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물고기 박사’가 들려주는 대한민국 바닷물고기에 대한 첫 보고서!
고등어는 왜 등이 푸를까? 그 흔하던 명태는 왜 더 이상 잡히지 않을까? 넙치와 가자미는 눈이 왜 한쪽에 몰려 있을까? 뱀장어는 왜 회로 먹지 않을까? 자연산 복어에는 독이 있는데, 왜 양식한 복어에는 독이 없을까?
밥상에서, 바닷가에서, 횟집에서, 생선을 먹을 때면 한번쯤은 이런 의문을 품어 보았을 것이다. 30여 년간 어류를 연구해 온 ‘물고기 박사’ 황선도의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는 이처럼 우리가 늘 보고 먹지만 잘 몰랐던 물고기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주는 책이다.
1월 명태, 4월 조기, 10월 고등어 등 1년 열두 달에 맞춰 매월 가장 맛있는 제철 물고기를 선정하여 생태는 물론 이름의 유래와 관련 속담, 맛있게 먹는 법, 조사 현장에서 겪은 재미난 일까지 맛깔나게 들려주는 이 책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에서 바닷물고기를 다룬 첫 교양서라는 점에서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바닷속 생명의 역동성을 포착한 뛰어난 생태서
『멸치…』는 바닷물고기의 생태를 생생하게 전해 주는 뛰어난 생태서이다. 너무 익숙하기에 잘 몰랐던 물고기의 생태, 그리고 그 안에 숨은 갖가지 진화의 비밀을 들려준다.
고등어는 왜 등이 푸를까? 몸 색깔에 담긴 진화의 비밀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 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 주시려 하셨나 보다. 나는 내일 아침이면 고등어구이를 먹을 수 있네.”
대중가요로 불릴 만큼 우리와 친숙한 생선, 고등어. 그런데 고등어의 몸 색깔에 진화의 비밀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떠살이 물고기는 대체로 등 쪽이 푸르고 배 쪽은 은백색이다. 등 색깔이 푸른 것은 먹잇감을 찾아 배회하는 바닷새가 하늘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바다색과 구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특히 고등어 등에 있는 녹청색의 물결무늬는 물결이 어른거리는 자국과 같은 모양이다. 그리고 물 밑에서 수면을 보면 햇빛이 투과되어 은백색으로 보이는데, 고등어 또한 배가 은백색이어서 물 밑에 있는 포식자가 위를 쳐다보았을 때 분간하기 힘들다. 이와 같이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변 환경에 적응하여 자신을 숨기는 고등어의 보호색은 훌륭한 위장술이다. _193쪽
뿐만 아니라 고등어는 5월에 태어나 그해 늦가을이면 이미 평생 자랄 키의 3분의 2가 자랄 만큼 빨리 성장하는데, 물고기 박사도 의심할 만큼 놀라운 성장 속도 역시 생존 전략의 하나다.
이와 같은 빠른 초기 성장을 처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어서 분석이 틀린 것 아닌가 고민도 많이 했다. 결국 학위를 받고도 수년에 걸쳐 재고하고 또 재고하여 해외 유명 저널에 실렸으니 검증을 받은 셈이다. 어렵게 박사 과정을 밟는 중에 태어난 딸 지원이가 벌써 중학생이 되어 자기 엄마 귀밑까지 자란 것을 보면, 물고기나 사람이나 초기 성장이 엄청 빠른 듯하다. 빨리 자라 취약한 어린 시기를 탈출하려는 생존 전략일 것이다. _202쪽
서서 사냥하는 물고기 봤어? 성질 사나운 갈치의 사냥법
9월, 요즘이 제철인 갈치는 몸이 길고 납작한 띠 모양으로 이름도 ‘칼을 닮은 물고기’라는 뜻이다. 그런데 생긴 것뿐 아니라 사냥하는 자세도 ‘칼’같다. 다른 물고기들이 보통 옆으로 헤엄치며 먹잇감을 잡는 것과 달리 갈치는 꼿꼿이 서서 사냥한다.
2006년 여수에 있는 남해수산연구소에 근무할 때이다. 한국방송 창원방송총국에서 남해의 대표 어종인 멸치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 참여한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 촬영한 영상 중에 갈치가 멸치를 잡아먹는 장면이 있는데, 표층에 떠다니는 멸치 떼 아래에 갈치가 ‘칼’같이 서서 낚아채듯 잡아먹는 것을 보고 참으로 신기했다. _171쪽
이런 습성 때문에 일본에서는 ‘서 있는 물고기’라고도 부른다. 갈치는 성질도 사나워 자기 동족까지 잡아먹는다. 오죽하면 갈치를 미끼로 다른 갈치를 낚겠는가.
홍어는 ‘순정 마초’, 암놈 잡으면 수놈도 딸려 오네
홍어는 유독 성(性)과 관련해 입길에 오르내리는 물고기이다. 암놈을 잡으면 수놈이 붙어 올라오는 걸 두고 정약전 선생은 색을 밝히다 죽음을 자초한다고 『자산어보』에서 훈계했을 정도. 그러나 알고 보면 홍어는 철저한 일부일처주의자이다. 죽어 가는 암놈을 움켜잡는 수놈의 집착을 저자는 죽음을 뛰어넘는 순정이라 ‘변호’한다. 또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라는 불명예스러운 말에도 물고기 박사만의 독특한 해석을 더한다.
수컷의 생식기는 체반 끝 꼬리 시작 부위 양쪽으로 두 개가 툭 삐져나와 있고 가시가 붙어 있는데, 옛날 뱃사람들은 생식기가 조업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가시에 손을 다칠 수도 있어 잡자마자 배 위에서 칼로 쳐 없애 버렸다.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라는 비속어는 바로 이러한 조업 행태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그 말이 참홍어 생식기가 두 개라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중요한 물건이 하나도 아니고 두 개라는 것에서 이미 희소성이 없어졌으니 말이다. _219쪽
열두 달 제철 물고기를 제대로 먹게 해 주는 요리서
『멸치…』는 1년 열두 달, 각 달에 맞는 제철 물고기를 선정하여 어떻게 먹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잘 알아야 잘 먹을 수도 있는 법. 무엇보다 물고기는 산란기를 알아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산란을 위해 몸을 살찌우고 양분을 저장하기 때문이다. 산란철이 지나면 영양분이 다 빠지고 맛도 없어진다. 때로는 뱀장어처럼 모든 기운을 다 쏟아내고 숭고한 죽음을 맞는 물고기도 있다.
8월 뱀장어 _왜 회로는 먹지 않을까
바다에서 태어나 강으로 와서 성장하는 뱀장어는 맛과 영양이 좋은 대표적인 보양식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중국도 그렇다. 보통 뱀장어는 소금이나 양념을 뿌려 구이로 먹는다. 대부분 흰 살 어류는 회로 많이 먹는데, 이렇게 맛 좋은 뱀장어는 대체 왜 회로 먹지 않을까.
뱀장어의 피에는 이크티오톡신이라는 독이 있어 이 독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크티오톡신은 인간의 체내에 들어가면 중독 증상을 일으키며 눈에 들어가면 결막염을, 상처에 묻으면 염증을 일으킨다. 그러나 열을 가하면 이런 독성이 곧 없어진다. 그래서 뱀장어는 주로 구워 먹는다. _163쪽
11월 홍어 _홍탁삼합에 담긴 궁합
소설가 황석영이 “맛의 혁명”이라고 극찬했던 홍어. 남도 음식의 백미로 손꼽히는 홍어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코를 움켜쥐게 만드는 그 고약한 냄새와 톡 쏘는 맛 때문인데, 이는 신장의 요소를 재흡수하는 연골어류만의 독특한 삼투 조절 방식의 결과이다.
참홍어는 혈액 속에 요소와 요소 이전의 물질인 트리메틸아민산이 많이 들어 있어 체내 삼투압이 해수와 거의 같고, 오히려 신장으로부터 요소를 배출하지 않고 재흡수하여 높은 삼투압을 유지한다. 참홍어가 죽으면 몸속의 요소가 암모니아와 트리메틸아민으로 분해되면서 자극적인 냄새가 나는데, 이 두 물질이 코끝을 톡 쏘는 맛의 원인 물질이다. _211쪽
참홍어는 삭히면 맛과 영양이 더 좋아진다. 보통 참홍어는 막걸리와 함께 먹는데, 뜨거운 성질의 막걸리와 만나면 홍어의 찬 성질이 중화되니 홍탁삼합에는 이 같은 음식 궁합이 녹아 있다. 그렇다면 삭힌 홍어는 어떻게 먹어야 그 맛을 음미할 수 있을까.
홍어 한 점을 입에 머금고 지그시 눈을 감아 보라. 입안에서 한 입씩 씹을수록 뒷맛의 아련한 자극이 입 뒷부분에서 터진다. 잘 삭힌 홍어를 씹으며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알싸하고 지린 냄새가 목을 거쳐 콧구멍 구석구석에 박혀 있다가 숨을 내쉴 때마다 냄새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다. _212쪽
12월 과메기 _청어와 꽁치의 ‘지존’ 대결
전라도에 홍어가 있다면 경상도에는 과메기가 있다. 또 하나의 겨울철 별미인 과메기의 ‘지존’ 자리를 두고 물고기들의 자존심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원조인 청어와 대중화 주역인 꽁치가 그 주인공. 재미난 것은 여기에 정어리가 끼어들어 묘한 ‘삼각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 본래 과메기의 원료는 청어였다. 그러다 1960년대 어획량이 줄면서 꽁치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는데, 청어가 사라진 시점에 정어리가 갑자기 늘었다.
최근, 사라졌던 청어가 돌아오고 있다. 반면 꽁치는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정어리를 눈여겨볼 차례. 올겨울엔 이 얘기를 안주 삼아 ‘원조 과메기’를 맛보아도 좋겠다.
해양학자의 세계를 맛보게 해 주는 해양생활 안내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오랜 세월 바다를 지켜 온 해양수산학자의 삶을 함께하는 재미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매일같이 배를 타면서도 태평양의 거친 파도에 뱃멀미가 나 정신을 잃기도 하고, 밤새 뱀장어를 조사하고 돌아와 소주 한잔에 출출한 뱃속을 달래기도 한다. 어민들과 오래 인연을 맺은 덕분에 낙동강 한가운데서 자연산 뱀장어를 대접받기도 하고 민어회, 갈치속젓 같은 별미에 회포를 풀기도 한다. 맛과 멋이 함께하는 글 속에는 학자로서의 자부심이 엿보인다.
죽어 가는 조피볼락을 살린 선상의 ‘구침지회’
저자가 충남 태안에 조성된 시범 바다 목장에서 조피볼락을 조사하던 때였다. 조피볼락이 얼마나 있는지를 알아보려면 일단 잡아서 표시를 한 뒤 다시 놔줘야 했는데, 잡고 보니 아뿔싸! 복어처럼 배가 부풀어 하늘을 향해 뒤집혀 있는 게 아닌가. 바다 바닥에 살던 조피볼락이 갑자기 위로 끌어올려지면서 수압 차이로 뱃속에 공기가 들어간 것이다. 발을 동동 구르던 저자를 살린 것은 조사선의 선장이었다.
그때 우리 일을 도와주던 갈매기호 선장이 주삿바늘 하나를 가져왔다. 그러더니 조피볼락 가슴지느러미를 젖히고 침을 놓듯 바늘을 꽂았다. 축구공에서 바람 빠지듯 피시식, 침을 맞은 조피볼락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생생하게 헤엄치며 돌아다녔다. 소설 『동의보감』에 나오는 유의태의 ‘구침지회’(九針之會)를 보는 듯하였다. _112~113쪽
뭍에 사는 인간에게 바다 생활이 즐거울 수만은 없는 일. 하지만 저자는 이런 재미난 경험 덕분에 연구자들이 어려움을 잊고 다시 바다로 나갈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30년간 바다를 지켜 온 해양학자의 애정과 안타까움
바다와 물고기를 연구하며 청춘을 보낸 저자는 요즘 마음이 아프다. 갈수록 바다와 하구 생태계가 황폐해져 가고 있기 때문. 그 많던 명태는 더 이상 잡을 수 없고, 황복과 뱀장어는 하굿둑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하며, 작디작은 멸치 떼는 어군탐지기를 앞세운 대규모 선단에 깡그리 잡혀 간다. 10년 전, 서울 친구들과 숭어회로 회포를 풀던 금강 하구의 횟집은 하구가 막히면서 폐허가 된 건물만 남았다. 기후변화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람이다.
요즘 떼를 지어 사는 물고기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그물을 둘러쳐 한꺼번에 모두 잡아 버리는 인간이다. 물속의 포식자를 상대할 때는 떼 지어 다니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지만, 인간이라는 포식자 앞에서는 무리를 이루는 것이 오히려 불리하게 되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중략) 어쩌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의 축적을 위해 어획 강도를 높이는 인간이란 포식자를 관리하는 것이 그 해법일 것이다. _100쪽
『파브르 곤충기』, 『시튼 동물기』가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은 곤충과 동물에 대한 그들의 애정이 글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멸치…』에는 바다와 물고기를 향한 저자의 애정과 염려가 책 곳곳에 녹아 있다. 30년간 바다를 지켜 온 해양학자의 안타까움에 우리 모두 귀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닐까.
▣ 주요 목차
-서문
-용어 설명
1월 명태 사라진 명태를 현상 수배합니다
2월 아귀 쓸모없던 물텀벙의 인생 역전
3월 숭어 배꼽 달린 물고기를 아시나요
4월 실치와 조기 ‘영광’은 계속되어야 한다
5월 멸치 그 작은 머릿속에 블랙박스가!
6월 조피볼락과 넙치 서민에게 사랑받는 국민 횟감
7월 복어 빵빵한 뱃속엔 뭐가 들었을까
8월 뱀장어 아직도 다 풀지 못한 산란 미스터리
9월 갈치와 전어 가을에 만나는 은백의 밸리댄서와 고소한 뼈꼬시
10월 고등어 전지현 뺨치는 에스라인은 진화의 산물
11월 홍어 죽음을 뛰어넘는 지고지순 로맨스
12월 꽁치와 청어 과메기 원조 청어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물고기 박사’가 들려주는 대한민국 바닷물고기에 대한 첫 보고서!
고등어는 왜 등이 푸를까? 그 흔하던 명태는 왜 더 이상 잡히지 않을까? 넙치와 가자미는 눈이 왜 한쪽에 몰려 있을까? 뱀장어는 왜 회로 먹지 않을까? 자연산 복어에는 독이 있는데, 왜 양식한 복어에는 독이 없을까?
밥상에서, 바닷가에서, 횟집에서, 생선을 먹을 때면 한번쯤은 이런 의문을 품어 보았을 것이다. 30여 년간 어류를 연구해 온 ‘물고기 박사’ 황선도의 『멸치 머리엔 블랙박스가 있다』는 이처럼 우리가 늘 보고 먹지만 잘 몰랐던 물고기에 대한 궁금증을 풀어 주는 책이다.
1월 명태, 4월 조기, 10월 고등어 등 1년 열두 달에 맞춰 매월 가장 맛있는 제철 물고기를 선정하여 생태는 물론 이름의 유래와 관련 속담, 맛있게 먹는 법, 조사 현장에서 겪은 재미난 일까지 맛깔나게 들려주는 이 책은 삼면이 바다로 둘러싸인 대한민국에서 바닷물고기를 다룬 첫 교양서라는 점에서도 각별한 의미가 있다.
바닷속 생명의 역동성을 포착한 뛰어난 생태서
『멸치…』는 바닷물고기의 생태를 생생하게 전해 주는 뛰어난 생태서이다. 너무 익숙하기에 잘 몰랐던 물고기의 생태, 그리고 그 안에 숨은 갖가지 진화의 비밀을 들려준다.
고등어는 왜 등이 푸를까? 몸 색깔에 담긴 진화의 비밀
“한밤중에 목이 말라 냉장고를 열어 보니 한 귀퉁이에 고등어가 소금에 절여져 있네. 어머니는 고등어를 구워 주시려 하셨나 보다. 나는 내일 아침이면 고등어구이를 먹을 수 있네.”
대중가요로 불릴 만큼 우리와 친숙한 생선, 고등어. 그런데 고등어의 몸 색깔에 진화의 비밀이 숨어 있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떠살이 물고기는 대체로 등 쪽이 푸르고 배 쪽은 은백색이다. 등 색깔이 푸른 것은 먹잇감을 찾아 배회하는 바닷새가 하늘에서 내려다보았을 때 바다색과 구별하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특히 고등어 등에 있는 녹청색의 물결무늬는 물결이 어른거리는 자국과 같은 모양이다. 그리고 물 밑에서 수면을 보면 햇빛이 투과되어 은백색으로 보이는데, 고등어 또한 배가 은백색이어서 물 밑에 있는 포식자가 위를 쳐다보았을 때 분간하기 힘들다. 이와 같이 약육강식의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주변 환경에 적응하여 자신을 숨기는 고등어의 보호색은 훌륭한 위장술이다. _193쪽
뿐만 아니라 고등어는 5월에 태어나 그해 늦가을이면 이미 평생 자랄 키의 3분의 2가 자랄 만큼 빨리 성장하는데, 물고기 박사도 의심할 만큼 놀라운 성장 속도 역시 생존 전략의 하나다.
이와 같은 빠른 초기 성장을 처음에는 상상조차 할 수 없어서 분석이 틀린 것 아닌가 고민도 많이 했다. 결국 학위를 받고도 수년에 걸쳐 재고하고 또 재고하여 해외 유명 저널에 실렸으니 검증을 받은 셈이다. 어렵게 박사 과정을 밟는 중에 태어난 딸 지원이가 벌써 중학생이 되어 자기 엄마 귀밑까지 자란 것을 보면, 물고기나 사람이나 초기 성장이 엄청 빠른 듯하다. 빨리 자라 취약한 어린 시기를 탈출하려는 생존 전략일 것이다. _202쪽
서서 사냥하는 물고기 봤어? 성질 사나운 갈치의 사냥법
9월, 요즘이 제철인 갈치는 몸이 길고 납작한 띠 모양으로 이름도 ‘칼을 닮은 물고기’라는 뜻이다. 그런데 생긴 것뿐 아니라 사냥하는 자세도 ‘칼’같다. 다른 물고기들이 보통 옆으로 헤엄치며 먹잇감을 잡는 것과 달리 갈치는 꼿꼿이 서서 사냥한다.
2006년 여수에 있는 남해수산연구소에 근무할 때이다. 한국방송 창원방송총국에서 남해의 대표 어종인 멸치의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데 참여한 적이 있다. 그 프로그램에서 촬영한 영상 중에 갈치가 멸치를 잡아먹는 장면이 있는데, 표층에 떠다니는 멸치 떼 아래에 갈치가 ‘칼’같이 서서 낚아채듯 잡아먹는 것을 보고 참으로 신기했다. _171쪽
이런 습성 때문에 일본에서는 ‘서 있는 물고기’라고도 부른다. 갈치는 성질도 사나워 자기 동족까지 잡아먹는다. 오죽하면 갈치를 미끼로 다른 갈치를 낚겠는가.
홍어는 ‘순정 마초’, 암놈 잡으면 수놈도 딸려 오네
홍어는 유독 성(性)과 관련해 입길에 오르내리는 물고기이다. 암놈을 잡으면 수놈이 붙어 올라오는 걸 두고 정약전 선생은 색을 밝히다 죽음을 자초한다고 『자산어보』에서 훈계했을 정도. 그러나 알고 보면 홍어는 철저한 일부일처주의자이다. 죽어 가는 암놈을 움켜잡는 수놈의 집착을 저자는 죽음을 뛰어넘는 순정이라 ‘변호’한다. 또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라는 불명예스러운 말에도 물고기 박사만의 독특한 해석을 더한다.
수컷의 생식기는 체반 끝 꼬리 시작 부위 양쪽으로 두 개가 툭 삐져나와 있고 가시가 붙어 있는데, 옛날 뱃사람들은 생식기가 조업에 방해가 될 뿐만 아니라 가시에 손을 다칠 수도 있어 잡자마자 배 위에서 칼로 쳐 없애 버렸다. “만만한 게 홍어 거시기”라는 비속어는 바로 이러한 조업 행태에서 비롯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러나 내 생각에는 그 말이 참홍어 생식기가 두 개라는 사실에서 나온 것이 아닌가 싶다. 그 중요한 물건이 하나도 아니고 두 개라는 것에서 이미 희소성이 없어졌으니 말이다. _219쪽
열두 달 제철 물고기를 제대로 먹게 해 주는 요리서
『멸치…』는 1년 열두 달, 각 달에 맞는 제철 물고기를 선정하여 어떻게 먹으면 더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를 알려준다. 잘 알아야 잘 먹을 수도 있는 법. 무엇보다 물고기는 산란기를 알아야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산란을 위해 몸을 살찌우고 양분을 저장하기 때문이다. 산란철이 지나면 영양분이 다 빠지고 맛도 없어진다. 때로는 뱀장어처럼 모든 기운을 다 쏟아내고 숭고한 죽음을 맞는 물고기도 있다.
8월 뱀장어 _왜 회로는 먹지 않을까
바다에서 태어나 강으로 와서 성장하는 뱀장어는 맛과 영양이 좋은 대표적인 보양식으로 꼽힌다. 우리나라뿐 아니라 일본, 중국도 그렇다. 보통 뱀장어는 소금이나 양념을 뿌려 구이로 먹는다. 대부분 흰 살 어류는 회로 많이 먹는데, 이렇게 맛 좋은 뱀장어는 대체 왜 회로 먹지 않을까.
뱀장어의 피에는 이크티오톡신이라는 독이 있어 이 독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 어렵기 때문이다. 이크티오톡신은 인간의 체내에 들어가면 중독 증상을 일으키며 눈에 들어가면 결막염을, 상처에 묻으면 염증을 일으킨다. 그러나 열을 가하면 이런 독성이 곧 없어진다. 그래서 뱀장어는 주로 구워 먹는다. _163쪽
11월 홍어 _홍탁삼합에 담긴 궁합
소설가 황석영이 “맛의 혁명”이라고 극찬했던 홍어. 남도 음식의 백미로 손꼽히는 홍어는 사람에 따라 호불호가 크게 갈린다. 코를 움켜쥐게 만드는 그 고약한 냄새와 톡 쏘는 맛 때문인데, 이는 신장의 요소를 재흡수하는 연골어류만의 독특한 삼투 조절 방식의 결과이다.
참홍어는 혈액 속에 요소와 요소 이전의 물질인 트리메틸아민산이 많이 들어 있어 체내 삼투압이 해수와 거의 같고, 오히려 신장으로부터 요소를 배출하지 않고 재흡수하여 높은 삼투압을 유지한다. 참홍어가 죽으면 몸속의 요소가 암모니아와 트리메틸아민으로 분해되면서 자극적인 냄새가 나는데, 이 두 물질이 코끝을 톡 쏘는 맛의 원인 물질이다. _211쪽
참홍어는 삭히면 맛과 영양이 더 좋아진다. 보통 참홍어는 막걸리와 함께 먹는데, 뜨거운 성질의 막걸리와 만나면 홍어의 찬 성질이 중화되니 홍탁삼합에는 이 같은 음식 궁합이 녹아 있다. 그렇다면 삭힌 홍어는 어떻게 먹어야 그 맛을 음미할 수 있을까.
홍어 한 점을 입에 머금고 지그시 눈을 감아 보라. 입안에서 한 입씩 씹을수록 뒷맛의 아련한 자극이 입 뒷부분에서 터진다. 잘 삭힌 홍어를 씹으며 숨을 깊게 들이마시면 알싸하고 지린 냄새가 목을 거쳐 콧구멍 구석구석에 박혀 있다가 숨을 내쉴 때마다 냄새가 다시 살아나는 느낌이다. _212쪽
12월 과메기 _청어와 꽁치의 ‘지존’ 대결
전라도에 홍어가 있다면 경상도에는 과메기가 있다. 또 하나의 겨울철 별미인 과메기의 ‘지존’ 자리를 두고 물고기들의 자존심 대결이 벌어지고 있다. 원조인 청어와 대중화 주역인 꽁치가 그 주인공. 재미난 것은 여기에 정어리가 끼어들어 묘한 ‘삼각관계’가 만들어지고 있다는 사실. 본래 과메기의 원료는 청어였다. 그러다 1960년대 어획량이 줄면서 꽁치가 그 자리를 대신하게 되었는데, 청어가 사라진 시점에 정어리가 갑자기 늘었다.
최근, 사라졌던 청어가 돌아오고 있다. 반면 꽁치는 자취를 감추었다. 그렇다면 이제는 정어리를 눈여겨볼 차례. 올겨울엔 이 얘기를 안주 삼아 ‘원조 과메기’를 맛보아도 좋겠다.
해양학자의 세계를 맛보게 해 주는 해양생활 안내서
이 책을 읽다 보면 오랜 세월 바다를 지켜 온 해양수산학자의 삶을 함께하는 재미도 얻을 수 있다. 저자는 매일같이 배를 타면서도 태평양의 거친 파도에 뱃멀미가 나 정신을 잃기도 하고, 밤새 뱀장어를 조사하고 돌아와 소주 한잔에 출출한 뱃속을 달래기도 한다. 어민들과 오래 인연을 맺은 덕분에 낙동강 한가운데서 자연산 뱀장어를 대접받기도 하고 민어회, 갈치속젓 같은 별미에 회포를 풀기도 한다. 맛과 멋이 함께하는 글 속에는 학자로서의 자부심이 엿보인다.
죽어 가는 조피볼락을 살린 선상의 ‘구침지회’
저자가 충남 태안에 조성된 시범 바다 목장에서 조피볼락을 조사하던 때였다. 조피볼락이 얼마나 있는지를 알아보려면 일단 잡아서 표시를 한 뒤 다시 놔줘야 했는데, 잡고 보니 아뿔싸! 복어처럼 배가 부풀어 하늘을 향해 뒤집혀 있는 게 아닌가. 바다 바닥에 살던 조피볼락이 갑자기 위로 끌어올려지면서 수압 차이로 뱃속에 공기가 들어간 것이다. 발을 동동 구르던 저자를 살린 것은 조사선의 선장이었다.
그때 우리 일을 도와주던 갈매기호 선장이 주삿바늘 하나를 가져왔다. 그러더니 조피볼락 가슴지느러미를 젖히고 침을 놓듯 바늘을 꽂았다. 축구공에서 바람 빠지듯 피시식, 침을 맞은 조피볼락은 언제 그랬냐는 듯이 생생하게 헤엄치며 돌아다녔다. 소설 『동의보감』에 나오는 유의태의 ‘구침지회’(九針之會)를 보는 듯하였다. _112~113쪽
뭍에 사는 인간에게 바다 생활이 즐거울 수만은 없는 일. 하지만 저자는 이런 재미난 경험 덕분에 연구자들이 어려움을 잊고 다시 바다로 나갈 힘을 얻는다고 말한다.
30년간 바다를 지켜 온 해양학자의 애정과 안타까움
바다와 물고기를 연구하며 청춘을 보낸 저자는 요즘 마음이 아프다. 갈수록 바다와 하구 생태계가 황폐해져 가고 있기 때문. 그 많던 명태는 더 이상 잡을 수 없고, 황복과 뱀장어는 하굿둑에 막혀 오도 가도 못하며, 작디작은 멸치 떼는 어군탐지기를 앞세운 대규모 선단에 깡그리 잡혀 간다. 10년 전, 서울 친구들과 숭어회로 회포를 풀던 금강 하구의 횟집은 하구가 막히면서 폐허가 된 건물만 남았다. 기후변화보다 더 무서운 것이 사람이다.
요즘 떼를 지어 사는 물고기에게 가장 무서운 적은 그물을 둘러쳐 한꺼번에 모두 잡아 버리는 인간이다. 물속의 포식자를 상대할 때는 떼 지어 다니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지만, 인간이라는 포식자 앞에서는 무리를 이루는 것이 오히려 불리하게 되었으니 아이러니한 일이다. (중략) 어쩌면 배고픔을 해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부의 축적을 위해 어획 강도를 높이는 인간이란 포식자를 관리하는 것이 그 해법일 것이다. _100쪽
『파브르 곤충기』, 『시튼 동물기』가 지금도 많은 사랑을 받는 것은 곤충과 동물에 대한 그들의 애정이 글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멸치…』에는 바다와 물고기를 향한 저자의 애정과 염려가 책 곳곳에 녹아 있다. 30년간 바다를 지켜 온 해양학자의 안타까움에 우리 모두 귀 기울여야 할 때가 아닐까.
▣ 주요 목차
-서문
-용어 설명
1월 명태 사라진 명태를 현상 수배합니다
2월 아귀 쓸모없던 물텀벙의 인생 역전
3월 숭어 배꼽 달린 물고기를 아시나요
4월 실치와 조기 ‘영광’은 계속되어야 한다
5월 멸치 그 작은 머릿속에 블랙박스가!
6월 조피볼락과 넙치 서민에게 사랑받는 국민 횟감
7월 복어 빵빵한 뱃속엔 뭐가 들었을까
8월 뱀장어 아직도 다 풀지 못한 산란 미스터리
9월 갈치와 전어 가을에 만나는 은백의 밸리댄서와 고소한 뼈꼬시
10월 고등어 전지현 뺨치는 에스라인은 진화의 산물
11월 홍어 죽음을 뛰어넘는 지고지순 로맨스
12월 꽁치와 청어 과메기 원조 청어가 다시 돌아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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