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고종의 국장(은 신도식, 순종의 국장은 조선식
순종이 타계한 지 닷새 후, 일본정부는 ‘장의위원회’를 설치했다. 장의위원장은 조선총독부 2인자인 정무총감 유아사 구라헤이. 일본 쪽에서는 현재의 관방장관에 해당하는 내각 서기관장이 책임을 맡았다. 순종의 국장이 당시의 일본으로서 얼마나 중대한 일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들이 서로 주고받은 상세한 내용이 「이왕 국장 서류」에 대량으로 포함되어 있다.
기록을 살펴나가자 조선왕실의궤를 참고로 삼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부분이 여러 군데 나타났다. 조선왕조의 국장에는 실로 다양한 양식이 있지만, 일본인들로서는 생소한 것이 많다. 모든 의식을 행할 수는 없었으므로 순종의 국장에서 행할 의식을 뽑아내어 거기에 관해 ‘국장으로 행할 제의의 독법 및 의의’라고 하여 상세하게 설명해놓았다.
결과로서, 순종의 국장에는 수많은 조선 민중들이 모여 장례 행렬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자 연도를 가득 메웠다. 그렇지만 신도식으로 치른 고종 국장 때처럼 대규모 민족운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의궤를 참고로 하면서 일본정부가 행한 언뜻 보기에는 조선식이었던 국장. 그것은 한국을 합병한 일본의 입장을 관철하면서, 동시에 조선 민중에 대한 배려도 드러내는 무척 어려운 행사였다.
NHK 특별취재팀도 넋을 빼앗긴 조선왕실의궤
실물 촬영을 위해 규장각을 찾아간 날, 여러 권의 의궤를 눈앞에 두고 취재팀은 그 치밀함과 화려함에 넋을 빼앗겼다. 특히 ‘어람용’이라 일컬어지는, 국왕이 보도록 만들어진 의궤는 한지 가운데에서도 최고급인 ‘초주지를 썼고, 장정에는 비단을 사용했다. 묶기 위해 박은 5개의 도금한 놋쇠 장식은 국화 문양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질감은 그야말로 호화현란이라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의궤는 통상 똑같은 내용으로 5부에서 9부까지 제작되었다. 그 중 1부는 국왕이 친견(W見)하기 위한 ‘어람용’이고, 나머지는 ‘분상용’이라고 하여 의궤를 주관하는 예조, 의정부 등의 관청 및 조선시대에 중요한 서적을 보관한 ‘춘추관’을 비롯한 서고 외에 강화도에 있는 ‘외규장각’, 오대산, 태백산, 적상산 등 지방 4군데에 분산하여 보관했다.
혹시 불에 타거나 도난을 당하더라도 기록 그 자체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지혜였다. 분상용은 ‘저주지’라는 종이를 썼고, 장정도 삼베로 되어 있어 어람용과의 질감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났다. 이들 의궤는 모두가 필사본, 즉 직접 손으로 써서 만들었다.
기초자료용으로 가져간 의궤
장례란 전통적인 가치체계를 가진 의례의 하나이며, 각 집단(민족)의 고유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따라서 순종의 국장을 조선 고례의 방식으로 행하게 되면, 인원 배열이나 기구의 재질, 종류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 조선시대 왕실이나 국가의 주요 행사를 문장이나 그림으로 기록한 의궤가 참고가 되었으리라 추측된다. 물론 반드시 이것만이 궁내성에 조선왕실의궤가 이관된 직접적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은 조선의 독립을 예상하지 않았으며 100년, 200년, 아니 영원히 일제의 일부로서 이어진다는 전제 아래 통치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옛 관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법적으로 모순되지 않는 범위에서 조선을 일본 속으로 편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국 궁내성으로 이관된 국장도감의궤나 왕세자 가례도감의궤는 앞으로 되풀이될 조선왕조 출신인 왕?공족의 장례와 혼례를 제도화하는 기초자료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만약 일본이 조선왕실의궤를 ‘약탈’할 마음이었다면, 프랑스처럼 최고급 어람용 의궤를 가져가지, 일부러 오대산 사고본을 중심으로 다소 질이 떨어지는 의궤를 골라갔을 리 없다는 것이 취재팀이 내린 결론이었다.
▣ 작가 소개
저 : 아마가와 에미꼬
1990년 NHK 입사. 2011년부터 수도권방송센터 CP(수석 프로듀서). 참여한 주요 프로그램으로 NHK스페셜 「나가사키 영상의 증언∼되살아난 115장의 네가 필름」(1995년), 「인도의 충격, 솟구치는 두뇌 파워」(2007년), 클로즈업 「‘문명의 유산’을 에워싼 공방」(2010년) 등이 있다.
저 : 기무라 요이치로
1998년 NHK 입사. 2009년부터 서울특파원(PD). 참여한 주요 프로그램으로 NHK스페셜 「일본노래를 부른다∼노래자랑 in 서울」(2005년), 「다큐멘트 북조선」(2006년), 클로즈업 현대 「지속된 면회∼김현희와 납치 피해자가족∼」(2009년) 등. 두 번에 걸쳐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서기를 단독 인터뷰했다.
역 : 조양욱
현 일본문화연구소장으로 일본과 관련된 여러 편의 책을 저술한 작가이다. 1952년에 태어났으며, 한국외국어대학 일본어과, 동 대학원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했다. 그는 일본 교도통신(共同通信) 기자로 10.26과 광주항쟁 등을 취재했다. 이 때의 경험 등을 바탕으로 청일전쟁 이래 한반도에 특파되었던 외국기자들의 행적을 추적한 책 『외국특파원이 본 대사건의 현장』(청한)을 출간했다. 그 후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국민일보」 도쿄 특파원 및 문화부장으로 활동하면서 저널리즘의 시각에서 일본의 여러 현상들을 사폈고 일본, 키워드 99』『열 명의 일본인, 한국에 빠지다』『일본을 묻는다』등 10여 권의 책을 썼다. 일본 라디오단파방송이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언론인에게 수여하는 제8회 아시아상과 재단법인 일한문화교류기금상을 수상했다.
역서로는 『아프리카에서 온 그림엽서』,『거미줄』『뷰티풀 네임』,『천황을 알면 일본이 보인다』,『천국의 책방』등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 주요 목차
제1장 조선왕조의 귀중한 기록 ‘의궤(儀軌)’
제2장 한 일 두 황실의 융합을 의도
제3장 ‘국장(國葬)’과 의궤
제4장 조선왕조 후손의 소망
제5장 의궤의 행방은….
제6장 문화유산을 에워싼 새로운 움직임
고종의 국장(은 신도식, 순종의 국장은 조선식
순종이 타계한 지 닷새 후, 일본정부는 ‘장의위원회’를 설치했다. 장의위원장은 조선총독부 2인자인 정무총감 유아사 구라헤이. 일본 쪽에서는 현재의 관방장관에 해당하는 내각 서기관장이 책임을 맡았다. 순종의 국장이 당시의 일본으로서 얼마나 중대한 일이었는지를 알 수 있다. 이들이 서로 주고받은 상세한 내용이 「이왕 국장 서류」에 대량으로 포함되어 있다.
기록을 살펴나가자 조선왕실의궤를 참고로 삼았을 것으로 여겨지는 부분이 여러 군데 나타났다. 조선왕조의 국장에는 실로 다양한 양식이 있지만, 일본인들로서는 생소한 것이 많다. 모든 의식을 행할 수는 없었으므로 순종의 국장에서 행할 의식을 뽑아내어 거기에 관해 ‘국장으로 행할 제의의 독법 및 의의’라고 하여 상세하게 설명해놓았다.
결과로서, 순종의 국장에는 수많은 조선 민중들이 모여 장례 행렬을 자신의 눈으로 보고자 연도를 가득 메웠다. 그렇지만 신도식으로 치른 고종 국장 때처럼 대규모 민족운동은 일어나지 않았다. 의궤를 참고로 하면서 일본정부가 행한 언뜻 보기에는 조선식이었던 국장. 그것은 한국을 합병한 일본의 입장을 관철하면서, 동시에 조선 민중에 대한 배려도 드러내는 무척 어려운 행사였다.
NHK 특별취재팀도 넋을 빼앗긴 조선왕실의궤
실물 촬영을 위해 규장각을 찾아간 날, 여러 권의 의궤를 눈앞에 두고 취재팀은 그 치밀함과 화려함에 넋을 빼앗겼다. 특히 ‘어람용’이라 일컬어지는, 국왕이 보도록 만들어진 의궤는 한지 가운데에서도 최고급인 ‘초주지를 썼고, 장정에는 비단을 사용했다. 묶기 위해 박은 5개의 도금한 놋쇠 장식은 국화 문양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그 질감은 그야말로 호화현란이라 표현하기에 충분했다.
의궤는 통상 똑같은 내용으로 5부에서 9부까지 제작되었다. 그 중 1부는 국왕이 친견(W見)하기 위한 ‘어람용’이고, 나머지는 ‘분상용’이라고 하여 의궤를 주관하는 예조, 의정부 등의 관청 및 조선시대에 중요한 서적을 보관한 ‘춘추관’을 비롯한 서고 외에 강화도에 있는 ‘외규장각’, 오대산, 태백산, 적상산 등 지방 4군데에 분산하여 보관했다.
혹시 불에 타거나 도난을 당하더라도 기록 그 자체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지혜였다. 분상용은 ‘저주지’라는 종이를 썼고, 장정도 삼베로 되어 있어 어람용과의 질감 차이는 확연하게 드러났다. 이들 의궤는 모두가 필사본, 즉 직접 손으로 써서 만들었다.
기초자료용으로 가져간 의궤
장례란 전통적인 가치체계를 가진 의례의 하나이며, 각 집단(민족)의 고유성이 여실히 드러난다. 따라서 순종의 국장을 조선 고례의 방식으로 행하게 되면, 인원 배열이나 기구의 재질, 종류 등을 파악하기 위해서 조선시대 왕실이나 국가의 주요 행사를 문장이나 그림으로 기록한 의궤가 참고가 되었으리라 추측된다. 물론 반드시 이것만이 궁내성에 조선왕실의궤가 이관된 직접적 원인이라고 단정할 수는 없다.
당연한 일이지만 일본은 조선의 독립을 예상하지 않았으며 100년, 200년, 아니 영원히 일제의 일부로서 이어진다는 전제 아래 통치하고 있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옛 관습을 그대로 보존하고, 법적으로 모순되지 않는 범위에서 조선을 일본 속으로 편입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결국 궁내성으로 이관된 국장도감의궤나 왕세자 가례도감의궤는 앞으로 되풀이될 조선왕조 출신인 왕?공족의 장례와 혼례를 제도화하는 기초자료였던 것으로 추측된다.
만약 일본이 조선왕실의궤를 ‘약탈’할 마음이었다면, 프랑스처럼 최고급 어람용 의궤를 가져가지, 일부러 오대산 사고본을 중심으로 다소 질이 떨어지는 의궤를 골라갔을 리 없다는 것이 취재팀이 내린 결론이었다.
▣ 작가 소개
저 : 아마가와 에미꼬
1990년 NHK 입사. 2011년부터 수도권방송센터 CP(수석 프로듀서). 참여한 주요 프로그램으로 NHK스페셜 「나가사키 영상의 증언∼되살아난 115장의 네가 필름」(1995년), 「인도의 충격, 솟구치는 두뇌 파워」(2007년), 클로즈업 「‘문명의 유산’을 에워싼 공방」(2010년) 등이 있다.
저 : 기무라 요이치로
1998년 NHK 입사. 2009년부터 서울특파원(PD). 참여한 주요 프로그램으로 NHK스페셜 「일본노래를 부른다∼노래자랑 in 서울」(2005년), 「다큐멘트 북조선」(2006년), 클로즈업 현대 「지속된 면회∼김현희와 납치 피해자가족∼」(2009년) 등. 두 번에 걸쳐 황장엽 전 북한 노동당 서기를 단독 인터뷰했다.
역 : 조양욱
현 일본문화연구소장으로 일본과 관련된 여러 편의 책을 저술한 작가이다. 1952년에 태어났으며, 한국외국어대학 일본어과, 동 대학원에서 일본문학을 전공했다. 그는 일본 교도통신(共同通信) 기자로 10.26과 광주항쟁 등을 취재했다. 이 때의 경험 등을 바탕으로 청일전쟁 이래 한반도에 특파되었던 외국기자들의 행적을 추적한 책 『외국특파원이 본 대사건의 현장』(청한)을 출간했다. 그 후 「조선일보」 문화부 기자, 「국민일보」 도쿄 특파원 및 문화부장으로 활동하면서 저널리즘의 시각에서 일본의 여러 현상들을 사폈고 일본, 키워드 99』『열 명의 일본인, 한국에 빠지다』『일본을 묻는다』등 10여 권의 책을 썼다. 일본 라디오단파방송이 아시아·오세아니아 지역 언론인에게 수여하는 제8회 아시아상과 재단법인 일한문화교류기금상을 수상했다.
역서로는 『아프리카에서 온 그림엽서』,『거미줄』『뷰티풀 네임』,『천황을 알면 일본이 보인다』,『천국의 책방』등 다수의 번역서가 있다.
▣ 주요 목차
제1장 조선왕조의 귀중한 기록 ‘의궤(儀軌)’
제2장 한 일 두 황실의 융합을 의도
제3장 ‘국장(國葬)’과 의궤
제4장 조선왕조 후손의 소망
제5장 의궤의 행방은….
제6장 문화유산을 에워싼 새로운 움직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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