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소개
▣ 출판사서평
“맛을 알아야 맛을 내지!”
다양한 경험이 진정한 결실의 밑거름이 된다는 이야기
옛날 어느 시골에 ‘고린재비’라 불리는 지독한 구두쇠가 살았다. 고린재비에겐 아들 삼 형제가 있었는데 한창 클 나이라 많이 먹어도 뒤돌아서면 배가 고팠다. 무엇을 더 먹일까 고민하는 게 부모의 마음이건만 고린재비는 반찬값도 아까워 어느 날 꾀를 내었다. ‘소금버캐가 허옇게 내솟은’ 굴비 한 마리를 사와서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밥 한 숟갈 먹을 때마다 반찬 삼아 굴비를 한 번씩 쳐다보게 한 것이다. 처음엔 울고 보채던 아이들은 차츰 적응하더니 나중엔 굴비 없이도 맨밥을 꿀떡꿀떡 먹게 되었다.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고린재비는 늙어 죽었지만 여전히 삼 형제는 반찬 없이 밥만 먹고 살았다. 반찬 없이 밥을 먹는 것에 길들여져 먹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좋은 논과 밭에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 곡식이며 과일을 풍성하게 거둬들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큰아들의 농산물을 사간 사람들은 두 번 다시 사러 오지 않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겉보기엔 탐스럽고 먹음직스럽네만 먹어 보면 정작 맛이 빠져 있으니 이런 허망할 데가 어디 있겠나.”하면서 수군거렸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은 노인은 ‘고린재비네 뒷간에서 나오는 뒷거름이 싱겁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분석했다. 먹은 게 밥 말고는 없으니 똥에도 영양가가 없고 그걸 비료로 써서 농사를 지으니 농산물도 당연히 맛이 없다는 얘기인 것이다. ‘맛’으로 비유되는 다양한 ‘경험’이 진정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는 진리를 담고 있는 이야기이다. 농사가 잘 안 되자 둘째와 셋째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하러 길을 떠나는데……. 이들의 실력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얼이 빠진 것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
무엇이든 혼이 담겨 있어야 감동을 주는 법
둘째아들은 아무도 사가지 않는 농사에 싫증을 내고 소리꾼이 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천장에 매달린 굴비를 쳐다보면서 밥을 먹을 때 가장 많이 울고 보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목청이 트였던 것이다. 둘째는 유명한 소리 스승에게 신임을 얻어 부잣집 잔치에 스승 대신 명창 자격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잔뜩 흥이 나 모여들었던 손님들은 “하품을 더럭더럭 하며 흩어”지는 것이다. 스승은 그제야 제자의 소리가 “기쁨과 슬픔, 노여움과 즐거움을 갖춘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살맛까지 달아나게 음산한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둘째는 소리꾼 노릇에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셋째는 환쟁이가 되기 위해 대처에 나갔다. 먹고 싶은 걸 억지로 참으면서 굴비를 뚫어져라 관찰해온 덕분에 무엇이든 똑같이 그릴 수 있는 능력이 생겼던 것이다. 둘째는 그림 스승의 추천으로 어느 고을 장자의 초상화를 “장자와 조금도 틀리지 않게” 그려냈다. 초상화를 본 사람들은 처음에 깜짝 놀랐지만 곧 실망하며 수군댔다. 장자 또한 “이 얼빠진 얼굴이 어떻게 산 사람 얼굴이랄 수가 있느냐?”며 벌컥 화를 냈다. 그제야 그림 스승도 제자의 그림이 “얼을 빼먹고 그렸기 때문에” “가짜처럼 진짜하고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셋째도 환쟁이 노릇에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집에 모인 삼 형제는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고 지혜로운 노인의 조언에 따라 남들 다 아는 맛을 그제야 배우기 시작한다. 이제 삼 형제는 인생의 참맛을 알아가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할 것이다.
▣ 작가 소개
글 : 박완서
朴婉緖
경기도 개풍(현 황해북도 개풍군) 출생으로, 세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로 이주했다. 1944년 숙명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교사였던 소설가 박노갑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작가 한말숙과 동창이다. 1950년 서울대학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전쟁으로 중퇴하게 되었다. 개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박완서에게 한국전쟁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없는 기억이다.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거의 폐인이 되어 돌아온 `똑똑했던` 오빠가 `이제는 배부른 돼지로 살겠다`던 다짐을 뒤로 하고 여덟 달 만에 죽음을 맞이하고, 그후 그의 가족은 남의 물건에까지 손을 대게 되는 등 심각한 가난을 겪는다.
그후 미8군의 PX 초상화부에 취직하여 일하다가 그곳에서 박수근 화백을 알게 된다. 1953년 직장에서 만난 호영진과 결혼하고 살림에 묻혀 지내다가 훗날 1970년 불혹의 나이가 되던 해에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 이후 우리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까지 뼈아프게 드러내는 소설들을 발표하며 한국 문학의 한 획을 긋고 있다. 박완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에 적절한 서사적 리듬과 입체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다채로우면서도 품격 높은 문학적 결정체를 탄생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작가는 우리 문학사에서 그 유례가 없을 만큼 풍요로운 언어의 보고를 쌓아올리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그녀는 능란한 이야기꾼이자 뛰어난 풍속화가로서 시대의 거울 역할을 충실히 해왔을 뿐 아니라 삶의 비의를 향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구도자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다.
한국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다룬 데뷔작 『나목』과 『목마른 계절』『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아저씨의 훈장』『겨울 나들이』『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을 비롯하여 70년대 당시의 사회적 풍경을 그린 『도둑맞은 가난』『도시의 흉년』『휘청거리는 오후』까지 저자는 사회적 아픔에 주목하여 글을 썼다. 『살아있는 날의 시작』부터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작가는 행복한 결혼은 어떤 형태인가를 되묻게 하는 소설인 『서 있는 여자』『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 점점 독특한 시각으로 여성문제를 조명하기 시작한다. 또 장편 『미망』『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에서는 개인사와 가족사를 치밀하게 조명하여 사회를 재조명하기도 한다.
『배반의 여름』은 1975년 9월에서 1978년 9월까지 발표했던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다. 「조그만 체험기」「흑과부黑寡婦」「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등에서 볼 수 있듯이 박완서가 그리는 모성의 힘은 실로 놀랍다. 성균관대에서 열린 ‘2006 호암상 수상자(예술상) 초청 강연회’에서 박완서는 이렇게 말했다. “내 문학의 뿌리는 어머니”라고. 박완서 특유의 수다스러움으로 풀어내는 모성의 힘은 힘센 것들만이 권력을 쥐고 판을 치는 현대산업사회에서 뒤로 처진 자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위무해준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는 1987년 1월에서 1994년 4월까지 발표되었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가족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 네 개나 있는데 그중「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은 남편의 죽음을,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아들의 죽음을 담고 있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특이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체로 되어 있는데 담담하게 이어가는 주인공의 목소리에서 가슴이 메어지는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저녁의 해후』에는 1984년 1월부터 1986년 8월까지 발표했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해산바가지」「애 보기가 쉽다고?」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여기에서 나타나는 하층민들의 인간애는 가진 자들의 야만성과 대비되어 더욱 빛을 발한다.
『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은 1979년 3월에서부터 1983년 8월까지 발표한 작품들을 수록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속물성과 위선이 난무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두드러진다. 젊은 것들의 무관심과 조롱 속에서 외롭게 늙어가는 노인들의 모습을 담아낸 「황혼」「천변풍경泉邊風景」과, 출세한 자들의 허위를 그린 「내가 놓친 화합(和合)」「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 등이 그것이다.
『미망』은 조선조 말기에서 6ㆍ25 전쟁 직후까지 그 파란만장했던 시대를 한 개성 상인의 가족사를 통하여 재창조한 대하소설이다. 민족의 수난사와 더불어 고난과 격동의 시대를 험준한 산을 넘듯 숨가쁘게 살아온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박완서 소설 문체가 도달한 궁극적인 경지를 보여 주고 있다.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작가는 사람과 자연을 한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느낀 기쁨과 경탄, 감사와 애정을 담아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펴냈다. ‘친절한 책읽기?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연재했던 글도 함께 실어 노작가의 연륜과 성찰이 돋보이는 글을 선보였다.
1993년부터 국제연합아동기금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1994년부터 공연윤리위원회 위원, 1988년부터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그 가을의 사흘 동안』으로 한국문학작가상, 『엄마의 말뚝』으로 제5회 이상문학상 『미망』으로 대한민국문학과 제3회 이상문학상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제38회 현대문학상 등을 받았다. 2006년, 문화예술인으로서 처음이자 여성으로서도 처음으로 서울대학교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평소 입버릇처럼 "전쟁의 상처로 작가가 됐다."고 고백해왔던 그녀는 전쟁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은 경험으로 글을 써왔다. 여러 편의 장편소설과 수필집, 동화집을 발표하고, 2010년 8월 수필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마지막으로 2011년 1월 22일, 담낭암 투병 중 별세했다. 경기 구리시에는 ''박완서 문학마을''이 조성될 예정이다.
그림 : 이종균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했다. 광고회사를 거쳐 케이블 만화채널 투니버스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했으며 현재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그린 책으로 『당나귀는 당나귀답게』, 『오! 행복한 카시페로』, 『뿌뿌의 인사』, 『고집쟁이 임금님』, 『미안해 사하르』, 『서로 속인 토끼와 자라』 등이 있다.
“맛을 알아야 맛을 내지!”
다양한 경험이 진정한 결실의 밑거름이 된다는 이야기
옛날 어느 시골에 ‘고린재비’라 불리는 지독한 구두쇠가 살았다. 고린재비에겐 아들 삼 형제가 있었는데 한창 클 나이라 많이 먹어도 뒤돌아서면 배가 고팠다. 무엇을 더 먹일까 고민하는 게 부모의 마음이건만 고린재비는 반찬값도 아까워 어느 날 꾀를 내었다. ‘소금버캐가 허옇게 내솟은’ 굴비 한 마리를 사와서 천장에 매달아 놓고 밥 한 숟갈 먹을 때마다 반찬 삼아 굴비를 한 번씩 쳐다보게 한 것이다. 처음엔 울고 보채던 아이들은 차츰 적응하더니 나중엔 굴비 없이도 맨밥을 꿀떡꿀떡 먹게 되었다. 아이들이 자라서 어른이 되고 고린재비는 늙어 죽었지만 여전히 삼 형제는 반찬 없이 밥만 먹고 살았다. 반찬 없이 밥을 먹는 것에 길들여져 먹고 싶은 게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큰아들은 아버지에게 물려받은 좋은 논과 밭에 부지런히 농사를 지어 곡식이며 과일을 풍성하게 거둬들였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큰아들의 농산물을 사간 사람들은 두 번 다시 사러 오지 않는 것이다. 마을 사람들은 “겉보기엔 탐스럽고 먹음직스럽네만 먹어 보면 정작 맛이 빠져 있으니 이런 허망할 데가 어디 있겠나.”하면서 수군거렸다.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은 노인은 ‘고린재비네 뒷간에서 나오는 뒷거름이 싱겁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분석했다. 먹은 게 밥 말고는 없으니 똥에도 영양가가 없고 그걸 비료로 써서 농사를 지으니 농산물도 당연히 맛이 없다는 얘기인 것이다. ‘맛’으로 비유되는 다양한 ‘경험’이 진정한 결실을 맺을 수 있는 밑거름이 된다는 진리를 담고 있는 이야기이다. 농사가 잘 안 되자 둘째와 셋째는 각자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휘하러 길을 떠나는데……. 이들의 실력은 사람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얼이 빠진 것은 빛 좋은 개살구일 뿐!”
무엇이든 혼이 담겨 있어야 감동을 주는 법
둘째아들은 아무도 사가지 않는 농사에 싫증을 내고 소리꾼이 되기 위해 길을 떠났다. 천장에 매달린 굴비를 쳐다보면서 밥을 먹을 때 가장 많이 울고 보챘기 때문에 자신도 모르게 목청이 트였던 것이다. 둘째는 유명한 소리 스승에게 신임을 얻어 부잣집 잔치에 스승 대신 명창 자격으로 나가게 되었다. 그런데 잔뜩 흥이 나 모여들었던 손님들은 “하품을 더럭더럭 하며 흩어”지는 것이다. 스승은 그제야 제자의 소리가 “기쁨과 슬픔, 노여움과 즐거움을 갖춘 사람의 소리가 아니라” “살맛까지 달아나게 음산한 소리”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둘째는 소리꾼 노릇에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셋째는 환쟁이가 되기 위해 대처에 나갔다. 먹고 싶은 걸 억지로 참으면서 굴비를 뚫어져라 관찰해온 덕분에 무엇이든 똑같이 그릴 수 있는 능력이 생겼던 것이다. 둘째는 그림 스승의 추천으로 어느 고을 장자의 초상화를 “장자와 조금도 틀리지 않게” 그려냈다. 초상화를 본 사람들은 처음에 깜짝 놀랐지만 곧 실망하며 수군댔다. 장자 또한 “이 얼빠진 얼굴이 어떻게 산 사람 얼굴이랄 수가 있느냐?”며 벌컥 화를 냈다. 그제야 그림 스승도 제자의 그림이 “얼을 빼먹고 그렸기 때문에” “가짜처럼 진짜하고 똑같”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렇게 셋째도 환쟁이 노릇에 실패하고 고향으로 돌아갔다. 고향집에 모인 삼 형제는 마을에서 가장 나이 많고 지혜로운 노인의 조언에 따라 남들 다 아는 맛을 그제야 배우기 시작한다. 이제 삼 형제는 인생의 참맛을 알아가며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할 것이다.
▣ 작가 소개
글 : 박완서
朴婉緖
경기도 개풍(현 황해북도 개풍군) 출생으로, 세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로 이주했다. 1944년 숙명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교사였던 소설가 박노갑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작가 한말숙과 동창이다. 1950년 서울대학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전쟁으로 중퇴하게 되었다. 개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박완서에게 한국전쟁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없는 기억이다.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거의 폐인이 되어 돌아온 `똑똑했던` 오빠가 `이제는 배부른 돼지로 살겠다`던 다짐을 뒤로 하고 여덟 달 만에 죽음을 맞이하고, 그후 그의 가족은 남의 물건에까지 손을 대게 되는 등 심각한 가난을 겪는다.
그후 미8군의 PX 초상화부에 취직하여 일하다가 그곳에서 박수근 화백을 알게 된다. 1953년 직장에서 만난 호영진과 결혼하고 살림에 묻혀 지내다가 훗날 1970년 불혹의 나이가 되던 해에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 이후 우리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까지 뼈아프게 드러내는 소설들을 발표하며 한국 문학의 한 획을 긋고 있다. 박완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에 적절한 서사적 리듬과 입체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다채로우면서도 품격 높은 문학적 결정체를 탄생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작가는 우리 문학사에서 그 유례가 없을 만큼 풍요로운 언어의 보고를 쌓아올리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그녀는 능란한 이야기꾼이자 뛰어난 풍속화가로서 시대의 거울 역할을 충실히 해왔을 뿐 아니라 삶의 비의를 향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구도자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다.
한국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다룬 데뷔작 『나목』과 『목마른 계절』『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아저씨의 훈장』『겨울 나들이』『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을 비롯하여 70년대 당시의 사회적 풍경을 그린 『도둑맞은 가난』『도시의 흉년』『휘청거리는 오후』까지 저자는 사회적 아픔에 주목하여 글을 썼다. 『살아있는 날의 시작』부터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작가는 행복한 결혼은 어떤 형태인가를 되묻게 하는 소설인 『서 있는 여자』『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 점점 독특한 시각으로 여성문제를 조명하기 시작한다. 또 장편 『미망』『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에서는 개인사와 가족사를 치밀하게 조명하여 사회를 재조명하기도 한다.
『배반의 여름』은 1975년 9월에서 1978년 9월까지 발표했던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다. 「조그만 체험기」「흑과부黑寡婦」「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등에서 볼 수 있듯이 박완서가 그리는 모성의 힘은 실로 놀랍다. 성균관대에서 열린 ‘2006 호암상 수상자(예술상) 초청 강연회’에서 박완서는 이렇게 말했다. “내 문학의 뿌리는 어머니”라고. 박완서 특유의 수다스러움으로 풀어내는 모성의 힘은 힘센 것들만이 권력을 쥐고 판을 치는 현대산업사회에서 뒤로 처진 자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위무해준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는 1987년 1월에서 1994년 4월까지 발표되었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가족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 네 개나 있는데 그중「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은 남편의 죽음을,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아들의 죽음을 담고 있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특이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체로 되어 있는데 담담하게 이어가는 주인공의 목소리에서 가슴이 메어지는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저녁의 해후』에는 1984년 1월부터 1986년 8월까지 발표했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해산바가지」「애 보기가 쉽다고?」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여기에서 나타나는 하층민들의 인간애는 가진 자들의 야만성과 대비되어 더욱 빛을 발한다.
『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은 1979년 3월에서부터 1983년 8월까지 발표한 작품들을 수록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속물성과 위선이 난무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두드러진다. 젊은 것들의 무관심과 조롱 속에서 외롭게 늙어가는 노인들의 모습을 담아낸 「황혼」「천변풍경泉邊風景」과, 출세한 자들의 허위를 그린 「내가 놓친 화합(和合)」「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 등이 그것이다.
『미망』은 조선조 말기에서 6ㆍ25 전쟁 직후까지 그 파란만장했던 시대를 한 개성 상인의 가족사를 통하여 재창조한 대하소설이다. 민족의 수난사와 더불어 고난과 격동의 시대를 험준한 산을 넘듯 숨가쁘게 살아온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박완서 소설 문체가 도달한 궁극적인 경지를 보여 주고 있다.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작가는 사람과 자연을 한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느낀 기쁨과 경탄, 감사와 애정을 담아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펴냈다. ‘친절한 책읽기?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연재했던 글도 함께 실어 노작가의 연륜과 성찰이 돋보이는 글을 선보였다.
1993년부터 국제연합아동기금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1994년부터 공연윤리위원회 위원, 1988년부터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그 가을의 사흘 동안』으로 한국문학작가상, 『엄마의 말뚝』으로 제5회 이상문학상 『미망』으로 대한민국문학과 제3회 이상문학상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제38회 현대문학상 등을 받았다. 2006년, 문화예술인으로서 처음이자 여성으로서도 처음으로 서울대학교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평소 입버릇처럼 "전쟁의 상처로 작가가 됐다."고 고백해왔던 그녀는 전쟁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은 경험으로 글을 써왔다. 여러 편의 장편소설과 수필집, 동화집을 발표하고, 2010년 8월 수필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마지막으로 2011년 1월 22일, 담낭암 투병 중 별세했다. 경기 구리시에는 ''박완서 문학마을''이 조성될 예정이다.
그림 : 이종균
대학에서 시각디자인을 공부했다. 광고회사를 거쳐 케이블 만화채널 투니버스에서 아트디렉터로 일했으며 현재 일러스트레이터로 활동 중이다. 그린 책으로 『당나귀는 당나귀답게』, 『오! 행복한 카시페로』, 『뿌뿌의 인사』, 『고집쟁이 임금님』, 『미안해 사하르』, 『서로 속인 토끼와 자라』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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