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내가 선택한 길을 가면서 가끔씩 가지 않은 길을 향해 목마른 시선을 던질 지도 모르지만, 훗날 나는 프로스트처럼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노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길은 계곡과 등성이를 지나 다른 길로 이어져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 독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독일,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맥주, 축구 등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독일에는 여러 가지 풍경이 있다. 지금 소개할 책은 현재 독일에서 살고 있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우리 신문" 천복자 기자가 쓴 "장미의 월요일, 튤립의 일요일"이다. 이 책은 총 3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첫 번째 Part 1에는 유학생이었던 천기자의 눈에 비친 독일 모습이다. 독일에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독일인들의 생활습관이나 그들이 하는 고민 등, 삶의 모습이 재미있다.
정리하고 분류하고, 모으기에 선수인 독일 사람들이 오래된 물건을 처리하는 방법 또한 특이하다. 주말의 어느 날 시내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동네에 누군가를 방문하려고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니, 한적한 길 양쪽에 어른과 아이들이 각자가 들고 나온 물건들을 길가에 가지런히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소위 동네 ‘벼룩시장Flohmarkt’이 열린 것이다. 꼬마들은 주로 자기가 어릴 때 쓰던 장난감이나 동화책, 테이프 등을 들고 나와서 판다.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취미로 모으는 무늬 박힌 돌을 파는 아이도 있다. 아직도 멀쩡한 아이들의 옷가지나 신발을 팔려고 나온 아주머니, 낡은 믹서나 전기청소기, 유모차를 팔려고 나온 사람도 보인다. 품목마다 가격이 적힌 꼬리표를 달고 있는데, 대부분이 50페니히나 1마르크이고(750~1500원 정도), 10마르크나 20마르크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것도 드물게 눈에 띈다.
우리의 삶과 비슷하기도 하면서 다른 독일의 벼룩시장의 모습은 물건을 아끼고 검소하게 사는 독일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한 독일인들의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환경문제도 언급하면서, 같은 문제에 대한 독일과 한국의 인식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한국에서 생활하게 되었을 때 일상생활에서 내가 가장 갈등을 느낀 부분이 바로 환경문제였다. 물건을 살 때마다 담아주는 비닐봉지, 넘쳐나는 플라스틱 병, 백화점의 끊임없는 종이봉투 세례, 플라스틱…… 공책을 사려고 하면 글쓰기가 부드럽고 편안해서 손에 익은 누런빛의 재생용지는 찾아볼 수가 없고 모두가 빤질거리는 환경오염 상품인 흰 종이 일색이었다. (…중략…) 장보기가 무겁지만 요구르트나 우유도 가능하면 유리병에 든 것을 사먹고 되돌려 준다. 장본 물건을 담아 가는 비닐 봉투는 돈을 주고 사야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싸리나무 비슷한 것으로 만들어진 장바구니를 이용하거나, 슈퍼마켓 어디서나 살 수 있는 무명천으로 된 간편한 가방을 사서 사용한다.
이 밖에도 자신이 독일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재미있는 에피소드 속에서, 입양, 장애인문제, 전통지키기 등 우리가 한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한국과 독일과의 단순한 비교가 아니라, 독일 안에서 한국을 생각하고, 한국인의 시선에서 느끼는 솔직한 이야기다. 독일의 문화와 생각을 엿볼 수 있으면서, 그들의 의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2. 독일에서 아이 키우기
글쓴이는 독일인 남성과 결혼했다. 그곳에서 아이를 낳고 현재 아이를 키우고 있다. Part 2에서는 독일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또 독일의 교육에 대해서 읽을 수 있다.
입학식이 있기 며칠 전 학부모가 되는 이들을 위한 ‘학부모회’가 있다. 교장선생님이 ‘닭손이 작문을 만려한다.’와 같은 문장을 4~5개 불러주고, 학부모들은 받아쓰기를 했다. 달손? 달쏜? 장문? 작문? 만려? 말려? 끙끙대며 받아쓰기를 한 학부모들은 서로 결과를 비교해보고 폭소를 터트린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있던 어른들은, 읽고 쓰기를 처음으로 배우는 것이 아이들에겐 얼만큼 어려울 수 있는지 되살린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정복하려 나서는 첫 시기의 가장 큰 격려는, 부모의 관심과 칭찬이라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는다.
한국이나 독일이나 아이의 ‘입학’은 매우 중요하다.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독일 학교에서 학부모에게 받아쓰기를 시키고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게끔 하는 장면이 흥미롭다.
한별이는 많은 악기들 중에서 바이올린을 선택했다. 그냥 치면 소리가 나는 피아노 같은 악기와는 달리, 바이올린은 자신이 소리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처음 배우기 시작해서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있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악기가 작아 어디든지 가지고 다닐 수 있고 다른 악기들과의 협연 가능성이 많아, 외동인 아이가 음악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가 가능하다는 점을 높이 샀다.
악기를 배우는 아이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나와 있다. 바이올린을 배우는 아이의 심리와 부모의 입장 등, 여느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한 내용이다.
함께 공부를 하던 사람들이 한국으로 돌아가 차례차례 대학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소식들이 들려오면, 원하는 일자리를 잡은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내가 원하는 일자리를 허락하지 않는 나의 상황에 대한 절망으로 한없이 우울해졌고, 나는 끝을 모르는 무력감과 절망감에 시달려야 했다. 집안 청소를 하고, 빨래를 손질하고 다림질을 하고,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점심식사를 준비하노라면, 엄마이고 아내일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에 무한히 감사하면서도, 내가 배운 것을 사회에 되돌려주어야 하는 일을 방기한 채, 반듯한 직업인으로써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고 살아가려 했던 자신과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 가슴 떨리도록 화가 나고 절망스러웠다. 나에겐 아이와 남편에 대한 책임 이전에, 나 자신과의 약속을 이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속으로 수없이 외쳤다.
글쓴이는 독일에서 가정을 꾸리며 살면서,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욕심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이는 일을 하고자 하는 엄마의 입장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할 내용일 것이다. 한없이 괴로워하고 힘들어하지만, 가족이라는 공간 안에서 자신이 내린 결정에 후회하지 않는다.
Part 2는 아이의 심리와 학교생활, 악기 배우기 등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있어 독일에 가서 살면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사람들에게 권해도 좋을 것이다.
3. 생생한 독일 풍경
part 1에서 독일에서 만난 사람들을 읽고 part 2에서는 아이를 키우며 겪었던 에피소드와 이야기들을 만나보았다면, part 3에서는 독일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잘 생긴 수탉의 모형을 앞세우고 바이오 농산물을 선전하는 농가의 차 뒤로, 붉은 옷을 멋지게 차려입은 악대가 쿵작쿵작 악기를 불며 지나가고, 녹색 옷을 입고 녹색 가발 위에 금색왕관을 쓴 한 무리의 아가씨들이 장미꽃을 던지며 지나가는 행렬의 뒤를, 인디언과 카우보이 복장을 한 남자들이 가득탄 차가 사탕과 과자를 구경꾼들에게 집어던지며 지나갔다. 차에 탄 사람들이나 구경꾼 모두가 얼굴에 분장을 하거나 변장을 하고 음악에 맞추어 온몸을 흔들어댔다. 아이들은 “카멜레Kamelle(캐러멜, 사탕)!”를 연신 외치며 길 위로 떨어지는 사탕을 줍느라 여념이 없다. 장미꽃을 던지며 지나가던 여자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웃으며 노란 장미를 한 송이 건네주었다.
독일 풍경 중에 ‘축제’를 빼놓을 수 없다. 해마다 있는 축제들은 경쾌하고 즐거운 독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신선한 풀을 잔뜩 뜯어 먹은 소들이 팽팽하게 부푼 무거운 젖을 뒷다리 사이에 달고, 걷기도 어려운 듯이 어기적거리며 돌아오는 황혼의 풍경은, 소의 주인이 아닐지라도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고 흡족한 미소가 저절로 입가에 흐르게 한다.(…중략…) 마지막 소가 엉덩이를 보이며 외양간을 향하는 길을 들어서고, 농부가 손을 들어 통행정지 해제를 알리면 이미 시동을 다시 걸고 부르릉거리던 차들이 ‘쌩’ 소리를 내며 달려가 버리고, 우린 다시 21세기의 어느 바쁜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축제처럼 활기차고 경쾌한 도시의 모습이 있는가하면, 초지의 농가의 농부들이 키우는 소들의 행렬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는 한국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풍경이기 때문에, 더욱 새롭다.
두껍고 단단해 보이는 돌담으로 난 성문을 통과하자, 붉은 지붕 일색의 건물들 사이에서 우물을 하나 가진 널따란 안마당이 우리를 맞이했다. 갑자기 세상의 소음이 사라지고 모든 것들이 정적 속으로 빠져드나 싶더니, 나는 어느새 수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중세의 고요한 수도원의 햇볕 가득한 안마당에 서 있다. 이 순간 마울브론 수도원은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내 가슴 속 깊이 들어와 자리 잡았다. (…중략…) 수도원의 입구를 들어서면 파라디스 할레Paradis Halle(천국의 복도)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복도로 들어서게 된다. 파라디스 할레의 건축양식은, 마울브론 수도원의 모든 건축양식이 그러하듯이, 로마네스크와 초기 고딕이 합성된 것으로, 이는 이 시기 부르군더를 지배하기 시작한 고딕의 영향을 받고 있다. 높고 햇볕이 많이 드는 창과 둥근 아치형의 꼭대기가 넓게 건축된 것은 전형적인 고딕양식이지만, 창머리를 뾰족하게 길게 빼 올리지 않고 둥근 것은 아직도 로마네스크 양식을 담고 있는 것이다.
위는 마울브론 수도원 풍경이다. 수도원 풍경이 낯선 우리들에게는 웅장한 수도원이 신기하게 느껴질 것이다. 수도원에 얽힌 건축 설화도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풍경에 대해 쉽고 친근하게 설명하고 있다.
글쓴이는 독일에 살면서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남편도 한국어를 배울 정도로 한국에 관심이 있고 아이 ‘한별’이도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길 고대하고 있다. 한국에서 교수로서 일을 하고 싶은 욕망을 접고 독일에서의 삶을 택한 글쓴이의 삶은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다는 프로스트의 시처럼 아름답다.
이 책은 독일과 한국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70년대에 간호사로 독일로 왔다가 정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본문 중에서 [합창])도 그렇다.
위의 소개한 내용말고도 독일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이 책속에 녹아있다. 일반 독자뿐만 아니라, 스쳐가는 여행자의 시선이 아닌, 삶의 깊숙한 자리에서 독일 풍경을 담았기에 독일 유학을 꿈꾸는 학생부터, 그곳에서 삶의 둥지를 틀 사람들, 독일이 고향인 사람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책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천복자
1959년 영덕에서 태어나 경북여고,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초,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을 한 것으로 인하여 대학원 입학을 거부당하자, 3년의 독일어 교사 생활 후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1990년 빌레펠트대학교에서 ‘외국인을 위한 독일어(전공)’, ‘언어학’과 ‘교육학(부전공)’으로 석사학위를, 1996년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독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인리히 헤르츠 장학재단(석사)과 프리드리히 나우만 장학재단(석사, 박사과정)의 장학생으로 공부했다.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 강사(1995~1997), 로스톡 막스-플랑크 사회 통계학 연구소 독일어 강사(2002~2003), 로스톡대학교 독일어 강사(2003~2006), 칼스루에교육대학교 독어학과 강사(2008~2010)를 역임하고, 현재 칼스루에대학교 강사로 일하고 있으며, 2007년부터 프랑크푸르트의 "우리 신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PEN문학 해외동포창작문학상(수필, 2008), 재외동포재단 제11회 재외동포문학상(수필, 2009)을 받았다. 1993년 결혼, 아들 한별 벤야민이 있다.
▣ 주요 목차
작가의 말
part 1 유학생의 눈에 비친 독일 Mit den Augen einer Studentin
프리데리케의 아이
아기 옷상자
프리데만의 자동차 타기
다른 사랑, 같은 권리
삼순이
아리랑과 골로와즈
part 2 아이를 키우며 Zeit mit meinem Kind
아이
아빠와 함께 아침 식사를!
그림 그리기
한별이의 음악 학교
입학
커리큘럼에 관한 우화
마틴의 행진
성탄 파티
시와 함께
바이올린
아이의 충고
part 3 독일 풍경 Zeit mit meinem Kind
전설의 로렐라이
장미의 월요일, 튤립의 일요일
로비
산책
프랑 부인과 3cm
바네사
재회
마누엘
마울브론 수도원
합창
남편의 한글학교
“그리고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습니다”
“내가 선택한 길을 가면서 가끔씩 가지 않은 길을 향해 목마른 시선을 던질 지도 모르지만, 훗날 나는 프로스트처럼 ‘숲속에 두 갈래 길이 있었고, 나는 사람이 적게 간 길을 택하였고, 그리고 그것 때문에 모든 것이 달라졌다’고 노래하지는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의 길은 계곡과 등성이를 지나 다른 길로 이어져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1. 독일,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
독일, 하면 어떤 이미지가 떠오를까? 맥주, 축구 등 다양할 것이다. 하지만 독일에는 여러 가지 풍경이 있다. 지금 소개할 책은 현재 독일에서 살고 있는, 독일 프랑크푸르트 "우리 신문" 천복자 기자가 쓴 "장미의 월요일, 튤립의 일요일"이다. 이 책은 총 3개의 파트로 구성되어 있는데, 그 중에서 첫 번째 Part 1에는 유학생이었던 천기자의 눈에 비친 독일 모습이다. 독일에서 만난 사람들에 관한 이야기인데, 독일인들의 생활습관이나 그들이 하는 고민 등, 삶의 모습이 재미있다.
정리하고 분류하고, 모으기에 선수인 독일 사람들이 오래된 물건을 처리하는 방법 또한 특이하다. 주말의 어느 날 시내에서 조금 멀리 떨어진 동네에 누군가를 방문하려고 찾아가고 있는 중이었다. 동네 입구에 들어서니, 한적한 길 양쪽에 어른과 아이들이 각자가 들고 나온 물건들을 길가에 가지런히 늘어놓고 팔고 있었다. 소위 동네 ‘벼룩시장Flohmarkt’이 열린 것이다. 꼬마들은 주로 자기가 어릴 때 쓰던 장난감이나 동화책, 테이프 등을 들고 나와서 판다. 용돈을 마련하기 위해 취미로 모으는 무늬 박힌 돌을 파는 아이도 있다. 아직도 멀쩡한 아이들의 옷가지나 신발을 팔려고 나온 아주머니, 낡은 믹서나 전기청소기, 유모차를 팔려고 나온 사람도 보인다. 품목마다 가격이 적힌 꼬리표를 달고 있는데, 대부분이 50페니히나 1마르크이고(750~1500원 정도), 10마르크나 20마르크의 꼬리표를 달고 있는 것도 드물게 눈에 띈다.
우리의 삶과 비슷하기도 하면서 다른 독일의 벼룩시장의 모습은 물건을 아끼고 검소하게 사는 독일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한 독일인들의 모습만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환경문제도 언급하면서, 같은 문제에 대한 독일과 한국의 인식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
우리가 한국에서 생활하게 되었을 때 일상생활에서 내가 가장 갈등을 느낀 부분이 바로 환경문제였다. 물건을 살 때마다 담아주는 비닐봉지, 넘쳐나는 플라스틱 병, 백화점의 끊임없는 종이봉투 세례, 플라스틱…… 공책을 사려고 하면 글쓰기가 부드럽고 편안해서 손에 익은 누런빛의 재생용지는 찾아볼 수가 없고 모두가 빤질거리는 환경오염 상품인 흰 종이 일색이었다. (…중략…) 장보기가 무겁지만 요구르트나 우유도 가능하면 유리병에 든 것을 사먹고 되돌려 준다. 장본 물건을 담아 가는 비닐 봉투는 돈을 주고 사야하기 때문에 사람들은 대부분 싸리나무 비슷한 것으로 만들어진 장바구니를 이용하거나, 슈퍼마켓 어디서나 살 수 있는 무명천으로 된 간편한 가방을 사서 사용한다.
이 밖에도 자신이 독일에서 만난 사람들과의 재미있는 에피소드 속에서, 입양, 장애인문제, 전통지키기 등 우리가 한번쯤은 진지하게 생각해 볼만한 이야기들이 들어있다. 한국과 독일과의 단순한 비교가 아니라, 독일 안에서 한국을 생각하고, 한국인의 시선에서 느끼는 솔직한 이야기다. 독일의 문화와 생각을 엿볼 수 있으면서, 그들의 의식까지 재미있게 읽을 수 있다.
2. 독일에서 아이 키우기
글쓴이는 독일인 남성과 결혼했다. 그곳에서 아이를 낳고 현재 아이를 키우고 있다. Part 2에서는 독일에서 아이를 키우는 엄마의 입장에서, 또 독일의 교육에 대해서 읽을 수 있다.
입학식이 있기 며칠 전 학부모가 되는 이들을 위한 ‘학부모회’가 있다. 교장선생님이 ‘닭손이 작문을 만려한다.’와 같은 문장을 4~5개 불러주고, 학부모들은 받아쓰기를 했다. 달손? 달쏜? 장문? 작문? 만려? 말려? 끙끙대며 받아쓰기를 한 학부모들은 서로 결과를 비교해보고 폭소를 터트린다. 글을 읽고 쓰는 것을 당연히 여기고 있던 어른들은, 읽고 쓰기를 처음으로 배우는 것이 아이들에겐 얼만큼 어려울 수 있는지 되살린다. 그리고 아이들이 이 새로운 미지의 세계를 정복하려 나서는 첫 시기의 가장 큰 격려는, 부모의 관심과 칭찬이라는 교장선생님의 말씀을 가슴에 담는다.
한국이나 독일이나 아이의 ‘입학’은 매우 중요하다. 아이를 이해하기 위해 독일 학교에서 학부모에게 받아쓰기를 시키고 아이들을 이해할 수 있게끔 하는 장면이 흥미롭다.
한별이는 많은 악기들 중에서 바이올린을 선택했다. 그냥 치면 소리가 나는 피아노 같은 악기와는 달리, 바이올린은 자신이 소리를 만들어내야 하기 때문에, 처음 배우기 시작해서 제대로 소리를 낼 수 있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린다는 단점이 있다. 하지만 악기가 작아 어디든지 가지고 다닐 수 있고 다른 악기들과의 협연 가능성이 많아, 외동인 아이가 음악을 통해 다른 사람들과의 교류가 가능하다는 점을 높이 샀다.
악기를 배우는 아이에 대해서도 자세하게 나와 있다. 바이올린을 배우는 아이의 심리와 부모의 입장 등, 여느 가정에서 볼 수 있는 친근한 내용이다.
함께 공부를 하던 사람들이 한국으로 돌아가 차례차례 대학에서 자리를 잡아가는 소식들이 들려오면, 원하는 일자리를 잡은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과, 내가 원하는 일자리를 허락하지 않는 나의 상황에 대한 절망으로 한없이 우울해졌고, 나는 끝을 모르는 무력감과 절망감에 시달려야 했다. 집안 청소를 하고, 빨래를 손질하고 다림질을 하고, 아이가 학교에서 돌아오는 시간에 맞춰 점심식사를 준비하노라면, 엄마이고 아내일 수 있는 시간을 가진 것에 무한히 감사하면서도, 내가 배운 것을 사회에 되돌려주어야 하는 일을 방기한 채, 반듯한 직업인으로써 누구에게도 예속되지 않고 살아가려 했던 자신과의 약속을 이행하지 않고 있는 나 자신에 대해서 가슴 떨리도록 화가 나고 절망스러웠다. 나에겐 아이와 남편에 대한 책임 이전에, 나 자신과의 약속을 이행해야 할 책임이 있다고 속으로 수없이 외쳤다.
글쓴이는 독일에서 가정을 꾸리며 살면서, 자신의 일에 대한 열정과 욕심을 쉽게 버리지 못한다. 이는 일을 하고자 하는 엄마의 입장이라면 누구나 다 공감할 내용일 것이다. 한없이 괴로워하고 힘들어하지만, 가족이라는 공간 안에서 자신이 내린 결정에 후회하지 않는다.
Part 2는 아이의 심리와 학교생활, 악기 배우기 등 다양한 이야기가 들어있어 독일에 가서 살면서 아이를 키워야 하는 사람들에게 권해도 좋을 것이다.
3. 생생한 독일 풍경
part 1에서 독일에서 만난 사람들을 읽고 part 2에서는 아이를 키우며 겪었던 에피소드와 이야기들을 만나보았다면, part 3에서는 독일 풍경을 감상할 수 있다.
잘 생긴 수탉의 모형을 앞세우고 바이오 농산물을 선전하는 농가의 차 뒤로, 붉은 옷을 멋지게 차려입은 악대가 쿵작쿵작 악기를 불며 지나가고, 녹색 옷을 입고 녹색 가발 위에 금색왕관을 쓴 한 무리의 아가씨들이 장미꽃을 던지며 지나가는 행렬의 뒤를, 인디언과 카우보이 복장을 한 남자들이 가득탄 차가 사탕과 과자를 구경꾼들에게 집어던지며 지나갔다. 차에 탄 사람들이나 구경꾼 모두가 얼굴에 분장을 하거나 변장을 하고 음악에 맞추어 온몸을 흔들어댔다. 아이들은 “카멜레Kamelle(캐러멜, 사탕)!”를 연신 외치며 길 위로 떨어지는 사탕을 줍느라 여념이 없다. 장미꽃을 던지며 지나가던 여자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웃으며 노란 장미를 한 송이 건네주었다.
독일 풍경 중에 ‘축제’를 빼놓을 수 없다. 해마다 있는 축제들은 경쾌하고 즐거운 독일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하루 종일 밖에서 신선한 풀을 잔뜩 뜯어 먹은 소들이 팽팽하게 부푼 무거운 젖을 뒷다리 사이에 달고, 걷기도 어려운 듯이 어기적거리며 돌아오는 황혼의 풍경은, 소의 주인이 아닐지라도 바라보기만 해도 배가 부르고 흡족한 미소가 저절로 입가에 흐르게 한다.(…중략…) 마지막 소가 엉덩이를 보이며 외양간을 향하는 길을 들어서고, 농부가 손을 들어 통행정지 해제를 알리면 이미 시동을 다시 걸고 부르릉거리던 차들이 ‘쌩’ 소리를 내며 달려가 버리고, 우린 다시 21세기의 어느 바쁜 일상으로 되돌아온다.
축제처럼 활기차고 경쾌한 도시의 모습이 있는가하면, 초지의 농가의 농부들이 키우는 소들의 행렬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이는 한국에서는 자주 볼 수 없는 풍경이기 때문에, 더욱 새롭다.
두껍고 단단해 보이는 돌담으로 난 성문을 통과하자, 붉은 지붕 일색의 건물들 사이에서 우물을 하나 가진 널따란 안마당이 우리를 맞이했다. 갑자기 세상의 소음이 사라지고 모든 것들이 정적 속으로 빠져드나 싶더니, 나는 어느새 수백 년의 시간을 거슬러 중세의 고요한 수도원의 햇볕 가득한 안마당에 서 있다. 이 순간 마울브론 수도원은 거역할 수 없는 힘으로 내 가슴 속 깊이 들어와 자리 잡았다. (…중략…) 수도원의 입구를 들어서면 파라디스 할레Paradis Halle(천국의 복도)라는 이름의 아름다운 복도로 들어서게 된다. 파라디스 할레의 건축양식은, 마울브론 수도원의 모든 건축양식이 그러하듯이, 로마네스크와 초기 고딕이 합성된 것으로, 이는 이 시기 부르군더를 지배하기 시작한 고딕의 영향을 받고 있다. 높고 햇볕이 많이 드는 창과 둥근 아치형의 꼭대기가 넓게 건축된 것은 전형적인 고딕양식이지만, 창머리를 뾰족하게 길게 빼 올리지 않고 둥근 것은 아직도 로마네스크 양식을 담고 있는 것이다.
위는 마울브론 수도원 풍경이다. 수도원 풍경이 낯선 우리들에게는 웅장한 수도원이 신기하게 느껴질 것이다. 수도원에 얽힌 건축 설화도 이야기하면서 새로운 풍경에 대해 쉽고 친근하게 설명하고 있다.
글쓴이는 독일에 살면서 한국인이라는 자부심을 가지고 있다. 남편도 한국어를 배울 정도로 한국에 관심이 있고 아이 ‘한별’이도 한국에 대해 관심을 가지길 고대하고 있다. 한국에서 교수로서 일을 하고 싶은 욕망을 접고 독일에서의 삶을 택한 글쓴이의 삶은 똑같이 아름다운 다른 길을 택했다는 프로스트의 시처럼 아름답다.
이 책은 독일과 한국을 이어주는 매개체가 된다. 70년대에 간호사로 독일로 왔다가 정착한 사람들의 이야기(본문 중에서 [합창])도 그렇다.
위의 소개한 내용말고도 독일에 대한 다채로운 이야기들이 이 책속에 녹아있다. 일반 독자뿐만 아니라, 스쳐가는 여행자의 시선이 아닌, 삶의 깊숙한 자리에서 독일 풍경을 담았기에 독일 유학을 꿈꾸는 학생부터, 그곳에서 삶의 둥지를 틀 사람들, 독일이 고향인 사람들에게도 추천할 만한 책이다.
▣ 작가 소개
저자 : 천복자
1959년 영덕에서 태어나 경북여고,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를 졸업했다. 1980년대 초, 군사독재에 반대하는 학생운동을 한 것으로 인하여 대학원 입학을 거부당하자, 3년의 독일어 교사 생활 후 독일로 유학을 떠났다.
1990년 빌레펠트대학교에서 ‘외국인을 위한 독일어(전공)’, ‘언어학’과 ‘교육학(부전공)’으로 석사학위를, 1996년 베를린 자유대학교에서 ‘독어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하인리히 헤르츠 장학재단(석사)과 프리드리히 나우만 장학재단(석사, 박사과정)의 장학생으로 공부했다.
경북대학교 인문대학 독어독문학과 강사(1995~1997), 로스톡 막스-플랑크 사회 통계학 연구소 독일어 강사(2002~2003), 로스톡대학교 독일어 강사(2003~2006), 칼스루에교육대학교 독어학과 강사(2008~2010)를 역임하고, 현재 칼스루에대학교 강사로 일하고 있으며, 2007년부터 프랑크푸르트의 "우리 신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PEN문학 해외동포창작문학상(수필, 2008), 재외동포재단 제11회 재외동포문학상(수필, 2009)을 받았다. 1993년 결혼, 아들 한별 벤야민이 있다.
▣ 주요 목차
작가의 말
part 1 유학생의 눈에 비친 독일 Mit den Augen einer Studentin
프리데리케의 아이
아기 옷상자
프리데만의 자동차 타기
다른 사랑, 같은 권리
삼순이
아리랑과 골로와즈
part 2 아이를 키우며 Zeit mit meinem Kind
아이
아빠와 함께 아침 식사를!
그림 그리기
한별이의 음악 학교
입학
커리큘럼에 관한 우화
마틴의 행진
성탄 파티
시와 함께
바이올린
아이의 충고
part 3 독일 풍경 Zeit mit meinem Kind
전설의 로렐라이
장미의 월요일, 튤립의 일요일
로비
산책
프랑 부인과 3cm
바네사
재회
마누엘
마울브론 수도원
합창
남편의 한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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