이다.

저자는 서구적 근대가 상대화되고, 유교적 근대라는 개념과 마찬가지로 이슬람적 근대, 나아가 인도적 근대 등 다양한 근대 개념이 병존하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라면, 그로부터 근대를 넘어서는 새로운 이념과, 그 이념에 기초한 사회를 구상할 수 있는지의 여부에 인류의 미래가 걸려 있다는 생각을 제시한다.

“명대 이후를 근대로 보고, 서구의 근대와 대등한 것으로 이해한다면, 근대 중국에 관해서도 완전히 다른 상을 그려낼 수 있다. 중국에서 서구적 근대의 수용이 그토록 어려웠던 것은 결코 중국이 뒤쳐졌기 때문은 아니었다. 중국에는 별도의 근대가 이미 존재해 있어서, 공동체 등 중간단계의 존재를 부정한 중국의 근대가 공동체를 기초로 한 서구의 근대를 받아들일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서구적 근대가 글로벌리제이션이라는 이념 아래 모든 중간단체, 나아가서는 국민국가마저도 부정하는 방향으로 번져가는 가운데 벌거벗은 개인을 기초로 하여 사회질서를 어떻게 형성해나갈지의 문제가 새로이 떠오르고 있다. 그러나 사실 이는 중국이 천년 이상 씨름해 왔던 과제였다.”- 343쪽

저자의 말

‘소농사회론’은 조선시대를 봉건사회로 보고 조선후기를 봉건제 해체기로 파악하는 내재적 발전론에 대해서도 비판적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내재적 발전론도 전전(戰前)의 일본 봉건제론과 같이 유럽모델을 한국사에 적용한 것이고, 일본 봉건제론이 이데올로기적인 것이었던 것과 마찬가지로 내재적 발전론도 이데올로기적인 것이기 때문이다.

▣ 작가 소개

저 : 미야지마 히로시
宮嶋博史
1948년 일본 오사카에서 출생하여 교토대학 문학부를 졸업했고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문학연구과 석사 및 박사과정을 수료했다(동양사학 전공). 이후 도카이(東海)대학 문명학부 강사, 도쿄도립대학 인문학부 조교수,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교수를 거쳐 2002년부터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 교수로 재직 중이며, 2010년부터는 도쿄대학 명예교수도 맡고 있다. 그동안 한국의 조선시대와 근대시기의 경제사, 사회사, 사상사 분야에 집중적인 연구를 하했고 동시에 한국사의 특징을 동아시아적 시야에서 파악함으로써 한국 학계와 외국 학계의 소통을 위해 고민해왔다. 주요 저서로 『朝鮮土地調査事業史の硏究』(1991년, 도쿄대학 동양문화연구소), 『兩班』(1995년, 중공신서, 한국어판: 『양반』 노영구 옮김, 1996년, 도서출판 강), 『明淸と李朝の時代』(공저, 1998년, 중앙공론사, 한국어판: 『조선과 중국 근세 오백년을 가다』 김현영, 문순실 옮김, 2003년, 역사비평사)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1부 동아시아사의 서유럽모델론 비판, ‘소농사회론’

1장 ‘소농사회론’을 구상하기까지
나의 연구 이력, ‘도쿄에서 서울로’
식민지근대화론자라는 뜻밖의 오해
‘소농사회론’이라는 가설

2장 동아시아 소농사회의 형성
주자학과 소농사회
소농사회의 형성과정
소농사회, 동아시아 역사의 분수령

3장 ‘소농사회론’그 이후의 공부
호적대장과 역사인구학
동아시아 속의 한국과 일본
나의 연구 정리

2부 동아시아에서 본 조선시대

4장 사대부와 양반은 왜 토지귀족이 아닌가
양안, 검지장, 어린도책 비교
한ㆍ중ㆍ일 토지대장의 공통성
특권적 토지 지배의 소멸

5장 조선시대 신분제 논쟁
왜 신분인가?
중국과 일본의 신분제 유형
양반은 신분인가?

6장 양반은 어떻게 만들어졌나?
지배계층의 정의
과거시험, 양반으로의 도약대
문과급제자, 특정의 소수가문이 독점했을까?
문중별 문과합격자 분석
조선시대 지배계층 재생산 메커니즘

7장 한국의 역사인구학은 가능한가?
인구사와 역사인구학
외국의 역사인구학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가?
한국 역사인구학의 과제
8장 사회적 결합에서 본 동아시아
사회적 결합을 비교하는 의미
가족, 친족 결합의 비교
조선시대 ‘계’와 사회적 결합의 특징

3부 동아시아사의 가능성

9장 민족주의와 문명주의, 3ㆍ1운동에 대한 새로운 인식
「독립선언서」
조선민족대동단의 「일본국민에게 고함」
일본의 태도

10장 ‘화혼양재’와 ‘중체서용’의 재고
『미구회람실기』와 ‘항해술기’에 대해
일본, 중국과 구미의 만남 그리고 그 비교
‘화혼양재’와 ‘중체서용’에서 ‘동도서기’로

11장 유교적 근대로서의 동아시아 근세
‘동아시아 근세론’의 문제점
주희와 중국적 근대
동아시아의 유교적 근대

12장 역사학자의 소설읽기, 황석영의 소설 『심청』
화폐와 여성
19세기 후반이라는 시기 설정
동아시아에서 구미의 존재를 어떻게 자리매길 것인가
왜 심청인가?
현실은 소설보다도 더욱 복잡하고 중층적이다

4부 21세기 동아시아학과 한국학을 위한 제안

13장 동아시아세계 속의 한국학
‘지역연구’ 비판
동아시아사 연구에서의 유럽 중심주의
동아시아사 속의 한국사를 위하여

14장 21세기 동아시아 연구와 대학의 역할
동아시아 각국의 대학 편성, 그 문제점
전통과의 단절을 왜 문제시해야 하는가?
전통과 근대의 이분법을 넘어서

참고문헌
미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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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 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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