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백 년 전의 ‘뉴 미디어’
이 책의 의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야담’이 무엇인지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만큼 야담은 이제 잊혀진 개념, 지칭할 대상을 잃어버린 사어死語, 문학 쪽 전문가들이나 가끔 입에 올리는 고어古語가 되어 버렸다. 야담은 이를 가리키는 한자 ‘野談’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간에 떠도는 ‘야사’를 근간으로 한 이야기다. ‘야사野史’는 공식 역사가 아닌 비공식 역사, 그것도 비주류 역사로서 정통성과 합법성을 확보하지 못한 불완전한 민중사의 또 다른 이름이다. 여기서 저자가 왜 야담을, 그것도 식민지기 야담을 연구 주제로 삼았는지를 알 수 있다.
불완전한 비공식 역사로서의 ‘야사’와 이 ‘야사’를 토대로 한 이야기로서의 ‘야담’은 그 태생부터가 중심과는 거리가 먼 주변부성을 보인다. 그러나 비공식적인 ? 불완전한 민중사였기 때문에 그만큼 일반 대중의 삶과 가까웠고, 당대의 굴절과 변화상을 예민하게 담지하고 있었다. 더구나 당시는 전 세계적인 보편 이념으로서 도래한 ‘근대’의 유례없는 충격과 압력이 일반 민중의 삶에까지 영향을 주고, 그 결과 조선을 포함하여 전 세계의 80퍼센트가 소수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한 시기가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야담’은 단순히 재래의 ‘조선적인’ 이야기가 아닌, 근대 지知에 의해 새롭게 재창출된 ‘뉴’미디어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교화냐 오락이냐, 야담의 존재 방식
이 책이 묻고자 하는 것은 그래서 식민지 시기 야담의 ‘존재 방식’이다. 전 세계적인 근대 지知의 시선 아래에서 재구성되어야 했던 야담은, 재래의 ‘야담’을 단순히 연장한 것이거나 계승한 것일 수 없었다. 근대 지知에 의해 새롭게 재창출된 ‘야담’은 식민지로 전락한 한반도의 당면한 현실적 위기 앞에서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에 의해 재구성되는 사회역사적 도정을 보여 준다. 이 책이 야담의 ‘무엇’이 아니라 야담의 ‘어떻게’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식민지 조선의 ‘야담’이 지닌 교화와 오락의 갈등하는 면모는 일본의 전쟁 확대와 가속화 속에서 급속하게 체제 내화되어 갔다. 여기에 징병제의 실시는 식민지 조선인이 병사로 차출된다는 것의 의미를 재인식시키며, 이에 따른 대중 계도와 교화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이 대중 계도와 교화의 한 축을 담당했던 것이 바로 ‘야담’이었다.
‘혈서’로 변한 야담
이 대목에서 등장하는 이름이 이/인/석이다. 이인석은 식민지 조선에서 지원병제도가 실시된 이후, 중국 전선에서 사망한 첫 번째 지원병 전사자이다. 그의 전사 이후 벌어진 대대적인 추모 열기는 1932년 상해사변에서 사망한 일본의 ‘3용사’에 비견될 만했다. 이인석에 대한 추모 열기의 배후에는 식민권력에 의한 ‘전쟁미담’의 독려가 있었다.
이렇게 전선에서의 죽음을 미화하는 것은 군국주의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전쟁미담’의 전성시대는 또한 혈서의 시대이기도 했다. 박정희의 만주군 지원 혈서가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했듯이, 이 시기에 수많은 혈서의 사연이 대중매체를 수놓았다. ‘혈서’라는 문학작품이 나오는 등, 피를 통한 국가봉공은 혈세血稅로서 당연시되었다. 야담은 이 전시 분위기를 반영하며 체제 내 프로파간다로서 재조직되었다.
여전히 살아 있는 죽음정치
저자는 식민지 시기 야담이 보여 주는 다채로운 모습들을 책에 담아내려 했다고 밝힌다. 저자의 말대로, 식민지 시기의 야담이 보여 주는 이 다채롭고 역동적인 양상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서가 한 권도 없다는 점도 저자의 분발을 촉구했다. 저자는 후기에서 주장한다. 식민지 시기의 야담이 걸어간 행로는 때로 현재의 한국 사회의 모습과 섬뜩하리만치 닮아 있다고. 실제로 ‘그 용사에 그 유가족’이라는 표준화된 규범은 유가족들의 이후 삶을 지배하며 국가 귀속과 충성을 일원화했다.
한국 사회의 탈식민화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로만 존재하고 있다. 일본은 전시 총동원을 위해 식민지 조선인들을 ‘황민’이란 이름으로 불러냈다. ‘황민’은 일본 국민을 뜻하는 이름이었고, 이 ‘황민’이 되는 과정에 병역의 의무와 같은 ‘죽음정치’가 존재했다. 죽음을 통한 ‘황민’의 자기 증명은 따라서 식민지 조선인이 일본 ‘국민’이 된다는 것의 폭력성을 예고했다. 삶의 명예이자 영광으로 칭송된 이 죽음정치의 만연이야말로 일본 ‘국민’이 되는 데 따른 식민지 조선인이 치러야 할 값(비)싼 대가였다.
▣ 작가 소개
저 : 공임순
1969년 창원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국문과 및 동대학 석박사 과정을 거쳐 현재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남북한 지도자의 형상과 서사화 방식에 관한 연구’ 및 ‘전시교양과 위인 담론―일상과 동원의 내적 역학’의 지원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우리 역사소설은 이론과 논쟁이 필요하다』(2000)와 『식민지의 적자들』(2005)이 있고, 옮긴 책으로 『환상성』(공역, 2004),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공역, 2004), 『페미니즘 위대한 역설』(공역, 2006), 『식민지 시기 야담의 오락성과 프로파간다』가 있다. 식민지기와 해방 후, 역사소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야담은 사라진 옛이야기인가?
1장 왜 ‘야담’인가?
2장 대중매체의 출현과 현대적 오락물로서 ‘야담’
2-1 김진구의 야담‘운동’과 역사교화주의
2_2 2-2 부인=대중의 원시적 표상과 하향적 대중화
2_3 2-3 문예와 야담, 그 젠더화의 역학
2_4 2-4 라디오‘야담’과 야담전문지의 활약
3장 전시 총동원과 야담의 프로파간다화
3_1 3-1 전쟁의 확대와 식민지 조선인의 일본인 ‘되기’
3_2 3-2 ‘3용사’와 이인석, 일본과 조선의 두 용사상과 ‘전쟁미담’의 전성시대
3_3 3-3 찾아가는 국책의 ‘메신저’, 야담가의 체제 동원과 협력의 양상
3_4 3-4 ‘나가라’라고 말하는 어머니, 군국의 어머니상
4장 야담을 통해서 본 식민지 조선의 낯선 혹은 낯익은 풍경들
결론을 대신하며
백 년 전의 ‘뉴 미디어’
이 책의 의의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야담’이 무엇인지부터 짚고 넘어가야 한다. 그만큼 야담은 이제 잊혀진 개념, 지칭할 대상을 잃어버린 사어死語, 문학 쪽 전문가들이나 가끔 입에 올리는 고어古語가 되어 버렸다. 야담은 이를 가리키는 한자 ‘野談’에서도 알 수 있듯이, 민간에 떠도는 ‘야사’를 근간으로 한 이야기다. ‘야사野史’는 공식 역사가 아닌 비공식 역사, 그것도 비주류 역사로서 정통성과 합법성을 확보하지 못한 불완전한 민중사의 또 다른 이름이다. 여기서 저자가 왜 야담을, 그것도 식민지기 야담을 연구 주제로 삼았는지를 알 수 있다.
불완전한 비공식 역사로서의 ‘야사’와 이 ‘야사’를 토대로 한 이야기로서의 ‘야담’은 그 태생부터가 중심과는 거리가 먼 주변부성을 보인다. 그러나 비공식적인 ? 불완전한 민중사였기 때문에 그만큼 일반 대중의 삶과 가까웠고, 당대의 굴절과 변화상을 예민하게 담지하고 있었다. 더구나 당시는 전 세계적인 보편 이념으로서 도래한 ‘근대’의 유례없는 충격과 압력이 일반 민중의 삶에까지 영향을 주고, 그 결과 조선을 포함하여 전 세계의 80퍼센트가 소수 열강의 식민지로 전락한 시기가 아닌가. 이런 상황에서 ‘야담’은 단순히 재래의 ‘조선적인’ 이야기가 아닌, 근대 지知에 의해 새롭게 재창출된 ‘뉴’미디어로서 존재하게 되었다.
교화냐 오락이냐, 야담의 존재 방식
이 책이 묻고자 하는 것은 그래서 식민지 시기 야담의 ‘존재 방식’이다. 전 세계적인 근대 지知의 시선 아래에서 재구성되어야 했던 야담은, 재래의 ‘야담’을 단순히 연장한 것이거나 계승한 것일 수 없었다. 근대 지知에 의해 새롭게 재창출된 ‘야담’은 식민지로 전락한 한반도의 당면한 현실적 위기 앞에서 식민지 조선의 지식인들에 의해 재구성되는 사회역사적 도정을 보여 준다. 이 책이 야담의 ‘무엇’이 아니라 야담의 ‘어떻게’에 초점을 맞추고자 했던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식민지 조선의 ‘야담’이 지닌 교화와 오락의 갈등하는 면모는 일본의 전쟁 확대와 가속화 속에서 급속하게 체제 내화되어 갔다. 여기에 징병제의 실시는 식민지 조선인이 병사로 차출된다는 것의 의미를 재인식시키며, 이에 따른 대중 계도와 교화를 불가피하게 만들었다. 이 대중 계도와 교화의 한 축을 담당했던 것이 바로 ‘야담’이었다.
‘혈서’로 변한 야담
이 대목에서 등장하는 이름이 이/인/석이다. 이인석은 식민지 조선에서 지원병제도가 실시된 이후, 중국 전선에서 사망한 첫 번째 지원병 전사자이다. 그의 전사 이후 벌어진 대대적인 추모 열기는 1932년 상해사변에서 사망한 일본의 ‘3용사’에 비견될 만했다. 이인석에 대한 추모 열기의 배후에는 식민권력에 의한 ‘전쟁미담’의 독려가 있었다.
이렇게 전선에서의 죽음을 미화하는 것은 군국주의의 대표적인 모습이다. ‘전쟁미담’의 전성시대는 또한 혈서의 시대이기도 했다. 박정희의 만주군 지원 혈서가 한국 사회를 들썩이게 했듯이, 이 시기에 수많은 혈서의 사연이 대중매체를 수놓았다. ‘혈서’라는 문학작품이 나오는 등, 피를 통한 국가봉공은 혈세血稅로서 당연시되었다. 야담은 이 전시 분위기를 반영하며 체제 내 프로파간다로서 재조직되었다.
여전히 살아 있는 죽음정치
저자는 식민지 시기 야담이 보여 주는 다채로운 모습들을 책에 담아내려 했다고 밝힌다. 저자의 말대로, 식민지 시기의 야담이 보여 주는 이 다채롭고 역동적인 양상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한 제대로 된 연구서가 한 권도 없다는 점도 저자의 분발을 촉구했다. 저자는 후기에서 주장한다. 식민지 시기의 야담이 걸어간 행로는 때로 현재의 한국 사회의 모습과 섬뜩하리만치 닮아 있다고. 실제로 ‘그 용사에 그 유가족’이라는 표준화된 규범은 유가족들의 이후 삶을 지배하며 국가 귀속과 충성을 일원화했다.
한국 사회의 탈식민화는 아직 도래하지 않은 미래로만 존재하고 있다. 일본은 전시 총동원을 위해 식민지 조선인들을 ‘황민’이란 이름으로 불러냈다. ‘황민’은 일본 국민을 뜻하는 이름이었고, 이 ‘황민’이 되는 과정에 병역의 의무와 같은 ‘죽음정치’가 존재했다. 죽음을 통한 ‘황민’의 자기 증명은 따라서 식민지 조선인이 일본 ‘국민’이 된다는 것의 폭력성을 예고했다. 삶의 명예이자 영광으로 칭송된 이 죽음정치의 만연이야말로 일본 ‘국민’이 되는 데 따른 식민지 조선인이 치러야 할 값(비)싼 대가였다.
▣ 작가 소개
저 : 공임순
1969년 창원에서 태어났다. 서강대학교 국문과 및 동대학 석박사 과정을 거쳐 현재 서강대 인문과학연구소 연구원으로 재직 중이다. ‘남북한 지도자의 형상과 서사화 방식에 관한 연구’ 및 ‘전시교양과 위인 담론―일상과 동원의 내적 역학’의 지원 과제를 수행하고 있다.
저서로 『우리 역사소설은 이론과 논쟁이 필요하다』(2000)와 『식민지의 적자들』(2005)이 있고, 옮긴 책으로 『환상성』(공역, 2004), 『내셔널리즘과 섹슈얼리티』(공역, 2004), 『페미니즘 위대한 역설』(공역, 2006), 『식민지 시기 야담의 오락성과 프로파간다』가 있다. 식민지기와 해방 후, 역사소설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야담은 사라진 옛이야기인가?
1장 왜 ‘야담’인가?
2장 대중매체의 출현과 현대적 오락물로서 ‘야담’
2-1 김진구의 야담‘운동’과 역사교화주의
2_2 2-2 부인=대중의 원시적 표상과 하향적 대중화
2_3 2-3 문예와 야담, 그 젠더화의 역학
2_4 2-4 라디오‘야담’과 야담전문지의 활약
3장 전시 총동원과 야담의 프로파간다화
3_1 3-1 전쟁의 확대와 식민지 조선인의 일본인 ‘되기’
3_2 3-2 ‘3용사’와 이인석, 일본과 조선의 두 용사상과 ‘전쟁미담’의 전성시대
3_3 3-3 찾아가는 국책의 ‘메신저’, 야담가의 체제 동원과 협력의 양상
3_4 3-4 ‘나가라’라고 말하는 어머니, 군국의 어머니상
4장 야담을 통해서 본 식민지 조선의 낯선 혹은 낯익은 풍경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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