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작가 소개
저 : 정약용
다산(茶山)
조선 말기의 실학자. 정조 때의 문신이며, 정치가이자 철학자, 공학자이기도 했다. 본관은 나주, 자는 미용(美庸), 호는 사암·탁옹·태수·자하도인(紫霞道人)·철마산인(鐵馬山人)·다산(茶山), 당호는 여유(與猶)이며, 천주교 교명은 요안,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1776년(정조 즉위) 호조좌랑에 임명된 아버지를 따라 상경, 이듬해 이익의 유고를 얻어보고 그 학문에 감동 받았다. 1783년 회시에 합격, 경의진사가 되어 어전에서 『중용』을 강의하였다. 1784년 이벽에게서 서학(西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책자를 본 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789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가주서를 거쳐 검열이 되었으나, 가톨릭교인이라 하여 탄핵을 받고 해미에 유배되었다. 10일 만에 풀려나와 지평으로 등용되고 1792년 수찬으로 있으면서 서양식 축성법을 기초로 한 성제(城制)와 기중가설(起重架說)을 지어 올려 축조 중인 수원성 수축에 기여하였다.
1794년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 연천현감 서용보를 파직시키는 등 크게 활약하였다. 이듬해 병조참의로 있을 때 주문모 사건에 둘째 형 약전과 함께 연루되어 금정도찰방으로 좌천되었다가 규장각의 부사직을 맡고 97년 승지에 올랐으나 모함을 받자 자명소를 올려 사의를 표명하였다. 그 후 곡산부사로 있으면서 치적을 올렸고, 1799년 병조참의가 되었으나 다시 모함을 받아 사직하였다.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1801년 신유교난 때 장기에 유배, 뒤에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이배되었다.
다산 기슭에 있는 윤박의 산정을 중심으로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18년간 학문에 몰두, 정치기구의 전면적 개혁과 지방행정의 쇄신, 농민의 토지균점과 노동력에 의거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의 폐기 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학문체계는 유형원과 이익을 잇는 실학의 중농주의적 학풍을 계승한 것이며, 또한 박지원을 대표로 하는 북학파의 기술도입론을 받아들여 실학을 집대성한 것이었다.
사실적이며 애국적인 많은 작품을 남겼고, 한국의 역사 · 지리 등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여 주체적 사관을 제시했으며, 합리주의적 과학 정신은 서학을 통해 서양의 과학 지식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저서로 『목민심서』 『경세유표』 『정다산전서』 『아방강역고』 『마과회통』 『자찬묘지명』 『맹자요의』 『논어고금주』 『춘추고징』 『역학제언』 『상서지원록』 『주역심전』 『사례가식』 『상례사전』 『악서고존』 『상서고훈』 『매씨서평』 『모시강의』 『삼미자집』 등이 있다.
편역 : 노만수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경향신문》 기자 생활을 하다가 동아시아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에서 수학한 후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과학기술대학과 북경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했으며, 서울디지털대학 문예창작학부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학 시절 연작시 「중세의 가을」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며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여러 매체에 칼럼을 연재했다.
옮긴 책으로 『논어(論語)와 주판』(삼성경제연구소 추천도서·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사마천 사기(史記)』(국립중앙도서관 추천도서), 『정조(正祖)의 사기영선(史記英選)』, 『헤이안(平安) 일본』, 『미야모토 무사시 오륜서』, 『언지록(言志錄)』, 『섬』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나는 조선의 리얼리스트다"
1 가난한 선비가 자랑인가
2 나라의 안위는 경제에 달렸거늘
3 저잣거리에서 건져 올린 지혜
4 세상이 이다지도 공평하지 못한가
5 산하는 옹색한데 당파 싸움 드세네
6 모든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다
7 백성을 수고롭게 하지 말라
8 오로지 너의 얼굴이 눈에 아른거려
9 돈을 간직하는 최고의 방법은 나눔이다
10 시대를 아파하고 격분하라_ 다산의 시론과 문장론
[부록] 다산약전 : 조선의 실천적 지성인이자 통합학문 백세사
저 : 정약용
다산(茶山)
조선 말기의 실학자. 정조 때의 문신이며, 정치가이자 철학자, 공학자이기도 했다. 본관은 나주, 자는 미용(美庸), 호는 사암·탁옹·태수·자하도인(紫霞道人)·철마산인(鐵馬山人)·다산(茶山), 당호는 여유(與猶)이며, 천주교 교명은 요안, 시호는 문도(文度)이다.
1776년(정조 즉위) 호조좌랑에 임명된 아버지를 따라 상경, 이듬해 이익의 유고를 얻어보고 그 학문에 감동 받았다. 1783년 회시에 합격, 경의진사가 되어 어전에서 『중용』을 강의하였다. 1784년 이벽에게서 서학(西學)에 관한 이야기를 듣고 책자를 본 후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1789년 식년문과에 갑과로 급제하고 가주서를 거쳐 검열이 되었으나, 가톨릭교인이라 하여 탄핵을 받고 해미에 유배되었다. 10일 만에 풀려나와 지평으로 등용되고 1792년 수찬으로 있으면서 서양식 축성법을 기초로 한 성제(城制)와 기중가설(起重架說)을 지어 올려 축조 중인 수원성 수축에 기여하였다.
1794년 경기도 암행어사로 나가 연천현감 서용보를 파직시키는 등 크게 활약하였다. 이듬해 병조참의로 있을 때 주문모 사건에 둘째 형 약전과 함께 연루되어 금정도찰방으로 좌천되었다가 규장각의 부사직을 맡고 97년 승지에 올랐으나 모함을 받자 자명소를 올려 사의를 표명하였다. 그 후 곡산부사로 있으면서 치적을 올렸고, 1799년 병조참의가 되었으나 다시 모함을 받아 사직하였다. 정조가 세상을 떠나자 1801년 신유교난 때 장기에 유배, 뒤에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되어 강진으로 이배되었다.
다산 기슭에 있는 윤박의 산정을 중심으로 유배에서 풀려날 때까지 18년간 학문에 몰두, 정치기구의 전면적 개혁과 지방행정의 쇄신, 농민의 토지균점과 노동력에 의거한 수확의 공평한 분배, 노비제의 폐기 등을 주장하였다. 이러한 학문체계는 유형원과 이익을 잇는 실학의 중농주의적 학풍을 계승한 것이며, 또한 박지원을 대표로 하는 북학파의 기술도입론을 받아들여 실학을 집대성한 것이었다.
사실적이며 애국적인 많은 작품을 남겼고, 한국의 역사 · 지리 등에도 특별한 관심을 보여 주체적 사관을 제시했으며, 합리주의적 과학 정신은 서학을 통해 서양의 과학 지식을 도입하기에 이르렀다. 저서로 『목민심서』 『경세유표』 『정다산전서』 『아방강역고』 『마과회통』 『자찬묘지명』 『맹자요의』 『논어고금주』 『춘추고징』 『역학제언』 『상서지원록』 『주역심전』 『사례가식』 『상례사전』 『악서고존』 『상서고훈』 『매씨서평』 『모시강의』 『삼미자집』 등이 있다.
편역 : 노만수
성균관대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경향신문》 기자 생활을 하다가 동아시아를 공부하기 위해 일본에서 수학한 후 중국으로 건너가 북경과학기술대학과 북경대학교에서 수학했다. 성균관대학교 동아시아학술원에서 동아시아학을 전공했으며, 서울디지털대학 문예창작학부 초빙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대학 시절 연작시 「중세의 가을」로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당선되었으며 《조선일보》, 《중앙일보》, 《동아일보》 등 여러 매체에 칼럼을 연재했다.
옮긴 책으로 『논어(論語)와 주판』(삼성경제연구소 추천도서·학술원 우수학술도서), 『사마천 사기(史記)』(국립중앙도서관 추천도서), 『정조(正祖)의 사기영선(史記英選)』, 『헤이안(平安) 일본』, 『미야모토 무사시 오륜서』, 『언지록(言志錄)』, 『섬』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머리말 "나는 조선의 리얼리스트다"
1 가난한 선비가 자랑인가
2 나라의 안위는 경제에 달렸거늘
3 저잣거리에서 건져 올린 지혜
4 세상이 이다지도 공평하지 못한가
5 산하는 옹색한데 당파 싸움 드세네
6 모든 사람을 살리기 위함이다
7 백성을 수고롭게 하지 말라
8 오로지 너의 얼굴이 눈에 아른거려
9 돈을 간직하는 최고의 방법은 나눔이다
10 시대를 아파하고 격분하라_ 다산의 시론과 문장론
[부록] 다산약전 : 조선의 실천적 지성인이자 통합학문 백세사
01. 반품기한
- 단순 변심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7일 이내 신청
- 상품 불량/오배송인 경우 : 상품 수령 후 3개월 이내, 혹은 그 사실을 알게 된 이후 30일 이내 반품 신청 가능
02. 반품 배송비
반품사유 | 반품 배송비 부담자 |
---|---|
단순변심 | 고객 부담이며, 최초 배송비를 포함해 왕복 배송비가 발생합니다. 또한, 도서/산간지역이거나 설치 상품을 반품하는 경우에는 배송비가 추가될 수 있습니다. |
고객 부담이 아닙니다. |
03. 배송상태에 따른 환불안내
진행 상태 | 결제완료 | 상품준비중 | 배송지시/배송중/배송완료 |
---|---|---|---|
어떤 상태 | 주문 내역 확인 전 | 상품 발송 준비 중 | 상품이 택배사로 이미 발송 됨 |
환불 | 즉시환불 | 구매취소 의사전달 → 발송중지 → 환불 | 반품회수 → 반품상품 확인 → 환불 |
04. 취소방법
- 결제완료 또는 배송상품은 1:1 문의에 취소신청해 주셔야 합니다.
- 특정 상품의 경우 취소 수수료가 부과될 수 있습니다.
05. 환불시점
결제수단 | 환불시점 | 환불방법 |
---|---|---|
신용카드 | 취소완료 후, 3~5일 내 카드사 승인취소(영업일 기준) | 신용카드 승인취소 |
계좌이체 |
실시간 계좌이체 또는 무통장입금 취소완료 후, 입력하신 환불계좌로 1~2일 내 환불금액 입금(영업일 기준) |
계좌입금 |
휴대폰 결제 |
당일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6시간 이내 승인취소 전월 구매내역 취소시 취소 완료 후, 1~2일 내 환불계좌로 입금(영업일 기준) |
당일취소 : 휴대폰 결제 승인취소 익월취소 : 계좌입금 |
포인트 | 취소 완료 후, 당일 포인트 적립 | 환불 포인트 적립 |
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
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상품의 시리얼 넘버 유출로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 |
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