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말해지지 않았던 병자호란 당시 조선인 포로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리다
관련 사료와 국내외 연구 성과를 총망라한 철저한 고증과 조밀한 상상력의 만남
뛰어난 이야기 전개 방식, 인물들의 깊이 있고 생생한 묘사와 통찰
조선인 포로의 삶을 한 편의 영화처럼 그려낸 간결하면서도 유려한 문체
한국적인 한恨의 정서를 독창적으로 해석해낸 후련한 결말
377년 전 이 땅에 살았던 남녀가 있다
377년 전 이 땅에 살았던 남녀가 있다. 강康과 선鮮. 각각 스무 살, 열일곱 살이었던 이들은 적군의 땅에 전쟁 포로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다. 지금이라면 입시에 억눌리거나 대학생이 되거나 직업을 구해 자기 정체성을 찾는 데 골몰할 나이. 하지만 이들은 혹독한 겨울 추위 속에서 석 달을 걸어 심양瀋陽으로 끌려가야 했다. 강과 선을 비롯한 조선인 포로는 끌려가는 도중 열에 여덟은 죽었다. 청군에게 맞아 죽고, 강간당해 죽고, 얼어 죽고, 병들어 죽고, 압록강에 뛰어들어 죽었다. 포로로 잡힌 이들이 50만 명이나 되었다. 당시 조선 인구의 10퍼센트 남짓이었다.
《화냥년―역사소설 병자호란》은 그들의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 ‘화냥년’은 청나라에 끌려가 살아남은 조선인 포로 남녀 모두를 가리킨다. 당시는 포로가 되어 살아남았다는 것, 청의 앞잡이가 되어 명군과의 전쟁터로 나갔다는 것, 청에서 살아남아 돌아왔다는 것이 모두 절개를 잃은 ‘화냥질’이 되어버리는 때였다. ‘화냥년’이 된 조선인 포로에게 돌아갈 ‘조국’은 없었다. 강과 선의 삶이 그랬다. 소설의 제목을 ‘화냥년’으로 붙인 까닭이다.
‘화냥년’을 통해 현대 한국 여성들의 삶을 말하다
그동안 병자호란과 관련된 소설적 관심은 인조와 소현세자에 국한되어 있었다. 피로인被擄人(사로잡힌 민간인)에 대한 관련 기록이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조선인 포로는 지배층인 사대부와 달리 어떤 기록도 남기지 못했다.
작가 유하령은 바로 이들 조선인 포로들에 주목한다. 특히 작가는 현대 한국 여성들 그리고 작가 본인의 사고방식의 혼란이 역사성의 결여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 병자호란의 포로들을 호출한다. 작가는 병자호란 당시 조선인 포로 중 특히 여자들에게 붙여진 ‘화냥년’이라는 명찰이 앞선 임진왜란 때에도 여자들에게 붙여졌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여성들을 구속하는 흉기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 여성들은, ‘화냥년’ 조상들이 겪었던 수난의 역사를 자기 문제로 인식하고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동시 출간된 병자호란 평설, 병자호란에 대한 이해를 높이다
여성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다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작가는 10년의 각고 끝에 첫 책인 이 소설을 내놓았다. 병자호란 당시 조선인 포로들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내기 위해 국내외 사료와 연구 성과를 꼼꼼하게 훑었다. 특히 남편 한명기 교수(명지대 사학과)의 역사적 관점과 준거를 기준으로 했다고 작가는 밝힌다.
한명기 교수는 이 소설과 동시 출간된 《역사평설 병자호란 1?2》에서 ‘과거’이자 ‘역사’로서 병자호란을 다루면서도 그것을 ‘오늘’의 우리가 직면한 ‘과제’를 푸는 데 필요한 반면교사로서 승화시킨다. 광범위한 사료 섭렵을 통해 확보한 학문적 엄밀성과 전문성은 병자호란의 모든 것을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여겨진다. 이 소설과 함께 읽으면 ‘병자호란’이 ‘과거의 그들’에게, 그리고 ‘현재의 우리’에게, 나아가 ‘미래의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좀 더 풍부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병자호란을 살아낸 여러 인간 군상들, 다양한 삶의 풍경들
‘화냥년’이란?
작가는 소설의 제목을 ‘화냥년’으로 정하면서 그 유래에 대해 살핀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흔히 병자호란 이후 속환된 여자들을 ‘환향녀還鄕女’라 불렀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사료 어디에서도 ‘환향녀’라는 용어는 나오지 않는다. 1638년 장유張維라는 이가 속환되어 돌아온 며느리와 아들이 이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예조에 요청했는데, 거기에도 ‘잡혀갔다 돌아온 부녀자’, ‘잡혀갔다 속환돼온 부녀자’ 등의 표현만이 등장한다. 유교 이데올로기로 넘쳐났던 당시 문헌에는 ‘열녀烈女’, ‘열부烈婦’, ‘의부義婦’라는 용어가 많이 보인다. 죽음을 무릅쓰고 절개를 지킨, 칭찬할 만한 행실을 한 부녀자를 그렇게 부른 것이다. 때문에 속환돼온 여자를 ‘환향녀’라고 불렀으리라는 짐작은 당시의 정서로 봐서도 맞지 않는다. 당시 지식인들은 유교적 사고방식에 어긋나는 행실을 한 여자들에게 ‘녀’자를 붙여 드러내기보다는 쉬쉬하며 숨기려 했다.
‘화냥[花娘]’이라는 용어는 성종 때 쓰인 기록이 있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맞아 조선 여자와 명군의 접촉이 잦아지면서부터 유행했을 것으로 유추한다. 왜란 시기 많을 때는 10만 명이 넘는 명군이 8년 3개월 동안 조선에 주둔했다. 조선 조정은 1602년 명군과 통정했던 여인들을 한성부 10리 바깥으로 쫓아내는 조치를 취한다. 이 여자들이 ‘몸 파는 여자’라는 뜻의 중국어 ‘화냥’에서 비롯된 ‘화냥년’으로 손가락질당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성종 때 이득을 취하기 위해 간음하는 것을 ‘화냥’이라 불렀다면 임진왜란 이후에는 조선 남자와의 혼인관계를 제외한 여자들의 통정을 모두 ‘화냥’으로 부르는 풍조가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환향녀’는 역사적 사실과 관계없이 후대에 편의적으로 붙여진 용어이며, ‘화냥년’은 임진왜란 때 명군과 관계한 여자들에게 붙여져서 병자호란 당시의 여성 피해자들에게까지 이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병자호란, 삶을 가르다
조선인 포로들은 병자호란이 끝나자 심양으로 끌려갔다. 이들은 심양에서 속환가贖還價를 치르고 풀려나거나 포로의 삶에 적응해야 했다. 속환가는 갈수록 높아져 양반이나 상당한 부자가 아니면 풀려나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청인들은 포로를 ‘목숨을 걸고 얻어낸 재물’로 여겨 도망친 포로들을 추적해서 붙잡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도로 붙잡힌 포로는 코나 귀가 잘리거나 발뒤꿈치를 잘리는 고문을 당했다. 그 과정에서 도망 포로를 추적하는 포로 사냥꾼과 속환가를 대신 내주고 조선으로 데려와 가족에게 되팔거나 강제노동을 시키는 포로 장사꾼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인조는 포로 문제로 심양관의 소현세자가 청 조정과 합세해 자신을 밀어낼까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한다. 청의 압박에 밀린 인조는 도망쳐온 백성을 다시 붙잡아 심양으로 보내는 일을 허가한다. 포로쇄환 일을 도맡아 하게 된 간신 조경호와 그의 아들 조윤노는 인조의 신임 아래 청이 요구한 숫자를 채우기 위해 양민부터 부랑아까지 닥치는 대로 끌고 가 심양으로 보낸다.
강과 선은 강화도에서 붙잡혔다. 선은 간신 조경호의 딸이다. 오라비 조윤노는 청군에게서 도망치며 친구인 강에게 누이 선을 부탁했다. 심양에서 선은 구사어전固山額眞(팔기의 한 기를 지휘하는 장군)인 주란타이의 딸 키르사의 꼬임에 빠진 몽골왕공 수흐에게 겁탈당할 위험에 처했고, 강은 그런 선을 구하다가 죽을 만큼 얻어맞기도 했다.
강의 아버지는 조경호 부자의 만행을 폭로하는 상소문을 쓰던 중에 조윤노에게 죽임을 당한다. 조윤노의 사주로 강의 아버지를 죽인 조윤노의 충복 성남이 강이 있는 심양까지 와 그 사실을 폭로하고 죽은 뒤, 강은 탈출을 감행하다 붙잡힌다. 발꿈치가 꿰지는 고문을 당하나 벌명전伐明戰에 나가 공을 세우면 자유를 주겠다는 주란타이의 말에 승복한다.
강은 청을 위해 산해관 밖 금주, 송산, 탑산 등지에서 4년 동안 싸웠다. 강에게는 청군도 적이요, 명군도 적이었다. 그러나 먼 적이었다. 진짜 원수는 조선 땅에 있었다. 강은 마음을 다잡는다. 포로의 전쟁에는 적이 없다고, 그저 죽여야 할 상대만 있을 뿐이라고. 그렇게 벌명전에 참전했던 강은 홍타이지가 죽고 어수선한 틈을 이용, 세 번째 탈출을 감행한다. 포로들의 원한을 해결하기 위한 귀향이었다.
한편 속환되어 조선으로 돌아온 선은 아버지 조윤노에 의해 강화도로 쫓겨 가 있었는데 징기스칸의 옥새를 잃어버린 수흐가 심양에서부터 쫓아와 선을 납치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포로였던 여자들에게 ‘전쟁’은 삶이 계속되는 한 끝날 수 없었다.
반겨줄 고향도, 받아줄 고향도 없던 이들, 새로운 삶을 찾다
조윤노는 강의 손에 죽기 전에 “선이 심양에서 화냥질을 하고 사는 것을 네놈은 왜 모르냐?”고 강을 공격한다. 강은 눈보라치는 몽골초원의 게르 안에서 수흐를 죽이고 선과 선의 아이, 그리고 키르사가 낳은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포로들이 만든 마을로 돌아온다.
십년 뒤 선은 담담하게 진술한다.
우리는 반겨줄 고향도, 받아줄 고향도 없다. 포로로 잡힌 조선 땅과 끌려온 청의 심양 땅, 그 원한의 땅으로부터 떨어진 이곳이 이제 우리의 고향인 것이다. 그래서 ‘화냥년’이라는 상말이 우리의 이런 처지를 환기시키기에 오히려 편안하기까지 하다.
매순간 엄습하는 죽음의 공포를 짊어진 채 몇 개월의 행군을 겪어본 사람들은 포로 이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무너진 정신은 회복하기 어렵고 행동은 더욱 짓눌린다. 옛날로 돌아가는 해결책은 단 한 가지, 죽음으로 예전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오랑캐에게 붙잡혔고, 끌려왔고, 가족에게 버림받았고, 유린당했고, 다시 끌려와 몽골 초원에서 가축처럼 부려졌던 이 삶을 말이다.
선은 다시 말한다.
이제 포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오히려 편안하다고. 왕이 된 세자의 동생이나 북경으로 향하는 사신 행렬들에게 포로는 이미 죽은 자들이었지만 포로들은 끌려온 이곳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지나가는 사신 행렬들이 우리 마을의 아이들을 보고 ‘화냥년의 새끼’들이라고 손가락질을 하지만 그 ‘화냥년의 새끼’들이 어엿한 일꾼이 되어 제 나라도 해결해 주지 못한 조선포로들에게 자유를 찾아주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고.
▣ 작가 소개
저자 : 유하령
1962년 서울 출생. 서울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다녔고, 대학을 졸업한 뒤 잡지사 편집부 기자로 근무했다. 결혼 후 다큐멘터리 제작을 했고, 40대 중반 소설 쓰기를 시작해 처음으로 출판한 소설이 이 책이다.
▣ 주요 목차
프롤로그
1637년, 버려진 포로들
포로의 적
포로의 전쟁
포로의 길
에필로그
작가의 말
말해지지 않았던 병자호란 당시 조선인 포로들의 삶을 생생하게 그리다
관련 사료와 국내외 연구 성과를 총망라한 철저한 고증과 조밀한 상상력의 만남
뛰어난 이야기 전개 방식, 인물들의 깊이 있고 생생한 묘사와 통찰
조선인 포로의 삶을 한 편의 영화처럼 그려낸 간결하면서도 유려한 문체
한국적인 한恨의 정서를 독창적으로 해석해낸 후련한 결말
377년 전 이 땅에 살았던 남녀가 있다
377년 전 이 땅에 살았던 남녀가 있다. 강康과 선鮮. 각각 스무 살, 열일곱 살이었던 이들은 적군의 땅에 전쟁 포로로 끌려가 돌아오지 못했다. 지금이라면 입시에 억눌리거나 대학생이 되거나 직업을 구해 자기 정체성을 찾는 데 골몰할 나이. 하지만 이들은 혹독한 겨울 추위 속에서 석 달을 걸어 심양瀋陽으로 끌려가야 했다. 강과 선을 비롯한 조선인 포로는 끌려가는 도중 열에 여덟은 죽었다. 청군에게 맞아 죽고, 강간당해 죽고, 얼어 죽고, 병들어 죽고, 압록강에 뛰어들어 죽었다. 포로로 잡힌 이들이 50만 명이나 되었다. 당시 조선 인구의 10퍼센트 남짓이었다.
《화냥년―역사소설 병자호란》은 그들의 이야기다. 이 소설에서 ‘화냥년’은 청나라에 끌려가 살아남은 조선인 포로 남녀 모두를 가리킨다. 당시는 포로가 되어 살아남았다는 것, 청의 앞잡이가 되어 명군과의 전쟁터로 나갔다는 것, 청에서 살아남아 돌아왔다는 것이 모두 절개를 잃은 ‘화냥질’이 되어버리는 때였다. ‘화냥년’이 된 조선인 포로에게 돌아갈 ‘조국’은 없었다. 강과 선의 삶이 그랬다. 소설의 제목을 ‘화냥년’으로 붙인 까닭이다.
‘화냥년’을 통해 현대 한국 여성들의 삶을 말하다
그동안 병자호란과 관련된 소설적 관심은 인조와 소현세자에 국한되어 있었다. 피로인被擄人(사로잡힌 민간인)에 대한 관련 기록이 너무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조선인 포로는 지배층인 사대부와 달리 어떤 기록도 남기지 못했다.
작가 유하령은 바로 이들 조선인 포로들에 주목한다. 특히 작가는 현대 한국 여성들 그리고 작가 본인의 사고방식의 혼란이 역사성의 결여에서 비롯되었다고 판단, 병자호란의 포로들을 호출한다. 작가는 병자호란 당시 조선인 포로 중 특히 여자들에게 붙여진 ‘화냥년’이라는 명찰이 앞선 임진왜란 때에도 여자들에게 붙여졌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지금까지 이어져 여성들을 구속하는 흉기로 사용되고 있다고 지적한다. 따라서 오늘날 한국 여성들은, ‘화냥년’ 조상들이 겪었던 수난의 역사를 자기 문제로 인식하고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동시 출간된 병자호란 평설, 병자호란에 대한 이해를 높이다
여성들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제작하다가 소설을 쓰기 시작했던 작가는 10년의 각고 끝에 첫 책인 이 소설을 내놓았다. 병자호란 당시 조선인 포로들의 삶을 생생하게 담아내기 위해 국내외 사료와 연구 성과를 꼼꼼하게 훑었다. 특히 남편 한명기 교수(명지대 사학과)의 역사적 관점과 준거를 기준으로 했다고 작가는 밝힌다.
한명기 교수는 이 소설과 동시 출간된 《역사평설 병자호란 1?2》에서 ‘과거’이자 ‘역사’로서 병자호란을 다루면서도 그것을 ‘오늘’의 우리가 직면한 ‘과제’를 푸는 데 필요한 반면교사로서 승화시킨다. 광범위한 사료 섭렵을 통해 확보한 학문적 엄밀성과 전문성은 병자호란의 모든 것을 담아내기에 부족함이 없다 여겨진다. 이 소설과 함께 읽으면 ‘병자호란’이 ‘과거의 그들’에게, 그리고 ‘현재의 우리’에게, 나아가 ‘미래의 누군가’에게 어떤 의미를 갖는지 좀 더 풍부하게 알 수 있을 것이다.
병자호란을 살아낸 여러 인간 군상들, 다양한 삶의 풍경들
‘화냥년’이란?
작가는 소설의 제목을 ‘화냥년’으로 정하면서 그 유래에 대해 살핀다. 작가의 말을 들어보자. 흔히 병자호란 이후 속환된 여자들을 ‘환향녀還鄕女’라 불렀다고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당시 사료 어디에서도 ‘환향녀’라는 용어는 나오지 않는다. 1638년 장유張維라는 이가 속환되어 돌아온 며느리와 아들이 이혼할 수 있게 해달라고 예조에 요청했는데, 거기에도 ‘잡혀갔다 돌아온 부녀자’, ‘잡혀갔다 속환돼온 부녀자’ 등의 표현만이 등장한다. 유교 이데올로기로 넘쳐났던 당시 문헌에는 ‘열녀烈女’, ‘열부烈婦’, ‘의부義婦’라는 용어가 많이 보인다. 죽음을 무릅쓰고 절개를 지킨, 칭찬할 만한 행실을 한 부녀자를 그렇게 부른 것이다. 때문에 속환돼온 여자를 ‘환향녀’라고 불렀으리라는 짐작은 당시의 정서로 봐서도 맞지 않는다. 당시 지식인들은 유교적 사고방식에 어긋나는 행실을 한 여자들에게 ‘녀’자를 붙여 드러내기보다는 쉬쉬하며 숨기려 했다.
‘화냥[花娘]’이라는 용어는 성종 때 쓰인 기록이 있다. 하지만 임진왜란을 맞아 조선 여자와 명군의 접촉이 잦아지면서부터 유행했을 것으로 유추한다. 왜란 시기 많을 때는 10만 명이 넘는 명군이 8년 3개월 동안 조선에 주둔했다. 조선 조정은 1602년 명군과 통정했던 여인들을 한성부 10리 바깥으로 쫓아내는 조치를 취한다. 이 여자들이 ‘몸 파는 여자’라는 뜻의 중국어 ‘화냥’에서 비롯된 ‘화냥년’으로 손가락질당했으리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성종 때 이득을 취하기 위해 간음하는 것을 ‘화냥’이라 불렀다면 임진왜란 이후에는 조선 남자와의 혼인관계를 제외한 여자들의 통정을 모두 ‘화냥’으로 부르는 풍조가 생겨난 것이다. 따라서 ‘환향녀’는 역사적 사실과 관계없이 후대에 편의적으로 붙여진 용어이며, ‘화냥년’은 임진왜란 때 명군과 관계한 여자들에게 붙여져서 병자호란 당시의 여성 피해자들에게까지 이어진 것이라 생각한다.
병자호란, 삶을 가르다
조선인 포로들은 병자호란이 끝나자 심양으로 끌려갔다. 이들은 심양에서 속환가贖還價를 치르고 풀려나거나 포로의 삶에 적응해야 했다. 속환가는 갈수록 높아져 양반이나 상당한 부자가 아니면 풀려나는 것은 꿈같은 이야기였다. 청인들은 포로를 ‘목숨을 걸고 얻어낸 재물’로 여겨 도망친 포로들을 추적해서 붙잡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다. 도로 붙잡힌 포로는 코나 귀가 잘리거나 발뒤꿈치를 잘리는 고문을 당했다. 그 과정에서 도망 포로를 추적하는 포로 사냥꾼과 속환가를 대신 내주고 조선으로 데려와 가족에게 되팔거나 강제노동을 시키는 포로 장사꾼이 등장하기까지 했다.
인조는 포로 문제로 심양관의 소현세자가 청 조정과 합세해 자신을 밀어낼까 두려워하며 전전긍긍한다. 청의 압박에 밀린 인조는 도망쳐온 백성을 다시 붙잡아 심양으로 보내는 일을 허가한다. 포로쇄환 일을 도맡아 하게 된 간신 조경호와 그의 아들 조윤노는 인조의 신임 아래 청이 요구한 숫자를 채우기 위해 양민부터 부랑아까지 닥치는 대로 끌고 가 심양으로 보낸다.
강과 선은 강화도에서 붙잡혔다. 선은 간신 조경호의 딸이다. 오라비 조윤노는 청군에게서 도망치며 친구인 강에게 누이 선을 부탁했다. 심양에서 선은 구사어전固山額眞(팔기의 한 기를 지휘하는 장군)인 주란타이의 딸 키르사의 꼬임에 빠진 몽골왕공 수흐에게 겁탈당할 위험에 처했고, 강은 그런 선을 구하다가 죽을 만큼 얻어맞기도 했다.
강의 아버지는 조경호 부자의 만행을 폭로하는 상소문을 쓰던 중에 조윤노에게 죽임을 당한다. 조윤노의 사주로 강의 아버지를 죽인 조윤노의 충복 성남이 강이 있는 심양까지 와 그 사실을 폭로하고 죽은 뒤, 강은 탈출을 감행하다 붙잡힌다. 발꿈치가 꿰지는 고문을 당하나 벌명전伐明戰에 나가 공을 세우면 자유를 주겠다는 주란타이의 말에 승복한다.
강은 청을 위해 산해관 밖 금주, 송산, 탑산 등지에서 4년 동안 싸웠다. 강에게는 청군도 적이요, 명군도 적이었다. 그러나 먼 적이었다. 진짜 원수는 조선 땅에 있었다. 강은 마음을 다잡는다. 포로의 전쟁에는 적이 없다고, 그저 죽여야 할 상대만 있을 뿐이라고. 그렇게 벌명전에 참전했던 강은 홍타이지가 죽고 어수선한 틈을 이용, 세 번째 탈출을 감행한다. 포로들의 원한을 해결하기 위한 귀향이었다.
한편 속환되어 조선으로 돌아온 선은 아버지 조윤노에 의해 강화도로 쫓겨 가 있었는데 징기스칸의 옥새를 잃어버린 수흐가 심양에서부터 쫓아와 선을 납치한다. 전쟁은 끝났지만 포로였던 여자들에게 ‘전쟁’은 삶이 계속되는 한 끝날 수 없었다.
반겨줄 고향도, 받아줄 고향도 없던 이들, 새로운 삶을 찾다
조윤노는 강의 손에 죽기 전에 “선이 심양에서 화냥질을 하고 사는 것을 네놈은 왜 모르냐?”고 강을 공격한다. 강은 눈보라치는 몽골초원의 게르 안에서 수흐를 죽이고 선과 선의 아이, 그리고 키르사가 낳은 자신의 아이를 데리고 포로들이 만든 마을로 돌아온다.
십년 뒤 선은 담담하게 진술한다.
우리는 반겨줄 고향도, 받아줄 고향도 없다. 포로로 잡힌 조선 땅과 끌려온 청의 심양 땅, 그 원한의 땅으로부터 떨어진 이곳이 이제 우리의 고향인 것이다. 그래서 ‘화냥년’이라는 상말이 우리의 이런 처지를 환기시키기에 오히려 편안하기까지 하다.
매순간 엄습하는 죽음의 공포를 짊어진 채 몇 개월의 행군을 겪어본 사람들은 포로 이전의 사람으로 돌아갈 수가 없다. 살아가면 살아갈수록 무너진 정신은 회복하기 어렵고 행동은 더욱 짓눌린다. 옛날로 돌아가는 해결책은 단 한 가지, 죽음으로 예전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영문도 모르고 오랑캐에게 붙잡혔고, 끌려왔고, 가족에게 버림받았고, 유린당했고, 다시 끌려와 몽골 초원에서 가축처럼 부려졌던 이 삶을 말이다.
선은 다시 말한다.
이제 포로 이전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기에 오히려 편안하다고. 왕이 된 세자의 동생이나 북경으로 향하는 사신 행렬들에게 포로는 이미 죽은 자들이었지만 포로들은 끌려온 이곳에서 삶을 이어가고 있다고. 지나가는 사신 행렬들이 우리 마을의 아이들을 보고 ‘화냥년의 새끼’들이라고 손가락질을 하지만 그 ‘화냥년의 새끼’들이 어엿한 일꾼이 되어 제 나라도 해결해 주지 못한 조선포로들에게 자유를 찾아주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고.
▣ 작가 소개
저자 : 유하령
1962년 서울 출생. 서울에서 초, 중, 고등학교를 다녔고, 대학을 졸업한 뒤 잡지사 편집부 기자로 근무했다. 결혼 후 다큐멘터리 제작을 했고, 40대 중반 소설 쓰기를 시작해 처음으로 출판한 소설이 이 책이다.
▣ 주요 목차
프롤로그
1637년, 버려진 포로들
포로의 적
포로의 전쟁
포로의 길
에필로그
작가의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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