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차 례
하멜일지
조선국에 관한 기술
▣ 책소개
남편을 죽인 아내는 많은 사람들이 통행하는 한 길가에 어깨까지 땅에 묻는다. 그녀 옆에는 나무 톱이 놓여 있는데, 여기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양반을 제외하고 누구나 그 나무 톱으로 그녀가 죽을 때까지 한번씩 목을 쳐야 한다.
▣ 신문 서평
“따분한 古典 누가 읽겠습니까”
역사 교과서에는 보물 같은 서적이 줄줄이 등장한다. 오래도록 남아 있어 귀하고, 후대에 읽어 소중한 책들이다. 이른바 고전은 그래서 문화재 값 하느라고 사람들이 사서 서가에 고이 간직한다. 전문 연구자가 아니면 정작 그 책을 펴 들고 끝까지 찬찬히 읽어 내려가는 사람은 백에 하나도 후한 셈법이다. 어찌 재미있게 볼 엄두까지 낼까.
손에 잡히는 고전 만들고 싶다
10여 년 동안 ‘서해문집(西海文集)’에서 인문학 고전 출판에 매달려 온 김흥식(46)씨는 이렇게 묻혀져 가는 고전을 어떻게 하면 읽히도록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해 온 출판 기획자. 옛말 투의 한문 번역은 따분하고, 별 설명 없이 원문 그대로 죽죽 이어가는 내용은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 궁리도 많이 했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결정적으로 그는 일본과 영국 등 외국 출판물에서 얻었다.
“일본 서점에 가보면 고대 소설인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100여 종이 출판사마다 판본과 구성이 다르게 나와 있습니다. 완ㆍ축약본은 물론 청소년판에 만화까지 정말 다양합니다.” 또 풍부한 그래픽을 활용한 역사ㆍ지리서 출판으로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은 영국 DK사의 책 구성 방식을 접하고 그는 “바로 이거다”고 무릎을 쳤다. 삼국유사를 재구성해 낸 ‘일연과 함께 떠나는 삼국여행’(10쇄에 2만 부 가까이 팔았다)이나 청소년판 ‘택리지’ 등은 그런 고민의 산물이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는 ‘오래된 책’이라는 새 고전 시리즈를 기획해 최근 첫 3권을 내놓았다. 박제가의『북학의』, 유성룡의『징비록』, 헨드릭 하멜의『하멜 표류기』이다. 익히 들어 알지만 읽을 엄두를 내기 어려웠던 책들이 친절한 그림 설명과 다양한 사진 자료, 각주나 미주가 아니라 본문 옆에 꼼꼼하게 풀어 쓴 주들로 세련되게 ‘코디’돼 새로 태어났다.
고전 안 읽는 게 독자 책임인가
“읽을 수 없는 책을 만들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고전이 소외 받는다는 말만 합니다.” 그는 문학 작품을 제외한 우리 고전 번역책을 아무런 그림 설명 없이 읽어나간다는 것은 고문에 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조선 후기 청나라에 사절로 다녀온 실학자 박제가가 수레, 배, 축성, 가옥, 화폐, 무기 등에 대한 개혁 방법을 상세히 적은 ‘북학의’를 예로 들어보자. 첫 장 수레편에는 ‘짐을 싣는 수레에는 굴대가 구른다. 바퀴살은 입(卄)자처럼 생겼다. 차체와 굴대가 맞닿은 곳에 함철을 끼우는데 마치 반달처럼 생겼다. 제작 방식은 함철의 뒤쪽을 세 개의 어금니 모양으로 만든다….’ 그냥 읽어서는 1분도 안 돼 질려 버릴 내용이다. 하지만 서해문집의 책에는 그림 설명이 함께 붙어 있어 훨씬 읽기 수월하다.
번역의 정확성은 차치하고 번역투 자체도 문제다. 임진왜란의 실상을 소상하게 전해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132호)로 지정된 ‘임진록’ 번역서 가운데 한 권의 초반 한 대목은 이렇다. ‘성종께서는 그 말에 감동하여 부제학 이형원과 서장관 김흔에게 명하여, 일본에 가서 화목을 도모하고 오게 하여 대마도에 이르렀는데, 사신들이 풍랑에 놀라 병을 얻을까 근심하여 글을 올려 그 상황을 보고 하니, 성종께서는 서신과 예물을 대마도주에게 전하고 돌아오라고 명령하였다.’ 숨이 차서 읽어 내려갈 수가 없다.
서해문집 본은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겨 둔 성종께서는 부제학 이형원과 서장관 김흔을 보내 화친토록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대마도에 도착해서 그만 풍토병에 걸리고 말았다. 결국 일본에 갈 수 없게 된 일행은 조정에 사정을 전했고, 성종께서는 글과 선물만을 대마도 도주에게 전하고 돌아오도록 명했다.’이다. 문장이 짧고 쉽다.
비싸게 책 팔지 않겠다
책에 공이 들어가면 값이 올라가게 마련이다. 요즘은 권 당 1만원이 예사여서 돈 없어 책 못 보겠다는 소리도 나올 만하다. “읽는 책을 만들겠다”는 김흥식씨의 결심은 이 대목에서도 유효하다. 고전 폼 낸다고 쓸 데 없이 비싼 종이를 쓰지 않는다. 가능한 여백을 줄여서 책을 얇게 한다. 표지에 멋을 부려서 책 값을 올리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물론 문고본보다는 비싸지만 ‘오래된 책방’ 시리즈는 이 원칙이 고루 적용돼 책값이 그리 비싸지 않다.『북학의』 『징비록』이 각 8,700원, 이보다 분량이 조금 적은『하멜 표류기』가 6,700원이다. 서해문집은 올해『한중록』 『계축일기』 2권을 더 내는 등 모두 30권을 예정하고 있다. 그는 “4월에 역시 비슷한 형식으로 만든 교양 시리즈를 선보일 예정”이라며 “비슷한 책들이 더러 있지만 400쪽 남짓한 책을 절대로 정가 1만 원이 넘지 않도록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2003.3.1 한국일보 김범수 기자]
하멜일지
조선국에 관한 기술
▣ 책소개
남편을 죽인 아내는 많은 사람들이 통행하는 한 길가에 어깨까지 땅에 묻는다. 그녀 옆에는 나무 톱이 놓여 있는데, 여기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양반을 제외하고 누구나 그 나무 톱으로 그녀가 죽을 때까지 한번씩 목을 쳐야 한다.
▣ 신문 서평
“따분한 古典 누가 읽겠습니까”
역사 교과서에는 보물 같은 서적이 줄줄이 등장한다. 오래도록 남아 있어 귀하고, 후대에 읽어 소중한 책들이다. 이른바 고전은 그래서 문화재 값 하느라고 사람들이 사서 서가에 고이 간직한다. 전문 연구자가 아니면 정작 그 책을 펴 들고 끝까지 찬찬히 읽어 내려가는 사람은 백에 하나도 후한 셈법이다. 어찌 재미있게 볼 엄두까지 낼까.
손에 잡히는 고전 만들고 싶다
10여 년 동안 ‘서해문집(西海文集)’에서 인문학 고전 출판에 매달려 온 김흥식(46)씨는 이렇게 묻혀져 가는 고전을 어떻게 하면 읽히도록 만들 수 있을까를 고민해 온 출판 기획자. 옛말 투의 한문 번역은 따분하고, 별 설명 없이 원문 그대로 죽죽 이어가는 내용은 도통 이해하기 어렵다. 궁리도 많이 했지만 이런 문제를 해결할 아이디어를 결정적으로 그는 일본과 영국 등 외국 출판물에서 얻었다.
“일본 서점에 가보면 고대 소설인 ‘겐지모노가타리(源氏物語)’ 100여 종이 출판사마다 판본과 구성이 다르게 나와 있습니다. 완ㆍ축약본은 물론 청소년판에 만화까지 정말 다양합니다.” 또 풍부한 그래픽을 활용한 역사ㆍ지리서 출판으로 이미 세계적 명성을 얻은 영국 DK사의 책 구성 방식을 접하고 그는 “바로 이거다”고 무릎을 쳤다. 삼국유사를 재구성해 낸 ‘일연과 함께 떠나는 삼국여행’(10쇄에 2만 부 가까이 팔았다)이나 청소년판 ‘택리지’ 등은 그런 고민의 산물이었다.
시행착오를 겪으며 그는 ‘오래된 책’이라는 새 고전 시리즈를 기획해 최근 첫 3권을 내놓았다. 박제가의『북학의』, 유성룡의『징비록』, 헨드릭 하멜의『하멜 표류기』이다. 익히 들어 알지만 읽을 엄두를 내기 어려웠던 책들이 친절한 그림 설명과 다양한 사진 자료, 각주나 미주가 아니라 본문 옆에 꼼꼼하게 풀어 쓴 주들로 세련되게 ‘코디’돼 새로 태어났다.
고전 안 읽는 게 독자 책임인가
“읽을 수 없는 책을 만들었다는 생각은 하지 않고 고전이 소외 받는다는 말만 합니다.” 그는 문학 작품을 제외한 우리 고전 번역책을 아무런 그림 설명 없이 읽어나간다는 것은 고문에 가까운 일이라고 말했다. 조선 후기 청나라에 사절로 다녀온 실학자 박제가가 수레, 배, 축성, 가옥, 화폐, 무기 등에 대한 개혁 방법을 상세히 적은 ‘북학의’를 예로 들어보자. 첫 장 수레편에는 ‘짐을 싣는 수레에는 굴대가 구른다. 바퀴살은 입(卄)자처럼 생겼다. 차체와 굴대가 맞닿은 곳에 함철을 끼우는데 마치 반달처럼 생겼다. 제작 방식은 함철의 뒤쪽을 세 개의 어금니 모양으로 만든다….’ 그냥 읽어서는 1분도 안 돼 질려 버릴 내용이다. 하지만 서해문집의 책에는 그림 설명이 함께 붙어 있어 훨씬 읽기 수월하다.
번역의 정확성은 차치하고 번역투 자체도 문제다. 임진왜란의 실상을 소상하게 전해 서책으로는 드물게 국보(132호)로 지정된 ‘임진록’ 번역서 가운데 한 권의 초반 한 대목은 이렇다. ‘성종께서는 그 말에 감동하여 부제학 이형원과 서장관 김흔에게 명하여, 일본에 가서 화목을 도모하고 오게 하여 대마도에 이르렀는데, 사신들이 풍랑에 놀라 병을 얻을까 근심하여 글을 올려 그 상황을 보고 하니, 성종께서는 서신과 예물을 대마도주에게 전하고 돌아오라고 명령하였다.’ 숨이 차서 읽어 내려갈 수가 없다.
서해문집 본은 ‘이 말을 가슴 깊이 새겨 둔 성종께서는 부제학 이형원과 서장관 김흔을 보내 화친토록 하였다. 그러나 이들은 대마도에 도착해서 그만 풍토병에 걸리고 말았다. 결국 일본에 갈 수 없게 된 일행은 조정에 사정을 전했고, 성종께서는 글과 선물만을 대마도 도주에게 전하고 돌아오도록 명했다.’이다. 문장이 짧고 쉽다.
비싸게 책 팔지 않겠다
책에 공이 들어가면 값이 올라가게 마련이다. 요즘은 권 당 1만원이 예사여서 돈 없어 책 못 보겠다는 소리도 나올 만하다. “읽는 책을 만들겠다”는 김흥식씨의 결심은 이 대목에서도 유효하다. 고전 폼 낸다고 쓸 데 없이 비싼 종이를 쓰지 않는다. 가능한 여백을 줄여서 책을 얇게 한다. 표지에 멋을 부려서 책 값을 올리는 일은 절대 하지 않는다.
물론 문고본보다는 비싸지만 ‘오래된 책방’ 시리즈는 이 원칙이 고루 적용돼 책값이 그리 비싸지 않다.『북학의』 『징비록』이 각 8,700원, 이보다 분량이 조금 적은『하멜 표류기』가 6,700원이다. 서해문집은 올해『한중록』 『계축일기』 2권을 더 내는 등 모두 30권을 예정하고 있다. 그는 “4월에 역시 비슷한 형식으로 만든 교양 시리즈를 선보일 예정”이라며 “비슷한 책들이 더러 있지만 400쪽 남짓한 책을 절대로 정가 1만 원이 넘지 않도록 만들 생각”이라고 말했다.[2003.3.1 한국일보 김범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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