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시대가 불러낸 두 천재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인류 최악의 발명품으로 핵무기를 뽑을 이가 많을 것이다. 인류사를 핵무기 사용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만큼 핵무기는 인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1945년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처음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이를 개발한 과학자들조차 아뜩해 했다. 열지 말았어야 할 판도라 상자를 열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다.
주지하다시피 이 두 사람은 핵무기가 출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아인슈타인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원자폭탄 제작 실현 가능성을 알렸고, 오펜하이머는 로스앨러모스 연구소(핵무기 개발을 목적으로 창설된 미국 정부 기관)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실제로 원자폭탄을 제작해 냈다. 그뿐 아니라 일본에 원폭 투하를 결정하는 과정에도 개입했다. 이 일로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는 평생토록 부채감을 안고 살았고,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순 없지만 핵무기가 제대로 통제라도 되길 바라며 여러 활동을 펼쳤다.
두 천재를 통해 본 20세기 과학, 정치적 환경
이 책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 삶을 중심으로 당시 시대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두 사람이 어떤 과학, 정치적 환경에서 출현했고, 한 시대를 상징하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으며, 그 위대함을 어떻게 사회에 돌려주었는지 인터뷰 내용과 여러 자료를 근거로 보여 준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것은 천재 즉 “위대한 인물”은 단순히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이라는 “고전적” 물리학이 한계에 부딪힌 시점에 등장했다. 그러므로 아인슈타인이 이룬 업적은 다른 개인이나 단체도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성자 이미지로 자신을 빚어 갈 수 있는 역사적 환경도 타고났다. 1·2차 대전과 대공황을 겪었고, 히틀러와 스탈린이 잔인하게 전권을 휘두르는 것도 목도했으니 말이다. 아인슈타인이 사회적 정의를 갈망하는, 억눌린 사람들을 대변하는 시민운동을 펼치고,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자가 될 수 있었던 데엔 이런 배경이 있었다.
물론 이런 저자의 주장은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타고난 능력과 개인적인 노력을 전제한 것이다. 두 사람은 좌절과 성취에 흔들림 없이 늘 새로운 지향점을 다시 설정하고 꿋꿋이 나아가는 비범함을 잃지 않았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들이 속한 사회를 변화시켰다. 그것은 아인슈타인이 “시대를 초월한 인류 노력의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며, 나 또한 내가 받은 것만큼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고 말했듯이, 자신들을 위대한 자리에 앉힌 사회에 대한 책무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 책은 크게 6부로 구성돼 있다. 1부〈아인슈타인과 핵무기〉에서는 아인슈타인이 초기 미국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했던 사실과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직후 반응 그리고 이후 반핵 활동에 나선 과정이 소개된다. 아인슈타인이 원자폭탄 제작 실현 가능성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알린 이유는 당시 나치 독일이 핵무기 개발을 연구하고 있다는 걸 알아서였다. 아인슈타인은 독일보다 먼저 핵무기를 개발해야 전쟁을 끝내고 인류를 구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일로 아인슈타인 이름 앞에는 원자폭탄 창조자란 수식어가 따라붙게 된다. 일본에 핵이 떨어진 순간 “비통하다!”는 비명 같은 탄식을 내뱉은 아인슈타인은 핵을 통제할 세계정부 구성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이 주장은 바람으로만 그치고 말았다.
2부〈유대인 아인슈타인〉에서는 브랜다이스 대학 설립 과정에 아인슈타인이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다룬다. 브랜다이스 대학은 미국 내 유대인들이 세운 첫 대학이다. 아인슈타인이 이 일에 적극 동참한 이유는 독일에서 자라면서 반유대주의 정서를 직접 겪고, 그로 인해 피해도 입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이란 이유로 유능한 젊은이들이 마음껏 공부할 수 없고 능력만큼 대우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고 유대인을 위한 대학, 더 나아가 유대인들을 위한 국가를 꿈꾸게 된다. 아인슈타인이 시오니즘 운동에 적극 참여한 배경이다. 한편, 브랜다이스 설립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아인슈타인 성격의 단면도 드러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어 늘 불안하게 산 오펜하이머와 달리 아인슈타인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사람이었다. 그래선지 다른 사람들 말을 잘 듣지 않는 고집불통이기도 했다. 브랜다이스 설립 과정에서도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자 바로 돌아서 일에서 손을 뗀다. 이러한 완고함은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양자물리학적 연구 결과에 대해 수긍하지 않고 끝까지 전자기장과 중력을 통합하려고 했던 자신의 프로그램을 고집했다.
3부〈오펜하이머, 구속받지 않는 프로테우스〉에서는 세 사건을 중심으로 오펜하이머의 삶을 살펴본다. 대학 때부터 실험물리학자로서 꿈을 품었지만 실험 수행 능력이 떨어져 결국 이론물리학자로 돌아선 것이 첫 번째 사건이고, 무분별한 핵무기 개발을 억제할 핵사찰 시스템을 제안한 애치슨-릴리엔솔 계획안이 버나드 바루크·해리 트루먼 등에 의해 좌절된 사건이 두 번째이고, 냉전이 깊어지면서 미국 정부가 수소폭탄을 개발하려고 하자 이에 반대해 공적 지위를 모두 발탁당한 일이 세 번째 사건이다. 오펜하이머는 권력을 추구하는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고, 타인과 세간의 평가에 개의치 않았던 아인슈타인과 달리 사회적 직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특히 세 번째 사건은 그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 주었다. 무엇보다 그는 데이비드 릴리엔솔이 평가했듯이 “자신의 제자까지도 배신할 정도로 국가에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4부〈미국인 오펜하이머〉에서는 오펜하이머의 사상적 토대에 대해 살펴본다. 유대인으로서 정체성이 확고했던 아인슈타인과 달리 오펜하이머는 유대인이란 사실을 숨기고 싶어 했다. 하버드 입학 직후 고등학교 때 교사와 함께 여행한 일이 있는데, 자신이 유대인이란 사실을 숨기기 위해 동생이라고 소개해 줄 것을 교사에게 요청할 정도였다. 독일에서 자랐던 아인슈타인과 달리 오펜하이머는 미국 이민자 후손이라 유대인으로서보다는 미국인으로 별 문제 없이 살 수 있었다. 당시 미국 유대인들은 때때로 반유대주의를 겪긴 해도 백인이라는 큰 틀에서는 항상 동류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국인이라는 이름으로 결속이 필요한 때였고, 모두를 위해 미국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기였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많이 존경했던 보어의 상보성 개념과 윌리엄 제임스를 비롯한 실용주의 철학자들 생각을 토대로 세계관을 형성했다. 《바가바드기타》로 대변되는 힌두철학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다.
5부〈물리학에 남긴 것〉에서는 이론물리학 발전 과정을 비롯해, 20세기 초반 30여 년간 물리학의 최대 화두였던 ‘통합’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는 한편, 아인슈타인의 비전을 통해 매사추세츠 공대(MIT)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유명한 물리학 이론들도 알아본다. MIT 100주년 기념으로 열린 컨퍼런스에서 양전닝, 파인만 등이 내다본 물리학의 미래에 대해서도 볼 수 있다.
6부〈신의 비밀에 다가가다〉에서는 인류에게 핵무기라는 신의 비밀을 열어 보여 준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를 함께 놓고 본다.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가 처음 대면한 것은 아인슈타인이 캘리포니아 기술연구소에서 일하던 1932년이었지만, 1947년 오펜하이머가 소장으로 부임하게 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함께 일하게 될 때까지 둘은 그렇게 가깝게 지내던 사이가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은 "나는 오펜하이머를 과학자로서뿐만 아니라 위대한 인간으로서도 존경한다"며 오펜하이머를 높이 평가했고, 그 공적을 치하했다. 오펜하이머 역시 아인슈타인을 깊이 존경했지만 한편으로는 질시도 품고 있었다. 때에 따라서는 공공연한 비판도 아끼지 않았다. 1965년 아인슈타인 사망 10주기 때 발언이 대표적이다. “젊은 시절 그(아인슈타인)가 쓴 논문들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지만 오류투성이였으며, 이를 수정하여 출판하는 데는 10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오류를 수정하는 데만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참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 측면에서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는 크게 달랐지만, 대중과 잘 소통할 줄 알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 작가 소개
저자 : 실번 S. 슈위버
Silvan S. Schweber. 1928년 4월에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났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이자 과학사가다. 1955년부터 60년대 후반까지 브랜다이스 대학 교수였다. 양자장이론을 연구했고, 1950년대에 한스 베테Hans Bethe와 이에 관한 교과서를 쓰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물리학 역사 연구에 몰두했다.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The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 회원이며, 2011년에 미국물리학회와 미국물리협회가 매년 물리학 역사에 크게 기여한 이에게 수여하는 에이브러햄 파이스 상Abraham Pais Prize을 받았다.
역자 : 김영배
한동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쳤다. 미국 고든콘웰 신학대학원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와튼 KMA 스쿨Wharton-KMA School,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에서 교육 및 연구 활동을 했다. 현재는 숭실대학교 입학사정관이다. 국제정치, 사회, 교육 분야에 관한 글들을 번역해 왔으며, 옮긴 책으로 《정부를 팝니다》 《식량주권》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저자 서문
프롤로그
1부. 아인슈타인과 핵무기
원자폭탄의 출현│“비통하다!”│핵을 통제할 세계정부 주장│또 다른 재앙 수소폭탄│신념을 실천한 평화주의자│아인슈타인-러셀 선언│세상을 설명할 단 하나의 원리
2부. 유대인 아인슈타인
유대인을 위한 대학│갈등의 시작│총장 추천│돌아선 아인슈타인│브랜다이스의 성과
3부. 오펜하이머, 구속받지 않는 프로테우스
불안한 정체성│물리학자가 되기까지│로스앨러모스 시절│과학적 정치가로 변모│상처 입은 조국애│위로가 된 힌두철학
4부. 미국인 오펜하이머
고등연구소 운영│토대가 된 실증주의 철학│하버드 감독이사로 활약│윌리엄 제임스 강연
‘역사 해석’ 컨퍼런스│심리학 위원회│법적 연구│문학 연구
5부. 물리학에 남긴 것
아인슈타인과 ‘통합’│MIT 100주년 기념│이론물리학 변천사│발견할 것은 여전히 있다
6부. 신의 비밀에 다가가다
오펜하이머의 질투│확고한 자와 고뇌하는 자│근원을 향한 집념│탁월한 소통 기술
에필로그
부록│아인슈타인-러셀 선언
옮긴이 후기
참고문헌
찾아보기
시대가 불러낸 두 천재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를 위대하게 만든 것은 무엇인가
인류 최악의 발명품으로 핵무기를 뽑을 이가 많을 것이다. 인류사를 핵무기 사용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을 만큼 핵무기는 인류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1945년 일본 나가사키와 히로시마에 처음 원자폭탄이 떨어졌을 때 이를 개발한 과학자들조차 아뜩해 했다. 열지 말았어야 할 판도라 상자를 열었음을 깨달았던 것이다. 그 대표적인 인물이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다.
주지하다시피 이 두 사람은 핵무기가 출현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인물이다. 아인슈타인은 미국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원자폭탄 제작 실현 가능성을 알렸고, 오펜하이머는 로스앨러모스 연구소(핵무기 개발을 목적으로 창설된 미국 정부 기관) 소장으로 재직하면서 실제로 원자폭탄을 제작해 냈다. 그뿐 아니라 일본에 원폭 투하를 결정하는 과정에도 개입했다. 이 일로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는 평생토록 부채감을 안고 살았고, 엎질러진 물을 다시 담을 순 없지만 핵무기가 제대로 통제라도 되길 바라며 여러 활동을 펼쳤다.
두 천재를 통해 본 20세기 과학, 정치적 환경
이 책은 비슷한 시기를 살았던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 삶을 중심으로 당시 시대 상황을 자세히 들여다본다. 그리고 두 사람이 어떤 과학, 정치적 환경에서 출현했고, 한 시대를 상징하는 위대한 인물이 되었으며, 그 위대함을 어떻게 사회에 돌려주었는지 인터뷰 내용과 여러 자료를 근거로 보여 준다. 저자가 궁극적으로 말하려는 것은 천재 즉 “위대한 인물”은 단순히 타고나는 것이 아니라 시대가 만들어 낸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뉴턴의 만유인력법칙이라는 “고전적” 물리학이 한계에 부딪힌 시점에 등장했다. 그러므로 아인슈타인이 이룬 업적은 다른 개인이나 단체도 남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아인슈타인은 성자 이미지로 자신을 빚어 갈 수 있는 역사적 환경도 타고났다. 1·2차 대전과 대공황을 겪었고, 히틀러와 스탈린이 잔인하게 전권을 휘두르는 것도 목도했으니 말이다. 아인슈타인이 사회적 정의를 갈망하는, 억눌린 사람들을 대변하는 시민운동을 펼치고, 모든 전쟁에 반대하는 평화주의자가 될 수 있었던 데엔 이런 배경이 있었다.
물론 이런 저자의 주장은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의 타고난 능력과 개인적인 노력을 전제한 것이다. 두 사람은 좌절과 성취에 흔들림 없이 늘 새로운 지향점을 다시 설정하고 꿋꿋이 나아가는 비범함을 잃지 않았다. 이러한 삶의 태도는 사회에 큰 반향을 일으켰고, 그들이 속한 사회를 변화시켰다. 그것은 아인슈타인이 “시대를 초월한 인류 노력의 결과를 바탕으로 우리는 새로운 삶을 영위할 수 있으며, 나 또한 내가 받은 것만큼 남기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만 한다”고 말했듯이, 자신들을 위대한 자리에 앉힌 사회에 대한 책무에서 비롯된 것이리라.
이 책은 크게 6부로 구성돼 있다. 1부〈아인슈타인과 핵무기〉에서는 아인슈타인이 초기 미국 핵무기 개발 프로젝트에 깊이 관여했던 사실과 히로시마·나가사키에 원자폭탄이 투하된 직후 반응 그리고 이후 반핵 활동에 나선 과정이 소개된다. 아인슈타인이 원자폭탄 제작 실현 가능성을 루스벨트 대통령에게 알린 이유는 당시 나치 독일이 핵무기 개발을 연구하고 있다는 걸 알아서였다. 아인슈타인은 독일보다 먼저 핵무기를 개발해야 전쟁을 끝내고 인류를 구할 수 있다고 보았던 것이다. 그러나 이 일로 아인슈타인 이름 앞에는 원자폭탄 창조자란 수식어가 따라붙게 된다. 일본에 핵이 떨어진 순간 “비통하다!”는 비명 같은 탄식을 내뱉은 아인슈타인은 핵을 통제할 세계정부 구성을 강력히 주장했지만, 이 주장은 바람으로만 그치고 말았다.
2부〈유대인 아인슈타인〉에서는 브랜다이스 대학 설립 과정에 아인슈타인이 어떻게 기여했는지를 다룬다. 브랜다이스 대학은 미국 내 유대인들이 세운 첫 대학이다. 아인슈타인이 이 일에 적극 동참한 이유는 독일에서 자라면서 반유대주의 정서를 직접 겪고, 그로 인해 피해도 입은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유대인이란 이유로 유능한 젊은이들이 마음껏 공부할 수 없고 능력만큼 대우도 받지 못하는 현실을 보고 유대인을 위한 대학, 더 나아가 유대인들을 위한 국가를 꿈꾸게 된다. 아인슈타인이 시오니즘 운동에 적극 참여한 배경이다. 한편, 브랜다이스 설립에 관여하는 과정에서 아인슈타인 성격의 단면도 드러난다. 자신에 대한 믿음이 없어 늘 불안하게 산 오펜하이머와 달리 아인슈타인은 자신에 대한 믿음이 확고한 사람이었다. 그래선지 다른 사람들 말을 잘 듣지 않는 고집불통이기도 했다. 브랜다이스 설립 과정에서도 자신이 생각하던 것과 다른 방향으로 일이 진행되자 바로 돌아서 일에서 손을 뗀다. 이러한 완고함은 자신의 연구 결과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였다. 양자물리학적 연구 결과에 대해 수긍하지 않고 끝까지 전자기장과 중력을 통합하려고 했던 자신의 프로그램을 고집했다.
3부〈오펜하이머, 구속받지 않는 프로테우스〉에서는 세 사건을 중심으로 오펜하이머의 삶을 살펴본다. 대학 때부터 실험물리학자로서 꿈을 품었지만 실험 수행 능력이 떨어져 결국 이론물리학자로 돌아선 것이 첫 번째 사건이고, 무분별한 핵무기 개발을 억제할 핵사찰 시스템을 제안한 애치슨-릴리엔솔 계획안이 버나드 바루크·해리 트루먼 등에 의해 좌절된 사건이 두 번째이고, 냉전이 깊어지면서 미국 정부가 수소폭탄을 개발하려고 하자 이에 반대해 공적 지위를 모두 발탁당한 일이 세 번째 사건이다. 오펜하이머는 권력을 추구하는 야망이 있는 사람이었고, 타인과 세간의 평가에 개의치 않았던 아인슈타인과 달리 사회적 직위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확인하던 사람이었다. 그러므로 특히 세 번째 사건은 그에게 큰 좌절감을 안겨 주었다. 무엇보다 그는 데이비드 릴리엔솔이 평가했듯이 “자신의 제자까지도 배신할 정도로 국가에 충성하고, 나라를 사랑했던 인물”이었기 때문이다.
4부〈미국인 오펜하이머〉에서는 오펜하이머의 사상적 토대에 대해 살펴본다. 유대인으로서 정체성이 확고했던 아인슈타인과 달리 오펜하이머는 유대인이란 사실을 숨기고 싶어 했다. 하버드 입학 직후 고등학교 때 교사와 함께 여행한 일이 있는데, 자신이 유대인이란 사실을 숨기기 위해 동생이라고 소개해 줄 것을 교사에게 요청할 정도였다. 독일에서 자랐던 아인슈타인과 달리 오펜하이머는 미국 이민자 후손이라 유대인으로서보다는 미국인으로 별 문제 없이 살 수 있었다. 당시 미국 유대인들은 때때로 반유대주의를 겪긴 해도 백인이라는 큰 틀에서는 항상 동류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미국인이라는 이름으로 결속이 필요한 때였고, 모두를 위해 미국을 더 좋은 곳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인식이 팽배하던 시기였다. 이런 환경에서 자란 오펜하이머는 자신이 많이 존경했던 보어의 상보성 개념과 윌리엄 제임스를 비롯한 실용주의 철학자들 생각을 토대로 세계관을 형성했다. 《바가바드기타》로 대변되는 힌두철학에서도 큰 영향을 받았다.
5부〈물리학에 남긴 것〉에서는 이론물리학 발전 과정을 비롯해, 20세기 초반 30여 년간 물리학의 최대 화두였던 ‘통합’에 대해 간략히 살펴보는 한편, 아인슈타인의 비전을 통해 매사추세츠 공대(MIT)를 중심으로 진행되었던 유명한 물리학 이론들도 알아본다. MIT 100주년 기념으로 열린 컨퍼런스에서 양전닝, 파인만 등이 내다본 물리학의 미래에 대해서도 볼 수 있다.
6부〈신의 비밀에 다가가다〉에서는 인류에게 핵무기라는 신의 비밀을 열어 보여 준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를 함께 놓고 본다.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가 처음 대면한 것은 아인슈타인이 캘리포니아 기술연구소에서 일하던 1932년이었지만, 1947년 오펜하이머가 소장으로 부임하게 된 프린스턴 고등연구소에서 함께 일하게 될 때까지 둘은 그렇게 가깝게 지내던 사이가 아니었다. 아인슈타인은 "나는 오펜하이머를 과학자로서뿐만 아니라 위대한 인간으로서도 존경한다"며 오펜하이머를 높이 평가했고, 그 공적을 치하했다. 오펜하이머 역시 아인슈타인을 깊이 존경했지만 한편으로는 질시도 품고 있었다. 때에 따라서는 공공연한 비판도 아끼지 않았다. 1965년 아인슈타인 사망 10주기 때 발언이 대표적이다. “젊은 시절 그(아인슈타인)가 쓴 논문들은 놀라울 정도로 아름답지만 오류투성이였으며, 이를 수정하여 출판하는 데는 10년의 시간이 걸리기도 했습니다. 오류를 수정하는 데만 그렇게 오랜 시간이 걸렸으니 참 대단한 사람이었습니다.” 여러 측면에서 아인슈타인과 오펜하이머는 크게 달랐지만, 대중과 잘 소통할 줄 알았다는 공통점도 있다.
▣ 작가 소개
저자 : 실번 S. 슈위버
Silvan S. Schweber. 1928년 4월에 프랑스 스트라스부르에서 태어났다. 미국의 이론물리학자이자 과학사가다. 1955년부터 60년대 후반까지 브랜다이스 대학 교수였다. 양자장이론을 연구했고, 1950년대에 한스 베테Hans Bethe와 이에 관한 교과서를 쓰기도 했다. 1980년대 이후에는 물리학 역사 연구에 몰두했다. 미국예술과학아카데미The American Academy of Arts and Sciences 회원이며, 2011년에 미국물리학회와 미국물리협회가 매년 물리학 역사에 크게 기여한 이에게 수여하는 에이브러햄 파이스 상Abraham Pais Prize을 받았다.
역자 : 김영배
한동대학교 언론정보학과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에서 정치외교학으로 석사 과정을 마쳤다. 미국 고든콘웰 신학대학원Gordon-Conwell Theological Seminary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일민국제관계연구원, 와튼 KMA 스쿨Wharton-KMA School, 한국여성경제인협회에서 교육 및 연구 활동을 했다. 현재는 숭실대학교 입학사정관이다. 국제정치, 사회, 교육 분야에 관한 글들을 번역해 왔으며, 옮긴 책으로 《정부를 팝니다》 《식량주권》 등이 있다.
▣ 주요 목차
저자 서문
프롤로그
1부. 아인슈타인과 핵무기
원자폭탄의 출현│“비통하다!”│핵을 통제할 세계정부 주장│또 다른 재앙 수소폭탄│신념을 실천한 평화주의자│아인슈타인-러셀 선언│세상을 설명할 단 하나의 원리
2부. 유대인 아인슈타인
유대인을 위한 대학│갈등의 시작│총장 추천│돌아선 아인슈타인│브랜다이스의 성과
3부. 오펜하이머, 구속받지 않는 프로테우스
불안한 정체성│물리학자가 되기까지│로스앨러모스 시절│과학적 정치가로 변모│상처 입은 조국애│위로가 된 힌두철학
4부. 미국인 오펜하이머
고등연구소 운영│토대가 된 실증주의 철학│하버드 감독이사로 활약│윌리엄 제임스 강연
‘역사 해석’ 컨퍼런스│심리학 위원회│법적 연구│문학 연구
5부. 물리학에 남긴 것
아인슈타인과 ‘통합’│MIT 100주년 기념│이론물리학 변천사│발견할 것은 여전히 있다
6부. 신의 비밀에 다가가다
오펜하이머의 질투│확고한 자와 고뇌하는 자│근원을 향한 집념│탁월한 소통 기술
에필로그
부록│아인슈타인-러셀 선언
옮긴이 후기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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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6. 취소반품 불가 사유
- 단순변심으로 인한 반품 시, 배송 완료 후 7일이 지나면 취소/반품 신청이 접수되지 않습니다.
- 주문/제작 상품의 경우, 상품의 제작이 이미 진행된 경우에는 취소가 불가합니다.
- 구성품을 분실하였거나 취급 부주의로 인한 파손/고장/오염된 경우에는 취소/반품이 제한됩니다.
- 제조사의 사정 (신모델 출시 등) 및 부품 가격변동 등에 의해 가격이 변동될 수 있으며, 이로 인한 반품 및 가격보상은 불가합니다.
- 뷰티 상품 이용 시 트러블(알러지, 붉은 반점, 가려움, 따가움)이 발생하는 경우 진료 확인서 및 소견서 등을 증빙하면 환불이 가능하지만 이 경우, 제반 비용은 고객님께서 부담하셔야 합니다.
- 각 상품별로 아래와 같은 사유로 취소/반품이 제한 될 수 있습니다.
상품군 | 취소/반품 불가사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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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류/잡화/수입명품 | 상품의 택(TAG) 제거/라벨 및 상품 훼손으로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된 경우 |
계절상품/식품/화장품 | 고객님의 사용, 시간경과, 일부 소비에 의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한 경우 |
가전/설치상품 | 전자제품 특성 상, 정품 스티커가 제거되었거나 설치 또는 사용 이후에 단순변심인 경우, 액정화면이 부착된 상품의 전원을 켠 경우 (상품불량으로 인한 교환/반품은 AS센터의 불량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
자동차용품 | 상품을 개봉하여 장착한 이후 단순변심의 경우 |
CD/DVD/GAME/BOOK등 | 복제가 가능한 상품의 포장 등을 훼손한 경우 |
상품의 시리얼 넘버 유출로 내장된 소프트웨어의 가치가 감소한 경우 | |
노트북, 테스크탑 PC 등 | 홀로그램 등을 분리, 분실, 훼손하여 상품의 가치가 현저히 감소하여 재판매가 불가할 경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