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역사 도시, 서울
서울은 참으로 오랫동안 우리 역사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해온 도시이다. 날마다 새로운 건물과 빌딩들이 올라가고 셀 수 없이 많은 차들로 붐비는 역동적인 현대 도시이면서도, 조금만 눈을 돌리면 오랜 역사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암사동 일대의 선사시대 유적부터 시작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가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던 삼국시대를 거쳐, 각각 400년과 500년간 지속된 고려와 조선 왕조의 유산까지, 지금의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이야기들과 사실들로 가득 차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가장 현대적인 도시, 바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다.
조선의 개국과 신도시 한양의 설계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할 뿐 아니라 한강을 낀 비옥한 평야 지대가 펼쳐진 서울은 일찍부터 많은 정치 집단들이 눈독을 들인 공간이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한강 유역을 차지했을 때 비로소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고, 개경에 수도를 둔 고려도 여러 차례 천도를 계획했을 정도로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서울이 오늘날의 모습과 위상을 갖추게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조선 왕조 500년의 역사로부터 비롯되었다.
새 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에게 가장 시급했던 과제는 개경을 중심으로 한 기존 세력을 누르고 새로운 권력 기반을 세우는 것이었다. 여러 후보지가 물망에 올랐지만 조선의 개국 세력들이 선택한 곳은 결국 한성, 바로 오늘날의 서울이었다. 조선을 세운 이들은 성리학적 정치 이념에 따라 수도 한양의 공간을 새롭게 설계하였다. “제왕은 북좌남면하여 만백성을 굽어본다”는 『주례』의 원칙에 따라 도성 북쪽 백악산(북악산) 아래 경복궁을 창건하고, 그 앞에 조정을, 뒤에 시장을 두었다. 또한 좌묘우사의 원칙에 따라 궁궐 좌측에는 종묘를, 우측에는 사직단을 설치하였다. 제후국의 대로는 마차 일곱 대가 지날 수 있는 너비로 한다는 제후칠궤의 원칙에 따라 육조거리도 설치하였다. 아울러 성균관과 문묘, 왕릉 등을 조성하여 왕조의 통치 이념을 만방에 과시하는 한편, 새로운 지배 체제의 안정화를 꾀하였다.
한편 한성을 가로질러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청계천을 경계로 점차 북쪽은 북촌, 남쪽은 남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공간으로 지금의 계동, 재동, 가회동, 안국동과 길 건너 경운동, 관훈동, 운니동 일대를 이르며, 비교적 부유하고 권세 높은 양반 관료들이 모여 살았다. 남촌은 중구 필동을 중심으로 한 남산 기슭 일대로, ‘딸깍발이 샌님’으로 불렸던 가난한 선비들과 관청의 하급관리 및 서민층이 주로 살았다. 따라서 북촌은 양반문화가 중심을 이루었고, 상대적으로 남촌은 서민문화가 중심을 이루었다.
격동의 근현대사와 경운궁, 정동, 북촌
일본 제국주의와 서구 열강의 침략이 본격화한 19세기 말 서울은 역사의 새로운 격랑과 마주하게 된다. 이후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뒤바꾼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경운궁(덕수궁)과 정동, 북촌 일대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개화파 신진 관료들이 모여 살았던 북촌은 갑신정변(1884년)의 무대였을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각종 정치운동의 배후지로서 기능하였다. 외국 공사관들이 하나둘 자리 잡기 시작한 정동 일대는 외세 침략의 전초기지이자 이화학당, 배재학당, 손탁호텔, 정동교회 등 서구 문물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창구 역할을 하였다.
한편 아관파천(1896년) 이후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경운궁의 면모를 일신하는 등 계몽군주로서 확고한 위상을 세우고자 했으나, 일제의 치밀한 방해와 노골적인 식민 야욕에 막혀 꺾이고 말았다. 고종황제와 운명을 같이한 경운궁도 연이은 대화재의 참화를 겪음은 물론, 일제의 편의와 도시 계획에 밀려 조각조각 잘려나갔다.
식민도시 경성의 탄생과 독립운동의 발자취
1905년(을사년) 11월 17일 대한제국은 ‘한일외교권위탁조약’(이른바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은 잃었다. 1910년의 한일병합조약으로 일제에 ‘병합’되었다고는 하지만, 을사조약으로 이미 반쯤은 속국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라 잃은 백성들의 스산한 마음은 ‘을씨년스럽다’는 말로 남아 당시의 분위기를 전해주고 있다.
경술국치 이후 한성은 대한제국의 수도에서 경기도 행정 중심지 경성으로 격하되었다. 경성부 청사도 옛 육조거리가 아닌 남촌에 설치되었다. 현재의 신세계 백화점 자리에 첫 번째 경성부 청사가 들어섰는데, 이는 1896년 일본 영사관을 설치하였던 건물을 이어 사용한 것이다.
경성의 행정은 이후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에게 맞춰졌다. 전차와 철도가 놓이고 도로 확장 등 새로운 도시계획이 세워진 것도 모두 일제 식민 통치를 위한 조치였다. 옛 조선의 모든 기구들이 해체되고 국가 상징이 지워진 자리에 식민 지배를 위한 기구들(조선총독부, 조선은행, 동양척식회사, 경찰 등)과 상징들(조선신궁, 신사, 일본 사원 등)이 채워졌다. 일찍부터 일본인들이 자리 잡은 남촌(현재의 명동, 충무로) 일대가 경성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올랐으며, 일본의 국조를 모신 남산의 조선신궁이 성역화되었다.
한편 일제강점기 북촌은 독립운동과 각종 민족운동의 요람으로 거듭났다. 1919년 삼일운동의 거사를 준비한 곳도 북촌이었고, 1920~1930년대 문화운동과 교육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도 북촌이었다. 일제에 대한 우리 민족의 저항이 가장 뜨거웠던 장소는 서대문형무소였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의 가장 극악한 탄압과 고문이 행해진 곳이자 독립운동가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코스와 같았다.
알기 쉽게 풀어 쓴 서울 답사 안내서
서울은 2천 년 역사를 지닌 우리의 수도이자 한국사의 거대한 보고로서, 선조들의 삶과 문화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체험 학습의 장이다. 조선 왕조의 심장이었던 경복궁에서 종묘사직과 성균관 그리고 왕릉까지, 격동의 근현대사가 펼쳐진 경운궁에서 정동과 북촌을 거쳐 일제의 상흔이 뚜렷한 남산 일대와 서대문형무소까지, 서울 곳곳에는 우리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는 오랜 기간 답사와 강의를 통해 우리 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 특히 2000년부터는 매년 방학 때마다 교사들을 상대로 ‘답사로 풀어보는 서울의 역사와 문화’라는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다. 비단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는 이들뿐 아니라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알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쉽게 읽고 직접 찾아가 볼 수 있게 도움을 주고자 이 책을 펴냈다. 밟아서 조사한다는 ‘답사’의 의미 그대로, 역사의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두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생생한 역사 공부를 통해 과거에서 현재, 다시 미래로 이어지는 살아 있는 서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문동석
서울여자대학교 사학과 교수. 한성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백제 정치사 연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교육대학교, 한성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고 한신대학교학술원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 분과장(2001~2002년), 『역사와 현실』 편집위원(2003~2006년)으로 활동하였고, 현재 한국고대사학회 편집위원 및 백제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 『백제 지배세력 연구』, 『초등 역사교육』, 『문화로 보는 우리 역사』가 있으며 이외에도 다수의 공저와 연구 논문을 저술하였다.
▣ 주요 목차
저자 서문
서론_서울 2천 년의 시간 여행
1부 조선시대의 서울
1장 조선 제1의 정궁, 경복궁
1. 조선의 개국과 경복궁
태조의 한양 천도 / 조선 왕조와 경복궁
2. 경복궁의 공간 구조
삼문 구역 / 치조 구역 / 내조 구역 / 외조 구역 / 동궁동조 구역 / 후원 구역
*더 알아보기: 일제강점기의 경복궁
2장 종묘와 사직
1. 조선의 개국과 종묘
종묘의 유래와 조선시대의 종묘 / 종묘 정전 양식의 변천
2. 종묘의 공간 구성과 제례
진입 및 재궁 공간 / 제향 공간 / 영녕전
3.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
종묘제례의 종류와 절차 / 종묘제례악과 팔일무
4. 사직의 유래와 역사
5. 사직단의 공간 구성
진입 공간 / 제향 공간 / 부속 공간
*더 알아보기: 종묘와 사직의 수난
3장 성균관과 문묘
1. 성균관과 문묘의 유래
2. 문묘의 공간 구조
대성전 / 동무와 서무 / 묘정비각 / 부속 건물
3. 성균관의 연혁과 제도
성균관의 연혁/성균관 유생들의 생활과 문화
4. 성균관의 공간 구조
명륜당 / 동재와 서재 / 존경각 / 육일각
*더 알아보기: 성균관 주변의 유적
4장 왕조의 정통성을 드러내는 왕릉
1. 왕의 죽음부터 매장까지
2. 왕릉의 형식과 시설물
진입 공간 / 제향 공간 / 능침 공간
2부 근대 및 일제강점기의 서울
5장 근대화의 거친 물결, 정동과 경운궁
1. 정동과 경운궁의 역사
정릉동 행궁과 경운궁 / 정동과 외국 공사관 / 아관파천과 경운궁 / 경운궁의 해체
2. 경운궁의 공간 구조
외조 구역 / 치조 구역 / 내조 구역
3. 외국 공사관과 외세의 활동무대
러시아 공사관 / 손탁호텔 / 정동교회 ? 이화학당 ? 배재학당
4. 황제의 길, 원구단
대한제국의 선포 / 원구단의 해체
6장 격동의 근현대사와 북촌
1. 1884년 갑신정변과 북촌
갑신정변과 북촌 / 박영효의 집 / 일본 공사관 / 경우궁 / 박규수와 홍영식의 집
2. 1919년 삼일운동과 북촌
이종일의 집 / 김성수의 집 / 한용운의 집 / 중앙고보 숙직실과 손병희의 집
3. 1920∼1930년대 민족운동과 북촌
천도교 중앙대교당 / 천도교 중앙종리원
4. 해방 후 건국운동과 북촌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본부 / 여운형의 집 / 경기여자고등학교 강당
7장 일제 황민화 정책과 남산 일대
1. 일제 식민지 침략의 심장부
조선총독부 / 조선사편찬위원회 터 / 총독관저 터 / 헌병대사령부 터 / 정무총감관저 터
2. 일본 신사와 사원의 설립
조선신궁 / 한양공원 / 경성신사와 노기신사 / 박문사
3. 일제 침략에 대한 저항의 자취
와룡묘 / 장충단
8장 독립운동가들의 한이 서린 서대문형무소
1. 서대문형무소의 통제 시스템
기본 구조 및 공간 통제 / 동작 통제 / 협동 및 소통 통제 / 수형자의 하루 생활
2. 서대문형무소 역사 유적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 담장과 망루 / 옥사 / 유관순 독방 / 사형장
3. 주변 역사 유적
독립문 / 독립관 / 서대문 독립공원
참고문헌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역사 도시, 서울
서울은 참으로 오랫동안 우리 역사의 중심지로 자리매김해온 도시이다. 날마다 새로운 건물과 빌딩들이 올라가고 셀 수 없이 많은 차들로 붐비는 역동적인 현대 도시이면서도, 조금만 눈을 돌리면 오랜 역사의 흔적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암사동 일대의 선사시대 유적부터 시작하여 고구려, 백제, 신라가 치열한 쟁탈전을 벌였던 삼국시대를 거쳐, 각각 400년과 500년간 지속된 고려와 조선 왕조의 유산까지, 지금의 우리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알아야 할 이야기들과 사실들로 가득 차 있다.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고,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가장 현대적인 도시, 바로 대한민국의 수도 서울이다.
조선의 개국과 신도시 한양의 설계
한반도의 중심에 위치할 뿐 아니라 한강을 낀 비옥한 평야 지대가 펼쳐진 서울은 일찍부터 많은 정치 집단들이 눈독을 들인 공간이었다. 고구려, 백제, 신라 삼국은 한강 유역을 차지했을 때 비로소 전성기를 누릴 수 있었고, 개경에 수도를 둔 고려도 여러 차례 천도를 계획했을 정도로 중요하게 여겼다. 하지만 서울이 오늘날의 모습과 위상을 갖추게 된 가장 결정적인 계기는 조선 왕조 500년의 역사로부터 비롯되었다.
새 왕조를 세운 태조 이성계에게 가장 시급했던 과제는 개경을 중심으로 한 기존 세력을 누르고 새로운 권력 기반을 세우는 것이었다. 여러 후보지가 물망에 올랐지만 조선의 개국 세력들이 선택한 곳은 결국 한성, 바로 오늘날의 서울이었다. 조선을 세운 이들은 성리학적 정치 이념에 따라 수도 한양의 공간을 새롭게 설계하였다. “제왕은 북좌남면하여 만백성을 굽어본다”는 『주례』의 원칙에 따라 도성 북쪽 백악산(북악산) 아래 경복궁을 창건하고, 그 앞에 조정을, 뒤에 시장을 두었다. 또한 좌묘우사의 원칙에 따라 궁궐 좌측에는 종묘를, 우측에는 사직단을 설치하였다. 제후국의 대로는 마차 일곱 대가 지날 수 있는 너비로 한다는 제후칠궤의 원칙에 따라 육조거리도 설치하였다. 아울러 성균관과 문묘, 왕릉 등을 조성하여 왕조의 통치 이념을 만방에 과시하는 한편, 새로운 지배 체제의 안정화를 꾀하였다.
한편 한성을 가로질러 서쪽에서 동쪽으로 흐르는 청계천을 경계로 점차 북쪽은 북촌, 남쪽은 남촌이라 불리게 되었다. 북촌은 경복궁과 창덕궁 사이의 공간으로 지금의 계동, 재동, 가회동, 안국동과 길 건너 경운동, 관훈동, 운니동 일대를 이르며, 비교적 부유하고 권세 높은 양반 관료들이 모여 살았다. 남촌은 중구 필동을 중심으로 한 남산 기슭 일대로, ‘딸깍발이 샌님’으로 불렸던 가난한 선비들과 관청의 하급관리 및 서민층이 주로 살았다. 따라서 북촌은 양반문화가 중심을 이루었고, 상대적으로 남촌은 서민문화가 중심을 이루었다.
격동의 근현대사와 경운궁, 정동, 북촌
일본 제국주의와 서구 열강의 침략이 본격화한 19세기 말 서울은 역사의 새로운 격랑과 마주하게 된다. 이후 한국 근현대사의 흐름을 뒤바꾼 굵직굵직한 사건들은 경운궁(덕수궁)과 정동, 북촌 일대를 중심으로 펼쳐졌다. 개화파 신진 관료들이 모여 살았던 북촌은 갑신정변(1884년)의 무대였을 뿐만 아니라 일제강점기 독립운동과 각종 정치운동의 배후지로서 기능하였다. 외국 공사관들이 하나둘 자리 잡기 시작한 정동 일대는 외세 침략의 전초기지이자 이화학당, 배재학당, 손탁호텔, 정동교회 등 서구 문물이 가장 먼저 들어오는 창구 역할을 하였다.
한편 아관파천(1896년) 이후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하고, 경운궁의 면모를 일신하는 등 계몽군주로서 확고한 위상을 세우고자 했으나, 일제의 치밀한 방해와 노골적인 식민 야욕에 막혀 꺾이고 말았다. 고종황제와 운명을 같이한 경운궁도 연이은 대화재의 참화를 겪음은 물론, 일제의 편의와 도시 계획에 밀려 조각조각 잘려나갔다.
식민도시 경성의 탄생과 독립운동의 발자취
1905년(을사년) 11월 17일 대한제국은 ‘한일외교권위탁조약’(이른바 을사조약)으로 외교권은 잃었다. 1910년의 한일병합조약으로 일제에 ‘병합’되었다고는 하지만, 을사조약으로 이미 반쯤은 속국이 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나라 잃은 백성들의 스산한 마음은 ‘을씨년스럽다’는 말로 남아 당시의 분위기를 전해주고 있다.
경술국치 이후 한성은 대한제국의 수도에서 경기도 행정 중심지 경성으로 격하되었다. 경성부 청사도 옛 육조거리가 아닌 남촌에 설치되었다. 현재의 신세계 백화점 자리에 첫 번째 경성부 청사가 들어섰는데, 이는 1896년 일본 영사관을 설치하였던 건물을 이어 사용한 것이다.
경성의 행정은 이후 조선인이 아닌 일본인에게 맞춰졌다. 전차와 철도가 놓이고 도로 확장 등 새로운 도시계획이 세워진 것도 모두 일제 식민 통치를 위한 조치였다. 옛 조선의 모든 기구들이 해체되고 국가 상징이 지워진 자리에 식민 지배를 위한 기구들(조선총독부, 조선은행, 동양척식회사, 경찰 등)과 상징들(조선신궁, 신사, 일본 사원 등)이 채워졌다. 일찍부터 일본인들이 자리 잡은 남촌(현재의 명동, 충무로) 일대가 경성의 새로운 중심지로 떠올랐으며, 일본의 국조를 모신 남산의 조선신궁이 성역화되었다.
한편 일제강점기 북촌은 독립운동과 각종 민족운동의 요람으로 거듭났다. 1919년 삼일운동의 거사를 준비한 곳도 북촌이었고, 1920~1930년대 문화운동과 교육운동이 가장 활발하게 이루어진 곳도 북촌이었다. 일제에 대한 우리 민족의 저항이 가장 뜨거웠던 장소는 서대문형무소였다. 서대문형무소는 일제의 가장 극악한 탄압과 고문이 행해진 곳이자 독립운동가라면 반드시 거쳐야 할 필수코스와 같았다.
알기 쉽게 풀어 쓴 서울 답사 안내서
서울은 2천 년 역사를 지닌 우리의 수도이자 한국사의 거대한 보고로서, 선조들의 삶과 문화를 한눈에 살필 수 있는 체험 학습의 장이다. 조선 왕조의 심장이었던 경복궁에서 종묘사직과 성균관 그리고 왕릉까지, 격동의 근현대사가 펼쳐진 경운궁에서 정동과 북촌을 거쳐 일제의 상흔이 뚜렷한 남산 일대와 서대문형무소까지, 서울 곳곳에는 우리의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저자는 오랜 기간 답사와 강의를 통해 우리 문화와 역사를 알리는 데 앞장서 왔다. 특히 2000년부터는 매년 방학 때마다 교사들을 상대로 ‘답사로 풀어보는 서울의 역사와 문화’라는 강좌를 진행하고 있다. 이 책은 이러한 경험을 바탕으로 쓰였다. 비단 역사를 가르치고 배우는 이들뿐 아니라 우리 역사와 문화에 대해 알고자 하는 모든 이들이 쉽게 읽고 직접 찾아가 볼 수 있게 도움을 주고자 이 책을 펴냈다. 밟아서 조사한다는 ‘답사’의 의미 그대로, 역사의 현장을 직접 찾아다니며 두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 느끼는 생생한 역사 공부를 통해 과거에서 현재, 다시 미래로 이어지는 살아 있는 서울의 모습을 만날 수 있을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문동석
서울여자대학교 사학과 교수. 한성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백제 정치사 연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서울교육대학교, 한성대학교 등에서 강의하였고 한신대학교학술원 연구교수를 지냈으며, 한국역사연구회 고대사 분과장(2001~2002년), 『역사와 현실』 편집위원(2003~2006년)으로 활동하였고, 현재 한국고대사학회 편집위원 및 백제학회 편집이사를 맡고 있다. 저서로 『백제 지배세력 연구』, 『초등 역사교육』, 『문화로 보는 우리 역사』가 있으며 이외에도 다수의 공저와 연구 논문을 저술하였다.
▣ 주요 목차
저자 서문
서론_서울 2천 년의 시간 여행
1부 조선시대의 서울
1장 조선 제1의 정궁, 경복궁
1. 조선의 개국과 경복궁
태조의 한양 천도 / 조선 왕조와 경복궁
2. 경복궁의 공간 구조
삼문 구역 / 치조 구역 / 내조 구역 / 외조 구역 / 동궁동조 구역 / 후원 구역
*더 알아보기: 일제강점기의 경복궁
2장 종묘와 사직
1. 조선의 개국과 종묘
종묘의 유래와 조선시대의 종묘 / 종묘 정전 양식의 변천
2. 종묘의 공간 구성과 제례
진입 및 재궁 공간 / 제향 공간 / 영녕전
3. 종묘제례와 종묘제례악
종묘제례의 종류와 절차 / 종묘제례악과 팔일무
4. 사직의 유래와 역사
5. 사직단의 공간 구성
진입 공간 / 제향 공간 / 부속 공간
*더 알아보기: 종묘와 사직의 수난
3장 성균관과 문묘
1. 성균관과 문묘의 유래
2. 문묘의 공간 구조
대성전 / 동무와 서무 / 묘정비각 / 부속 건물
3. 성균관의 연혁과 제도
성균관의 연혁/성균관 유생들의 생활과 문화
4. 성균관의 공간 구조
명륜당 / 동재와 서재 / 존경각 / 육일각
*더 알아보기: 성균관 주변의 유적
4장 왕조의 정통성을 드러내는 왕릉
1. 왕의 죽음부터 매장까지
2. 왕릉의 형식과 시설물
진입 공간 / 제향 공간 / 능침 공간
2부 근대 및 일제강점기의 서울
5장 근대화의 거친 물결, 정동과 경운궁
1. 정동과 경운궁의 역사
정릉동 행궁과 경운궁 / 정동과 외국 공사관 / 아관파천과 경운궁 / 경운궁의 해체
2. 경운궁의 공간 구조
외조 구역 / 치조 구역 / 내조 구역
3. 외국 공사관과 외세의 활동무대
러시아 공사관 / 손탁호텔 / 정동교회 ? 이화학당 ? 배재학당
4. 황제의 길, 원구단
대한제국의 선포 / 원구단의 해체
6장 격동의 근현대사와 북촌
1. 1884년 갑신정변과 북촌
갑신정변과 북촌 / 박영효의 집 / 일본 공사관 / 경우궁 / 박규수와 홍영식의 집
2. 1919년 삼일운동과 북촌
이종일의 집 / 김성수의 집 / 한용운의 집 / 중앙고보 숙직실과 손병희의 집
3. 1920∼1930년대 민족운동과 북촌
천도교 중앙대교당 / 천도교 중앙종리원
4. 해방 후 건국운동과 북촌
조선건국준비위원회 본부 / 여운형의 집 / 경기여자고등학교 강당
7장 일제 황민화 정책과 남산 일대
1. 일제 식민지 침략의 심장부
조선총독부 / 조선사편찬위원회 터 / 총독관저 터 / 헌병대사령부 터 / 정무총감관저 터
2. 일본 신사와 사원의 설립
조선신궁 / 한양공원 / 경성신사와 노기신사 / 박문사
3. 일제 침략에 대한 저항의 자취
와룡묘 / 장충단
8장 독립운동가들의 한이 서린 서대문형무소
1. 서대문형무소의 통제 시스템
기본 구조 및 공간 통제 / 동작 통제 / 협동 및 소통 통제 / 수형자의 하루 생활
2. 서대문형무소 역사 유적
서대문형무소 역사관 / 담장과 망루 / 옥사 / 유관순 독방 / 사형장
3. 주변 역사 유적
독립문 / 독립관 / 서대문 독립공원
참고문헌
01. 반품기한
- 단순 변심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7일 이내 신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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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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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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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