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오늘날 조선 전기의 역사로 굳어진 내용 중에는 당시 상황과 어긋난 부분이 상당히 많다. 이는 대부분 조선 후기에 이르러 당대의 논리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고 비판없이 받아들인 결과 때문이다. 당시의 역사적 자료를 중심으로 정치 문화 사회사적 배경을 통합해서 이해하지 않고는 당대 역사는 한낱 창작물에 불과하다.
1980년대에 정조가 복권되면서 영조도 긍정적 국왕으로 평가 되었다. 바보 임금이었던 고종 또한 근대화를 위해 열심히 일한 국왕으로 재평가 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이러한 민중사학이 단절되고 국왕(권력자)에 대한 미화가 심해지면서 우리 역사는 오늘날까지 그 흔적이 축적되어 왔다. 이른바 조선 후기 왕조의 시각을 답습하는 우려를 낳은 것이다.
저자는 정확한 사료나 근거를 외면한 채 남겨진 성과물만으로 그 시대를 재구성하거나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국왕을 미화하는 행태는 역사 발전을 가로막고 민주주의 기반을 위협한다는 함의적 관점에서 이 책을 서술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영·정조와 단절된 기존의 부정적 시각에서 바라본 숙종을 구현해 내고 싶었다. 인조반정 이후 근근하게 버텨오던 북벌론과 척화론이 무용지물이 되면서 숙종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너지기 직전인 왕권을 다시 강화하는 것이었다. 국왕은 자신이 왕권의 상징인 태조의 후계자요, 신하들 역시 자신의 신하임을 강조하며 창업 정신을 구현하자는 기치 아래 권력 기반을 다져 나갔다. 쉽게 정의했던 환국과 예송 논쟁으로 분열된 시대가 아니라 태조의 후예로서 왕권을 강화하여 영·정조 중흥기를 일구어낸 초석의 시대로 숙종대를 구현해 낸 것이다.
잊혀진 창업주 태조를 되살리다
조선시대에서만도 태종이나 세조의 권위가 창업주 태조보다 우선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또한 태조는 조선을 세운 임금 정도의 인식 말고는 특별한 관심이 없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근접한 조선시대의 창업주 태조를 한번쯤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책이다. 다분히 정확한 근거 자료 없이 조선 전기의 시대상과 태조를 평가하거나 단순히 되살리는 차원이 아니라, 국왕 숙종이 태조의 사적을 낱낱이 정비하면서 창업주 태조가 신권의 도전에 대한 왕권을 다지는 데 있어서 어떤 의미이고 어떤 정치사적 배경에서 정책이 실행되었는지 당시의 사료를 기반으로 밝혀낸 대중서이다.
조선 왕조에서 정통성이 가장 완벽했던 국왕 숙종을 새로운 시각에서 들여다보다
중종대에 싹튼 붕당은 공론의 주도권에 따라 선조대 이후 급격히 형성되고 분화되었다. 정통성에 약점을 드러낸 선조 집권기에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다시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북인은 대북과 소북으로 쪼개지는 형상이었다. 세자 시절 숙종은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서인의 예송논쟁에 휘말려 숨을 거둔 아버지의 분노를 지켜보았고, 예송 책임자인 서인뿐만 아니라 공론을 내세우는 신하들이 국왕을 흔드는 것에 심한 반감을 가졌다. 불안한 왕권에 맞서 확실한 기반이 필요했던 숙종이었다.
이미 퇴색해 버린 북벌론과 척화론에 왕권이 실추되고 세 차례 환국(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을 단행하면서 왕권에 도전하는 붕당의 공론을 제압한 대신 왕권을 대신할 강력한 권위의 상징이 필요했다. 그가 바로 태조다. 태조는 숙종의 태조 사적 정비를 통해 그의 권위가 되살아났고, 숙종은 태조의 권위를 끌어들여 왕권과 세자의 권위를 기약할 수 있었다. 한편 조선 왕조의 부흥기라 할 수 있는 영조 정조 시기에 숙종의 정책이 어떤 식으로 정착되었는지 새로운 시각에서 만날 수 있다.
왕권과 신권을 생각하게 하다
왕조의 권력은 혈통에서 온다. 국왕의 아들이라야 국왕 자격이 되고, 특히 적장자는 국왕과 신하의 동의를 받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자격이었다. 하지만 왕비가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 하고 그 아들은 무사히 장성해야만 가능하다. 적장자가 없을 때는 그다음 아들이 대신하고, 그마저도 없으면 후궁의 아들이 왕위를 잇기도 한다. 때로는 장손이 잇거나, 선조나 인조처럼 왕의 아들이 아닌데도 왕위에 오르기도 한다.
이처럼 국왕과의 혈연이 멀어질수록 왕권은 그만큼 줄어드는 반면 신권은 커질 수밖에 없다. 모든 권력이 국왕에게 집중되는 속성상 국왕은 어떻게든 권력을 다지려 하고 신하들은 어떻게든 권력을 휘두르려는 국왕을 최대한 막으려 한다. 특히 정통성에 약점이 있는 왕일수록 신하들의 간여가 커지고 국왕은 이를 돌파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한다. 가장 강력한 방법이 선왕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인데, 조카를 밀어낸 세조와 이후 선조에서 정조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특징을 눈여겨볼 수 있다. 조선 전기 내내 태조의 권위가 묻혀버린 경향이 있지만, 국왕의 권위를 보증하는 출발점이 창업주 태조라는 점에 관심을 모을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창업주 태조와 국왕 숙종의 의미
권력을 쥔 자(지도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준에 따라서 이전 시대나 이전 지도자의 정책을 이어가거나 절대 부정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다만 지금의 관점에서 당시를 재단하고 평가할 때 역사는 가히 심각한 오류를 반복하게 된다. 2000년대 들어 민중사학이 차단되고 조선사에 대한 국왕 찬양 일색의 기류가 그 예이다. 당시의 사료를 근거로 당시의 역사를 복원해 낼 때 오늘날 역사는 진보하고 발전한다. 조선 창업의 위대한 태조라는 단순한 시각에서 벗어나 태조의 기록을 통해 당대의 정치적 상황을 접근하고, 후대 왕을 대표하는 숙종이 왕권 강화를 위한 선택이 왜 태종이었는지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는 현대사의 중심에 서 있는 우리에게 자유 민주 시민으로서 어떤 위상과 정체성을 뿌리내려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 작가 소개
저자 : 윤정
연세대학교 사학과에서 「조선 중종 전반기 ‘훈구’ 계열의 경제정책」으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18세기 국왕의 ‘문치’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진주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로, 깊이 있는 역사 인식을 갖춘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길러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 논문에 「영조의 경희궁 개호와 이어의 정치사적 의미 : 사도세자 사사와의 상관성에 대한 분석」, 「인조대 ‘새문동왕기’설 생성의 정치사적 의미 : 경덕궁의 역사적 연원에 대한 고찰」, 「태종 18년 개성 이어와 한양 환도의 정치사적 의미 : 양녕대군 세자 폐립과 세종 즉위과정에 대한 공간적 이해」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이 책을 펴내며
[1부] 태조를 다시 살리기까지
1. 잊혀진 창업주, 태조
2. 북벌이 떠난 자리, 예송이 남긴 유산
[2부] 창업주 태조를 되살린 숙종
1장 태조의 시호를 새로이 추가하다
1. 송시열, 태조의 시호 추상을 건의하다
2. 위화도회군을 새롭게 평가하다
3. 태조의 시호 추상이 확정되다
4. 시호 추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
2장 태조의 영정을 다시 그리고 옛집에 비를 세우다
1. 태조 영정을 다시 만들기까지
2. 다시 그린 태조 영정
3. 영정 모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그 파장
4. 태조의 옛집에 비를 세우다
3장 신덕왕후를 본궁에 제사하다
1. 잊혀진 왕비, 신덕왕후
2. 신덕왕후를 종묘에 추부하다
3. 본궁에도 신덕왕후를 추부하라
4. 마침내 본궁 추부도 실현되다
4장 북도 사적을 정비하기 시작하다
1. 북도 사적 재인식
2. 《팔준도첩》 제작과 《용비어천가》
3. 숙종의 북도 사적 정비
5장 태조를 따라 기로소에 들어가다
1. 숙종의 기로소 입소
2. 세자 대리청정과 정유독대
3. 기로소 입소 의례와 의미
[3부] 숙종의 사업을 계승한 영조와 정조
1장 영조, 경복궁 빈터에서 중흥을 꿈꾸다
1. 영조와 경복궁 빈터
2. 창업 회상과 중흥
3. 과거를 베풀고 의례를 행하다
4. 교서 반포와 문소전 터에 세운 비
2장 정조, 스스로 창업주가 되고자 하다
1. 정조의 창업 사적 정비
2. 본궁 의례 정비와 환조의 영흥본궁 봉안
3. 환조가 된 사도제사, 태조가 된 정조
글을 마치며│숙종은 왜 태조의 후광이 필요했을까
오늘날 조선 전기의 역사로 굳어진 내용 중에는 당시 상황과 어긋난 부분이 상당히 많다. 이는 대부분 조선 후기에 이르러 당대의 논리에 따라 새롭게 해석되고 비판없이 받아들인 결과 때문이다. 당시의 역사적 자료를 중심으로 정치 문화 사회사적 배경을 통합해서 이해하지 않고는 당대 역사는 한낱 창작물에 불과하다.
1980년대에 정조가 복권되면서 영조도 긍정적 국왕으로 평가 되었다. 바보 임금이었던 고종 또한 근대화를 위해 열심히 일한 국왕으로 재평가 되었다. 그러나 2000년대 들어 이러한 민중사학이 단절되고 국왕(권력자)에 대한 미화가 심해지면서 우리 역사는 오늘날까지 그 흔적이 축적되어 왔다. 이른바 조선 후기 왕조의 시각을 답습하는 우려를 낳은 것이다.
저자는 정확한 사료나 근거를 외면한 채 남겨진 성과물만으로 그 시대를 재구성하거나 과거에 대한 반성 없이 국왕을 미화하는 행태는 역사 발전을 가로막고 민주주의 기반을 위협한다는 함의적 관점에서 이 책을 서술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영·정조와 단절된 기존의 부정적 시각에서 바라본 숙종을 구현해 내고 싶었다. 인조반정 이후 근근하게 버텨오던 북벌론과 척화론이 무용지물이 되면서 숙종에게 가장 시급한 문제는 무너지기 직전인 왕권을 다시 강화하는 것이었다. 국왕은 자신이 왕권의 상징인 태조의 후계자요, 신하들 역시 자신의 신하임을 강조하며 창업 정신을 구현하자는 기치 아래 권력 기반을 다져 나갔다. 쉽게 정의했던 환국과 예송 논쟁으로 분열된 시대가 아니라 태조의 후예로서 왕권을 강화하여 영·정조 중흥기를 일구어낸 초석의 시대로 숙종대를 구현해 낸 것이다.
잊혀진 창업주 태조를 되살리다
조선시대에서만도 태종이나 세조의 권위가 창업주 태조보다 우선했을 뿐만 아니라, 오늘날 또한 태조는 조선을 세운 임금 정도의 인식 말고는 특별한 관심이 없다. 이러한 시점에서 우리에게 가장 근접한 조선시대의 창업주 태조를 한번쯤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는 책이다. 다분히 정확한 근거 자료 없이 조선 전기의 시대상과 태조를 평가하거나 단순히 되살리는 차원이 아니라, 국왕 숙종이 태조의 사적을 낱낱이 정비하면서 창업주 태조가 신권의 도전에 대한 왕권을 다지는 데 있어서 어떤 의미이고 어떤 정치사적 배경에서 정책이 실행되었는지 당시의 사료를 기반으로 밝혀낸 대중서이다.
조선 왕조에서 정통성이 가장 완벽했던 국왕 숙종을 새로운 시각에서 들여다보다
중종대에 싹튼 붕당은 공론의 주도권에 따라 선조대 이후 급격히 형성되고 분화되었다. 정통성에 약점을 드러낸 선조 집권기에 사림이 동인과 서인으로, 다시 동인은 남인과 북인으로, 북인은 대북과 소북으로 쪼개지는 형상이었다. 세자 시절 숙종은 송시열을 중심으로 한 서인의 예송논쟁에 휘말려 숨을 거둔 아버지의 분노를 지켜보았고, 예송 책임자인 서인뿐만 아니라 공론을 내세우는 신하들이 국왕을 흔드는 것에 심한 반감을 가졌다. 불안한 왕권에 맞서 확실한 기반이 필요했던 숙종이었다.
이미 퇴색해 버린 북벌론과 척화론에 왕권이 실추되고 세 차례 환국(경신환국, 기사환국, 갑술환)을 단행하면서 왕권에 도전하는 붕당의 공론을 제압한 대신 왕권을 대신할 강력한 권위의 상징이 필요했다. 그가 바로 태조다. 태조는 숙종의 태조 사적 정비를 통해 그의 권위가 되살아났고, 숙종은 태조의 권위를 끌어들여 왕권과 세자의 권위를 기약할 수 있었다. 한편 조선 왕조의 부흥기라 할 수 있는 영조 정조 시기에 숙종의 정책이 어떤 식으로 정착되었는지 새로운 시각에서 만날 수 있다.
왕권과 신권을 생각하게 하다
왕조의 권력은 혈통에서 온다. 국왕의 아들이라야 국왕 자격이 되고, 특히 적장자는 국왕과 신하의 동의를 받는 데 전혀 지장이 없는 자격이었다. 하지만 왕비가 반드시 아들을 낳아야 하고 그 아들은 무사히 장성해야만 가능하다. 적장자가 없을 때는 그다음 아들이 대신하고, 그마저도 없으면 후궁의 아들이 왕위를 잇기도 한다. 때로는 장손이 잇거나, 선조나 인조처럼 왕의 아들이 아닌데도 왕위에 오르기도 한다.
이처럼 국왕과의 혈연이 멀어질수록 왕권은 그만큼 줄어드는 반면 신권은 커질 수밖에 없다. 모든 권력이 국왕에게 집중되는 속성상 국왕은 어떻게든 권력을 다지려 하고 신하들은 어떻게든 권력을 휘두르려는 국왕을 최대한 막으려 한다. 특히 정통성에 약점이 있는 왕일수록 신하들의 간여가 커지고 국왕은 이를 돌파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동원한다. 가장 강력한 방법이 선왕의 권위를 내세우는 것인데, 조카를 밀어낸 세조와 이후 선조에서 정조에 이르기까지 이러한 특징을 눈여겨볼 수 있다. 조선 전기 내내 태조의 권위가 묻혀버린 경향이 있지만, 국왕의 권위를 보증하는 출발점이 창업주 태조라는 점에 관심을 모을 필요가 있다.
오늘날 우리에게 창업주 태조와 국왕 숙종의 의미
권력을 쥔 자(지도자)는 자신에게 주어진 기준에 따라서 이전 시대나 이전 지도자의 정책을 이어가거나 절대 부정하는 게 작금의 현실이다. 다만 지금의 관점에서 당시를 재단하고 평가할 때 역사는 가히 심각한 오류를 반복하게 된다. 2000년대 들어 민중사학이 차단되고 조선사에 대한 국왕 찬양 일색의 기류가 그 예이다. 당시의 사료를 근거로 당시의 역사를 복원해 낼 때 오늘날 역사는 진보하고 발전한다. 조선 창업의 위대한 태조라는 단순한 시각에서 벗어나 태조의 기록을 통해 당대의 정치적 상황을 접근하고, 후대 왕을 대표하는 숙종이 왕권 강화를 위한 선택이 왜 태종이었는지를 되새겨볼 필요가 있다.
이는 현대사의 중심에 서 있는 우리에게 자유 민주 시민으로서 어떤 위상과 정체성을 뿌리내려 가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 작가 소개
저자 : 윤정
연세대학교 사학과에서 「조선 중종 전반기 ‘훈구’ 계열의 경제정책」으로 석사학위를, 서울대학교 국사학과에서 「18세기 국왕의 ‘문치’사상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진주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로, 깊이 있는 역사 인식을 갖춘 초등학교 선생님들을 길러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대표 논문에 「영조의 경희궁 개호와 이어의 정치사적 의미 : 사도세자 사사와의 상관성에 대한 분석」, 「인조대 ‘새문동왕기’설 생성의 정치사적 의미 : 경덕궁의 역사적 연원에 대한 고찰」, 「태종 18년 개성 이어와 한양 환도의 정치사적 의미 : 양녕대군 세자 폐립과 세종 즉위과정에 대한 공간적 이해」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이 책을 펴내며
[1부] 태조를 다시 살리기까지
1. 잊혀진 창업주, 태조
2. 북벌이 떠난 자리, 예송이 남긴 유산
[2부] 창업주 태조를 되살린 숙종
1장 태조의 시호를 새로이 추가하다
1. 송시열, 태조의 시호 추상을 건의하다
2. 위화도회군을 새롭게 평가하다
3. 태조의 시호 추상이 확정되다
4. 시호 추상을 바라보는 서로 다른 시각
2장 태조의 영정을 다시 그리고 옛집에 비를 세우다
1. 태조 영정을 다시 만들기까지
2. 다시 그린 태조 영정
3. 영정 모사를 바라보는 시각과 그 파장
4. 태조의 옛집에 비를 세우다
3장 신덕왕후를 본궁에 제사하다
1. 잊혀진 왕비, 신덕왕후
2. 신덕왕후를 종묘에 추부하다
3. 본궁에도 신덕왕후를 추부하라
4. 마침내 본궁 추부도 실현되다
4장 북도 사적을 정비하기 시작하다
1. 북도 사적 재인식
2. 《팔준도첩》 제작과 《용비어천가》
3. 숙종의 북도 사적 정비
5장 태조를 따라 기로소에 들어가다
1. 숙종의 기로소 입소
2. 세자 대리청정과 정유독대
3. 기로소 입소 의례와 의미
[3부] 숙종의 사업을 계승한 영조와 정조
1장 영조, 경복궁 빈터에서 중흥을 꿈꾸다
1. 영조와 경복궁 빈터
2. 창업 회상과 중흥
3. 과거를 베풀고 의례를 행하다
4. 교서 반포와 문소전 터에 세운 비
2장 정조, 스스로 창업주가 되고자 하다
1. 정조의 창업 사적 정비
2. 본궁 의례 정비와 환조의 영흥본궁 봉안
3. 환조가 된 사도제사, 태조가 된 정조
글을 마치며│숙종은 왜 태조의 후광이 필요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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