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래된 신세계 -다음 단계의 문명을 위하여-

고객평점
저자숀 윌리엄 밀러
출판사항너머북스, 발행일:2013/07/01
형태사항p.479 국판:22
매장위치사회과학부(B1) , 재고문의 : 051-816-9500
ISBN9788994606200 [소득공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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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소개

▣ 출판사서평

아메리카 옛 문명에 대한 새로운 접근으로 멜빌상Melville Award 수상작
아스텍의 식인 행위에서 오늘날 멕시코시티의 숨쉬기 투쟁까지 6백여 년에 걸친 라틴아메리카 환경사의 결정판

“숀 밀러는 지난 여섯 세기를 단 400여 쪽에 담아내며 독자들에게 라틴아메리카 환경의
다사다난하고도 장엄한 역사를 선보인다. 전문가, 학생, 일반 독자들 모두 밀러가 쓴 글에서 생각할 거리를 찾고
읽는 즐거움 또한 적지 않게 누릴 것이다. 읽기 즐거운 책, 중요한 이야기이다.”
- J.R. 맥닐, 조지타운대 교수

《오래된 신세계, 다음 단계의 문명을 위하여》(원제 An Environmental History of Latin America) 는 오늘날까지 쌓여온 라틴아메리카 환경사 연구의 종합으로, 자연과 인간의 상호작용과 라틴아메리카의 중요한 역사적 사건들을 연결 지으며 새로운 지평을 펼쳐 보인다. 이 책은 아스텍의 테노치티틀란Tenochtitlan에서 먹을 것을 찾는 전략에서부터 오늘날 멕시코시티에서 숨 쉬기 위한 투쟁까지 거의 6세기에 걸친 역사로 지난날의 열대 농사법부터 오늘날의 환경 관광까지 폭넓게 살펴본다. 그러면서 역사 속에서 인간이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으리라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며, 더 나아가 자연을 인간을 뺀 “나머지 자연”으로 볼 때, 인간의 범위를 좁게 잡고 무한한 발전을 뒤쫓는 이들에게는 당신 또한 사라져도 상관없는 “자연”일 수 있음을 깨닫게 해준다.
이 책은 옛날 아메리카가 사람으로 가득 찼으며 왕성한 생산력의 자연과 생산기술을 가진 문명이 공존하며 가장 많은 인간을 먹여 살렸던 “오래된” 세계였음을 증명한다. 1492년 콜럼버스 이후 유럽인들이 들어온 1세기 동안 질병, 세균에 의해 선주민들이 90퍼센트가 몰살되자 동식물이 우거진 그야말로 “신대륙”이 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식민주의의 유산 때문에 라틴아메리카 대륙이 수탈당하고 고통받았다는 것 역시 좁은 관점에 불과하며, 선주민이 크리오요와 메스티조의 독립운동에 맞서 오히려 스페인 왕조를 지지 지원했던 것을 증명하지 못한다고 말한다. 더 나아가 이들 신생 공화국이 세워진 뒤 선주민을 포함한 자연은 더욱 수탈되었으며 화석연료가 쓰이기 시작하면서부터 더욱 악화일로를 걷고 있음을 잘 보여준다.
이 이야기에서 아스텍에서는 식인 행위로, 현대에 와서는 과시 소비로 나타나는 인간의 욕망과 태도가 주연을 맡는다. 하지만 십이지장충, 고래, 허리케인, 바나나, 먼지, 나비, 구아노도 비중 있는 단역으로 출연한다. 어쩌면 자연이 모두 사라지더라도 사람은 인공물로 자연을 대체하며 계속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저자 숀 밀러는 이런 미래는 지옥과도 같은 것이며 인간 문화가 목표로 삼아서는 안 될 일이며, 다음 단계의 환경관은 그것을 깨달은 환경관이어야만 함을 강조한다.
저자는 한국어판 출간에 부쳐 환경사는 한국에서 식민주의로 생겨난 변화를 다룬 것일 수도 있고, 빠른 산업 발전 및 도시 성장에 따른 문제일 수도 있다면서 이 책에서 한국인들 자신의 환경사에 대한 영감을 얻기를 기대한다고 했다.

오래된 신세계, 세상에서 가장 많은 인구를 먹여 살렸던 대륙

이 책은 유럽인 정복자들이 오기 전에는 텅 빈 야생이었다는 이른바 “신세계” 신화를 깨면서 출발한다. 저자에 따르면 1492년 이전의 라틴아메리카는 사람으로 꽉 들어차 있었다. 20세기 전반기 사람들은 1492년 신세계에는 800~1,500만 명이 살았으리라 짐작했다. 선주민은 문명을 이룰 수 없고 열대에서는 집약 농업을 할 수 없다는 인종주의 편견이 그러한 수치에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현대 역사인구통계학자들과 고고학자들은 그러한 추정을 완전히 뒤집어놓았다. 당시 아메리카 인구는 4,000~7,000만(1억 1,500만까지도 추정)이었으며 그 대부분이 지금의 라틴아메리카 지역에 살았다고 한다. 멕시코와 중앙아메리카에 2,400만 명이 살았고 남아메리카도 이와 엇비슷했다고 추정한다. 카리브 제도에만 300~700만이 살았다. 큰 도시들도 여기저기 있었다. 멕시코 계곡에 있던 아스텍 제국의 도시인 테노치티틀란, 텍스코코Texcoco에만 각각 20만 명이 넘게 살았는데, 같은 해의 파리, 런던, 리스본보다 컸던 셈이다. 잉카의 수도 쿠스코Cuzco는 그 좁은 땅 안에 5만 명이 살았고, 그곳에서 하루 정도 가야 하는 거리 안에는 그 몇 배가 살았다.
그 많은 인구는 구대륙에 견줘 결코 뒤떨어지지 않았으며 어쩌면 더 뛰어났을지도 모를 식량 확보 기술 덕분에 가능했다. 콜럼버스 항해 500주년 이후 학계는 아메리카 문화가 세상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지역을 먹여 살린 사회들을 이루고 지탱했음을 설득력 있게 입증했다. 라틴아메리카 거의 전역에 걸친 돋운 땅 농법인 치남파Chinampa는 매우 생산성이 높았다. 15세기 치남파는 1헥타르에서 열다섯 명을 먹여 살릴 수 있었다. 반면 같은 세기에 유라시아에서 가장 뛰어났던 중국 농법은 1헥타르당 세 명도 채 부양할 수 없었다. 아스텍 문명, 잉카 문명, 심지어는 원시적으로 보이는 투피족조차도 자기 문화 나름의 기술로 주변 환경을 크게 바꾸어놓으며 먹을 것을 찾았다. 아마존도 사람의 손때가 안 탄 원시림이 아니었다. 추정대로라면 아마존 유역 숲의 12퍼센트가 사람 손을 거친 곳이라 한다.
저자는 계단밭, 치남파, 검은 흙, 화전보다 더 중요한 사실로 이 아메리카 문명이 지난 1천년 사이에 이룬 것이 아니라 4천년도 더 지난 옛날에 했다는 점을 든다. 오늘날 생산량에서 으뜸 작물인 옥수수를 재배한 사람들은 아메리마 원주민들이다. 이들은 콩, 토마토, 고추, 아보카도, 감자, 마니옥 같은 다른 여러 식물도 식용 작물로 키웠다. 콜럼버스는 낙원을 찾아냈지만, 그 낙원은 사람이 만든 낙원, ‘인간의 손길이 빚은 정원’이란 말이 가장 어울리는 낙원이었다.
이 책은 콜럼버스 이전 여러 선주민족이 식량을 얻은 방식을 자세히 설명한다. 저자는 “선주민들에게는 바퀴가 없었다. 철기도 없었다.”처럼 유라시아에 ‘없는 것’을 통해 선주민족의 문화를 정의하지 않는다. 오히려 유라시아 문명에는 없었으나 선주민들에게는 있었던 것을 보여주며 선주민족의 문화를 군사기술뿐만 아니라 생산기술에서도 열등한 것으로 보는 편견에 일침을 놓는다.

“1492년 아메리카는 사람으로 우글거렸고 풍경 구석구석에 사람의 손때가 묻어 있었다. 아메리카 원주민은 생물학적으로도 성공하여 두 대륙을 다양한 문화로 가득 채웠고 두 개 이상의 문화가 서로 밀고 당기지 않는 풍경을 거의 찾아볼 수 없다시피 했다. 아메리카 문화 또한 여러 훌륭한 농업을 연이어 만들어냈고 그러한 농법들은 대지의 모습을 바꾸어놓았다. 그러한 변화는 오늘날에도 층층이 쌓인 유적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적어도 지금으로서는 자연이 아메리카 원주민의 성공에 끼친 영향을 실패에 끼친 영향보다 더 많이 알고 있다. 원주민의 역사에는 멸망과 쇠락도 점점이 박혀 있다. 우리들, 가장 젊은 세대의 아메리카 사람들은 마땅히 그러한 역사를 보고 조심하는 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유럽인 식민자들이 오기 전에 칠레 지역에서 식량 생산 활동을 하지 않았다는 제레드 다이아몬드의《총, 균, 쇠》의 주장은 선주민족 문명에 대한 편견으로 인한 오류임이 명확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그렇다면 왜 투피족과 아스텍은 사람을 잡아먹었던 것일까?

단백질이 모자라서 사람을 먹었다는 주장은 선주민 농업은 생산성이 낮았다는 낡은 편견을 따른 것이다. 옥수수와 콩, 치아Chia와 스피툴리나 외에도 뱀, 도마뱀, 벌레 등 생김새나 맛만 따지지 않는다면 단백질은 어디에나 널려 있었다. 단백질 때문이 아니라면 왜 서로 잡아먹었는가? 밀러에 따르면 이는 이들의 자연관 때문이었다. 투피족은 복수하려고 전쟁 포로를 먹었다. 아스텍은 자연과 인간을 동등한 존재로 보았고 동물을 먹을 수 있다면 인간도 먹지 못할 까닭이 없다고 믿었다. 그렇다고 자연을 친구로 보았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아스텍에게 자연은 무섭고 두렵기까지 한 상대였다. 이외의 다른 문명들도 결국 자연을 소비 대상으로 삼기는 마찬가지였다. 아스텍과 잉카 귀족들의 사치는 자연에 깊은 흔적을 남겼다. 숲을 사라지게 하고, 짐승을 사냥해 깡그리 없애고, 땅을 깎아 물욕과 정신의 욕망을 채웠다. 아스텍 목테수마 2세의 아내는 1천명에 이르렀는데 그 중 150명은 항상 임신 상태였다고 한다. 잉카에는 이상한 관습이 있었는데 왕은 아버지로부터 왕위 이외에는 아무것도 물려받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미라가 된 왕들이 모든 재산을 그대로 지켰던 것이다. 공물 요구량이 생산량을 앞지를 수밖에 없었던 요인이었다. 책에서 기술하는 이들의 과시 소비 성향은 상상을 초월한다.
그렇다면 콜럼버스 이전 문명들이 무너진 것은 환경이 감당할 수 없는 수준으로 소비를 늘렸기 때문일까? 이 책은 그런 해석에 신중한 반론을 제기한다. 자신들이 저지른 환경 파괴로 인한 문명의 멸망 이야기는 마치 우리가 환경을 잘 관리하면 환경도 보답해줄 것만 같은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하지만 자연은 냉정하다. 화산 폭발이 환경주의자를 피해 가지 않는 것처럼.
“신세계”를 만들어낸 진짜 주인공은 유럽인 정복자들이 아니라 병균과 동식물이었다.

이미 오랫동안 원시 자연의 땅이 아니라 사람의 땅이었던 이곳을 이른바 신세계로 만든 것은 유럽인 정복자들을 따라온 유라시아의 병원균과 동식물이었다. 유라시아의 병균은 이에 대한 면역이 약했던 원주민의 몸을 상대로 전무후무한 정복 전쟁을 펼쳤고, 원주민 인구는 무섭도록 빠르게 곤두박질쳤다. 1492년부터 100년이 지나는 사이에 원주민 5천만 명이 사라졌다. 한때 힘이 넘쳤던 아메리카 인구가 90퍼센트 넘게 사라진 것이다. 살아남은 사람은 겨우 500만 명뿐이었으니 생각만 해도 끔찍한 인류사의 전례 없는 대참사였다. 자연의 완승이었다.
이베리아 반도의 정복자들이 아프리카에서 노예를 수입하게 된 것은 이러한 인구 감소 때문이었다. 1800년까지 라틴아메리카에 끌려온 아프리카 사람은 약 700만 명에 이른다. 백인 이민자 한 사람에 아프리카 사람 다섯 명인 셈이다. 일부 지역에서는 아프리카계 인구가 다른 인구보다 훨씬 많았다. 자연은 신세계 문화의 모습을 완전히 바꾸어버렸다. 사실 돌림병이 없었다 해도 이베리아 사람들이 원주민 제국을 뒤엎고 아메리카의 새 지배자가 되었을 가능성은 충분했다. 하지만 저자는 질병이 없었다면 아메리카 정복의 결과는 달라졌을 것으로 본다. 아시아와 아프리카에서 유럽인은 해안 무역과 다른 자질구레한 일을 하는 소수 지배층으로 남았다. 제국주의 침탈에도 인도 문명, 이슬람 문명, 유교 문명은 비교적 바뀐 것 없이, 비교적 멀쩡하게 살아남았다. 예외적으로 아메리카가 유럽 제국의 정치체가 뻗어나간 것 그 이상의 이유는 질병 때문이었다.
그리고 사람이 사라진 땅 위를 토착 동식물과 유라시아에서 들어온 식물종들이 함께 덮어가기 시작했다. 숲이 되살아났다. 유럽산 소, 양, 돼지 등의 가축은 엄청난 속도로 새끼를 쳐 풍경을 바꾸어놓았다. 그렇게 들어온 종들 가운데 일부는 선주민족들의 밥상에도 올라가 먹거리가 푸짐해졌다. 16세기 아메리카는 먹을 것이 늘어 배가 고프지 않은데도 사람은 떼로 죽어가는 기괴한 관경이 펼쳐졌다.
식민지 시기가 끝날 때까지 에스파냐 사람들은 캘리포니아에서 파타고니아까지 900개가 넘는 도시를 세웠다. 하지만 문화 혼혈이자 생태 혼합물인 “신세계”를 만들어낸 진짜 주인공은 이베리아인 정복자들이 아니라 자연이었다. 세균이 이 대륙 인구의 90퍼센트를 쓸어버리는 데 한 세기가 걸렸지만 인간 종이 이전 인구수에 다시 이르기까지는 4세기가 걸렸다. 원주민이 줄어들어 생긴 빈자리는 새 지배자들로도 가득 차지 않았다. 그리하여 아메리카에는 수 세기만에 처음으로 아무 방해 없이 풀과 나무가 자라나는 드넓은 변경지대가 나타나게 되었다.

한국 독자들에게 매우 낯선 선주민족 문명과 이베리아 왕정에 대한 평가

이 책은 무엇보다 선주민족 문명과 이베리아 왕정이 다스리던 아메리카에 대한 정당한 평가를 서술했다는 점에서 그 의의가 있다. 이베리아 왕국들이 아메리카를 지배한 시기는 생태계에는 오랜 회복 기간이었다. 무엇보다 당시 아메리카에는 인구가 매우 적었고 이베리아의 본국은 아메리카 통제를 위해 유럽인의 아메리카 이주를 엄격하게 제한했다. 거기다 이베리아 사람들이 아메리카 전역을 지배하는 것도 아니었다. 아메리카의 상당 부분은 여전히 선주민족들이 다스리고 있었다.
식민지에 적용되는 여러 무역 규제 또한 식민지산 물자의 가격과 함께 생산 의욕을 떨어뜨렸고 이는 자연에 이익이 되는 일이었다. 특히 브라질나무 수입, 고래 사냥, 다이아몬드 채광 등은 국왕이 직접 독점하여 생산량을 일부러 낮췄다. 독점 상품 값을 올리기 위해서였다. 속셈이야 어떻든 그로 말미암아 자연이 덜 쥐어 짜였던 것은 사실이었다. 또한 이베리아 왕정은 자연 자원 보호 정책을 실시했고 더불어 그 자연 자원에서 먹을 것을 얻는 가난한 사람들의 생존권도 지켜주었다.
이 책이 관심을 끄는 점은 이베리아 “식민주의” 체제에 대한 저자의 긍정적인 평가와 아메리카 독립 공화국에 대한 상대적 저평가이다. 이 책의 번역자 조성훈(칠레국립대학 박사과정)은 “공화주의 크리오요 독립 운동가들을 이베리아 왕정과 비교하여 비판하는 것은 적어도 선주민 역사가들 상당수가 가진 관점”이며 실제로 마푸체 민족은 칠레 독립운동 시기에 오히려 에스파냐 왕당파 편에서 싸웠다고 한다. 에두아르도 갈레아노의 《수탈된 대지》의 요점, 즉 독립 운동가들이 라틴아메리카 해방을 위해 싸웠으나 이베리아 식민주의의 잔재를 모두 없애는 데 실패했고, 오늘날 라틴아메리카 문제의 근원은 그러한 식민주의 유산에 있다는 설명에 익숙한 한국 독자들에게는 이 책이 매우 낯선 관점일 것이다.
그동안 한국에는 라틴아메리카 신생 공화국들이 선주민의 자주권을 어떻게 짓밟았는지, 크리오요 독립국들의 침략 전쟁이 당시 세계의 제국주의와 어떻게 적극 협력했는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 그러나 크리오요들과 유럽인들이 발명해낸 지리 단위인 라틴아메리카는 “수탈된 대륙”이면서 선주민족의 땅과 독립을 밟아 뭉갠 “수탈한 대륙”이기도 한 것이었다.

19세기 라틴아메리카 독립공화국들은 자유무역을 통해 북반구 국가들과 같은 번영을 누릴 수 있기를 기대했다. 그러나 공업 경쟁력이 약한 라틴아메리카는 농업, 광업, 임업 수출 이외에는 없었다. 게다가 그러한 수출을 통한 발전의 길에는 여러 가지 장애물이 놓여 있었다. 첫째, 인종주의였다. 혼혈 후손은 어떤 인종보다 능력이 떨어진다는, 18세기 유럽이 만들어낸 인종주의는 거짓 장애물이었다. 인종주의의 흔적은 지금까지 비공식적으로 여전히 존재하며 라틴아메리카의 특징인 불평등한 소득분배를 옹호하는데 쓰이고 있다. 둘째, 열대 질병이었다. 열대 질병은 예방과 치료법이 널리 퍼질 때까지 라틴아메리카 주민의 기대 수명을 낮추고 농민들의 활력을 떨어뜨렸다. 셋째, 자연재해였다. 지진과 화산 폭발 등은 한 나라의 산업구조를 바꾸고 도시 하나를 지도에서 지워버렸다.
저자는 라틴아메리카가 겪은 독특한 난관으로 식물 병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라틴아메리카인들은 처음에 고무를 팔아 많은 돈을 벌었지만 결국 아시아 고무 농장에 밀릴 수밖에 없었다. 아마존에는 고무나무를 병들게 하는 잎마름병으로 고무나무 집약농법이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의 바나나 농장도 곰팡이의 공격에 시달렸다.
인간의 힘이 라틴아메리카의 자연을 정말로 압도하기 시작한 것은 화석연료를 많이 쓰게 되면서부터였다. 화석연료 사용은 인류가 지구에 오랫동안 저축한 태양의 에너지 계좌에서 돈을 빼내 쓰는 것과 같아서 한번에 엄청난 힘을 발휘하는 것이 가능했다.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은 이 힘으로 오랫동안 꿈꿔왔던 일들을 실현했다. 그러나 그 결과가 정말 바라던 대로 되었는지에 대해 이 책은 의문을 제기한다.
이를테면 멕시코 사람들은 포르피리오 디아오 대통령 시절에 마침내 증기력을 동원해 거대한 운하를 파내어 멕시코 계곡의 호숫물을 다 빼버리는데 성공했다. 그러나 호숫물을 빼면 도시 지반이 굳으리란 기대와는 정반대로 도시가 가라앉기 시작했다. 구아노와 질산나트륨의 고갈로 농민들은 외부에서 얻을 수 있는 비료에 기대면서 토질 관리를 소홀히 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전에 자연 비료로 쓰던 똥오줌은 쓰레기가 되어 환경을 오염시키는 원인이 되었다. 저자는 수력발전의 부정적인 측면도 살펴볼 것을 요구한다.
밀러는 이런 사례를 들어 에너지 생산 확대를 만병통치약으로 여기고 이에 집착하는 어리석음을 비판하는 동시에 인류는 에너지 생산 확대를 통해 끝없는 탐욕을 채우려 하기보다는 슬기롭게 아껴 쓰는 법을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가 잃어버린 것들을 떠올리고 이를 역사의식 속에 깊이 아로새기기 위한 새로운 환경사

인간의 힘과 에너지 사용 확대를 살펴본 저자는 라틴아메리카의 도시 이야기를 이어간다. 라틴아메리카는 인구 폭발보다 도시화가 더 일찍 시작되었다. 도시 인구 비중은 브라질 83퍼센트, 칠레 87퍼센트, 베네수엘라 88퍼센트, 아르헨티나는 90퍼센트가 도시에 산다. 오래된 도시문제에다 현대에는 자동차 문제가 추가되었다.
오늘날 도시는 라틴아메리카의 환경 파괴에 따른 우려를 퍼뜨리는 근원이다. 그렇다고 도시를 외면한다면 문제는 더욱 커질 뿐이며, 도시는 라틴아메리카에서 가장 큰 환경문제인 동시에 하나밖에 없는 해결책이라 저자는 본다. 왜냐하면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이 살 만한 다른 형태의 인간 삶터가 없기 때문이다. 라틴아메리카 사람들은 떠나온 지 얼마 안 된 농장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북아메리카 도시의 교외와 같이 에너지를 많이 쓰는 도시 확산 양식을 계속 따라갈 수도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모든 도시가 이런 것은 아니다. 브라질의 도시 쿠리치바는 자동차와 도로보다는 거리와 대중교통을 우선시한 도시계획으로 새로이 거듭났다. 밀러는 여전히 여러 가지 문제가 있지만 쿠리치바는 분명 사람 살기에 더 좋은 도시가 되었다 호평한다. 라틴아메리카에서 도시는 지속가능한 삶터일까? 현재로선 그렇지 못하다는 단언하면서도 저자는 그렇다고 도시를 버릴 수는 없다고 주장한다. 도시는 환경오염과 과소비의 핵일 수도 있지만 쿠리치바처럼 잘 관리한 도시는 그 반대가 될 수도 있다. 또 라틴아메리카 도시는 미국과 캐나다의 도시와는 다른 길을 갈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저자는 희망을 품는다.
이 책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쿠바의 농업 혁명 이야기는 하나의 대안이자 메시지다. 저자는 현대 농업은 화석연료에 지나치게 의존한 나머지 석유 공급이 어쩌다 끊기기라도 하면 심각한 식량 위기에 빠질 수 있다고 걱정한다. 소련 붕괴로 석유를 얻기 어려워진 북한의 농업 위기가 그러한 사실을 잘 보여준다. 그런데 쿠바는 달랐다. 쿠바의 실험은 미국의 봉쇄와 석유 조달 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선택한 길이었지만 결과적으로 훨씬 덕유에 덜 의존적이며 지속 가능성이 더 큰 농업을 일궈냈다고 평가한다.

이 모든 이야기의 축을 이룬 환경주의는 라틴아메리카에서 어떤 역사를 거쳐 왔을까? 저자는 환경 파괴도 환경주의도 현대에 나타난 새로운 현상은 아니라고 한다. 미국은 인간에게 직접 쓸모가 없는 야생 지역도 보호하려 했다는 점에서만 라틴아메리카와 달랐다. 아마도 이는 미국인들이 자신들에게는 많지 않은 과거의 장엄한 건축물 대신 자연물을 미국 민족주의를 대표하는 상징물로 지키려 했고, 역사학이 발달해 자신들이 잃어버린 자연물을 더 잘 기억하고 아쉬워했기 때문이라 저자는 본다.
환경주의가 대중운동이 된 것은 20세기에 레이철 카슨이 쓴 《침묵의 봄》을 통해 자연을 해치는 일이 우리 자신을 해치는 일이 될 수도 있음을 경고하면서부터였다. 이후 라틴아메리카도 환경보호정책을 받아들였다. 때로는 우파 독재자가, 때로는 좌파 혁명가들이 환경보호정책의 주체가 되었다. 브라질 도시 쿠바터웅에서 일어난 환경 재앙도 환경주의의 성장을 부추겼다.
하지만 환경보호정책이 인간의 이익을 해치는 것으로 보일 때 지역민들이 어떻게 나올 수 있는지는 멕시코의 왕나비 서식지 보호정책의 역사가 잘 보여준다. 환경주의를 믿든 믿지 않든, 평범한 소비자 수백만 명의 선택이 자연을 희생시키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선주민족 문명이 그랬던 것처럼 문명의 재단에 자연을 제물로 바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얄팍한 환경주의의 최신 형태로 저자는 해수욕장과 생태 관광을 꼽는다. 해수욕장 산업은 깨끗한 바닷가를 찾아 이리저리 이동하며 가는 곳마다 환경을 더럽히고 망가뜨린다. 생태 관광 역시 더립히지 않은 환경에 사람을 불러들여 그곳을 더럽히고 다른 곳으로 옮겨간다. 이제 생태 관광은 가상 자연을 꾸며내 사람들을 속이는 단계에까지 이르렀다.
저자는 상상한다. 어쩌면 우리는 가상 자연으로 우리 자신을 속이고 모든 자연물을 인공물로 갈아치우며 살아남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아무리 큰 힘을 손에 넣더라도 한 번 잃어버린 자연을 되찾기란 어려울 것이다. 또 이는 우리 자손에게 커다란 상실을 물려줄 것이다. 그러니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자연과 인간이 공존하는 길을 찾으려 힘써야 함을 호소한다.

▣ 작가 소개

저자 : 숀 윌리엄 밀러Shawn William Miller
1997년에 컬럼비아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브리검영 대학 역사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브라질과 라틴아메리카 식민지사 및 환경사를 전공했다. 저서로는 2008년에 환경사로 멜빌상Melville Award을 받은 《오래된 신세계, 다음 단계의 문명을 위하여An Environmental history of Latin America》와 《열매 없는 나무: 포르투갈의 자원 보존 정책과 브라질 식민지의 목재Fruitless Tree: Portuguese conservation and Brazil’s colonial timber》 등이 있다.
밀러 교수는 2006년에 뛰어난 연구 및 교육 업적으로 젊은 교수상Young Faculty Award을 받았다. 현재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도시 거리가 어떻게 쓰였고 어떤 의미가 있었는지, 거리가 도로로 바뀐 것에 지역민들이 어떻게 반응했는가를 조사하고 있다.

역자 : 조성훈
경북대학교 역사학과에서 칠레 인민연합 정부의 원주민 정책을 다룬 논문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칠레 산티아고에 있는 국립칠레대학교 박사과정에 있으며 19세기 칠레 사회의 선주민족 영토를 노린 식민주의를 연구하고 있다. 라틴아메리카 사회를 분석하고 원주민 역사가들의 시각을 국내에 더 널리 소개하는 데 관심을 두고 있다.

▣ 주요 목차

한국어판 머리말
감사의 말
머리말 풍경 및 소품

1장 오래된 신세계
땅심 돋우기 / 자연관과 소비관 / 사람을 먹는 사람들 / 지속 가능성이라는 문제

2장 정복자 자연
돌림병 / 생물 다양성이 얻은 것 / 푸짐해진 밥상 / 낯선 자연에 맞추기

3장 식민지 시대 대차대조표
설탕 소비 / 사람 잡는 은 / 수갑을 찬 식민자들

4장 열대 환경결정론
인종주의 신조 / 열대 질병들 / 자연재해 / 식물 병

5장 인간의 의지
산을 옮기다 / 구아노를 만나다 / 강을 뒤집다

6장 숨 막히는 삶터, 도시환경
도시 전통 / 자동차 광풍 / 쿠리치바의 선물 / 인구 전망

7장 환경주의의 성장
자원보호주의와 야생지 / 대중 환경주의의 한계 / 침략당한 낙원

후기 쿠바의 최신 혁명
옮긴이 후기

작가 소개

목 차

역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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