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정감록》 그리고 한국 예언문화 연구의 최종판
우리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정감록》을 모른다
《정감록》은 금서였다. 조선 왕조의 몰락을 예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조선 후기의 비공식 베스트셀러였다. 일제 강점기에도 이 책의 얄궂은 운명은 그대로 이어졌다. 조국 광복을 바라는 이들에게 이 예언서는 한 줄기 빛을 선사했다. 하지만 통치자들에게는 영락없는 흉서凶書였다. 18세기 이후 이 책으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유배된 이가 수백 명이었다. 수십만 명은 이 책 때문에 정든 고향산천을 등졌다. 이 책은 동학과 증산교를 비롯한 여러 신종교들의 탄생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제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정감록》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너무나 초라하다. 우리 역사 속에는 과연 이 문제의 책을 탄생시킨 무슨 특별한 전통이 있었는가? 우리는 제대로 된 답변을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다. 이른바 ‘정도령’은 누구이고 계룡산은 이 책과 무슨 관계인가? ‘십승지十勝地’라 불리는 명당 또는 길지의 의미는 무엇인가? 질문은 끝없이 이어지지만 되돌아오는 답변은 공허에 가깝다.
《정감록》의 미스터리를 푸는 여정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2011년 한국출판문화상 저술(학술) 부문), 《예언가, 우리 역사를 말하다》(2008년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정감록 역모 사건의 진실게임》(2006년 KBS 〈TV 책을 말하다〉 테마북), 《한국의 예언문화사》(2007년 문광부 우수학술도서)를 통해 한국 역사와 문화를 예언이라는 새로운 코드로 조명해온 저자 백승종은 이 책 《정감록 미스터리》를 통해 자신의 《정감록》 연구와 한국 예언문화 탐색을 일단락짓는다.
백승종은 예언문화 연구의 최종판인 이 책에서 《정감록》의 미스터리를 풀어내려 한다. ‘정도령’은 과연 누구인가? 계룡산에 얽힌 비밀은 과연 무엇인가? ‘십승지’로 대표되는 전국의 명당과 길지는 구체적으로 어디를 가리키며, 그런 곳이 길지로 손꼽히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비밀로 가득 찬 이 예언서를 쓴 사람은 누구이며, 어떻게 해서 현대인의 수중에 전해지게 되었는가? 과연 우리 역사 속에는 《정감록》을 탄생시킨 어떤 특별한 전통 같은 것이 있는가? 이 책에는 이런 여러 가지 질문을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저자의 방법은 문화사적이다. 이는 미셸 푸코가 말하는 지식계보학과도 일맥상통한다. 예언서 《정감록》을 이룩해낸 한국의 예언 전통과 고대 동양의 철학과 신앙에 주목해 《정감록》 미스터리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불완전하고 단편적인 몇 가지 단서를 가지고 범죄수사학적인 방식으로 《정감록》 미스터리에 덤벼든다. 《정감록》에 담긴 의미의 변천을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것, 이것은 한국 역사와 문화의 나이테를 읽는 새 방법일 것이다.
《정감록》의 의미 변천을 역사적으로 정리하기, 한국 문화의 나이테를 읽는 새 방법
《정감록》이란 ……
옛날부터 한반도에는 나라의 앞날을 예언하는 전통이 있었다. 뿌리도 제법 깊어 그 역사는 삼국통일 이전까지 소급된다. 《고려비기》, 《고경참》은 고대의 예언서요, 《삼한회토기》와 《삼각산명당기》는 중세의 예언서였다. 근세의 예언서로는 《도선비기》를 비롯해 수십 종이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정감록》이다.
《정감록》은 겉보기에는 정감鄭鑑, 이심李沁, 이연李淵 3인의 엉성한 대담집에 불과하다. 하지만 풍수지리설, 해도진인설, 미륵신앙 등이 저변을 흐른다. 조선이 곧 멸망하는데 그때 어디로 가야 살 수 있는지, 그리고 계룡산에 세워질 새 왕조는 언제 나타나는지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영조 때 《실록》에 처음 등장한 뒤 조정의 금령으로 출판, 소지 및 독서가 일체 금지되었다. 조선 왕조가 멸망하고 계룡산 아래 새 왕조가 세워진다는, 그야말로 국왕의 심기를 극도로 불편하게 만들 구절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감록》은 그런 금압에도 불구하고 필사본의 형태로 전국 각지에 널리 퍼졌다. 지배층에게는 혹세무민의 황당한 책이었지만 민중들 입장에서는 위로와 희망의 복음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 일어난 수많은 역모 사건과 19세기 말 동학농민운동이 이 예언서의 영향을 받았다. 뿐만 아니다. 수십 곳에 정감록촌이 들어섰고, 수천의 신종교단체도 등장했다.
《정감록》, 한국 예언문화의 집대성
조선 후기 이른바 나라를 원망하는 선비들이 퍼뜨렸다는 《정감록》은 그 뿌리가 깊었다. 고대 천문사상, 음양오행설, 풍수사상에 더하여 한국의 정치사가 《정감록》 안에 녹아들었다. 다양하고 풍부한 예언문화가 집대성된 것이다.
《정감록》은 가지와 열매도 풍성했다. 그것은 단일한 예언서가 아니라 수십 종의 이본으로 확산되었다. 외래 종교인 천주교와도 영향을 주고받을 정도였으니 유교 불교 및 도교적 사교방식을 통합적으로 수용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러한 《정감록》은 단순히 조선 왕조의 몰락을 예언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일부 사람들은 《정감록》을 읽으면서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변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들은 《정감록》을 바탕으로 사회문화운동을 전개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한국사회를 뒤흔든 신종교운동이 대표적인 경우다. 《정감록》이 촉발시킨 왕조교체운동이 후천세계로 대변되는 이상향 건설 또는 일제의 사슬에서 풀려나기 위한 독립운동으로까지 변화?발전되었다.
《정감록》이 오늘 여기에 말해주는 것들
왜 지금도 《정감록》인가
《정감록》은 조선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에 맞서 평민 지식인들이 준비한 대항 이데올로기였다. 이 점은 19세기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여러 신종교의 가르침에서 뚜렷이 입증된다.
동학, 증산교 및 원불교는 하나같이 곧 밝아올 새 세상을 노래했다. 그들이 선포한 새 날은 《정감록》이 민중에게 약속한 새 나라였다. 새 날의 모습은 성리학자들이 추구해 온 목가적 이상세계와는 달랐다. 역사상 존재했던 여러 왕조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새 하늘, 새 땅이었다. 이것이 《정감록》으로 빚은 대항 이데올로기의 핵심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정감록》의 예언을 읽으며 난세에 살아갈 길을 찾으려 노력했다. 요컨대 《정감록》은 난세를 만난 민중의 나침반이었다. 결코 단순한 혹세무민의 비기秘記나 길흉화복을 점치는 참서讖書가 아니었다. 유감스럽게도 난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정감록》이 필요한 이유다.
《정감록》, 한국인의 영원한 예언서
새들은 태풍을 미리 감지하고 부지런히 날갯짓을 한다. 옛사람들도 뭔가 큰 일이 닥쳐올 것 같으면 《정감록》을 서둘러 훑어보았다. 거기에 절망을 희망으로 살아내는 예언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감록》은 역사의 흐름에 맞춰 여러 차례 달리 읽혀왔다.
이 책이 우리 역사의 두께만큼이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은 《정감록》 해석에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정감록》이 한국인의 영원한 예언서임을 유념하여 편견을 접고 《정감록》 문화기행을 하다보면 어느새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밝아지고 사유의 지평이 트인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백승종
백승종은 1990년대부터 미시사의 실천운동에 전념해왔다. 그의 연구는 재량권, 생존전략 및 문화투쟁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집약되는데 이 책은 문화투쟁에 관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의 연구는 주로 한국의 예언문화사에 집중된 결과, 『예언가, 우리 역사를 말하다』(2007),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2006), 『한국의 예언문화사』(2006) 등의 저서가 출간되었다.
저자는 미시사 연구의 이론과 방법을 탐구하는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역서 『미시사의 즐거움』(공역, 2003)과 『미시사와 거시사』(공역, 2001)는 그 과정에서 얻은 결실이다.
그는 미시사 연구를 조선시대의 유교문화와 가족 및 마을생활에 적용하고, 근현대 한국의 문화사를 대상으로 실험하고 싶어 했다. 『조선의 통치철학』(공저, 2010)을 비롯해 The Stem Family in Eurasian Perspective(Population, Family, and Society/ Population, Famille Et Societe)(공저, 2009),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2003), 『그 나라의 역사와 말』(2002),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추억』(2000), 『아버지 난 누구예요』(편저, 2000), 『한국사회사연구』(1996) 등에서 저자의 이러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1990년부터 저자는 국내외 여러 대학교 및 연구기관에 근무하며 강의와 연구에 종사했다. 독일의 튀빙겐대학교(재직기간 1990∼1999)를 시작으로, 서강대학교(1999∼2003), 프랑스 국립 고등사회과학원(2000), 독일 막스플랑크역사연구소(1995, 1996, 2001, 2002∼2003),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2004), 독일 보훔대학교(2003, 2009) 등 여러 곳을 거쳤다. 2010년부터 저자는 충청남도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한문고전과 독일어 성경을 가르치며, 마을사람들의 구술생애사 연구에 착수했다.
▣ 주요 목차
책머리에
프롤로그 _ 왜 지금도 《정감록》인가
제1부 《정감록》의 모든 것
1장 ‘정도령’의 비밀
17세기 전반 진인 사건의 전말
진인의 탄생|‘역적들’의 자기변명|인조반정에 대한 불만|말해와 양해에 나타날 진인|뱀이 자라서 용이 되어야 제격|진인의 사주四柱|예언, 문화의 나이테
《정감록》의 숨은 키워드, ‘궁궁을을弓弓乙乙’
《정감록》에 보이는 ‘궁궁을을’|1748년 《정감록》 사건에 언급된 ‘궁궁’|동학의 ‘궁궁’|원불교의 ‘궁궁을을’
정도령은 누구인가
진인이 정도령인 이유|‘진인’은 누구인가|진인왕과 보양법, 밀교|때가 이르면 환상의 섬에서 나올 진인
진인왕은 한국판 전륜성왕인가
진인은 못된 양반을 생지옥으로|푸른 옷[靑衣]은 천주교 신부요, 서구열강이다|동학의 최제우, 새 세상 구현할 진인|진인은 동아시아 질서를 재편한다|진인왕이 다스릴 새 세상
《정감록》은 천주교와도 만났다?
천주교 신자들의 해도진인, 중국 신부 주문모|김이백의 예언|《니벽전》, 초기 천주교 지도자 이벽의 예언서|《정감록》에 스며든 천주교의 말세관|말세의 징후들
미국 대통령이 진인?
《정감록》 신자들의 한국전쟁|미국 대통령을 ‘정도령’으로 착각|‘황해도서 난리 발생’, ‘삼국분기설’ 들먹|빗나간 예언도 역사다
2장 계룡산의 비밀
왜 계룡산인가
태조 이성계와 계룡산|18세기 말부터 계룡산의 인기는 급상승|바위에 새겨진 비밀|명산 중의 명산 계룡산|풍수로 본 계룡산|계룡산 바위가 희어질 때|말세에는 계룡산으로
신도안은 대한독립의 소망
신도안 사람 김씨|신도안의 여러 뜻|3·1운동으로 조성된 신도안 열풍|신도안에서도 꺼지지 않는 대한독립의 꿈|신도안의 명물 칠성교의 ‘지푸라기 북’
계룡산과 신종교들
《정감록》, 대항 이데올로기, 신종교, 주체적 근대화운동은 함수관계|전통적 《정감록》 신앙에 근접한 청림교형|자하도 진인이 보내온 만병통치약|《정감록》 신앙의 원초적 형태|국가적 차원에서 천지개벽을 바라본 보천교형
계룡산과 원불교
신종교의 개벽사상에는 정도령이 숨쉰다|‘불종불박佛宗佛朴’의 예언|“어서어서 신도안으로 들어가라”|불교 부흥을 예언한 《정감록》|“계룡대 옮기면 우린 다시 들어간다”
3장 십승지의 비밀
십승지는 어디인가
〈감결〉의 성격|십승지의 으뜸 풍기 금계촌과 예천 금당동|경상도의 십승지|충청도의 십승지|전라도의 십승지|도계道界를 뛰어넘은 십승지
전국의 길지 (상)
정북창의 십승지론|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 궁기’가 있다|강원도의 길지|동굴로 연결된 신선세계|영남의 길지들|충청도의 길지
전국의 길지 (하)
호남의 길지|덕유산 부자 마을|길지 변산에 웬 도둑 떼가|조계산의 ‘십팔공’|왜적도 못 들어온 팔령산|《정감록》과 임진왜란|경기도의 길지|중국 지관 두사총이 손꼽은 길지|황해도의 길지
변산의 길지와 미륵신앙
변산은 백두대간의 서자|내변산 우동, 《정감록》에서 말한 길지|변산의 옛 사찰들|부사의방과 영산사, 한국 미륵신앙의 성지|월명암, 또 하나의 종교적 성지
제2부 《정감록》의 재발견
4장 《정감록》의 비밀
《정감록》, 언제 누가 썼나
선조 22년 정여립 역모 사건이 기원|《정감록》은 고구려 때 나왔다|‘정감의 참위한 글’을 서로 널리 전하였다|문제의 인물 조유제는 누구|하필 서북 지방에서 《정감록》이 출현한 이유는|나라를 원망하는 뜻이 꺾인[怨國失志] 사람들 손에서 탄생|‘정감’은 가공인물인가 역사적 인물인가
《정감록鄭鑑錄》이 ‘정감록’인 까닭?
실존 인물 정감이 《정감록》의 저자|정씨가 조선 왕조의 대안|‘정성진인’에서 ‘정감’까지|감鑑이라는 이름의 뜻|‘록錄’은 조선 후기에 등장한 예언서|18세기의 《정감록》은 한글본이었다!|새 예언서의 출현은 조선 후기 사회·문화의 변화를 반영해
1923년 일본인들의 《정감록》 처형
《정감록》을 죽이는 묘책|동경판 《정감록》에 대한 불만|결국 호소이의 뜻대로 되다
현대판 정본 《정감록》의 배후를 찾아라
정본 《정감록》의 대본은 규장각에|호소이의 동경판 《정감록》의 원고를 찾아서|현대판《정감록》은 아유가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정감록》의 두 얼굴
동학 및 천도교의 사회운동과 《정감록》|예언에서 찾은 조선 독립의 희망|동학과 《정감록》―최제우, 동학정신에 《정감록》 ‘궁궁을을’ 담아|백백교 사건―《정감록》의 혹세무민|백백교의 아전인수我田引水|《정감록》을 이용한 재물 뺏기
5장 탄생의 비밀
《고구려비기》에서 만난 《정감록》
술사들에겐 고구려가 중요했다|미래는 다시 개성의 시대|고구려의 수명은 900년이라는 예언|《고구려비기》는 시어사 가언충이 조작했을 것|전형적인 한국 고대의 예언 방식|백제의 멸망을 알리는 예언도 비유법
고대의 비결 《고경참》은 《정감록》의 모태
《고경참》의 내용은 영웅 일대기 같아|왕창근·궁예 왕은 그 뜻 파악 못해|《정감록》에 이어진 《고경참》의 서술 전통|태조 왕건과 역대 고려왕들은 비결을 믿어|근현대에도 위력을 떨친 비결
천문관은 《정감록》의 사상적 기둥
나라의 운명을 관장하는 별과 혜성|자미, 남북두성 그리고 남극성에 숨은 뜻|오성의 변괴|복성이라는 존재
《정감록》의 어머니 음양오행설
서북의 술사들, 왕조의 운명을 추수推數하다|수수께끼 같은 편년체 예언서|자꾸만 되풀이되는 비슷한 구절
미륵부처 환생설 ― 《정감록》 역모 사건의 사상적 기둥
이금“ 나무에 곡식 열린다” 민중들 유혹|고려 후기 이금이 약속한 이상세계|이금의 신앙동지와 적들|궁예도 미륵신앙 계통의 신종교 지도자|조선 후기의 자칭 미륵불 여환과 예언서
파자법破字法과 《정감록》
파자법이란 비밀 코드|파자법의 명인들|《격암유록》과 현대의 파자법|김삿갓과 파자법
에필로그 _ 《정감록》은 새날의 희망
찾아보기
《정감록》 그리고 한국 예언문화 연구의 최종판
우리는 그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너무나 《정감록》을 모른다
《정감록》은 금서였다. 조선 왕조의 몰락을 예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책은 조선 후기의 비공식 베스트셀러였다. 일제 강점기에도 이 책의 얄궂은 운명은 그대로 이어졌다. 조국 광복을 바라는 이들에게 이 예언서는 한 줄기 빛을 선사했다. 하지만 통치자들에게는 영락없는 흉서凶書였다. 18세기 이후 이 책으로 인해 목숨을 잃거나 유배된 이가 수백 명이었다. 수십만 명은 이 책 때문에 정든 고향산천을 등졌다. 이 책은 동학과 증산교를 비롯한 여러 신종교들의 탄생에도 결정적으로 기여했다.
하지만 이 같은 주제의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정감록》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너무나 초라하다. 우리 역사 속에는 과연 이 문제의 책을 탄생시킨 무슨 특별한 전통이 있었는가? 우리는 제대로 된 답변을 어디서도 발견할 수 없다. 이른바 ‘정도령’은 누구이고 계룡산은 이 책과 무슨 관계인가? ‘십승지十勝地’라 불리는 명당 또는 길지의 의미는 무엇인가? 질문은 끝없이 이어지지만 되돌아오는 답변은 공허에 가깝다.
《정감록》의 미스터리를 푸는 여정
《정조와 불량선비 강이천》(2011년 한국출판문화상 저술(학술) 부문), 《예언가, 우리 역사를 말하다》(2008년 문광부 우수교양도서), 《정감록 역모 사건의 진실게임》(2006년 KBS 〈TV 책을 말하다〉 테마북), 《한국의 예언문화사》(2007년 문광부 우수학술도서)를 통해 한국 역사와 문화를 예언이라는 새로운 코드로 조명해온 저자 백승종은 이 책 《정감록 미스터리》를 통해 자신의 《정감록》 연구와 한국 예언문화 탐색을 일단락짓는다.
백승종은 예언문화 연구의 최종판인 이 책에서 《정감록》의 미스터리를 풀어내려 한다. ‘정도령’은 과연 누구인가? 계룡산에 얽힌 비밀은 과연 무엇인가? ‘십승지’로 대표되는 전국의 명당과 길지는 구체적으로 어디를 가리키며, 그런 곳이 길지로 손꼽히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비밀로 가득 찬 이 예언서를 쓴 사람은 누구이며, 어떻게 해서 현대인의 수중에 전해지게 되었는가? 과연 우리 역사 속에는 《정감록》을 탄생시킨 어떤 특별한 전통 같은 것이 있는가? 이 책에는 이런 여러 가지 질문을 하나씩 풀어가는 과정이 담겨 있다.
미스터리를 풀어가는 저자의 방법은 문화사적이다. 이는 미셸 푸코가 말하는 지식계보학과도 일맥상통한다. 예언서 《정감록》을 이룩해낸 한국의 예언 전통과 고대 동양의 철학과 신앙에 주목해 《정감록》 미스터리를 해결하기 때문이다. 불완전하고 단편적인 몇 가지 단서를 가지고 범죄수사학적인 방식으로 《정감록》 미스터리에 덤벼든다. 《정감록》에 담긴 의미의 변천을 역사적으로 정리하는 것, 이것은 한국 역사와 문화의 나이테를 읽는 새 방법일 것이다.
《정감록》의 의미 변천을 역사적으로 정리하기, 한국 문화의 나이테를 읽는 새 방법
《정감록》이란 ……
옛날부터 한반도에는 나라의 앞날을 예언하는 전통이 있었다. 뿌리도 제법 깊어 그 역사는 삼국통일 이전까지 소급된다. 《고려비기》, 《고경참》은 고대의 예언서요, 《삼한회토기》와 《삼각산명당기》는 중세의 예언서였다. 근세의 예언서로는 《도선비기》를 비롯해 수십 종이 있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정감록》이다.
《정감록》은 겉보기에는 정감鄭鑑, 이심李沁, 이연李淵 3인의 엉성한 대담집에 불과하다. 하지만 풍수지리설, 해도진인설, 미륵신앙 등이 저변을 흐른다. 조선이 곧 멸망하는데 그때 어디로 가야 살 수 있는지, 그리고 계룡산에 세워질 새 왕조는 언제 나타나는지 등을 핵심 내용으로 하고 있다. 영조 때 《실록》에 처음 등장한 뒤 조정의 금령으로 출판, 소지 및 독서가 일체 금지되었다. 조선 왕조가 멸망하고 계룡산 아래 새 왕조가 세워진다는, 그야말로 국왕의 심기를 극도로 불편하게 만들 구절이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감록》은 그런 금압에도 불구하고 필사본의 형태로 전국 각지에 널리 퍼졌다. 지배층에게는 혹세무민의 황당한 책이었지만 민중들 입장에서는 위로와 희망의 복음이었기 때문이다. 조선 후기에 일어난 수많은 역모 사건과 19세기 말 동학농민운동이 이 예언서의 영향을 받았다. 뿐만 아니다. 수십 곳에 정감록촌이 들어섰고, 수천의 신종교단체도 등장했다.
《정감록》, 한국 예언문화의 집대성
조선 후기 이른바 나라를 원망하는 선비들이 퍼뜨렸다는 《정감록》은 그 뿌리가 깊었다. 고대 천문사상, 음양오행설, 풍수사상에 더하여 한국의 정치사가 《정감록》 안에 녹아들었다. 다양하고 풍부한 예언문화가 집대성된 것이다.
《정감록》은 가지와 열매도 풍성했다. 그것은 단일한 예언서가 아니라 수십 종의 이본으로 확산되었다. 외래 종교인 천주교와도 영향을 주고받을 정도였으니 유교 불교 및 도교적 사교방식을 통합적으로 수용한 것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이러한 《정감록》은 단순히 조선 왕조의 몰락을 예언하는 데 그치지 않았다. 일부 사람들은 《정감록》을 읽으면서 한국 사회의 총체적인 변화를 추구하게 되었다. 그들은 《정감록》을 바탕으로 사회문화운동을 전개했다. 19세기 말부터 20세기 초까지 한국사회를 뒤흔든 신종교운동이 대표적인 경우다. 《정감록》이 촉발시킨 왕조교체운동이 후천세계로 대변되는 이상향 건설 또는 일제의 사슬에서 풀려나기 위한 독립운동으로까지 변화?발전되었다.
《정감록》이 오늘 여기에 말해주는 것들
왜 지금도 《정감록》인가
《정감록》은 조선시대의 지배 이데올로기인 ‘성리학’에 맞서 평민 지식인들이 준비한 대항 이데올로기였다. 이 점은 19세기 후반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여러 신종교의 가르침에서 뚜렷이 입증된다.
동학, 증산교 및 원불교는 하나같이 곧 밝아올 새 세상을 노래했다. 그들이 선포한 새 날은 《정감록》이 민중에게 약속한 새 나라였다. 새 날의 모습은 성리학자들이 추구해 온 목가적 이상세계와는 달랐다. 역사상 존재했던 여러 왕조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근본적으로 다른 새 하늘, 새 땅이었다. 이것이 《정감록》으로 빚은 대항 이데올로기의 핵심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정감록》의 예언을 읽으며 난세에 살아갈 길을 찾으려 노력했다. 요컨대 《정감록》은 난세를 만난 민중의 나침반이었다. 결코 단순한 혹세무민의 비기秘記나 길흉화복을 점치는 참서讖書가 아니었다. 유감스럽게도 난세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아직도 《정감록》이 필요한 이유다.
《정감록》, 한국인의 영원한 예언서
새들은 태풍을 미리 감지하고 부지런히 날갯짓을 한다. 옛사람들도 뭔가 큰 일이 닥쳐올 것 같으면 《정감록》을 서둘러 훑어보았다. 거기에 절망을 희망으로 살아내는 예언의 지혜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그렇게 《정감록》은 역사의 흐름에 맞춰 여러 차례 달리 읽혀왔다.
이 책이 우리 역사의 두께만큼이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은 《정감록》 해석에 도움이 되었기를 바란다. 《정감록》이 한국인의 영원한 예언서임을 유념하여 편견을 접고 《정감록》 문화기행을 하다보면 어느새 역사를 바라보는 눈이 밝아지고 사유의 지평이 트인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 작가 소개
저 : 백승종
백승종은 1990년대부터 미시사의 실천운동에 전념해왔다. 그의 연구는 재량권, 생존전략 및 문화투쟁이라는 세 가지 키워드로 집약되는데 이 책은 문화투쟁에 관한 것이다. 지금까지 그의 연구는 주로 한국의 예언문화사에 집중된 결과, 『예언가, 우리 역사를 말하다』(2007), 『정감록 역모사건의 진실게임』(2006), 『한국의 예언문화사』(2006) 등의 저서가 출간되었다.
저자는 미시사 연구의 이론과 방법을 탐구하는데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역서 『미시사의 즐거움』(공역, 2003)과 『미시사와 거시사』(공역, 2001)는 그 과정에서 얻은 결실이다.
그는 미시사 연구를 조선시대의 유교문화와 가족 및 마을생활에 적용하고, 근현대 한국의 문화사를 대상으로 실험하고 싶어 했다. 『조선의 통치철학』(공저, 2010)을 비롯해 The Stem Family in Eurasian Perspective(Population, Family, and Society/ Population, Famille Et Societe)(공저, 2009), 『대숲에 앉아 천명도를 그리네』(2003), 『그 나라의 역사와 말』(2002), 『동독 도편수 레셀의 북한추억』(2000), 『아버지 난 누구예요』(편저, 2000), 『한국사회사연구』(1996) 등에서 저자의 이러한 노력을 엿볼 수 있다. 1990년부터 저자는 국내외 여러 대학교 및 연구기관에 근무하며 강의와 연구에 종사했다. 독일의 튀빙겐대학교(재직기간 1990∼1999)를 시작으로, 서강대학교(1999∼2003), 프랑스 국립 고등사회과학원(2000), 독일 막스플랑크역사연구소(1995, 1996, 2001, 2002∼2003), 독일 베를린자유대학교(2004), 독일 보훔대학교(2003, 2009) 등 여러 곳을 거쳤다. 2010년부터 저자는 충청남도의 어느 시골마을에서 한문고전과 독일어 성경을 가르치며, 마을사람들의 구술생애사 연구에 착수했다.
▣ 주요 목차
책머리에
프롤로그 _ 왜 지금도 《정감록》인가
제1부 《정감록》의 모든 것
1장 ‘정도령’의 비밀
17세기 전반 진인 사건의 전말
진인의 탄생|‘역적들’의 자기변명|인조반정에 대한 불만|말해와 양해에 나타날 진인|뱀이 자라서 용이 되어야 제격|진인의 사주四柱|예언, 문화의 나이테
《정감록》의 숨은 키워드, ‘궁궁을을弓弓乙乙’
《정감록》에 보이는 ‘궁궁을을’|1748년 《정감록》 사건에 언급된 ‘궁궁’|동학의 ‘궁궁’|원불교의 ‘궁궁을을’
정도령은 누구인가
진인이 정도령인 이유|‘진인’은 누구인가|진인왕과 보양법, 밀교|때가 이르면 환상의 섬에서 나올 진인
진인왕은 한국판 전륜성왕인가
진인은 못된 양반을 생지옥으로|푸른 옷[靑衣]은 천주교 신부요, 서구열강이다|동학의 최제우, 새 세상 구현할 진인|진인은 동아시아 질서를 재편한다|진인왕이 다스릴 새 세상
《정감록》은 천주교와도 만났다?
천주교 신자들의 해도진인, 중국 신부 주문모|김이백의 예언|《니벽전》, 초기 천주교 지도자 이벽의 예언서|《정감록》에 스며든 천주교의 말세관|말세의 징후들
미국 대통령이 진인?
《정감록》 신자들의 한국전쟁|미국 대통령을 ‘정도령’으로 착각|‘황해도서 난리 발생’, ‘삼국분기설’ 들먹|빗나간 예언도 역사다
2장 계룡산의 비밀
왜 계룡산인가
태조 이성계와 계룡산|18세기 말부터 계룡산의 인기는 급상승|바위에 새겨진 비밀|명산 중의 명산 계룡산|풍수로 본 계룡산|계룡산 바위가 희어질 때|말세에는 계룡산으로
신도안은 대한독립의 소망
신도안 사람 김씨|신도안의 여러 뜻|3·1운동으로 조성된 신도안 열풍|신도안에서도 꺼지지 않는 대한독립의 꿈|신도안의 명물 칠성교의 ‘지푸라기 북’
계룡산과 신종교들
《정감록》, 대항 이데올로기, 신종교, 주체적 근대화운동은 함수관계|전통적 《정감록》 신앙에 근접한 청림교형|자하도 진인이 보내온 만병통치약|《정감록》 신앙의 원초적 형태|국가적 차원에서 천지개벽을 바라본 보천교형
계룡산과 원불교
신종교의 개벽사상에는 정도령이 숨쉰다|‘불종불박佛宗佛朴’의 예언|“어서어서 신도안으로 들어가라”|불교 부흥을 예언한 《정감록》|“계룡대 옮기면 우린 다시 들어간다”
3장 십승지의 비밀
십승지는 어디인가
〈감결〉의 성격|십승지의 으뜸 풍기 금계촌과 예천 금당동|경상도의 십승지|충청도의 십승지|전라도의 십승지|도계道界를 뛰어넘은 십승지
전국의 길지 (상)
정북창의 십승지론|태백산과 소백산 사이에‘ 궁기’가 있다|강원도의 길지|동굴로 연결된 신선세계|영남의 길지들|충청도의 길지
전국의 길지 (하)
호남의 길지|덕유산 부자 마을|길지 변산에 웬 도둑 떼가|조계산의 ‘십팔공’|왜적도 못 들어온 팔령산|《정감록》과 임진왜란|경기도의 길지|중국 지관 두사총이 손꼽은 길지|황해도의 길지
변산의 길지와 미륵신앙
변산은 백두대간의 서자|내변산 우동, 《정감록》에서 말한 길지|변산의 옛 사찰들|부사의방과 영산사, 한국 미륵신앙의 성지|월명암, 또 하나의 종교적 성지
제2부 《정감록》의 재발견
4장 《정감록》의 비밀
《정감록》, 언제 누가 썼나
선조 22년 정여립 역모 사건이 기원|《정감록》은 고구려 때 나왔다|‘정감의 참위한 글’을 서로 널리 전하였다|문제의 인물 조유제는 누구|하필 서북 지방에서 《정감록》이 출현한 이유는|나라를 원망하는 뜻이 꺾인[怨國失志] 사람들 손에서 탄생|‘정감’은 가공인물인가 역사적 인물인가
《정감록鄭鑑錄》이 ‘정감록’인 까닭?
실존 인물 정감이 《정감록》의 저자|정씨가 조선 왕조의 대안|‘정성진인’에서 ‘정감’까지|감鑑이라는 이름의 뜻|‘록錄’은 조선 후기에 등장한 예언서|18세기의 《정감록》은 한글본이었다!|새 예언서의 출현은 조선 후기 사회·문화의 변화를 반영해
1923년 일본인들의 《정감록》 처형
《정감록》을 죽이는 묘책|동경판 《정감록》에 대한 불만|결국 호소이의 뜻대로 되다
현대판 정본 《정감록》의 배후를 찾아라
정본 《정감록》의 대본은 규장각에|호소이의 동경판 《정감록》의 원고를 찾아서|현대판《정감록》은 아유가이로부터 시작되었다
《정감록》의 두 얼굴
동학 및 천도교의 사회운동과 《정감록》|예언에서 찾은 조선 독립의 희망|동학과 《정감록》―최제우, 동학정신에 《정감록》 ‘궁궁을을’ 담아|백백교 사건―《정감록》의 혹세무민|백백교의 아전인수我田引水|《정감록》을 이용한 재물 뺏기
5장 탄생의 비밀
《고구려비기》에서 만난 《정감록》
술사들에겐 고구려가 중요했다|미래는 다시 개성의 시대|고구려의 수명은 900년이라는 예언|《고구려비기》는 시어사 가언충이 조작했을 것|전형적인 한국 고대의 예언 방식|백제의 멸망을 알리는 예언도 비유법
고대의 비결 《고경참》은 《정감록》의 모태
《고경참》의 내용은 영웅 일대기 같아|왕창근·궁예 왕은 그 뜻 파악 못해|《정감록》에 이어진 《고경참》의 서술 전통|태조 왕건과 역대 고려왕들은 비결을 믿어|근현대에도 위력을 떨친 비결
천문관은 《정감록》의 사상적 기둥
나라의 운명을 관장하는 별과 혜성|자미, 남북두성 그리고 남극성에 숨은 뜻|오성의 변괴|복성이라는 존재
《정감록》의 어머니 음양오행설
서북의 술사들, 왕조의 운명을 추수推數하다|수수께끼 같은 편년체 예언서|자꾸만 되풀이되는 비슷한 구절
미륵부처 환생설 ― 《정감록》 역모 사건의 사상적 기둥
이금“ 나무에 곡식 열린다” 민중들 유혹|고려 후기 이금이 약속한 이상세계|이금의 신앙동지와 적들|궁예도 미륵신앙 계통의 신종교 지도자|조선 후기의 자칭 미륵불 여환과 예언서
파자법破字法과 《정감록》
파자법이란 비밀 코드|파자법의 명인들|《격암유록》과 현대의 파자법|김삿갓과 파자법
에필로그 _ 《정감록》은 새날의 희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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