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소크라테스는 왜 독배를 마셨을까
기원전 399년, 아테네와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사형을 당한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위대한 사상을 가졌고, 자신의 사상을 사회에 적용해나가는 실천 과정 또한 냉철한 이성과 분별력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러한 사상과 탐구 정신은 동시대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서양철학의 시발점이 되었지만, 자신의 생각이나 행적을 글로 남기지 않았다. 대신 플라톤이라는 빼어난 제자 덕분에 그는 철학사에 잊히지 않고 살아남았다.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고는 정계 진출의 꿈을 접고는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스승 소크라테스가 등장하여 대화를 주도하는 25편의 대화편과 스승이 변론하는 장면을 기술한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출판했다.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후기로 갈수록 스승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자신의 철학을 말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이 작품은 소크라테스가 기원전 399년 자신에게 제기된 고발사건에 대해 법정에서 자기를 변호하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먼저 자연현상에 관한 문제를 탐구하고 ‘사론’을 ‘정론’으로 만든다는 자신에 대한 초기의 고발과, 나라에서 섬기는 신들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며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후기의 고발을 구분하고 그것이 악의적인 허구임을 밝힌다.
소크라테스는 초기의 고발에 대해 자기는 소피스트도 아니고 자연철학자도 아니며, 자기의 유일한 지식은 자기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델포이의 신탁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 자기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을 찾아다녔으나 그런 사람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그 과정에서 지혜롭다는 사람들도 사실은 무지하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이들의 미움을 산 것이 화근이 되어 고발당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유죄 선고를 받고 사형이 구형되자 자기가 추방형을 자청하면 사형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는 아테네의 은인인 만큼 상을 받아 마땅하거늘 유죄를 인정하는 어떤 형도 스스로 제의하지는 않겠다고 우긴다. 그럼에도 그는 친구들의 권유에 따라 30므나의 벌금형을 제의하지만 배심원들이 사형을 선고하자, 최후진술에서 자기가 죽은 뒤 배심원들은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칠십 노인을 사형에 처했다는 비난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크리톤]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힌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실 시각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죽마고우 크리톤이 찾아와 자기가 도와줄 테니 어린 자식들을 돌보기 위해서라도 탈옥하라고 권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문제는 탈옥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탈옥이 정당한 행위인가라며 악을 악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게 만약 아테나이의 국법이 ‘우리는 너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교육받게 해주었거늘 네가 우리를 뒤엎으려는 것은 배은망덕한 행위가 아닌가?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너는 진작 이 나라를 떠났어야지, 누릴 것 다 누리고는 이제 와서 이 나라에서 허둥지둥 도주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며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리고 네가 외국으로 망명해서 얻을 게 무엇인가? 우리는 네가 목숨과 자식들을 생각하기에 앞서 정당하게 행동하기를 요구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다고 가정한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지 묻는다. 그러자 크리톤이 국법이 그렇게 묻는다면 자기도 대답할 말이 궁색하다고 말한다.
[파이돈]
이 대화편에서는 엘리스 출신으로 아테나이에 노예로 팔려왔다가 해방되어 소크라테스의 헌신적인 제자가 된 파이돈이, 소크라테스가 생애의 마지막 몇 시간 동안 친구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다가 어떻게 독약을 마시고 죽었는지 들려준다.
몸은 필멸이지만 혼은 불멸이라는 혼불멸론과, 배움이란 전생에 알고 있던 것을 상기하는 것이라는 상기론, 예컨대 특정 사물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것이 아름다움의 이데아에 관여하기 때문이라는 이데아론이 이 대화편의 핵심 내용을 이룬다. 이 대화편은 소크라테스가 태연하고 침착하게 독배를 받아 마시고 죽는 감동적인 장면으로 끝난다.
[향연]
이 대화편은 비극작가 아가톤이 기원전 416년 레나이아(Lenaia) 제의 비극 경연에서 처음 우승한 것을 자축하고자 베푼 술잔치(symposion)에서 여러 사람이 에로스(eros 사랑)에 관해 피력한 견해를 기록한 것이다. 이 대화편은 당시 너무 어려서 그 술잔치에 참석하지 못한 팔레론 출신 아폴로도로스가 술잔치에 참석했던 소크라테스의 제자 아리스토데모스한테서 들은 것을 친구에게 전하는 액자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다.
▣ 작가 소개
저 : 플라톤
Platon
플라톤(기원전 427~347)은 기원전 427년경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난 철학자이다. 플라톤은 유명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된 지 4년째 되는 해에 태어났으며, 전쟁은 기원전 404년에 아테네의 패배로 끝났으므로 전쟁 속에서 태어나 전쟁 속에서 성장하여 성인이 된다.
그는 맹목적인 삶보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소크라테스를 통해 배웠다. 플라톤의 집안은 비교적 상류계급이었고 그러한 배경을 가진 젊은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그 또한 한때 정치에 뜻을 두었지만, 그가 믿고 따르던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정치적인 배경이 있음을 확인한 후 정치에 회의를 품고 철학에 매진하게 된다.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자주 외국 여행길에 올랐으며 교육에 대한 열의가 매우 높아 소크라테스 사후 많은 우여곡절 끝에 기원전 387년경 아테네 근교에 철학 중심의 종합대학인 아케데미아라는 학원을 창설하였다. 그 곳을 통해 뛰어난 수학자와 높은 교양을 갖춘 정치적 인재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많은 철학자들을 양성하며 집필활동에 전념한다.
소크라테스는 아무런 글도 남기지 않았지만, 그가 죽은 후 제자인 플라톤의 작품을 통해 그의 철학적 삶이 알려지게 되었다. 플라톤의 저서 30여편 가운데 한 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대화형식을 취하고 있어 『대화편』이라고 불리는데, 『국가』 『소크라테스의 변명』 『향연』 『파이돈』 『크리톤』 『프로타고라스』 등에서 주인공으로 모두 소크라테스를 내세우고 있다. 이로써 많은 저서들은 스승인 소크라테스에 대한 기록들로 스승의 영향이 플라톤의 사상적 근간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플라톤의 사상을 한 마디로 요약하기란 불가능하다. 고대의 사상가들이 그러하듯, 플라톤 역시 현대의 분과학문 체계로는 불가능할 법한 종합적 사상을 개진하였다. 그는 인식론적 측면에서 이데아를 제창함으로써 본질과 현상이라는 이분법적 사유를 발전시켰다. 『국가』는 플라톤의 정치관을 대변하는 저술로, 이 저서에서 플라톤은 민주적인 정치 체제보다는 지적 소양이 풍부한 귀족들에 의한 통치를 선호했다. 철인군주론은 플라톤의 정치관을 잘 드러내는 개념이다. 그는 종종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와 비교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다분히 현상 지향적이었다면 플라톤의 사상은 이상적이고 관념 위주였다는 평을 받는다.
역 : 천병희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5년 동안 독문학과 고전문학을 수학했으며 북바덴 주정부가 시행하는 희랍어검정시험 및 라틴어검정시험에 합격했다. 지금은 단국대학교 인문학부 명예 교수로, 그리스 문학과 라틴 문학을 원전에서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원전 번역으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로마의 축제들』, 아폴로도로스의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그리스 로마 에세이』,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크세노폰의 『페르시아 원정기』, 아리스토텔레스의『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 및 호라티우스의 『시학』 등 다수가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그리스 비극의 이해』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옮긴이 서문_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서양 철학의 출발
주요 연대표
일러두기
소크라테스이 변론 Apologia Sokratous
크리톤 Kriton
파이돈 Phaidon
향연 Symposion
소크라테스는 왜 독배를 마셨을까
기원전 399년, 아테네와 아테네의 민주주의가 쇠퇴하고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 발생했다.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마시고 사형을 당한 일이다. 소크라테스는 위대한 사상을 가졌고, 자신의 사상을 사회에 적용해나가는 실천 과정 또한 냉철한 이성과 분별력에 기반을 두고 있었다. 그러한 사상과 탐구 정신은 동시대인에게 지대한 영향을 주었고 서양철학의 시발점이 되었지만, 자신의 생각이나 행적을 글로 남기지 않았다. 대신 플라톤이라는 빼어난 제자 덕분에 그는 철학사에 잊히지 않고 살아남았다.
플라톤은 스승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하는 것을 보고 큰 충격을 받고는 정계 진출의 꿈을 접고는 50년이 넘는 기간 동안 스승 소크라테스가 등장하여 대화를 주도하는 25편의 대화편과 스승이 변론하는 장면을 기술한 [소크라테스의 변론]을 출판했다.
플라톤의 초기 대화편은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충실하게 기록하고 있으며, 후기로 갈수록 스승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자신의 철학을 말하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소크라테스의 변론]
이 작품은 소크라테스가 기원전 399년 자신에게 제기된 고발사건에 대해 법정에서 자기를 변호하는 과정을 묘사한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먼저 자연현상에 관한 문제를 탐구하고 ‘사론’을 ‘정론’으로 만든다는 자신에 대한 초기의 고발과, 나라에서 섬기는 신들이 아닌 다른 신을 섬기며 청년들을 타락시킨다는 후기의 고발을 구분하고 그것이 악의적인 허구임을 밝힌다.
소크라테스는 초기의 고발에 대해 자기는 소피스트도 아니고 자연철학자도 아니며, 자기의 유일한 지식은 자기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아는 것뿐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기가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라는 델포이의 신탁이 도무지 믿기지 않아 자기보다 더 지혜로운 사람을 찾아다녔으나 그런 사람을 아무도 발견하지 못했는데, 그 과정에서 지혜롭다는 사람들도 사실은 무지하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이들의 미움을 산 것이 화근이 되어 고발당했다는 것이다.
소크라테스는 유죄 선고를 받고 사형이 구형되자 자기가 추방형을 자청하면 사형을 면할 수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자기는 아테네의 은인인 만큼 상을 받아 마땅하거늘 유죄를 인정하는 어떤 형도 스스로 제의하지는 않겠다고 우긴다. 그럼에도 그는 친구들의 권유에 따라 30므나의 벌금형을 제의하지만 배심원들이 사형을 선고하자, 최후진술에서 자기가 죽은 뒤 배심원들은 살려달라고 애걸복걸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살날이 얼마 남지 않은 칠십 노인을 사형에 처했다는 비난에 시달리게 될 것이라고 예언한다.
[크리톤]
사형선고를 받고 감옥에 갇힌 소크라테스가 독약을 마실 시각이 다가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죽마고우 크리톤이 찾아와 자기가 도와줄 테니 어린 자식들을 돌보기 위해서라도 탈옥하라고 권한다. 그러자 소크라테스는 문제는 탈옥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탈옥이 정당한 행위인가라며 악을 악으로 갚아서는 안 된다고 대답한다. 그러면서 소크라테스는 크리톤에게 만약 아테나이의 국법이 ‘우리는 너를 낳아주고 길러주고 교육받게 해주었거늘 네가 우리를 뒤엎으려는 것은 배은망덕한 행위가 아닌가? 우리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면 너는 진작 이 나라를 떠났어야지, 누릴 것 다 누리고는 이제 와서 이 나라에서 허둥지둥 도주하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며 어떤 논리로도 정당화될 수 없다. 그리고 네가 외국으로 망명해서 얻을 게 무엇인가? 우리는 네가 목숨과 자식들을 생각하기에 앞서 정당하게 행동하기를 요구한다’는 취지의 말을 한다고 가정한다면 무엇이라고 대답할 것인지 묻는다. 그러자 크리톤이 국법이 그렇게 묻는다면 자기도 대답할 말이 궁색하다고 말한다.
[파이돈]
이 대화편에서는 엘리스 출신으로 아테나이에 노예로 팔려왔다가 해방되어 소크라테스의 헌신적인 제자가 된 파이돈이, 소크라테스가 생애의 마지막 몇 시간 동안 친구들과 어떤 대화를 나누다가 어떻게 독약을 마시고 죽었는지 들려준다.
몸은 필멸이지만 혼은 불멸이라는 혼불멸론과, 배움이란 전생에 알고 있던 것을 상기하는 것이라는 상기론, 예컨대 특정 사물이 아름다운 까닭은 그것이 아름다움의 이데아에 관여하기 때문이라는 이데아론이 이 대화편의 핵심 내용을 이룬다. 이 대화편은 소크라테스가 태연하고 침착하게 독배를 받아 마시고 죽는 감동적인 장면으로 끝난다.
[향연]
이 대화편은 비극작가 아가톤이 기원전 416년 레나이아(Lenaia) 제의 비극 경연에서 처음 우승한 것을 자축하고자 베푼 술잔치(symposion)에서 여러 사람이 에로스(eros 사랑)에 관해 피력한 견해를 기록한 것이다. 이 대화편은 당시 너무 어려서 그 술잔치에 참석하지 못한 팔레론 출신 아폴로도로스가 술잔치에 참석했던 소크라테스의 제자 아리스토데모스한테서 들은 것을 친구에게 전하는 액자소설 형식을 취하고 있다.
▣ 작가 소개
저 : 플라톤
Platon
플라톤(기원전 427~347)은 기원전 427년경 그리스 아테네에서 태어난 철학자이다. 플라톤은 유명한 펠로폰네소스 전쟁이 시작된 지 4년째 되는 해에 태어났으며, 전쟁은 기원전 404년에 아테네의 패배로 끝났으므로 전쟁 속에서 태어나 전쟁 속에서 성장하여 성인이 된다.
그는 맹목적인 삶보다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는 삶이 중요하다는 것을 소크라테스를 통해 배웠다. 플라톤의 집안은 비교적 상류계급이었고 그러한 배경을 가진 젊은이들이 대부분 그러하듯이 그 또한 한때 정치에 뜻을 두었지만, 그가 믿고 따르던 소크라테스의 죽음에 정치적인 배경이 있음을 확인한 후 정치에 회의를 품고 철학에 매진하게 된다.
그는 정치적인 이유로 자주 외국 여행길에 올랐으며 교육에 대한 열의가 매우 높아 소크라테스 사후 많은 우여곡절 끝에 기원전 387년경 아테네 근교에 철학 중심의 종합대학인 아케데미아라는 학원을 창설하였다. 그 곳을 통해 뛰어난 수학자와 높은 교양을 갖춘 정치적 인재들, 아리스토텔레스와 같은 많은 철학자들을 양성하며 집필활동에 전념한다.
소크라테스는 아무런 글도 남기지 않았지만, 그가 죽은 후 제자인 플라톤의 작품을 통해 그의 철학적 삶이 알려지게 되었다. 플라톤의 저서 30여편 가운데 한 편을 제외하고는 대부분이 대화형식을 취하고 있어 『대화편』이라고 불리는데, 『국가』 『소크라테스의 변명』 『향연』 『파이돈』 『크리톤』 『프로타고라스』 등에서 주인공으로 모두 소크라테스를 내세우고 있다. 이로써 많은 저서들은 스승인 소크라테스에 대한 기록들로 스승의 영향이 플라톤의 사상적 근간이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플라톤의 사상을 한 마디로 요약하기란 불가능하다. 고대의 사상가들이 그러하듯, 플라톤 역시 현대의 분과학문 체계로는 불가능할 법한 종합적 사상을 개진하였다. 그는 인식론적 측면에서 이데아를 제창함으로써 본질과 현상이라는 이분법적 사유를 발전시켰다. 『국가』는 플라톤의 정치관을 대변하는 저술로, 이 저서에서 플라톤은 민주적인 정치 체제보다는 지적 소양이 풍부한 귀족들에 의한 통치를 선호했다. 철인군주론은 플라톤의 정치관을 잘 드러내는 개념이다. 그는 종종 제자인 아리스토텔레스와 비교되는데,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다분히 현상 지향적이었다면 플라톤의 사상은 이상적이고 관념 위주였다는 평을 받는다.
역 : 천병희
서울대학교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하이델베르크대학교에서 5년 동안 독문학과 고전문학을 수학했으며 북바덴 주정부가 시행하는 희랍어검정시험 및 라틴어검정시험에 합격했다. 지금은 단국대학교 인문학부 명예 교수로, 그리스 문학과 라틴 문학을 원전에서 우리말로 옮기는 작업에 매진하고 있다.
대표적인 원전 번역으로는 호메로스의 『일리아스』와 『오뒷세이아』, 헤시오도스의 『신들의 계보』, 베르길리우스의 『아이네이스』, 오비디우스의 『변신이야기』『로마의 축제들』, 아폴로도로스의 『원전으로 읽는 그리스 신화』, 『아이스퀼로스 비극 전집』, 『소포클레스 비극 전집』, 『에우리피데스 비극 전집』, 『아리스토파네스 희극 전집』,『그리스 로마 에세이』, 헤로도토스의 『역사』, 투퀴디데스의 『펠로폰네소스 전쟁사』, 크세노폰의 『페르시아 원정기』, 아리스토텔레스의『정치학』, 아리스토텔레스 및 호라티우스의 『시학』 등 다수가 있으며 주요 저서로는 『그리스 비극의 이해』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옮긴이 서문_ 소크라테스의 죽음과 서양 철학의 출발
주요 연대표
일러두기
소크라테스이 변론 Apologia Sokratous
크리톤 Kriton
파이돈 Phaid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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