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멕시코, 토착민과 이주자 그리고 토착문화와 외래문화가 상생의 길을 찾다
진정한 ‘인종의 용광로’ 멕시코
1908년 미국의 유대인 극작가 쟁윌Israel Zangwill은 당시 기회의 땅으로 평가받던 미국으로 밀려드는 이민자의 물결을 보고 “미국은 신의 도가니, 유럽의 모든 인종들이 녹아서 개조되는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 of races다”라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하지만 미국의 인종 혼합은 각기 다른 민족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미국인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묶어낸 형태였다. 따라서 미국의 인종 혼합을 두고 모든 것을 녹여서 하나로 만들어버리는 ‘인종의 용광로’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진정한 용광로라면 도가니 속에 들어간 재료가 그 형체와 특성을 잃고 새로운 물질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인종 혼합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서로 다른 인종끼리 섞여서 새로운 인종을 만들어내는 ‘혼혈’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지구상에는 혼혈을 통해 만들어진 인종이 사회의 주류가 되어 진정한 용광로의 모습을 구현한 나라가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미국의 이웃사촌인 멕시코다.
멕시코의 원주민 사회는 16세기 초에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의 원정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유럽과 접촉한 후 군사력과 가톨릭을 앞세운 유럽의 정치적?문화적 침략 과정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스페인은 군사력을 동원하여 아스텍제국을 무너뜨리고 소수의 백인이 다수의 원주민을 지배하는 이주자 중심의 사회를 형성했다.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가 30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속되면서 멕시코는 인종적으로 크나큰 변화를 일으켰다. 백인, 원주민, 흑인 간의 결합으로 탄생한 혼혈이 멕시코인의 다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현재 메스티소Mestizo로 대변되는 혼혈인들은 멕시코 전체 인구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비중은 더욱 높아져서 멕시코 사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요컨대 멕시코는 미국처럼 토착민과 이민자가 함께 공존하는 다원성의 사회를 이룬 것이 아니라, 원주민과 이주자가 하나로 융합하여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사회와 인종을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용광로’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나라인 셈이다.
멕시코, 토착문화와 외래문화가 하나로 융합하다
인종뿐만이 아니다. 멕시코는 문화 또한 용광로의 양상을 보여준다. 토착문화와 외래문화가 하나로 융합,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멕시코인의 90퍼센트 이상은 가톨릭 신자로, 한때는 가톨릭 이외의 종교를 정책적으로 금했을 정도로 열렬한 신앙심을 자랑한다. 그런데 가톨릭은 스페인의 정복 이후 멕시코 땅에 들어온 외래 종교로, 도입 초기에는 선교 활동이 매우 지지부진했다. 스페인 군인의 약탈과 착취로 재산을 빼앗긴 원주민의 반감이 컸던 데다가, 가톨릭 선교사의 선교 방식마저 매우 폭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폭력 앞에 가톨릭으로 개종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린 원주민은 겉으로는 가톨릭을 따르면서도 속으로는 토착 신을 숭배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톨릭과 토착 신앙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융합되어 멕시코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가톨릭 신앙이 형성되었다. 토착문화와 외래문화가 충돌하여 갈등한 끝에 상생의 길을 찾아 가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멕시코에서 멕시코를 읽다
멕시코를 다섯 영역으로 나누어 살피다
저자는 멕시코의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적 특징에 주목하면서 멕시코를 〈신화와 종교〉, 〈메소아메리카와 스페인〉, 〈독립과 혁명〉, 〈문화와 예술〉, 〈혼혈과 사회〉라는 다섯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고찰한다. 먼저 제1장 〈신화와 종교〉에서는 멕시코의 토착 신앙에 스페인으로부터 건너온 외래 종교가 도입되면서 자행된 왜곡과 조작을 살핀다. 제2장 〈메소아메리카와 스페인〉에서는 스페인인이 원주민과 접촉하면서 드러낸 폭력성과 서양 중심적 시각에 시선을 돌린다. 제3장 〈독립과 혁명〉에서는 멕시코가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나 고유한 국민 정체성을 이루어나간 과정을 훑는다. 제4장 〈문화와 예술〉은 스페인의 무차별한 파괴로 사라져가던 원주민 문화의 부활과 현대 사회로의 전승을 이야기한다. 제5장 〈혼혈과 사회〉에서는 인종과 문화의 혼합 속에서 갈수록 부각되는 다원성의 의미와 가치를 중심 주제로 삼는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사고의 지평을 넓혀나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멕시코 사회와 문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비판적으로 제시한다.
멕시코가 미래 사회를 함께할 이웃 나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며
저자는 이러한 멕시코 읽기 후 바라는 점 한 가지를 덧붙인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멕시코에 대한 균형 잡힌 인식을 갖는 것이다. 저자는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멕시코에 대한 옛 기록 중 대다수가 매우 편향된 시각으로 서술되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듯이, 멕시코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멕시코를 정복한 스페인인이 서술한 것이다. 그래서 다수의 기록이 스페인이 자행한 폭력적인 정복과 경제적인 침탈을 정당화하기 위한 의도적인 왜곡으로 얼룩져 있다. 또한 유럽인과 유럽 문명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위대하다는 자아도취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오류도 눈에 띈다. 더구나 승자인 스페인인이 300여 년의 식민지 시대에 사회의 지배층으로 군림하면서 이러한 왜곡과 오류는 피지배층을 억압하고 착취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거나 고착되어왔다. 이로 인해 옛 기록들을 비판적인 분석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면 스페인 기록자들이 갖고 있던 편향적인 시각에 휘말려 멕시코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가능한 한 기존의 서양 중심적인 시각에서 탈피하여 원주민과 피지배층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멕시코의 진면목을 이해할 수 있는 핵심이라고 여겨지는 지점을 힘닿는 데까지 자세히 설명했다고 한다. 부족하나마 이를 통해 독자들이 멕시코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를 걷어내고 미래 사회를 함께할 이웃 나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멕시코, 현대 한국사회에 ‘조화’의 화두를 던지다
한국, 이제 ‘단일민족국가’라는 호명은 무리다
이질적인 인종과 문화 사이에서 발생하는 반목과 조화는 현대 한국사회에서도 큰 화두다.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는 ‘한민족韓民族’으로 이루어진 단일민족국가라는 인식이 강하다. 황인종의 한 갈래인 한민족은 한반도와 만주 일부에 살고 있는 종족으로, 한국어를 사용하며 공동 문화권을 형성한 민족을 뜻한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 한국이 단일민족국가라는 인식이 급격하게 허물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통계청의 《국제 인구 이동 통계》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1년까지 국내에 90일 이상 머무른 외국인의 숫자는 매년 9~15만 명 내외로 순유입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IMF 사태의 영향을 받았던 2009년만 627명 순유출을 기록했다). 또한 법무부의 《출입국 외국인 정책 통계 연보》에 따르면 한국인과 결혼하여 이민 온 외국인의 합계는 2007년 10만 명을 넘긴 이래 꾸준히 증가하여 2011년에는 14만 4,681명을 기록했다(결혼 후 한국인으로 귀화한 외국인 4만여 명은 제외). 위 통계 자료들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는 매년 10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새롭게 정착하고 있는 데다가, 외국인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는 일명‘다문화 가족’의 수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통계청의 《출생 통계》에 따르면 2011년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1.24명으로, 2002년 이후로 한 해도 1.3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합계 출산율이 1.3명 이하인 경우에 초저출산 사회로 분류한다). 이와 같은 추세라면 한국의 인구는 2030년 5,216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이듬해부터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이 확실하다. 결국 내국인의 숫자는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에 외국인과 혼혈아(다문화 가족에서 태어나게 될 자녀들과 그 후손)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과 혼혈아의 비중이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과 더불어 이미 농촌 지역에서 대두되고 있는 다문화 가족 관련 이슈까지 감안한다면, 더 이상 한국을 한민족만 살고 있는 단일민족국가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멕시코를 ‘타산지석’ 삼아 타인종, 타문화를 발전적으로 수용하자
지금 한국 사회는 외국인 이주자와 다문화 가족으로 대변되는 타인종, 타문화와 직접적인 접촉을 경험하고 있다. 더구나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현대 사회의 특성상 이러한 접촉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증대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단일민족이라는 인식에 얽매인 대다수의 한국인은 이질적인 것을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열린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성가족부의 《2012년 다문화 가족 실태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이나 무시를 당한 경험이 있는 결혼 이민자와 귀화인의 비율은 41.3퍼센트에 달했다. 이는 2009년의 36.4퍼센트보다도 4.9퍼센트 증가한 수치로, 도리어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거부감이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거부감이 강화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은 무엇이건 새로운 것과 접촉할 때 호기심과 거부감을 동시에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거부감은 그냥 둔다고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다. 제거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질적인 것을 다원성의 차원에서 바라볼 줄 아는 사고방식과 감수성을 길러야만 거부감의 장벽을 넘어서서 타인종, 타문화를 한국 사회에 발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과 감수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쳐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교육 방법 중 하나는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타인종, 타문화와의 직접적인 접촉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이전에 경험했던 외국의 예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는 것이다. 멕시코는 스페인으로 대변되는 유럽인과 유럽 문화와의 급속하고도 파괴적인 충돌로 인해 수많은 부작용을 겪었으며, 16세기부터 현재까지 수백 년 동안 토착 문화와 외래문화가 반목과 조화를 거듭하며 국가 정체성을 형성해왔다. 따라서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 사회의 길라잡이가 되기에 가장 적당한 나라 중 하나다. 멕시코는 토착민과 이주자가 인종적으로도 융합하여 거대한 혼혈 사회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다문화 가족의 증가로 혼혈 사회의 길목에 서 있는 한국에 더욱 알맞은 교훈을 제시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외국인 이주자와 다문화 가족의 증대로 한국 사회는 이제 곧 혼혈 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타인종, 타문화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할 줄 아는 진정한 다원성에 눈을 떠야만 한다. 그래야만이 소모적인 반목을 넘어서서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미래 한국 사회를 창조해낼 수 있을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이준명
중앙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9년 동안 출판사에서 기획, 번역 등의 일을 하며 평범하게 살았다. 그러던 2009년 멕시코로 훌쩍 떠나 2년 동안 머물면서 라틴아메리카 곳곳을 돌아다녔다. 한국인에게 낯선 땅인 멕시코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다양한 문화적 충격을 경험했고, 이를 통해 스페인에서 이식된 외래문화와 멕시코 자생의 토착 문화가 충돌하고 융합하는 과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멕시코에서의 경험을 살려 혼혈사회를 눈앞에 둔 한국인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시사점을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멕시코에서 돌아온 후 인문 및 여행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어느 멋진 일주일 크로아티아》가 있다. 또한 2012년부터 잡지 《도서관 이야기》에 〈책을 만나러 떠나는 세계여행〉을 연재하여 책과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론으로 점철된 인문학보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천적인 인문학을 추구하며, 앞으로도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철학, 종교 등 문화 일반에 대한 글을 통해 한국 인문학의 지평을 넓혀갈 계획이다.
▣ 주요 목차
머리말
제1장 신화와 종교
유럽인으로 왜곡당한 멕시코 인류 창조의 신―케찰코아틀
신에게 인간을 음식으로 바친 아스텍의 제의―인신 공양
가톨릭 선교를 위해 유럽에서 수입된 어머니 여신―과달루페 성모
제2장 메소아메리카와 스페인
신대륙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땅의 원주민들―메소아메리카의 고대 문명
멕시코로 이주해 온 이방인이 꽃피운 나라―아스텍제국
금을 찾아 약탈과 학살을 벌인 스페인 원정대―스페인의 정복
제3장 독립과 혁명
식민지 해방에서 자유주의 개혁으로 이어진 투쟁―멕시코 독립
민중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멕시코의 대서사시―멕시코 혁명
멕시코의 정체성을 완성시킨 역사의 분수령―혁명의 제도화
제4장 문화와 예술
파괴와 왜곡으로 사라질 뻔한 마야인의 고대 유산―마야문명
전통과 현대성의 결합으로 재탄생한 시와 소설―멕시코 문학
모두가 공유하는 멕시코 예술의 르네상스―벽화 운동
제5장 혼혈과 사회
메스티소로 통합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원주민과 다문화주의
영혼의 정복으로 시작해 융합으로 끝맺은 신앙의 길―가톨릭과 싱크리티즘
영원히 함께 가야 할 두 나라의 반목과 상생―미국과 멕시코
맺음말
주석
참고문헌
찾아보기
멕시코, 토착민과 이주자 그리고 토착문화와 외래문화가 상생의 길을 찾다
진정한 ‘인종의 용광로’ 멕시코
1908년 미국의 유대인 극작가 쟁윌Israel Zangwill은 당시 기회의 땅으로 평가받던 미국으로 밀려드는 이민자의 물결을 보고 “미국은 신의 도가니, 유럽의 모든 인종들이 녹아서 개조되는 인종의 용광로Melting pot of races다”라며 감탄해 마지않았다. 하지만 미국의 인종 혼합은 각기 다른 민족의 특성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미국인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묶어낸 형태였다. 따라서 미국의 인종 혼합을 두고 모든 것을 녹여서 하나로 만들어버리는 ‘인종의 용광로’라고 표현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 진정한 용광로라면 도가니 속에 들어간 재료가 그 형체와 특성을 잃고 새로운 물질로 거듭나야 한다. 이를 인종 혼합이라는 관점에서 본다면 서로 다른 인종끼리 섞여서 새로운 인종을 만들어내는 ‘혼혈’의 과정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 지구상에는 혼혈을 통해 만들어진 인종이 사회의 주류가 되어 진정한 용광로의 모습을 구현한 나라가 여럿 있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곳이 바로 미국의 이웃사촌인 멕시코다.
멕시코의 원주민 사회는 16세기 초에 에르난 코르테스Hernan Cortes의 원정을 계기로 본격적으로 유럽과 접촉한 후 군사력과 가톨릭을 앞세운 유럽의 정치적?문화적 침략 과정에서 급격한 변화를 겪는다. 스페인은 군사력을 동원하여 아스텍제국을 무너뜨리고 소수의 백인이 다수의 원주민을 지배하는 이주자 중심의 사회를 형성했다.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가 300여 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지속되면서 멕시코는 인종적으로 크나큰 변화를 일으켰다. 백인, 원주민, 흑인 간의 결합으로 탄생한 혼혈이 멕시코인의 다수를 차지하게 된 것이다. 현재 메스티소Mestizo로 대변되는 혼혈인들은 멕시코 전체 인구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그 비중은 더욱 높아져서 멕시코 사회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게 될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요컨대 멕시코는 미국처럼 토착민과 이민자가 함께 공존하는 다원성의 사회를 이룬 것이 아니라, 원주민과 이주자가 하나로 융합하여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사회와 인종을 만들어냈다. 그야말로 ‘용광로’라는 표현이 어울리는 나라인 셈이다.
멕시코, 토착문화와 외래문화가 하나로 융합하다
인종뿐만이 아니다. 멕시코는 문화 또한 용광로의 양상을 보여준다. 토착문화와 외래문화가 하나로 융합, 새로운 문화를 만들어낸 것이다. 예를 들어 현재 멕시코인의 90퍼센트 이상은 가톨릭 신자로, 한때는 가톨릭 이외의 종교를 정책적으로 금했을 정도로 열렬한 신앙심을 자랑한다. 그런데 가톨릭은 스페인의 정복 이후 멕시코 땅에 들어온 외래 종교로, 도입 초기에는 선교 활동이 매우 지지부진했다. 스페인 군인의 약탈과 착취로 재산을 빼앗긴 원주민의 반감이 컸던 데다가, 가톨릭 선교사의 선교 방식마저 매우 폭력적이었기 때문이다. 스페인의 폭력 앞에 가톨릭으로 개종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린 원주민은 겉으로는 가톨릭을 따르면서도 속으로는 토착 신을 숭배하는 이중적인 태도를 지니게 되었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톨릭과 토착 신앙이 자연스럽게 하나로 융합되어 멕시코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가톨릭 신앙이 형성되었다. 토착문화와 외래문화가 충돌하여 갈등한 끝에 상생의 길을 찾아 가는 과정을 여실히 보여준 것이다.
멕시코에서 멕시코를 읽다
멕시코를 다섯 영역으로 나누어 살피다
저자는 멕시코의 ‘인종과 문화의 용광로’적 특징에 주목하면서 멕시코를 〈신화와 종교〉, 〈메소아메리카와 스페인〉, 〈독립과 혁명〉, 〈문화와 예술〉, 〈혼혈과 사회〉라는 다섯 개의 영역으로 나누어 고찰한다. 먼저 제1장 〈신화와 종교〉에서는 멕시코의 토착 신앙에 스페인으로부터 건너온 외래 종교가 도입되면서 자행된 왜곡과 조작을 살핀다. 제2장 〈메소아메리카와 스페인〉에서는 스페인인이 원주민과 접촉하면서 드러낸 폭력성과 서양 중심적 시각에 시선을 돌린다. 제3장 〈독립과 혁명〉에서는 멕시코가 스페인의 식민지 지배로부터 벗어나 고유한 국민 정체성을 이루어나간 과정을 훑는다. 제4장 〈문화와 예술〉은 스페인의 무차별한 파괴로 사라져가던 원주민 문화의 부활과 현대 사회로의 전승을 이야기한다. 제5장 〈혼혈과 사회〉에서는 인종과 문화의 혼합 속에서 갈수록 부각되는 다원성의 의미와 가치를 중심 주제로 삼는다. 그리고 전체적으로는 이 책을 읽는 독자가 사고의 지평을 넓혀나갈 수 있기를 희망하며 멕시코 사회와 문화를 바라보는 다양한 시각을 비판적으로 제시한다.
멕시코가 미래 사회를 함께할 이웃 나라로 받아들여지기를 바라며
저자는 이러한 멕시코 읽기 후 바라는 점 한 가지를 덧붙인다.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멕시코에 대한 균형 잡힌 인식을 갖는 것이다. 저자는 책을 집필하는 과정에서 멕시코에 대한 옛 기록 중 대다수가 매우 편향된 시각으로 서술되었다는 점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고 말한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라는 말이 있듯이, 멕시코에 대한 기록은 대부분 멕시코를 정복한 스페인인이 서술한 것이다. 그래서 다수의 기록이 스페인이 자행한 폭력적인 정복과 경제적인 침탈을 정당화하기 위한 의도적인 왜곡으로 얼룩져 있다. 또한 유럽인과 유럽 문명이야말로 그 어떤 것보다 위대하다는 자아도취적인 시각에서 비롯된 오류도 눈에 띈다. 더구나 승자인 스페인인이 300여 년의 식민지 시대에 사회의 지배층으로 군림하면서 이러한 왜곡과 오류는 피지배층을 억압하고 착취하기 위한 도구로 활용되거나 고착되어왔다. 이로 인해 옛 기록들을 비판적인 분석 없이 그대로 받아들이면 스페인 기록자들이 갖고 있던 편향적인 시각에 휘말려 멕시코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가지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런 점에서 저자는 가능한 한 기존의 서양 중심적인 시각에서 탈피하여 원주민과 피지배층의 입장에서 서술하는 데 심혈을 기울였다고 강조한다. 그리고 멕시코의 진면목을 이해할 수 있는 핵심이라고 여겨지는 지점을 힘닿는 데까지 자세히 설명했다고 한다. 부족하나마 이를 통해 독자들이 멕시코에 대한 선입견과 오해를 걷어내고 미래 사회를 함께할 이웃 나라로 받아들일 수 있기를 소망한다.
멕시코, 현대 한국사회에 ‘조화’의 화두를 던지다
한국, 이제 ‘단일민족국가’라는 호명은 무리다
이질적인 인종과 문화 사이에서 발생하는 반목과 조화는 현대 한국사회에서도 큰 화두다. 전통적으로 한국 사회는 ‘한민족韓民族’으로 이루어진 단일민족국가라는 인식이 강하다. 황인종의 한 갈래인 한민족은 한반도와 만주 일부에 살고 있는 종족으로, 한국어를 사용하며 공동 문화권을 형성한 민족을 뜻한다.
그런데 2000년대에 들어 한국이 단일민족국가라는 인식이 급격하게 허물어지고 있다. 예를 들어 통계청의 《국제 인구 이동 통계》에 따르면 2006년부터 2011년까지 국내에 90일 이상 머무른 외국인의 숫자는 매년 9~15만 명 내외로 순유입을 꾸준히 유지하고 있다(IMF 사태의 영향을 받았던 2009년만 627명 순유출을 기록했다). 또한 법무부의 《출입국 외국인 정책 통계 연보》에 따르면 한국인과 결혼하여 이민 온 외국인의 합계는 2007년 10만 명을 넘긴 이래 꾸준히 증가하여 2011년에는 14만 4,681명을 기록했다(결혼 후 한국인으로 귀화한 외국인 4만여 명은 제외). 위 통계 자료들에 따르면 한국 사회에는 매년 10만 명 이상의 외국인이 새롭게 정착하고 있는 데다가, 외국인과 결혼하여 가정을 꾸리는 일명‘다문화 가족’의 수도 계속해서 늘어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더구나 통계청의 《출생 통계》에 따르면 2011년 한국의 합계 출산율은 1.24명으로, 2002년 이후로 한 해도 1.3명을 넘지 못하고 있다(합계 출산율이 1.3명 이하인 경우에 초저출산 사회로 분류한다). 이와 같은 추세라면 한국의 인구는 2030년 5,216만 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이듬해부터 지속적으로 감소할 것이 확실하다. 결국 내국인의 숫자는 갈수록 줄어드는 반면에 외국인과 혼혈아(다문화 가족에서 태어나게 될 자녀들과 그 후손)의 숫자는 계속해서 늘어날 것이다.
이처럼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과 혼혈아의 비중이 계속 증가할 것이라는 예측과 더불어 이미 농촌 지역에서 대두되고 있는 다문화 가족 관련 이슈까지 감안한다면, 더 이상 한국을 한민족만 살고 있는 단일민족국가라고 부르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멕시코를 ‘타산지석’ 삼아 타인종, 타문화를 발전적으로 수용하자
지금 한국 사회는 외국인 이주자와 다문화 가족으로 대변되는 타인종, 타문화와 직접적인 접촉을 경험하고 있다. 더구나 정보 통신 기술의 발달로 전 세계가 하나로 연결된 현대 사회의 특성상 이러한 접촉은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증대될 것임에 틀림없다. 그런데 단일민족이라는 인식에 얽매인 대다수의 한국인은 이질적인 것을 거부감 없이 수용하는 열린 자세를 갖추지 못하고 있다. 예를 들어 여성가족부의 《2012년 다문화 가족 실태 조사》에 따르면 외국인이라는 이유로 차별이나 무시를 당한 경험이 있는 결혼 이민자와 귀화인의 비율은 41.3퍼센트에 달했다. 이는 2009년의 36.4퍼센트보다도 4.9퍼센트 증가한 수치로, 도리어 외국인에 대한 한국인의 거부감이 강화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처럼 거부감이 강화되는 근본적인 이유는 인간은 무엇이건 새로운 것과 접촉할 때 호기심과 거부감을 동시에 느끼기 때문이다. 이런 거부감은 그냥 둔다고 저절로 없어지지 않는다. 제거하려는 의식적인 노력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질적인 것을 다원성의 차원에서 바라볼 줄 아는 사고방식과 감수성을 길러야만 거부감의 장벽을 넘어서서 타인종, 타문화를 한국 사회에 발전적으로 수용할 수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고방식과 감수성을 기르기 위해서는 장기간에 걸쳐 체계적인 교육을 받는 것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장 효과적인 교육 방법 중 하나는 현재 한국 사회가 직면하고 있는 타인종, 타문화와의 직접적인 접촉이라는 문제에 있어서 이전에 경험했던 외국의 예를 타산지석他山之石으로 삼는 것이다. 멕시코는 스페인으로 대변되는 유럽인과 유럽 문화와의 급속하고도 파괴적인 충돌로 인해 수많은 부작용을 겪었으며, 16세기부터 현재까지 수백 년 동안 토착 문화와 외래문화가 반목과 조화를 거듭하며 국가 정체성을 형성해왔다. 따라서 이 문제와 관련하여 한국 사회의 길라잡이가 되기에 가장 적당한 나라 중 하나다. 멕시코는 토착민과 이주자가 인종적으로도 융합하여 거대한 혼혈 사회를 형성했다는 점에서, 다문화 가족의 증가로 혼혈 사회의 길목에 서 있는 한국에 더욱 알맞은 교훈을 제시해줄 수 있으리라 믿는다.
외국인 이주자와 다문화 가족의 증대로 한국 사회는 이제 곧 혼혈 사회로 진입하게 된다. 따라서 이제부터라도 타인종, 타문화의 특성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존중할 줄 아는 진정한 다원성에 눈을 떠야만 한다. 그래야만이 소모적인 반목을 넘어서서 모두가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미래 한국 사회를 창조해낼 수 있을 것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이준명
중앙대학교 일어일문학과를 졸업하고 9년 동안 출판사에서 기획, 번역 등의 일을 하며 평범하게 살았다. 그러던 2009년 멕시코로 훌쩍 떠나 2년 동안 머물면서 라틴아메리카 곳곳을 돌아다녔다. 한국인에게 낯선 땅인 멕시코에서 이방인으로 살며 다양한 문화적 충격을 경험했고, 이를 통해 스페인에서 이식된 외래문화와 멕시코 자생의 토착 문화가 충돌하고 융합하는 과정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멕시코에서의 경험을 살려 혼혈사회를 눈앞에 둔 한국인이 타산지석으로 삼을 만한 시사점을 던지기로 마음먹었다. 멕시코에서 돌아온 후 인문 및 여행 작가로 활동하고 있으며, 저서로는 《어느 멋진 일주일 크로아티아》가 있다. 또한 2012년부터 잡지 《도서관 이야기》에 〈책을 만나러 떠나는 세계여행〉을 연재하여 책과 여행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이론으로 점철된 인문학보다는 경험을 바탕으로 한 실천적인 인문학을 추구하며, 앞으로도 라틴아메리카의 역사, 철학, 종교 등 문화 일반에 대한 글을 통해 한국 인문학의 지평을 넓혀갈 계획이다.
▣ 주요 목차
머리말
제1장 신화와 종교
유럽인으로 왜곡당한 멕시코 인류 창조의 신―케찰코아틀
신에게 인간을 음식으로 바친 아스텍의 제의―인신 공양
가톨릭 선교를 위해 유럽에서 수입된 어머니 여신―과달루페 성모
제2장 메소아메리카와 스페인
신대륙이라는 오명을 뒤집어 쓴 땅의 원주민들―메소아메리카의 고대 문명
멕시코로 이주해 온 이방인이 꽃피운 나라―아스텍제국
금을 찾아 약탈과 학살을 벌인 스페인 원정대―스페인의 정복
제3장 독립과 혁명
식민지 해방에서 자유주의 개혁으로 이어진 투쟁―멕시코 독립
민중의 피와 땀이 배어 있는 멕시코의 대서사시―멕시코 혁명
멕시코의 정체성을 완성시킨 역사의 분수령―혁명의 제도화
제4장 문화와 예술
파괴와 왜곡으로 사라질 뻔한 마야인의 고대 유산―마야문명
전통과 현대성의 결합으로 재탄생한 시와 소설―멕시코 문학
모두가 공유하는 멕시코 예술의 르네상스―벽화 운동
제5장 혼혈과 사회
메스티소로 통합되기를 거부하는 사람들―원주민과 다문화주의
영혼의 정복으로 시작해 융합으로 끝맺은 신앙의 길―가톨릭과 싱크리티즘
영원히 함께 가야 할 두 나라의 반목과 상생―미국과 멕시코
맺음말
주석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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